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님의 행장

한국불교 비구니 대강백이자 청정율사인 묘엄스님. 스님은 1931년 정월 경남 진주에서 청담스님의 둘째딸로 태어났다. 스님을 낳은 어머니에 따르면 태몽에서 어느 절에 갔는데 한 영감님이 복숭아 두 개, 하얀 연꽃과 붉은 연꽃을 접시에 담아 주었는데, 복숭아는 먹고 버리면 그만이다 싶어 흰 연꽃 한 송이만 받아 집으로 가져와 꽂았다고 한다. 맑게 핀 연꽃 한송이가 바로 묘엄스님인 것이다.

아버지 청담스님은 묘엄스님이 태어나기 8년 전에 이미 출가득도했다. 묘엄스님은 1930년대 후반 일제강점기에 진주 요시노(吉野)공립초등학교(현 중앙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진주 일신여학교에 진학하려 했는데, 그 무렵 흉흉한 사회정치상황에 쫓겨 청담스님이 주석했던 문경 대승사로 피신을 갔다. 그 인연으로 열다섯 소녀가 세속을 떠나 출가수행자의 길을 걷게 됐다.

일제강점기 문경 대승사서 발심

부친 청담스님·성철스님 영향

1945년 봄 대승사 윤필암에서 당대 비구니 선승인 월혜스님을 은사로 득도한 묘엄스님은 성철스님을 계사로 청담, 청안, 자운스님의 참석하에 사미계를 수지했다. 당시 성철스님은 “내가 아는 모든 것을 너에게 다 가르쳐주겠다”고 했고, 묘엄스님이 출가를 결심하자, “승중계의 큰스님이 되라”며 <화엄경>의 ‘세주묘엄품’에서 따온 이름, ‘묘엄(妙嚴)’이라는 법명을 내렸다.

이후 묘엄스님은 윤필암에서 스님으로써 갖추어야 할 행해율의를 배우면서 대승사 큰절을 왕래하며 당대 내로라하는 큰스님들로부터 ‘중노릇’ 잘하는 가르침을 받았다. 성철스님으로부터 한국역사를 배웠고, 자운스님은 계율을, 청담스님은 수행자로서 대중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줬다.

   
 
한번은 윤필암에서 전 대중 스님들이 큰스님들로부터 능엄주 공덕설 법문을 듣고 크게 발심하여 철야용맹정진을 했는데, 묘엄스님은 무려 21일동안 눕거나 자지 않고 서서 능엄주 주력을 하여 부처님의 위신력을 입기도 했다.

이후 1948년 봄 문경 봉암사로 거처를 옮긴 묘엄스님은 성철스님으로부터 ‘만법은 하나로 돌아갔는데 하나는 어디로 돌아갔는고?’라는 화두를 받아 참선수행에 매진했다. 또 역대 조사 스님들의 사상과 철학을 공부했다.

1959년 동학사서 최초 비구니강사

논어 맹자 치문…일대시교 다 마쳐

이는 묘엄스님이 반세기 이상 강사로서 후학을 가르치며 올바른 수행의 길을 걸어온 밑거름이 됐다. 생전에 묘엄스님은 제자들에게 “누더기를 입어도 정신은 살아있던 봉암사 시절이 가장 중답게 살던 때”라며 “요즘 중노릇하는 이들은 좋은 환경 속에서도 진심을 내지 않고 방일하다”며 경책하기도 했다.

봉암사에서 자운스님을 계사로 식차마나니계를 수지한 묘엄스님은 1950년 통도사로 내려가 자운스님 문하에서 계율학의 기본이 되는 사미니율의와 비구니계본, 범망경 등을 공부했다. 청정승단을 회복하고 정법을 구현할 율맥을 잇는 비구니 율사로서 터전을 굳힌 계기다.

   
 
스님은 출가 이후 7년간 해방과 전쟁이라는 시대적 격동기에도 불구하고 대승사 윤필암, 해인사 국일암, 동래 금화사, 월내 묘관음사, 창원 성주사 등지에서 수선안거를 하며 흔들림없는 구도의 길을 걸었다. 비구니강원이 전무했던 시절 동학사에 주석하고 있는 대강백 운허스님을 찾아가 비구니로서는 처음으로 경전공부를 시작했다.

1956년 공주 동학사에서 사교과를 수료하고 경봉스님으로부터 전강을 받은 묘엄스님은 7년여간 맹자와 논어, 치문부터 일대시교(一代時敎)를 다 마치고 운허스님으로부터 전강을 받았다. 1959년 비구니 전문강원인 동학사에서 최초의 비구니 강사로 취임했다.

이에 앞서 1958년 영축총림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자운스님을 계사로 마침내 비구니 구족계를 수지했다. 묘엄스님은 이후에도 현대식 교육을 통한 학문적 시야를 넓히기 위해 마산대 불교학과를 수료하고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했다.

