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千江에서 달을 보다] 천안 평심사 정원 스님
- 대장경 항해 11년…法海서 건진 보물 세상에 내놓다
- 2010.06.22 14:46 입력 발행호수 : 1053 호 / 발행일 : 2010-06-22
일우 선사 만나 출가 결심
사경에 쓴 붓만 1천 자루

천안시 광덕면 매당리 태화산 산자락에 자리한 작은 산사 평심사(平心寺). 이곳에 30여 년 동안 은둔하고 있는 스님이 한 분 있다. 정원 스님이다. 대중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선객들 사이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회자되고 있는 선사다. 정원 스님은 1992년부터 2002년까지 11년 동안 고려대장경, 대정신수대장경, 일본속장경, 한국불교전서, 조선불교통사, 삼장법수 등을 2회 열독한 스님이다. 스님이 대장경 보는 게 무슨 대수냐 할 수 있지만 전 대장경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보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냥 눈으로만 대장경을 본 게 아니다. 그 속에 담긴 핵심을 파악해 해설한 책까지 내 놓았다. 『벽암록』을 비롯한 『현구집』, 『태화당수세록』, 『대장사원』, 『조정사원』 등은 정원 스님의 안목을 한 눈에 알 수 있는 명저들이다. 특히 각 대장경과 한국불교전서, 조선불교통사, 삼장법수 및 각종 선교 및 전적에서 11만 장단구를 가려 뽑아 내 놓은 『대장서원』은 고려 일연선사의 『석원사림』 250권 편찬에 견줄만 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벽암록』만 보더라도 일반 벽암록과는 차원이 다르다. 전 대장경과 선적을 탐독하지 않고는 해설할 수 없는 대목이 산재해 있다. 『운문록』 등 20여 종의 선가어록의 난해구를 해설한 조정사원 역시 기존에는 맛볼 수 없었던 또 다른 선미를 우리에게 선사하고 있다.
평심사 태화당에 다다르며 정원 스님이 지은 ‘평심’ 이라는 시를 음미해 보았다. 사명인 평심사와도 연계돼 있지만 이 시 한 수에 스님의 지난 과정과 현재의 모습이 담겨져 있으리라는 막연한 추측에서다.
홀로 이십년을 안거하는 일이 어떠하냐 한다면(獨居卄秋事若何)
어떤 때는 간경하고 어떤 때는 사경한다 하노라(有時看經有時寫).
밤마다 좋아하는 시를 짓기도 함은(夜夜酖酖或題詩)
선계중의 습기를 제하지 못했음을 어찌하리요(不除仙中習那何).
비 때리고 바람 붊은 묘리를 연설함이요(雨打風吹演妙理)
꽃 피고 잎 짐은 진기를 드러냄이로다(花開葉落露眞機).
왕고에도 여여요 미래와 현재도 여하니(往古如如來今如)
이런 고로 평심이라 이름 함이 옳다 하노라(是故名爲平心是).
대장경-불교전서-삼장법수
두 번 열독 후 명저 선보여
정원 스님은 1968년 세납 열아홉에 부산 구포에서 일우 스님을 만났다. 일우 스님은 당시 ‘괴각’승으로 소문나 있었지만 법만큼은 출중해 누구나 존경했다고 한다. 일단 법문을 시작하면 폭포수와도 같은 장광설이 떨어졌는데 한 대목도 흘려들을 게 없었다고 한다. 스승의 법문 한 토막에 출가를 결심한 정원 스님은 1970년 탈백(脫白)했다. 스승 일우 스님은 정원 스님에게 어떤 가르침을 내렸을까?
“방석 위에 앉는 것부터 배우지 마라 하셨습니다. 공부하라 했어요. 스승님도 경이나 어록 앞에 한 번 앉으면 끝장이라도 보려는 듯 무섭게 파고들었지요. 어떤 날은 석 달 동안 거의 잠도 안 주무시고 경과 어록을 보셨지요.”
정원 스님은 출가하자마자 사경에 들어갔다. 『금강경』을 비롯한 경전은 물론 『속지월록』, 『백운』, 『임제어록』 등을 직접 붓으로 쓰며 공부해 갔다. 이 때 쓴 붓만도 1천여자루가 넘는다. 눈으로 보며 귀로 듣는 일반 강원 교육 형식과는 궤를 달리하는 독자적인 공부 형태다.
“처음엔 스승님이 하라고 하니까 ‘예’ 하고 무작정 써 내려간 셈이지요. 하지만 어느 순간에서부턴가 번뜩번뜩 거리는 게 있었어요. 신심이 절로 나더군요. 이후로는 한 자를 쓰는 순간, 그 속에 담긴 의미가 백지 위에 펼쳐졌습니다. 마치 금광을 캐 가는 기분이라 할까요!”
