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강에서 달을 보다] 전 조계종 교육원장 청화 스님
- 넘어진 그 자리 ‘무덤’ 아니니 다시 일어서라!
- 2009.12.15 10:36 입력 발행호수 : 1027 호 / 발행일 : 2009-12-15

‘어쩌다 넘어졌다고 해서 어찌 그 자리가 무덤이겠는가’
문단 데뷔 31년 만에 낸 첫 시집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월간문학)에는 청화 스님의 시적 내공이 응축된 140여 편의 시가 펼쳐져 있다. 30년 숙성된 시어들은 세속과 출세간이라는 경계마저 허물어 버리고 있는 듯하다.
사춘기 방황-청년기 절망 후
시심 다독이며 30여 년 詩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일 때/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스님은 ‘아무것도 아닌 내가/ 사람이 되어 섬으로써/ 여기 한 자루 촛불을 들고/ 오늘같이 캄캄한 날/ 사람의 길을 찾는다’며 암울한 시대에서의 ‘항거’ 의미로 촛불을 든 자신을 내어 보이고 있다. 1986년 민주화 운동과 1994년 조계종 종단개혁의 선두에 선 ‘청화’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러면서도 ‘꽃병을 들고 있으면/ 반드시 꽃과 짝해야 하는 법’이라는 스님은 ‘돌을 만나면 돌과 친하고/ 솔방울 굴러 오면 솔방울 보고’ 웃는다. 그래서일까? ‘지금은/ 강물을 따라간 그 길에서/ 자신에게로 돌아가야 할 가을’이라고 읊조린다. 고즈넉한 가을 산사에서 청초한 바람을 가슴에 안은 ‘청화’의 모습이다.
두 ‘청화’가 시집을 통해 내어 보이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일까? ‘어쩌다 넘어졌다고 해서/ 어찌 그 자리가 무덤이겠는가’로 시작하는 ‘희망’이라는 시 한 편에서 그 단초를 찾을 수 있겠다.
시집 출간 몇 개월 후, 청화 스님은 산문집 『향기를 따라가면 꽃을 만나고』(개미)를 내 놓았다. 때로는 철학적 사유를 통한 자문자답의 형식으로, 때로는 고향에 계신 초등학교 은사가 전하는 따끔한 가르침으로, 때로는 이웃집 친구가 전해오는 소식처럼 정감 있게 다가온다. 번뇌와 윤회, 분노와 하심, 진리와 행복 등의 다소 무거운 주제를 명쾌하게 풀어가고 있다.
무엇을 전하고 싶은 것일까? 스님이 말한 인연법에 귀를 기울여 본다. “만일 먹물을 가까이 하면 그 인연으로 아무리 조심해도 언젠가는 옷에 먹물이 묻기 마련이고, 고매한 사람과 친하면 그 인연으로 나의 인격도 어느 결에 그를 닮아 갑니다.”
‘아름다운 꽃이 피어 있으면 길이 나 있는 법’이라 하지 않던가. 그 꽃의 향기를 맡기 위해 사람들이 찾아오니 말이다. 스님은 어쩌면 역설적으로 묻고 있는지도 모른다. ‘당신은 당신만의 향기를 간직하고 있느냐?’고. 어떤 인연을 지어가야 향기 나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일까!
2009년 3월 조계종 교육원장 임기를 마친 후 시와 산문으로 다가 온 청화 스님을 만나기 위해 서울 정릉의 청암사를 찾았다. 도심에 있는 작은 산사지만 고즈넉하다. 그리고 담백하다. 스님에게 시(詩)는 무엇일까!
“시 이전에 소설을 쓰고 싶었어요.”
‘불법 프리즘’ 통해 본 세상
시·산문으로 청량하게 표출
전남 남원 땅에서 소 몰며 꼴 베는 사춘기 소년은 소설을 쓰고 싶었지만 아버지는 마땅치 않아 했다. 한 밤에 호롱불 켜 놓고 글을 쓰고 있노라면 아버지의 불호령이 내려졌다. “네가 무슨 재주로 소설가가 되겠다고 이 야단이냐. 시키는 농사일이나 제대로 해라.” 어느 날, 그는 완행열차에 몸을 싣고 상경, 용산역에 내렸다. 서울에서 처음 만난 사람은 몇 명의 ‘어깨들’. 골목길로 끌려갔다. 그의 짐에서 나온 건 김소월 시집과 함께 나온 책 네 권. ‘돈 한 푼 안 갖고 겁 없이 서울은 왜 왔느냐?’는 그들의 조롱을 뒤로하고 무작정 걷고 또 걸었다. 절 하나가 보였다. 조계사다.
춘원 이광수의 글을 통해 산사를 동경해 온 그의 가슴이 환해지는 듯했다. 경내를 걷고 있는데 한 스님이 다가와 “왜 왔느냐?”묻는다. 그 스님과 함께 또 다른 절로 걸음을 재촉한다. 구파발 진관사다.
