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스님들 소식

찹살 동동주에 돼지고기볶음이라.

淸潭 2011. 3. 7. 15:36

해인강원 10기 ‘돈나물 사건’



재원스님 / 조계종 초심호계원장

얼마 전 우리 곁에 늘 함께했던 도반 한 명이 갑자기 먼 길을 떠났다. 그분은 나와 함께 해인강원 10회 졸업동기생이며, 지난해까지 동창회장 소임을 맡아 열심히 일했다. 몇 년 전에는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총무원 문화부장 소임을 수행하면서 불교발전을 위해서도 열심히 노력한 정각스님이다.

주위를 돌아보니 해인강원 동기가 30명이나 되는데, 멀리 떠난 동기가 6명이고, 유마거사의 후예가 된 사람이 5, 6명이다. 이제 산문(山門)에 남은 사람이라야 반수에 불과하다. 모두 환갑을 지나 고희를 바라보는 종사, 대덕들이다.

1969년 8월15일 대망의 졸업식을 앞두고, 졸업생들이 큰 사건을 내고 말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유명한 돈(豚)나물 사건이다. 졸업을 앞두고 종강파티가 구원마을 명봉거사 집에서 벌어졌다. 미리 찹쌀동동 곡차에다 돈나물 안주를 준비해 두고 저녁예불을 마친 다음 10리나 떨어진 구원마을을 향해 삼삼오오 허덕교 다리를 건넜다. 낙화담을 걸쳐, 롱선정 정자에서 잠깐 쉬었다가 한숨에 달려 구원리 명봉 씨 집 뒷마당에 당도하니 발빠른 선발대가 먼저 도착해 걸판진 판을 벌이고 있었다. 곡차와 돈나물이 어찌 그리 맛있던지, 주거니 받거니 한바퀴 돌고나니 더 푸른 초원위에, 울려고 내가왔나, 고향무정, 찔레꽃, 마포종점 등이 흥을 돋았다. 놀이에 빠져 새벽예불시간을 놓쳐버리면서 사단이 났다.

대망의 졸업식 앞두고

‘돈나물’ 안주에 취해

새벽예불 놓쳐 ‘비상’

3천배 참회…낙제 면해


당시 교무 보성스님(현 송광사 방장)이 예불시간에 관음전 식구들이 한 사람도 보이지 않자 비상을 걸었고, 총무 도성스님, 재무 초우스님이 구원마을까지 와 현장을 급습했다. 당시 유일한 사중(寺中) 교통수단인 스리코타에 실려 가는 바람에 ‘돈(豚)나물 사건’이 알려지고 대중공사에 부쳐지게 됐다.

스리코타라 해봐야 산에서 나무나 실어내리고, 농사일에 사용하는 폐차 직전의 차인데다가 비포장 자갈길인 롱산정을 지나 S커브 길을 지나자니 속도가 꽤 느렸다. 우리는 모두 차에서 뛰어내려 산속 지름길을 내달아 차보다 먼저 관음전에 도착했다. 차를 타고 온 총무스님은 차에 있어야 할 사람들이 한명도 없으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각설하고, 아침공양 후 대중공사가 열렸다.

당시 율주 자운스님께서 “요즘 학인들이 돈나물을 먹고 다니는데, 이러면 됩니까. 이런 학인들은 졸업을 시키면 안돼요”라며 우리 10기들의 졸업을 불가(不可)했다. 이에 주지 지월스님께서 한참을 생각하시더니 “제가 대중스님들께 참회하겠습니다. 학인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하셨다. 강주였던 지관스님의 감독하에 우리들은 3000배 참회수행을 하고 방장 성철스님의 허락을 받아 겨우 졸업을 하게 됐다. 이 사건을 당시 일본 유학중인 태연스님이 전해 듣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만큼 논란이 됐던 돈나물 사건은 한때 “해인강원 10기는 축생계인 돼지까지도 제도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이외에도 삼양라면이 처음 나와 대중공양이 들어왔는데, 대중공사를 통해 국수처럼 삶아 씻은 다음 양념을 별도로 해서 발우공양을 했다. 나와 정각스님은 야경을 돌다가 라면을 훔쳐 야경실에서 끓여 먹었는데, 그만 주지 지월스님에게 들켜 벌칙 야경을 1주일이나 돌아야 했다. 매일 점심 공양 후 1시간씩 푸른 농구화를 신고 축구를 하고, 군대도 안다녀온 10대 소년들이 직장민방위대 훈련 받는다고 총을 만지면서 신기해하던 기억 등등이 영화의 필름처럼 감겼다가 다시 돌아간다.

한줌의 재로 변한 도반의 모습을 보면서, ‘평생 외길로 살아온 결과가 이렇게 초라하게 보여지지는 말아야 할텐데’라는 생각이 든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속담이 새삼 가슴에 와 맺힌다. 더욱 열심히 노력하고 정진하며 살자.


[불교신문 2701호/ 3월9일자]

2011-03-05 오전 9:06:02 /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