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북부 마을
19세 처녀와 25세 유부남, 결혼 허락않자 도피… 간통죄로 공개 투석형
열아홉 처녀 시디카(Siddiqa)가 탈레반 대원들에 의해 시장 한복판으로 끌려 나왔다. 눈 부분만 망사로 돼 있고 머리에서 발끝까지 전신을 가리는 이슬람 여성들의 전통 의상 부르카를 입고 있었다. 200여명의 동네 남성들이 그녀를 둘러쌌다.탈레반의 한 대원이 '간통죄로 시디카를 투석사형(投石死刑)에 처한다'는 판결문을 읽었다. 카얌(Khayyam·25)이라는 남성과 사랑을 한 죄다. 시디카가 최후 진술을 했다.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카얌과 나는 서로 사랑합니다."
그녀의 말이 끝나자 먼저 탈레반 대원들이 시디카에게 돌을 던졌다. 곧이어 주위 사람들도 그녀에게 돌을 던졌다. 30분 정도가 흘렀을까. 피투성이가 된 시디카의 맥박이 멈췄다. 탈레반은 이어 시디카가 있던 자리에 카얌을 끌고 나왔다. 카얌 역시 빗발처럼 날아오는 돌을 맞은 뒤 생을 마쳤다. 모여든 남성들 가운데는 시디카의 남동생과 카얌의 아버지·동생도 있었다. 이들은 피붙이들의 처참한 최후를 지켜만 봤다. 지난 15일 타지키스탄과 국경을 맞댄 아프가니스탄(아프간) 북부 쿤두즈주(州)의 물라 쿨리마을에서 있었던 일이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16일 쿤두즈주 주정부 관계자들과 목격자들의 증언을 모아 아프간에서의 투석형 참상을 보도했다.
희생자의 이웃인 나디르 칸(Khan)씨의 말에 따르면, 처녀 시디카와 유부남 카얌은 열렬히 사랑하는 사이였다. 카얌은 부인과 두 아이가 있었지만 부인을 4명까지 둘 수 있는 이슬람 관습에 따라 시디카와 결혼하길 원했다. 하지만 가족들 설득에 실패했다. 두 사람은 아프간 동부 쿠나르주의 먼 친척 집으로 도피했다. 하지만 가족들이 "고향으로 돌아오면 결혼을 허락하겠다"고 약속해 쿤두즈주로 돌아왔다가 탈레반에게 붙잡혔다. 이어 지난 10일 간통죄 판결을 받았고, 5일 만에 처형됐다. 탈레반의 자비울라 무자히드(Mujahid) 대변인은 "간통죄를 저지른 두 사람이 이슬람 율법 '샤리아(Shariah)'에 의해 투석형에 처해진 것은 당연하다"고 NYT에 말했다.
국제 인권단체들은 즉각 투석형을 비난하고 나섰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의 간부 샘 자리피(Zarifi)씨와 아프간 인권위원회의 다네르 다네리(Nadery) 조정관은 "탈레반이 사법절차에 따르지 않는 임의적 처형으로 인권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투석형을 자행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탈레반이 공개적으로 투석형을 자행한 것은 그들 세력이 그만큼 커졌다는 의미라고 해석한다. 이번 투석형은 2001년 미군에 의해 탈레반 정권이 축출된 후 9년 만에 보고된 사례이기 때문이다. 지난 1996년부터 2001년까지 탈레반 치하의 아프간에서, 특히 탈레반 근거지인 아프간 남부에서는 투석형이 일반화됐었다.
NYT는 "투석형은 미군의 최근 공세로 칸다하르 등 아프간 남부에서 탈레반의 세력이 약화됐지만 아프간 북부에서는 탈레반 세력이 확대되고 있음을 뜻한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