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문학/수필등,기타 글

여자, 그 난해함이여

淸潭 2007. 2. 5. 16:19
 

여자, 그 난해함이여

                                                <종이꽃>

 

남자들에게 있어서는
가장 난해한 학술자료다

 

아무리 연구를 계속해도
그 본질이나 특성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지 않는 존재다

 

때로는 얼음같이 차갑고
때로는 불같이 뜨겁다
때로는 가시처럼 날카롭고
때로는 솜털처럼 부드럽다
때로는 풀잎처럼 연약하고
때로는 칡뿌리처럼 강인하다

 

남자들에게 사랑의 열병을 앓게 만드는
독향을 간직하고 있다

 

사랑에 약하고 질투에 강하다

 

어머니가 되었을 때 가장 성스럽고
아내가 되었을 때 가장 철부지가 된다

 

변덕이 심하다
눈썹을 한 번씩 깜빡거릴 때마다
변덕은 두 번씩 일어난다

 

남자는 마음에 의해
자신을 변모시키지만
여자는 생각에 의해
자신을 변모시킨다

 

그러나 그 어떤 문장으로도
여자를 확실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단지 확실하게 설명할 수 있는 점은
이 세상 모든 여자들이
나이가 들면
할머니로 변하고 마는 사실이다

- 이외수 감성사전 中에서 <여자>-

 

                            <무스카리>

 

날 알고 싶어하셨던 당신.

머리카락 한 올에서 발가락 끝까지 날 알고 싶어하셨던 당신.

 

도무지 알 수 없는 사람이라면서

이외수 작가의 <감성사전>에 실린 '여자'라는 글을 보내주셨지요.

 

때로는 얼음같이 차갑고, 때로는 불같이 뜨거운 여자들.

때로는 가시처럼 날카롭고, 때로는 솜털처럼 부드러운 여자들.

때로는 풀잎처럼 연약하고, 때로는 칡뿌리처럼 강인한 여자들.

 

사랑의 독향을 간직한 여자들.

 

사랑에는 약하고, 질투에는 강한 여자들.

 

어머니일 때는 성스럽지만,

아내일 때는 철부지가 되는 여자들.

 

눈 한 번 깜박일 때마다

두 번씩 변덕을 부리는 여자들. 

 

무릇 은애하는 한 여인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하는

세상의 모든 남자들은

그 여자를 알아 갈수록

도저히 알 수 없는 생물이라고 고개를 흔들겠지요.

한 여자를 알기에 실패한 당신,

너무 속상해 하지 마세요.

 

위의 글을 처음 읽었을 때,

저는 어쩌면 이렇게 <여자>를 아니, <나를> 잘 표현하였을까.

깜짝 놀랐지요.

 

작가는 여자의 본질이나 특성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지 않는다고 했지만

이 세상에서 이처럼 여자의 본질이나 특성을 잘 표현한 글이 어디 있을까?

여자를 이처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글이 어디 있을까?

생각하면서 웃어 보았답니다.

 

한 여자의 머리카락 한 올에서 발가락 끝까지 알고 싶었는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깨닫는 그 순간.

당신은 그 여자를 비로소 알게 되었을 거예요.

<알 수 없음>

그 자체가 여자의 본질이며, 특성일 테니까요.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없는 복합적인 그것들이 바로

여자의 속성일 테니까요.

 

저도 여자면서 제 자신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걸요.

 

                                       <배꽃>

 

10여 년 전에 2학년을 맡았을 때였어요.

우리 반에서 키가 제일 작은 여자아이 이름은 은선이었는데요.

난 위의 글처럼 여자의 속성을 다룬 글을 읽을 때면

맨 먼저 은선이라는 여자 아이가 생각나요.

 

눈이 동그랗고, 무척 상냥하면서 밝고 명랑했던 아이.

걸핏하면 토라지면서 입을 삐죽이던 아이.

조금 나무래도 눈물을 글썽이면서 입을 꾹 다물어버리던 아이.

입을 꾹 다물고, 묻는 말에는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눈물을 뚝뚝 흘리다가도

저기 봐라. 교실 창 밖 나무에 작은 새가 앉아 있네.

