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수수 혐의로 긴급체포돼 실형을 선고받고 집행유예로 풀려날 때까지 8개월간 옥살이를 했던 경찰서장 출신 A씨. 그는 2년여의 항소.상고 끝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는 집무실에서 검찰 직원들에게 강제연행될 때 "체포 영장을 제시해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부하 직원들 앞에서 망신당하지 말고 조용히 가자"는 등의 위압적인 언행이 쏟아졌다고 한다. 심리적으로 위축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A씨는 소환 이유를 밝혀줄 것을 요구하며 버텨봤지만 굴욕적인 상황을 더 악화시키지 않기 위해 검찰 직원들을 따라 나섰다. 그는 2일만에 구속됐다.
A씨는 임의동행 형태로 검찰에 소환됐다. 임의동행의 '임의(任意)'는 법규정상 피조사자의 승낙 또는 동의 아래 동행한다는 의미다. A씨는 명확히 거부 의사를 밝혔다. 규정상 합법한 행위다. 하지만 현실 상황은 수사기관의 편의 위주로 운영된다. 인권 보호의 사각지대로 늘 지적받아 왔지만 검찰 등 수사기관의 내부 수사지침상 수사를 위해 불가피한 것으로 간주된다. 또 형사소송법에도 긴급체포의 요건을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 등 포괄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임의동행을 거부할 땐 포괄적 해석에 따라 긴급체포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수사 전문가인 현직 경찰서장조차도 속수무책으로 소환에 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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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어떻게 대처했어야 했을까. 검사 출신 변호사들은 "영장 제시를 끝까지 요구하며 실낱 같더라도 적법 집행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P변호사는 "A씨는 사안의 엄중성을 간과했다"고 말했다. 경찰서장쯤 되는 인사라면 검찰에서 최소한 관련 진술 정도는 확보한 뒤 강제소환에 나선다. 하지만 혐의를 입증할 만한 물증이 확보된 상태였다면 법원에 체포영장을 청구하는 절차를 밟았을 것이라는 것. 따라서 섣불리 자포자기하지 말고 임의동행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굽히지 말았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A씨는 주변의 시선과 명예 실추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체포영장에 의한 합법적인 집행을 강하게 요구하지 못했다. 그는 제대로 방어권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잡아보지 못한 채 수사기관 주도의 일방적 조사를 받은 뒤 구속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재판 전후 과정을 기록한 수기(手記)에서 "인신이 구속되고 나니 나의 진술을 뒷받침해 주는 증거를 제대로 수집할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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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변호사는 "엄격한 형사소송법상의 절차를 지킬 것을 '강단있게' 요구하는 것만이 자신의 법익을 지키는 최소한의 방어책"이라고 말했다. 경찰 등 수사기관에선 임의동행 요구를 할 때 수갑을 보여주면서 은근히 위압감을 조성하는 경우가 많다고 S변호사는 지적했다. 그는 "임의동행 상태에선 수갑을 채울 수 없지만 일반인들은 수갑을 보면 심리적으로 크게 위축돼 동행 요구에 순순히 응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체포된 뒤에는 빠른 대처가 요구된다. 통상 수사기관은 임의동행 형식으로 신변을 확보한 뒤 6시간 이내에 정식으로 긴급체포를 한다. 이 때부터 수사기관에 주어진 조사 시간은 48시간이다. 이 시간에 수사의 밑그림과 윤곽이 70% 이상 그려진다. 수사기관.피조사자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시간이다. 혐의의 상당부분을 밝혀내 구속시키지 못하면 풀어줘야 하는 수사기관 입장에선 혐의 입증에 필사적으로 매달릴 수밖에 없다.
프로가 아마추어를 상대로 있는 힘을 다해 진지하게 맹공을 펼치는 것이다. 피조사자 입장에선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인 것이다. 이 때는 신속하면서도 침착하게 변호사 선임을 요구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P변호사는 "병도 알려야 빨리 치료 받듯이 가족 및 지인들에게 자신의 처지를 알려 변호사를 선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K변호사는 "변호사 선임은 헌법에 보장된 권리이기 때문에 변호사가 와서 접견할 때까지는 아무 말 말고 기다리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S변호사는 "일부 수사관들은 빨리 자백하지 않으면 긴급체포하거나 구속하겠다고 직.간접적으로 위협하는데 이것은 명백한 위법"이라며 "어렵겠지만 평정을 유지하며 변호인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린 뒤 수사에 임해야 한다"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