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부처님 마음

[천불만다라]52. 어리석음과 지혜로움

淸潭 2009. 2. 12. 10:36

[천불만다라]52. 어리석음과 지혜로움
어리석음 속에 도사린 독선이 전쟁의 원인
기사등록일 [2009년 02월 10일 14:04 화요일]
 

어리석은 자와 함께 길을 가기란
오래도록 근심이 따른다.
어리석은 자와 함께 사는 것은
원수와 사는 것처럼 고통스럽다.
지혜로운 사람과 함께 살면
친척들의 모임처럼 즐겁기만 하다.
 - 『법구경』

 

초기경전인『백유경』은 중생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주려는 뜻에서 비유와 설화로 법을 설하신 대표적인 경전이다. 인간의 어리석음에는 언제나 지혜로움이 대구가 된다. 이들 설화 경전 속에서 어리석음과 지혜로움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살펴보기로 하자.

볶은 깨 심고 싹트길 바라나

첫째는 『백유경』에 나오는 인자한 아버지와 욕심 많은 두 아들의 이야기이다. 아버지는 평생을 근검절약하여 대부호가 되었다. 임종에 임박하여 두 아들에게 자신의 유산을 사이좋게 나누어 가지고 더 크게 번창하라고 당부하고 눈을 감았다. 그러나 두 아들은 욕심이 앞서서 서로 더 좋은 물품을 차지하려는 데에 급급하였다. 그리고 아버지가 남긴 물품을 똑같이 나누어 갖는다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것에 고심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서 마음에 드는 가구를 동생이 가지려고 하면 형이 빼앗아 가버리면서 좋은 것은 맏이가 갖는 것이 당연하다고 호통을 쳤다. 그래서 형제 사이에는 매일 같이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렇게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형제를 지켜보던 이웃 노인이 물건을 공평하게 나누어 갖는 방법을 일러 주었다. 그 방법이란 집안에 있는 물품을 모두 모아놓고 정확히 반을 잘라 두 몫으로 만들어서 나누어 가지라는 것이다. 형제는 이 방법을 듣는 순간 손뼉을 치며 기뻐하였다. 서로 손해 볼 것도 없고 공평하게 나누어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형제는 잘 드는 톱을 찾아 들고 집안에 있던 가구랑 아버지가 남겨준 옷이랑 모든 것을 둘로 나누었다고 한다. 그리고 둘이서 기분 좋게 나누어 가졌지만 모든 물품은 이제는 더 이상 쓸모없는 것들이 되어버린 뒤였다. 결국 형제는 몹시 가난해 졌고, 쓰레기더미로 변한 아버지의 유품을 내다버리는 일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어느 어리석은 사람이 깨를 날것으로 먹었더니 별로 맛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장작불을 지펴서 냄비에 넣고 볶아서 먹어보니 참으로 고소하고 맛이 있었다. 그래서 그 다음해에 농부는 아예 깨를 잘 볶아서 밭에다 씨를 뿌렸다. 왜냐하면 수확을 한 뒤에 다시 볶아서 맛을 내는 번거로움을 덜기 위해서였다. 볶은 깨를 씨앗으로 삼아서 밭에 뿌린 농부가 아무리 기다려도 깨의 새싹은 돋아나지 않았다.

세 번째 이야기는 주인이 외출을 하면서 어리석은 하인에게 문을 잘 단속하고 헛간에 묶어둔 나귀와 밧줄이 풀어지는가를 잘 살피라고 일렀다. 하인은 주인이 특별히 이른 대문과 나귀와 밧줄을 유심히 살피면서 집을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이웃에서 잔치가 벌어지고 구경거리가 생겨서 하인도 이웃집에 가보고 싶어졌다. 주인의 당부를 고심하던 하인은 나귀 등에 문짝을 떼어서 싣고 밧줄로 잘 묶은 다음에 나귀를 끌고서 이웃집에 구경을 나갔다. 주인이 염려한 문짝과 나귀와 밧줄을 잘 챙겼기 때문에 걱정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저녁에 돌아와 보니 집에는 도둑이 들어서 귀중한 물품을 다 훔쳐가 버렸다. 그리고 주인은 어리석은 하인의 행위에 대해서 할 말을 잊어버렸다.

이상의 이야기들은『백유경』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어리석은 사람의 이야기이다. 욕심이 지나쳐서 아버지의 유품을 다 못쓰게 만든 형제의 이야기나, 간편하게 맛있는 깨를 얻으려고 볶은 깨를 밭에 심은 농부의 이야기나, 집 안에 귀중품은 내버려두고 엉뚱한 것에 정력을 쏟은 하인의 이야기 등은 한편의 풍자시를 읽는 듯 우리를 허탈감에 빠지게 한다.

지혜 속에 행복-극락 있어

우리 자신들도 최첨단으로 발전한 21세기의 오늘을 살면서 참으로 소중한 것을 쓰레기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간편함과 욕망에 눈이 어두어서 생명에 역행하는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하찮은 것에 목숨을 걸고 헛바퀴를 돌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하는 이야기이다.

불교는 어리석음을 떨쳐버리고 지혜를 기르라고 가르치는 종교다. 전 세계 인류의 역사는 유일신의 성스러움과 유일신의 독선으로 점철되어 왔다. 이 성스러움과 독선의 가장 밑바닥에는 인간의 지혜와 어리석음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불교는 모든 외형적인 수식이나 추상적인 절대자의 권능도 걷어버렸다. 그리고 오직 자신의 마음이 어리석지 않고 지혜롭기만을 일깨워왔다.

지혜로움 속에 행복이 있고 천당과 극락이 있기 때문이다. 어리석음 속에 독선이 도사리고 있고 살상의 전쟁이 벌어져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교는 석가모니의 성도(成道)를 기점으로 모든 허상을 걷어버리고 오직 지혜로운 심성을 가지라고 타이르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지혜로운 삶 속에서 모든 생명이 더불어 영원히 행복하고 안락할 수 있다고, 석가모니는 그 많은 경전을 통하여 비유와 설화로 웅변하고 계신 것이다. 신선한 공기와 같은 불교가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것은 세상에 어리석음이 만연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가오는 봄날에는 싱싱한 깨의 씨앗에서 새싹이 돋아나듯, 불법의 지혜가 온 나라에 퍼져나가기를 기도할 뿐이다.
 
본각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985호 [2009년 02월 10일 1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