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문학/古典散文

어버이의 마음

淸潭 2021. 5. 5. 09:26

어버이의 마음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5월에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껴있습니다. 5월을 ‘가정의 달’이라고 하는 것도 단정적으로 이 두 날 때문인 것 같습니다. 중순 무렵엔 스승의 날도 있고 석가탄신일도 으레 이맘때쯤 직장인들에게 부처님의 자비를 베풀곤 하지만, 적어도 이런 날들은 ‘가정(家庭)’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어 보이니 말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 모두는 반드시 누군가의 자식이면서, 또 어쩌다가 누군가의 어버이일 수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어린이날은 어느새 사람 북적북적한 유원지에 의무적으로 놀러 가는 날, 어버이날은 평소 거들떠보지도 않던 꽃집 들려서 꽃 좋아하지도 않는 부모님께 덥석 꽃다발 안기는 날이 되어 버린 듯 싶습니다. 마치 중세 유럽의 면죄부처럼, 카네이션 한 다발이 1년 내내 못 한 효도의 면죄부라도 되는 듯 말이죠.

 

그래도 미취학 아동처럼 어린 자식들이, 면죄부인지 뭔지도 모를 카네이션이라도 챙겨주는 건 부모 입장에서 마냥 기분 나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적어도 그 카네이션은 3천원짜리인지 5천원짜리인지 엄격한 가격 입찰 경쟁을 거치지는 않았을 것이며, 또 대개 핸드-메이드로 완성된 귀한 한정판일 가능성이 크니까요.

 

어린 자식들은 그런 특별함이 있습니다. 다 큰 자식들은 1년 내내 효자 코스프레로 애써도 마냥 부족해 보일 수 있지만, 미취학의 어린 자식들은 가만히 숨만 쉬고 있어도 정문(旌門)을 백번 세워도 모자랄 효자순손(孝子順孫)이 되듯이요. 존재만으로도 효도가 되는, 그런 축복받은 나이대의 자식들은 어느새 어버이의 마음도 ‘엄마까투리’ 마냥 너그럽게 만들어 주는 것 같습니다.

 

어제도 그제도 저희 집 미취학 둘째 딸내미는 아빠를 향해 투닥투닥 주먹을 날렸습니다. 아빠 입 냄새가 너무 고약해서 그런 적도 있고, 언니 편만 들어준다고 속상해서 그런 적도 있습니다. 아마도 5월 8일 당일에도 입 냄새가 고약하다면 그 투닥투닥 주먹은 여전히 아빠의 뱃살을 향할 것입니다. 그래도 그 가벼운 구타가 아빠 입장에서 결코 불효막심하게 느껴지진 않습니다. 365일 내내 존재만으로도 효녀인 애들 덕분에 제 마음은 늘 식빵 안쪽 마냥 너그러워졌으니까요.

 

제가 아는 어느 분은 다 큰 자식이 속 썩여도 냉장고에 붙여둔 그 자식의 어릴 적 사진을 보면 그 속 썩임이 눈 녹듯 사라진다고 하셨습니다. 당시는 그 말의 뜻을 잘 몰랐는데, 자식 키워보니 그 뜻이 눈 녹듯 이해가 됩니다. 자식은 어쩌면 그 존재만으로도 효도가 되는, 그래서 어버이의 마음을 녹은 눈처럼 너그럽게 만드는 존재 같습니다. ‘가정의 달’인 5월을 맞아 소중한 자식을 향한, 한 없이 너그러울 어버이의 마음을 다시금 돌이켜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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