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자기 자신을 바로 갖추고
그런 다음에 남을 가르치라
이와 같이 하는 지혜로운 이는
괴로워할 일이 없으리라
- 『법구경』
부처님을 예경할 때에 ‘삼계의 도사(三界導師)이시고 사생의 자부(四生慈父)’라는 구절을 암송한다. ‘삼계도사’란 욕망의 노예가 되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중생세계와 육체적 본능의 노예가 되어서 살아가는 중생세계와 욕망과 본능을 벗어나서 정신적인 사유(思惟)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중생세계를 통칭하여 삼계라고 한다. 이러한 생명이 존재하는 세계의 모든 존재들을 올바른 길로 잘 이끌어주시는 스승이라는 뜻이 도사(導師)이다. 뿐만 아니라 사생이란 네 가지 종류의 생명 현상을 말한다. 곧 태(胎)로 태어나는 인간과 같은 생명, 알로 태어나는 새들과 같은 생명, 지렁이나 모기처럼 습한 곳에서 태어나는 생명, 나비나 매미처럼 번데기로 태어나는 생명의 현상을 총칭해서 사생(四生)이라고 한다. 그러한 모든 생명들에게 부처님은 어진 아버지의 역할을 잘 해주시고 계신 것을 사생의 자부(慈父)라고 칭송한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정각을 성취하신 이후 줄곧 불자가 지켜야할 제일계(第一戒)에 ‘모든 생명은 해침을 당하면 괴로워하나니 마땅히 자비심으로 보호하라’고 불살생계(不殺生戒)를 강조해 오셨다.
‘스승’은 두렵고도 책임있는 자리
부처님께서는 스승의 자리에 오른 첫발걸음으로 생명을 보호하는 어진 아버지의 역할을 하신 것이다. 먼저 스승은 자비로서 스스로를 가다듬는 것이 제일의 계율이다. 위의 게송에서 ‘먼저 자기 자신을 바로 갖추고’라는 말씀에서 ‘삼계도사 사생자부’의 예경문이 가슴에 떠올랐다. 남의 스승이 되기 위해서는 올곧은 길을 인도하는 직선적인 날카로움과 모든 생명을 자비로 감싸 안는 어버이 같은 마음이 필요하다. 남에게 스승이 된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많은 것을 먼저 점검해 보아야 한다. 스승의 자리는 참으로 두렵고 책임이 있는 자리이다.
『사분율장』을 읽고 있으면, 스승은 스승으로서 자격이 있어야하고 제자는 또 제자로서의 도리를 다해야 한다고 하는 ‘화상(和尙)의 법과 제자(弟子)의 법’이 설해져 있다. 화상이 다섯 가지 법을 성취하지 못하면 남에게 구족계(具足戒)를 설하여 주지 못한다. 다섯 가지 법이란 계(戒), 정(定), 혜(慧), 해탈(解脫), 해탈지견(解脫知見)을 성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스승이 갖추어야 할 다섯 가지 법은, 바른 믿음이 있어야 하고, 남에게 부끄러워 할줄 알고, 항상 깊이 반성하며, 게으르지 않아야 하고, 기억력이 뛰어나야 다른 이의 스승이 될 자격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와 마찬가지로 제자도 스승에 대한 다섯 가지 법을 지켜야 제자의 자격이 있다고 한다. 남을 향하여 부끄러워 할줄 알고, 스스로 반성하여 안으로 뉘우치며, 스승의 가르침을 잘 받아들이고, 위의(威儀)를 지키고 스승을 따르고 공경함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스승과 제자의 법에서 공통으로 지켜져야 하는 법은 남을 대하거나, 자신을 향하여 스스로 마음 깊이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스스로 반성하고 뉘우쳐서 부끄러워할 줄 알지 못하면 스승도 제자도 가르치고 배울 자격이 없다는 뜻이다. 부끄러워 할 줄 아는 마음이야말로 모든 착한 법(善法)에 나아가는 시작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화엄경』에는 ‘참괴장엄(愧莊嚴)’이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이 뜻은 수행자가 ‘안과 밖으로 모든 것을 부끄러워하여 스스로를 반성하는 것으로 자신을 장엄한다.’는 의미이다. ‘장엄’이란 액세서리 등으로 몸을 아름답게 꾸미거나 꽃 등으로 주위를 거룩하게 단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남 허물 지적에만 익숙해선 안돼
요즈음의 우리는 그저 자신의 잘못은 감추어 버리고 남의 허물만 지적하여 드러내는 데에 익숙해 있다. 그러나 참괴장엄은 그 반대의 삶을 요구하는 것이다. 스스로 깊이 살펴서 자신의 모자람과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부끄러워함으로써 참다운 스승의 덕이 있고 제자의 공손한 자격이 있는 것이다. 이는 곧 깊이 헤아려 보면 자신의 삶을 바로 잡는 것이 제일의 급선무라는 생각이 든다. 스승의 위치에 서있는 사람은 더더욱 그렇다. 남을 향하여 잘잘못을 말하기 이전에 밖으로 향하던 인식의 방향을 안으로 돌리는 회광반조(廻光返照)의 삶을 실천하는 데에 주저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참괴장엄’의 아름다운 덕을 놓쳐버릴까 두렵기 때문이다.
고려 보조국사의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에 ‘깊이 예경하는 자와 예경을 받는 대상을 관찰해 보니 다 참된 성품에서 기인하였음으로(深觀能禮所禮 皆從眞性緣起), 부처님의 감응이 헛되지 않아서 그림자와 메아리가 서로 상응함과 같다(深信感應不虛 影響相從)’라는 글이 있다. 그림자와 메아리가 서로 상응(相應)하는 것은 본 모습 그대로 그림자로 비춰지고, 소리 역시 같은 울림이 메아리로 돌아옴을 의미하는 것이다. 내 모습이 바르지 않고는 그림자의 곧음을 바라는 것은 무리이며, 나의 소리가 고르지 않고는 메아리가 고르게 울려 퍼지기를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나의 예경의 마음이 진실할 때 부처님의 감응의 가피(加被)도 헛되지 않다는 가르침을 되새기면서, 모든 것을 나로부터 바르게 시작해야 한다는 진리를 마음에 새긴다.
본각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그림=이호신 화백, 수화자문=원심회 김장경 회장
966호 [2008년 09월 22일 16시 09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