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부처님 마음

[붓다를 만난 사람들] 7. 지와카

淸潭 2010. 7. 30. 14:53

[붓다를 만난 사람들] 7. 지와카
 
중생의 고통 자비로 보살핀 약왕보살
기사등록일 [2010년 07월 28일 07:05 수요일]
 

끝없는 노력으로 당대 최고 ‘의사’로 칭송
이익 좇던 냉혈한서 아픔 함께하는 명의로

 
삽화=김재일

왓지국의 웨살리가 창녀 암바파리로 인해 크게 발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마가다국의 빔비사라왕은 그녀를 능가하는 아름다움으로 자국을 번영시켜 줄 여인을 물색했다. 선발된 것은 청순미가 돋보이는 사라와티(Sālavatī)라는 여인이었다. 고급 창녀가 되는 교육을 받고 기예까지 갖추게 되자, 사라와티의 명성과 인기는 나날이 높아졌다. 웨살리에 암바파리가 있다면 라자가하에는 사라와티가 있다는 말이 나올 만큼 그녀의 존재감은 하루가 다르게 커져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사라와티는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순간, 그녀의 마음은 복잡했다. 임신 사실이 퍼지면 더 이상 남자들은 자신을 찾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동안 힘들게 쌓아온 명성도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그녀가 내린 결론은 사람들 모르게 아기를 낳아 버리는 것이었다. 결국 태어나자마자 그 가엾은 핏덩어리는 작은 바구니에 넣어져 쓰레기 더미 속에 버려졌다.

그러나 부모와 자식의 인연은 우연이 아닌 운명이라 했던가. 마침 그곳을 지나가다 아기를 발견하고 멈추어 선 것은 다름 아닌 빔비사라왕의 아들 아바야 왕자였다. 아바야 왕자야말로 이 아기의 아버지였던 것이다. 아기를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란 왕자는 주위 사람들에게 물었다. “아기는 살아 있느냐?” 아기를 살펴본 사람들이 대답했다. “예, 아직 살아있습니다.” 사람들의 이 대답은 그대로 아기의 이름이 되어 ‘지와카(살아있는)’라 불렸다.

자식이 없던 아바야 왕자는 지와카를 소중하게 키웠다. 자신의 아들인 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지만, 왕자는 마치 친자식을 대하듯 귀여워했다. 그러나 부모를 그리워하는 지와카의 마음까지 채워주지는 못했던 것일까. 성장한 지와카는 어느 날 자신의 출생에 대해 아바야 왕자에게 물었다. 그러나 부모에 대한 그 어떤 얘기도 들을 수 없었다. 낙담한 지와카는 그저 왕가에 의존하여 하루하루 살아가는 자신의 삶에 불안과 회의를 느끼며 당시 교육의 중심지였던 서북인도의 탁실라로 의술을 배우기 위해 떠났다.

학업에 전념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지와카에게 7년 과정의 교육이 끝난 어느 날 스승은 호미 한 자루를 주며 이렇게 말했다. “탁실라 근교에서 약재로 사용할 수 없는 모든 식물을 채집해 오너라.” 지와카는 열심히 찾아다녔지만 약재로 사용할 수 없는 식물은 단 한 점도 발견할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빈손으로 돌아와 스승에게 말했다. “스승님, 가는 곳 마다 찾아보았지만 약재가 될 수 없는 식물은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 대답을 들은 스승은 얼굴 가득 미소를 띤 채 말했다. “지와카야, 훌륭하구나. 넌 시험에 합격했느니라.”

스승으로부터 약간의 여비를 받은 지와카는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길을 떠났다. 그런데 도중에 사케타라는 곳에서 어느 장자의 아내의 병을 치료하게 되었다. 그녀는 오랜 세월 두통을 고질병으로 앓고 있었는데, 지와카는 단 한 번의 치료로 그녀의 병을 깨끗하게 치료해 주었다. 그러자 장자는 크게 기뻐하며 치료해 준 대가로 지와카에게 거액의 돈을 지불했다. 고향으로 돌아온 지와카는 자신을 정성껏 키워준 아바야 왕자의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고픈 생각에 장자로부터 받은 돈을 모두 왕자에게 건넸다.

그러나 아바야 왕자는 사양하며 대신 라자가하에서 살아달라고 부탁한다. 아들과도 다름없는 사랑스러운 지와카를 그저 곁에 두고 바라보며 살고 싶은 아바야 왕자의 간절한 마음이 담긴 부탁이었다. 왕자의 청을 받아들여 라자가하에 머무르게 된 지와카는 치질을 앓고 있던 빔비사라왕을 치료한 후 왕궁의 주치의가 되었고, 이후 모든 의사들이 다 포기한 난치병을 거뜬하게 고치며 명의로서 명성을 높이게 되었다.

부처님-승단 주치의 자청

타고난 재능과 노력으로 당시 최고의 명의 자리에 올랐으나, 지와카는 아직 기술이 뛰어난 의사일 뿐 병으로 고통 받는 병자에 대한 진정한 연민과 자비는 갖추지 못했던 것 같다.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진다. 왕궁의 주치의가 된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라자가하의 한 대(大)상인이 중병에 걸렸는데 모든 의사가 치료 불가능하다며 손을 들었다. 그러자 빔비사라왕은 자신의 주치의인 지와카에게 그 상인을 치료하도록 했다. 지와카는 치료 조건으로 자신과 왕에게 각각 10만금이라는 거액의 보수를 줄 것, 그리고 환자는 처음 7개월 동안은 한 쪽 옆구리로, 그 다음 7개월 동안은 다른 쪽 옆구리로, 또 그 다음 7개월 동안은 똑바로 천정을 보고 누워 안정을 취할 것을 요구했다.

