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줄기세포 역분화' 新기술이 뜬다
- 다 자란 체세포로부터 생체시계 거꾸로 돌려
젊은 줄기세포 만들어내는 것이 '역분화 기술'
배아도 파괴할 필요없어 윤리적 문제까지 해결
파킨슨 병 치료 등 줄기세포 '분화' 연구도 활발
황우석 사태 이후 줄기세포는 우리 국민들이 애써 외면하는 대상이 됐다. 마비 환자를 일어서게 하고 당뇨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장밋빛 전망도 사라졌다.
그러나 잿더미 속에서 새싹이 다시 돋아나듯 최근 세계적으로 줄기세포 연구가 다시 꽃피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는 동물 실험을 넘어 인간의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 효과가 조금씩 확인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줄기세포 연구자들에게 거액의 연구비를 집중 지원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줄기세포 연구 성과가 잇달아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다. 바야흐로 줄기세포 세계 전쟁 제2 라운드가 시작된 것이다.
- ▲ 줄기세포 연구가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최근에는 다 자란 세포를 줄기세포 상태로 돌리는 기술도 개발돼 난자나 배아를 파괴하지 않아도 치료용 줄기세포를 얻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사진은 인간 배아줄기세포에 영양분을 주입하는 장면. /미 위스콘신대 제공
■ 다 자란 세포로 줄기세포 만들어
최근 줄기세포 연구에서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분화(分化)' 기술과 '역(逆)분화' 기술이다.
줄기세포는 일종의 젊은 원시세포다. 즉 간 세포나 근육 세포처럼 특정 기능을 가진 체세포로 자라기 이전 단계의 젊은 세포다. 과학자들은 난치병 환자의 손상된 세포를 없애고, 그 자리에 원시세포인 줄기세포를 응용한 새 세포를 집어넣으면 질병을 근원적으로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분화 기술이란 최초 줄기세포로부터 피부 세포나 간 세포 등 체세포를 만드는 기술이다. 반면 역분화는 이미 분화돼 다 자란 체세포로부터 생체 시계를 거꾸로 돌려 젊은 줄기세포를 만드는 기술이다. 흥미롭게도 반대되는 개념의 이 두 기술이 현재 줄기세포 연구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원시세포(젊은 세포)인 줄기세포가 성숙한 세포(늙은 세포)인 체세포로 분화한다는 것은 자연스런 생명현상이다. 반면 성숙한 세포인 체세포가 젊은 세포인 줄기세포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어른을 어린애로 되돌리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만큼 결코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다.
그러나 역발상의 사고를 하는 과학자가 있었다. 일본 교토대의 야마나카 신야(Yamanaka Shinya) 교수가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일반적인 생명 현상에 반하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하나하나 실험으로 증명하기 시작했다.
야마나카 교수는 먼저 줄기세포에서만 특이하게, 또는 다량으로 발현되는 유전자들 중에서 24개의 유전자를 골랐고, 다시 이 중에서 역분화에 필수적인 유전자 4개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는 이 4개의 유전자를 처음에는 생쥐의 피부 세포에 집어넣어, 수정란에서 얻는 배아줄기세포처럼 인체의 모든 세포로 자라날 수 있는 '유도 만능 줄기세포(iPS·induced Pluripotent Stem cell)'를 만들어냈다. 그 다음에는 사람 피부 세포를 같은 방법으로 역분화시켜 역시 유도 만능 줄기세포를 만들었다. 그의 연구 성과에 과학자들은 흥분했고, 일본 정부는 최근 그에게 연간 200억원이 넘는 연구비를 제공하겠다고 선언했다.
야마나카 교수의 역분화 기술에 의한 유도 만능 줄기세포는 세계적인 과학자들에 의해서 다시 입증되고 있다. 1998년 인간 배아줄기세포를 처음 만들었던 미국 위스콘신대의 제임스 톰슨(Thompson) 박사와, 세계줄기세포학회장인 하버드대의 조지 데일리(Daley) 박사 등이 최근 잇달아 비슷한 역분화 기술로 유도 만능 줄기세포를 만들어냈다.
■ 윤리 문제서 자유로운 역분화 연구
역분화 기술의 가장 큰 장점은 황우석 박사의 배아(胚芽) 복제 기술에 비해 윤리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점에 있다.
배아 복제는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우선 피부 세포처럼 다 자란 체세포를 핵이 제거된 난자와 융합시킨다. 이렇게 하면 체세포와 유전자가 똑같은 수정란, 즉 배아가 만들어진다. 이 배아에서 인체의 모든 세포로 자라날 수 있는 배아줄기세포를 추출할 수 있다.
결국 배아 복제는 체세포가 복제 단계를 거쳐 줄기세포로 역분화한 셈이다. 환자의 체세포로 복제를 하면, 여기서 나온 배아줄기세포로 만든 세포를 질병 부위에 넣어도 유전자가 같기 때문에 면역 거부 반응이 사라지게 된다. 황우석 박사가 시도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다. 얼마 전만 해도 과학자들은 줄기세포 이식에서 나타나는 면역 문제를 해결해 보고자 복제를 통해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를 얻으려는 시도에만 매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배아 복제로 줄기세포를 얻는 것은 기술적으로도 어렵지만 여성들로부터 난자를 기증 받아야 하고, 나중에 생명으로 자랄 수 있는 배아를 파괴해야만 하는 윤리적인 문제가 있다.
