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용어 사전
불교 용어를 어렵다고들 한다. 정말 어려운 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아주 쉬운 말이지만 이해하기 힘들어 낑낑대는 경우도 있다. 특히 같은 낱말이지만 불교와 세속에서 공히 사용할 경우, 세속의 의미에 익숙해져 있는 중생이 새삼스럽게 불교적 용어로 이해하려고 하지만 자꾸 세속의 의의가 팔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아서 좀체 불교 용어의 뜻 속으로 들어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 처음 불교를 접하는 사람 입장에서 되도록 쉽게 불교 용어를 정리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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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관(假觀)---천태종에서 삼관(三觀)이라고 하는 공관(空觀) ? 중관(中觀) ? 가관(假觀)중의 하나임. 우주의 모든 존재는 공(空)한 것으로서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므로, 모양을 분명히 갖춘 것도 실체가 없는 임시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반야심경>에 견줄 경우,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중에서 가관은 ‘색불이공과 색즉시공’ 부분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가다연니자(迦多衍尼子, Katyayaniputra/카트야야니푸트라)---기원 전후(혹은 BC 2세기)경에 활약한 인도의 불교학자. 생몰연대 미상. 부파불교시대에 설일체유부(設一切有部) 소속이었다. 원래는 브라만 계급 출생이었으나 불교에 귀의해서 그 유명한 <아비달마발지론(阿毘達磨發智論)=발지론(發智論)>을 저술했다. 이 책은 설일체유부의 교리를 체계지은 대표적인 논서로서 널리 연구되며, 많은 주석서도 만들어졌다.---→발지론(發智論) 참조.
*가람(伽藍)---절, 사찰, 사원, 도량(道場), 정사(精舍)와 같은 말. 산스크리트어 ‘상가 아라마(sangha-arama)’를 음역한 승가람마(僧伽藍摩)의 줄인 말이다. 부처님 성도 후 마가다국(摩揭陀國, Magadha)의 서울 왕사성(王舍城, 라즈기르) 부근에 마가다국의 빈비사라(頻毘娑羅, 빈바사라/頻婆娑羅, Bimbisara, BC 582~554 재위)왕이 지어 보시한 죽림정사(竹林精舍)가 가람의 시작이다.
중국의 선종 사찰 이래로 정립된 기본구조는 7당(堂) 가람이다. 불전(佛殿), 강당(講堂), 스님들의 생활과 관련된 요사(寮舍)에 스님들의 거처인 승당(僧堂 혹은 僧房), 부엌(주고/廚庫), 욕실, 동사(東司, 뒷간, 해우소/解憂所), 그리고 산문(山門) 등이 7당으로 꼽힌다.
*가루다(Garuda)---가루라(迦樓羅)로 음역한다. 불경에는 금시조(金翅鳥) 등으로 의역돼 있다. 두 날개는 펼치면 그 길이가 336만리(里)나 되며, 용(龍)을 잡아먹고 산다고 하는 전설적인 새이다. 대승(大乘)의 경전에서는 팔부중(八部衆=팔부신중/八部神衆)의 하나에 들어가 있다.
*가릉빈가(迦陵頻伽, 산스크리트어 Kalavinka)---아름다운 울음소리로 불법을 설하는 상상의 새를 말한다. 가릉빈(迦陵頻)의 춤은 특히 불공양(佛供養)의 법회(法會) 때 행하는 고대의 무악(舞樂)으로 유명했다. <아미타경>에 의하면, 이 새는 극락정토에 살며, 그 형상은 팔부중의 하나인 긴나라(緊那羅)와 비슷해서 새의 몸에 사람의 얼굴을 하고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으로 주로 표현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석탑이나 부도, 석등과 같은 석조물에 더러 조각돼 있다.
*가범달마(伽梵達磨)---서인도의 승려, 본명 바가바드 달마(Bhagavad-dharma), 존법(尊法)이라 한역하기도 한다. 당(唐)나라 때 중국에 와서 658년 천수경을 번역했다. 천수경은 그 외에 불공(不空), 지통(智通), 보리류지(菩提流支) 등의 번역본도 있다.
*가섭(마하가섭, 摩訶迦葉, Mahakashyapa)---부처님의 십대 제자 중 제일인자. 가섭파(迦葉波), 음광(飮光)이라 번역하기도 한다. 부처님 열반 후 제자들을 이끌어 가는 영도자 역할을 해 불경의 제1차 결집을 주도했다. 가섭은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거친 옷과 거처에 상관없이 진리를 깨치기 위해 용맹정진해 두타제일(頭陀第一)이라 일컬어졌으며, 부처님이 그의 법을 첫 번째로 전수한 제자이다.---→염화미소(拈華微笑) 참조.
*가섭선제(迦葉善歲)---소승불교 음광부(飮光部)의 시조. 불멸 후 3백년(BC345~246)의 말기에 활동. 성은 가섭. 이름은 선세(善歲). 어릴 적부터 어질고 총명해 7세 때에 아라한과를 얻고, 사람들의 귀의를 받았다. 또 상좌부의 교의가 독자부(犢子部)ㆍ법장부(法藏部) 등으로 발전함에 따라 점점 대중에 부화함으로써 그 근본 뜻을 잃어 감을 개탄하고, 상좌부의 교의를 유지하기에 힘쓰는 한편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에서 음광부를 독립시켰다.
*가섭마등(迦葉摩騰, Kyapa-mtaga)---인도 출신 승려. 축섭마등(竺葉摩騰), 섭마등(攝摩騰), 마등(摩騰)이라고도 한다. 매우 총명해 대 ? 소승(大小乘)의 경(經)과 율(律)을 통달했고, 중국 후한의 효명제(孝明帝, 58~75재위) 때인 AD 67년 그는 불법을 구하기 위해 인도에 왔던 축법란(竺法蘭)과 함께 불상과 경전을 백마에 싣고 뤄양[洛陽]에 이르러 백마사(白馬寺)를 짓고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등을 번역했는데, 이것이 중국 역경의 시초이다. 따라서 중국에 불법을 최초로 전한 자로 알려져 있는데, 결국 뤄양에서 죽었다.
*가야(Gaya, 伽倻)---보드가야((Bodhgaya)를 칭함.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출가 후 6년 고행 끝에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는 대각의 성지. 현재 인도 북동부 비하르(Bihar)주 주도(州都) 파트나 남쪽 99.8km 지점에 있으며, 바라나시 칸트역에서 기차로 5시간쯤 거리에 가야역이 있고, 거기서 다시 버스로 40분쯤 달려야 보드가야에 도착한다.
이곳의 마하보디(maha bodhi, 大覺) 사원은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성지이다. 이 부근에는 부처님께서 정각을 이루시던 보리수의 후손 및 금강보좌, 아소카석주, 니련선하강(尼連禪河江, 네란자라강)과 전정각산(前正覺山), 가야산, 수자타(Sujata) 여인이 유미죽(乳米粥)을 공양올린 수자타사원, 가섭 삼형제를 제도하신 장소 등이 남아있어서 오늘날까지 전세계 불교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대성지이다.
*가전연(迦?延, 카차야나, Katyayana)---마하가전연(摩訶迦?延)이라고도 한다. 십대제자 중 논의제일(論議 第一)이라 불리며, 설법 제일이었던 부루나(富樓那) 존자조차도 그의 도움을 많이 받았던 모양이다. 설법 제일인 부루나와 논의 제일인 가전연을 비교하면 부루나는 재가자들을 상대로 말하는데 뛰어났고, 가전연은 출가한 사문들에게 논리적이고 학문적인 해설을 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고 한다.
*가지(加持)---부처님의 헤아리기 어려운 힘이 나에게 더해지고 나는 그 힘을 받아 지니기 위해 힘쓰는 것. 실제로는 여러 가지 수법이나 의식에 의해 부처의 힘을 자기가 얻는 것, 그리고 그것을 위해 하는 행위 전반을 가리킨다. 가지의 가(加)는 가피加被), 지(持)는 섭지(攝持)의 뜻으로 해석된다. 호념(護念), 가호(加護) 등의 번역도 같은 뜻이다. 즉 가(加)는 제불의 대비의 힘이 수행자에게 가해지는 것이고, 지는 수행자의 신심에 부처가 감응하는 것을 말한다.
*가타(Gatha, 伽陀)---산스크리트어 Gatha를 음역해서 게타(偈陀) 혹은 가타(伽陀)라고 하며, 의역해서 고기송(孤起頌)라고도 한다. 이는 산문(散文)은 없고 경문 전체가 운문(韻文)의 형식을 띠고 있는 것을 말한다. 대표적인 예가 26장 423게송으로 이루어진 <법구경(法句經)>이다. 같은 운문체이지만 산문체로 된 내용을 다시 운문체로 중복해서 설한 것은 중송(重頌) 혹은 기야(祇夜)라고 한다.---→고기송(孤起頌), 중송(重頌), 게송(偈頌) 참조.
*가피(加被)---가비(加備)ㆍ가호(加護)라고도 함. 부처님께서 자비의 힘을 베풀어 중생에게 이롭게 하는 것. 부처나 보살이 자비를 베풀어 중생에게 힘을 줌. 온 마음을 다 기울여 기도를 했을 때의 부처님에게 받는 과보,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은총이라는 말과 비슷한 의미이다.
*가행위(加行位)---유식(唯識)에는 수도5위(修道5位)가 있다. 그 제1위는 자량위(資量位)로 깨달음을 실제로 체험하기 위해 수행에 필요한 복덕과 지혜를 쌓는 준비단계로서, 나와 너가 서로 짝으로 존재하고 상대적이고 의존적이라는 진리를 머리로 깨달은 상태다.
그리고 제2위가 가행위(加行位)로서, 가행도(加行道) 또는 방편도(方便道)라고도 하는데, 가행이란 힘을 더해 더욱 정진한다는 의미로서 실질적인 유식수행(唯識修行)의 가장 중요한 영역이다. 제1위 자량위(資量位)의 단계가 복덕과 지혜로서 내적인 자질과 역량을 키우는 단계라면, 가행위는 본격적으로 노력하는 단계로서 인식의 주객이 본래 존재하지 않음을 통찰해 현상을 나와 너,또는 나와 대상으로 분별해서 받아들이는 정신적 습관을 자각하고, 그러한 습관을 제거하는 훈련을 닦아 나가 어디에도 안주하지 않는 참된 유식(唯識)의 도리를 깨닫는 것을 말한다.
*각덕(覺德)---진흥왕 무렵의 신라 스님. 성품이 총명하고, 학문이 뛰어났으며, 법을 구하러 중국 양(梁)나라에 건너갔다. 신라 스님으로 중국에 가서 법을 구한 시초이다. 진흥왕 10년(549) 양나라 사신과 함께 부처님 사리를 가지고 귀국했는데, 이는 우리나라에 부처님 사리가 처음으로 들어온 것이다. 이때 임금은 백관으로 하여금 예의를 갖추고 흥륜사(興輪寺) 앞길까지 나가서 그를 맞이하게 했다.
*각황(覺皇)---깨달음의 황제, 곧 부처님을 가리킴. 각왕(覺王)이라고도 한다. 구례 화엄사 각황전(覺皇殿-국보 제67호)이 바로 이에 연유하고 있다.
*간경(看經)---경을 읽다, 경을 소리 없이 마음속으로 읽다[풍경(諷經)], 승당 불전 등에서 경을 송독(誦讀)하다 등의 뜻이었으나 뒤에는 소리 내어 경전을 읽는 독경(讀經)을 포함해서 경전을 연구하기 위해 읽는 것도 포함됐다. 뿐만 아니라 경전의 말씀과 의미를 쓰면서 되새긴다면서 사경(寫經)도 간경의 범주에 들어갔다. 사경(寫經)은 부처님이 설하신 경전을 옮겨 쓰는 것이다.
*간경도감(刊經都監)---조선 세조 7년(1461년)에 왕명으로 설립된 각종 불교 경전을 출판, 번역한 기관. 신미(信眉), 수미(守眉), 학조(學祖) 등의 승려와 김수온(金守溫), 한계희(韓繼禧), 강희맹(姜希孟) 등의 학자가 실무를 맡았다. 특히 이때 한글로 번역한 언해본은 불교학 연구뿐만 아니라 조선 초기의 우리말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간시궐(乾屍厥)---‘마른 똥 막대기’라는 말. 중국 송나라 시대 운문(雲門)스님이 던진 화두(話頭)의 하나이다. 어느 스님이 운문에게 부처란 무엇입니까(여하시불/如何是佛)? 라고 물었을 때 운문스님이 간시궐[마른 똥 막대기]이라고 대답했다.
흔히 우리는 진리는 성스럽다고만 생각한 나머지 성스러운 커튼에 가려 진실을 제대로 못 볼 수가 있다. ‘무슨 똥막대기 같은 소리인가?’ 충격적인 이 말은 ‘진리는 성스럽고 고귀하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마음의 문을 열게 해주고, 깨달음을 얻게 해 주기 위한 화두였다.
*간화선(看話禪)---간화선은 중국 송대에 대혜 종고(大慧宗?, 1089~1163) 선사에 의해 정립됐다. 화(話)는 화두, 공안(公案)을 말하고, 간(看)은 주시하다, 참구(탐구)하다는 뜻. 무분별 직관적인 방법으로 고인(古人)의 공안을 간(看)하는 참선법. 우리나라 선종 사찰에서 현행하는 화두를 들고 좌선하는 대표적인 참선법---→공안, 화두 참조.
*갈마(?磨, karma)---산스크리트어 카르마(karma)의 음역어로서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업(業)을 말하고, 다른 하나는 불교교단 내부에서의 의식, 작법을 말한다.
헌데 단지 ‘갈마’라고만 음역하는 경우에는 업을 의미하는 일이 거의 없고, 대개 불교수행자가 계(戒)를 받거나 참회하거나 할 때의 작법을 말한다. 이 작법에 관계하는 승려를 ‘갈마아사리’라고 한다.
*갈마아사리(?磨阿?梨, karma-acarya)---갈마는 불교의식을 말하고, 아사리는 불법의 스승을 일컫는데, 불교수행자가 계(戒)를 받을 때(수계할 때) 구족계(具足戒)를 주는 스승을 수계아사리 혹은 갈마아사리라 한다.
*갈애(渴愛)---목이 몹시 마를 때 절실히 물을 찾듯 범부가 5욕(欲)에 탐착함을 말함. 부처님께서 4성제(四聖諦)에서 고(苦) 발생의 원인을 갈애라 했다.
*감로(甘露)---천신(天神)의 음료, 하늘에서 내리는 단 이슬이라는 뜻. 불교 경전에서는 주로 부처님의 교법이 중생을 잘 제도하는 데에 비유하는 예로 쓰인다. 즉 부처님의 설법을 감로라 한다.
*개구즉착(開口卽錯)---입을 열면 즉시 어긋난다(틀린다)는 뜻, 말한 즉 곧 틀리다, 입만 벌리면 거짓말 하게 된다, 입을 벙긋 하는 순간 어긋난다, 대체로 이런 뜻으로 진리의 세계는 말로 표현하려면, 곧 입을 여는 순간 참모습과는 어긋난다는 말이다.
어떤 생각 또는 깨달음을 얻었다 하더라도 입 밖으로 표현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언어의 한계, 표현능력의 한계 등, 또는 말조심을 해야 한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말로써 선(禪)의 세계를 설명하려고 하면 십만 팔천 리나 멀어진다는 뜻인데, 동념즉괴(動念卽乖)라, 생각만 움직여도 곧 어긋난다는 말과 비슷하다. 불법은 마음공부인데, 마음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개법장진언(開法藏眞言)---법장(法藏)은 진리의 창고로서, 즉 경전을 말하는데, 기도를 시작하는 일은 이 법장을 여는 일이고, 참선에 들어가는 것도 법장을 여는 일이다. <옴 아라남 아라다>는 천수경에 나오는 개법장진언이다.