하면 어디요, 어디 하면서 제일 먼저 창가로 쪼르르 달려가던 아이.

속은 줄 알고선 이슬비에 잠깐 젖은 채송화처럼 활짝 웃던 아이.

작은 일에도 호들갑을 떨면서 놀라던 아이.

아무것도 아닌 일을 누가 듣기라도 하면 큰일나는 비밀처럼

내 귀에 소곤소곤 귓속말을 하던 아이.

내가 화를 내면 놀란 토끼마냥 겁을 집어먹던 아이.

 

은선이는 그런 아이였지요.

 

그 어린 여자 아이가

저에게 있어서는 세상의 모든 여자들을 제끼고,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거예요.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거예요.

 

은선이는 걸핏하면 크레파스를 준비해 오지 않았어요.

그림을 그릴 때는 늘 제 짝지 성호의 크레파스를 이용했지요.

그런데 요 녀석이 성호의 크레파스를 자기 책상 위에 올려놓고선,

제 물건처럼 마음대로 쓰는 거예요.

성호는 늘 은선이의 크레파스를 빌려 쓰기라도 하는 양,

은선이의 책상 위에 놓인 크레파스를 집기 위해 팔을 길게 뻗어야 했죠.

 

노란색 크레파스를 사용하고 있다가도,

나, 나비 색칠할 거야.

은선이가 말하면 성호는

말없이 노란색 크레파스를 은선이에게 내주고선

은선이가 나비를 모두 색칠할 때까지

그 아이가 종달새처럼 속삭이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기다리곤 했지요.

그래서 난 한 동안은 성호가 크레파스를 가지고 오지 않은 줄 생각했는데요.

 

어느 날의 그리기 시간.

난 성호에게 주의를 주었어요.

 

-성호야.

어제 선생님은 몇 번이나 오늘 그리기한다고, 크레파스 준비하라고 했지 않니?

알림장에도 적혀 있을 텐데,

너는 다른 준비물은 잘 챙겨 오면서도 언제나 크레파스는 가지고 오지 않는구나.

그리기 시간마다 은선이의 크레파스를 이용하면 은선이는 속 상하겠다.

 

내 말에 성호는 고개를 숙였구요.

은선이는 성호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구요.

다른 아이들이 말했지요.

 

선생님.

저것요. 성호 크레파스예요.

은선이가 맨날 안 가져와서 성호 크레파스 써요.

 

                                                 <개나리>

 

어느 날.

두 녀석이 그림 그리는 것을 지켜 보다가 저는 웃음을 터뜨렸어요.

여전히 은선이의 책상에 놓여 있는 하나의 크레파스.

성호는 은선이 앞에 놓여있는 새 크레파스를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길게 뻗은 팔로 집어서 사용하고 있는데요.

 

-이거 써도 되나?

-그래.

 

이번에는 크레파스를 사용할 때 마다

일일이 성호가 은선이의 허락을 받고 있는 거예요.

저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상황을 파악했죠.

그날은 성호가 크레파스를 가져오지 않은 거예요.

마지못해 은선이는 제 크레파스를 꺼내 놓았던 모양이에요.

은선이의 크레파스는 그동안에 사용하지 않았기에 거의 새것이었죠.

 

-야, 색칠 살살하란 말야. 그렇게 진하게 하면 금방 닳아버리잖아?

 

은선이는 그림을 그리는 중간중간, 

성호가 색칠하는 것을 곁눈길로 훔쳐보다가 간섭하기 시작했어요.

 

-은선아, 살살 칠했어. 이만큼 하면 되었지?

-그래, 살살 칠해. 내 크레파스 다 닳아버리면 네 책임이야.

 

두 아이의 대화를 엿듣다가 제가 끼어 들었죠.

 

-은선아. 너무 하는 것 아니니?

너는 지금까지 늘 성호 크레파스 사용하면서 네 마음껏 색칠했잖아?

그런데 성호는 네 크레파스를 처음으로 빌려쓰는데,

그렇게 하면 성호가 속상할 것 같다.

성호가 칠하고 싶은 대로 칠하도록 하렴.

 

은선이도 미안했던지 나를 보고 씨익 웃더니

-니 맘대로 칠해

하면서 크게 선심을 쓰더군요.

