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문학/수필등,기타 글

“나는 한국을 떠나고 싶지 않아요”... 한국을 사랑했던 주한 미 대사

淸潭 2025. 2. 16. 14:28

“나는 한국을 떠나고 싶지 않아요”... 한국을 사랑했던 주한 미 대사

이하원 외교안보 에디터2025. 2. 16. 05:30
 
[이하원 기자의 외교·안보 막전막후 <47회>]
자전거로 지방 돌며 ‘친근한 미 대사’ 이미지 심어
농촌 촌부 만나고 관저에 대중가수 불러 공연도
재임중 北의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겪어
“미 대사가 해녀 체험까지 하느냐”는 비판 여론도

# 지난주 [한국 부임 못할 뻔한 첫 여성 美 대사 ‘심은경’]에 이어서 계속됩니다.

https://www.chosun.com/politics/diplomacy-defense/2025/02/09/AHDAGXFCOFBSBDSLAUJ2RUBOKE/

2008년 1월 주한 미 대사로 지명된 후 7개월간 미 상원에서 인준이 안 돼 낙마할 뻔했던 캐슬린 스티븐스는 같은 해 9월 23일 서울에 부임했습니다. 평화봉사단원으로 1975년 한국과 인연을 맺은 후 33년 만에 주한 미 대사로 부임할 때 인천공항은 특별한 환영 행사를 기획했습니다. 공항 입국장에 그가 예산중학교에서 한국 학생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크게 걸어 놓았습니다. 입국하던 스티븐스는 이를 보고 크게 감동했습니다. 자신이 한국을 좋아하는 것보다 한국이 더 자신을 좋아하는 것을 느꼈다고 나중에 말합니다.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미국대사가 2011년 8월 6일 강원도 자전거 투어에서 동강 주변을 달리고 있다./연합뉴스

1953년 한미 동맹이 맺어진 이래 첫 여성 대사, 첫 한국 근무 평화봉사단 출신의 스티븐스는 이전의 권위적인 남성 대사들과는 다른 행보를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그는 서울 광화문의 대사관과 정동 대사관저에서 벗어나 한국 사회로 뛰어드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한국에서의 미국 이미지 개선을 위해서는 공공 외교가 필요한 시점이 됐다고 판단한 겁니다.

스티븐스는 전임자들이 찾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던 지방 소도시를 돌며 한국인들의 여론을 청취했습니다. 시골 장터를 찾아 촌부(村婦)의 손을 잡고 얘기했습니다.

 

자신의 관저에 한미 청소년 100명이 모인 가운데 당시 ‘사랑비’로 유명한 가수 김태우 콘서트를 갖기도 했습니다. 정동에 주한 미 대사관저가 자리 잡은 후 대중가수 콘서트가 열린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1980년대 반미(反美)의 진원지였던 광주광역시의 여고(女高)에서 강연한 것도 양국 관계를 가깝게 하려는 노력의 하나였습니다. 그중에서도 스티븐스를 한국에 대중적으로 알린 것은 자전거를 타고 대한민국 전국을 다니면서 공공외교를 한 겁니다.

◇6·25 60주년에 낙동강 전투 지역 라이딩

스티븐스는 자전거 마니아로 프로 사이클리스트에 맞먹는 실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저도 몇 차례 그와 라이딩을 함께한 적이 있는데, 한번 속도를 내면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그가 주한 미 대사 시절 그를 밀착 경호하던 여성 경찰관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전거를 타고 내달리는 스티븐스 대사를 경호하기 위해 자전거를 배웠습니다. 이 경찰관은 저에게 “스티븐스 대사가 속력을 내면 무시무시하다. 그를 따라가면서 경호하기 위해 죽을 뻔한 위기를 몇 차례 넘겼다”고 했습니다.

스티븐스는 처음엔 대사관 관계자들과 자전거를 타다가 차츰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계 인사들과 자전거를 타며 긴밀한 관계를 맺었습니다. 크고 작은 자전거 모임을 갖던 스티븐스는 2010년 6·25 전쟁 60주년을 맞아 큰 구상을 했습니다. 한국의 대학생들과 함께 낙동강 전투 지역을 1주일 동안 자전거로 달리며 한미동맹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것이었습니다.

‘심은경 대사와 함께 달리는 자전거 길 600리’로 명명된 이 행사는 미 대사와 자전거 라이딩을 한다는 것 때문에 큰 인기를 모았습니다. 낙동강 전적지를 다니면서 함께 피 흘렸던 한미 양국의 군인들을 추모하고, 자유의 소중함을 깨쳤습니다.