*개보판대장경(開寶版大藏經)---중국 송(宋) 대에 최초로 조성된 북송관판대장경(北宋官版大藏經)을 일컫는다. 약칭 <개보장(開寶藏)>이라 한다. 송 태조 연간인 개보(開寶) 4년(971)에 착수해 다음 대인 송 태종 8년(983)에 완성했으므로 <개보판대장경>이라 통칭되며, 칙명으로 조성됐다고 해서 <칙판대장경(勅版大藏經)이라고도 한다. 오류가 많았다는데 현재 전하지 않는다. 고려시대 초조대장경은 바로 이 개보판대장경을 바탕으로 해서 조성됐었다고 한다.
*개아(個我, 뿌드갈라/pudgala)---개아의 사전적 의미는 개별적인 사람으로서의 자아(自我) 혹은 남과 구별된 개인으로서의 자아라 하겠다. 이것이 불교에서 의미를 갖게 된 것은 일부 잘못 생각한 부파불교 당시 독자부(犢子部)에서 생사를 초월한 윤회의 주체가 있다고 주장해 이것을 뿌드갈라(pudgala, 개아)라 한 데에서 유래하고 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이를 사상(四相)의 하나인 인상(人相)이라고 해서 이런 주장을 강력이 비판하고 있다. 개아는 진아(眞我)와 대비되는 아상(我相)으로서, 진아를 찾는다는 것은 곧 자기(개아)를 버림으로써 가능한 것이고, 자기(개아)를 버림은 곧 망심(妄心)과 분별심(分別心)과 집착심을 버리고 마음을 텅 비우는 것을 말함이다.
*개운당조사(開雲堂祖師)---1790년(정조 10년)에 경북 상주에서 태어났다. 속성은 김씨(金氏)이고, 일찍 부모를 잃은 고아로 자라 13세에 문경 봉암사로 출가해 혜암(慧庵)선사의 제자가 됐다. 이후 여러 경로를 거쳐 크게 깨달음을 얻고 상주 도장산(道藏山, 828m) 심원사(深源寺)로 들어갔다. 거기서 51세까지 수행정진한 나머지 아나함과(阿那含果)를 얻어 중생으로서 최고 경지에 올랐다. 이후 지리산으로 들어가서 지리산 묘향암에서 신선이 됐다고 한다. 그의 죽음을 본 사람이 없어 신선이 됐다는 설이 제기된 전설적인 인물이다.
*개원석교록(開元釋敎錄)---당나라 초기(730년)에 지승(智昇)이 쓴 불경 목록집, 당시 가장 권위 있는 것으로 인정됐다. 송(宋) 대에 최초로 조성된 개보판대장경(開寶版大藏經)은 바로 <개원석교록>에 수록된 5,048권의 불전을 판각한 것이다.
*개차(開遮)---개(開)는 어떤 행위를 허락함, 차(遮)는 어떤 행위를 금지함이고, 개(開)는 방편이며 차(遮)는 막는다(금한다)는 뜻이다.
불교의 계율에 있어서, 경우에 따라 어떤 때는 계율을 어기는 것을 허락하고, 어떤 때는 어기는 것을 금하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목숨이 위태롭거나 많은 사람을 살려야 할 경우에는 방편으로 계율을 어겨도 좋다고 허락하지만 어떤 때는 죽더라도 반드시 계율을 지키라고 한다. 즉, ‘큰 것을 지키기 위해 작은 것을 범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것을 지범개차라고 한다.---→지범개차(持犯開遮) 참조.
*거사(居士)---출가하지 않는 재가 남자신도로 덕이 높고 수행을 원만히 성취한 사람을 말한다. 세계 3대 거사로는 <유마경(維摩經))>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인도의 유마힐거사(維摩詰居士), 중국의 방거사(龐居士), 신라의 부설거사(浮雪居士)가 있다. 중국의 방거사는 당나라 시대의 사람으로 이름은 온(蘊)이라 했으며, 있는 재산을 저 바다 속에 내다 버리고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신라의 부설거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의 사람으로 성은 진(陣), 이름은 광세(光世)라 했다.
*건달바(乾?婆, gandharva)---긴나라(緊那羅)와 함께 제석천(帝釋天)을 모시면서 음악을 담당하는 천신으로 팔부중(八部衆)의 하나. 심향(尋香), 식향(食香) 등으로 번역. 술과 고기는 일체 먹지 않고 향기만 먹고 사는 천신의 일종. 수미산 남쪽의 금강굴에 살며 언제나 부처님이 설법하는 곳에 나타나 찬탄하며 불법을 수호하는 역할을 한다.
*건혜(乾慧)---아직 원숙하지 못하고 메마른 지혜. 겨우 욕망의 습기(濕氣)는 말라 없어졌지만 아직 실질적인 덕이 갖추어지지 않았으므로 효용을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에 건혜라고 한다. “계행(戒行) 없는 정(定)은 죽은 물이고, 죽은 물에 사는 용(龍)은 활력이 없고, 정력(定力) 없는 지혜(智慧)는 건혜(乾慧)일 뿐, 생사(生死)의 길에서는 쓸모가 없다” 이런 말이 있다.
*겁(劫)---산스크리트어 ‘kalpa’의 음역인 겁파(劫波)의 약칭으로, 장시(長時) ? 대시(大時)라 의역되기도 한다. 불교에서 시간 개념으로 헤아릴 수 없는 무한한 시간을 뜻하는데, 천지가 개벽한 때부터 다음 개벽할 때까지의 동안이란 뜻으로 매우 길고 오랜 시간을 이르는 말. 본래 인도에서는 범천(梵天)의 하루, 곧 인간계의 4억 3200만 년을 1겁이라 한다.
*게송(偈頌)---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할 경우이거나 중요한 교리를 서술할 때 운문으로 쓴 것을 게송이라 한다. 그런데 이렇게 운문으로 표현한 것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즉, 고기송(孤起頌)과 중송(重頌)이다.
고기송은 게타(偈陀) 혹은 가타(伽陀)라고도 하는데, 산문(散文)은 없고 경문 전체가 운문(韻文)의 형식을 띠고 있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26장 423게송으로 이루어진 <법구경(法句經)>이다.
그리고 중송은 산문체로 된 내용을 다시 운문체로 설한 것이다. 여기서 중(重)은 무겁다는 뜻이 아니고 ‘거듭’을 의미한다. 즉 본론의 산문 내용을 좀 더 자상하고 미세하게 표현해 산문에서 이야기 하지 못했던 내용을 중복해서 운문체로 부연 설명하는 것이다. 중송은 기야(祇夜)라고도 한다.
게송은 바로 게타(偈陀)의 게(偈)와 중송(重頌)의 송(頌)을 따서 게송(偈頌)이라 하게 된 것인데, 그런데 게타(고기송)이든 중송이든 모두 게송(偈頌)이라 일컫는 것이 일반적이다.---→가타(伽陀), 고기송(孤起頌), 중송(重頌) 참조.
*격외도리(格外道理)---언어의 격식이나 관례를 초월한 말이지만 진리를 담고 있음을 말함. 설정된 언어의 뜻에 구애(拘碍)받지 않고 부정 긍정 양 날개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언어의 격식을 뛰어넘는 진리.
말이 있으면, 좋다 나쁘다 옳다 그르다 하는 생각이 뜨고, 옳다고 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나쁘다고 하면 기분이 나빠진다. 그래서 틀이 잡히고 논리가 생기고 문법이 생기고 격식이 생겨, 격식을 벗어나면 틀렸다 그리고 아니다 하는 갈등이 생긴다. 때문에 진리는 옳고 그르다의 이분법을 뛰어넘는 곳에 있다는 말이다.
*격외선(格外禪)---가르침 밖에 따로 전한 마음의 법리(法理)인 교외별전(敎外別傳), 격식과 단계를 벗어난 수행의 이치인 격외도리(格外道理), 글자에 구애받지 않은 불립문자(不立文字), 이러함을 바탕으로 한 선(禪)을 줄여서 격외선이라 한다.
6조 혜능(慧能) 계통의 격외선을 남종선(南宗禪)이라 하는데, 이 남종의 격외선을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받아들인 이는 신라 말기의 도의(道義) 선사였으며, 그를 이어 많은 선사가 격외의 선법(禪法)을 중국에서 받아와 산문(山門)을 열었다. 그리하여 고려 초에 이르기까지 아홉 산문이 이루어졌으므로 구산선문(九山禪門)이라 일컬었고, 그 이후는 물론 지금도 조계종(曹溪宗)을 비롯한 한국불교의 참선은 이 격외선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격의불교(格義佛敎)---불교가 처음 중국에 전래됐을 당시 중국인에게는 쉽게 이해되지 않은 불교교리가 많았다. 이를 이해하기 쉽도록 하기 위해, 유교나 도교 등 중국 고유의 사상으로부터 유사한 개념이나 용어를 차용해 설명한 편법을 가리켜 격의라 했다. 이렇게 기존의 자국 언어를 빌어 이질적인 문화를 방편적으로 이해하는 방식을 격의(格義)라 하는데, 불교 도입 초기인 위진시대(魏晋時代, 220-420)에 나타났던 불교교리의 이해 및 연구방법이었다. 그러나 이는 불교교의의 진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아서 오호16국 시대에 이르러 구마라습과 그의 제자 승조(僧肇, 384~414)에 의해 극복돼 나갔다.
*견성(見性)---본래의 자기 면목, 즉 본시 그대로의 자기 본성을 본다는 뜻이다. 본연의 자기는 항상 존재하는데 어째서 보지 못할까, 생각이 번뇌 망상이라고 하는 구름을 계속 피어서 하늘이 보이지 않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 흐림을 걷어내고 본성을 보는 것이 견성이요 깨달음이다. 즉 견성이란 본연의 자기를 봄이요, 곧 깨달음을 일컬음이다.
*견성성불(見性成佛)---인간이 본성을 깨치면 누구나 부처가 된다는 말. 자기 자신의 본성을 밝고 바르게 보아 앎으로써 정각(正覺)을 이루면 성불한다는 뜻.
〈육조단경(六祖壇經)〉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너희들의 본성은 마치 허공과 같은 것이니, 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으면 그것을 일컬어 정견(正見)이라 하고,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으면 그것을 일컬어 진지(眞知)라 한다. 푸르고 누렇고, 길고 짧은 것도 없으며, 오직 본원(本源)이 맑고 깨끗하다는 것과 깨달음의 본체가 원만하고 밝다는 것을 보기만 하면, 이것을 일컬어 '본성을 보아 부처를 이루었다'라고 한다.” 즉 자기의 본성이 원래 형체도 없고 근본도 없으며, 머무는 곳도 없다는 것을 깨달으면, 더 이상 불타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에 ‘견성성불’이라 하는 것이다. 선종(禪宗)에서는 모든 사람이 불타의 성품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독경, 좌선, 예불, 계율과 같은 수행의 형식을 중요시하지 않으며, 단지 마음을 닦아서 자기의 본성을 보아 부처를 이룰 것을 주장한다.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見性成佛) 참조.
*결가부좌(結跏趺坐)---앉는 방법의 한 가지. 줄여서 가부좌라고도 한다. 먼저 오를 발을 왼편 넓적다리 위에 놓고, 왼발을 오른 편 넓적다리 위에 놓고 앉는 자세. 요가의 기본자세이다.
*결사(結社, association)---불교의 혁신운동을 말함. 불교 내부의 잘못을 혁신하려는 운동은 시대마다 있었으나 특히 고려 때 태동한 운동을 이르는 말이다. 불교를 국교로 삼은 고려시대에는 왕실과 결탁해 세속의 명예를 얻는 승려가 많았다. 이에 몇몇 뜻있는 승려들이 모여 혁신운동을 시작한 것이 그 유래이다.
그 중에서도 보조국사 지눌의 정혜결사(定慧結社)와 요세(了世)의 천태종 백련결사(白蓮結社)가 유명하다.
지눌은 수선사(修禪社: 지금의 송광사)에서 <정혜결사문>을 쓰고 세속화된 호국 ? 기복 ? 미신 불교를 타파하고, 타락한 형식 불교를 척결하며, 정법불교와 수행불교를 주창했다. 이 혁신운동은 무신(武臣)들에 의해 정치가 혼란해지고 부패한 승려들에 의해 교단이 타락해갈 때 일어난 운동이었다.
한편 지눌과 비슷한 시기에 요세(了世)는 강진 만덕산(萬德山) 백련사(白蓮寺)를 중심으로 무신란 이후 변화한 사회와 불교에 대한 자각과 반성을 촉구한 신앙결사로 백련결사(百蓮結社)운동을 전개해 천태종을 중흥시켰다.
*결제(結制)---안거를 시작함을 말함 - 반대말 ; 해제(解制).
*겸익(謙益)---백제 승려. 백제 성왕 4년(526년)에 인도 상가나대률사(常伽那大律寺)에 이르러 산스크리트어를 익혀 율부(律部)를 깊이 공부하고, 성왕 9년(531년)에 산스크리트어로 된 <아비담장(阿毘曇藏)>과 <오부율(五部律)>을 가지고 인도의 승려 배달다 삼장(倍達多三藏)과 함께 귀국했다. 겸익이 율장(律藏)을 가지고 돌아오자 국내의 고승들을 불러 겸익을 도와 번역케 하고 주석서를 짓게 했으며, 왕이 몸소 서문을 썼다고 한다.
*경계(境界)---여러 경전에 나오는 용어로 상황에 따라 그 뜻이 약간씩 다르다.
-모든 감각 기관에 의해 지각할 수 있는 대상, 할 수 있는 일을 가리키기도 하고,
-인식이 미치는 범위를 뜻하기도 하는데,
-정신적인 상황이나 분위기를 뜻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주변 환경의 모습을 뜻하기도 하며,
-일반사회에서는 국경, 행정구역과 같이 자기 세력이 미치는 장소나 영역을 뜻한다.
*경봉(鏡峰, 1892년∼1982년)스님---통도사 극락암에 주석하셨다. 아래는 경봉스님이 물에 대해 읊은 게송이다.
「사람과 만물을 살려주는 것은 물이다.
갈 길을 쉬지 않고 나아가는 것은 물이다.
어려운 굽이를 만날수록 더욱 힘을 내는 것은 물이다.
맑고 깨끗하며 모든 더러운 것을 씻어 주는 것이 물이다.
넓고 깊은 바다를 이루어 많은 물고기와 식물을 살리고 되돌아 이슬비가 되는 것이 바로 물이니,
사람도 이 물과 같이 우주 만물에 이익을 주어야 한다.」 물 한 가지를 가지고 사유하면서 중생을 일깨운 경봉스님의 말씀이다.
*경허(鏡虛, 1849년~1912년)스님---경허선사는 조선 말기 사람으로 조선 500년 동안 잠자던 한국 불교를 다시 일으킨 근세 최고의 선승이었다. 1849년 전주에서 태어났고, 9세 때, 경기도 과천 청계산에 있는 청계사로 출가했다. 개심사, 부석사, 범어사, 해인사 등에서 후학들을 지도하고 교화활동을 펴면서 크게 선풍을 일으키다가 마지막엔 주로 수덕사에 주석했고, 제자에 만공(滿空) 등 다수가 있다. 1대 조사인 인도의 마하가섭존자 이래 75대 조사이다.
