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약은 좋지만 인색해서는 안된다
부처님이 사밧티의 기원정사에 있을 때의 일이다. 어느날 파세나디 왕이 부처님을 찾아왔는데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대왕이여 어디서 오는데 먼지를 뒵어 쓰고 피로한 모습입니까?"
"부처님. 이 나라의 유명한 부자였던 마하나마가 며칠전 목숨을 마쳤습니다. 그에게는 아들이 없어 재산을 모두 조사해 국고에 넣었습니다. 며칠동안 그 일을 하느라고 먼지를 뒤집어썼더니 행색이 이 꼴입니다."
"그는 어느정도로 큰 부자였습니까?"
"그는 창고에 백천억의 순금을 쌓아둔 부자였습니다. 그는 재산을 모으기 위해 평생 싸라기밥과 썩은 시래기죽을 먹었으며 굵고 남루한 베옷만을 입었습니다. 그리하여 많은 재산을 모은 부자가 됐습니다. 하지만 그는 돈을 모으기만 했지 쓸 줄 몰랐습니다. 가난한 사람이나 불쌍한 사람이 찾아오면 문을 닫고 식사를 했습니다. 부모와 처자권속에게까지 인색했으니 수행자를 위해 보시하는 일은 더더욱 없었습니다. 말할 수 없는 구두쇠였습니다.".
왕의 얘기를 전해 들은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왕이여, 그는 결코 훌륭한 재산가가 아니오. 그는 자기의 재물을 널리 써서 큰 이익을 얻을 줄 모르는 바보요.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넓은 들판에 물을 가득 가두어두었으나 그 물을 마시거나 목욕을 하지 않으면 말라서 사라지는 것과 같소. 그는 재산이 있으면서도 복을 짓지 못하는 것이요.
그러나 왕이여, 재산을 모아 먼저 부모를 공양하고 처자권속을 돌보며 가난한 이웃과 친구들에게 나누어줄 줄 아는 사람은 현명한 부자라 할 것이요. 이는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마을 부근에 연못을 만들고 나무를 심어 사람들이 찾아와 쉬게 해주는 것과 같소. 그는 사람들의 칭찬을 받을 것이며 그 공덕으로 천상에 태어날 것이요. 돈은 이렇게 쓰려고 아끼고 모으는 것이요."
- 잡아함 46권 1232경 <간경(慳經)>
이 경은 여기서 끝나고 있다. 그러나 뒤에 나오는 1233경 <명종경(命終經)>에 따르면 구두쇠 마하나마는 그렇게 아끼던 돈을 써보지도 못하고 죽었는데 지옥에 떨어졌다고 한다.
꼭 필요한 곳에 의미있게 쓰여지면 가치가 배로 늘어나는게 돈이다. 반대로 잘 못쓰면 돈 값은 절반으로 줄어든다. 그래서 돈이란 어떻게 모으느냐 못지 않게 어떻게 잘 쓰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한끼에 몇십만원 하는 식사를 하고 자랑하는 사람이 있다. 진귀한 음식을 먹었으니 자랑할만도 하다. 하지만 세상에는 아직도 한끼 식사를 해결하지 못해 허리띠 구멍이 줄어드는 사람이 있다. 한끼 식사값을 줄이고 이들에게 조금만 후원을 한다면 돈값은 백배로 늘어날 수 있다. 이것이 돈을 제대로 쓰는 것이다.
미국의 강철왕 카네기에게 이런 일화가 전한다. 어느날 국민학교 교장선생님이 카네기에게 기부를 요청하러 왔다. 마침 카네기는 서재에서 촛불을 켜놓고 책을 읽고 있었는데 방문객이 들어오자 촛불하나를 끄면서 손님을 맞았다. 교장선생님은 이 모습을 보고 카네기에게 기부금을 받기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카네기는 예상밖으로 선선히 교사신축 기부금을 내놓았다. 교장선생님이 궁금해서 물었다.
"어째서 내가 들어오자 촛불 한 개를 꺼버렸습니까?"
"책을 읽을 때는 두 개가 필요하지만 얘기할 때는 촛불 한 개 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돈을 제대로 잘 쓰지 못하는 사람에는 대체로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아무데나 흥청망청 쓰는 낭비형이고, 다른 하나는 무조건 움켜잡고 내놓지 않는 고린재비형이다. 부처님은 재가불자가 낭비를 줄이고 근검절약하는 것을 칭찬했지만 쓸 돈마저 아끼는 고린재비는 욕심을 버리지 못했다는 이유로 비판했다.
홍사성 〈불교평론〉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