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가 못된 짓을 했더라도
착한 행동으로 덮어버린다면
그는 이 세상을 비추리라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
- 『법구경』
위의 게송은 앙굴리말라스님과 관련하여 설하신 가르침이다. 앙굴리말라스님에 대해서는 너무나 유명하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이야기이다. 앙굴리말라스님은 출가하기 전, 너무나 순수하고 스승의 가르침을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바라문청년이었다. 그러나 천명의 사람을 죽여서 천개의 손가락으로 목걸이를 만들어야만 완전한 수행을 성취할 수 있다는 사악한 스승부부의 잘못된 가르침에 빠져서 급기야는 거리의 살인마로 전락하게 된 슬픈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멈춤으로 보여준 붓다의 가르침
거리의 살인자가 된 앙굴리말라는 마지막 천 번째의 손가락을 얻으려고 거리를 누볐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그의 어머니는 아들을 구하기 위하여 거리로 달려 나갔고, 마지막 한 사람을 찾던 그는 이미 자신의 어머니까지도 손가락을 얻을 수 있는 대상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천개의 손가락을 채우기 위하여 어머니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는 그를 지혜의 눈으로 살피신 부처님은 모자(母子)가 저지를 참상을 막기 위하여 신통으로 몸을 날려서 그의 앞에 나타나셨다. 부처님을 만난 앙굴리말라는 이번에는 피 묻은 칼을 높이 든 채로 부처님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달려가도 부처님과의 거리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자 그는 성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수행자여 거기 멈추어 서라!”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자비심이 넘치는 조용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씀하셨다. “앙굴리말라여, 나 여래는 항상 여기에 멈추어 서있다. 멈추어 설 줄 모르고 험악하게 달리는 것은 바로 네가 아니냐?” 부처님의 이 말씀에 지금까지 살기로 가득 찼던 앙굴리말라의 가슴 속에 일순간 맑은 기운이 스쳐지나갔다.
이러한 심정의 변화를 일으킨 그는, ‘여래는 멈추어 서있고, 자신은 멈추어 서있지 않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를 반문하였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그에게 법을 설하셨다. ‘여래가 멈추어 서있다는 것’은 모든 생명을 자비로 보호하여 그들의 괴로움을 멈추게 하는 행위이다. 다른 생명을 죽이지 않고는 단 한순간도 살아갈 수 없는 처참한 윤회의 굴레를 직시함으로써, 도리어 생명을 지키려는 의지로 살상(殺傷)을 멈추라는 불살생(不殺生)의 계율을 선포한 것이 바로 여래가 멈추어 서있는 모습이다. 이 불살생계는 인간의 살상에 의하여 모든 생명이 겪는 고통에 대한 변호(辯護)이다. 그러나 그대는 많은 생명을 살상하여 모두에게 공포와 고통을 안겨주면서도 그것이 죄악인 줄 모르는 것은 ‘멈추어 설 줄 모르는’ 어리석은 행위라고 깨우치셨다.
돌팔매 맞으며 인욕 정진
앙굴리말라는 그 자리에서 자신이 저지른 악행에 대하여 전율을 느꼈다. 피 묻은 칼을 던져버리고 가슴에 걸었던 손가락 목걸이도 벗어 던졌다. 곧바로 부처님 제자가 되어 수행자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모든 생명을 향하여 참회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다스리게 되었다. 그가 거리에 나아가서 걸식을 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살인마라고 돌팔매를 던졌다. 그러나 그는 단 한 개의 돌팔매도 피하려고 하지 않았다. 자신이 저지른 과보에 대해서 기꺼이 감내하며 수행을 쌓아갔다. 걸식에서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오는 앙굴리말라를 맞이하시는 부처님은 참고 견디는 인욕(忍辱) 제일의 제자로서 그를 칭찬하셨다.
그리고 어느 날, 그가 걸식을 하던 도중에 산고(産苦)로 괴로워하는 임산부가 수행자인 그를 발견하고서 자신의 고통을 없애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받게 된다. 예전에 살인마였던 자신에게 편안한 생명의 출산을 기원하는 임산부의 당부를 받고서 앙굴리말라는 몹시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부처님이 계시는 수행 처소로 도망치듯 달려왔다. 그리고 깊은 회한(悔恨)의 마음으로 임산부의 부탁을 부처님께 전하였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참으로 자비로운 모습으로 앙굴리말라에게 이르셨다.
너는 급히 그 임산부에게 달려가서, ‘나 앙굴리말라는 단 하나의 생명도 손상한 일이 없으니 그 공덕으로 고통에서 벗어나서 편안한 해산을 하라’고 말하여 주라는 것이다. 부처님의 이 말씀에 더욱 소스라쳐 놀란 앙굴리말라가 처절한 눈망울로 부처님을 바라보자, 부처님께서는 준엄한 목소리로 ‘너 앙굴리말라는 여래의 집에 태어난 이후로 단 한명의 생명도 손상한 일이 없지 않느냐’고 깨우치셨다.
이에 앙굴리말라는 곧바로 생명의 실상을 깨닫고 성자의 경지에 올랐다고 한다. 그리고 곧바로 임산부에게 달려가서 ‘여래의 가문에 태어난 이후로 단 한명의 생명도 손상한 일이 없으니 그 공덕으로 고통을 여의고 편안히 생명을 탄생시키라’고 말하였다. 그 순간 임산부는 모든 고통으로부터 벗어나서 건강한 아기를 출산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앙굴리말라가 임산부에게 말한 이 언어를 불교 진언(眞言, mantra)의 시작이라고 전한다.
참회 공덕이 진언으로 승화
극악무도했던 앙굴리말라가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하여 악행을 그치고 자신에게 던지는 단 한 개의 돌팔매도 피하려하지 않은 인욕을 실천함으로써, 성자의 경지에 오른 이야기이다. 또한 악행을 그친 참회자의 진실함이 생명의 출산을 돕는 자비로운 진언으로까지 승화될 수 있음을 전하는 거룩한 이야기이다. 순간에 자신의 잘못을 던져버리면 그 잘못은 이미 자취를 감추게 된다. 잘못으로 저지른 과보를 묵묵히 감내하고 승화시키는 참다움이 성자의 삶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구름을 벗어난 달빛이 온 세상을 비추듯이 부처님의 가르침은 악인 앙굴리말라를 통하여 오늘에도 더욱 빛나고 있다.
본각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그림=이호신 화백, 수화자문=원심회 김장경 회장
974호 [2008년 11월 17일 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