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식단을 볼 때, 카페모카에 휘핑크림을 올릴지 말지를 결정할 때, 패스트푸드점에서 사이드 메뉴를 고를 때 무의식적으로 확인하게 되는 것, 바로 칼로리다. 우리 삶에 깊숙이 침투한 칼로리는 영양의 척도이자 비만의 심리적 저지선이다. 좀 더 시야를 넓히면 칼로리는 우리가 어디에서 무얼 하며 사는지를 알려주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같은 하루인데 케냐의 마사이 목축인 여성은 하루에 800㎉를 먹고, 영국의 간식 중독 주부는 하루에 12,300㎉를 먹는다.
성인여성의 일일 권장 칼로리를 2,000으로 봤을 때 같은 시간, 누군가는 하루에 한 끼를 먹고 누군가는 열여덟 끼를 먹는 셈이다. 지구상 대부분의 사람은 800㎉와 12,300㎉ 사이 어딘가에 속해 있다. 칼로리는 말한다. ‘당신이 먹는 것이 당신의 하루를 말해준다’고.
당신이 오늘 하루 동안 먹은 음식은 무엇인가. 어금니와 식도, 위장을 거쳐 지금 어딘가에서 당신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을 그 많은 식품들을 기억할 수 있는지. ‘먹는 행위’는 매일 벌어지는 일임에도 식습관은 취미나 특기처럼 단순화하기가 쉽지 않다. 의식하지 않아도 되풀이되는 일상이기에 따로 떼어 생각해 버릇하기도 어렵다(지난주에 어떤 옷을 입었는지는 생각나지만, 점심에 뭘 먹었는지는 떠올리기가 어렵지 않은가).
위의 사례를 보자. 기자의 아침이 간소한 이유는 아침밥을 한상차림으로 먹지 않는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침시간에 여유가 없는 직장인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최근 홈쇼핑과 소셜커머스에서 쏟아지는 두유 할인패키지의 행렬은 아침을 두유로 때우는 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걸 보여준다(우리 팀 기자 다섯 명 중 세 명은 아침에 출근해 이메일을 확인하며 두유를 마신다). 대신 점심 밥상은 제법 잘 갖춰 먹는 편이다. 전문영양사가 있는 사내식당에서 영양소와 칼로리를 배분해 식단을 짜기 때문이다. 매번 두 가지 메뉴가 나오는데, 이 선택의 갈림길에서 행로를 정하는 결정타는 ‘칼로리’일 때가 많다. 지난 복날에는 특식으로 나온 삼계탕의 칼로리(900㎉)가 갈비탕(354㎉)이나 감자탕(175㎉)의 3~5배임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있다. 반면 저녁은 야근을 대비한 야식의 성격이 짙다. 주변의 패스트푸드점이나 배달음식, 편의점의 즉석상품들이 주 메뉴다. 주문만 하면 금방 먹을 수 있다는 장점과 몸 안에 칼로리 폭탄을 장착하게 된다는 단점이 동시에 있다.
극지방에 사는 에스키모든, 가뭄과 내전으로 기근을 겪는 아프리카인이든, 전 세계인이 먹고도 남을 양의 식품을 만들어내는 풍요의 땅에 사는 미국인이든 공통점은 하나다. 우리는 매일 무언가를 ‘먹는다’. 어디에서 태어났느냐,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 음식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그 ‘무엇’이 달라질 뿐이다.
예를 들어 미국에 사는 트럭운전사 콘래드 톨비 씨를 보자. 점심은 맥도날드 더블 치즈버거 슈퍼사이즈와 프렌치프라이, 저녁은 휴게소 편의점에서 파는 샐러드와 닭날개 튀김, 에그롤 튀김을 먹는다. 늘 장거리 운전을 해야 하기 때문에 주로 트럭 안에서 식사를 한다. 1년 중 300일 동안 트럭을 몰고 휴게소와 패스트푸드점에서 식사를 한 뒤 그의 몸무게는 117㎏이 됐고, 45번째 생일이 지난 뒤 첫 번째 심장마비가 왔다. 그가 하루에 섭취한 칼로리는 5,400㎉였다.
