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스 헬트 지음|이강서 옮김|효형출판|678쪽|2만5000원
철학의 아버지 탈레스부터 마키아벨리까지 지중해 따라 여행하듯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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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내해(內海), 지중해 동쪽 터키에서 그리스, 이탈리아를 거쳐 스페인에 이르는 여정은 공간의 여행이면서 시간의 답사, 그리고 시공간과 그 속의 인간이 빚어낸 사상흔적의 모색길이다. 물론 유럽의 역사와 철학에 정통한 가이드와 함께라는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다.
‘지중해 철학기행’이라는 이 가슴 설레게 만드는 여행의 안내자는 독일현상학회장을 지낸 독일의 노(老)철학자 헬트교수다. 그는 서양 고대철학과 근대철학을 두루 섭렵했다는 점에서 깊이의 신뢰를 준다. 또 유럽과 아메리카, 일본과 중국 등지에서도 학문활동을 펼쳐 넓이의 안목을 갖고 있다.
이런 멋진 가이드에게 드는 단 하나의 우려는 너무 딱딱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걱정 붙들어 매라!”는 이럴 때 쓰라고 만든 말이다. 철학의 문외한도 얼마든지 따라나설 수 있다.
가이드는 먼저 우리를 오늘날 터키의 서쪽끝 해안의 고대도시들, 밀레토스 에페소스 등으로 이끈다. 밀레토스에서 만나게 되는 철학자는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 3인이다. 철학의 아버지 탈레스의 이름은 어디선가 들어보았을 것이다. 나머지 두 사람의 이름마저 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을 별다른 어려움 겪지 않고 해낼 수 있다는 뜻이다. 에페소스로 가면 헤라클레이토스를 만난다. ‘만물은 변한다’고 했다는 그 철학자다. 이 때 가이드는 자신의 박식을 자랑할 기회를 갖는다. 헤겔 니체 하이데거를 불러내 이들의 헤라클레이토스에 대한 견해들을 비교하고 때로는 비판한다. 이럴 때는 현대철학에 대한 개론서라도 읽어보지 않은 여행객들은 다소 거북함을 느낄지 모른다. 약간 어려운 말들이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의할 필요가 없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독일 철학기행이 아니라 지중해 철학기행이기 때문이다. 건너 뛰면 그만이다.
- ▲ 라파엘로가 그린‘아테네 학당3. 그림의 가운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토론을 하고 있다. /조선일보 DB
그리스인들은 이탈리아 서남부, 즉 나폴리 남쪽에도 식민도시들을 세웠다. 밀레토스나 에페소스도 그리스의 식민도시였다. 나폴리(Napoli)라는 이름도 네아폴리스(Neapolis)라는 그리스말에서 나왔다는 친절한 설명을 듣고나니 ‘신도시’라는 뜻이겠구나 알 수 있다. 나폴리 아래 엘레아, 지금의 벨리아에서는 파르메니데스를 만나게 된다. 제논이 그의 제자다. 두 사람이 합쳐서 ‘엘레아학파’를 창시했다. 이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불신하고 개념을 신봉했다. 눈치빠른 사람은 알아차렸겠지만 플라톤이 바로 이들의 학맥을 계승했다.이제 그리스의 본거지 아테나이로 갈 차례. 그러나 가이드는 뜸을 들이기 위해 델피, 올림피아, 마라톤 등을 빙돌며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 플라톤 등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무래도 가이드는 플라톤보다는 아리스토텔레스를 더 좋아하는 듯하다. 그건 가이드의 자유다. 아테네에서 만난 아리스토텔레스는 논리학의 아버지이고 다시 펠라로 가서 만난 아리스토텔레스는 교육자이자 윤리학의 아버지다.
여행지는 좀 더 서쪽으로 이동한다. 시대는 기원전 4세기에서 서기 6세기 사이로 바뀐다. 로마시대다. 이탈리아와 북아프리카 카르타고를 여러 차례 오가며 스토아철학, 에피쿠로스, 아우구스티누스 등을 만나며 기독교라고 하는 새로운 종교의 등장을 보게 된다. 철학과 신앙의 충돌, 그것은 철학의 쇠퇴로 이어진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인물이 있다. 드물게 이집트 출신인 플로티노스가 그다. 흔히 신플라톤주의의 창시자로 불리는 그 덕분에 여행은 기중해 동쪽끝 알렉산드리아까지 갈 수 있었다. 그가 있었기에 기독교는 그리스철학과 그나마 만날 수 있었는지 모른다.
한참을 쉰 후에 여행은 14세기 피렌체에서 재개한다. 800년 정도 쉰 셈이다. 피렌체를 찾은 이유는 인문주의의 숨결을 다시 느껴보기 위함이다. 600명 정도의 인문주의자들이 이후 ‘근대’라고 부르게 될 정신세계를 만들어냈다는 가이드의 설명이 놀라울 뿐이다. 그들이 뿌린 르네상스의 씨앗은 먼저 이탈리아 도시 곳곳으로 전파됐다. “인간을 위한 예술의 단초를 본 것도 피렌체”였다. 가이드는 3장을 피렌체에 할애할 만큼 피렌체에 애착을 보였다. 하긴 마키아벨리를 만날 수 있는 곳도 피렌체다. “신이 본래 처음부터 세계 안으로 집어넣은 정치질서란 없고, 이 질서는 항상 인간에 의해 창안되고 관철되며 유지된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아니라 권력을 지닌 자만이 이렇게 할 수 있다.” 물론 마지막 문장이야말로 마키아벨리다운 규정이다.
아무래도 정신적 압박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철학여행이여서일까, 여행의 끝은 스페인이다. 지중해 시대에 종지부를 찍은 콜럼버스 항해의 정신적 배경이 되어준 리오 틴토를 잠시 방문한 후 종착지 세비야에 이른다. 비판적이다. 여행과 비판은 원래 어울리지 않는 한쌍이지만 스페인 제국주의의 야만성 앞에 친절한 가이드도 어쩔 수 없었나보다. 지중해 철학기행은 그래서 16세기에 끝났다.
더 읽을 만한 책
예술과 사상을 책이나 음반, 도판으로 즐기는데 그치지 않고 그 위대함이 탄생하고 만들어진 공간에 주목하게 된 것은 우리네 삶에 그만큼 여유가 생겨난 때문일 것이다. 이미 몇년전부터 유럽 박물관 기행이 국내의 여러 저자들에 의해 소개되고 최근에는 오페라, 뮤지컬의 탄생공간을 찾아간 책들은 드물지 않다. 반면 사상의 고향을 답사하고 기행문의 형태로 책을 내는 일은 국내외적으로도 흔치 않은게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사진으로 보는 서양 철학 기행’(이동희 지음 이학사)은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가 직접 카메라를 들고 고대 그리스 철학이 탄생한 미케네, 크레타 등 그리스와 터키의 구석구석을 렌즈에 담아내고 배경이야기를 풀어낸 독보적인 저작이다.
이 박사의 책은 헬트교수의 ‘지중해 철학기행’과 상당 부분 겹치기 때문에 비교해보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무엇보다 신화의 무대까지 다 담아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문학과 철학으로 떠나는 중국문화기행’(양회석 지음 예문서원)은 전남대 중문과 교수인 저자가 중국에서의 학문연구 경험을 바탕으로 중국의 문사철(文史哲)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문학적인 필치로 중국문화의 속살을 드러내 보여준다.
서양이나 동양의 예술과 사상을 시공간 속에서 담아낸 책들이 좀 더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특히 우리의 사상과 예술을 그 땅의 이야기와 함께 그려낸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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