성호는 은선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용하던 크레파스에 힘을 주고요.

도화지 흰색이 그대로 드러난 그림에 흰색이 사라지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내가 그들의 자리에서 멀어지기도 전에

성호의 귀에 대고 속삭이는 은선이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너 땜에 선생님께 혼났단 말야.

이제 너랑 절대로 말 안해. 너랑 절대로 안 놀아.

 

무심코 고개를 돌리자, 성호의 손등을 꼬집고선

재빠르게 미끄러지는 은선이의 작은 손을 보았죠.

성호에게 미안했지만,

은선이에게 더 주의를 주고 싶었지만

내 개입이 두 아이의 관계를 악화시킬 것 같아서

조금 더 지켜 보기로 했지요.

 

                                           <장미>

 

수업 시간 내내, 종달새처럼 지저귀던 은선이는

정말 입을 꾹 다물어 버렸어요.

 

-이 연필 너 줄까?

-내일 이만큼 딱지 가져다 줄게.

-내 게임기 네가 가지고 놀아도 돼.

-은선아. 이거 나는 모르겠다. 너는 잘 하잖아?

 

아무리 성호가 은선이에게 말을 걸어도 은선이는 입을 꾹 다물고,

성호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았어요.

 

-너 자꾸 나 귀찮게 하면 선생님께 일러 줄 거야.

공부좀 하자.

 

언제부터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했다고,

수업 중에 늘 성호에게 말을 걸어서

성호의 공부를 방해하던 그 아가씨가 글쎄 공부좀 하자네요.

풀 죽은 성호.

 

쉬는 시간이 되어도 정말로 은선이는 성호랑 놀지 않았어요.

다른 남자아이들이랑,

다른 여자아이들이랑 더 큰소리로 이야기하고,

떠들면서 신나게 놀더군요.

신난 은선이를 바라보면서 혼자 놀고 있는 성호.

 

공정한 전지자가 되어 성호를 위한다는 것이

오히려 성호의 기쁨을 빼앗아 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고,

전 참 당황했는데요.

성호가 안타깝고,

성호의 애를 태우고 있는 은선이가

꿀밤이라도 한 대 먹이고 싶을 정도로 얄미웠지만 그냥 지켜 보았어요.

 

물론 이튿날,

은선이는 언제 성호랑 절대로 말하지 않겠다고 했느냐는 듯이

공부 시간이면 여전히 성호에게 종달새처럼 속삭이고,

쉬는 시간이면 깔깔 웃으면서 성호와 잘 놀았죠.

 

왜 난 세상에 있는 수십억 인구의 반 가량 되는 수 많은 여자들 중에서

<여자>의 속성을 다룬 글을 읽으면

은선이라는 작은 여자아이가 생각나는 걸까요?

 

성호와 은선이는

우리  남자와 여자들의 일반적인 모습이 아닐까요?

 

                                     <마누카> 

 

이 글을 쓰는 동안에,

아주 오래 전에 근무했던 학교의 행정실장이 기억납니다.

그녀는 나보다 세 살 가량 어렸는데,

성격이 무척 화통하고, 솔직하며, 담대하여

사람들은 그녀를 말했지요.

 

"K 실장은 치마만 둘렀지, 남자다 ."고요.

 

그랬어요.

그녀의 첫인상부터 시작하여,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 화통하고, 솔직하고, 담대하고, 강한 성격에 빨려들어가면서

여자가 아닌 남자와 내가 마주하고 있나 착각할 정도였어요.

 

어느 겨울,  점심을 먹은 후.

우린 행정실의 난로가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어요.

로변한담을 나누다가

한 여교사가  행정실 소속의 일반직 남자 직원에 대해

행정실장에게 불만을 토로했어요.

 

-무슨 남자가 여자보다 째째하냐.

속은 밴댕이 속이라니까.

에구..... 쪼잔해서 말을 못하겠어요.

 

그런 내용이었지요.

그곳에 앉아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맞장구를 치거나,

맞장구까지 치지는 않았더래도 속으로는 그 여교사의 말에 공감하고 있었을 거예요.