스티븐스는 자신의 블로그에 “한국 학생들은 전쟁이 끝난 지 수십 년이 지난 후 태어난 세대로, 현재의 부유하고 현대적인 한국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할아버지·할머니 세대가 겪은 전쟁의 고통을 기리기 위해 이 라이딩에 참여했다”고 썼습니다.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미국대사(왼쪽)가 2010년 ‘심은경 대사와 함께 달리는 자전거길 600리’ 행사에서 손뼉을 치고 있다./주한미국대사관

◇ 한미 FTA 홍보 위해 서울~진도 자전거 종단

스티븐스는 2011년 당시 논란이 많았던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를 홍보하기 위해 다시 자전거와 관련된 행사를 기획했습니다. 서울에서 진도까지 1주일간 자전거를 타고 가며 한미 FTA와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알리자는 취지였습니다. 행사도 미국의 현충일(매년 5월의 마지막 월요일) 연휴와 한국의 현충일 사이로 잡았습니다.

워싱턴 특파원을 마치고 2011년 서울로 복귀한 저는 그의 한반도 종단 라이딩 첫날 구간에 참여했습니다. 주한 미국 대사관의 토머스 언더우드 지역 총괄 담당관, 애런 타버 공보관과 1970년대 평화봉사단원으로 그와 함께 한국에 파견됐던 빌 하워드씨, 주한 미군 장병 등 약 20여 명이 동행했습니다.

스티븐스의 한반도 종단 라이딩이 시작된 날은 2011년 5월 28일 토요일이었습니다. 주한 미 대사관저 앞에서 출발, 하루 종일 90㎞를 달리는 동안 스티븐스는 줄곧 선두를 유지했습니다. 약 3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경기도 의왕시의 삼천리자전거 사옥이었습니다. 스티븐스는 이곳에서 삼천리자전거 임직원들에게 한미 FTA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한국의 자전거 업체는 미국 부품들을 수입해 세계 최고의 자전거를 만들고 있습니다. 한미 FTA가 하루빨리 시행돼 8%의 관세가 철폐됨으로써 한국 자전거의 경쟁력이 더욱 커지기를 기대합니다.”

2011년 5월 28일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 대사가 한반도 종단 라이딩 첫날 경기도 의왕시의 삼천리자전거 사옥을 방문, 관계자들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주한 미 대사관

그는 유네스코의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수원 화성(華城)에 이르자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에서 사망한 역사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근처에서 부채춤 공연이 벌어지는 것을 보자 갑자기 진로를 바꿔 다가간 후 탄성을 지르기도 했습니다. 6·25전쟁에 참전한 미군이 1950년 7월 북한군과 첫 전투를 벌인 곳에 세워진 경기도 오산시 세교동의 ‘유엔군 초전비(初戰碑)’에 헌화도 했습니다. (이 부근에서 체력이 바닥난 저와 주한 미 대사관 직원 두 명은 대열에서 낙오했습니다. 주한 미군 헌병이 낙오자들을 찾으러 와 미군 트럭을 타고 오산 미군 기지로 갔습니다.)

 

스티븐스 일행은 이후 원래 계획대로 군산의 GM 자동차 공장, 아산의 충무공 이순신 장군 묘소 등을 둘러보며 진도까지 내려가는 여정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 “한미관계는 자전거 처럼 어떤 경우에도 전진해야”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스티븐스는 2018년 미국의 자전거 전문 매체에 ‘한국에서의 자전거 외교’라는 제목의 글을 썼습니다. 그는 “서울을 벗어나면, 포장된 국도를 따라 로드 바이킹을 즐길 수 있었다. 그곳에서는 여전히 내가 1970년대에 경험했던 한국의 농촌 풍경을 엿볼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자전거에서 내려 농부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자동차에서 내리는 것보다 자전거에서 내리는 것이 더 친근하고 솔직한 대화를 이끌어내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 기고문은 “자전거 타러 한국에 가세요. 그리고 한국의 사람, 음식, 환대를 경험하세요”라고 끝을 맺습니다.

그는 자신의 저서 <내 이름은 심은경입니다>에서는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한·미 관계는) 자전거처럼 항상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가는 길에 때로는 오르막도 있고 장애물도 있습니다. 때로는 예상보다 빨리 움직일 때도 있습니다. 모든(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전진해야 합니다.”

2011년 KOICA가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미대사를 홍보 모델로 한 ‘당신은 가슴 뛰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라는 제목의 광고./ 조선일보 2011년 5월 23일자

