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불교방송 - 무명을 밝히고(1992. 9. 20.)
진행자 : 무명을 밝히고 일요일 순서 진행해 드리고 있습니다. 일요일 ‘무명을 밝히고’에서는 평소에 뵙고 싶었던 스님들을 모시고 여러 말씀 들어보는 시간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수덕사 주지스님으로 계시는 법장스님을 모시고 소중한 말씀 듣는 시간을 마련할까 합니다. 스님, 안녕하십니까?
스님 : 예, 안녕하십니까?
진행자 : 공기 맑은 수덕사에 계시다가 답답한 스튜디오에 들어오시니까 기분이 어떠세요?
스님 : 글쎄요, 이런 곳이 있으니까 공기 맑은 곳도 있는 게 아닐까요? 공기 맑은 곳의 기운을 이런 곳에서 나누는 것도 보람 있는 일일 테고요.
진행자 : 과연 스님다우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서울에는 자주 오십니까?
스님 : 가끔 일 때문에 들릅니다.
진행자 : 수덕사 하면 저희들에게 아주 친근하고 늘 대하는 절 같은데요, 그런데 저는 근처는 몇 번 지나갔지만 가보진 못했습니다.
스님 : 그래요? 언제 한번 들러보세요. 사실 수덕사는 한국불교의 기둥 같은 절 가운데 하나입니다. 어떤 경우든 빼놓을 수 없는 절이죠. 한국불교의 법맥을 계계승승한 그런 도량입니다. 특히 근‧현대 한국 선불교의 중흥 도량이기도 합니다.
진행자 : 스님께서는 인연이 깊으신 모양이에요. 오래 계셨죠?
스님 : 한 30년 넘게 살았습니다.
진행자 : 와, 인연이 깊은 곳이네요.
스님 : 그렇죠. 입산해서 오늘까지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진행자 : 그런데 저희는 수덕사 하면 비구니 도량 같은 인상을 먼저 받게 되거든요.
스님 : 글쎄요. 흔히 수덕사 하면 여승이 있는 곳이 아니겠느냐 하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한국 근대 여류문인이었던 김일엽 스님이 불문에 귀의한 곳이어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래서 약간 오해가 됐을 뿐이지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진행자 : 네, 그렇군요. 스님께서 삼십 여 년 동안 계셨으니까 수덕사에 관해 저희들에게 해주실 말씀이 많을 것 같은데요.
스님 : 글쎄요. 어떤 얘기부터 시작할까요?
진행자 : 언제 생긴 절입니까. 역사는 어떻게 되지요?
스님 : 초창은 백제 침류왕 2년 때라고 구전됩니다. 문헌상으로는 조금 다릅니다만, 인도승 마라난타라가 한국에 불교를 전하러 왔다가 제방을 다 다녀보고 가장 좋은 터로 수덕사 대웅전 자리를 잡았다고 합니다. 따라서 수덕사는 백제불교의 전당일 뿐만 아니라 한국불교를 오늘의 위상으로 다진 곳이라 해도 크게 허물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진행자 : 네, 그 수덕사는 역사도 깊지만 거쳐 가신 스님 중에서 저희가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훌륭하신 분들이 많으시죠?
스님 : 그렇습니다. 수덕사를 거쳐 가신 스님들을 전부 거명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한국 근대 선불교의 중흥조로 칭송되는 경허스님이라든가, 경허스님의 법제자인 만공스님, 그 뒤를 이은 한암스님, 그 다음으로 금오스님 같은 근대 최고의 선지식들을 떠올릴 수 있겠지요. 뿐만 아니라 충선스님, 혜암스님, 벽초스님, 손(孫)경산스님, 청담스님 등 현대 한국불교의 중심에서 법맥을 계승하셨던 분들 가운데 수덕사를 거쳐 가지 않으신 분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한국불교의 종가라고들 얘기하는 겁니다.
진행자 : 그렇게 된 데는 빼어난 어떤 매력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절집의 매력이라면 스님들이 거처하시기에, 공부하시기에, 수행하시기에 아주 좋은 도량을 의미하는 것이겠지요?