*경절문(徑截門)---불교 수행 시 단계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본래면목(本來面目:중생이 본래 가지고 있는, 인위가 조금도 섞이지 않은 마음)을 터득해 바로 부처의 경지에 오르게 하는 법문(法門). 고려 중기의 지눌(知訥)이 최초로 이 이론을 정립했다. 지눌은 <간화결의론(看話決疑論)>을 지어서 일체의 언어와 문자, 이론과 사유를 초월해서 화두(話頭)를 잡아 활구(活句)로 증입(證入)할 것을 주장했다.
*계(戒)와 율(律)
계(戒)---어원은 산스크리트의 ‘실라(sila)’이고, 그 뜻은 악을 그치고 잘못을 예방하는 것(防非止惡)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계(s?la)란 규율을 지키고자하는 자발적인 마음의 작용, 즉 자신을 제어하는 규칙을 지키려고 부처님에게 맹세하고 결의하는 것을 말한다.
율(律)---어원은 산스크리트의 ‘우바라샤(upalaksa). 비나야(vinaya)’로서 법률의 뜻이다. 부처님께서 출가한 제자에게 악행이 있을 때마다 행위의 금지와 벌칙을 규정한 조항을 모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뜻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계는 수행자 개인이 지켜야 할 덕목이고, 율은 무리를 이룬 집단인 대중이 지켜야 할 도리를 일컫는다. ‘계’가 자발적으로 지키는 것으로 도덕과 비슷한 데 비해, ‘율’은 타율적인 규칙으로 법률과 비슷하다.
‘율’은 불교의 출가교단(出家敎團:僧團)의 교단 규칙으로 단체생활의 질서를 유지하고 입단자들은 이를 지키도록 강요되지만, 불교의 수행으로서는 이를 적극적 자발적으로 지켜야 하므로 ‘계’의 입장에서 ‘율’을 지키고, ‘계’와 ‘율’을 합해서 ‘계율’이라고 일컫는다.
*계족산(鷄足山)---쿠르키하르(Kurkihar), 인도 동부, 비하르주(州)의 비하르샤리흐와 가야의 중간에 있는 큰 불교 승원지. 사방 약 200m, 사방 40m인 2개의 유적구(遺跡丘)가 있다. 1930년의 발굴에 의해 큰 유적구에서 약 150체의 상(像, 대부분은 브론즈)을 위시해서 대좌, 수정 소탑, 종, 도기 등 230점의 단편이 출토됐다. 현장(玄?)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에 기록된 계족산이 이곳에 해당된다고 한다.
계족산---닭의 발처럼 세 가지로 나누어진 듯 생긴 산으로, 가섭이 여기서 부처님의 의발(衣鉢)을 간직하고 있다가 다음 세상에 미륵불이 나타나면 전한다고 하는 전설적인 산.
*계학(戒學)---삼학(三學)의 하나. 부처가 제정한 계율을 배우는 것을 말함. 불법을 수행해 깨달음에 이르는데 반드시 닦아야할 세 가지 배움을 삼학이라 한다. 즉 계학(戒學), 정학(定學), 혜학(慧學)이다. 이 중 계학은 마음의 청정을 지키고 말과 행실을 단속해 마음의 진실을 지켜가는 계율에 관한 것이다.
*고골관(枯骨觀 ; 白骨觀)---고골관은 시체가 썩어서 백골이 되는 모습을 보고 인생이 덧없음을 깨닫는 수행법이다. 죽음 뒤에 남는 하얀 뼈, 즉 백골을 떠올리며 자기 몸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고기송(孤起頌)---산스크리트어 Gatha를 한역한 말, 음역해서 게타(偈陀) 혹은 가타(伽陀)라고도 한다. 이는 산문(散文)은 없고 경문 전체가 운문(韻文)의 형식을 띠고 있는 것을 말한다. 대표적인 예가 26장 423게송으로 이루어진 <법구경(法句經)>이다. 같은 운문체이지만 산문체로 된 내용을 다시 압축해서 운문체로 다시 설한 것은 중송(重頌) 혹은 기야(祇夜)라고 한다.---→중송(重頌) 참조.
*고두례(叩頭禮)---머리(頭)를 조아린다(叩)는 뜻이다. 아무리 무수히 절을 한다 해도 부처님에 대한 지극한 예경의 뜻을 모두 표현할 수는 없다. 따라서 삼배 뿐 아니라 108배를 비롯 모든 절의 마지막 절 끝에 머리를 땅에 다시 한 번 조아리는 것을 고두(叩頭)의 예라 한다. 이는 자신의 발원(發願)을 빈다 해서 유원반배(唯願半拜)라고도 하는데, 무수히 예경하고픈 간절한 심정을 여기서 마치게 되는 아쉬움을 표하는 예법이라 할 수 있다. 부처님께 자신의 간절한 바람을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을 담고 있다.
*고싱가 살라(Gosingasala) 숲---부처님 생존 당시 여러 수행자들이 수행을 했던 성스러운 숲. 세존의 고명한 직제자들이 함께 고싱가 살라 숲의 동산에 머무셨다. 이 때 사리뿟따(사리불)가 “고싱가 살라 숲은 아름답습니다. 밤이면 달빛이 밝고 살라 꽃이 만개해 마치 천상의 향기가 두루 퍼져있는 것 같습니다. 도반들이여, 어떤 비구가 이 고싱가 살라 숲을 더 빛나게 하겠습니까?” 라고 물었다. 이에 제자들이 각기 나름의 답을 말했다.
그리고 제자들은 세존께 가서 누구 말이 옳은지 여쭈어 보았다. “세존이시여, 누가 가장 잘 말했습니까?” “사리뿟따여, 그대들 모두가 다 각자의 방법에 따라 잘 말했다. 이제 어떤 비구가 고싱가 살라 숲을 빛나게 하는 지에 대한 나의 말을 들어라. 사리뿟따여, 여기 비구는 공양을 마치고 탁발에서 돌아와 가부좌를 틀고 상체를 곧추 세우고 앉아서 전면에 ‘마음챙김’을 확립한다. 그는 ‘취착이 없어져서 내 마음이 번뇌에서 해탈할 때까지 이 가부좌를 풀지 않으리라.’ 라고 결심한다. 사리뿟따여, 이런 비구가 고싱가 살라 숲을 빛나게 한다.” 라고 세존께서 설하셨다. 이에 제자들은 흡족한 마음으로 세존의 말씀을 크게 기뻐했다.
---이 상은 맛지마니까야의 <마하 고상가 경(Mahagosingasalasutta)>에 실려 있음.
*고행(苦行)---고행은 선정(禪定)과 함께 고대인도 종교가들이 행하던 보편적인 수행방법이다. 불교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자이니교의 수행자는 대단한 고행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자이니교에서는 육체를 철저히 괴롭혀 육체로부터 영혼을 분리시킴으로써 영혼이 순수하게 돼 완전한 해탈을 얻을 수가 있다고 믿었다.
석존은 주로 마음을 제어하는 고행, 호흡을 중지하는 고행, 단식에 의한 고행을 했다고 전해진다. 그 결과 석존은 뼈와 가죽만 남았고, 눈이 움푹 들어갔으며, 피부는 검게 말라버려 마치 해골처럼 됐다고 한다. 간다라미술 조각품에 있는 유명한 ‘석존의 고행상’은 그 당시 석존의 모습을 상상해 작품화한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은 고행도 모두 한편에 치우친 극단이라 깨닫고, 이것을 버리고 고락 양면을 떠난 심신의 조화를 얻은 중도(中道)에 비로소 진실한 깨달음의 길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의 체험에 의해서 자각했다.
*공공적적(空空寂寂)
① 우주 만물이 모두 고정성(固定性)이 없이 비어 있어 실체가 없고, 상주(常住)하는 것이 없다는 말.
② 우주 만물이 모두 잠들어 고요하다.
③ 텅 비어 아무것도 없다. 마음이 텅 비어 매우 고요하다.
④ 번뇌나 집착이 없이 무아무심(無我無心)이다.
경전에 말씀하시기를 마음은 공공적적해 찾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다고 했다. 그리고 청화(淸華)스님은, 공공적적(空空寂寂), 즉 우주에 형상이 있는 것이나 없는 것이나 모두 그 실체가 공무(空無)하여 아무것도 분별할 것이 없으므로 분별하는 마음을 여의어라 라고 말씀하셨다.
*공교(空敎)---불교철학은 대체로, 세 단계로 시기를 나누어 설명한다. 삼시교판설(三時敎判說)이라는 것이다. 이 분류는 유식학을 석존의 교설 중에서 최상의 법문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인도 유식학파의 계현(戒賢, Silabhadra)논사가 정립한 이론으로서 제1시 유교(有敎), 제2시 공교(空敎), 제3시 중도교(中道敎, 唯識敎)의 순서로 불법이 나타났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처음 초기(제1시교) 법문을 유교(有敎)라 한다, 우리 중생 차원에서 ‘선도 있고 악도 있고 모두 있다. 나도 있고 너도 있고 모두 있다’ 이와 같이 중생의 범안(凡眼) 차원에서 알기 쉽게 하는 법문이 유교(有敎)이다.
그리고 그 다음은, 보다 높은 차원의 제2시교에서 ‘일체가 다 공(空)이다. 중생이 보는 것은 다 망령된 것이고 일체가 공이요 무상이다’ 이러한 높은 차원에서 모두를 다 부정하는 단계, 이것이 공교(空敎)이다. 반야경, 금강경 등의 사상이 이 단계에 해당한다.
제3시교는 바로 중도교(中道敎)이다. 제1시교와 같이 너와 나의 실재를 고집하는 편견과 제2시교에서 말하는 바, 일체 만법이 허망무상하다고 하는 공(空)의 한 면만을 집착하는 그릇된 견해를 부정해 인생과 우주의 참다운 실상은 유(有)의 개념과 공(空)의 개념을 초극한 중도의 묘한 이치, 곧 진공묘유(眞空妙有)의 불성(佛性) 경계를 말씀하신 가르침이다. 공의 참뜻을 중도(中道)라 해 그 중도를 긍정적으로 설명하는 제3시의 중도교(中道敎)는 유(有)와 공(空)을 동시에 드러내어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해심밀경·화엄경의 가르침이다.
*공안(公案)---공안이란 무심(無心)과 견성(見性)을 목표로 삼는 참선수행의 대명제이다. 즉 선(禪)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정진을 돕기 위해 사용하는 간결하고도 역설적인 문구나 물음인데, 주로 우주와 인생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이다.
한국불교의 참선수행도 모두 공안의 참구를 통해서 이루어질 정도로 공안은 선의 핵심이다. 일반적으로 화두(話頭)라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화두와 공안은 다르다. 화두는 공안보다 좀 더 간결하고 핵심적이다. 즉 공안은 선문답 전체를 가리키지만 화두는 그 가운데 핵심이 되는 한 구(句)를 뜻한다. 이와 같이 긴 공안 속에서 핵심이 되는 말을 화두화한 사람은 중국 송나라 시대의 대혜종고(大慧宗?, 1089~1163)선사이다.---→화두 참조.
*공양(供養)---산스크리트 푸자나(pujana)의 역어(譯語). 불 ? 법 ? 승(佛法僧)의 삼보(三寶)나 사자(死者)의 영혼에게 공물(供物)을 바치는 일. 원래는 주로 신체적 행위를 말해 왔는데, 나중에는 정신적인 것까지를 포함하게 됐다. 즉, 독경과 예불을 함으로써 숭경(崇敬)의 뜻을 나타내는 공경공양의 정신적 태도까지 포함하게 됐다.
*공업(共業)---사회의 구성원들이 함께 짓는 업을 공업이라 하는데, 사회의 분위기라든가 어떤 집단의 독특한 문화유형이나 통념 등이 이에 해당한다.
*공작명왕(孔雀明王)---불교의 보살로 밀교의 독특한 명왕 중 하나이다. 명왕은 밀교가 성립하면서 등장했고, 5세기경 공작명왕이 최초로 등장했다. 공작명왕은 독초나 해충, 독사를 잡아먹는 공작을 신격화한 것으로 모든 중생의 정신적인 번뇌를 제거해 안락함을 주는 존상으로 명왕의 일종이지만 형상이 분노형이 아니고 자비로운 보살형으로 공작을 타고 있다. 불모대공작명왕(佛母大孔雀明王), 공작왕모보살(孔雀王母菩薩) 등으로도 불리며 줄여서 공작왕. 공작명왕이라 한다.
공작은 인도의 명물인데, 공작명왕은 금색(金色) 공작을 타고 나타나며, 이 명왕은 대일여래(大日如來)의 동일체(同一體)라고 한다.
*공작명왕경(孔雀明王經, Mahanayuri-Vidyarajni)---밀교 경전, 당의 불공금강(不空金剛)이 한역했다. 경전에는 뱀에 대한 공작의 적개심이 담겨 있다. 예로부터 전래돼 온 <자타카(Jataka), 本生譚>에는 금색 공작의 호신주(護身呪)가 독사를 비롯한 갖가지 재앙을 제거하는 내용이 나온다. 여기에 밀교적인 요소가 더해져 완성된 것이 공작명왕경이다.
*공화(空華)---번뇌로 생기는 온갖 망상. 본래 실체가 없는 현상 세계를 그릇된 견해에 사로잡혀 실체가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것 - 눈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때로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마치 꽃이 있는 것처럼 잘못 보는 일에 비유한 것이다.
*과거칠불(過去七佛)---석가모니 그 이전에 세상에 출현했다고 하는 6명의 부처와 석가모니를 통틀어 부르는 말. 과거칠불은 장엄겁에 나타난 비바시불(毘婆尸佛)ㆍ시기불(尸棄佛)ㆍ비사부불(毘舍浮佛)의 3 불과, 현재 현겁에 나타난 구류손불(拘留孫佛)ㆍ구나함모니불(拘那含牟尼佛)ㆍ가섭불(迦葉佛)ㆍ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등의 네 분의 부처님을 합해 일컫는다.
불교의 교리에 따르면 누구든지 깨달음을 얻어서 불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석가모니 이전에도 깨달은 불타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불타는 오직 석가모니 한 사람일 뿐이며, 나머지 6명의 불타는 대승불교에서 과거불 사상이 전개됨에 따라 창작된 것이다.
※장엄겁(莊嚴劫)---과거(過去)ㆍ현재(現在)ㆍ미래(未來)의 3대겁(三大劫) 가운데서, 현재(現在)를 현겁(賢劫), 미래(未來)를 성수겁(星宿劫)이라함에 대해 과거(過去)의 대겁을 이르는 말.
*곽시쌍부(槨示雙趺)---세존이 쿠시나가라(ku?inagara)의 사라쌍수(娑羅雙樹) 아래에서 열반에 드신 지 이미 칠일이라, 입관(入棺)하였는데, 가섭이 늦게야 돌아와서는 관의 주위를 세 번 돌며 슬피 울자 세존께서 두 발을 관(棺) 밖으로 내보임으로써[槨示雙趺] 세존의 마음을 가섭에게 전했다는 고사(古事).) 이는 선종에서 가섭이 부처님의 법을 이어받았다고 인용되는 삼처전심(三處傳心) 가운데 하나이다. 그리고 그 곳에 숲이 사라수가 둘씩 서 있었다고 해서 사라쌍수라 한다.
*관(觀)과 견(見)
견(見)---눈으로 보는 것→견학
관(觀)---마음으로 보는 것, 사물의 본성을 꿰뚫어 보는 것→관찰
간(看)---마음을 거치지 않고 손이 먼저 나가는 것→간호사
*관견(管見)---자신의 욕망과 관심이라는 좁은 대롱을 통해서만 사물을 보는 것을 말한다. 때문에 사태의 다른 측면은 물론이고, 전체를 보기는 더욱 아득하다. 즉 중생들에게 세상은 모두 나(我)의 이미지(相)로만 존재한다. 중생은 다만 욕망과 관심이라는 색안경을 통해서만 사물을 보고, 자신의 이해관계를 기준으로 사람을 만난다.
