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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바닥을 긁어내면 강이 죽는다

淸潭 2008. 1. 15. 21:24

강바닥을 긁어내면 강이 죽는다

 

[한겨레] 운하 공사가 초래할 환경 재앙…최악의 시나리오는 선박 사고

▣ 안병옥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ahnbo@kfem.or.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운하라고 하니까 생땅을 파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있는 강을 그냥 연결해서 강을 이용하는 것에 불과하다. ” 생태계 파괴 논란을 의식해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쪽이 내놓는 주장이다. 이 말만 들으면 운하를 만드는 것이 고속도로 건설에 견줘 손쉽고 단순할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과연 그런가? 남한강과 낙동강의 물길을 그냥 잇기만 하면 5천t급 대형 컨테이너선을 띄울 수 있을까? 무겁고 긴 컨테이너선과 바지선이 다닐 수 있게 하려면 구부러진 물길을 직선으로 펴고 강바닥을 깊이 파내야 한다.

이 당선인의 계획대로라면 사업비 절반인 8조3천여억원을 충당하기 위해 낙동강과 남한강 바닥의 골재를 모조리 긁어내야 한다. 모래층이 얕은 곳은 단단한 암반층 굴착도 불가피하다.

철새들이 보금자리, 습지가 사라진다

말 그대로 ‘생땅’을 파는 난공사도 있다. 남한강과 낙동강 사이에 40km 길이의 인공수로와 터널을 뚫어야 하기 때문이다. 터널과 인공수로를 합한 길이는 서울에서 수원까지의 거리다. 트럭으로 실어날라야 하는 토사량만 어림잡아 고속도로 10개를 만드는 공사와 맞먹는다.

운하 찬성론자들은 고속도로보다 운하가 친환경적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운하도 운하 나름이다. 지금 계획하고 있는 운하는 폭이 몇 m에 불과한 작은 보트용 운하가 아니다. 낙동강과 남한강 본류에는 너비가 1km가 넘는 구간이 수두룩하다. 상상해보라. 고속도로 30개 너비의 강바닥을 500km에 걸쳐 아파트 2층 높이와 맞먹는 깊이로 남김없이 긁어내는 모습을.

운하 건설은 하천 생태계를 가장 근본적으로 파괴하는 사업에 속한다. 앞서도 말했듯 무겁고 긴 배가 운항할 수 있도록 뱃길을 내려면 구부러진 물길을 직선으로 펴고 강바닥을 깊이 파내야 한다. 또 홍수 때 상류에서 내려와 강바닥에 쌓인 자갈이나 모래를 치우기 위해 매년 강바닥을 긁어내야 한다. 대규모 선박들이 운항하면서 형성되는 파랑도 문제다. 파랑에 의해 운하 가장자리가 침식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수로 가장자리와 바닥에 큰 돌을 쏟아붓거나 시멘트를 발라야 한다.

갑문 하류 구간에서는 수로 굴착으로 지하수위가 낮아져 수변 습지가 파괴되고 많은 동식물의 보금자리가 사라지게 된다. 낙동강 중류 지역은 4만 평에 이르는 넓은 하천 유역과 모래언덕이 발달해 철새들이 긴 여행을 하다 잠시 쉬어가는 곳이다. 특히 구미 해평습지와 대구 달성습지는 봄·가을철 시베리아와 중국 북부 등에서 날아온 두루미, 오리, 기러기 떼가 며칠씩 묵어가는 대표적인 중간 쉼터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 운하를 만들면 낙동강 허리의 대표적인 철새 도래지가 사라진다. 인공 갈대습지를 조성하면 된다고 주장하지만 진품을 없애고 짝퉁을 만들어야 할 이유가 없다.

갑문 상류 구간도 문제다. 수위가 높아짐에 따라 지하수위가 증가하고 침수 위험이 높아진다. 19개에 달하는 주운댐이 건설되면 운하는 댐과 댐을 연결하는 저수지로 변한다. 물의 정체시간이 늘어나 오염물질이 바닥으로 가라앉아 부영양화가 초래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갈수기에는 산소 농도의 감소로 식물성 플랑크톤과 깔따구의 대량 증식이 일상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 주운댐은 안개를 발생시켜 일조량과 일조시간의 감소를 가져온다. 이는 인접 농경지의 피해로 이어진다.