1971년 봉녕사 정착…중창불사 회향

800여 졸업생 배출 최근까지 경전강의

출가 후 20여년간 당대 우리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고승인 청담, 성철, 운허, 자운스님 슬하에서 선교율(禪敎律)을 섭렵한 묘엄스님은 청담스님이 원적에 든 1971년 수원 봉녕사에 정착했다.

비가 새는 법당 건물과 요사채 한 동이 전부였던 작고 쇠락한 고찰 봉녕사는 묘엄스님의 원력과 기도로 일취월장으로 변모했다. 주변의 논밭을 매립하여 선원을 만들고 강당을 짓기 시작했고 현재 108평의 웅장한 대웅전과 건평 300여평이 넘는 당우 네 채와 최신식 도서관 건물이 들어선 대가람으로 탈바꿈됐다.

봉녕사 강원 개원 이후 40년간 학장을 맡으며 8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 한국 비구니교단의 미래를 밝히는 동량을 양성시켰다. 강원의 교가를 직접 작사하는 남다른 애정도 보였고, 80노구에도 강단에 서서 화엄경과 율원강의에 열정을 쏟았다.

   
 
2007년 독일 함부르크대학에서 열린 ‘승가의 여성불자 역할’ 국제회의에 참석해서 봉녕사의 비구니율원 구조와 교육과정에 관한 논문을 발표, 한국 비구니 스님들의 위상을 전세계에 알렸다. 이 해 묘엄스님은 법전 종정예하로부터 비구니 스님의 최고 법계인 명사법계를 품서받았고 2009년 조계종 계단위원회로부터 비구니 전계화상으로 위촉됐다.

성철스님의 선(禪)과 자운스님의 율(律), 운허스님의 경(經)을 이어받고 당대 고승들로부터 삼장을 전수받아 비구니계의 큰어른으로 우리곁에 살다간 묘엄스님. 스님은 출가수행자로 살아온 70여년간 오로지 공부하고, 후학에게 가르침을 전하는 일에 원력을 다한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참스승이다.


■ 스님의 임종유훈

마음공부는 상대적인 부처님을 뵙고 절대적인 나 자신을 찾는 것이다.

자기를 단속하여 인천의 사표되고 생사에 자재하여중생을 제도하라.


연보

1945년 출가…2011년 원적

<수계>

1945. 3 문경 대승사에서 월혜스님을 은사로 득도

1945. 4 문경 대승사에서 성철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1958. 3 영축총림 통도사에서 자운스님을 계사로 구족계 수지 

<안거>

1949. 4 문경 봉암사에서 수선안거 이래 3안거 성만

<학력>

1949 문경 봉암사에서 성철스님 문하에서 수학

1950 영축총림 통도사에서 자운스님으로부터 사미니율의, 식차마나, 범망경, 비구니계율 등 수학

1956. 2 공주 동학사강원 사교과 수료

1957. 12 영축총림 통도사에서 대교과 수료

1966. 2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졸업

<경력>

1956. 4 공주 동학사에서경봉 스님으로부터 전강

1956. 4 공주 동학사 강사 역임

1957. 12 영축총림 통도사에서 운허스님으로부터 전강

1966. 3 청도 운문사 강주 취임

1974. 3 수원 봉녕사에서 강원 개원 후 강주 역임

1979. 3 수원 봉녕사 주지 취임 및 강주

1980 부산 범어사에서 사미니율의 강의

1981~1984 비구니구족계 수계산림 교수사, 갈마위원 역임

1982~1984 비구니구족계 수계산림 니갈마아사리 역임

1985~1987 비구니구족계 수계산림 갈마위원, 니갈마아사리 역임

1987 승가학원을 승가대학으로 승격함에 따라 학장으로 직위 개칭

1988~1991 비구니구족계 수계산림 교수사, 니갈마아사리 역임

1992. 5 비구니 일연. 성학. 일운에게 전강

1992. 8 제 10대 중앙종회의원 당선, 비구니구족계 수계산림 교수사, 니갈마아사리 역임

1994 BBS 라디오 경전공부 강의

1995. 11 비구니 구족계산림 비구니 전계화상 역임

1996 비구니구족계 수계산림 니교수사

1997 비구니 탁연, 적연스님에게 전강

1998. 8 제2회 특별구족계 수계산림 니갈마아사리 역임

1999. 6 비구니 금강율원 개원 율원장 취임

2003 전국 비구니회 부회장

2004 비구니 상일스님에게 전강

2006 단일계단 제 27회 비구니구족계 수계산림 교수사 역임

2007. 1 단일계단 전계대화상인 성수스님으로부터 율주 임명

2007. 4 법계위원으로부터 명사품서 수지

2007. 5 비구니 적연, 신해스님에게 전계

2007. 9 비구니 대우스님에게 전계

2007. 10 해인사 대적광전에서 법전 종정예하로부터 명사 법계품서 수지

2009. 3 비구니전계화상 위촉

2011 비구니 일연, 도혜, 선나스님에게 전계

2009~2011 현재 비구니 구족계 전계대화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