불교는 이와 같은 세속의 좁은 새장을 벗어나 자유롭게 창공을 날아올라 거기서 세상을 조견(照見)하라는 ‘조감(鳥瞰)의 권고’이다.
*관륵(灌勒)---백제 승려. 백제 무왕 3년(602)에 천문 ? 지리 ? 역서(曆書) ? 둔갑술(遁甲術) ? 방술(方術) ? 의학 분야의 책을 일본에 전했으며, 삼론종(三論宗)을 강하고, 일본 최초의 승정이 돼, 일본 불교계의 지주가 됐다.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관무량수불경(觀無量壽佛經)>, <십육관경(十六觀經)>, <관경(觀經)>이라고도 한다. 424년에 서역 출신의 역경승 강량야사(畺良耶舍, 칼라야사)가 한역한 것이 전하고 있으며, <아미타경>, <무량수경>과 함께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의 하나로 우리나라 정토신앙의 중심 경전으로 유통되고 있으며, 사람이 죽은 뒤의 세상을 가르친 경이다.
부처님 생존 당시 인도 마가다국의 아사세(阿?世)태자가 부왕인 빈비사라를 가두고 왕위를 찬탈하려 하므로 모후인 위제희 왕후가 몰래 왕에게 음식을 가져다주어 목숨을 연명하게 했다는 내용이다. 왕후는 석가모니가 있는 곳을 향해 지성으로 예배하고 교화해 주기를 빌었다. 이에 석가모니는 극락세계를 보여주고 16관법을 일러주어 왕비와 시녀를 깨닫게 했다. 왕비는 16관법 등의 법문을 듣고 생사를 초월한 무생인(無生忍)의 경지에 이르렀으며, 500인의 시녀들은 극락 왕생하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켰다고 한다.
이 경의 중심내용을 이루고 있는 16관법은 지는 해를 보고 극락세계를 관하는 일상관(日想觀), 극락세계의 대지가 수면이나 얼음처럼 평탄함을 관하는 수상관(水想觀) 등의 16가지 관법으로서,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시대에 정토신앙이 성행하면서부터 널리 행해졌던 관법이다.
*관문상(慣聞想)---누구나 아는 쉬운 것이라고 해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 ‘그것쯤이야 다 아는 것인데’ 하듯이 함부로 용이심(容易心)을 내는 것을 말한다. 반대말 ; 현애상(縣崖想)
*관법(觀法)---불교의 정신적 수도의 한 방법. 일종의 관조(觀照)하는 방법이다. 지혜로써 대상을 있는 그대로 자세히 주시하는 수행. 마음으로 마음의 본성을 자세히 살피는 수행. 어떤 현상이나 진리를 마음속으로 떠올려 그것을 자세히 살피는 수행. 한 생각만 주시해 한결같이 그것을 잊지 않는 수행 등 16관법이 있다.
*관불(灌佛)---불상을 물로 깨끗이 씻는 것. <보요경(普曜經)>에 의하면 부처님이 탄생할 때 9마리의 용(龍)이 갓 태어난 아이를 향수로 목욕시켰다는 기록에 근거하고 있다. 관욕(灌浴), 욕불(浴佛)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부처님의 형상을 깨끗이 씻으면 자신의 마음에 쌓인 죄와 번뇌를 씻고 맑고 깨끗해지며 복을 누리게 된다고 알려져 있다.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구마라습은 관세음(觀世音), 현장은 관자재(觀自在)라 번역했고, 달리 관세음자재(觀世音自在), 광세음(光世音) 등으로 불리며, 줄여서 관음(觀音) ? 관세음(觀世音) ? 관음보살(觀音菩薩)이라고도 한다.
헌데 산스크리트어로는 아바로키테스바라(Avalokitesvara)라 하며, ‘아바로키타’는 관(觀)하다는 뜻이고, ‘이스바라’는 신(神) 또는 자재천(自在天)이란 의미이다. 그리고 관세음은 세간의 음성을 관(觀)한다는 뜻이고, 관자재라 함은 지혜로 관(觀)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관자재(觀自在)라고 번역하는 것이 좀 더 정확한 편이지만 큰 차이가 없으므로 문제될 것은 없고, 우리나라에서는 관세음보살로 일반화돼 있다.
인도에서 관세음보살 신앙이 형성된 시기는 1세기말 무렵이며, 3~7세기경 북부 지방에서 가장 성했고, 2세경 인도에서 서역(西域)을 거쳐 중국에 전해졌는데, 6세기경에는 모든 불교사원에서 관음상을 모실 정도로 널리 퍼졌다.
대자대비(大慈大悲)를 근본 서원(誓願)으로 하는 보살이며, 현세에 이익을 주는 보살로 알려져 불신도들에게 영향력이 대단히 크다. 관세음보살의 형상은 머리에 보관을 쓰고 있으며, 손에는 버드나무가지 또는 연꽃을 들고 있고, 다른 손에는 정병을 들고 있다. 천변만화하는 형태를 띠므로 보문시현(普門示現)이라고 하며, 천수관음(千手觀音), 32면관음의 모습으로 나타나 중생을 구제한다고 한다. 화엄경에 의하면 관세음보살은 인도의 남쪽에 있는 보타락가산(普陀洛迦山)에 머문다고 한다.
*관심론(觀心論)---① 수(隋)의 지의(智?)가 지은 관심론. ② 당(唐)의 신수(神秀)가 지은 관심론이 있으나 ③ 달마 관심론(達磨觀心論)이 가장 유명하다.
2조 혜가(慧可)가 달마대사께 여쭈었다. 불도를 구하려면 어떤 법을 닦아야 가장 요긴합니까 라고 묻자, 달마대사는 관심법이 가장 요긴하다고 대답했다. 마음을 관하는 법이 모든 행을 다 포섭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관심법이란 자기 마음을 언제든지 잊지 않고 들여다보고 비춰 보는 방법으로서, 이 법 말고 다른 법은 없다고 했다.
*관음경(觀音經)---<법화경(法華經)> 제25「관세음보살보문품(觀世音菩薩普門品)」을 독립된 경으로 만든 것이다. 중국 서진(西晋)의 담마라참(曇摩羅讖)이 당시 둔황(敦煌) 지방을 지배하던 하서왕(河西王) 저거몽손(沮渠蒙遜)이 병으로 고생하는 것을 보고 <보문품>을 외우라고 권했고, 이 경을 읽고 건강을 회복한 저거몽손왕이 <보문품>을 널리 유통시키면서 <관음경>이라 이름 했다.
*관음선종(觀音禪宗)---미국에 불교를 선교함에 있어서, 한국 불교의 전통은 살리면서 서양인들에게 알맞은 한국불교를 새로이 만들어야 했다. 그것이 바로 조계종 소속이면서 미국에 선교했던 숭산(崇山)선사가 설립한 관음선종이다.
관음선종의 특징은 미국적 환경에 맞추어 재가불자도 승복을 입을 수 있도록 했다. 또 조계종 계율이 금욕을 요하지만 관음선종에서는 기혼, 미혼의 재가자에게 다 스님의 계를 내려주고 선사가 될 수 있도록 했다.
*관정(章安灌頂, 561-632)---→장안 관정 참조.
*관정(灌頂)---밀교에서 행하는 일종의 물에 의한 세례의식이다. 밀교에서 여러 수행을 마친 승려가 아사리의 지위에 오를 때 행하는 의식이다. 또 아사리가 제자 승려에게 법을 전할 때 행하는 의식을 말하기도 한다.
고대 인도에서 국왕이 즉위할 때 바닷물을 머리에 부어서 축하하는 의식을 관정이라고 했는데 그것을 불교에서 받아들인 것이다.
*관조(觀照, contemplation)---대상을 사량 분별심(思量分別心)이나 논리적 사변(論理的思辨)에 의하지 않고, 반야의 지혜로써 사리를 바르게 비추어 보아 밝고 확실하게 깨닫는 것.
*관조반야(觀照般若)---실상반야(實相般若) ? 문자반야(文字般若)와 함께 삼반야라 하며, 관조반야는 현상계의 실상(實相)을 관조하는 지혜를 말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실상은 모든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며, 나아가 진실 ? 불변의 이치 곧 모든 존재의 진실한 존재양식을 말한다. 따라서 실상은 부처님의 깨달음의 내용을 가리키는 일여(一如) ? 실성(實性) ? 열반(涅槃) ? 무위(無爲)와 같은 뜻이다. 이와 같이 현실과 본질을 별개의 것으로 보지 않고 완전히 하나로 조화된 세계로 보아서, 현상 즉 실재, 차별 즉 평등으로 보는 것이 관조이며, 이러한 관조가 바로 반야지(般若智)라고 한다.
자동차 정비공이 엔진 소리만 듣고 무엇이 고장인 것을 정확히 꼬집어 내어 고쳐서 자동차가 잘 운행될 때 이것이 일종의 관조반야가 되는 것이다. 엔진 소리는 현상이고 고장난 부분은 실상이다. 그리고 의사가 환자 얼굴만 보고 무슨 병인지 정확히 진단해 처방을 내서 환자가 완치됐으면 이것도 역시 일종의 관조반야이다. 환자의 얼굴은 현상이고 환자가 아픈 부분은 실상이다. 다만 불교에서 말하는 관조반야는 생명의 실상을 관조해서 알아내는 지혜인 것이 다를 뿐이다.
*광명진언(光明眞言)---당(唐) 나라 때 불공(不空, Amoghavajra)이 번역한 경전인 <불공견색비로자나불대관정광명진언경(不空?索毘盧遮那佛大灌頂光明眞言經)>에 실려 있다. 경의 이름을 줄여서 <대관정광진언경(大灌頂光眞言)> 또는 <광명진언경(光明眞言經)>이라 하는데, 680자 가량의 소본이다.
광명진언은 바이로차나(Vairocana, 비로자나불)법신의 진언이고, 모든 불보살의 총주(總呪)이며, 그 의미도 부처님의 한량없는 자비와 지혜의 대광명을 기원하는 것이다. 살아있는 이와 죽은 이 모두에게 새로운 태어남을 얻게 하는 신령한 힘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광명진언은 어두운 카르마를 몰아내는 진언이다. 악귀나 잡귀도 광명 진언 속에서는 빛이 어두움을 소멸시키듯이 흔적 없이 사라진다고 한다.
주문은 <옴 아모카 바이로차나 마하무드라 마니파드마 즈바라 프라바릍타야 훔>이다.
그 뜻은 “비로자나 법신의 광명으로 무명과 업장을 걷어내고 자성의 밝은 본성이 드러나게 한다.”이다. 따라서 수행 중에 장애가 생길 때, 과거의 습관이나 업장을 조복받기 위해서, 또는 과거의 잘못을 참회할 때 이 진언을 한다.
① 옴(OM)---모든 진언의 근본 음이며 부처님께 귀의하는 귀명의 의미임.
② 아모카(amogha) ---불공(不空)을 성취하신 불공성취여래이시여!
③ 바이로차나(vairocana)---비로자나 부처님(大日女來).
④ 마하무드라(mahmudra)---마하는 큰(大), 무드라는 도장 인(印)이므로 대인(大印)으로 번역된다. 대인은 대 우주의 도장, 진리의 도장이다. 이 도장은 아주 결정적인 것이어서 ‘결코 변동이 있을 수 없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⑤ 마니(mani)---마니보주(摩尼寶珠)로서, 무엇이든 하고자 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해서 여의보주(如意寶珠)라고도 하며, 모든 불행과 재난을 없애주고 탁한 물을 맑힌다고 해 수청주(水淸珠)라고도 한다.
⑥ 파드마(padma)---연화(蓮花), 곧 연꽃이다. 연꽃을 지니신 아미타여래.
⑦ 즈바라(suvara)---광명(光明)이다. 생사윤회의 원인인 미혹의 어둠을 한 순간에 없애주는 광명을 뜻한다.
⑧ 프라바를타야(pravarttaya)---전변(轉變)한다는 뜻이다. 나의 본심, 보리심, 진심, 일심을 개발해 생사의 고해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⑨ 훔(hum)---완성, 성취의 의미를 지닌다. 미혹과 더러움을 벗어나 청정과 밝음을 이루고 본심, 보리심, 진심을 회복해 가졌다라고 해석하면 된다. 진언의 마무리 근본 음. 부처님께 감사와 귀의를 다짐하는 소리.
*광박신여래(廣博身如來)---대일여래의 딴 이름. 그 몸이 광대해서 법계의 사물을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광음천(光音天)---색계 십팔천(色界十八天)의 여섯째 하늘. 이선 삼천(二禪三天)의 셋째 하늘. 이 하늘 중생은 음성이 없고, 말할 때는 입으로 광명을 내어 말의 작용을 하므로 광음천이라 이름 한다.
*광통율사(光統律師)---AD5~6세기 중국 북위(北魏)의 승려. 당시 북위에 머물던 달마대사(達磨大師)을 질투해 보리류지(菩提流支)와 더불어 달마대사를 독살했다고 한다. 헌데 달마대사는 독살 당한 뒤 관속에 두 짝의 신발만 남기고 서천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굉지 정각(宏智正覺, 1091~1157)---대혜 종고(大慧宗?)선사와 더불어 송대의 선종을 대표하는 대선사이다. 굉지 정각선사는 조동종(曹洞宗)의 제10대 조사로서 당대 말기에 형성돼 300여 년 동안 전승된 조동의 가풍에다 묵조선(默照禪)이라는 새로운 수행법을 가미해 조동종의 묵조선을 대성했다. 이것은 임제종(臨濟宗) 양기파의 대혜 종고에 의해 형성된 간화선(看話禪)과 거의 때를 같이 한 것으로 이후 선종의 역사에 큰 기여를 했다.
*교관겸수(敎觀兼修)---고려시대의 대각국사 의천(義天)의 주장으로, 불교에서 교리체계인 교(敎)와 실천수행법인 지관(止觀)을 함께 닦아야 한다는 사상이다.
*교상판석(敎相判釋)---중국에 불교가 처음 들어왔을 때, 근본불교 경전과 부파불교 경전, 그리고 대승불교 경전들이 순서 없이 한꺼번에 들어왔다. 따라서 경전 간에 모호한 차이도 있고, 상호 모순도 있으며, 중국인들의 입장에서는 외국의 낯선 문화라서 난해한데다가 경전마저 뒤섞여 있어서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그리하여 중국인 나름으로 그들의 입장에서 불교경전을 분류한 것을 교상판석이라 한다. 줄여서 교판(敎判)이라 약칭하기도 하는데, 경전 성립의 순서는 무시한 채 경전의 성격에 따라 분류를 한 것이다.
그런데 요즘과 같은 문헌학적인 연구가 전무했던 당시 중국에서 과학적 근거 없이 종파별로 자기네에게 유리하도록 해석했기 때문에 오히려 중국의 독자적 문헌조작이라는 혹평을 받기도 하며, 지금은 잘못된 것이라 비판되고 있다.
*교외별전(敎外別傳)---선종(禪宗)에서 말이나 문자를 쓰지 않고, 따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진리를 전하는 일을 말한다. 달마(達磨)에 의해 중국에 전해진 조사선(祖師禪)에서는, 불교의 진수는 어떤 경전의 문구에도 의하지 않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직접 체험에 의해서만 전해진다고 했다. 이는 불립문자(不立文字), 직지인심(直指人心)과 함께 선의 입장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말이다.