콘래드 톨비 씨와 비슷한 식습관을 가진 사람은 인도에도 있다. 샤시 찬드라 씨는 AOL 콜센터 상담원으로 근무 중이다. 언제든 고객들의 상담전화에 응대해야 하기 때문에 밤낮이 바뀐 생활을 하고 있다. 때로 한 시간에서 두 시간까지 이어지는 전화를 받기 위해 그의 식사는 주로 패스트푸드, 초코바, 커피로 이루어진다. 대신 그의 패스트푸드는 중국식 볶음국수를 파는 ‘베이징 바이트’의 콤보세트, 닭고기 케밥 등이기 때문에 톨비 씨보다는 하루 섭취 칼로리가 낮은 편(3,000㎉)이다.
800㎉에서 12,300㎉까지, 칼로리로 돌아본 세계 일주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사진을 찍으면서 우리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섭취 칼로리와 활동량의 조화를 이루는 데 실패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칼로리 플래닛》의 저자 피터 멘젤, 페이스 달뤼시오 부부는 세계 3개국과 미국의 12개 주를 돌아다니며 80명의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를 책에 담았다. 이들의 평범한 하루를 이들이 섭취한 칼로리로 환산했다. 그중에는 하루에 800㎉를 섭취하는 케냐 마사이족 추장의 세 번째 부인부터 하루에 12,300㎉를 섭취하는 영국의 간식 중독 주부까지 다양했다. 800㎉는 하루를 거의 한 끼로 버티는 수준, 12,300㎉는 하루에 열여덟 끼를 먹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은 현재 우리와 같은 지구에 산다.
800㎉, 케냐의 눌키사루니 타라콰이
우유 한 잔, 마사이족의 하루치 식량
하루식단 진한 옥수수죽 400g, 바나나 1개, 우유를 넣은 홍차 2잔 라콰이는 마사이족 추장의 부인 네 명 중 세 번째 부인이다. 우리에게는 ‘마사이 슈즈’로 알려진 이들은 반(半)유목민이다. 무분별한 개발과 가뭄으로 땅이 메마르기 전까지 육류, 선지, 우유 등 풍성한 식사를 즐길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1,900㎉, 중국의 란 구이화
남편이 죽은 후 그를 먹여 살린 농장
하루식단 아침-집에서 키운 닭이 낳은 달걀 완숙한 것 2개, 쌀죽 점심 겸 저녁-양배추 피클, 매운 고추기름, 가지와 깍지 콩, 오리 알, 볶은 고구마 잎, 오이, 두 번 익힌 돼지고기 후이궈로, 쌀밥, 숭늉
중국 중남부 쓰촨성의 산골에서 오렌지와 만다린을 재배하는 란 구이화는 올해 68세다. 동네 사람들과 함께 일구는 여러 가지 채소밭도 있다. 일종의 집단농장 시스템이다.10년 전 남편이 죽은 후로도 그가 ‘먹고 살 걱정’을 덜 수 있었던 이유다. 알과 고기를 얻기 위해 오리와 닭도 키운다.
Q도대체 누가 ‘칼로리’라는 걸 만들어서 우리를 힘들게 하는 거야?
점심 메뉴를 고르거나 패스트푸드점의 사이드 메뉴를 고르거나 커피에 생크림을 올릴지 말지를 결정할 때나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고를 때도 영향을 미치는 단 하나의 단어가 있다. 칼.로.리. 도대체 이 칼로리를 처음 측정하기 시작한 사람은 누구기에 우리를 이렇게 시험에 들게 한단 말인가!