“꿈을 이루는 듯 했지요. 절에서 글을 쓸 수 있으니 말입니다.”
사춘기 청년의 꿈은 그러나 며칠 안 가 산산조각 났다. 스님들은 “절에선 책도 보지 말아야 한다”며 그가 갖고 있던 책 네 권을 모두 빼앗아 버렸다. 그에게 “농사일 일이나 제대로 하라”는 아버지의 ‘꾸지람’이나, “행자 생활부터 똑바로 하라”는 ‘조언’은 그를 절망에 이르게 하는 말일 뿐이었다.
서울역으로 다시 나온 그는 이곳저곳의 약국을 찾아 ‘수면제 40알’을 구입한 후 ‘수도여관’ 방 한 구석에 앉아 털어 넣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떴다. ‘저승’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천장은 이생의 낯익은 천장 그대로였다. 병원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시선이 그의 얼굴에 꽂혔다.
“한 없이 부끄러웠지요! 고개를 어디다 두어야 할지도 모르겠더군요.”
아버지 손에 이끌려 다시 남원으로 낙향! 그리고는 마음을 다잡는다. 다시 길을 떠난다. 이번엔 ‘가출’이 아니라 ‘출가’다. 일주문에 들어섰지만 문학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열성적이었다.
“하루 산사 일과를 끝내고는 글을 썼지요. 주어진 시간은 대략 저녁 공양 끝난 후부터 새벽 세 시까지인데…. 시간이 너무 빨리 가는 거예요.”
문학을 향한 ‘청년기 열병’. 글을 쓰지 않으면 못 견디는 병으로, 한 번 걸리면 말 그대로 약도 없다. 몸에 무리가 가면서 가위눌림이 심해져 갔고, 얼굴도 노랗게 변해갔다. 신경쇠약과 영양실조에 의한 ‘황달’이다. 결국 놓았다. ‘소설 안 쓰면 못 사느냐’는 생각에 이른 스님은 그 간에 쓴 모든 원고를 불살라 버렸다.
1969년 요양차 소요산 자재암으로 갔다. 어느 날 주지 추담 스님이 신도들과 함께 100일 기도를 해 달라 했지만 사양했다. 밥 한 술도 소화 못할 지경에 이른 스님이기에 10일도 아닌 100일 기도는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것이다. 대웅전에서 예불을 마치고 돌아서는 순간 추담 스님의 일언이 떨어졌다.
격동-암울 시대에도 결코
놓아서는 안 될 건 ‘희망’
“청화, 100일 기도 올리지! 여기는 부처님 앞일세!”
순간 시간이 멈춰진 듯했다.
“번갯불 일듯 ‘죽기 아니면 살기’라는 생각이 한 순간에 스쳐갔지요. 그 자리서 ‘예, 알겠습니다’하고는 곧바로 100일 기도에 들어갔어요. 기도는 몸이 아니라 정신이 하는 것 같더군요. 보름쯤 지나니 밥맛도 나요. 한 달쯤 지나니 부처님 말씀이 생생하게 다가오기 시작하더군요.”
당시 기도로 사춘기 때부터 일었던 방황과 절망을 끝냈다. 진정한 사문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자재암에서 수행정진하던 1972년 새해 벽두 동아일보를 펼쳐 들었다. 신문엔 김원각 스님의 ‘목련’ 시가 당선됐다는 소식이 담겨 있었다. 청화 스님도 펜을 들었다. 새로운 시심을 품은지 6년만인 197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조 부문에 스님의 시 ‘채석장 풍경’이 당선됐다.
청화 스님의 시 ‘희망’ 전문은 이렇다.
‘어쩌다 넘어졌다고 해서/ 어찌 그 자리가 무덤이겠는가// 포기하고 눈만 감지 않으면/ 고꾸라진 거기서도 발견할 것 있나니// 보아라! 옆에 놓인 강철의 지팡이/ 무엇에도 부러지지 않을 그 지팡이// 힘껏 꼬나쥐고 다시 일어나면/ 눈부신 먼 산도 가까울진저.’
청년기 죽음의 문턱까지 갈 수 밖에 없었던 방황, 재야운동가로서 겪어야 했던 탄압과 절망적 시대 속에서 건져 올린 시 한 수다. 청화 스님에게 시란 무엇일까!
“수행인으로서 한 평생을 살아간다는 게 그리 녹록치만은 않습니다. 잠시라도 흔들릴 때면 시 한 수 지으며 제 자신을 달래 추슬러 봅니다. 환희심이 날 때도 시 한수 지으며 고양된 마음을 다독여 봅니다. 제게 시는 도반이요, 반려자입니다.”
‘문학’이라는 정화 필터를 통해 자신을 조금씩 정화시켜 간다는 뜻일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보이는 세상을 시로 내어 보인다는 뜻일 것이다. 어쩌면 재야운동가로서의 길을 걸으면서도 끝내 수행인의 본래면목을 잃지 않게 했던 힘이 ‘시’일지도 모를 일이다.