*교장총록(敎藏總錄)---고려시대 대각국사 의천(義天: 1055~1101)이 중심이 돼 초조대장경이 완간된 뒤 고승들에 의해 씌어진 장 ? 소(章疏)를 모아 편찬한, 소위 속장경(續藏經)으로 일컬어지는 불경 해석서이다. 원제는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이고, 줄여서 교장(敎藏)이라 한다. <교장총록>은 서역 ? 중국을 통해 들어온 경(經) ? 율(律) ? 논(論) 삼장(三藏)의 정본(正本) 이외의 주석서인 장 ? 소(章疏)만을 수집해 편찬했으므로 정식 대장경은 아니다.
고려 문종(文宗) 대에서 선종(宣宗) 대까지 25년간 장구한 시간을 두고 국내는 물론 송(宋) ? 요(遼) ? 일본(日本) 등지까지 산재한 주석서를 최대한으로 수집한 대단한 불경 해석서이나 몽고 침략 때 모두 소실돼 현재 전하지 않는다.
*교종(敎宗)---오직 부처님 말씀을 기록한 경전만이 불교 신행의 근거이므로 법보(法寶)인 경전을 신행의 의지처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아가서 교종에서는 경전 중에서도 <화엄경>이 최고 경전이라 해서 이를 소의경전으로 해서 화엄종이 생겨났고, <법화경>이 부처님의 진실한 의중(意中)과 가르침이 담긴 경전이라 해서 이를 소의경전으로 해서 법화종, 천태종 등이 생겨났다.
*구게왕국(Guge, 古格王國)---9세기 티베트의 토번(吐蕃)왕국이 분열된 뒤 성립된 지방 정권으로 비교적 세력이 강성한 국가였다. 강성했을 때는 서쪽으로 캐시미르 일대와 지금의 파키스탄 일부까지도 지배했다고 하며, 중심지는 히말라야 산맥 북서부 지금의 티베트와 라다크 중간 지대였다.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척박한 산에 토굴을 파고 살았으며, 이런 독특한 지형에 적응해 살면서도 그들이 꽃피운 불교미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700년을 이어오던 왕국은 1635년 라다크 군대의 침공을 받고 패망했다.
*구경(究竟)---최고의 경지를 이룩한 것을 일컫는다. 헌데 그 외에도 불교 문헌에 있어서 한역어(漢譯語)로서의 구경(究竟)은 다음과 같이 여러 가지 뜻을 지닌다.
① 성취, 달성, 완성, ② 끝에까지 이르는, 지극(至極), 완전한, 궁극에 도달함. ③ 마침내, 결국, 최종의 극치, 최종의 귀결처, 최상, 그 위에 더 없음. ④ 철저하게 체득함, 최후에 이른 곳, 최후의 목적, ⑤ 구경위(究竟位)의 준말로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는 지위 등을 말한다.
*구경각(究竟覺)---보살의 수행이 원만해 궁극적이고 완전한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는 경지를 이른다. 즉 석가모니 부처님과 같은 완전한 깨달음을 일컫는다.
<보살지진 원리미세 득견심성 명구경각(菩薩地盡 遠離微細 得見心性 名究竟覺) = 보살지가 다해, 멀리 미세망상을 떠나면, 마음의 성품을 볼 수 있으니, 이것을 구경각이라 한다>. 보살이 수행을 해서 마침내 십지(十地)의 등각(等覺)을 넘어서서 가장 미세한 망상인 제8아뢰야식(阿賴耶識)의 근본 무명(無明)까지 완전히 다 떨쳐버리면 진여(眞如)가 나타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게 되는데, 그것이 견성이고 ,구경각이며, 이것을 묘각(妙覺)이라고도 한다. -대승기신론-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Gunabhadra, 394~468)---중부 인도 출신의 승려. 공덕현(功德賢)이라고도 한다. 바라문 출신이었으나 대승불교를 공부했다. 435년에 해로로 남조의 송(南宋 = 劉宋)으로 와서 경전 번역에 종사해, <잡아함경>, <승만경>, <능가경> 등을 번역했다.
*구두선(口頭禪)---조사의 어록(語錄)들에 담겨있는 구절의 참뜻을 체득하지 못하고 언구(言句)에 현혹돼 마치 깨달음 얻은 양 입으로만 떠드는 것을 말한다. 간화선을 입으로만 수행하는 구두선이라고 매도하는 선어(禪語)인데, 이 구두선의 폐해 때문에 야호선(野狐禪)이니 앵무새선이니 하는 유사한 선어들도 나왔다. 문자선(文字禪)이나 의리선(義理禪)과 같은 말이다.
*구루요가(Guru Yoga)---구루는 산스크리트어로 영혼의 스승(mentor)을 의미한다. 구루 요가는 스승과 하나 되기 명상이다. 즉 명상으로 스승을 심상화(心象化, visualization)하는 수행법이 구루 요가이다. 스승이 나의 속으로 들어오기를 청하고, 그의 신성한 모습을 시각적으로 상상하며, 그와 하나로 결합하는 수행이다. 상상 속에서 스승과 결합하면, 나와 스승은 더 이상 둘이 아니다. 내가 스승이 되고, 내가 붓다가 된다.
이상으로 볼 때, 구루요가란 참된 스승을 찾아서 스승과 살아 있는 관계를 맺고 진리의 가르침대로 따라 사는 것이다. 즉 구루의 본성과 하나가 되기 위한 수행법으로 이 수행을 통해서 스승의 깨달은 마음과 자신의 마음이 계합되는 방법을 얻는다. 티베트 불교 수행의 진수는 ‘구루요가’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류중생(九類衆生)---<금강경>에 나오는 말이다. 일체중생의 종류를 난생(卵生), 태생(胎生), 습생(濕生), 화생(化生), 유색(有色), 무색(無色), 유상(有想), 무상(無想), 비유상 비무상(非有想非無想)의 아홉 가지로 분류함을 말한다.
*구마라습(鳩摩羅什, 344~413)---그의 아버지는 인도인이며, 어머니는 구자국(龜玆國) 왕의 누이였다. 그는 7세에 출가해 9세 때에 대승을 닦았으며, 여러 스승들에게서 배움을 거듭하고 구자국으로 돌아온 뒤로는 대승불교의 선양에 전념했다. 그리고 그의 명성은 서역제국은 물론 중국에까지 알려졌다.
이에 전진(前秦)의 왕 부견(符堅)은 구마라습을 데려올 욕심으로 383년 여광(呂光)을 시켜 구자국을 치게 했다. 그리하여 여광이 구마라습을 데리고 귀국 길에 올랐으나 그 사이 전진이 패망했으므로 여광은 고장(姑臧)이란 곳에 머무르면서 독립해 왕위에 올랐다. 이에 구마라습도 여광 밑에 열다섯 해를 보냈으나 401년 후진(後秦=姚秦)의 요흥(姚興)이 여광을 쳐서 구마라습을 데리고 장안으로 와서 국빈으로 대우했다.
그는 <반야경>, <법화경>, <유마경>, <미타경> 등의 여러 대승경전과 <중론>, <십이문론>, <대지도론> <십주비바사론>, <성실론> 등 경전과 논서 70부 384권을 역출함으로써 중국 불교 발전에 획기적인 공헌을 했다. 특히 대승론부는 이때에 처음으로 중국에 전해졌고, 격의불교(格義佛敎)를 극복하기 위해 애썼다.
*구사론(俱舍論)---5세기 무렵 인도의 승려 바수반두((Vasubandhu, 世親)가 저술한 불교 논서. 원명은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이다. 중국 당나라의 현장(玄?)이 한역했으며, 소승불교의 기초적 논부(論部) 가운데 하나로 중시돼 왔다.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의 아비달마 사상을 상세히 밝히고 있으며, 특히 많은 불교술어에 대해 명쾌한 정의를 내리고 있다.
<구사론>을 계승한 것으로 상가바드라(Samghabhadra, 衆賢이라고 한역)의 <아비달마순정리론>과 <아비달마장현종론>이 있다. 이 두 가지 논서는 운문의 부분에서는 구사론의 그것을 거의 그대로 채용하지만 산문으로 된 해설부분에서는 바수반두의 학설을 엄격히 비판해 정통파 설일체유부의 학설을 선양하려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구족(具足)---빠짐없이 고루 갖추었다는 뜻.
*구화산(九華山, 해발 1,342m)---중국 4대 불교 명산의 하나로서, 중국 내륙의 산악지대인 안휘성 청양현에 위치해 있다. 신라 제33대 성덕왕의 아들 김교각(金喬覺, 697년~794년) 스님이 성불하신 곳이다. 구화산 월신보전(月身寶殿)에 모신 남무대원 지장왕보살(南無大願地藏王菩薩)이 바로 신라 출신 김교각 스님이다.
※중국 불교 4대 성지 - 산서성 오대산(2,893m, 문수보살 성지), 사천성 아미산(3,099m, 보현보살 성지), 절강성의 보타산(291m, 관음보살의 성지), 그리고 이곳 안휘성의 구화산(1,342m, 지장보살 성지).---→김교각(金喬覺) 참조.
*군다리보살(軍茶利菩薩)---천수경에 나오는 보살. 보배병을 들고 있으며, 일체 고액을 제도해 주는 일을 맡아서 자비를 펴는 보살이다. 즉 우주의 중심에서 파멸과 고통을 일으키는 악마들을 엄히 막아내고 선(善)을 굳건히 지켜가는 임무를 담당하는데,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미 급한 보살이다. 불교가 힌두교의 영향을 받아 불교에 편입된 대표적인 보살이다.
*군맹(群萌)---중생을 무리 지어 나는 풀에 비유한 말.
*굴다삼장(堀多三藏)---서역(西域) 출신의 승려로 육조 혜능대사(慧能大師)의 제자.
*귀자모(鬼子母)---어린아이를 수호하는 신. 본래 아이들을 잡아먹는 나찰귀신이었으나 부처님이 그녀의 막내아들을 감추고 교화한 결과 부처님께 귀의했음.
*규기(窺基, 632~682)---법상종(法相宗)의 개조. 자은대사(慈恩大師) 혹은 대승기(大乘基)라고도 한다. 17세에 출가, 현장(玄?)의 제자가 됐으며, 28세 때 스승을 도와 <성유식론(成唯識論)>을 번역했고, 반야심경의 주석서인 <반야바라밀다심경유찬>과 <성유식론술기(成唯識論述記)>를 저술했다.
*근기(根機)---쉽게 말하면 소질인데, 불교에서는 부처님의 교화를 받을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부처님께서는 상대의 근기에 따라 법문을 설하셨는데, 근기가 천하고 하열(下劣)한 사람에게는 아함경(阿含經)을 설하시고, 근기가 수승(殊勝)한 사람에게는 방등경(方等經), 반야경(般若經), 법화경(法華經) 등을 설하셨다.
*근본지(根本智)---무분별지(無分別智) 혹은 실지(實智)라고도 함. 번뇌와 망상을 일으키지 않는 지혜. 모든 분별이 끊어져 판단이나 추리에 의하지 않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며 집착하지 않는 지혜. 주관과 객관의 대립을 떠나 모든 존재의 있는 그대로의 진실한 모습을 밝게 아는 지혜 = 일심(一心). 반대말 후득지(後得智).---→후득지 참조.
*금강(金剛)---금강은 금속 중에서 가장 단단하다는 뜻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예리하기 때문에 불교의 경론 속에서 굳고 단단한 것의 비유로 쓰이고 있다.
*금강계단(金剛戒壇)---불사리(佛舍利)를 모시고 수계의식(授戒儀式)을 집행하는 장소. 금강보계(金剛寶戒)에서 유래된 말로 금강과 같이 보배로운 계라는 뜻이다. 번뇌를 극복하는 방법으로서 불교는 전통적으로 계(戒) ? 정(定) ? 혜(慧)의 삼학(三學)을 제시한다. 그 가운데 계를 가장 강조하면서 부처의 현존(現存)을 상징하는 불사리를 모시고 의식을 집행하는데, 그 의식 장소로 조성한 것이 금강계단이다. 이 계단은 인도에서 유래됐고, 우리나라에서는 자장(慈藏)율사가 당나라에서 불사리를 얻어 귀국한 후, 통도사를 창건하면서 이 계단을 만든 것이 최초이다. 통도사 금강계단 - 국보 제290호. 비슬산 용연사(龍淵寺) 금강계단 - 보물 제 539호. 덕유산 백련사 금강계 - 전라북도 기념물 제42호.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조계종의 소의경전(所依經典)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반야심경> 다음으로 많이 읽히는 경전이며, 보통 <금강경(金剛經)>이라 한다. 중국 후진(後秦) 때에 구마라습(鳩摩羅什)이 한문으로 번역했으며,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 초기에 전래됐고, 고려 중기에 지눌(知訥)이 불교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의 입법(立法)을 위해서 반드시 <금강경>을 읽게 한 뒤부터 널리 유통됐다.
주요내용은 부처님이 사위국(舍衛國)에서 십대(十代) 제자 중 한 사람인 수보리(須菩提)로부터 물음을 받고 사람들을 위해 공(空)과 혜(慧)로서 체(體)를 삼고, 일체법(一切法) 무아(無我)의 이치를 설한 경전이다.
*금강살타(金剛薩陀, vajrasattva)---밀교에서 중요시하는 보살임. 지금강(持金剛)ㆍ집금강(執金剛) ? 금강수보살(金剛手菩薩) 등의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금강살타란 말은 범어의 ‘바주라사트바(vajrasattva)’를 번역한 것이다. ‘vajra’가 금강이란 말로 의역됐고, ‘sattva’가 살타란 말로 음역돼, 이것이 합쳐져서 ‘금강살타’가 된 것이다.
금강살타라고 했을 때, 이것은 진리 그 자체인 대일여래와 중생을 포함하는 존재임과 동시에 대일여래와 중생을 연결하는 접점에 있는 초인적 존재이다. 탱화의 경우 오른손에 방편을 뜻하는 도르제(Dorje, 금강저/金剛杵)를 들고 있고, 오른손엔 지혜를 뜻하는 딜부(drilbu, 요령/搖鈴)을 들고 있다.
*금강삼매경(金剛三昧經)---교리의 논리적 전개보다는 문자와 문구를 매개로 해 깊은 선정을 요구하는 데에 그 주안점이 있다. 따라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마음을 찾아가는 길을 제시해 놓은 경전이다. 즉, 본래의 자기를 보기 위해 마음 찾아 삼매 드는 길 제시했으며, 압축된 문장이 특징이다.
마음의 고요는 어떤 지식적인 매개체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삼매에 들 때에만 누릴 수 있다. 이 삼매를 중심으로 설해진 경전이 금강삼매경이다. 이 경은 7세기 전후 당나라에서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중국 남북조 시대부터 당나라 때까지 나타났던 문제된 여러 설과 교리를 총말라해서 엮었고, <대승기신론>의 논리를 기본적인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에서 위찬(僞撰)된 것이라고 전하나, 신라에서 재편성된 것으로도 추정하며, 원효(元曉)대사가 지었다는 설이 있다. 원효대사는 왕과 고승들 앞에서 금강삼매경을 강론해 존경을 받았다는 말이 전한다.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금강삼매경>에 대한 해석서. 신라의 고승 원효(元曉)대사가 지었다. 불교 전반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이는 <금강삼매경>을 이해하기가 어려운데, 원효는 이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주석서를 쓴 것이다. <금강삼매경론>은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와 더불어 원효의 다수의 저서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저서이다.
*금강승(金剛乘 = 密?, Vajrayana)---밀교를 금강승이라 하는데, 탄트라 불교(밀교)라고도 한다. 금강승은 피안의 저 언덕을 넘어가는데 금강 수레라서 반듯이 넘어간다는 뜻이다. 금강승은 사변적인 대승불교의 사상으로부터 개인 삶에서의 불교사상의 실현으로의 전환을 의미했다.
