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필자가 방청석에서 속기한 황우석 박사 최후 진술 전문이다.
"사실 오늘 이 자리에서 조금전까지만 해도 그동안의 과오를 자숙하는 의미로 최후진술을 사양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상 피고인 3분에 대한 구형과 증언을 들으며 (제가) 아무 이야기도 없이 그대로 있다면 너무 비겁한 사람이라는 악평을 들게될까봐 조심스레 최후진술을 합니다.
저는 이 사건 수사가 끝나고 (검찰에 의해) 기소된 뒤 억지로 잠이들었다가도 새벽녁이 될 때 '사기횡령'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면 소스라치게 잠에서 깨어나 결국 뜬 눈으로 지새우며 살아왔습니다.
지난 20년간 나름대로는 금욕적인 생활과 스스로 정한 생활의 범주를 넘지 않으며 많은 노력을 했었습니다. 남들 다가는 노래방이라는 곳에도 가본 적이 없고, 아침햇살이 환히 비출때까지 잠자리에 누워본 적도 없었습니다. 이와 같은 연구생활을 나눠 온 저와 저의 연구팀의 등에 '사기꾼 집단'이라는 낙인을 맞게 되면서부터 극심한 고통과 혼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63일 동안 서울지방 검찰청 1235호실에서 8명의 검사님과 수십명의 수사관들에게 심문을 당할 때, 그 이후 약 3년에 걸친 재판과정을 겪어오면서, '왜 수사 또는 재판 과정에 있던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가'에 대한 이해와 동감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이 자체가 저의 운명이고 이 세상에서의 수행과 수양과정이자, 제가 그토록 꿈꾸던 과학도로서의 자세에 다가가지 않을까 다름대로 생각해봅니다.
오늘 저 자신에 대한 변명보다 상 피고인들에 대한 저의 소회를 말하고자 합니다.
먼저 장상식 피고인....제가 오늘 맞고있는 중압감과 고통보다도 장상식 피고인이 법정에 저렇게 앉아있는 모습을 보는 것이 저에게는 더 큰 고통으로 다가옵니다. 제가 안규리 교수의 소개를 받아 장원장을 뵈었을 때 흔쾌히 (연구용 난자제공을) 도와주겠다는 한 말씀에 얼마나 고마왔는지 모르겠습니다. (난자제공후) 일정기간이 지나면 마치 (꿔준) 빚 받아가듯이 또박또박 받아가던 어느 분과는 다르구나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2005년 1월까지만 해도 저는 장 원장님이 자발적 난자기증을 해주신 분들께 개인 사재를 털어 어느만큼의 시술비를 감면해주셨는지 몰랐습니다. 2005년 3월에 이르러 (장원장님) 개인의 비용이 어느 정도 들어가느냐고 여쭤봤더니 이러저러하다고 듣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최소한도 (제가) 과배란 주사만이라도 공급해드리겠노라 말씀드렸더니 장원장님은 '됐다'고 거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장원장님께서 저에게 '모든 힘을 다할테니 (난자제공이) 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가이드라인을 달라'고 요청해오셨습니다. 저는 그 뒤 의사로서 법학을 다시 공부해 법대교수가 된 당시 국가생명윤리위원회 위원이시던 정규원 교수님을 수차례 만나 법적 자문을 구했습니다. 일주일 뒤 그 분께서 (당시 방식이) 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장원장님께 그대로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만일 검찰의 구형을 받아들이시어 장상식 원장께 탓하실 것이 있으시다면 (그것을) 저에게 몰아주십시요. (당시) 장상식 원장님의 행위는 널리 알려지고 칭송받을 일이지 범법자 낙인찍힐 일이 아니라 모든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강성근 교수....가슴 아픕니다. 강성근 교수는 원래 저의 제자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서울대 총장께서 국제연구를 잘하기위해 너의 연구실에 교수를 1명 더 뽑을 수 있는 T.O 를 주겠다고 하셨을때 총장께 저는 저의 제자가 아닌 국제연구를 잘 할 수 있는 훌륭한 전문가를 영입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후 이병천 교수와 상의해, 이병천 교수의 고등학교 후배인 강성근이 좋겠다고 해서 (당시) 여러 명 대기하던 저의 제자들을 뒤로 하고 강 교수를 신규 교수로 채용했습니다. 강교수 정말 훌륭한 사람입니다. 그 성실성은 누구보다도 뛰어난 사람입니다. 만일 그 때 제가 강교수를 뽑지 않았더라면 강 교수는 (아마) 이 불행한 사태를 접하게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몇 달전 강교수가 입원해 수술을 받은(강성근 전교수는 사태 이후 위암초기로 판명, 수술받았음) 삼성병원에 (제가) 병문안을 갔을 때 저를 붙잡고 강교수의 부인은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저도 23년 전 간암으로 한쪽 간을 떼어내는 수술을 받았던지라 그 모습을 보며 가슴이 너무나 아팠습니다.