청화 스님은 산문집 『향기를 따라가면 꽃을 만나고』에서 초기경전에 나오는 부처님 말씀을 인용했다.
‘도움을 주기 위해 일곱 걸음을 같이 걸은 사람은 친구요, 열두 걸음을 함께 걸은 사람은 진실한 동지이며, 반달이나 한 달을 함께 있으면서 성실하면 친족이고, 그보다 더 많은 세월을 보냈으면 자기 자신과 같다.’
누구와 함께 걸어 볼 것인가. 향기를 따라가면 꽃을 만나듯, 향기 나는 사람과 일곱 걸음을 걷고 열두 걸음을 걸은 후 한 달을 함께 하면 어느 새 자신도 향기 나는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을까!
“누구와 함께 길을 떠나는 지, 그리고 무엇을 따라 가느냐에 따라 도달하는 곳도 다르고 만나는 대상도 다르며 얻는 물질도 다릅니다. 이런 관계 현상을 우리는 인연이라고 합니다. 어떤 인연을 지으며 이 한 생을 살아갈지는 자신이 선택 해야지요.”
청화 스님에게 ‘향기’란 무엇일까!
“고매함입니다. 미추가 둘이 아니라 하지만 그건 모든 경계를 벗어 난 궁극에서 바라 본 세상입니다. 일단, 수승한 사람이 되어 보려 노력해야 합니다. 인연법을 알고 하심하며 살다 보면 자신만의 향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부처님 인연지어 가면
자신 향기 품을 수 있어
스님의 시집에도 ‘향기’를 소재로 한 시들을 상당수 담겨 있다. 시 ‘향기 있는 사람’에서 스님이 그토록 간절히 원하는 사람을 찾을 수 있다.
‘그립습니다/ 마주앉으면/ 하얀 라일락꽃 같고/ 만지면 잘 익은 모과처럼/ 손에까지 오래 香이 남는 사람/ 그 어디 없습니까............그립습니다/ 생각만 하여도/ 곁에만 있어도 항상/ 흥건한 가슴이 되는/ 이런 향기 있는 사람/ 혹 어디 없습니까’
향기 나는 사람의 눈에 비친 세상은 어떤 것일까! 산문집에 이런 대목이 있다.
“한용운 스님은 님의 침묵이라는 시집의 서문 군말에서 ‘님만 님이 아니라 긔룬 것은 다 님이다’라고 했습니다. 보배도 그렇습니다. 특정한 사람에게 특정한 것만이 보배가 아니라 사람마다 필요한 것은 다 보배입니다. 우리의 생명과 삶을 존속시키는데 없어서는 안 될 것들은 다 보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세상만물이 다 ‘보배’다. ‘화엄’에서 말하는 이사무애와 사사무애란 이런 것이 아닐까! 우리 모두가 따라가 보아야 할 분이 있다고 청화 스님은 강조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가면 고통이 없는 안락한 삶에 이를 수 있습니다. 부처님을 따라가면 인생에 대한 바른 안목을 얻을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가면 인격적으로 허물이 없는 나를 만날 수 있습니다.”
자신만의 향기를 갖고 싶다면 ‘부처님을 따라 칠일을 걷고 보름을 걷고 한 달을 걸어 보라’고 청화 스님은 말하고 있다. 자신만의 향기를 갖고, 타인의 향기를 전하는 세상, 여기가 바로 정토요, 극락이라고 청화 스님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시집에서는 ‘희망’을 보고, 산문집에서는 ‘향기’를 맡아 본 느낌이다. 청암사를 떠나며 자문해 본다. ‘나는 진정 며칠을 걸어 보았는가?’
청화 스님은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좋은 생각으로 살면/ 기와조각에서도 장미의 향기를 얻는다.’ 했는데 나는 꽃 한 송이도 그냥 지나치니, 단 하루라도 걸어 본 것일까! 또 하나의 사념이 떠올랐다. 시로든 산문집이로든 이전과는 또 다른 격상된 법설이 청화 스님은 내어 보일 것만 같았다. 조선 보우 스님의 시 한 수가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중의 방은 본래 고요한 것이지만/ 여름이 되니 더욱 맑고 비었네./ 고독을 좋아하니 벗들도 흩어지고/ 시끄러움 싫어하니 나그네도 드물다./ 산에 비 오고 나니 매미 소리 들리고/ 새벽바람 불고 나니 솔바람 소리 들리네./ 동창 아래 긴 하루 동안/ 무심으로 옛 서적을 읽노라.’
채한기 상임 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청화 스님 은
1944년 전북 남원에서 출생. 1964년 화계사에서 혜암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72년 해인사에서 고암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 197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조 부문 당선. 1986년 대한불교정토구현전국승가회 의장 및 민주헌법 쟁취 국민운동 공동의장. 1992년부터 2002년까지 실천불교승가회 의장. 1994년 조계종 초심호계위원장 역임. 조계종 11, 12, 13대 중앙종회의원. 2004년 제5대 조계종 교육원장 취임. 현재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상임고문. 서울 정릉 청암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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