행정실장도 여자보다 째째하고 쪼잔한 남자 직원에 대해

무척 공감하는 눈치였지만 한 마디 하더군요.

 

-그래도 R 주사님이 남자는 남자 맞더라구요.

며칠 전에 급식소에 쌀이 들어왔는데,

그 작은 체구로 쌀 한 가마니를 번쩍 들더라니까요.

그리고 나는 생각해요.

이 세상에서 제일 못된 남자와 제일 착한 여자를 비교한다면

제일 못된 남자가 제일 착한 여자보다 쬐끔 더 착할 거라구요.

우리 여자들이 얼마나 못된 족속인지

우리가 더 잘 알고 있죠?

 

저는 K 행정실장의 말에 얼마나 공감을 했는지 몰라요.

그랬어요.

정말 그랬어요.

제가 살아왔던 세월 속에서 만난 모든 남자들 중 제일 못되고 나쁜 남자가

그 세월 속에서 만난 모든 여자들 중세서 가장 착한 여자보다 쬐끔 더 착하다고

저도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여자보다 못한 남자도 있다는 말을 하지만,

적어도 제가 만난 모든 남자들 중에서 아무리 그  속이 밴댕이 속만큼 좁고,

그 성격이 쪼잔하고, 디럽다고 해도

제가 만난 모든 여자들 중에서 가장 화통하고, 착하고, 속이 넓은 여자보다

쬐끔 더 나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여자면서도 남자를 훨씬 더 좋아하고,

속 깊은 말은 남자 친구에게 털어놓으면서 위로를 받곤 했지요.

 

                               <애기사과> 

 

저는 <어린왕자>의 장미에 대한 부분을 읽을 때마다,

남자와 여자를 어쩜 이렇게 잘 비유하였나 감탄하곤 해요.

 

어느 날,

아무런 예고도 없이 어린왕자의 작은 별로 날아온 꽃씨 하나.

 

남자인 당신의 가슴 속에

여자인 내가 담기었을 때도 어린왕자의 장미꽃처럼

아무런 예고도 없었을 거예요.

저는 그렇게 당신의 세계를 제 마음대로 헤집고 들어가서

당신의 세계를 내 것인 양

마음껏 오만한 자세로,

당신을 마음껏 욕망하였을 테지요.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 연약한 세 개의 가시밖에 없으면서

걸핏하면 그 가시를 당신께 잔뜩 세우면서 허세를 부렸을 테지요.

 

변덕과 허영과 자존심의 가시를요.

 

그 가시가 얼마나 연약하며,

쓸모 없는지 이미 간파하신 당신.

그러나 대단한 것인 양 억지로 속아주시는 당신. 

 

전혀 쓸모 없는 세 개의 가시를  세우거나,

감기에 걸리지 않았는데도

과장하여 기침을 해대면서 어린왕자를 난처하게 만드는

그의 장미는

그에게만 세울 수 있는 가시로 인해

그의 꽃일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렇게 변덕이 심하고, 속이 좁고, 이해심이 부족하여

자기 스스로도 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여자들.

아무리 연구를 해도 난해하기만 한 그녀들에게

독향이 있어서.....

세상을 경영하는 일에도 힘을 기울여도 모자라는 남자인 당신들을

사랑의 올가미로 묶어 버리니.....

 

그 난해하고,

변덕이 심하고,

질투 강하고, 못된 성격마저 사랑의 마법에 걸린 당신들의 눈에는

그저 이쁘고 사랑스럽게만 보이니.....

어리석을진져, 세상의 무릇 사내들이여|

그러나 어찌 하랴.

음양의 조화이며, 세상 이치인 것을!

 

지금 이 순간에도

한 여자를 깊이 사랑하는 남자가 있다면.....

당신......그 여자를 알 수 없음에,

이해할 수 없는 변덕에 안타까워하지 마세요.

아무리 연구를 거듭해도 도무지 알 수 없음.

그게 여자의 본질일 테니까요.

 

변덕스럽고 까탈스럽고 난해한 그녀들이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깊은 골짜기에는

늘 당신만을 위한 밀액을 준비하여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또한 잊지 마세요.

 

 

                <설유화>

 

 

 

 

원문출처 : 빙하 속의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