화학물질 흘러나오는 순간 상수원 폐쇄

이명박 당선인 쪽은 보가 건설된다고 물 흐름이 멈추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물을 가두어 체류시간이 길어지면 결국 저수지 효과가 나타난다. 시화호, 새만금, 낙동강 하구까지 거론할 필요도 없다. 전국에 산재한 거의 모든 인공호들이 녹조류나 남조류 대량 증식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강바닥을 긁어내면 수질이 좋아진다는 주장도 근거가 없다. 오랜 기간 바닥에 쌓인 모래와 자갈은 강이 자정능력을 갖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다. 또 물고기들의 산란 장소로 이용돼 생태계를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준설은 백약이 무효일 때나 사용하는 최후의 수단이다. 상수원에서 퇴적물을 준설한 사례는 국내외를 통틀어 발견하기 어렵다. 수질개선 효과가 미미할 뿐 아니라 오히려 오염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해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팔당호로 유입되는 경안천을 준설하려다 중단한 이유이기도 하다.

낙동강 수질오염의 주범은 모래와 자갈이 아니다. 낙동강 수질을 악화시키는 주범이 중·상류 공단들에서 나온 산업폐수라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안다. 진정 낙동강 수질을 개선하려는 사람이라면, 무턱대고 준설을 하자고 해선 안 된다. 낙동강 주변 농경지에서 강으로 흘러드는 인과 질소 문제부터 해결하는 것이 순서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선박 사고다. 사고로 배에서 기름이나 화학물질이 유출되면 상수원을 아예 폐쇄해야 하는 국가 재난사태가 올 수 있다. 독일에서도 라인강과 다뉴브강에서만 한 해 수십 건에서 400건까지 선박사고가 발생한다. 이 과정에서 흘러드는 오염물질의 양이 연간 200t에 달한다. 하지만 독일은 83%의 취수원이 지하수다. 사고가 터져 독성물질이 하천에 유입돼도 식수 공급에는 문제가 없다.

우리는 전체 취수량의 약 88%를 하천과 호수에 의존한다. 선박 사고로 화학물질이 흘러나오는 순간 상수원을 폐쇄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운하 건설은 마실 물 포기를 뜻할 수 있다.

이런 점을 의식해서일까. 최근 이 당선인 쪽에서는 운하 물을 직접 취수하지 않고 강변 여과 방식을 도입하면 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취수 지점을 북한강 유입 지점으로 옮기자는 주장도 들린다. 하지만 이런 주장들은 모두 비현실적인 것으로 판명된 것이다. 한강과 낙동강에서 강변 여과 방식은 천문학적인 비용도 문제지만 취수량이 많지 않아 현실성이 없다. 취수 지점을 북한강 유입 지점으로 옮기는 것 역시 문제다. 충분한 취수량을 확보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두 방식을 합쳐도 기껏해야 서울과 부산 시민들에게 하루에 공급해야 하는 취수량 480만t의 30%에 불과하다는 게 이 분야 전문가들의 견해다.

지구온난화를 막는다고?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운하를 만든다는 주장도 현실을 모르는 이야기다. 최근 지구온난화의 4%가 물을 가두어놓은 댐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 물을 가두게 되면 물에 잠기는 식물과 상류에서 흘러들어온 유기물질이 부패하게 된다. 1차 부패가 끝나면 바닥에 가라앉은 식물 잔해가 산소가 부족한 상태에서 분해되면서 메탄을 생성한다.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지구온난화 영향력이 21배나 큰 온실가스다.

유럽의 실증적인 조사에 따르면, 운하운송은 철도운송보다 이산화탄소(CO₂)를 2.5배, 질소산화물(NOx)은 19배나 많이 배출한다. 심지어 운하를 운행하는 선박들이 화물트럭보다 오염기여도가 높은 항목들도 있다. 네덜란드의 내륙수로정보국은 선박이 이산화황(SO₂)과 미세먼지를 화물트럭보다 더 많이 배출한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