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레드닷 디자인 어워드’賞받은 심재진 LG전자 소장
LG전자 심재진 디자인경영센터 소장은 “독창성을 지닌 디자인은 블루오션의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LG전자는 지난달 독일에서 열린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에서 국내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최고 우수 디자인 기업인 ‘올해의 디자인팀’으로 선정됐다. 김재명 기자 |
그는 ‘비밀의 방’을 보여 주겠다고 했다.
복도를 따라가자 ‘관계자 이외 출입금지’ 문구가 붙은 사무실이 나타났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전자제품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동양의 도자기 화병을 연상시키는 TV, 벽걸이 프로젝터, 조약돌을 똑 닮은 MP3플레이어, 너도밤나무를 활용한 모니터…. 갤러리에 진열된 예술 작품처럼 보였다.
심재진(51) LG전자 디자인경영센터 소장(상무)은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디자인경영센터의 제품 연구실을 ‘비밀의 방’이라 소개했다. 방 안에는 아직 일반에 공개되지 않은 획기적인 전자제품들도 있었다.
LG전자는 지난달 독일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에서 최고 우수 디자인 기업인 ‘올해의 디자인팀’으로 선정됐다. 1989년에 시작된 이 상을 국내 기업이 받기는 처음이다. 아시아 기업으론 소니에 이어 두 번째다.
게다가 LG전자는 20개 제품을 레드닷 디자인상 수상 리스트에 올렸다. 이 중 듀얼 코어 ‘노트북 T1’ 시리즈와 벽걸이 프로젝터 ‘AN 110’은 최고 디자인 제품에 주는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상을 받았다.
“세계 최고 디자인 기업으로 인정받아 기쁩니다. 동시에 더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듭니다. 사실 디자인은 어렵습니다. 내가 하긴 어려워도 남이 하면 한없이 쉬워 보이는 것, 아무나 할 수 있다는 오해를 사는 것이 디자인이니까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상을 받은 이 회사의 듀얼 코어 노트북 T1을 보자. 뚜껑 부분은 매끈한 느낌의 검은색, 까칠한 감촉의 키보드가 있는 아랫부분은 흰색이다. 색상과 촉감의 대비가 하나의 ‘스타일’을 만들어 낸 것이다.
“마치 피아노의 검은 건반과 흰 건반을 떠올리게 한다”고 했더니, 심 소장은 이렇게 답했다.
“디자인 과정에서 피아노를 염두에 둔 건 아닙니다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요. 디자인은 바둑과 비슷합니다. 경우의 수가 무한정입니다. 지금 검은색 스커트 정장을 입은 당신의 커리어 우먼 이미지를 완성해 줄 액세서리이기도 합니다.”
제품 디자인에는 트렌드 주기가 있다. 2000년대 들어 ‘종이처럼 얇고 평평한’ 디자인이 추앙받았다. 한동안 차가운 은색과 푸른색이 세련된 색으로 통하기도 했다.
“2년 전부터 불어 닥친 검은색의 유행은 당분간 지속될 겁니다. 단, 지극히 고급스러운 검은색이지요. 실은 LG전자가 2002년 검은색 제품들을 먼저 내놓았는데 2004년 삼성의 ‘블루 블랙폰’ 이후에야 검은색이 유행했어요. 때로는 감성적 용어로 무장된 마케팅이 디자인을 돋보이게 합니다.”
디자인 어워드에서 만난 외국 기자들은 그에게 “LG는 일본 브랜드냐”고 물었다.
“LG는 아는데 한국은 모르더군요. 국가 브랜드와 기업을 연결시킬 수 있는 것은 결국 문화가 아닐까요. 어려운 사물놀이로 한국을 알릴 수 있다고 생각하면 착각입니다. 일본은 유럽 곳곳에 일본식 정원을 만들어 자연스럽게 문화를 소개하거든요. ‘메이드 인 코리아’란 원산지 표기를 안 쓰는 한국 기업이 많은 것도 문제입니다.”
1978년 LG전자(당시 금성사) 전자제품 디자인실에 입사해 30년 가까이 디자인이란 ‘한 우물’을 판 그는 어디서 영감을 얻을까.
일본 만화 ‘베가본드’와 ‘20세기 소년’ 원본을 틈나는 대로 본다. “앵글(각도)이 좋고 디테일이 치밀하기 때문”이란다. 뉴스는 인터넷 대신 꼭 종이신문으로 보면서 레이아웃을 살핀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도 10번 가까이 읽었다. 로마의 흥망사를 다룬 이 책을 통해 감성적인 디자이너들을 이끄는 디자인 경영원리를 배운다고 했다.
‘디자인은 무엇인가’라고 묻자 명쾌한 답변이 돌아왔다.
“디자인은 ‘오리지낼러티(독창성)’지요. 20년 전만 해도 소니, 도시바 등의 장점만 짜깁기해 한국산을 양산했어요. 기술력이 떨어지던 그 시절엔 어쩔 수 없었으니까요. 이젠 세계가 우리를 주시합니다. 오리지널을 만들 수 있는 디자인이야말로 블루오션(경쟁 없는 시장)의 지름길인 듯합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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