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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江에서 달을 보다] 해인사 한주 도견 스님

淸潭 2012. 5. 7. 16:27

 

[千江에서 달을 보다] 해인사 한주 도견 스님
 
허깨비 보고 마음 일으킨들 무슨 소용 있나!
2010.07.05 16:45 입력 발행호수 : 1055 호 / 발행일 : 2010-07-05

19살 때 오대산으로 출가
지월 만나 대오원력 다져

60여년 ‘한 물건’ 화두
회광반조하면 분명 있어

어느 날, 6조 혜능 선사가 대중에게 말했다.
“여기에 한 물건이 있는데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다. 이름도 없고 뒤도 없으며 앞도 없는데, 그대들은 이것을 알겠는가?” 신회가 한마디 했다. “모든 부처님의 본원이며 저의 불성입니다.” 이에 혜능선사가 일갈했다. “너희에게 이름도 없다고 말했는데 너는 본원과 불성이라 부르고 있구나.”

1000여 년 전의 일이라 해서 어찌 오늘의 일이 아닐까! 육조가 전한 ‘한 물건(一物)’은 시공을 초월해 지금도 화두로 생생하게 살아 있다. 해인사 한주 도견 스님도 ‘일물’을 들었다. 법을 묻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스님은 ‘시간의 토막도 없고, 큰 것도 작은 것에 포함되며, 작은 것도 큰 것에 포함되는 자유자재의 한 물건을 찾고 있다’고 했다. 행선을 마치고 돌아오는 스님에게 누군가 ‘어디 다녀오시는 길’이냐 여쭤보면 ‘한 물건 보고 왔다’고 할 뿐이었다. 도견 스님이 ‘한 물건’ 외에 항상 곁에 두고 있는 게 하나 더 있다면 『금강경』일 것이다. 지금도 스님은 길을 묻는 사람에게 항상 『금강경』 한 대목을 들려주고 있다. 도견 스님은 한암 스님으로부터 『금강경』을 배운 바 있다.

해인사 부 방장격인 동당 수좌로서 방장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과 함께 후학을 제접하고 있는 도견 스님은 해인사 노스님들이 머무는 극락전에 주석하고 있다. 극락전 와선당 방 한 칸. 작은 옷장과 찻상, 그리고 작은 탁자만으로도 방이 비좁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타 스님이 ‘주고 갔다’는 토굴에서 매일 한두 시간의 정진을 했지만 지금은 그 마저도 내려놓았다. 새벽 3시 도량석에 맞춰 일어난 후 하루 두 차례의 포행이 스님의 일과라면 일과다.

한 물건! 그 한 물건이 무엇이기에 스님은 평생을 화두로 들었을까? 우문이지만 “오늘도 한 물건 보셨습니까?”하고 여쭈어 보았다. 스님은 조용한 미소를 짓더니 잠시 후 한마디 일러 주었다.
“남악회양도 8년 후 돌아와 혜능을 다시 만났지요.”
혜능선사가 처음 만나 회향선사에게 물었다.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가?” 이에 즉답을 못한 회양은 8년 참구 끝에 다시 혜능을 찾았다.
“어느 곳에서 왔느냐?”
“숭산에서 왔습니다.”
“무슨 물건이 어떻게 왔는가?”
“한 물건이라 해도 맞지 않습니다.”
“그 자리에서 닦아 증득할 수 있느냐?”
“닦아 증득하는 것이 없지는 않지만 오염될 수는 없습니다.”
“오염되지 않는 이것을 모든 부처님이 지키고자 했을 뿐인데 그 대가가 이와 같고, 나 또한 이와 같으니라.”
‘한 물건이라 해도 맞지 않으니’, ‘함부로 말로 할 수 있는 게 아닌 것’이다. 서산 대사는 『선가귀감』을 통해 이에 대해 말한 바 있다.
“여기에 한 물건이 있으니 본래부터 밝고 신령스러워 일찍이 생기지도 않았으며 일찍이 소멸하지 않았다. 이름을 붙일 수도 없고 모양을 그릴 수도 없다.”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는 ‘한 물건’이지만 함허 스님의 말처럼 ‘한 물건’은 고금을 꿰뚫고 있다. 함허 스님은 『금강경』 서문을 통해 ‘여기에 한 물건이 있으니 이름과 모양이 끊어졌으되 고금을 꿰뚫고 있고 티끌에 처하되 육합을 에워쌈이로다(有一物於此 絶名相 貫古今 處一塵圍六合).’고 했다. 불국사 덕민 스님의 번역에 의지해 함허 스님의 금강경 서문에 나타난 ‘한 물건’을 보자.