그의 이름은 윌버 올린 앳워터. 19세기 말에 그는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1g에 들어 있는 에너지를 측정해 천여 가지 음식의 칼로리를 계산했다. 그의 목표는 단 한 가지, 가난한 사람들이 같은 돈으로 더 많은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다. 특히 단백질과 전체 에너지를 분석한 그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25센트의 치즈에는 같은 값의 소고기 등심보다 3배나 많은 240g의 단백질이 들어 있다는 것. 그의 발견은 당시로는 혁신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맹점이 있었다. 같은 칼로리라면 그것이 시리얼 한 그릇이든, 스테이크든, 브라우니든 상관없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는 것인데, 문제는 모든 칼로리의 영양상태가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같은 밀가루라도 성기게 빻은 전곡 밀가루는 30%가 소화되지 않은 채 남아 있지만 정제된 흰 밀가루는 거의 전부 소화되기 때문에 앳워터가 환산한 칼로리 양보다 훨씬 더 많은 칼로리를 몸 안에 비축하게 된다.
3,900㎉, 미국의 농장경영인 조엘 살라틴
내 식탁에 오르는 건 나의 농장에서 키운 것
하루식단 아침-농장에서 키운 닭이 낳은 달걀 2개, 집에서 키운 돼지로 만든 소시지, 바나나, 우유 점심-치즈, 사과, 초록 피망, 노랑 피망, 토마토 (작물은 모두 직접 키운 것) 저녁-닭고기, 감자, 깍지 콩, 호박파이 (역시 직접 키운 작물)
Mster Interview - 경일대 식품과학학부 이선미 교수
칼로리는 영양이 아닌 열량
체중조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칼로리를 계산하고 신경 쓰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칼로리는 엄밀히 말해 영양의 척도가 아닌, ‘열량의 척도’예요. 즉, 물 1g이 14.5˚C에서 15.5˚C가 되도록 올리는 데 필요한 열량이죠. 콜라나 사이다를 먹어서 200㎉를 섭취하든, 고기와 야채를 먹어 200㎉를 섭취하든 칼로리만 놓고 볼 땐 똑같아요. 하지만 실제 몸에 끼치는 영향은 다르죠.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섭취하는 칼로리가 달라진다는 건 그 사람의 생활습관과 식습관을 보여주는 동시에, 어떤 영양환경에서 사느냐를 반영합니다. 보통 성인 여성의 경우 2,000㎉, 남성의 경우 2,500㎉라고 보는데 그것도 어떤 활동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요. 케냐의 경우 활동량이 적어 칼로리 섭취가 적다기보다는, 영양환경이 좋지 않은 거겠죠. 반면 적정 칼로리를 넘는 경우도 문제입니다. 부유하기 때문에 많이 먹는다기보다는 관리가 되지 않아, 혹은 교육이 되지 않아 조절에 실패한 경우도 있거든요. 결론적으로 보면, 한 개인에게 적정한 칼로리는 그사람의 삶의 모습에 따라 달라지며 건강과 완전 정비례한다고 볼 수 없는 거죠.
12,300㎉, 영국의 질 맥티그
약물 중독 혹은 음식 중독
하루식단 아침-달걀 샌드위치 2개, 다이제스티브 비스킷 8개, 홍차와 우유 1잔씩 간식-햄앤치즈 샌드위치 점심-베이컨 샌드위치 2개, 감자칩 100g, 홍차와 우유 1잔씩 간식-닭고기, 옥수수 통조림, 감자 저녁-돼지고기 소시지 8개, 프렌치프라이, 구운 콩, 홍차와 우유 1잔씩 간식-초코바 5개
“그거 아세요? 저는 지금의 내가 나라는 걸 깨닫게 됐어요. 예전처럼 사이즈가 8이 될 수 있다면 그렇게 됐겠죠(8 사이즈는 한국 사이즈로 27인치 정도. 그의 현재 사이즈는 16이며 한국 사이즈로 33인치 정도다). 지금 뚱뚱하면 그게 또 나인 거예요.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명랑한 성격도 갖게 됐어요. 저에겐 사랑스러운 구석이 더 많이 있더라고요!”
/ 여성조선
유슬기 기자 참고 《칼로리 플래닛》, 《칼로리 수첩》 사진 강민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