*금강역사(金剛力士, Vajrapani)---원래 인도의 신화에 등장하는 역사로서 코끼리 60만 마리의 힘을 가진 역사이며, 어떤 거짓도 허용할 수 없게 진실을 꿰뚫어 보는 눈을 가졌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눈을 금강안(金剛眼)이라 한다. 한편 금강역사는 문을 지키는 야차(夜叉)이기도 한데, 불교에서는 이를 인왕(仁王)이라 해 불법을 지키는 신으로 받아들였다.
*금강저(金剛杵, vajra)---불교의식에 사용하는 불구(佛具)의 하나. 원래는 제석(帝釋)의 전광(電光:번개)에 붙였던 이름이었으나 점차 여러 신들이나 역사(力士)가 지니는 무기를 가리키게 됐다. 금강저는 힘을 나타내는 무기로 삿된 것들을 모두 쳐부수는 강력한 무기이다.
*금강정경(金剛頂經)---밀교 경전. 정확한 명칭은 <금강정 일체여래 진실 섭대승 현증대교 왕경(金剛頂一切如來眞實攝大乘現證大敎王經)>이고, 명칭의 의미는 여러 경전 중 최고이며, 모든 여래의 진실을 수록한 실천규범의 왕경(王經)라는 뜻이다. 금강정경은 대일경(大日經)보다 약간 늦게 AD 670~690년(7세기 말엽)경 동남부 인도에서 성립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대일경보다 밀교의 교의를 정교히 만들었다.
*금강지(金剛智, Vajrabodhi, 바쥬라보디, 671~741)---남인도 출신의 승려로 720년 중국 당나라 시대 뤄양(洛陽)에 들어가 밀교를 크게 펼쳤다. 그와 같은 시대의 밀교 승려인 선무외(善無畏)가 <대일경(大日經)> 등을 번역한 데 반해 금강지는 <금강정경(金剛頂經)> 등 8부 11권의 밀교경전(密敎經典)을 번역했다. 이 두 승려에 의해 당나라 때 밀교 종파가 성립됐다.
*금당(金堂)---한 사찰의 중심이 되는 주불전을 말한다.
*금시조(金翅鳥)---인도 신화에 나오는 새. 산스크리트 명은 가루다(Garuda)이다. 새 중에 왕이며, 지상에서 가장 힘이 센 동물인 용을 잡아먹고 사는 하늘을 나는 동물의 왕이다. 독수리와 유사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머리와 날개가 황금빛을 발하고 있다. 날개의 색깔은 봉황과 같이 아름답고 화려하며 날개를 펴면 3백 60리나 된다고 한다.
*금어(金魚)---불화나 불상을 조성하는 무리들의 우두머리. 불화를 제작하는 이들을 불모(佛母), 화사(畵師), 화승(畵僧) 등 여러 가지로 부르는데, 이 중 으뜸이다.
*금타(金陀)스님(1898-1948)----20세 이전 장성 백양사에서 송만암(宋曼庵) 스님을 은사로 출가, 불교전문대학을 졸업, 39세에 내장사 벽련암(碧蓮庵)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근본불교를 철저히 닦았으며. 현대물리학, 불교역사와 철학을 깊이 연구했으나 50세 때 대중들이 탁발 나가고 시봉 몇 분 만 남았을 때 갑자기 열반했다.
주로 백양사 운문암에 주석했으며, 일제의 식민통치와 해방 후의 혼돈 속에서 자신을 철저히 감추고 불같이 살다 가신 분이다. 박학다식(博學多識)하고, 모든 경전을 섭렵했기에 금타스님의 저서 <금강심론(金剛心論)>만 읽으면 모든 경전을 다 읽은 것과 같다고 할 정도였다. 특히 수행위차(修行位次)에 있어서 금타스님은 성문십지(聲聞十地) , 보살십지(菩薩十地) 또는 오십오위나 오십육위, 그런 여러 가지 위차를 대비하고 회통(會通)해 해탈십육위(解脫十六位) 하나의 체계를 세운 것으로 유명하다.
*급고독(給孤獨)---산스크리트어 an?thapi??ada(아나타 핀디카). 중인도의 사위국(코살라국;舍衛國)의 장자이자 대신이었던 수달(須達, sudatta, 수다타)의 별명.
부처님께서 마가다국 왕사성의 죽림정사(竹林精舍)에 계셨을 때 급고독(給孤獨)이 죽림정사로 찾아가서 부처님께 자기네 나라인 사위국에 가서도 설법을 해 달라고 부탁하면서 정사를 지어드리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부처님이 정사가 완성되면 가겠다고 약속을 했다. 급고독이 귀국 후 마가다국의 기타태자(祇陀太子)와 더불어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기원정사/祇園精舍)를 지어 붓다에게 바쳤다. 급고독은 원래 배화교 신자였다가 부처님 제자가 됐는데, 그의 집은 큰 부자로서 재보가 한량없었고, 어려운 이에게 항상 옷과 음식을 베풀었다고 한다.
*기바(耆婆, 지바카/j?vaka)---고대 인도의 이름난 의사. 아버지는 알 수 없고, 어머니는 왕사성(王舍城)의 창녀 살라바티(s?lavati)이다. 그녀는 아들을 낳아 쓰레기 더미에 버렸는데, 그 곁을 지나던 빔비사라(bimbis?ra) 왕의 아들 아바야(abhaya)가 데려다 양육했다. 펀자브(Punjab) 북쪽 지역에 있던 건타라국(乾陀羅國)의 탁샤실라(tak?a?ila)에 가서 7년 동안 의술을 배운 후 부처님께 귀의해 부처님의 풍병을 고쳐서 의왕(醫王)이라고까지 칭송됐다. 특히 아사세왕이 아버지 빔비사라왕을 살해한 뒤 뉘우치는 모습을 보고 부처님께 귀의시켰다.
*기복불교(祈福佛敎)---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복을 구하거나 비는 불교의 한 모습. 불교가 민간신앙을 흡수해 대중화되는 과정에서 생겼다. 복을 구하는 행위나 생각은 종교의 본질적인 것이라 할 수 있으나, 기복이라는 말을 종교 앞에 붙인 경우에는 좋지 않은 뜻으로 쓰인다.
우리나라 사찰에는 기복불교로 여길 수 있는 신앙대상이 많은 편이다. 주로 산신이나 칠성신 등 아들 낳기를 기원한다거나 사업의 성공, 대학입시 합격 등과 관련된 신앙대상을 찾는 미신에 가까운 불교가 기복불교이다. 이 같은 기복신앙은 진정한 불교의 가치를 잊게 한다. 자칫 종교 본래의 이타적 성격을 도외시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기세계(器世界)---기세간(器世間)이라고도 한다. 즉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이다. 모든 중생을 수용하는 세간으로서 우리가 살고 있는 산하대지 등의 물질세계를 모두 포함하는 우주를 말한다.
*기야(祇夜)---산스크리트어 geya, 팔리어 geyya의 음사. 중송(重頌)이라 번역. 경전의 서술 형식에서 산문체로 된 내용을 다시 운문체로 설한 것.---중송(重頌), 게송(偈頌) 참조.
*기연(機緣)---계기(契機), 동기(動機)와 비슷한 말. 깨달음을 얻게 된 동기, 깨닫게 된 계기를 말한다.
*기원정사(祇園精舍, 범어로 Jetavana)---부처님께서 마가다국 왕사성의 죽림정사(竹林精舍)에 계셨을 때 중인도의 사위국(코살라국;舍衛國)의 장자 급고독(給孤獨;아나타 핀디카)이 죽림정사로 찾아가서 부처님께 자기네 나라인 사위국에 가서도 설법을 해 달라고 부탁하면서 정사를 지어드리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부처님이 정사가 완성되면 가겠다고 약속을 했다.
귀국한 급고독이 정사를 지을 곳을 물색한 결과 그가 택한 곳이 사위성(舍衛城:쉬라바스티) 남쪽 1.6 km 지점에 있는 곳인데, 하필이면 그곳이 마가다국의 기타태자(祇陀太子)의 땅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기타태자와 뜻이 맞아 함께 정사를 지었고, 그리하여 그 정사 이름을 두 사람의 이름을 합쳐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祇園精舍)이라 하게 됐다. 이후 부처님께서는 이 기수급고독원(기원정사)에 오래 머물며 교화를 했고, 우기(雨期)의 안거를 자주 이곳에서 행했다고 전해진다. 그 당시 사위국의 파사닉왕(波斯匿;파사세나디)도 부처님의 제자였다.
*기타(祇陀) 태자---석존 생존 시 마가다국의 태자. 그러나 왕위에 올랐다는 기록은 없다. 바로 사위국의 급고독(給孤獨) 장자와 더불어 부처님께 기원정사(祇園精舍)를 지어드렸다.
*긴나라(緊那羅, 산스크리트어 Ki?nara)---인도신화에 나오는 음악의 신. 진타라(眞陀羅), 견타라(甄陀羅) 등으로 음역하고, 불법을 수호하는 팔부중(八部衆)의 하나이다. 의인(擬人) 혹은 인비인(人非人)이라 의역하기도 한다. 사람을 닮았으나 사람이 아닌 데서 유래한 말로서 나중에 이 말이 주는 인상 때문에 사람의 도리를 벗어난 짓을 하는 자를 가리키는 말이 되기도 했다.
*길상(吉祥 = 수리)---산스크리트어 ?r?의 의역으로서 ‘좋음 혹은 좋은 일이 있을 조짐, 아름답고 착한징조’라는 뜻으로 운수가 좋을 징조, 좋은 일이 있을 조짐을 나타내는 말이다. ‘경사스러움, 축하할 만함, 순조로움’이라는 뜻도 있으며, 남을 위해 축원 해 주고 찬탄을 하는 것이 길상의 진정한 의미이다. 상대방을 칭찬하고 축원하는 말이면 모두 ‘수리’의 뜻이다. 행복하십시오, 훌륭하십니다, 장하십니다, 성공할 것입니다, 잘 될 것입니다 등의 칭찬과 찬탄과 상대방을 향한 긍정적인 격려의 표현은 모두 ‘수리’ 속에 포함된다.
*길상존(吉祥尊)---범어 ‘수리=길상(吉祥)’한 존자(尊者)라는 뜻이다. 따라서 ‘좋은 조짐을 주실 존자이시여’라는 뜻이고, 결국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 혹은 문수보살을 뜻한다.
*길장(吉藏, 549~623)---중국 삼론종(三論宗)의 조사(祖師)이며, 가상대사(嘉祥大師)라고도 불린다. 남북조시대의 사회적 혼란과 전란 속에서도 많은 저서를 남겼는데, 그중에서도 삼론종의 근본 문헌들에 대한 주석서인 〈삼론현의 三論玄義〉를 저술해 삼론종(三論宗)의 교리를 대성했다. 그는 수(隋) 양제(煬帝)에 의해 수도인 장안(長安)으로 초청을 받아 그곳에서 많은 승려와 일반 신도들을 위해 강론했다.
*김교각(金喬覺, 697년~794)---중국에 지장(地藏) 신앙의 성지로 이름난 곳이 내륙의 산악지대인 안휘성 청양현에 위치한 구화산(九華山)이다. 그곳에서 신라의 왕자 출신 김교각 스님이 철저한 두타행을 닦아 중국인들로부터 지장보살의 화현이라 불리었다. 스님은 99세의 나이로 좌탈입망했는데, 그 후 3년이 지나도록 시신이 썩지 않고 고스란히 남아 있자, 그가 열반하기 전 유언대로 그 육신에 개금해 육신보살(肉身菩薩)로서 김지장(金地藏)으로 모셔지게 됐다.
김교각 스님의 속명은 김중경(重慶)이고, 697년 신라 제 32대 효소왕 4년에 서라벌 궁궐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제33대 성덕왕이고, 그의 이복동생 두 사람은 제 34대 효성왕과 경덕왕이 됐다.---→구화산(九華山) 참조.
*까비르(Kabir, 1440~1518)---까비르는 가난한 과부의 사생아로 태어나서 일찍 어머니에게 버림을 받았다. 그는 베 짜는 직조공이었던 회교도 집안에서 자라서 평생 베를 짜며 평범한 삶을 살다 갔지만 위대한 영혼의 소유자였다. 인도 민중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는 글을 배우지 않아 단 한 줄의 시(詩)도 손수 글로 쓰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남긴 영혼의 말들은 그를 따르던 제자들에 의해서 구전으로 전해져서 인도 신비주의의 대표적인 시인으로서 존경받고 있다. 그리하여 시성이라 일컫는 타골과 마하트마 간디의 정신적인 스승이기도 했다. 까비르의 시는 타고르에 의해서 세상에 널리 퍼졌고, 까비르의 시 중에서, ‘꿀 먹은 벙어리’를 소재로 한 시 여러 편이 특히 유명하다.
*끽다거(喫茶去)---‘차나 한잔 마시라’라는 뜻이다. ‘끽다(喫茶)’는 차를 마시라는 뜻이고, 거(去)는 명령형 조사이다. 중국 당나라 때 ‘무(無)’자 화두로 유명한 조주(趙州, 778~897)선사의 선문답에서 유래된 말로서 조주 선사가 ‘차나 한 잔 마시라’고 한 것은 꾸지람으로서, ‘너의 주인공은 어디에 두었느냐? 정신 차려라’ 하는 뜻이다. 꽤 까다로운 공안(話頭)으로 알려져 있다.
일체의 관념과 분별을 여의고 텅 비어 있는 조주에게 이런 저런 걸 물으러 오니 답할 게 없다. 그러니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차나 한잔 마시고 가라. 네가 묻고 싶고, 듣고 싶은 말은 너 속에 있는데, 엉뚱한 곳에 와서 묻고 찾으려 하느냐 하는 말이다. 다선일미(茶禪一味), 다선일매(茶禪一昧), 다선일여(茶禪一如)의 극치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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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르주나( Nagarjuna, 龍樹, 150?-250?)---원래 이름은 나가르주나이나 한역돼 용수(龍樹)라 했다. 석가모니 입멸 후 600년이 흐른 뒤 나타나서 불교사상을 재조립해 대승불교를 확립시킴으로써 제2의 붓다로 불린다.
원래 나가르주나는 바라문 계급 출신으로 남인도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했기 때문에 다방면에 재능이 있었는데 천문, 지리, 예언 등 여러 가지 비술을 체득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불교에 귀의해 반야경 계통의 공(空) 사상을 철학적으로 체계화시켜 중관(中觀, Madhyamaka)사상을 수립하고, 이를 논술한 <중론(中論)>을 비롯해 <대지도론(大智度論)>, <십이문론(十二門論)> 등을 지었다. 이 세 문헌을 함께 불러 “삼론(三論)”이라고 부르며, 중국에서 4~5세기경에 유행했던 삼론종이라는 종파의 이름은 여기에서 기인한다. 그의 사상을 계승한 사람들을 중관학파라 한다.
*나라연(那羅延)---천상의 역사(力士)로서 불법을 지키는 신. 제석천(帝釋天)의 권속으로, 집금강(執金剛)의 하나이며, 그 힘의 세기가 코끼리의 백만 배나 된다고 함.
*날란다(N?land?)대학---나란다대학 또는 나란타(那爛陀)대학으로도 불렸으며, 세계 역사상 최초의 대학 중 하나였다. 인도 비하르 주의 파트나에서 남동쪽 55마일 거리에 위치했었다. 서기 427년에서 1197년까지 팔라 제국 아래에서 불교 학습의 중심 역할을 했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아미타불(阿彌陀佛)에 귀의한다는 뜻의 불교용어이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이 여섯 글자로 돼 있기 때문에 육자명호(六字名號), 또는 줄여서 명호(名號)라고 불린다. 일종의 진언(眞言)으로서, 이 여섯 글자를 부르고 기억하면 왕생한다고 한다.