“한 물건은 어떤 물건인가? 이 ‘하나’란 것은 소리도 없고(希) 빛깔도 없어서(夷) 뜻으로도(情) 말(謂)로도 표현할 길이 끊어졌으며, 보면 있는 듯하다가 메아리처럼 홀연히 사라져서 뒤쫓을 수 없고 황홀하여 헤아릴 수도 없으니, 미혹이라 할 수도 없고 깨달음이라 할 수도 없어 범부다 성인이다 구별할 수 없으며, 나(我)와 남(人)이 없어 나의 것이다(自) 남의 것이다(他)도 일컬을 수 없어서 다만 ‘한 물건(一物)’이라 말했을 뿐이다. 육조스님은 ‘한 물건이 있는데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으며, 이름도 문자도 붙일 수 없으며, 위로는 하늘을 받쳐주고 아래로는 땅을 버텨주면서 밝기는 해보다 더 밝고 어둡기는 칠흑보다 더 검은데, 항상 움직이고 쓰는 가운데 존재하지만 움직이고 쓰면서 거두어 가질 수 없는 것이 이것(一物)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한 물건’이란 말도 역시 억지로 칭했을 뿐이다. 그래서 남악회양 화상은 ‘설사 한 물건이라 하더라도 맞지 않다’라고 했으니, ‘한 물건이 여기 있다’ 함은 바로 당처를 떠나있지 않으면서 항상 깨끗하고 맑은 까닭으로 그렇게 지칭한 것이다.”

함허와 서산의 말을 조금 알 수 있다 해서 ‘한 물건’을 체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리라. 이에 좀 더 다가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혹여, 그 길을 향한 나침반이라고 얻어 보고자 여쭈어 보았다.

세상 모든 것은 다 그림자
실상 보아야 경계 벗어나

인연은 스스로 지어가는 것
법에 의지해 새 인연 만들라

 
성철 스님 부도탑 전경. 거동이 불편한 도견 스님이지만 매일같이 성철 스님 사리탑만큼은 절대로 빼놓지 않고 참배한다.

“금강경에서도 ‘모든 상은 허망하다’ 했지요. 다 그림자일 뿐입니다. 허깨비를 보고 마음을 일으킨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 도리를 알면 경계에 매이는 일은 없으리라 봅니다. 또한 여래를 볼 수 있을 것이며, 여래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스님의 깊은 뜻을 헤아리기 어렵지만 적어도 금강경 사구게에 비추어 자신과 세상을 보면 육근육식의 장난에 흔들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상(相)에 현혹되면 그 상의 실상을 제대로 보지 못할 것임은 명약관화(明若觀火) 한 일이니 말이다.

현재 세납 86세인 도견 스님은 19세에 출가했다. 강화도 백련사 화주보살이었던 어머니를 따라 어릴 때부터 절에 다녔는데 10대 중반에 접어들며 틈만 나면 입산하려 했다. 17세 때 지리산으로 들어가 영원사와 화엄사, 칠불사를 찾아 출가하려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영원사에 갔을 땐 한겨울이었지요. 눈이 허리까지 찼어요. 받아주지 않더군요. 일제 강점기 때이니 절 살림이 어려워서 일거예요. 화엄사도 찾아 갔지만 마찬가지였고…. 칠불사에서는 내가 징병기피자로 오인해 받아 주지 않았지요. 태평양전쟁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절로 숨으려 하는 젊은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하지만 도견 스님은 바로 그 칠불사에서 속가 형을 만나 본의 아니게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그러나 출가 의지는 단호했다. 다시 오대산으로 무작정 길을 떠났고, 동관암에서 홀로 수행하는 스님을 만났다. 지월 스님이었다. 지금도 ‘인욕보살’ 하면 손꼽히는 스님이다. 해인사 주지를 하면서도 손수 쓰레기를 줍고, 공부에 게으른 수좌들을 보면 ‘눈물’을 흘린 바로 그 지월 스님이다.