‘홀로 이십년을 안거하는 일이 어떠하냐 한다면, 어떤 때는 간경하고 어떤 때는 사경한다 하노라’한 연유가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정원 스님이 고려대장경 완독 원력을 처음 세운 것은 1992년. 그러니까 출가 22년째 되던 해다.
“백장, 설두, 대혜종고, 잠대충 같은 선지식을 보세요. 선을 했다고 단순히 선만 아는 게 아닙니다. 선교를 겸수했지요. 이 공부를 시작한 이상 끝까지 가 봐야 한다고 마음을 먹었지요.”
그 해 3월, 정원 스님은 인근의 천안 공동묘지 앞에서 서원했다고 한다. ‘인내심을 갖고 한 번 해 보자. 보다가 죽는다면 그냥 죽자.’ 이후 정원 스님은 11년 동안 ‘대장경’이라는 큰 바다를 항해했다. 법해(法海)서 건져 올린 보물은 그대로 세상에 나왔다. 『벽암록』과 『현구집』, 『태화당수세록』, 『대장사원』, 『조정사원』 등이 바로 그것이다. 정원 스님의 혜안에 의해 해설된 내용도 독보적이만 해설에 따른 출처를 모두 밝히고 있다는 점 역시 놀랍다.
『태화당수세록』에 나온 시 한수 ‘생력’(省力)를 보자. 이 책은 정원 스님이 1992년부터 2004년까지 13년간 지은 시게 700여 수를 선보이고 있는데 각 시게마다 해설이 되어 있다.
봄에 다다르면 봄을 읊고 가을엔 가을을 읊고(屆春唫春秋詠秋)
늪을 만나면 늪이요 강을 만나면 강이니(逢湫乃湫遇江江)
앞 노정을 묻지 않고 좋은 일을 행함이(不問前程行好事)
이것이 생력의 제일방이로다(此是省力第一方).
11만 장단구 뽑은 ‘대장사원’
고려 석원사림과 비견돼 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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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붓 1000여 자루를 써가며 사경했던 필사본과 대장경을 공부한 후 내놓은 명저 『벽암록』과 『현구집』, 『태화당수세록』, 『대장사원』, 『조정사원』. |
살펴 볼 대목은 3, 4행인데 특히 3행에 주목해 보자. ‘앞 노정을 묻지 않고 좋은 일을 행함이’라 했지만 정원 스님은 이에 대한 출처를 명확히 밝히고 있다. ‘단지 좋은 일을 행할 줄만 알고 앞 노정 물음을 쓰지 말라’(但知行好事 不用問前程)는 ‘오등전서 권37 보령원기장’에서 취해 쓴 것임을 밝히고 있다. 자신이 써간 시 한수에도 이렇듯 분명하게 출처를 밝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치와 요처를 말하는 데 있어서는 반드시 전거(典據)를 대야 합니다. 자신이 지은 말이 아님에도 자신이 처음 지은 것처럼 한다면 이 또한 거짓말이지요. 더욱이 선법을 말하는데 있어서 조사들의 고구정녕한 일언을 슬쩍 쓰면서도 그 출처를 밝히지 않는다면 이 또한 훔친 것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정원 스님이 이렇듯 출처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는 이유는 사실 이 뿐만은 아니다. 더 큰 원력이 배어있다. 후학을 위한 배려가 함축돼 있다. 자신의 박식함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요, 자신의 이름을 후대에 남기기 위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자신이 살피고 정리한 글 한 줄을, 후학이 다시 살피고 더욱 파헤쳐 진리에 이르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배어 있는 것이다. 가능한 한 원문을 해석할 때 직역에 가까운 번역을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직역에 대한 논쟁도 있을 수 있지만 원문을 그대로 살릴 때 더 큰 사유의 폭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정원 스님은 가능한 한 직역을 택하고 있다.
대장경을 살핀 정원 스님에게 묻고 싶은 게 하나 있었다. 수행에 따른 인가 문제다. 이에 대해 정원 스님은 시 한수로 답을 대신했다.
단지 오처가 바닥까지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只爲悟處不到底)
우인을 요하고 이천을 요함이 있거니와(有要遇人要履踐)
한 번 깨쳐 영원히 깨치면 이 설이 없나니(一悟永悟無此說)
관문을 벗어난 사람은 관문을 지키는 이에게 묻지 않노라(出關人不問守關).