이러한 강 교수에게 법의 온정을 베풀어주시기를 간곡히 청합니다.
윤현수 교수...훌륭한 사람입니다. 모교의 교수가 되는 것이 꿈이라던 윤 교수를 위해 제가 당시 한양대 의대 학장님과 해부학 교실 주임교수님을 만나 간청했고 그 뒤 윤교수가 임용되었습니다. 만일 윤 교수도 저와의 이런 인연이 없었더라면...그대로 미즈메디 연구소장으로 있었더라면 아마도 (저와 같이 피고인석에 서는) 이런 불행한 사태는 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 세 분의 교수...훌륭한 교수들...이 분들에게 (다시) 기회를 주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김선종 박사.....
제가 매일 아침 5시50분에 연구실에 출근하면 꼭 10분 전에 그것도 1년 365일 김선종 박사가 먼저 출근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살아오면서 김선종 박사처럼 성실한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해서 그런 범죄행위에 가담했거나 실행에 옮겼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그것도 모르고서 (저는) 김 박사를 서울대 의대 교수로 받아주실 것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만일에...만일에 김 박사가 과거의 일을 진심으로 참회하고 그 성실성을 더욱 배가시켜 참회의 여생을 살아가겠다고 한다면...저는 (그를) 제 연구팀에 합류시키고 싶습니다. 그래서 (지난날) 국민들이 꿈꿨던 그 과학의 열매를 김 박사와 함께 따고 싶습니다.
의례적 인사치례도 아니고, 여기 계신 재판부와 방청석에 호소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저는) 지난 2006년 1월12일 서울대를 떠나며 드렸던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국민들 앞에 드렸던 대국민 약속....(환자맞춤형 줄기세포의 존재) 그 약속을 지키도록하겠습니다. 그리 머지않은 어느날 그 약속을 실천하는 것을 맞으시게 될 것입니다.
저에게는 소박한 꿈이 하나 있습니다. 만일 재판장님께서 기회를 주신다면 저의 마지막 열정을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쏟아붓고 싶습니다. 그 꿈이 실현되는 날이 오면, 10대 여중생 민지가 그 추운 겨울날 청와대 앞에서 오돌오돌 떨며 외쳐왔던...그리고 그 추운 겨울철 어느날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 일면식도 없는 저의 이름을 외치며 자신의 몸을 불사른 한 선생님의 유가족을 찾아나서고자 합니다. 그 가족들과 민지와 함께 어느 날 이 서울중앙지법 417호를 둘러보는 그 날이 되기를...
이선봉 검사님, 그리고 ***검사님...고생시켜 드려서 죄송합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이 어려운 재판을 장기간 끌어오시게 된데 대해 사죄드립니다.
마지막으로 베푸실 온정이 있다면...저 때문에 불행하게 된 상 피고인들에게 좀더 따뜻한 온정을 베풀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 황우석 박사 법정최후진술(2009.8.24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
훌쩍이던 방청석에서는 커다란 박수가 터져나왔다. 법원 관계자들이 이를 제지하려했지만 그 박수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법원의 1심 판결 선고는 오는 10월19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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