스님 : 그렇게 봐야겠지요. 우리가 흔히들 하는 얘기가 있지 않습니까. ‘얼굴만 예쁘다고 여자냐,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 하는 말처럼, 밖으로 노출되어 있는 어떤 형상이 아니라 그 내면에 존재해 있는 불교의 본질, 이를테면 선(禪)의 기개가 도저한 곳이 바로 수덕사입니다.
진행자 : 네, 그렇군요.
스님 : 흔히 선가(禪家)에서 삼하결재, 삼동결재라고 해서 겨울안거, 여름안거 이렇게 삼개월씩 정진을 하고 있습니다만, 수덕사는 열두 달 삼백육십오일 정진하는 그런 도량이에요. 다시 말해 상주 선방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오로지 부처님의 마음을 계승하는 그런 도량입니다. 아주 특별한 도량이죠.
진행자 : 네, 특히 스님께서는 30년 넘게 계셨으니까 누구보다도 깊은 애정과 자부심을 느끼시는 것 같습니다.
스님 : 글쎄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중은 어디를 가든 삼일을 머물지 말라고 하셨거든요. 그런데 저는 한 30년을 살았으니까, 부처님 말씀에 크게 역행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런데 제가 그 도량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이라고 하는 불자로서의 근본 사명 때문이에요. 먼저 나 자신부터 깨달음을 얻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래야 교화를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 하는 것이지요. 한번도 그 생각에서 떠나본 적이 없어요. 차를 타고 돌아다녀도 그 생각만큼은 오로지 하지요. 수덕산문에는 이런 정신이 면면히 흐르고 있어요. 거기에 매료가 돼서 붙박이로 살고 말았습니다.
진행자 : 수덕사에 흐르고 있는 그런 정신의 핵을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요?
법장스님 : 핵이라? 글쎄요, 부처님 말씀을 이리저리 해석해서 군더더기를 붙이면 별 맛이 없지만, 굳이 말을 하자면 ‘부처님 마음’이겠지요. 그러면 그 마음이 뭐냐, 도대체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그 마음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이 몸뚱이는 생사(生死)가 있지만 그 마음이라는 것은 생사가 없다고 하는데, 도대체 그것이 무엇이냐. 이것 하나만 깨닫는다고 한다면 천하를 얻는 것보다 더 값진 일일 텐데… 설령 제가 여기서 그것을 표현한다 치더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모르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지요.
진행자 : 그렇지요.
스님 :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진행자 : 그런데 스님께서 부처님의 마음이 그곳에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시고 떠나지 못하시는 거나, 저희들 같은 일반인이나 재가불자들이 자주 수덕사를 찾는 것이나 크게 다를 것이 없을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모두들 부처님의 마음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요.
법장스님 : 신심이 충만하다면 당연히 느끼겠지요. 그런데 같은 꽃을 보고도 향기를 느끼는 사람과 그러지 못하는 사람이 있듯이, 신심을 가지고 온 사람들은 느낄 것이고, 신심을 가지고 오지 않는 사람은 극장 구경하듯 겉만 보고 가겠지요.
진행자 : 그렇겠지요. 그런데 스님께서 요즘 가장 주력하시는 일은 어떤 것입니까?
스님 : 우선 수덕사의 가람 수호와 대중 수발이지요, 주지라는 소임이 그런 겁니다. 그런 한편 사무치게 제가 하고자 하는 일은 어린이불교와 거사불교의 활성화입니다. 왜냐하면 어린이불교는 ‘부처님의 종자를 심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종자를 심어야 가을에 딸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어린이불교에 최대의 관심을 기울이는 겁니다. 또 거사불교 운동을 하는 이유는, 흔히 불교의 생활화와 현대화를 얘기하지만 거사불교가 활성화되지 않고서는 생활불교나 현대불교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진행자 : 거사불교의 의미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신다면요?
스님 : 아주 쉽게 말하자면, 보살님들이 절에 오는 것도 거사들이 반대하면 불가능합니다. 그렇지만 거사불교가 활성화되면 보살도 그 딸도, 아들도, 손자 손녀도 모두 함께 절에 올 수 있다는 얘기예요. 그렇지 않으면 보살불교, 다시 말해서 시쳇말로 ‘치마불교’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생활불교를 정착시키려면 거사불교를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겁니다. 이런 것을 중점적으로 주지 소임을 수행하려고 합니다.
