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부처님 마음

[봉축특집] 詩心과 佛心으로 ‘장애’를 뛰어넘다

淸潭 2007. 5. 24. 13:47
  

[봉축특집] 詩心과 佛心으로 ‘장애’를 뛰어넘다

뇌성마비 3급 장애 최명숙 시인

 

‘장애인’으로 세상을 살아가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세계 경제 11위를 차지하는 경제대국으로

급성장한 우리나라도 이에 자유로울 순 없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제반여건은 물론 장애인에 대한 배려심마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많은 장애인들이 좌절과 고통, 원망을 가슴에 품고 하루 하루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하지만 장애라는 굴레를 뛰어넘은 장애인들도 적지 않다. 더 나아가 불편한 신체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자신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하며 자리이타행을 실천하는 장애인에 대한 가슴 뭉클한 이야기가 왕왕 방송과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기도 한다. 지난 19일 장애인 수계법회에서 만난 한국뇌성마비복지회 홍보담당 최명숙(46세, 법명 법련화) 씨도 이같은 사람들 가운데 한명이다.

‘장애를 장점 삼아’ 뇌성마비복지 홍보…매달 1080배 철야정진도

“수행 짧아 작품에 불교 제대로 반영 못해 아쉬워…다음 生엔 꼭”

시와 불교를 통해 장애를 극복하고 있는 뇌성마비 장애인 최명숙 시인.

손과 팔, 얼굴이 불편한 뇌성마비 3급 장애인인 최명숙 씨는 시인이다. 난산(難産)으로 뇌성마비 장애인이 된 최 씨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손과 팔, 얼굴이 움직일 뿐만 아니라 말 한마디를 하기에도 힘겹기만 하다.

최 씨는 이같은 장애를 시와 불교를 통해 극복했다. 최 씨는 지난 1992년 〈시와 비평〉 신인상으로 등단했으며 1988년부터 〈풀잎위에 맺힌 이슬〉과 〈버리지 않아도 소유한 것들은 절로 떠난다〉 등 4권의 시집을 발간했다.

 

동인지 〈시맥〉에도 여러 작품으로 참여했다. 또한 1995년 곰두리문학상 소설부문에 입상했으며 2000년에는 솟대문학 본상을 수상해 장애인 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는 시인이다. 최 씨는 시집 뿐만 아니라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cmsook1009)와 문화일보 장재선의 문학노트 코너 가운데 ‘시인 명숙의 연꽃’ 등을 통해 시와 칼럼 등을 연이어 발표하고 있다. 게다가 최 씨의 시 ‘황금송(松)의 노래’와 ‘흐르는 강물이 되어’ 등은 퓨전 국악 음반 ‘천년송의 노래’와 ‘블루 워터’앨범에 연이어 수록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최 씨의 시는 주로 서정시다. 일상생활이나 여행 등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잔잔한 감동을 시적 언어로써 표현한다. 같은 뜻을 지닌 단어라면 불교적 세계관을 담을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하려고 노력한다. 최 씨의 작품 밑바탕에는 자연스럽게 불교적 소재와 사상이 내재돼 있다.

이에 반해 최 씨의 시에는 장애와 관련된 내용이 거의 없다. 이같은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의아심을 갖기 마련이다. 최 씨 같은 장애인들은 장애와 관련된 시를 많이 쓸 것이라는 섣부른 판단과 선입견을 흔히 갖고 있기 때문이다. 최 씨는 ‘뇌성마비 장애인 시인’으로서 이름이 널리 알려지기보다 다른 일반시인처럼 작품으로 평가받는 시인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오는 연말까지 새로운 시집을 발간하는 등 2년에 1권 씩 시집을 발간한다는 계획도 세워놓고 발간을 서두르고 있다. “장애인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특별함 보다는 평범하지만 소중한 인격을 갖춘 한명의 인간으로 봐 주세요. 그래서 제 작품에는 그저 가만히 있어도 소중하고, 둥글둥글하게 살아가는 일상생활을 다루려고 했어요.”

최 씨는 1991년 9월부터 사단법인 한국뇌성마비복지회에서 홍보업무를 맡고 있다. 상대하기가 여러모로 까다로운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홍보업무는 일반인들도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최 씨는 지난 15년동안 홍보업무와 소식지 제작 소임을 묵묵히 수행해왔다. 난관에 부딪히거나 힘들 때마다 남을 탓하기에 앞서 자신의 부족함을 먼저 질책하고 참회하며 더 열심히 정진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뇌성마비장애인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늘 고마움을 갖고 있다는 최 씨는 ‘장애’가 ‘장해’가 아닌 ‘장점’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장애가 홍보하는데 장해가 많이 됐었죠. 그러나 장애가 어느 순간부터는 강력한 무기가 되더라구요. 뇌성마비를 널리 알리는 소임인 만큼 일반인은 장애인의 세세한 부분에 대해서는 저를 따라 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죠. 일종의 걸어다니는 홍보판이라고 할 수 있답니다.”

