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문학/책 속의 향기

마음껏 사는 삶, 딱 그 만큼의 글과 그림

淸潭 2007. 7. 29. 10:26
마음껏 사는 삶, 딱 그 만큼의 글과 그림
 
기쁨
김점선지음|랜덤하우스코리아|164쪽|1만원
화가인 저자는 지난 4월 난소암 수술을 받고 현재 항암치료 중이다. 암투병 중에도 머리에 수건을 두른 채 씩씩하게 인사동 갤러리를 드나들고 있다. 병석에서 낸 이 시화집엔 병마의 그림자는 조금도 없고, 오히려 살아 있다는 ‘기쁨’이 넘친다. 전화 통화로 들리는 그의 목소리에서도 예전과 달라진 것을 별로 느낄 수 없다. 여전히 유쾌하고 즐겁다.

“아파도 계속 그림 그리고 글 썼어요. 항암제 때문에 머리는 타조새끼처럼 됐는데, 머리카락만 빼면 나머지는 옛날보다 나아요. 예전에는 오히려 바쁘면 끼니도 거르고 했는데, 요즘은 하루 세 끼 꼭꼭 잘 챙겨먹으니까 살이 더 쪘어요. 항암 치료 받으면 메스꺼워 잘 못 먹고 토하는 사람들이 많다는데 나는 그런 증세가 없어요. 의사가 그러는데 1만 명 중 한 명꼴로 나 같은 환자도 있다고 해요. 내 성격상 병을 무서워하지 않아서 그런가 봐요.”

글귀 마다 세상에 대한 놀라움과 환희가 가득하다. ‘…나는 오로지 여름을 기다리면서 산다…바다는 뒤집어 지고, 거리의 먼지가 모두 하수구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헌 집에서는 비가 줄줄 새고, 해진 운동화 속에도 물이 쿨럭쿨럭거리고, 우와 무지 재밌다’(여름하늘), ‘한 무리의 패랭이꽃을 보고는 가슴이 뛰었다… 입꼬리가 확 벌어지면서 올라가고, 세상은 금방 환희로 찬다. 느슨하던 몸이 갑자기 팽팽한 기쁨으로 차오르고’(패랭이꽃)

글 한편마다 하나씩 붙은 그림에서는 건강한 붉은 말, 토실토실한 새, 쭉쭉 자라는 풀과 꽃들이 생명에 대한 기쁨을 노래한다. 그림도 꾸밈이 없고 글도 단순명쾌하다. 저자는 “원래 내 글은 길고 구질한 산문인데 출판사에서 확 줄여버려 시처럼 됐다”고 했다.

전체 71편 중 18편은 최근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쓴 것이다. 병마가 그에게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는 “병 때문에 언니네 집에서 지내면서 비로소 언니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언니가 해 준 음식에서 죽은 엄마의 느낌이 난다”고 했다. 그래서 어릴 때 언니와 함께 보냈던 밤을 떠올리며 쓴 글이 ‘언니’다. ‘언니와 나만 남겨졌다. 깜깜한 밤이 되었다. 나는 울었다. 언니는 그런 나를 달랬다’(언니)

누구나 쓸 수 있을 것처럼 쉬운 글이 가슴 속을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매력이 있다. ‘사람 몸은 속이 비어 있다. 그 속에 쉬지 않고 음식을 넣어야 한다. 피곤할 만큼 부지런히 넣어야 한다’(음식) 같은 글에서 김점선 특유의 ‘야생성’이 느껴진다. 병과 싸우면서도 김점선은 지치지 않았다.

“나는 원래도 내 마음대로 살았지만, 아프고 나니 더 그렇게 살고 싶어졌어요. 정말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도 인생이 짧다는 생각이 드니까”라고 그는 말한다.

이규현 기자 , kyuh@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