◇ “연예인처럼 자신의 인기에만 신경 쓴다” 비판도

스티븐스는 이 같은 공공 외교에 힘입어 외국 대사로서는 처음으로 대한민국 정부 기관의 홍보 모델이 되는 진기록을 세웠습니다. 2011년 외교부 산하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해외 봉사단을 모집하면서 그를 홍보 모델로 기용한 겁니다. KOICA는 그의 평화봉사단 경력에 주목, ‘당신은 가슴 뛰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라는 제목의 광고를 만들었습니다. 3년 임기를 마치고 곧 떠나는 스티븐스는 KOICA 홍보 모델을 한국인들이 이별 선물로 주는 훈장(勳章)으로 여기는 듯했습니다. 이는 2000년대 중반 “미국과의 동맹을 재고해야 한다” “한국과 이혼하라”는 목소리가 두 나라에서 공개적으로 나올 정도로 불안정했던 양국 관계가 안정됐음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스티븐스의 공공 외교가 호평(好評)만 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재임한 시기는 2010년 북한의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으로 극도로 긴장된 상태였습니다. 미국은 이례적으로 서해에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를 진입시키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외교부 관계자들로부터는 스티븐스에 대한 불평을 여러 차례 듣기도 했습니다. 당시 한 고위급 외교관은 “스티븐스 대사가 한국에서 일반 시민들을 만나는데 주력하며 자신의 인기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 우리는 연예인이 아니라 언제든 백악관의 오바마 대통령과 통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비판했습니다.

한·미 관계의 내실을 다지기보다는 일반 한국인을 상대로 미국의 이미지를 다듬는 ‘공공 외교’에만 신경을 쓴다는 지적이 미 국무부에서도 나왔습니다. 제주에서 해녀(海女) 체험을 하고, 연극 공연 무대에 서고, 자전거를 타고 장거리 여행을 하는 데 많은 비중을 두는 것 같다는 지적이었습니다. 미국의 한 외교관은 “스티븐스의 후임인 성 김 대사에게는 ‘해녀 체험’ 같은 것은 하지 말라는 얘기도 나왔다”고 했습니다.

◇스티븐스 이임 인터뷰

2011년 스티븐스가 부임한 지 3년이 가까워오자 한국계 성 김 대북 특사가 주한 미 대사로 내정됐습니다. 그러자 스티븐스는 7월 13일 그의 집무실에서 저와 이임 인터뷰를 했습니다. 스티븐스는 1시간 넘는 인터뷰에서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지 한국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주로 이런 문답이 오고 갔습니다.

― 1975년 평화봉사단원으로 처음 한국 땅을 밟으면서 시작된 당신의 ‘한국 사랑’이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내가 대사로 부임한 후, 자주 쓰는 한국말이 ‘인연’이다. 영어로 번역하기 어려운 말인데, 커넥션(connection)보다 깊은 뜻을 담고 있다. 나와 한국이 바로 그런 인연이 있다고 생각한다. 몸은 떠나더라도 양국 동맹을 더 튼튼히 하고 북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대사는 2013년 세종문화상 한국문화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후, 상금 중 일부를 대한사이클연맹에 기부했다. 스티븐스가 재임시절 자전거를 함께 타던 구자열 대한 사이클연맹 회장과 악수를 하며 활짝 웃고 있다./대한사이클연맹

―어려운 일도 많았을 텐데.

“서울에 온 날이 미국의 리먼 브러더스가 무너진 다음 날이다. 한국 신문을 보면서 경제 위기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걱정스러웠는데 잘 극복됐다. 늘 힘들고 도전적인 문제는 북한이었다.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 때는 상황이 매우 심각했다. 미국은 분명하고 강한 메시지를 북한에 보냈다. 대북 억지력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다.”

―후임자인 성 김 대사 내정자에게 어떤 말을 해 주고 싶나.

“미국 대사 업무는 자전거 타기와 비슷하다. 계속 페달을 밟아야 한다. 멈추면 쓰러지고 만다. 성 김은 훌륭한 주한 미국 대사가 될 것으로 의심치 않는다.”

인터뷰를 마칠 무렵 그의 소감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정말로 한국을 떠나고 싶지 않아요. 한국은 나를 에너지가 넘치도록 만드는 나라입니다. 이임(離任)하더라도 한국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 있을 거예요.” 그때 스티븐스의 표정은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습니다. 그 말에 진심이 담겨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스티븐스는 이후 그의 희망대로 워싱턴 DC의 한미경제연구소장에 이어 코리아소사이어티의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P.S.

  1. 스티븐스의 한국에서의 자전거 타기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는 지난해 11월에도 외국 언론인들과 함께 자전거로 DMZ을 횡단하는 행사를 가졌습니다.
  2. 한국에서 스티븐스와 함께 자전거를 타는 주요 인사로는 구자열 LS그룹 이사회의장, 가수 김창완씨, 김수남 전 검찰총장, 김동환 전 자전거 국가대표 선수, 이명숙 트라이애슬론(철인 3종) 선수, 전상우 전 주한 미 대사관 공보관 등이 있습니다.
  3. 스티븐스는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한 제32회 세종문화상 한국문화부문 수상자로 선정됐습니다. 그는 세종문화상 상금 3000만원 중 1000만원을 한국의 자전거 문화 확산을 위해 써달라며 대한사이클연맹에 기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