진행자 : 참으로 공감이 되는 말씀입니다. 제가 듣기로는 스님께서 수덕사 주지로 부임하시기 전에 서산 서광사에서 어린이불교에 관심을 가지시고 어린이 전용 불교회관도 세우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미 어린이불교의 기초를 다지시고 실천하셨는데, 수덕사에서도 그 일을 이어나가시겠다는 말씀이시군요.
스님 : 그렇습니다. 제가 서산에서 유치원을 시작한 것도 그런 차원에서였어요. 그래서 200평 건물에다 유치원 세 반과 어린이 독서 놀이방을 갖추었지요. 놀이터는 한 800평 정도 됩니다. 거기에는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미니 동물원도 만들었어요. 마당에 해수관음상도 세우고, 분수도 만들고 했지요.
진행자 : 그야말로 꿈의 동산을 꾸며놓고 오셨네요.
스님 : 충남에서는 가장 우수한 유치원으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다른 유치원도 그렇게 해야겠다는 얘기가 충남 교육계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진행자 : 조기 교육이 중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종교 교육도 역시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된다는 생각이 절실해지는데요.
스님 : 그렇습니다. ‘뿌린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어린이 불자를 키우지 아니하면 참된 성인 불자도 나올 수 없는 거예요. 만약 성인 불자의 수만 늘리겠다는 것은 훔쳐오는 거와 같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씨를 뿌리고 가꿔야만 열매도 진정한 우리의 것이 아니겠어요? 한국불교가 다시 한 번 과거처럼 흥성하려면 어린이불교의 활성화에 진력해야 합니다.
진행자 : 그래서 서산에서도 씨앗을 뿌리셨는데, 수덕사에서도 이제 곧 시작을 하시겠네요.
스님 : 수덕사에서는 명년부터 본‧말사에서 군 단위로 유치원 하나씩 세우는 일을 전개할 계획입니다. 일차적으로 올해는 예산 향천사에 250평 어린이회관을 착공했고 연내에 끝냅니다. 한 네 반 정도 규모로 유치원을 열 계획이고요. 수덕사에서는 올 여름에 여름 어린이불교 캠프를 열었습니다.
진행자 : 네, 벌써 상당히 진척을 시키셨군요.
스님 : 한 400명이 여름 불교 캠프를 다녀갔습니다. 주로 서울과 대전을 비롯한 충남권에 사는 어린이들이 참가를 했는데, 아주 잘했다는 칭찬도 받았습니다.
진행자 : 일정은 어느 정도입니까?
스님 : 3박 4일이었어요.
진행자 : 3박 4일을 지내고 나면 뭔가 조금 달라져서 가나요?
스님 : 그럼요. 절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애들이 스님네를 보면 자연스럽게 합장할 줄도 압니다. 그뿐이 아니에요. 무엇인지 제대로 모르지만 합장하고서 ‘성불하십시오.’ 하고 말하기도 하는걸요. 또 어린이들이 캠프를 하는 동안 부모들이 다녀가는 경우도 있었어요. 이런 사례로 미뤄볼 때 어린이가 불자가 됨으로써 엄마 아빠도 불문에 들어오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굉장히 보람 있는 일입니다.
진행자 : 그런데 사실 거사불교나 어린이불교 활성화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시면서도 실천의 장으로 들어가면 아주 미진한 것 같은데요, 실상은 어떻습니까?
스님 : 많이 부족하지요. 그래서 지금 제가 계획하고 있는 것이 10월 15일부터 거사불교 교양대학을 개설할 계획으로 지금 한창 준비 중입니다. 전부 거사들로만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선(禪)에 대해서는 방장스님이 하시고, 교리는 유능한 강사들을 초빙할 계획이에요. 그래서 그분들한테 지금까지 본인들이 생각하고 있던 그런 불교가 아니라 진실로 알맹이가 있고 맛이 있는 그런 불교를 체득하게 할 겁니다. 누구나 그 맛을 보면, 참으로 멋있고 아름다운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힘이 불교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할 겁니다.