범어로는 Namo-Amitabha인데, Namo는 예배한다, 귀의한다는 말이며, mita는 헤아린다는 말이고, abha는 광명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나무아미타불이라고 하는 말은 ‘헤아릴 수 없는 광명에 귀의합니다’ 는 말이 된다.
헌데 나무아미타불을 찾으면 반드시 관세음보살이 뒤 따른다. 그 이유는 관세음보살은 아미타불과 같이 끝없이 중생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소원을 성취하게 하고자 하며, 아미타불을 스승으로 삼고 그 모습을 자신의 이마에 모시고 있기 때문에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라 읊는다.
*나반존자(那畔尊者)---특이하게 우리나라에만 있으며, 사찰에서 독성각(獨聖閣)에 모셔지는 나반존자는 16나한 중 하나인 ‘빈두로존자(賓頭盧尊者)’가 이름만 바뀌어 신앙의 대상으로 승격된 것이라 한다. 사찰에서 산신, 칠성, 용왕들과 나란히 신봉되는 것으로 보아 우리 토속 신앙이 불교적인 색깔을 띤 불, 보살로 변형돼 절에서 모셔진 것으로 보인다. 그 형상은 중국에서 독립 신앙 대상이 된 ‘빈두로존자’의 모습을 차용한 것이다.---→독성 참조.
*나옹(懶翁, 1320년∼1376년)---고려 말의 선승. 법명은 혜근(彗勤)이다. 속성은 아씨(牙氏). 속명은 원혜(元惠), 경상도 영덕 출신이고, 호는 나옹(懶翁)이다.
21세 때 친구의 죽음으로 인해 무상을 느끼고, 문경의 공덕산(孔德山) 대승사(大勝寺)의 묘적암(妙寂庵)에 있는 요연(了然)선사를 찾아가 출가했다. 그 뒤 전국의 이름 있는 사찰을 편력하면서 정진하다가 1344년(충혜왕 5) 양주 회암사(檜巖寺)에서 대오(大悟)했다.
1347년(충목왕 3년) 원나라로 건너가서 연경(燕京)을 거쳐 명주(溟州)의 보타락가산(補陀洛伽山)에서 관음보살을 친견하고, 여러 사찰에 주석한 후 귀국해 회암사 주지로서 절을 중수했다. 그는 전통적인 간화선(看話禪)의 입장을 취했고, 임제(臨濟)선사의 선풍을 도입해 침체된 불교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청산은 나를 보고……”의 선시가 유명하다.
*나찰(羅刹)---악귀의 일종. 사람을 먹는 두려운 귀신이었으나 부처님께 귀의해 불교의 수호신이 됐다.
*나한(羅漢)--- →아라한(阿羅漢,Arhan) 참조.
----16 나한의 이름과 살고 있는 곳
1. 빈두로파라타 존자(서구타니주) 2. 가낙가벌차 존자(가습미라국)
3. 가낙가 발리타사 존자(동승신주) 4. 소빈타 존자(북구로주)
5. 낙거라 존자(남첨부주) 6. 발타라 존자(탐몰라주)
7. 가리가 존자(승가차주) 8. 벌사라불다라 존자(발나라주)
9. 술박가 존자(수취산) 10. 반탁가 존자(삼십삼천)
11. 나호라 존자(필리양구주) 12. 나가서나 존자(반도파산)
13. 인계타 존자(광협산) 14. 벌나파사 존자(가주산)
15. 아시다 존자(취봉산) 16. 주다반탁가 존자(지축산)
*나한전(羅漢殿)---나한을 모신 전각(16 혹은 500나한). 영산전(靈山殿), 응진전(應眞殿)이라고도 함. 석가모니불이 주불이고, 가섭과 아난이 협시하고 있다.
*낙덕(樂德)---‘낙(樂)’은 안락의 뜻으로 생멸변화가 없는 세계에는 생사의 고통을 벗어난 적정무위(寂靜無爲)의 안락한 덕을 갖추고 있음을 말한다. 즉 무위안락한 것이다. 안락스러운 것이 보통 그냥 재미있고 어떠한 유한적인 안락이 아니라, 조금도 변치 않는 영생의 안락을 말한다. 열반사덕(涅槃四德)인 상락아정(常樂我淨)에서의 ‘낙’이 이에 해당한다.
*낙양가람기(洛陽伽藍記)---북위(北魏)시대 양현지(楊衒之)가 엮은 책. 당시 낙양을 중심으로 멀리 서역과 중앙아시아까지 구법(求法) 성지순례를 한 내용을 공간적으로 꿰뚫은 기록이다. 그리고 낙양성을 다섯 구역으로 구분하여 70여 곳의 절에 대한 위치와 설립자, 규모와 정치, 역사상의 변동, 그리고 마을, 명승고적을 상술하고 있다. 귀화민의 생활상은 물론 풍속과 인물, 고사와 전설, 문학과 일화 등을 총망라한 책이어서 역사적으로도 귀중한 자료이다.
*난타(難陀, Nanda, ?~?)---석가의 이복동생임. 미인이었던 그의 아내 손타리(孫陀利)의 이름을 따 손타라난타(孫陀羅難陀)라고도 하는데, 이는 목우난타(牧牛難陀)와 구별하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다. 그는 아내를 못 잊어 출가하는 것을 꺼려했으나, 부처님이 방편으로 천상의 즐거움과 지옥의 괴로운 모양을 보여, 그를 인도해 불도에 귀의케 해서 마침내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었다.
*난타발난타(難陀跋難陀)---Nanda-upananda의 음사, 8대 용왕 중에서 난타와 발난타의 두 형제용왕을 말한다. 난타를 환희(歡喜)라 번역하고, 발난타를 선환희(善歡喜)라 번역한다.
*난행도(難行道)---불교에서 실행하기 어려운 수행방법을 일컫는 말. 자력(自力)으로 오랜 시간 수행해 비로소 깨닫게 되는 어려운 법문이기 때문에 난행도라 하며, 이러한 길로 들어서는 것이 자력문(自力門)이다.
불교 수행의 길에는 자력에 의해 성불을 추구하는 난행도(難行道)와 불보살의 원력에 의지해 수행해 가는 이행도(易行道)가 있다. 난행도는 근기가 수승한 사람이 선택하는 방법이고 이행도는 근기가 약간 미천한 사람들이 선택하는 방법이다. 일반적으로 자력에 의한 깨달음을 추구하는 난행도의 종교로 알려져 있는 불교에 불보살의 원력에 의한 이행도가 시설된 것은 그만한 까닭이 있다. 현실의 삶을 살아가는 세속 중생은 근기가 다양하고 저열해서 누구나 높고 수승한 난행도를 성취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용수(龍樹)의 <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沙論)> 이행품(易行品)에 불법(佛法)을 일반 세상의 도(道)에 준해 난(難) ? 이(易)의 둘로 나눈 데서 비롯됐다.
*남섬부주(南贍浮洲)---남염부주라고도 하는데, 불교의 세계관에서 인간들이 살고 있다는 땅을 말한다. 불교의 세계관에 따르면 수미산 주변에 네 곳의 땅이 있는데, 그 가운데 남쪽에 있는 땅을 이르는 말이다. 이곳에만 인간이 산다고 알려져 있다. 염부(閻浮)라는 수목이 많이 자라는 곳이라서 염부주라고도 한다. 본래 염부는 인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므로 남섬부주는 불교의 발생지인 인도를 상징하는 말로 추정된다.---→염부제(閻浮提) 참조.
*남악 회양(南岳懷讓, 677∼744)---육조 혜능 대사의 사법(嗣法) 제자 10인 가운데 가장 먼저 거론되는 중요한 인물이며, 남종선(南宗禪)의 거봉으로 제7조로 일컬어지고 있다. 그의 제자 마조 도일(馬祖道一)이 항상 좌선(坐禪)하는 것만을 고집해 자리를 뜨는 법이 없었다. 이에 회양선사가 하루는 좌선 중인 마조(馬祖)에게 말을 건넸다.
“수좌는 좌선해 무엇 하려는고?” “부처가 되고자 합니다.”
그러자 회양 선사가 암자 앞에서 벽돌을 하나 집어 와서 마조 옆에서 묵묵히 갈기 시작했다. 마조가 한참 정진을 하다가 그것을 보고는 여쭈었다.
“스님, 벽돌은 갈아서 무엇 하시렵니까?” “거울을 만들고자 하네.”
“벽돌을 갈아서 어떻게 거울을 만들 수 있습니까?”
“벽돌을 갈아서 거울을 만들지 못할진대, 좌선을 한들 어떻게 부처가 될 수 있겠는가?”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소를 수레에 매서 수레가 가지 않을 때 수레를 쳐야 옳겠는가, 소를 때려야 옳겠는가?”
마조가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회양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대는 좌선을 배우는가, 좌불(坐佛)을 배우는가? 앉아서 참선하는 것을 배운다고 한다면 선(禪)은 앉거나 눕는데 있는 것이 아니니 선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이고, 앉은 부처를 배운다고 한다면 부처님은 어느 하나의 법이 아니니 자네가 부처님을 잘못 알고 있음이네. 무주법(無住法)에서는 응당 취하거나 버림이 없어야 하네. 그대가 앉은 부처를 구한다면 부처를 죽이는 것이고, 앉은 모습에 집착한다면 선(禪)의 이치를 깨닫지 못한 것이네.”
마조는 여기에서 크게 뉘우치는 바가 있어서 좌선만을 고집하던 생각을 버리고, 행주좌와(行住坐臥) 가운데서 일여(一如)하게 화두를 참구해 순일(純一)을 이루어서 마침내 크게 깨쳤다.
*남염부주(南閻浮州)---→남섬부주 참조.
*남전 보원(南泉普願, 748~835)---마조 도일(馬祖道一)의 제자 130여 명 중 백장(白丈), 서당(西堂)과 함께 유명한 삼대사(三大士)의 한 사람임. 백장은 선종 총림을 완성시켰고, 서당은 대중교화에 두각을 나타냈으며, 남전은 무심선(無心禪)의 원숙한 경지를 보여준 인물로 평가된다.
특히 30여 년 간 지주(池州) 남전산에서 내려오지 않고 밭을 갈며 은둔생활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대자연 속에서 세상의 시비와 사상의 추구마저 잊어버리는 무심선(無心禪)을 터득해 훗날 선승들에게 고존숙(古尊宿)이라 불리며 존경받았다. 그가 남긴 화두 중 남전참묘아(南泉斬猫兒 ; 남전스님이 고양이의 목을 베다)가 유명하다. 835년 87세의 나이로 입적했다. 제자로 무자(無字)화두로 유명한 조주 종심(趙州從?)을 두었다.
※무심선(無心禪)---무심선은 화두를 참구하는 간화선과 달리 일체의 망념(妄念)을 여읜 진심(眞心)인 무심무념(無心無念)을 궁극의 경계로 삼는 선법.
※고존숙(古尊宿)---선문(禪門)의 위대한 선승에 대한 존칭.
*남전참묘아(南泉斬猫兒)---남전 스님 휘하에 동당(東堂)과 서당(西堂)으로 나누어진 선방이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고양이 한 마리가 절에 와서 동당에 가서 슬그머니 앉기도 하고, 서당에 가서 슬그머니 앉기도 했다.
이때 수행승들은 그 고양이를 서로 자기 당(堂)의 고양이라고 우기다가 마침내 선방이 시끄러워 졌다. 이에 남전 스님은 고양이를 집어들고 말했다.
“너희들이 뭔가 한마디 할 수 있다면 죽이지 않겠지만 말할 수 없다면 베어버릴 것이다.”
이에 대중(수행승들)은 각기 이말 저말 한 마디씩 했지만 모두 남전 스님의 기대에 어긋났다. 그래서 남전 스님은 그 자리에서 고양이를 베어 죽였다.
헌데 저녁에 조주(趙州) 스님이 외출에서 돌아와서 스승인 남전 스님에게 귀가 인사를 드리자 남전 스님이 낮에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조주 스님에게 물었다.
“자, 그대라면 어떻게 했겠는가?”
그러자 조주 스님은 아무 말 않고 짚신 한 짝을 머리에 이고 나가버렸다. 이를 본 남전 스님은, “그대가 있었더라면 그 고양이를 구할 수 있었을 텐데... ”라고 했다.
참선하다 말고 고양이 한 마리를 가지고 내 것이니 네 것이니 싸우는 한심한 대중을 보고 남전 스님은 고양이를 집어들고 한마디 이르라 했다. 이르면 살려주지만 그렇지 않으면 베어버리겠다고 했다. 고양이를 살려야 하는 위급한 순간이 닥친 것이다.
여기서 한마디 이르라는 말은 우주의 본질에 대해, 진실에 대해, 마음에 대해, 도에 대해, 또는 내가 고양이를 들고 있는 뜻에 대해 어떤 것도 좋으니 알고 있는 것을 한마디 이르라는 말이다. 그러나 아무도 흡족한 말을 이르지 못했으므로 고양이는 두 동강나고 말았다.
“이 고양이 하나도 구하지 못하는 주제에 어찌 내 것이니 네 것이니 하고 싸운단 말인가, 한심한 놈들아!” 라는 엄한 꾸지람인 것이다.
큰 도에 발심한 사람들은 시비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알고, 또한 시비의 근본을 없앨 줄 알아야 한다. 별스럽지도 않은 고양이 한 마리에 온 절의 스님들이 법석을 떨다가 애꿎은 고양이만 목이 달아났다.
그래서 설두(雪竇) 선사께서 송(頌)을 하셨다.「양쪽 승당의 납자들은 모두 엉터리 중/ 먼지만 일으킬 뿐 어쩔 줄 모르는구나./ 다행히도 남전 화상이 법으로 심판해/ 단칼에 두 동강이를 내 시비를 가렸네.(兩堂俱是杜禪和 撥動煙塵不奈何. 賴得南泉能擧令 一刀兩段任偏頗.)」
※설두 중현(雪竇 重顯 : 980~1052) 선사---송대의 선승으로 금나라의 외침을 받아 북송과 남송으로 갈라지던 격동기에 살았던 인물이다. 23세에 출가한 후, 운문종(雲門宗)의 3대조(三代祖)인 지문 광조(智門 光祚) 문하서 수행했으며, 아름답고 간결한 시어를 많이 남겼다.
그러나 외출에서 돌아온 조주 스님은 제대로 대답했다. 바로 집신 한 짝을 머리에 이고 돌아가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 한 것이다. 이것이 저 유명한 ‘조주두재초혜(曹州頭在草鞋)’라는 또 하나의 화두가 됐다. 이것을 보고 남전은 네가 있었다면 고양이를 죽이지 않아도 됐을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조주의 선기를 인정했다.
고양이 집어든 뜻을 집신 한 짝을 머리에 이는 것으로 대답했으니 이 뜻이 대체 무엇일까? 7일간만 그 이유를 찾아보라. 탐구해도 대답이 나오지 않으면 탐구하는 방법이 틀린 것이니 다른 방법으로 다시 7일을 더해 보라. 선명하게 탐구가 되면 틀림없이 알 것이다.
