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달픈 피난행열과 1951년 1.4후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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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 7. 29. 안동군민들의 피난 행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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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1. 1. 9. 강릉, 1. 4 후퇴로 눈길에 다시 피난을 떠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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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1. 4. 23. 중공군 춘계대공세로 다시 피난길에 오른 사람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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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1. 6. 27. 다리 부상으로 소를 타고 피난길에 나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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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1. 7. 4. 철원, 군 트럭에 실려 피난을 떠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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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1. 7. 19. 강원도 화천, 감자를 캐는 화전민 사람들을 수용소로 데려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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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1. 9. 11. 경기도 동두천, 군인들의 통제 아래 피난민들이 이동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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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1. 8. 20. 마곡리, 한 소년이 소를 몰고 피난길을 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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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 8. 20. 경북 어느 지역, 아이를 업고 머리에는 가재도구를 이고 있는 여인은 내 고모 아니면 이모일지도. "같이 갑세" "퍼뜩 안 오고 머하노. 쌕쌕이가 벼락친데이. 싸게싸게 따라 오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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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 8. 23. 경남 함안, 기차를 타기 위해 늘어선 피난민들. 할아버지 등에는 온갖 가재도구가 짊어져 있고, 오른 손아귀에는 손자가 잡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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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 8. 23. 경남 함안, 기차표를 사고자 늘어선 피난민들로 남녀노소없이 피난 봇짐을 이고 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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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 8. 23. 경남 함안, 언제 올지 모르는 기차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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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 8. 24. 경북 낙동강 유역, 꼭 필자의 고향(구미) 마을 같다. 온갖 가재도구를 머리에 이거나 등에 진 피난민 행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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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 8. 24. 경북 낙동강 유역, 뙤약볕 속의 피난 길. 어데로 가야 목숨을 부지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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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 8. 24. 경북 왜관 부근. "피난 간 새 지발 집이나 무사해야 할 건데..." 뒤돌아 보고 또 돌아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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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 8. 24. 경북 낙동강 유역, "할배, 어데 갑니까?" "나 집에 간다." "못 갑니다." "와! 나 죽어도 내 집에서 죽을란다. 어이 비켜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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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 8. 25. 장소 미상, 기총소사에 쓰러진 피난민들. "이렇게 객사할 바에야 차라리 집에서 죽을 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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