진행자 : 스님 말씀 듣고 보면 우리 불교의 미래가 굉장히 희망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스님 : 희망적이라기보다는 윤회라는 표현을 쓰고 싶군요. 과거에 불교가 성했다가 이어서 유교가 성했다가 예수교가 성했다면, 이제는 불교가 다시 성할 시기가 아닌가 하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대의 흐름과 요구가 그래요. 아마 미래에는 누구나 다 부처님의 세계에서 살지 않으면 인류의 미래가 암울해질 것이라는 자각으로 불교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진행자 : 스님께서 이렇게 어린이 포교라든가 거사불교를 일으키시면 가족법회 같은 것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스님 : 그런 것이 함께 이뤄지려면 첫째 조건으로 거사불교가 일어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신도님들을 만날 때마다 ‘꼭 절에 올 때는 부부와 가족이 함께 오세요.’ ‘어린애가 있으면 업고 안고 오세요.’ 하고 말합니다. 걔네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지만 부처님 도량에 한번 거쳐 가는 인연만으로도 장한 부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는 씨앗을 심는 것입니다.
진행자 : 그렇군요. 앞으로 잘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잠깐 화제를 바꾸어 보겠습니다. 요즘 하루 일과는 어떠신지요?
스님 : 뭐 특별할 건 없습니다. 대중의 심부름꾼이니까 심부름 열심히 하는 것이지요. 주지 자리는 결코 권좌가 아닙니다. 불문에 들어올 때부터 지금까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소임을 보고 있습니다. 대중 스님들이 오로지 정진만 할 수 있도록 제가 수족이 되서 보필해 주어야 되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때에 따라서는 도량석도 제가 합니다. 새벽 도량석 하고, 예불하고, 30분간 정진하고, 그 다음에 전 대중과 함께 도량 청소하고, 대중공양 한 다음에 업무에 들어가죠. 오후에는 거의 업무에 전념하고, 취침 전에 정진 30분 하는 것이 일상이지요.
진행자 : 그럼 이번에는 출가 이후 가장 큰 가르침을 준 스승에 관한 말씀을 여쭈어 보겠습니다.
스님 : 당연히 은사스님이시지요. 은사스님께서는 항상 제게 “신심을 오로지 하는 것이야말로 정진이다.”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이런 자리에서도 그 생각을 버려본 적이 없습니다. 사무실에 앉아서도 그렇고, 일반인과 대화를 하면서도 그렇고, 오가는 도중에도 그렇고. 옛 성인들도 얘기 했습니다만, ‘행주좌와 어묵동정(行住坐臥 語黙動靜) 모두가 선불장(選佛場)이요 판도방(判道房)’입니다. 일상의 일거수일투족이 ‘부처를 고르는 마당이요 도를 판단하는 방’이라는 얘깁니다. 자신이 머무는 곳이 바로 선방인 것입니다. 한 생각 일으키면 화장실에 앉아도 그곳이 바로 선방이 아니겠느냐 하는 생각으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 은사스님이 누구신지 궁금해지는데요?
스님 : 익히 알고 계시는 분들이 많을 텐데요, 현재 수덕사 방장이신 ‘원’자 ‘담’자 스님이십니다. 만공스님을 열세 살 때부터 시봉하셨고, 열반 때까지 곁에서 모신 분이시죠. 만공스님의 가르침을 아주 깊이 받으신 분입니다. 불가의 항렬로 치면 만공스님의 손상좌입니다만, 법제자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진행자 : 은사스님께서 주신 가르침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라든가, 에피소드 같은 게 있으시면 좀 전해주시지요. 저희들은 늘 가까이 대할 수가 없으니까 이런 기회에 간접적으로라도 가르침을 구하고 싶습니다.
스님 :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은사스님께서는 항상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라. 만약 조금이라도 마음에 거리낌이 있다거나,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생각을 가지고 일을 한다면 그것은 네 일이 아니라 남의 일이다. 머슴살이가 아니라 주인으로 일을 하라.’고 하시지요. 사실 직장인 중에 ‘어차피 남의 일 하는 거 적당히 일하고 월급이나 타면 되지.’ 하고 생각하시는 사람들이 드물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해서는 회사에도 자신에게도 도움이 될 수 없지요. 조금 전에 말씀드린 은사스님의 가르침은 생활인들에게도 삶의 지침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진행자 : 엄하신 편인가요? 어떠신가요?
