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를 만난 사람들] 17. 아난다
특권 버리고 부처님 시중·법문 기억에만 최선
여성 출가 청원…따뜻한 성품으로 칭송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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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지 20년째 되는 해, 그러니까 아마도 부처님의 나이 55세경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리풋타, 목갈라나, 마하캇사파, 아누룻다, 밧디야 등 내놓으라하는 대제자들과 더불어 라자가하 근처에 머물고 계시던 부처님께서는 어느 날 그들을 불러 모은 후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아, 이제 나도 나이가 들었나보다. 몸도 늙고 힘도 예전 같지 않구나. 요사이 부쩍 시자가 있으면 좋으련만 하고 생각할 때가 많아졌다. 내 시중을 들어줄 만한 시자 한 명을 골라주지 않겠느냐. 그렇게 되면 그가 여러모로 나를 돌보아줄 것이고, 또 내가 사람들에게 설법할 때는 그가 그 요점을 잘 기억해 줄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노쇠해 가는 육체, 그리고 기억력…. 많은 제자들이 있지만 이제 곁에 머물며 일상생활을 돌봐주고, 또 자신이 설하는 법을 기억해 줄 누군가 특별한 한 사람이 필요하다고 느끼신 것이었다. 죄송스러운 마음에 제자들 사이에서는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누구보다 존경하고 사모하는 스승이건만 어찌 그분의 마음을 미리 헤아려 드리지 못했단 말인가.
가장 먼저 침묵을 깬 것은 바로 콘단냐였다. “제가 시자가 되어 부처님을 모시고 싶습니다.” 콘단냐는 초전법륜의 대상이었던 다섯 비구 가운데 한 사람으로 그들 가운데 가장 먼저 깨달음을 얻었던 제자였다. 그런 그가 부처님의 시자를 하겠다는데 누가 감히 이의를 제기하겠는가. 침묵이 흘렀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콘단냐야, 너 또한 나이 들지 않았느냐. 육체 또한 많이 늙었다. 너 역시 시자를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너의 제안은 정말 고맙지만 받아들일 수는 없구나.”
생각해보니 부처님과 거의 같은 나이. 더 이상 우길 수도 없어 콘단냐는 물러났다. 이어 사리풋타와 마하캇사파를 비롯하여 몇 명의 제자들이 시자를 자청하고 나서보지만, 부처님은 콘단냐와 같은 이유로 모두 거절하셨다. 자신들도 누군가의 시중을 받아야 할 노인들이건만 스승에 대한 존경심과 애틋한 마음에 시자 되기를 자청하며 나서는 제자들, 그리고 그 제자들의 마음이 더할 나위 없이 고맙지만 자신과 다를 바 없는 노인들에게 시자 역할을 맡길 수 없다며 거절하시는 부처님. 이렇듯 서로를 생각하는 스승과 제자들의 마음이 오고갔다.
그때 목갈라나는 이 모습을 쭉 지켜보며, 과연 스승이 원하는 시자는 어떤 사람일까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신통제일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지니고 있던 목갈라나는 부처님의 마음을 조용히 살펴보았다. 그리하여 부처님이 마음에 두고 계신 사람이 다름 아닌 아난다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몇 명의 비구와 상의한 후, 목갈라나는 아난다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부처님의 시자가 되어 일상생활의 시중을 들어 드리고, 또 법을 설하실 때면 그 요지를 기억해 달라고 말했다. 아난다는 펄쩍 뛰었다.
데와닷타·아누룻다 등과 출가
“저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제가 시자가 되어 부처님을 모시다니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도저히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부처님의 의향이 그러하다는 대선배들의 끈질긴 설득에 결국 아난다는 부처님의 시자 역할을 받아들이고 만다.
단, 자신의 세 가지 바람이 허락된다면 받아들이겠다는 조건이었다. 그 세 가지 바람이란 첫째, 새것이든 오래된 것이든 부처님을 위해 만들어진 옷은 입지 않을 것, 둘째, 부처님을 위해 마련된 식사는 먹지 않을 것, 셋째, 때가 아닌 때에 부처님을 뵙지 않을 것이었다. 아난다의 이 세 가지 조건에는 자신이 시자로서 받을 수도 있는 특별한 혜택을 결코 누리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부처님의 시자가 되면 부처님께 공양된 옷을 나누어 받을 기회가 있을 수도 있고, 부처님을 위해 마련된 공양식을 함께 먹을 수도 있다. 또 시자가 되면 때가 아닌 때라도 마음대로 부처님을 만날 기회도 있다. 시자가 되면 자연스럽게 누릴 수도 있는 이런 모든 특권들을 자신은 누리지 않겠노라, 오로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일상생활의 시중과 가르침의 기억만을 위해 시자가 되겠노라 스스로 원을 세우고 있는 것이었다.
이 얼마나 겸허한 태도인가. 아난다는 부처님의 시자라는 지위를 결코 개인적인 욕심을 채우는 자리로 삼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이었다. 부처님은 아난다의 이 세 가지 바람을 기꺼이 받아들여 주셨고, 이렇게 해서 아난다는 부처님의 시자가 되었다. 많은 제자들 가운데 한명이었을 아난다,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동경하며 바라보던 스승. 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관계를 넘어 이후 두 사람은 마치 하나의 몸처럼 25여년의 세월을 함께 보내게 된다.
