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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향 예술감독 첫 해 / 정명훈 씨

淸潭 2010. 2. 5. 18:11

[초대석]서울시향 예술감독 첫 해 정명훈 씨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예술감독이자 상임지휘자로 2006년을 시작한 정명훈 씨는 “하나를 하더라도 제대로 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미옥 기자

《“잠깐…. 제가 그 솔(G)음에 달리 표시를 하지 않았던가요?” “아니, 이 곡은 시장(풍)이 아니라 백화점이라니까요.” 11일 오후 6시 20분 서울 은평구 녹번동 은평문화예술회관 대극장 무대. 지휘자 정명훈(鄭明勳·53) 씨의 지시를 듣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얼굴은 긴장돼 있었다. 이날은 정 씨가 이끄는 서울시립교향악단(서울시향)이 은평구민들을 위해 ‘찾아가는 음악회’를 연 날. 전날 서울 중랑구민회관에서도 동일한 레퍼토리로 베토벤 교향곡을 연주했지만 리허설 분위기는 도무지 느슨한 구석이 없었다. 리허설 직후 분장실에서 그를 만났다.》

○나는 기초를 다지는 사람

1월, 정 씨의 시간표는 빡빡하다. 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10일 중랑구민회관, 11일 은평문화예술회관, 13일 세종문화회관에 이어 16일 서울 구로구 연세중앙교회, 17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홀, 18일 서울 노원문화예술회관…. 전문 콘서트홀부터 구민회관까지 그를 따라 악기를 메고 여기저기를 옮겨 다니며 리허설을 반복해야 하는 단원들에게도 ‘지옥 훈련’이다.

2006년은 정 씨가 서울시향의 예술감독이자 상임지휘자로서 맞은 원년(元年). 지난해 예술고문으로 단원 96명중 40명을 교체해 전열을 재정비한 그가 무대에서 서울시향의 달라진 모습을 보여 줘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그는 지금 자신의 역할을 “기초를 다지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연습할 때마다 드는 생각은 내게 필요한 것이 지휘봉이 아니라 (매를 대신할) 막대기라는 겁니다. 멋지게 연주하는 것은 제가 아니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요. 저는 좋은 소리를 잡고 음을 깨끗하고 정확하게 내게 하는 데 주력합니다. 기초적인 퀄리티(질)를 높이는 게 제 책임이죠.”

그는 “오케스트라의 출발점은 단원들의 자긍심”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서 흔히 느낄 수 있는 태도가 ‘솔리스트가 되려 했지만 안 돼서…’라는 겁니다. 단원들이 오케스트라에 만족하고 거기에 마음을 쏟지 않는 한 세계적인 반열에 절대 올라설 수 없어요.”

왜 꼭 세계 수준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그의 답은 지극히 ‘경제적’이었다.

“오케스트라는 꾸려나가는 데 비용이 많이 드는 조직입니다. 잘하지도 못할 거라면 그 많은 돈을 쏟아 부을 필요는 없어요. 나라나 시를 대표하는 오케스트라라면 당연히 잘해야 합니다.”



○심포니의 기본으로 돌아가다

올해 서울시향의 화두는 ‘베토벤’이다. 13일 세종문화회관에서 교향곡 1, 2번과 3번 ‘영웅’을 연주한 것을 시작으로 9번 ‘합창’까지 올해 9개 교향곡 전곡을 연주할 계획이다.

세계는 연초부터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으로 들썩거리는 분위기. ‘베토벤’을 고른 그의 선택이 혹 시대 흐름과는 엇가는 ‘장엄주의’는 아닐까. 그러나 그의 답은 단호했다.

“오케스트라에는 베토벤이 아버지입니다. 오늘날의 대(大)편성 오케스트라는 베토벤에 이르러 비로소 가능해진 것이니까요. 베토벤이 9번 ‘합창’을 작곡한 이후에도 수많은 교향곡이 나왔지만 그보다 더 나은 작품을 썼다고 자부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는 교향곡의 시작이자 끝이죠. 오케스트라로서는 베토벤이 늘 출발점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베토벤의 음악이 인간이 추구해야 할 보편적인 가치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 시대의 음악적 화두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내게 베토벤의 의미는 자유, 사랑, 형제애 같은 것입니다. 특히 지금 한국에서는 무엇보다도 이 형제애가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베토벤 사이클을 하면서 이 정신을 살릴 이벤트가 동반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 꿈대로 1년이 진행된다면 마지막은 이북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지요.”

‘북한 공연을 준비한다는 뜻이냐’고 묻자 그는 “평양 공연이야 내가 30년을 꿈꿔 온 것이지만…. 북한에 돈 쥐여 주고 하는 방북 공연은 안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은령 기자 ry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