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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활동 전념하려 서울대 교수직 사임 / 이인성 씨

淸潭 2010. 2. 5. 18:39

[초대석]창작활동 전념하려 서울대 교수직 사임 이인성 씨




전북 부안군 격포 해안의 한 횟집에서 어색한 듯 사진 촬영에 응한 이인성 씨. “학교 그만둔다니까 사람들이 안 믿더라, 왜 순정을 안 믿어 주나 몰라” 하면서 웃는 그는 “소설을 마음껏 쓰게 돼 행복하다”고 말했다. 부안=김지영 기자

2일 오후 소설가 이인성(李仁星·53) 씨를 만나기 위해 전북 부안군 격포 해안으로 가는 길은 낯설었다. 소설 창작에 전념하기 위해 최근 서울대 교수직 명예퇴직을 신청한 뒤 계간 ‘문학과사회’ 동인들과 함께 부안으로 여행 간 이 씨는 서울에서 출발하는 기자에게 격포 포구에서 따로 만나자고 했다. 문우(文友)들이 있는 자리에서 인터뷰하는 게 쑥스럽다고 했다.

1980년 중편소설 ‘낯선 시간 속으로’를 발표하면서 등단한 이 씨의 작품세계는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어느 것 하나 긴장감이 늦춰지지 않은 작품들이다. 하지만 허름한 잠바 차림으로 포구에 나타난 이 씨는 전혀 까다롭지 않고 푸근했다.

“소설은 까다롭게 쓴다는 얘기를 많이 듣지만 학생들과 어울리는 것은 정말 좋아했어요.”

이 씨는 서울대 불문과 교수로 16년간 재직했다. 그전에 한국외국어대에서 교편을 잡았던 것까지 더해 23년 동안 강단에 섰다. 정년이 12년이나 남은 상태에서 사직을 결심한 이 씨는 “학교를 그만둬야겠다는 마음이 든 지가 5∼6년 됐다”고 했다. 글쓰기의 욕망 때문이다. “욕망이라는 게, 나이가 들면 잦아든다는데 소설 쓰고 싶은 욕망은 안 그렇더라”며 웃었다.

‘선생 노릇’도 좋았다고 한다. 학생들이 MT 갈 때 해마다 빠지지 않고 동행했다. 젊은이들과 호흡하는 게 좋았다. 그런데 6년 전, 대학 1학년이던 딸이 어느 날 말했다. “아빠, 내 친구가 아빠 수업을 듣는대요.” 이 씨는 충격을 받았다. 자식뻘 되는 청년들이 학교에 들어오는 때가 됐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부터 자유롭게 말하고 행동하지 못하겠더라고요. 자꾸 어려워하게 되고 조심하게 되고.”

나이가 들었다는 생각에다 소설 쓰고 싶은 열망이 겹쳐졌다. “예전에는 열심히 강의 준비하고, 강의하고 나면 바로 앉아서 소설 쓰고, 이런 게 가능했거든요. 지금은 힘이 달려요. 방학 때 집중해서 쓰겠다고도 해 봤는데 마음만큼 안 돼서…. 몸도 그렇고 집중력도 그렇고, 한쪽으로 몰아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거죠.”

소설에 몰아야겠다고 결심했다. 부친(이기백·李基白·1924∼2004·역사학자)이 투병 중이어서 결행을 미뤘다가, 부친이 세상을 떠난 뒤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결정으로도 보이겠지요. 대학에 엄청나게 많은 변화가 요구되기도 하고 불문학을 전공하겠다는 학생은 줄어가는 현실이어서 교수로서 할 일이 많은데…. 민망하고 죄지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렇지만 하고 싶은 일은 하면서 살고 싶다고 했다. 학생들에게 그렇게 가르쳤고 소설 쓰기도 그렇게 했다. 이 씨의 작품엔 ‘실험적’ ‘전위적’이라는 평가가 늘 따라다닌다. 그런데 열광하는 집단이 있다. 마니아의 지지가 뜨겁다.

이 씨는 그 독자들이 글쓰기의 힘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가 믿는 문학의 힘이기도 하다. “문학이 주변부로 밀려난 게 사실이죠. 저는 문학만이 할 수 있는 것을 좇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만 문학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겁니다.” 이를 위해 선택한 것이 “이인성만이 잘 쓸 수 있는 소설”이다.

부인 심민화(沈民嬅·54) 덕성여대 불문과 교수도 이번에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덩달아 한 거죠”라면서 이 씨는 웃었다. “하고 싶은 일이 많대요. 번역도 많이 하고 싶고 프랑스사를 집필해 보고 싶다고….”

부부가 함께 직장을 그만두면 먹고사는 문제는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연금이 나와서 웬만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주변 사람들은 사서 고생한다며 걱정이다. “시 쓰는 후배 성기완(成耆完)이 그러더라고요. 그걸 걱정하는 사람들은 길 위에서 살아 보지 못해서 그런 얘길 한다고.”

‘길 위에서’ 이 씨는 할 일이 많다. 이미 발표한 중편 ‘분명히 나쁜 꿈’과 ‘악몽여관 407호’에다 몇 편을 더 써서 ‘악몽 연작’ 시리즈를 완성할 계획이다. 계간 ‘문학·판’ 편집인으로 문예지를 만들고 개성적인 작가들을 발굴하는 데도 힘쓸 작정이다. 이 씨는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고 말했다. 더 늦어지기 전에 소설에 온몸을 던질 참이다. ‘소설가 이인성’의 삶은 이제 시작인 듯했다.




부안=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