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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사는 덕숭산에 자리잡고 있는 절로,
절에 남겨진 기록에는 백제 후기 숭제법사가 처음 짓고 고려 공민왕 때
나옹이 다시 고친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또 다른 기록에는 백제 법왕 1년(599)에 지명법사가 짓고 원효가 다시 고쳤다고도 전한다.
석가모니불상을 모셔 놓은 대웅전은 고려 충렬왕 34년(1308)에 지은 건물로,
지은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다.
앞면 3칸·옆면 4칸 크기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앞면 3칸에는 모두 3짝 빗살문을 달았고 뒷면에는 양쪽에 창을, 가운데에는 널문을 두었다.
대웅전은 백제 계통의 목조건축 양식을 이은 고려시대 건물로 특히 건물 옆면의
장식적인 요소가 매우 아름답다.
또한 건립연대가 분명하고 형태미가 뛰어나 한국 목조건축사에서
매우 중요한 문화재로 평가 받고 있다.
홍주마을에 사는 수덕이란 도령이 있었다.
수덕도령은 훌륭한 가문의 도령이었는데,
어느 날 사냥을 나갔다가 사냥터의 먼 발치에서 낭자를 보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집에 돌아와 곧 상사병에 걸린 도령은 수소문한 결과 그 낭자가 건너마을에 혼자 사는
덕숭낭자라는 것을 알게 되어 청혼을 했으나 여러 번 거절당한다.
수덕도령의 끈질긴 청혼으로 마침내 덕숭낭자는 자기 집 근처에 절을 하나 지어 줄 것을
조건으로 청혼을 허락하였다.
수덕도령은 기쁜 마음으로 절을 짓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탐욕스런 마음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절을 완성하는 순간 불이 나서 소실되었다.
다시 목욕재개하고 예배 후 절을 지었으나 이따금 떠오르는 낭자의 생각 때문에 다시
불이 일어 완성하지 못했다.
세 번째는 오로지 부처님만을 생각하고 절을 다 지었다.
그 후 낭자는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했으나 수덕도령이 손을 대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이를 참지 못한 수덕도령이 덕숭낭자를 강제로 끌어안는 순간 뇌성벽력이 일면서
낭자는 어디론가 가 버리고 낭자의 한 쪽 버선만이 쥐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는 바위로 변하고 옆에는 버선모양의 하얀 꽃이 피어 있었다.
이 꽃을 버선꽃이라 한다.
낭자는 관음보살의 화신이었으며 이후 수덕사는 수덕도령의 이름을 따고
산은 덕숭낭자의 이름을 따서 덕숭산이라 하여 덕숭산 수덕사라 하였다는 전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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