스님 : 엄하시진 않습니다. 아주 자유로운 분이시지만 가르침은 아주 무섭습니다. 허튼 행동은 털끝만큼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진행자 : 처음 불가에 입문하셨을 때를 돌이켜보신다면, 현재와 특별히 달라진 점은 없으십니까?
스님 : 글쎄요. 입산 이후 오늘까지 한번도 이 길을 후회했다든가, 길을 잘못 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은 조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진행자 : 공부하던 얘기 좀 해주시죠?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였습니까?
스님 : 군대 갔다 와서 천일기도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제가 부처님과 은사스님은 물론 대중들한테 아주 죄스런 일을 저지른 적이 있어요. 그때 깜빡 늦잠을 자고 말았어요. 새벽에 목탁 소리를 듣고 퍼뜩 깨보니까 은사스님께서 도량석을 하고 계시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느낌이에요. 그 뒤로는 삼 년 동안 기도하면서 한 번도 늦어본 적이 없었어요. 화엄경에 “약인욕료지(若人欲了知) 삼세일체불(三世一切佛)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사구게가 있습니다. 만약 과거 부처님, 현재 부처님, 미래 부처님의 진실한 가르침을 알고자 하면, 마땅히 법계의 본성을 관(觀)하여, 일체는 마음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뜻인데요, 이렇듯 굳건한 신심을 다지면 수행이든 삶이든 별 어려움은 없지 않겠느냐 하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진행자 : 수행 과정에서 가장 기뻤을 때는 언제였습니까?
스님 : 글쎄요, 기뻤다, 깨달았다 하는 것보다도, 제가 정진하는 가운데 묵언을 좀 했어요. 단식도 여러 차례 했고요. 길게 한 단식은 21일이에요. 묵언을 하고 단식을 하면서, 육신에 고통을 주면 무언가 좀 얻을 게 있지 않을까, 사실 이런 생각으로 출발을 했어요. 그런데 막상 묵언과 단식을 끝내고 보니까, 단순히 말을 안 하는 것이 묵언은 아니다, 또 밥을 굶는 것이 단식은 아니다, 말하고 먹고 하는 가운데 능히 그것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단식이요 묵언이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 크게 느낀 바가 있습니다.
진행자 :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스님께서는 여러 가지 수행을 하셨는데요, 재가불자들에게 꼭 필요하고 알맞은 수행법에 대해서 한 말씀 해주신다면요.
스님 : 심신을 오로지 한 실천,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책을 통해 머리로만 알다버리면 실천이 따르질 않습니다. 왜냐, 책으로 다 알았으니까. 그러면 실천할 수 있는 길은 뭐냐, 절을 찾아야 됩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절을 찾아서 기도를 하고 불공만 드리면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경허스님의 일화로 제 말의 진의를 설명 드려 보겠습니다. 경허스님의 어머니께서는 늘 ‘우리 아들이 큰스님이니까, 내가 죽어도 극락 보내줄 거고, 내가 어떤 잘못을 한다 하더라도 나의 죄를 모두 씻어 주리라.’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요. 그래서 경허스님께서는 어머니의 그릇된 믿음을 바꿔줘야 될 텐데,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하루는 당신 어머니하고 겸상을 차려놓고 밥을 먹으면서, “어머니, 오늘은 어머니 진지를 제가 먹지요.” 하고는 어머니의 밥을 당신이 드셨어요. 그러니까 스님 어머니께서 “왜 그래, 내 밥은 내가 먹어야지.” 하고 의아해했단 말이에요. 그 말이 끝나자말자 스님께서는 “제가 밥을 먹으면 어머니도 배부르지 않습니까?” 하고 일축했어요. 그러자 어머니께서 “내가 먹어야 배부르지, 자네가 먹는데 어찌 내 배가 부른가?” 하고 약간 역정을 내셨단 말이에요. 그때서야 스님께서는 “어머니 진지는 어머니가 자셔야 되듯이, 어머니의 수행은 어머니가 해야 합니다. 아들이 수행이 높고 도력이 높다고 어머니의 수행까지 대신해 줄 수는 없습니다. 어머니께서도 꼭 예불하고 기도를 하고 참선을 하십시오.” 하면서 어머니의 생각을 바꿔줬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불자들도 이론으로 불교에 통달하고 팔만대장경을 거꾸로 외고 바로 왼다손 치더라도, 절에 가서 기도하고 염불하고 참선하는 실천을 하지 않으면 진실로 얻을 것은 없다, 하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진행자 : 불교의 가르침은 밖에서 구할 것이 아니라 자기를 돌이켜서 안에서 찾으라는 말씀이신 것 같은데요?