최 씨는 매달 한차례씩 봉화 청량사에서 1080배를 할 정도로 불심이 돈독하다. 어머니와 함께 어릴 적부터 절에 다녔던 최 씨는 서울 동덕여고 재학시절 불교학생회 활동을 하며 본격적인 신행활동을 갖게 됐다. 당시 동덕여고 국사교사였던 김재영 청보리회 지도법사로부터 불교를 배웠다. 이후 최 씨는 매일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하루일과를 정리하는 의미에서 108배를 하고, 주말에는 조계사 일요법회에 동참하고 있다. 최 씨와 청량사의 인연은 우연한 기회에서 시작됐다. 4~5년 전, 안동에 사는 장애인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함께 가기로 한 친구로부터 인근에 청량사라는 괜찮은 절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문병에 앞서 청량사를 참배하며 첫인연을 맺었다. 주지 지현스님과 차담을 나눴던 최 씨는 첫만남 이후 3달 뒤부터 지금까지 매달 빠지지 않고 청량사를 찾아가 1080배 철야정진을 하고 있다.

“마음으로는 항상 3000배를 하지만 몸이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아 1080배를 하기도 벅찬 것이 현실이에요. 1080배를 다 마치고 나면 큰 일을 진행하는데 있어 척척 해결할 수 있는 비법같은 큰 힘이 생기더라구요. 또한 막혔던 숙제가 풀리는 듯한 느낌이 들어 매월 한차례씩 빠지지 않고 1080배 철야정진을 하고 있죠.”

최 씨는 자신의 시 속에 불교를 제대로 담아낼 수 있도록 더욱 더 노력하겠다는 원력을 밝히며 1시간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아직 불교공부와 수행이 부족해서 작품속에 불교를 제대로 반영하지는 못해요. 부처님의 가르침을 짧은 시속에 담아내고 싶지만 이번 생에서는 힘들 것 같고 다음 생에서는 꼭 해내도록 지금부터 공덕을 차근차근 쌓아가야죠.”

 박인탁 기자 parkintak@ibulgyo.com

 

 

# 장애인불자모임 ‘보리수회’

 

 “장애인포교 첫걸음은

  잘못된 인식전환부터”

 ‘쌀’보다 사찰 쉽게 갈수 있게…

지난 19일 장애인 수계법회에 동참한 보리수회 회원들.

 

 

“장애인포교의 첫걸음은 그동안 잘못된 장애인에 대한 포교정책과 장애인을 바라보는 사부대중의 잘못된 인식의 전환에서부터 시작돼야 해요.” 지난 19일 조계사 대웅전에서 열린 장애인 수계법회에서 만난 장애인불자모임 ‘보리수회’회원들은 한목소리로 이같이 말했다. 이들은 장애인에 대한 포교정책을 ‘주는 복지포교’에서 ‘더불어 함께 하는 복지포교’로 전환하고, 장애인의 접근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는 사찰의 제반여건에 대한 세심한 배려와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애인의 날이나 부처님오신날이면 의례적으로 쌀 등을 건네주기 보다는 장애인이 보다 편하고 쉽게 사찰을 찾아갈 수 있도록 사찰의 제반여건을 개선하고 장애인과 일반불자들이 함께 신행활동을 하는 인식의 전환이 시급해요. 또한 사찰에 장애인이 편하게 가지 못한 채 장애인에게 신행활동을 하라는 것은 어불성설이에요.”

지난 2006년 8월 창립된 보리수회는 현재 20여 명의 장애인불자들이 함께 신행활동을 갖고 있다. 매월 둘째 주 토요일마다 조계사나 도봉산 등지에서 정기모임을 갖고 있지만 병치레가 많은 장애인이다보니 건강상의 이유로 회원들이 나오지 못해 모임자체가 이뤄지지 못한 경우마저 발생하고 있다. 이들은 장애인 수계법회를 계기로 정기모임만큼은 빠짐없이 갖고 신행활동을 이어가겠다는 원력을 새롭게 세웠다. 이들은 거동이 불편한 만큼 네이버 카페인 ‘보리수 아래(http://cafe.naver.com/borisu0708)’를 통해 회원간의 화합을 도모하며 정보를 나누고 있다.

이같은 보리수회는 봉화 청량사 주지 지현스님과 장애인 시인 최명숙 씨의 주도로 이뤄졌다. 하지만 지현스님과 최 씨는 장애인불자모임 창립 초기과정에서 장애인불자모임의 필요성에 대한 의견이 달라 어려움을 겪었다. 계속된 지현스님의 설득에 최 씨는 결국 스님의 뜻에 따라 주변의 장애인들을 하나 둘 모아 보리수회를 창립하게 된 것이다.

최 씨는 보리수회를 법회 중심의 모임보다는 불교교리공부모임으로 이끌어갈 계획이다. 불교교리공부를 열심히 해 장애인포교사를 계속 배출하겠다는 생각에서다. 타종교의 경우 장애인 성직자가 있지만 불교에서 장애인은 스님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장애인포교에 매진할 포교사를 자체적으로 생산해내겠다는 것이다.

보리수회 회원들은 장애인들 속으로 들어가 장애인포교를 펼치는 스님이 많아지고, 장애인 스스로가 장애인을 포교할 수 있는 그날이 하루속히 다가오길 조계사 부처님께 기원하며 각자의 보금자리로 되돌아갔다.

 

[불교신문 2330호/ 5월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