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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뇌는 ‘고속도로’ 남자 뇌는 ‘시골길’

淸潭 2007. 6. 23. 09:31

여자 뇌는 ‘고속도로’ 남자 뇌는 ‘시골길’

 

여자의 뇌, 여자의 발견


루안 브리젠딘 지음|임옥희 옮김|리더스북|280쪽|1만1000원

“당신, 다른 여자 생겼어?” 남편 닉의 얼굴에 긴장감이 스친다. 입가가 미세하게 떨리는가 싶더니 그는 곧 입을 꽉 다문다. 아내 사라가 폭발한다.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닉은 눈물을 쏟는 사라에게 직장의 여자 동료와 사귀고 있다고 털어 놓을 수 밖에 없었다. 닉은 의아해진다. 여자는 세포 하나하나가 무슨 탐지기라도 된단 말인가. 어떻게 눈치챘을까. 닉은 아내가 여자라는 것을, 여자에게는 남자보다 우월한, 육감이란 능력이 있다는 것을 모른다.

닉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또 있다. 10년 세월이 몇 번 흘러도 여자들은 연애시절을 한 편의 영화처럼 생생하게 기억한다. 데이트 때 그가 속삭이던 말, 7년 전 여름 휴가 때 입었던 옷, 처음으로 심하게 다퉜던 일…. 그러나 남자들은 그녀와 섹스를 했는지 안 했는지 만을 기억할 뿐이다. 도대체 왜 남자는 기억을 못 하고 여자는 잊지 못 하는가.

저자 브리젠딘 박사는 “여자의 뇌가 남자와는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여자의 뇌에서 정서를 관장하는 영역들을 연결한 길이 ‘고속도로’라면 남자의 것은 ‘시골길’이다. 그런데 ‘기억 저장소’에 보관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뇌의 ‘편도’가 담당한다. 편도는 정서적 느낌이 강한 기억일수록 확실한 꼬리표를 붙여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게 하는데, 여자의 편도가 미미한 정서적 차이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여자의 육감은 막연한 감정 상태가 아니라 뇌의 특정 부위에 의미를 전달하는 실제 감각이다. 여성 호르몬 에스트로겐은 몸의 감각을 뒤쫓는 세포를 더 많이 만들고, 이를 추적하는 뇌의 영역도 여자가 남자보다 크고 예민하다. 여자의 뇌에는 ‘거울 신경’이 풍부해 말 그대로 타인의 감정을 거울처럼 비춰 읽어낸다. 표정, 어투 같은 사소한 힌트만으로 타인의 생각이나 느낌을 간파할 수 있는 천부적인 능력, 즉 육감을 지닌다. 더구나 여자는 언어와 청각에 관련된 뇌 중추에서 남자보다 11%나 더 많은 신경세포를 갖고 있고, 정서와 기억을 형성하고 유지하는 부분도 더 크다. 반면 남자는 행동과 공격성을 지배하는 뇌중추가 여자에 비해 2.5배 크다.

그러나 임신한 여성의 뇌가 ‘엄마 뇌’로 돌변하는 대목에 이르면 상황이 반전된다. 굴지의 기업에서 최고의 경력을 자랑하던 그녀도 일단 엄마가 되면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뀐다. 집중력이 떨어지고 지적인 대화가 불가능해진다. 임신하면 여자의 뇌가 8% 가량 위축되기 때문이다. 뇌가 정상으로 돌아오려면 출산 후 6∼12개월이 지나야 한다.
 

  • 그렇다면 엄마가 된 여자는 일터에서 열등한 존재가 될 수 밖에 없는 걸까. 저자는 여성이 처한 현실을 냉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남자와) 다르다는 것이 열등하다는 뜻은 아니죠. 어차피 남자와 여자의 DNA는 99% 이상 똑같아요. 하지만 1%의 차이를 무시하고 남녀가 같다고 우기면 궁극적으로 더 큰 상처를 입는 것은 여자들이죠.”

    책은 유년기와 사춘기를 지나 결혼하고, 임신·출산 후 아이를 기르며, 폐경과 노년기를 맞기까지 여성 호르몬의 북소리에 맞춰 여자의 뇌는 어떤 리듬으로 여자의 삶을 이끌어가는지를 차근차근 설명한다. 저자는 이 책을 여성으로서의 삶을 지혜롭게 꾸리기 위한 ‘생물학적 지침서’로 활용하라고 조언한다. 풍부한 임상 사례와 의학적 연구 결과들은 그녀의 주장에 설득력을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