스님 : 그렇습니다.
진행자 : 그렇다면 자기 안의 무엇을 어떻게 찾아야 할는지요?
스님 : 쉬운 예로, 지금 아나운서께서도 연애 시절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고 말한 적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을 한 것은 첫 만남 이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다음일 것입니다. 분명 ‘첫눈에 반했다’는 생각이 먼저였을 겁니다. 그렇다면 그 첫 생각이 무엇이냐는 얘기예요. 그 생각! 그 생각은 영원히 죽지 않는 겁니다. 그 생각을 일으킨 마음을 잘 운전하면 아름답고 좋은 결과가 올 것이고, 만약 그 마음을 잘못 운전하면 불행한 결과가 오는 것입니다. 법구경 진구품(塵垢品)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악생어심(惡生於心) 환자괴형(還自壞形) 여철생구(如鐵生垢) 반식기신(反食其身)”이라. “마음에 악이 생겨 스스로의 몸을 허물어뜨리는 것은, 쇠에서 녹이 생겨나 제 몸을 파먹는 것과 같다.”는 말이에요. 우리는 늘 기쁘고, 좋고, 슬프고, 괴롭고, 미워하고, 사랑하고 하는 마음을 일으킵니다. 만약 몸이 이런 마음을 일으킨다면 송장도 해야 될 것 아니겠어요? 송장 즉 육체가 아닌, 그 속에 들어 있는 것이 무엇이냐! 이것만 잘 살핀다고 할 것 같으면 참으로 멋있는 삶을 살 수 있죠. 그것을 사무치게 깨달아 알면 그것이 곧 해탈입니다.
진행자 : 네, 참으로 깊이 새겨야 할 말씀인 것 같습니다. 스님과 이렇게 얘기를 나누다 보니까 시간 가는 줄 모르겠는데, 벌써 약속된 시간이 다 됐습니다. 끝으로 저희 불교방송 ‘무명을 밝히고’ 애청자 여러분들에게 인사 말씀 해주시는 걸로 마무리를 할까 합니다. 자주 좀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스님 : 예, 감사합니다. 아무튼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행복일 겁니다. 불가의 말로 하자면 성불이니 해탈이니 열반이니 하는 말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서 밤늦도록 땀을 흘리면서 일을 하는 것도 행복을 위한 것이요, 권자에 오르고 처자식을 부양하는 것도 행복을 위한 것입니다. 한편 누군가를 미워하고, 시기하고, 모략하는 것도 행복을 추구하는 과정에 생기는 겁니다. 그러나 진정한 행복은 수시로 변화하는 마음 가운데 있지 않습니다. 그 마음 이전의 참마음, ‘너의 괴로움이 바로 나의 괴로움’이라는 것을 통찰한 부처님의 마음으로 화합하고 인내하면서 사는 것이 행복의 문에 들어가는 길입니다. 욕심으로 행복을 추구하면 영원히 기갈을 면할 날이 없습니다.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에 만족을 느끼는 것이 행복한 삶의 길입니다. 우리 다 같이 열심히 일하고 그것에서 만족을 느끼는 그런 삶을 살아갑시다.
진행자 : 스님, 귀한 말씀 감사드립니다.
스님 : 예, 감사합니다.
진행자 : 수덕사 주지이신 법장스님과의 시간, 소중한 만남의 시간이었으리라 믿습니다. 행복의 문에 들어가기 위한 삶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현실에 만족하는 것이라는 스님 말씀 다시 되새겨 봅니다. 모두들 행복한 삶을 누리셨으면 참 좋겠습니다. 잠시 후 저녁예불에도 기쁜 마음으로 동참하시길 바라면서 내일 오후 6시에 찾아뵙겠습니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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