도견 스님과 지월 스님에 대한 일화가 있다. 도견 스님 행자시절의 이야기다. 보름마다 목욕을 했는데 그 때마다 도견 스님이 벗어 놓은 옷을 은사 스님이 손수 빨아 주었다. 어느 날 지월 스님의 도반이 찾아와 이 일을 보고는 호된 꾸지람이 내려졌다. “세상에 스승이 상좌 옷 빨아주는 법이 어디 있는가”하고 말이다.

“그 때는 절에서 그렇게 다 하는 줄 알았지요.”
또 한 번은 『천수경』을 외느라 밥을 까맣게 태우고 말았다. 별다른 도리가 없어 무조건 잘못 했다며 용서를 빌고 또 빌었다. 은사 지월 스님이 “무슨 큰 죄를 지었기에 그러느냐?”고 물어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은사는 크게 웃었다.

“잘못하는 것은 앞으로 잘 할 근본이라 하셨지요. 은사님의 언행 하나하나가 그대로 가르침이었습니다.”
거동이 불편한 도견 스님이지만 지금도 매일같이 잊지 않고 행하는 일 하나가 있다. 해인사 부도탑을 돌아보는 일인데 성철 스님 사리탑만큼은 절대로 빼놓지 않고 참배한다고 한다. 왜일까? 성철 스님으로부터 어떤 큰 가르침이라도 들은 것일까?

“품고 있던 선지와 법을 세상에 그대로 펼쳐 놓았지요.”
더 이상의 설명은 없었다. 아마도 도견 스님만의 성철에 대한 평가와 존경심이 있을 것이다. 이윽고 스님은 불자들을 위해 ‘인연’ 한마디를 전하고 싶다 했다.
“부처님 법에 의지해 새 인연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우리는 가끔 악연도, 선연도, 불행도, 행복도 다 인연 따라 간다고만 할 뿐 누가 지어가는 지, 지금의 현실은 누가 만들었는지를 외면하려는 경우가 많다. 도견 스님이 전한 ‘새 인연’은 아마도 이를 경계하라는 일침일 것이다. 자신 앞에 펼쳐지는 새 인연은 남이 아닌 자신이 지어가는 것임을 그리고 그 새 인연에 의해 새로운 내가 있음을 은연중에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혹여, 지금도 가슴에 새기고 있는 선시가 있는지 여쭈었다. 스님은 시 한수를 전해 주었다.

천겁을 지내도 옛이 아니고
만세에 뻗쳐 있으되 항상 지금이라
바다와 산이 서로 변천하니
몇 번이나 풍운이 변태하는 것을 보았던가.
歷千劫而不古
亘萬歲而長今
多經海岳相遷
幾見風雲變態

함허 스님의 『금강경』 서문 ‘옛과 지금을 꿰뚫는다’ 부분에 대한 ‘설의’ 한 대목이다. 해인사 일주문에 들어설 일 있다면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가야산 해인사’ 편액 아래 두 기둥을 볼 일이다. ‘歷千劫而不古(역천겁이불고)’, ‘亘萬歲而長今(긍만세이장금)’이 걸려 있다. 도견 스님은 이러한 시 한수 보고 “크게 웃을 수 있다면 불법을 아는 사람”이라고 한다. 어찌하면 파안대소 할 수 있는지 또 한 번 여쭈어 보자 ‘사족’이지만 한마디 더 일러주겠다며 자비심을 내었다.

“혜능 선사가 자신의 의발을 뺏으러 온 혜명에게 이르지요. 네가 네 자신을 돌이켜 보면 비밀한 뜻은 너한테 있다.”
당처를 떠나있지 않으면서 항상 깨끗하고 맑은 까닭으로 지칭한 ‘한 물건’은 분명 내 안에 있다는 사실을 전해주시는 듯하다.

도견 스님은 오늘도 바람을 도반 삼아 부도탑과 일주문을 돌아 볼 것이다. 임제 스님의 한마디가 떠오른다.
“소나무는 늙었고 구름은 한가한데 마음은 텅 비고 밝고 환하여 모든 것이 저절로 잘 맞다(松老雲閑 曠然自適).”  

채한기 상임논설 위원 penshoot@beopbo.com


도견 스님은

1925년 강화도 화전면에서 태어나 1944년 오대산 동관암에서 지월 스님을 은사로 득도했다. 이후 해인사와 송광사를 비롯해 전국 유수 선원에서 정진했다.
1980년 조계종 중앙종회 의장과 해인사 주지를 역임했다. 1999년 조계종 총무원장 직무대리와 원로의원을 역임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