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승석 교수 '충무공유사'서 찾아내
충무공 이순신이 쓴 '난중일기' 중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32일치 분량의 일기가 새로 확인됐다.
노승석(盧承奭)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 대우교수는 문화재청의 의뢰로 2006년부터 '충무공유사(忠武公遺事)'를 판독ㆍ번역한 결과, "지금까지 전해진 난중일기 초고본과 '이충무공전서' 목판본에서는 볼 수 없는 총 32일치 분량의 일기를 확인했다"고 2일 밝혔다.
여기에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꿈에 나타나…그리움에 눈물을 금하기 어려웠다"(1595년 정월 12일)거나, "오늘이 바로 회(맏아들)가 혼례를 올리는 날이니 걱정하는마음이 어떠하겠는가"(정월 21일)라며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내용이 담겼다.
또 "하늘과 땅 사이에는 이 원균처럼 흉패하고 망령된 이가 없을 것이다"(11월 1일)라며 사이가 좋지 않았던 원균에 대해 혐오감을 나타내고, "우리나라의 병사들이 쇠잔하고 피폐한데 이를 어찌하랴"(11월 4일)고 적기도 했다.
난중일기는 이순신 장군이 친필로 쓴 초고본(1592-1598)이 국보 제76호로 지정돼 있으나 을미년(1595)에 쓴 일기는 전해지지 않고있다. 난중일기의 을미년 부분은 1795년에 간행된 목판본 '이충무공전서'에 수록된 것으로 충무공 사후 발간과정에서 누락되거나 수정된 부분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현충사가 소장하고 있는 '충무공유사'는 '이충무공전서'보다 100년 정도 앞선 시기에 기록된 것으로 난중일기 내용을 뽑아쓴 '일기초(日記秒)' 23-60쪽에는 모두 325일치의 일기가 수록돼 있으며 이중 을미년을 중심으로 한 32일치가 초고본이나 이충무공전서에는 없는 내용이다.
노 교수는 "이번에 새로 확인된 일기는 너무 개인적이거나 민감한 내용이어서 후세에 전하기에 부적절하다고 여겨 '이충무공전서'에서 의도적으로 삭제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충무공유사는 '재조번방지초'(再造藩邦志抄)로 알려져 있었으나 겉 표지 뒷면에'충무공유사'라는 제목이 남아있으며 난중일기 초고본과 함께 덕수 이씨 종가에 전해 내려왔다.
여기에는 일기초 외에도 지금은 소실된 충무공 사당의 상량문과 전쟁에 참가한 병사들의 명단 등 중요한 자료가 수록돼 있다. 디지털뉴스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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