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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장희빈 만난 장통교, 박지원 놀던 수표교… 청계천 다리들 모두 훼손…광통교만 원형보존 ▲ 일제강점기까지만 해도 청계천에는 오래된 돌다리들이 있었으나, 개발 시대를 거치면서 모두 훼손됐고 청계천 복원 사업 때도 대부분 배제돼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영도교의 현재 모습(왼쪽)과 수표교(가운데)·장통교(오른쪽)의 옛 모습. 서울시 제공 ★*… 1457년 어느날, 청계천 영도교에서 16살 단종이 17살 부인 정순왕후와 아쉬운 작별의 인사를 나눴다. 이날 단종은 사랑하는 부인을 남겨두고 유배지인 강원도 영월로 떠나는 길이었다.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로 귀양길을 떠나던 단종과 부인 정순왕후가 영도교 위에서 눈물로 이별을 했다”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이 이날의 애틋한 분위기를 전해준다. 단종은 불과 11살의 나이에 왕위에 오른 뒤 3년 만에 숙부인 수양대군(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긴 비운의 왕이다. 1457년 영월로 떠난 뒤 끈질기게 자살할 것을 강요당하다 결국 그해 10월24일 16살의 나이로 죽음을 맞았다. 정순왕후는 이후 청룡사(종로구 숭인동)로 들어가 불교에 귀의했고, 1521년 61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500년 이상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은 단종과 정순왕후가 헤어진 다리를 ‘영도교’라 부른다. 영도교는 이들이 헤어진 뒤 다시 만나지 못해 ‘영영 이별 다리’, ‘영영 건너간 다리’ 등으로 불린 데서 유래했다. ...송채경화 기자 ▲ 한겨레 닷컴| ☞ http://www.hani.co.kr |
![]() ★*… 단종이 유배 직전 정순왕후와 마지막으로 이별했다는 서울 청계천 영도교. 1865년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중건에 필요한 석재를 확보하기 위해 철거한 이 다리를 서울시가 2005년 청계천 복원사업으로 되살렸다. |
명상음악 - 인연의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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