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실/慶州金氏

경주김씨 계림군파 8-6 왕조진입과 왕권확립

淸潭 2008. 2. 6. 17:23

6.김씨의 왕조진입과 왕권확립 시기

 

대보공 탄생설화에는 7세손 미추대왕이 왕위에 오르는 이야기에서 끝난다.
신라의 제 13대 미추대왕은 대보공의 6세손 구도공의 세 아들 중 장남이며 그 나머지 두 아들의 후손도 뒤에 왕이 되었고 결국은 구도공 소생의 아들고 그 후손이 모두 왕위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이는 대보공으로부터 2백여 년이 지나 6세손에 이르러서 김씨의 세력이 크게 번창했음을 말해 준다.
당시의 신라는 강력한 골품제도로 성골이 아니면 왕이 될 수 없었으나 1백여 년이 지나 냇물대왕부터 김씨의 왕위세습이 이루어졌고, 후대인 654년에 이르러서는 진골도 왕위를 잇게 되니 세습왕조의 터전이 확고하게 마련되었다.
신라을 건국한 박혁거세로부터 3대가 박씨, 4대가 석씨인 탈해왕 때에 천지의 서기를 입어 김씨의 시조이신 대보공께서 세상에 나시고 5대 파사왕에서 8대 아달라대왕까지 박씨가 나라를 다스렸고, 9대 벌휴대왕에서 12대 첨해대왕까지 왕위를 계승했다.
마침내 262년 김씨가 왕위에 오르니 대보공이 세상에 출현하고 2백여 년만의 일이다.
신라 13대 미추대왕은 대보공의 7세손이며 6세손 구도의 장자로 어머니는 박씨 갈문왕의 따님이며 왕비는 11대 조분대왕의 따님인 광명부인 석씨였다. 보위는 22년이었다.
그로부터 14대 왕에서 3대에 걸쳐 다시 석씨가 왕위를 이엇고, 356년 17대 냇물대왕부터 세습왕조로서 왕권확립기에 들어섰다.
이후는 신라왕조의 마지막 왕인 경순대왕 바로 이전의 3대를 빼고는 김씨 왕조가 신라의 역사를 주도하였다.
신라는 박씨가 나라를 일으켜 석씨와 함께 기반을 닦고 김씨의 손에 의해 민족사 발전은 물론 찬란한 민족문화의 업적을 동방에 꽃피우게 했던 것이다.
세계사에서 볼 때 암흑기의 전반부에 속하는 5, 6세기에 유독 지구 동쪽의 조그마한 국토를 차지한 우리 김씨왕조는 민족혼의 기개를 세계에 드높혔다.
뿐만 아니라 동방문화의 햇불이 이 땅 위에서 한껏 타오르게 할 수 있는 민족의 저력을 창출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