물론 이 시가 나온 배경과 출처에 대한 설명도 있었다. 백운어록에 나온 일언 즉 ‘깨치고 나서 우인(遇人, 인가해 줄 사람을 만나는 것)을 써야 비로소 옳나니 만약 우인하지 않는다면 단지 꼬리 없는 원숭이가 겨우 재롱을 떨며 나오매 사람들이 바로 웃는다’를 상기해 보라 한다. 하지만 이어 ‘만약 한 번 깨치매 영원히 깨친 것으로 대략(大略)한다면 결단코 이 설(인가해 줄 사람을 만나야 하는 일)이 없느니라’ 한 명본선사의 일언에 귀 기울여야 함을 강조했다.
그대로 살핀다면 깨달음에 이르지 못했기에 묻는 것일 뿐, 진정 깨달았다면 더 이상 물을 것도 없다는 뜻이다. 문을 벗어 난 사람이 굳이 문지기에게 내가 문을 벗어났는지 아닌지를 물을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가가 필요 없다는 말일까?
“물어야 할 사람은 물어야 하고, 묻지 않아도 될 사람은 묻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오전인지 오후인지는 본인만 아는 일입니다. 깨닫지 못한 사람은 말로는 깨달았다 해도 가슴 속에 무엇인가가 남아 있지요. 그러니 깨달아야 할 무엇인가를 또 찾지요. 깨닫지 못한 사람이 깨달았다고 한다면 이는 망언입니다. 이에 관한한 선인들은 참회하려 해도 참회할 수 없다 하셨습니다.”
선지식에 의지해야 할 때가 있고, 스스로 일어서야 할 때가 또 있음을 설파한 것이리라. 대장경 속에서 건진 선시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가 있는지를 묻자 즉석에서 신 한수를 내 보였다,
한 번 명성을 보고 꿈을 바로 돌이키니(一見明星夢便回)
천년 묵은 복숭아씨에 청매가 자라도다(千年桃核長靑梅)
비록 조리된 국 맛은 아니지만(雖然不是調羹美)
일찍이 장군에 주어 갈증을 그치게 했도다(曾與將軍止渴來).
정원 스님에게 이 시는 지금도 ‘가슴 뭉클한 선시’라 했다. 이 선시를 통해 무엇인가 얻은 것이 있음이 분명하다. 무엇일까! 이 시는 ‘오도(悟道) 화두’ 즉 ‘세존께서 샛별을 보시고 깨치셨다’는 부분에서 연유하는데 취암종이 설한 게송이다. 대혜 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세존의 깨달음은 샛별에 있지 않고 향엄의 깨달음은 대나무를 때리는데 있지 않다.”
정원 스님이 세간에 내놓은 책 중 『대장사원』은 『석원사림』과 견줄만한 명저로 평가 받고 있지만 아쉬움이 있다. 아직 한문으로만 편찬돼 있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이나 일본, 대만 등지에서는 보기 쉬울 수 있겠으나 국내 불자들이나 스님들이 보기에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훗날 외국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으면서도 국내서는 외면당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앞선다.
20여종 선가어록 난해구
해설한 ‘조정사원’도 탁월
정원 스님도 언젠가는 한글로 번역한다 했지만 지금은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반야 600권이나 화엄경도 이 책에서는 각각 20여 쪽에 불과하다. 핵심만을 가려 뽑아 편찬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4500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책이다. 이 책이 모두 한글로 번역되려면 시간도 시간이지만 그에 따른 비용 역시 만만치 않다. 그렇다 해도 그 시절인연이 빨리 닿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원 스님이 어느 날 평심사 경내를 조용히 돌아보았다. 한 때는 밭이었던 땅이 주차장으로 변한 모습을 보고 쓴 시 한수다. 제목은 ‘접몽(蝶夢)’이다.
등한히 언덕을 보다가 옛 물건을 엿보니(等閒看壟覰故物)
비로소 제법이 원래 성품이 없다 함을 믿게 되었노라(始信諸法元無性).
겨우 한 생각 일으키면 운니처럼 막히지만(才起一念隔雲泥)
덤으로 접몽을 얻음엔 누가 있어 방애(妨碍)하리요(瀛得蝶夢有誰妨).
혹여 대장경이나 선어록을 보다가 막히는 구석이 있다면 평심사를 찾아보라. 새로운 해석에 따른 독특한 선미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정원 스님도 스승 일우 스님과 마찬가지로 한 번 법을 펴기 시작하면 폭포수와 같이 뿜어내니 그릇을 잘 챙겨야 할 것이다.
채한기 상임 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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