그렇다면 부처님께서는 왜 그 많은 제자들 가운데 특히 아난다를 원하셨던 것일까. 자세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아난다가 자신보다 20살 이상이나 어리며, 또 친족이었다는 점이 먼저 고려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난다는 부처님의 아버지인 슛도다나왕의 남동생의 아들로, 말하자면 부처님과는 사촌 형제였다. 부처님께서 성도 후 고향 카필라왓투를 찾았을 때, 아난다는 동생 데와닷타 그리고 이복형제인 아누룻다 등 석가족의 양가집 청년들과 더불어 출가했다.
스승과 제자라는 점에서 사실 친족이든 아니든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하지만 일상생활에서의 시중은 역시 친족에게 부탁하는 것이 편했을 것이다. 게다가 아난다는 부처님보다 나이도 훨씬 어리기 때문에 시중을 들게 하기도 편하고 또 오랫동안 부처님을 모실 수 있었다. 그러나 부처님이 아난다를 시자로 선택하신 가장 중요한 이유는 어질고도 성실한 아난다의 성품 때문이었을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입멸 직전, 아난다를 칭찬하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부처님 열반 곁에서 지켜
“비구들이여, 과거제불의 시자는 지시받은 일만 했다. 하지만 아난다는 내가 눈짓만 해도 이미 내 마음을 다 읽고 알아서 일을 해 주었다.”
불교경전 곳곳에서 아난다의 따뜻한 성품을 엿볼 수 있는 일화들을 접할 수 있다. 한때 부처님께서 위사카 미가라마타라는 우바이가 세운 동원녹자모강당에 계실 때였다. 목욕 후 등을 말리고 있는 부처님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아난다는 부처님의 육체가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그 등을 어루만지며 슬퍼했다고 한다. 또한, 부처님의 양모인 마하파자파티가 출가를 원했지만 부처님으로부터 거절당하고 낙심하고 있을 때, 그녀의 출가가 받아들여지도록 부처님께 청을 올린 것도 그였다. 이렇듯 배려 깊은 아난다였기에, 그는 출·재가를 불문한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사왓티의 재가불자들은 집안에 경사가 있어 특별한 행사를 할 때면 항상 아난다를 초대했다. 또한 코살라국의 파세나디왕의 부탁으로 아난다는 말리카왕비를 비롯한 여러 왕비들을 위해 후궁에 들어가 법을 설하는 중책을 맡기도 하였다. 코삼비에도 친분이 깊은 사람이 많아, 그 곳의 사마와티(Sāmāvatī)왕비로부터는 500벌의 옷 보시를 받았다. 남편인 우데나왕이 비구가 그렇게 많은 옷의 보시를 받다니 너무 사치스럽다고 비난했지만, 오히려 사마와티는 아난이 얼마나 물건을 소중히 하는 사람인지 그 예를 들어 설명했고, 이를 들은 왕은 500벌의 옷을 더 보시했다고 한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상냥하고 따뜻한 아난다의 태도는 여인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고, 이로 인해 아난다는 입장이 난처해지는 일도 있었다.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일부 비구들의 눈에는 이런 아난다가 곱게 보일 리 없었다. 특히 보수적 성향이 강했던 마하캇사파는 항상 아난다를 어린아이 취급하며 무시하는 발언을 했는데, 비구니들이 이런 마하캇사파의 행동을 노골적으로 비난하고 때로는 침까지 뱉으며 야유를 퍼부은 탓에 마하캇사파와 아난다의 관계는 더욱 더 나빠졌다. 이런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아난다는 부처님의 시자로서 조금도 손색없이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
부처님의 만년, 쿠시나라를 향한 마지막 유행길도 아난다는 부처님과 함께 했다. 아픈 몸을 이끌고 힘겹게 쿠시나라의 말라족 영토인 우파왓타나 동산의 사라숲에 도착하신 부처님은 아난다에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야, 나를 위해 저 사라쌍수 사이에 머리를 북으로 향하게끔 자리를 펴다오. 너무 피곤해서 좀 눕고 싶구나.”
아난다가 자리를 펴자 부처님은 오른쪽 옆구리를 밑으로 하고 발위에 발을 포개신 후 조용히 누우셨다. 쿠시나라로 함께 여행을 하며 항상 마음 졸여왔던 아난다. 스승과의 이별이 이제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현실임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한쪽에서 눈물을 흘리며 서있는 아난다를 보신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아난다야, 울지 말거라. 슬퍼하지 말거라. 아난다야, 내가 항상 말하지 않았더냐. 아무리 사랑하고 친한 사람일지라도 언젠가는 헤어지고, 떠나며, 변화된다는 것을…. 어찌 그것을 피할 수 있겠느냐. 아난다야, 모든 것은 멸하기 마련이다. 한번 태어난 것이 언제까지나 파괴되지 않고 존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법이니라.”
아난다는 부처님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거렸지만, 두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모습을 측은한 듯 지켜보시던 부처님께서는 말을 이으셨다.
“아난다야, 너는 참으로 오랫동안 사려 깊은 행동과 말과 배려로 나에게 이익과 안락을 주며 게으름 피우지 않고 잘 시봉했다. 아난다야, 너는 많은 복덕을 지었다. 앞으로 더욱 더 정진하여 빨리 번뇌를 멸한 최고의 경지에 이르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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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랑 박사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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