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인에서 부처님의 가르침 좇아 출가
고향 수나파란타로 돌아가 포교에 전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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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풋타, 목갈라나, 마하캇사파, 아누룻다, 수부티, 캇차나, 우파리, 라후라, 아난다 그리고 푼나. 이른바 부처님의 10대 제자라 불리는 인물들이다. 사리풋타는 지혜, 목갈라나는 신통, 마하캇사파는 두타, 아누룻다는 천안, 수부티는 해공(解空), 캇차나는 논의, 우파리는 지계, 라후라는 밀행(密行), 아난다는 다문, 그리고 푼나는 설법에 있어 각각 최고라 평가되는 그야말로 내놓으라 하는 대제자들이다. 그 명성만큼 이들에 얽힌 일화도 많아 불교문헌 곳곳에서 그들의 출가 전의 삶이나 출가 동기·과정, 그리고 출가 후 승가에서 생활하며 겪게 되는 갖가지 에피소드들을 접할 수 있다. 그런데 예외가 있다. 바로 푼나, 즉, 부루나존자이다. 10대 제자 가운데 한 명으로 거론되는 그이지만, 다른 제자들과는 달리 이상하리만치 관련 정보를 얻기 힘들다. 왜일까? 그 이유는 푼나의 삶에서 찾을 수 있었다.
부처님이 한창 활동하시던 무렵, 인도의 무역 상인들은 저 멀리 메소포타미아 지방까지 나가서 교역을 하는 등 매우 활발한 해상무역을 펼치고 있었다. 그 상인들 가운데서도 유난히 높은 명성을 드날리며 상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자가 있었다. 바로 ‘푼나’라 불리는 대상인이었다. 해상무역을 통해 부의 축적을 꿈꾸는 상인들에게 있어 그는 갈망의 대상이었다. 인도 서해안에 위치한 수나파란타국의 항구 도시 숫파라카 출신이었던 그는 아버지 역시 장사로 많은 돈을 번 대장자였다.
그러나 아버지와 노비 사이에서 생긴 자식이었던 푼나는 아버지가 죽자 형제들 간 싸움에 밀려 한 푼의 재산도 나누어 받지 못한 채 쫓겨나고 말았다. 재산은 한 푼도 물려받지 못했지만, 대신 아버지로부터 상인으로서의 재주는 이어받았던 것일까. 무일푼으로 집을 나선 그였지만, 우연히 얻은 향나무를 자본으로 장사를 해서 큰 자산을 이루게 된다. 그 후 그는 해상무역을 전문으로 하는 대상인이 되었다.
몇 달 동안이나 거친 바다와 싸우며 미지의 세계에 나가 낯선 사람들과 무역을 해야 하는 힘든 일이었지만, 푼나는 힘과 용기로 거뜬하게 이 일들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그는 여섯 번이나 바다를 건너가 무역을 하여 큰 재산을 쌓았다고 한다. 이러한 그의 명성은 저 멀리 코살라국의 사왓티에까지 퍼졌고, 그의 무용담을 들은 사왓티의 상인들은 재물을 들고 푼나를 찾아와 자신들도 해상무역에 참가할 수 있게 해달라고 청원했다. 이렇게 해서 푼나는 저 멀리 사왓티에서 찾아온 상인들과 함께 그의 생애 7번째 항해에 나서게 된다.
사리풋타도 인격·설법능력 존경
그런데 푼나는 사왓티에서 온 상인들이 매우 기이한 행동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한 자리에 모여서는 무언가를 열심히 읊조리는 것이었다. 노래 같기도 하고 주문 같기도 하고 도무지 내용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며칠을 눈여겨보던 푼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함께 노래를 부르시는 겁니까?”
“아닙니다. 노래가 아닙니다.”
“그럼, 주문입니까?”
“아닙니다.”
“그럼, 무엇을 그렇게 매일 함께 읊조리시는 겁니까?”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저희들은 부처님께 귀의한 자들로 그 분의 가르침을 함께 되새기고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활동하시던 중인도로부터 멀리 떨어진 인도의 서해안, 그리고 바다 위에서만 살아온 푼나는 아직 부처님에 대해 들은 바가 없었다. 호기심을 느낀 푼나는 그들에게 물었다.
“부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석가족으로부터 출가하신 분입니다. 사문 고타마라 불리지요. 오랜 수행 끝에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 그 분을 부처님이라고 합니다. 그 분은….”
상인들의 입으로부터 줄줄이 흘러나오는 부처님에 대한 정보를 듣고 있노라니, 푼나의 몸과 마음이 왠지 모를 감동으로 전율했다.
“그 분은 지금 어디 계신가요?”
“코살라국의 사왓티시 근교에 있는 제타숲에서 수닷타장자가 세운 정사에 머물고 계십니다.”
이 항해가 끝나면 꼭 그 분을 찾아가 보리라. 푼나는 마음 한 구석에 부처님과의 만남을 그리며 길고도 긴 항해를 계속했다. 그들의 항해는 바빌론까지 이어졌고 큰 이익을 거두었다고 한다. 숫파라카로 돌아온 푼나는 여독을 풀 겨를도 없이 사왓티를 향해 길을 나섰다. 먼저 그가 찾은 것은 수닷타 장자였다.