바로 이 즈음, 난자와 배아를 사용하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를 만들려는 시도가 야마나카 교수를 중심으로 시작됐다. 체세포에 특정 유전자를 집어넣어 배아줄기세포 상태로 만들 수 있다면 난자나 배아를 파괴하지 않아도 된다. 또 환자 체세포를 이용하면 배아 복제와 마찬가지로 면역거부 반응 우려가 없는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를 만들 수 있다. 이 때문에 복제양 돌리를 만든 영국의 이언 윌머트 박사조차도 복제 연구를 전면 중단하고 역분화 연구를 시작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하지만 역분화 기술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역분화를 유도하려면 4가지 정도의 특정 유전자를 체세포에 집어넣어야 한다. 이때 통상 바이러스가 사용된다. 일단 바이러스에 유전자를 집어넣고, 이 바이러스를 체세포에 감염시키면 자연스럽게 4가지 유전자가 체세포로 이동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바이러스는 질병을 일으키는 주범이라는 문제가 있다. 또 역분화로 만든 유도 만능 줄기세포가 과연 배아줄기세포와 정말 그 성질이 같은지에 대해서는 아직 수많은 검증이 필요하다.
역분화는 새로운 혁신 기술이고 초보적 단계이다. 하지만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은 윤리적 대안으로 떠오른 이러한 역분화 기술에 대대적인 지원 의사를 밝히고 나섰다.
■ 파킨슨병 치료 가능성 가장 높아
역분화가 인기를 끄는 동안, 가장 중요한 줄기세포 연구 분야인 '분화' 연구도 급속도로 발달해 왔다.
최근에 가장 발달한 분야는 신경호르몬인 도파민을 분비하는 세포로의 분화이다. 퇴행성 신경질환인 파킨슨병은 뇌의 특정 부위에서 도파민 신경세포가 죽어서 생긴다. 만약 이곳에 도파민 신경세포를 넣어주면 피킨슨병이 호전될 수 있는데, 이러한 도파민 신경세포는 줄기세포 분화를 통해 얻을 수 있다.
지난 2월 연세대 의대 연구팀은 인간 배아줄기세포로부터 도파민 신경세포를 86%라는 세계 최고 수율로 만들었다. 이는 배아줄기세포를 분화시켜 만든 신경 세포의 86%가 도파민 신경세포라는 뜻이다. 이전에는 수율이 60~70%에 불과해 상용화하기 힘들었다. 이 도파민 신경세포를 파킨슨병에 걸린 쥐에 주입하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증상이 치료됐다.
지난 달에는 뉴욕 메모리얼 슬로언 케터링 암 센터가 체세포 복제로 만든 배아줄기세포를 도파민 신경세포로 분화시킨 다음, 이것으로 파킨슨병에 걸린 쥐를 치료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환자 자신의 세포로 줄기세포를 만들고, 이것을 특정 세포로 분화시켜 손상된 세포를 대체하는 맞춤형 치료복제가 동물 실험에서 처음으로 성공한 것이다.
다른 세포 분화 연구에서도 성과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포천중문의대 연구팀은 인간 배아줄기세포에 동물 세포나 화학물질을 넣지 않고 혈관 세포로 분화시키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 세포를 뒷다리 혈관이 손상된 생쥐에게 이식했더니 새로운 혈관이 만들어졌다. 정 교수는 2~3년 내에 실제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할 계획이다. 이런 성과에서 보듯 국내 줄기세포 연구도 세계적인 수준으로 도약하고 있다.
■ 질병 원인 규명과 신약개발의 지름길
줄기세포는 건강한 세포를 분화시켜 손상된 세포, 조직, 장기를 대체함으로써 기존의 질병 치료 수단인 약물요법이나 수술로는 치료가 불가능한 난치병을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이른바 재생의학이다. 이뿐 아니라 신약 개발에서부터 질병 메커니즘과 발생학 연구에 이르기까지 생명과학의 다양한 분야에 활용될 수 있다.
신약 개발의 경우 동물을 다양한 질병에 감염시킨 뒤 치료 후보 물질을 실험해 본다. 비용도 막대하거니와 시간도 오래 걸린다. 게다가 동물을 희생시키기 때문에 윤리적 논란도 그치질 않는다.
반면 줄기세포를 이용하면 손쉽게 질병에 걸린 다양한 세포를 만들어 실험할 수 있다. 세포 단위의 시험이기 때문에 비용과 시간이 크게 줄어든다. 줄기세포를 원하는 세포, 예를 들어 도파민 신경세포 등으로 분화시켜 파킨슨병 신약 후보 물질을 테스트할 수도 있다.
또 줄기세포는 발생학과 질병 원인 연구의 강력한 도구가 된다. 예를 들어, 환자로부터 역분화 또는 복제에 의해 얻어낸 줄기세포는 특정 질병의 원인을 규명하고 치료하기 위한 연구의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
최근 제약분야 보고서인 '제인 파마바이오텍 리포트(Jain PharmaBiotech Report)'는 줄기세포 치료제가 연평균 18.5%씩 성장하는 고성장 산업이 될 것으로 예측했다. 2015년에 전체 세포 치료 관련 시장은 963억 달러 규모이고, 이중 줄기세포 시장은 109억 달러규모로 전망됐다.
올해로 인간 배아줄기세포가 만들어진 지 꼭 10년이 됐다. 최근 환자 치료에 줄기세포를 적용하는 경우가 더러 있지만, 대부분 다른 치료법이 없는 환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다. 아직도 안정성이나 표준화된 치료법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한 둘이 아니다. 결국 이런 한계는 꾸준한 기초 연구로 해결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줄기세포 연구와 사회 윤리와의 조화 방안도 강구돼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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