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명법문 명강의

수도팔계(修道八戒)

淸潭 2017. 9. 25. 14:44

수도팔계(修道八戒)

 


억천만겁(億千萬劫)토록 생사고해(生死苦海)에 헤매이다가

난중우난(難中又難)인 인신(人身)과 불법(佛法)을 만났으니

차신(此身)을 불향금생도(不向今生度)하면 갱대하생도차신(更待何生度此身)이리오.

철석(鐵石)같은 의지(意志)와 추상(秋霜)같은 결심(決心)으로써

일인(一人)이 여만인적(如萬人敵)으로 영사신명종불퇴(寧捨身命終不退) 하여야만

최후(最後)의 승리(勝利)를 얻을 것이다.

 

 

  희 생 (犧 牲)

 

사소취대(捨小取大)를 않으면 대()는 성취(成就) 못한다.

오직 영원(永遠)한 자유(自由)를 위()해서

일시(一時)의 소소(小小)한 영화(榮華)를 전부(全部) 버려야만 한다.

그러므로 일시(一時)의 환몽(幻夢)인 부모처자 부귀영화(父母妻子 富貴榮華)

일체(一切)를 희생(犧牲)하야 전연(全然) 돌보지 않고

오직 수도(修道)에만 전력(專力) 해야 한다.

 

 

절 욕 (絶 欲)

 

생사(生死)의 근본(根本)은 음욕(淫欲)에 있나니

이는 제불(諸佛)의 통설(通說)이다.

음행(淫行)을 부단(不斷) 않으면 성도(成道)는 못한다.

 


    ◎체력(體力)을 고갈(凅渴)하고

    ◎정신(精神)을 파멸(破滅)하고

    ◎항상애욕(恒常愛欲)에 사로잡혀

      무한(無限)한 번민과 고뇌(苦惱)가 부절(不絶)하고

    ◎생산양육(生産養育)에 골몰(汨沒)케 되고

    ◎사후(死後) 수애수생(隨愛受生)해서 윤몰무궁(輪沒無窮)케 되나니

 

이상(以上)으로써 수도(修道)에 근본적방해물(根本的妨害物)임을 알 것이니

오직 끊어야 한다.

 

 

고 독 (孤 獨)

 

수도(修道)에는 인정(人情)이 원수(怨讐).

위타위기수미선(爲他爲己雖微善)이나 개시생사인(皆是生死因)이라.

 

일체(一切)의 선인악업(善因惡業)을 다 버리고

영원(永遠)의 자유(自由)

더불어 독행독보(獨行獨步) 해야만 한다.

 

일반(一般)에 있어서는

일대(一大) 낙오자(落伍者)가 되어

참으로 고독(苦獨)한 사람이 되지 않고

무상대도(無上大道)는 성취(成就) 못한다.

그러니 일반(一般)과는 큰 삼팔선(三八線)을 그어 놓고

살아야 한다.

삼팔선(三八線)을 터고 일반(一般)과 더불어 타합(打合) 할 때

벌써 엄벙덤벙 허송 세월 하다가

아주 죽는 때 인줄 각오(覺悟)해야 한다.

 

 

천 대 (賤 待)

 

남에게 대접(待接)받을 때는 망()하는 때이다.

일시(一時)의 대접(待接)에 팔려

영원(永遠)한 활로(活路)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천대(賤待) 괄시 받는 때만이 참으로 살아나는 때 이다.

 

나를 좋아하며 칭찬하고 따르는 사람은

나를 제일방해(第一妨害)하는 마군(魔軍)이다.

 

중상모략 온갖 침해(侵害)로써

나를 천대(賤待)하는 사람보다 더 큰 은혜(恩惠)는 없다.

모든 공부방해인(工夫妨害人)을 제거(除去)해 주고

많은 인력(忍力)을 북돋아 주어

()를 일취월장(日就月長)케 해 주니

그보다 더 큰 은혜(恩惠)가 어디 있는가?

진정(眞情)으로 합장예배(合掌禮拜)해도

그 은혜(恩惠)는 다 못 갚을 것이다.

하물며 원한(怨恨)을 품는 단 말인가.

고인(古人)은 일부러도 도적질도 안 했는가?

이것이 공부인(工夫人)의 진실방편(眞實方便)이다.   

 

 

 

하 심 (下 心)

 

내 못난 줄 알 때

비로소 철나는 때이다.

 

나이 팔십(八十)이 넘어도 내 잘난 것이 있으면

아직 철이 안 난 것이다.

무엇을 그리 안다고 잘난 척 날뛰는지

참으로 이해(理解) 못 할 일이다.

내 못난 줄 알고

내 모르는 줄 알고서

일체(一切)를 여불(如佛)로 섬기게 될 때

참으로 도()가 높아지는 것이다.

가장 낮은 곳은 자연(自然)히 대해(大海)가 되지 않는가?

이런 곳이 아니면

광대무변한 도()는 들지 않는 법()이다.

남의 존경과 대접(待接)은 총같이 피하고

독사 같이 멀리해야 한다.

 

그리고 누가 무엇을 묻든지

나는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전 념 (專 念

  

한 몸으로써 두 길은 못 간다.

 

여원(永遠)한 자유(自由)는 화두(話頭)를 바로 깨쳐

자성(自性)을 보는데 있다.

그 외()는 모두 사로(邪路)이다.

 

몇 백년(百年) 동안 밥 이야기를 해도

배부르지는 않는다.

오직 실지로 밥을 먹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여기 와서는 팔만법보(八萬法寶)도 마군(魔障)이니

그 외() 일체언어문자(一切言語文字)리오.

오직 화두(話頭)만 참구(參究) 할 뿐이다

 

 

노 력 (努 力)

 

성공(成功)의 대소(大小)

노력(努力)의 여하(如何)에 정비례(正比例)한다.

적은 노력(努力)으로 큰 결과(結果)를 바라면

미친 사람이다.

 

영원(永遠)한 자유(自由)

보통의 노력(努力)으로는 성취(成就) 못 한다.

 

고인(古人)들은 불언불면(不言不眠)하고

사력(死力)을 다한 불단불휴(不斷不休)의 노력(努力)으로써

성도(成道)했다

 

 

고 행 (苦 行

 

모든 타락과 실패(失敗)

해태(懈怠)에 있다.

그리고 신도(信徒)의 돈은

중 죽이는 설비상이다.

고인(古人)이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의 철칙(鐵則)

세움도 여기에 있다.

이 철칙(鐵則)을 위반(違返)하면

()이 선언(宣言)한 바 적단(賊團)에 참가(參加)케 되어

성도(成道)는 고사(姑捨)하고 지옥(地獄)만 더 깊어질 것이다.

땀 흘리면서 먹고 살아야 한다.

남의 밥 먹고 내 일 할려는

썩은 정신(精神)으로서는 만사(萬事)는 불성(不成)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정법(正法)

두타제일 가섭에게 가지 않았는가!

 

오직 영원(永遠)한 대자유(大自由)를 위()


모든 고노(苦勞)를 참고 이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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