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절을찾아

[스크랩] 영주 부석사(浮石寺) 노을

淸潭 2018. 10. 14. 10:23

관작루에 올라 (登鸛雀樓 등관작루) _ 왕지환

 

白日依山盡(백일의산진)   해는 뉘엿뉘엿 서산을 넘어가고

黃河入海流(황하입해류황하는 넘실넘실 바다로 흘러드네.

欲窮千里目(욕궁천리목그대 세상 끝까지 보고 싶은가.

更上一層樓(갱상일층루그럼 누각 한 층을 더 오르게.

 

온 세상을 내려다보고 싶으면 그런 자리에 올라가라고 격려하는 이 시는 중국 국가 주석 시진핑

近平이 애송하는 시입니다.

작자는 관작루(중국 산서성 영제시에 있음)에 올라 뉘엿뉘엿 붉게 타는 노을을 바라보다가 문득 아득

한 세상의 끝이 보고 싶어집니다. 그런데 작자가 더 오르려는 그 한층은 관작루에 있는 곳이 아니고,

그런 자리에 오르려는 작자의 마음속에 있습니다.

왕지환(688~742)은 호방한 성격의 소유자로 언제나 칼을 차고 다녔다고...

 

/ 최탁환 씀 <漢詩 쥬빌라떼>에서 *jubilate : 환희하다. 환호하다


 




천왕문으로 들어가 안양루에 올랐다.

안양은 극락이란 뜻, 안양문은 극락세계에 이르는 문이란다.

그러니까 이 안양문을 지나서 극락인 무량수전으로 가는 구조이다.

안양루에 있는 김삿갓의 를 찾아보고, 무량수전(국보 제18)을 살폈다.

고려시대 목조건물로 유명한 무량수전 중앙의 편액은 고려 공민왕의 글씨란다.

다른 건물들과 달리 약 30도 틀어졌는데, 해 뜨는 정 동쪽을 보기 위해서란다.

마당의 석등(국보 제17)에 새겨진 보살입상도 눈을 끈다.

 

부석(뜬돌)으로 갔다.

삼국유사의 설화가 유명하다. 의상이 당나라에 갔을 때 의상을 연모한 선묘라는 낭자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의상이 귀국할 때 낭자는 바다에 몸을 던져 용이 되어 의상이 탄 배를

호위하였고, 문무왕의 명으로 부석사를 창건할 때는 봉황산의 도둑떼가 반대하자 선묘용이

큰 바위를 공중으로 들어 올리는 기적을 보여 물리쳤다. 그 바위가 지금의 부석이란다.

 

뒤로 조사당(국보 제19)으로 올라갔다.

역시 고려시대의 건물로 의상대사의 초상화를 모시는 곳인데, 추녀 밑의 선비화가 놀랍다.

택리지에는 의상이 부석사 창건 후 도를 깨치고 서역 천축국(인도)으로 떠날 때 지팡이를

꽂으면서 지팡이에 뿌리가 내리고 잎이 나면 내가 죽지 않은 것으로 알라고 했단다.

퇴계 이황의 선비화를 읽고 내려왔다.


드디어 해가 넘어갔다.

안양루 지붕너머 태백산맥의 산너울 풍광이 일품이다.

해는 주변의 구름을 검붉게 태우며 오늘과 작별한다.

다시 오지 않을 오늘이다.

 

/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157

 

 

선비화(禪扉花) _ 퇴계 이황(李滉)

 

擢玉森森倚寺門(탁옥삼삼의사문) 빼어난 옥 같은 줄기 빽빽이 절문에 비꼈는데

僧言卓錫化靈根(승언탁석화령근) 지팡이 신령스레 뿌리 내렸다 스님이 일러주네.

杖頭自有曺溪水(장두자유조계수) 석장의 끝에 혜능선사 조계의 물 닿아있는가

不借乾坤雨露恩(불차건곤우로은) 천지의 비와 이슬 그 은혜를 빌리지 아니했네./ 부석사에서

 

* 혜능(慧能: 638~713) : 당나라의 선승이며 남종선(南宗禪)의 시조.

* 조계수(曺溪水) : 선()의 본류(本流)를 뜻함.

* 석장(錫杖) : 승려가 필수적으로 지녀야 하는 지팡이.


 

浮石寺 _ 김삿갓(金炳淵) / 安養樓 안에 걸러 있는

 

平生未暇踏名區(평생미가답명구) 평생에 여가 없어 이름난 곳 못 왔더니

白首今登安養樓(백수금등안양루) 백수가 된 오늘에야 안양루에 올랐구나.

江山似畵東南列(강산사화동남열) 그림 같은 강산은 동남으로 벌려있고

天地如萍日夜浮(천지여평일야부) 천지는 부평 같아 밤낮으로 떠 있구나.

風塵萬事忽忽馬(풍진만사홀홀마) 지나간 모든 일이 말 타고 달려온 듯

宇宙一身泛泛鳧(우주일신범범부) 우주 간에 내 한 몸이 오리마냥 헤엄치네.

百年幾得看勝景(백년기득간승경) 백 년 동안 몇 번이나 이런 경치 구경할까

歲月無情老丈夫(세월무정노장부) 세월은 무정하다 나는 벌써 늙어 있네. / 부석사에서




출처 : ♣ 이동활의 음악정원 ♣
글쓴이 : 자연산2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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