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입곱 수정처럼 맑고 고운 마음일때 우린 처음 만나(중,고 동창)사랑을 하고
스물여덟에 결혼을 하고 남편 닮은 딸 하나를 낳았습니다.
어제가 결혼 24주년 딸아이가 남편 대신 꽃다발을 안겨 주더군요.
이제 엄마 보호자는 저 라면서 아빠 대신 자기를 기대어 살아야 한다고
사람 인자처럼 삶이란 행복 반 불행 반 이라듯이 좋은 일만 있었겠습니까 만
저는 남편을 밥 친구 술 친구 등산 친구 직장생활 하면서 도
사회 친구도 동창생들도 따로 친구를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숨을쉬고 잠들기 전 잡아주던 남편 손은 여전히 따뜻 하기만 한데
나보고 어쩌라고 5일째 시간이 없노라고 결정을 해 주시라고 하고
친가와 외가 가족들 누구도 결정은 저의 몫 이었습니다.
삼중고를 겪으면서,왜 내게 이런일이 그 고통을 어떻게 글로 표현할수 있을까요.
저런 모습으로(뇌사) 누워있는게 남편 뜻일까 를 고민 했습니다.
입원 7일째 저와 딸은 아빠의 뜻 일거라고 믿고 기증서에 서약을 하고
자기 목숨처럼 사랑한 딸을 두고 나 없으면 못산다더니 어찌 갔을까요.
그날 그대로인데 지금의 제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미안하 다고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 하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딸 데리고 잘 살겠노라고 헤어질 시간은 줘야 하잖아요.
준비되지 않은 이별은 남은 저에게 홀로 서야 할 아무런 의미도
속한번 썩이지 않고 잘자라 엄마 보호자 자청하는 명문대 다니는 딸
못된 애미인가 봅니다.제가 49재 지내는날 서러워하는 저를 보고
그래 그 사람이 좋다는데 내 슬픔 참아야지 입술을 깨물어 보지만 퇴근 해
같이 올려다 보며 아름답다던 밤하늘을 언제쯤 눈물없이 바라볼수 있을까요.
제 생에 유일한 빽(내편)을 잃어버린 텅빈 허전한 마음을
언제쯤 남편과의 추억 만으로도 가득 채워질수 있을까요.
여자들만의 공간 이어서 편하게 들고 나면서 님들의 글을 보며
공감 하면서 산다는게 거기서 거기라면 제 애기가 평범한것 같지만
진리인 "있을때 잘해" 를 다시 한번 생각 하시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