“아니 장자께서 이 먼 길을 무슨 일이십니까? 특별한 무역이라도 있으십니까?”
놀라 묻는 수닷타에게 푼나는 대답했다.
“아닙니다. 이번에 온 것은 장사 때문이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자 입니다. 저를 그 분께 소개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함께 부처님이 계신 기원정사를 찾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은 푼나는 그 즉시 출가하여 수행자의 길을 걸었다고 한다. 오랜 세월 해상무역 등을 통해 낯선 사람들과 교류하며 그 마음을 움직여 매매를 성사시켜 온 화술이 빛을 발했던 것일까. 그의 화술은 그 어떤 제자와도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것이었다. 그의 설법을 들은 사람들은 거부감 없이 자신의 허물을 돌아보았고, 그 허물을 참회하며 진리의 통찰을 위해 노력했으며, 나아가 밝은 지혜를 얻게 되었다. 그가 설법제일이라 불리는 연유이다. 지혜제일이라 불리는 사리풋타조차 푼나의 인격과 설법 능력에는 경의를 표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푼나는 큰 결심을 하게 된다. 출가하기 전 자신의 생활 터전이었던 수나파란타로 가서 아직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하지 못했을 그들을 위해 남은 생애를 보내겠다는 것이었다. 출발을 앞두고 푼나는 인사를 드리기 위해 부처님을 찾았다.
“너는 도대체 어디로 가려 하느냐?”
“부처님, 저는 고향인 수나파란타에 가서 불법을 전하고자 합니다.”
자신이 태어난 곳에 가서 불법을 전하고 싶어하는 그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소문에 의하면 그 곳 사람들은 매우 사나운 기질을 지녔다고 한다. 걱정이 되신 부처님께서 물으셨다.
“푼나야, 수나파란타 사람들은 성질이 사납고 흉악하다고 하던데, 만약 그들이 너를 면전에서 조롱하거나 비난한다면 너는 어찌 하겠느냐?”
콘단냐 조카로 바라문 자제 설도
“부처님,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저는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수나파란타 사람들은 정말 착하구나. 주먹으로 나를 때리지는 않으니 이 얼마나 착한 사람들인가.’”
부처님께서는 다시 물으셨다.
“그렇다면 푼나야, 만약 그들이 주먹으로 너를 때린다면 너는 어떻게 할 것이냐?”
“그때는 이렇게 생각하겠습니다. ‘수나파란타 사람들은 정말 착하구나. 나에게 흙덩어리를 던지지 않으니 이 얼마나 착한 사람들인가.’”
“그렇다면 만약 그들이 너에게 흙덩어리를 던진다면 그 때는 어떻게 하겠느냐?”
“그때는 이렇게 생각하겠습니다. ‘수나파란타 사람들은 정말 착하구나. 몽둥이로 나를 두들겨 패지는 않으니 이 얼마나 착한 사람들인가.’”
부처님은 또 물으셨다.
“그렇다면 푼나야, 만약 그들이 몽둥이로 너를 두들겨 팬다면 그 때는 어떻게 하겠느냐?”
“그때는 이렇게 생각하겠습니다. ‘수나파란타 사람들은 정말 착하구나. 칼을 가지고 나를 해치지는 않으니 이 얼마나 착한 사람들인가.’”
마지막으로 부처님은 물으셨다.
“그렇다면 만약 그들이 칼로 너의 생명을 뺏는다면 그 때는 어떻게 하겠느냐?”
“부처님이시여, 부처님의 제자들 가운데는 그 몸을 혐오하고 그 목숨에 번민하여 스스로 칼을 들려 하는 자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저는 스스로 구하지 않고 그것을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겠습니다.”
푼나의 굳은 의지를 확인하신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푼나야, 좋다. 그 정도의 각오라면 수나파란타에 가서 법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가거라.”
이렇게 해서 푼나는 수나파란타로 갔고 그 해 500명을 불법에 귀의시켰다고 한다.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같은 해 우기가 끝날 무렵, 아직 젊은 나이인 그는 이 세상을 떠나고 만다. 타고난 출신 때문에 어느 날 갑자기 빈 몸으로 세상 한 가운데로 내버려져 힘든 삶을 살아야 했지만, 적극적이고도 능동적인 성품으로 그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대상인으로 성공한 푼나. 그가 상인들의 이야기만을 듣고 부처님께 왜 그토록 강한 호감을 느꼈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부처님과의 만남 역시 단호한 성격의 그였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또 다른 전승에 의하면, 푼나는 부처님이 태어나신 고향에 있는 도나바투라는 바라문촌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어머니 만타니는 초전법륜의 5비구 가운데 한 명인 콘단냐의 여동생이었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바라문의 자제로서 최상의 교육을 받으며 많은 공부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보다는 숫파라카의 해상 대무역가였다는 위의 전승에 훨씬 마음이 간다.
설법이란 단지 지식이 많다고 해서, 혹은 머리가 좋다고 해서만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파란만장한 삶 속에서 지혜를 얻고 사람에 대한 진정한 이해를 얻은 그였기에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불법을 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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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랑 박사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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