환자가 그 요구를 받아들이자 지와카는 그를 침대에 묶고 두피를 절개하여 그 상인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던 두 마리의 벌레를 끄집어낸 후 상처를 꿰매었다. 그러나 환자는 도저히 한쪽 옆구리로 7개월씩이나 누워있을 수는 없었다. 간신히 1주일을 버텼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3주 후에 완전히 건강을 회복했다. 그러자 지와카는 “그때 7개월이라고 말해두었기 때문에, 그나마 1주일이라도 누워있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라고 변명했다고 한다. 뛰어난 의술로 병을 고쳐주기는 했지만, 오랜 세월 병으로 고통 받아온 사람에 대한 배려나 연민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차가운 모습이다.

이런 지와카가 어느 날 부처님을 만나게 되었다. 죽림정사에 머무르고 계시던 부처님이 병이 나자, 시자 아난다가 빔비사라왕에게 청하여 지와카를 부른 것이었다. 치료가 다 끝난 후, 부처님은 병과 의사로서의 마음가짐에 대해 지와카에게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주셨다.“지와카야, 육체의 병보다 마음의 병인 번뇌야말로 더 큰 병이니라. 병은 무엇보다 그 근본을 먼저 치료해야 하느니라. 그리고 의사는 자비심으로 환자를 돌보아야 한다. 결코 이익에 집착해서는 안 되느니라.”

치료 받기 위해 출가자 급증

남다른 의술을 갖춘 지와카가 인간의 미묘한 심신의 움직임을 종합적으로 바라보고 이해함으로써 좀 더 적확한 치료를 하고, 또한 병자의 아픔을 곧 자신의 아픔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자비심을 갖춘 훌륭한 의사로 거듭나기를 부처님께서는 바라셨던 것이리라. 이 가르침을 들은 지와카는 크게 감복하여 부처님이야말로 의사 중의 의사, 의왕(醫王)이라 칭송하며 신심을 일으키게 되었다고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지와카의 의술 속에서도 빛을 발하게 된다. 지와카는 부처님께서 설하신 사성제를 병자의 치료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즉, 환자의 몸에 나타난 각종 증세를 병이라는 괴로움으로 보고, 이 증세가 나타나게 된 원인을 정확하게 분석함으로써 필요한 치료법을 파악, 결과적으로 병의 치유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그는 사성제의 가르침을 통해 보다 명확하게 인지하게 된 것이다. 이는 지와카로 하여금 환자의 질병에 대한 좀 더 세심한 관찰과 성의 있는 치료를 하게 만들었다. 부처님과의 만남을 통해 지와카는 진정한 ‘명의 지와카’로 거듭나게 된 것이었다.

부처님의 인격과 그 가르침에 크게 감복한 지와까는 부처님과 그 제자들이 건강하게 수행에 전념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위생상태가 좋을 리 없는 고대인도 사회에서 유행생활이나 공동체생활을 해야 하는 출가자들에게 있어 지와카는 정말 고마운 존재였다. 부처님이 감기에 걸리셨을 때도, 데와닷타가 던진 돌로 발에 상처를 입으셨을 때도, 변비나 설사로 고생을 하실 때도 지와까는 성심성의껏 치료하여 건강을 회복하도록 했다.

또한 부처님과 제자들이 분소의, 즉 공동묘지나 쓰레기장에서 주운 옷을 입어 질병에 걸리는 일이 많다는 것을 알고는 부처님께 수행자들이 새로운 가사를 입을 수 있도록 허용해 달라고 청했다. 부처님은 이 제안을 받아들이셨고, 더러운 옷이라도 햇볕에 잘 말려 입도록 당부하셨다고 한다. 또한 뜬눈으로 밤새워 정진하다 눈먼 아누룻다를 치료하기도 했으며, 창병에 걸린 아난다를 치료해 병을 고쳐주기도 하는 등, 부처님의 제자들에 대해서도 정성을 다했다.

그 정성이 얼마나 지극한지 지와카의 치료를 받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승가에 출가하는 사람들까지 출현할 정도였다. 당시 라자가하 주변에 나병이나 피부병과 같은 전염병이 돌자 치료받기 어려워진 일반인들이 지와카의 치료를 받기위해 무더기로 승가에 출가한 것이었다. 병이 나은 자들은 물론 그 즉시 환속했고 이로 인해 출가자들 사이에는 불신이 생겨 혼란스러워졌다. 이 사태를 염려한 지와카는 부처님께 중병을 지닌 사람은 병을 치료한 후 출가하도록 하자는 청을 올렸고, 이것이 받아들여져서 구족계를 받을 때 건강 유무를 확인하는 이른바 신체검사와 같은 절차가 제정되기도 했다고 한다.

만약 부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지와카는 눈에 보이는 상처만을 기계적으로 치료하는 그저 의술이 뛰어난 의사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부처님과의 만남을 통해 지와카는 인간의 심신이 유기적인 관계에 있으며, 이를 잘 관찰하여 근본적인 원인을 알아내고 이를 올바른 방법으로 치유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치료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었다. 이는 병자가 안고 있는 고통에 대한 깊은 이해, 그리고 고통 받는 병자에 대한 진정한 연민 없이는 실천 불가능한 일이다. ‘명의 지와카’. 그의 살아 숨 쉬는 의술은 생류에 대한 깊은 통찰과 자비심으로 생류의 아픔을 함께 하고자 했던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생명을 부여받은 것이었다.

이자랑 박사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1058호 [2010년 07월 28일 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