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득종(高得宗) :( 1388∼1452)
자는 子傳, 호는 靈谷, 본관은 濟州.
上將軍 鳳智의 아들로 태종 13년(1413)에 효행으로
直長에 천거되고, 이듬해 謁聖文科에 급제하였으며.
세종 9년(1427)에는 文科重試에 급제하였다.
세종 19년(1437)에 僉知中樞院事가 되고,
이듬해에 管押使로 명나라에 다녀왔고,
세종 21년(1439)에는 通信使로 일본에 파견되어
일본 천황의 書契를 가져왔다.
세종 23년(1441) 聖節使로 명나라에 갔을 때,
사사로이 藥材를 구하고 李滿住, 童凡察의 처리를
요구한 일 때문에 귀국하여 江陰縣에 유배되었다가
2년뒤에 풀려나 同知中樞院事, 漢城府判尹 등을 지냈고,
세종 30년(1448)에는 都轉運使가 되어
양곡의 漕運에 힘썼다.
문장과 서예에 뛰어났다. 시호는 文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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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돌보시어 동쪽 나라에 성명(聖明)한 임금께서 보위에 오르시니
오오! 위대할 손 신령스런 오얏나무 서린 뿌리가 깊기도 하네.
금가지 옥잎 같은 자손들이 번창하고 또 빼어나니
위대하고도 공경스런 이 덕에 대한 예찬들이여!
편안하게 즐기시는 안평대군께선
사람들에게 바람처럼 미치는 덕이 있어 모든 사람들이 흠모하네
참된 마음으로 자신을 닦아 마음이 거울 같으시니
티끌 하나라도 어찌 범할 수 있으랴.
대궐 안에서 임금님 가까이에서 모시다가 퇴청하여 여유가 있을 때
경전을 토론하고 유생들을 불러들였네.
아정(雅正)한 생각은 표표히 인간 세상 밖으로 뛰어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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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다란 의기는 구름을 헤치듯이 화려한 생활도 마다하네
마음속으로 매화와 대의 맑음을 특히 아끼어
梅竹을 취하여 軒의 이름으로 삼으니 마음에 깃든 생각도 서늘하네.
밤낮으로 게으르지 않아 늘 쉬지 않고 힘쓰니
물시계 소리 울리는 가운데 은촛대의 불도 다해 가네.
우연히 쉬다가 잠시 잠 속으로 빠져드니
황홀하게 정신은 넓다란 은하수 사이를 노니네.
문사들과 손을 잡고 험한 산길을 찾으니,
도원으로 가는 길이 그대로 신선이 사는 고장과 통해 있네.
강물 줄기는 스스로 파도를 일으키니 배 홀로 뒤뚱거리고
비취빛 나는 하늘은 첩첩 산봉우리를 에워싸고 있네.
고개을 돌려보니 하늘만 넓고 푸르고 사람 하나 없는데
복숭아나무 숲 햇볕에 마냥 화사하기만 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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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꽃봉오리와 푸른 잎의 띠풀에 햇빛이 반짝이고
멀고 가까운 곳에 아지랑이 일고 봄볕은 사람을 미혹케 하네.
꿈속에서의 맺음은 그림자가 형체 따르듯
옥으로 만든 베갯머리에서 맑은 境地 계시받았다네.
깨어나니 기쁘게도 무엇을 얻은 듯하여
記를 짓고 그림을 그려서 堂 가운데 걸어 놓았네.
문장과 글씨가 모두 교묘하여 신령스러움이 서려 있는 듯,
이것을 보면 마치 신선이 사는 곳에 오른 듯하네.
도화원이 정말 있는지 없는지 물어나 보세
의론이 분분하여 결론이 나지 않네.
무릉도원 얘기는 어렸을 때 들어도 정말 재미가 있었는데,
황당한 이야기가 지금에 이르도록 지루함이 없다네.
내 듣건대 옛날에 주공이라는 사람이 있어
옆에서 成王을 보좌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한 마음이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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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산에서부터 洛邑에 이르도록 지극한 治道를 넓게 펼치니
찬연한 예악이 끊임없이 전해지누나.
원컨데 게으르지 않으며 더욱 노력할지니
다스리는 방법은 마땅히 선인의 책에서 구하여야 한다오.
신선이 있는지 없는지는 이야기할 만한 것이 못 되나니
세상 다스림에 있어 아무런 공도 없다네.
바라컨대 주공의 충성심을 있는 대로 본받아서
아무쪼록 나라의 앞날이 주나라와 같게 하소서.
원산 고득종 삼가 올림.
<참조>
고득종 선인의 글씨가 잘 보이지 않는 이유는 앞에서도 밝혔었지만
재차 설명하면, [몽유도원도]의 예찬시 중에 맨 앞장에 있었기에
보시는 것처럼 희미하게 변하고 말았음을 밝혀드립니다.
자세히 보시면 그 필체가 뛰어났고, 활달한 기상이 돋보임을
한눈에 알 수가 있습니다.
고득종(高得宗, 1388∼1452)은 제주사람으로 부친의 상을 당하자
제주에서는 처음으로 3년 복제(服制)을 행하여 효자로
알려지게 되었다.
제주에는 고,양,부의 성씨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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