또 혹자는 말할 것이다. 고양이를 들고 질문할 때 만일 내가 있었다면 “장미꽃이 우수수 떨어져도 나무는 죽지 않습니다.” 라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남전참묘아(南泉斬猫兒) 화두는 조금의 티끌도 묻어있지 않는 맑은 것이라, 공연히 여기에다 이러니저러니 사족을 달면 점점 더 진흙탕으로 빠져 들어갈 뿐이고 정답과는 거리가 멀어 진다. 화두는 말로 설명할 수 없고 혹 비유로도 대신 설명할 수 없다. 특히 이 화두는 직접 화두를 들고 체험해야 알 수 있다. - 그래도 종잡을 수 없다면, 알음알이로는 더 이상 알 수가 없다. 이 게 선문답의 진수이니까. 더 알려면 수행을 거쳐 깨치는 길밖에 없다.
*남종선(南宗禪)---중국 당나라시대 신수(神秀)의 북종선(北宗禪)에 대해 6조 혜능(慧能) 계통을 남종선이라 한다. 북종선이 <능가경(楞伽經)>을 근거로 단계적 깨달음[漸悟]을 주장하는 데 비해, 남종선은 <금강경(金剛經)>을 근거로 행동적이고 즉각적인 깨달음[頓悟]을 주장했다. 이를 가리켜 ‘남돈북점(南頓北漸)’이라고 하나, 후대에는 남종선이 특히 발전해 선종이라 하면 으레 남종선을 지칭하는 말이 됐다.
*내전(內典)---불교 경전이나 어록. 출가인은 내전(內典)을 익히고 나서 교화를 위한 방편으로 외전(外典)을 공부한다. 여기서 외전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불교 경전이나 어록 이외의 책들을 말한다. 출가인이 외전을 먼저 익히면, 그것은 마치 칼로 흙을 베는 것과 같다. 칼로 진흙을 베면 칼만 상한다. 출가한 사람은 일단 내전을 익히는 데에 열중하고, 내전이 어느 정도 익어서 자기 것이 되었을 때, 교화를 위한 방편으로 외전을 공부하는 것, 이게 제대로 된 순서다.
*냉난자지(冷暖自知)---물이 차가운지 뜨거운지 직접 만져 봐야 알 수 있다. 즉 깨달음의 세계는 자신이 직접 체험해 봐야 안다는 뜻. 즉, 불법(佛法)은 남에게 배워서 깨닫는 것이 아니라 몸소 체험해야 깨닫는다는 것이란 말.
*녹야원(鹿野園, 미가다야, Mrgadava)---불교의 4대 성지 가운데 하나. 지금의 인도 바라나시 북방 약 7㎞에 위치한 사르나트 지역이다.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이룬 뒤 이곳에서 5명의 수행자에게 진리를 설해 이들의 귀의를 받은, 말하자면 첫 설법[初傳法輪]을 행한 곳이다. 아소카 왕이 불교성지를 순례하면서 이곳에 탑과 석주(石株)를 세운 뒤 뭇 신도들의 숭앙을 받아왔으며, 8세기 초 현장(玄?)이 순례할 당시만 해도 이곳엔 정사(精舍)가 있었다고 한다.
*누진통(漏盡通)---육신통(六神通)의 하나. 지극한 수행 정진을 한 결과 얻게 되는 여섯 가지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을 육신통이라 하는데, 그 중 누진통은 다른 다섯에 비해 가장 얻기 힘든 신통이다. 누진통은 번뇌를 모두 끊어, 모든 고뇌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사람이 이에 통하면 극락에 이른 것과 같다 한다. 따라서 내세에 미혹한 생존을 받지 않게 됨을 아는 능력이기도 한다.---→육신통 참조.
6신통 가운데 앞의 5신통은 외도(外道)나 특수한 경험을 한 사람들도 얻을 수 있지만, 누진통만은 부처 또는 아라한(阿羅漢) 이상의 경지에 오르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
이러한 누진통은 세계와 인생에 관한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지혜로서, 다른 종교로써는 얻어질 수 없는 불교 특유의 초능력인 것이다. 석가모니는 붓다가야의 보리수 아래에서 이 누진통을 얻어 부처가 되셨으며, 깨달음을 얻은 자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가 누진통을 포함한 여섯 가지의 신통력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석존은 제자들이 이러한 신통력의 사용을 금지하셨다. 따라서 불교에서는 불제자들이 이와 같은 신통을 함부로 나타내는 것을 계율로 정해 엄격하게 금하고 있다. 불교는 어디까지나 지혜의 종교이지 다른 종교처럼 기적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늑나마제(勒那摩提, Ratnamati)---보의(寶意)라고도 한다. 중인도 출신의 승려로, 508년에 북위(北魏)의 뤄양(洛陽)에 와서 십지경론(十地經論) 등 총 6종 24권을 번역했다.
*능가경(楞伽經, Lankavatara-Sutra)---석가모니가 스리랑카의 능가산(楞伽山)을 배경으로 설했다고 전하는 경전으로 여래장사상(如來藏思想) 형성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불경이다. 원제는 <대승입능가경(大乘入楞伽經, Saddharma-Lankavatara-Sutra)>이고, 유가행파(瑜伽行派)에 영향을 주었고 선(禪)의 철학적 근거를 제시했다. 능가경은 <십지경(十地經)>, <해심밀경(解深密經)>과 더불어 대승불교의 ‘유심(唯心, cittam tra)’ 사상을 표방하는 대표적인 경전이며, 4세기경에 형성된 듯하며, 일부는 그 이전에 형성된 듯하다.
달마대사가 중국으로 올 때 가져와서 2조 혜가(慧可) 스님에게 전수했다는 경으로서 <금강경>, <원각경>, <능엄경>과 함께 선종에서 매우 존중되고 있다. 한역본(漢譯本)으로는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394~468)가 번역한 <가아발타라보경(楞伽阿跋陀羅寶經)>과 보리유지(菩提留支, ?-527)가 번역한 <입능가경(入楞伽經)>, 실차난타(實叉難陀)가 700∼704년에 걸쳐 번역한 <대승입능가경(大乘入楞伽經)> 등 세 가지가 있다. 신라 때에는 <입능가경>이 가장 많이 유통됐고, 최근에는 <대승입능가경>이 많이 유통되고 있다.
일심(一心)=여래장(如來藏) 사상을 가르치고 있으며, 대승경전에 나오는 여러 가지 사상을 종합 ? 정리해 풍부하게 받아들여 독자적인 경지를 이루고 있는 경전이다.
우리나라의 불교와 관련지어 이 경전에서 특히 중요하게 지적되는 것은 중생 속에 감추어져 있는 여래가 될 수 있는 씨앗인 여래장과 아뢰야식(A-laya識)의 사상을 결합시켜서 만든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의 선구적인 경전이었다는 점이다.
*능가사자기(楞伽師資記)---초기 선종의 역사를 기록한 서적. 708년 정각(淨覺)이 기록했다. 제1조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에서 - 보리달마(菩提達摩) - 혜가(慧可) - 승찬(僧璨) - 도신(道信) - 홍인(弘忍) - 신수(神秀) - 제8조 보적(普寂)에 이르는 선사 8대에 관한 전기이다. 단순한 인물평전이 아니라 다양한 선사상을 담고 있어 초기 선종사 연구에 긴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6조 혜능(慧能) 대신 북종선의 신수를 올린 점으로 봐서 북종선 중심이라 할 수 있다. 1900년대에 돈황에서 발견된 이후 북종선에 대한 연구가 급속히 진전되는 계기가 됐다.
*능(能)과 소(所)---혜강 최한기(惠崗 崔漢綺, 1803년~1879년)의 명언. 통틀어 말하자면 몸은 마음의 체이며, 나누어 말하자면 보는 것은 눈의 마음이고, 듣는 것은 귀의 마음이고, 맡는 것은 코의 마음이고, 맛보는 것은 혀의 마음이고, 냄새 촉감은 피부의 마음이니, 다 능(能 능동)ㆍ소(所 피동)가 있으므로 미루어서 헤아림이 생기는 것이다.
천고(千古)를 거슬러 올라가고 백세(百世)를 이어 내려가는 것은 곧 그 능이고, 만물을 판단하고 뭇 변화를 돕는 것은 곧 그 소이니, 능이 없으면 어떻게 그 소를 알겠으며, 소가 없으면 어떻게 그 능을 알겠는가. 보고 들은 것을 기억하는 것은 마음의 능이고, 사물을 제재(制裁)하는 것은 마음의 소이다. 그러므로 이 능을 미루어서 저 소를 헤아리고 이 소를 미루어서 저 능을 헤아리는 것이니, 평생의 공부는 능과 소를 가지고 추이(推移)하고 변통할 따름이다. 그 소이연(所以然)으로 말하면 밝혀서 찾아낼 수 없는 것이니 만약에 억지로 요량하고자 하면, 이른바 신통하니 기묘하니 그윽하니 하여 찬탄(讚歎)하는 유(類)로 각각 소견을 드러내며, 그 말류(末流)에서는 폐가 더욱 심해져 조금도 도움은 주지 못하고 도리어 큰 해만 끼치게 될 것이다.
*능엄경(楞嚴經)---원명은 <대불정여래 밀인수증요의 제보살만행 수능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이고, 줄여서 <수능엄경(首楞嚴經)> 혹은 <능엄경>이라 한다.
인도 바깥으로 유통되지 못하게 하라는 왕의 엄명이 있어 당나라 이전까지는 중국에 전해지지 않았다고 한다. 당(唐) 중종(中宗) 때인 AD 705년 인도 승 반랄밀제(般剌蜜帝, 極量)에 의해 전래되고 방융(房融)과 함께 번역했다고 한다.
그러나 내용으로 보아 중국에서 많이 가필돼 거의 중국에서 성립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720년경 중국 선종에서 찬술한 위경(僞經)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이 경이 우리나라에 전래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고려대장경에 수록돼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그 이전에 유입됐음이 분명하다. 우리나라 불교의 신행(信行)에 크게 영향을 미쳐 우리나라 불교의 근본경전 중의 하나이다. 그리하여 우리나라 전문 강원에서는 금강경, 원각경, 대승기신론과 함께 능엄경이 4교과(四敎科) 과목으로 채택돼 있다.
내용은 부처님이 그동안 여러 경전에서 말씀하셨던 것을 총정리해 설하셨다는 점이다. 그러기에 그 내용이 다른 경전에서 보다 더 구체적이고 체계적이며 총체적인 수행서라 할 수 있다.
부처님의 제자인 아난다(阿難陀)가 마등가(摩登伽)라는 여인의 꾐에 빠져 그녀의 딸에 의해 청정한 계를 깨뜨려 마귀도에 떨어지려는 것을 부처(석가)의 신통력으로 구해낸다. 그러고 나서 선정의 힘과 백산개다라니(白傘蓋陀羅尼)의 공덕력을 찬양하고, 이 다라니에 의해 모든 마귀장을 물리치고 선정에 전념해 여래의 진실한 경지를 얻어 생사의 고뇌에서 벗어나는 것이 최후의 목적임을 밝혔다. 따라서 이 경은 밀교사상이 가미돼 밀교적인 색채가 짙지만 선정(禪定)이 역설돼 있기 때문에 밀교 쪽보다는 선가에서 환영을 받아 중국에서의 주석은 모두 선문에 의해 이루어졌다.
※ 백산개다라니(白傘蓋陀羅尼) - 백산개는 흰 비단으로 덮개를 만든 양산으로서 왕위를 상징하는데, 불지 공덕(佛智功德)이 수승함을 전륜성왕에 비유한 것이다.
※ 마등가(摩登伽. Matanga)---바라문 여인.
*능엄신주(楞嚴神呪)---원명은 대여래불정능엄신주(大如來佛頂楞嚴神呪)라는 긴 이름인데, 줄여서 대불정능엄신주(大佛頂楞嚴神呪), 더 줄여서 <능엄신주>라 한다. 능엄경 10권 중에 제7권에 능엄신주가 실려 있다. 능엄경과 능엄신주는 천수경과 신묘장구대다라니 관계와 비슷하다.
성철스님이 선방에서 참선하는 수좌들과 신도들에게 능엄신주 기도를 시켜서 유명해졌고, 지금도 성철스님이 주석하셨던 해인사 백련암에서는 새벽기도 때 능엄주를 독송하고 있다.
능엄(楞嚴)이라고 하는 말은 용맹스러운 행위, 또 아주 그 건전한 행위, 또 건사한 분별, 건전한 분별력 이런 뜻이다. 건사한 분별, 아주 건전한 사상을 갖은 사람의 분별력을 능엄(楞嚴)이라고 한다.
*니까야((Nikaya)---니까야는 근본경전인 팔리어 삼장(팔리어 대장경)의 경(經) 부분을 뜻한다. 팔리어 경전에는 <5부 니까야>로 구성돼 있지만 한역은 <4아함(阿含)>이다. 니까야를 산스크리트어로는 ‘아가마(agama)’라 한다. 그래서 한역해서 아함경((阿含經)이라 하는 것이다. <5부 니까야>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① 디가 니까야(Digha Nikaya - 長部阿含): 길이가 긴 경을 모은 것.
② 맛지마 니까야(Majjhima Nikaya - 中部阿含): 중간 정도 길이의 경을 모은 것.
③ 상윳따 니까야((Samyutta Nikaya - 相應部阿含): 주제가 분명한 경들을 주제별로 모은 것.
④ 앙굿따라 니까야(Anguttara Nikaya - 增支部阿含): 부처님의 가르침을 주제의 숫자별로 모아서 결집한 것으로 <하나의 모음>부터 <열 하나의 모음>까지 모두 11개의 모음으로 구성돼 있다.
⑤ 쿳다까 니까야(Khuddaka Nikaya, 小部): 분류에 들어가지 않는 나머지 경들을 모은 것으로, 이 쿳다까 니까야 안에는 법구경, 자설경, 본생경, 수타니파타(經集) 등 15개의 소경이 들어있다. 이 쿳다까 니까야(소부)가 한역 4아함(阿含)에는 없다.
*니다나카나(Nidanakatha, 인연담/因緣談)---니다나카나(인연담)는 <자타카(Jataka, 본생경)>의 주석서(Jataka-attakatha)의 일부로서 팔리어 불교문헌 중에서 가장 체계적인 부처님 전기의 시초라고 평가된다. 초기 경전 여기저기에 산만하게 흩어져 있던 단편적인 붓다에 관한 전기가 시기별로 붓다의 일생을 일관되게 정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최초의 불타전(佛陀傳)이라 할 수 있다. ‘먼 인연담’, ‘멀지 않은 인연담’, ‘가까운 인연담’의 3부로 이루어져 있다. 제1부는 연등불로서 천상계에서 수행하고 있던 시대, 제2부는 도솔천에서 하생하여 탄생과 성도까지, 제3부는 기원정사(祇園精舍)의 건립까지이다.
*닛데사(Niddesa, 義釋)---쿳다까 니까야(Khuddaka Nikaya, 小部)에 속해 있는 <수타니파타(Suttanipata, 經集)>에 실려 있음. 이 경은 팔리어 삼장(니까야) 가운데 유일하게 주석서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의석(義釋)---옳은 해석이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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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라니(陀羅尼, dharani)---일반인들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부적이나 주문(呪文, 비밀스러운 문구)으로 암송하면 커다란 효험이 있다는 신성한 글귀. 부처의 말씀을 주문 형식으로 만든 것이며, 산스크리트어(범어)로 된 글귀를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독송한다.
한자로 번역하지 않는 것은 번역으로 말미암아 그 의미가 변질될 우려가 있으므로 이를 방지하고, 신비성을 간직하기 위함이다.
다라니를 한문으로 총지(總持) ? 능지(能持) ? 능차(能遮)라고 하며, 주문의 길이가 짧은 것은 진언(眞言, mantra) 또는 주(呪)라 하고, 긴 것을 다라니 또는 대주(大呪)라 한다.
진언은 실담문자((悉曇文字, 범어문자)로 된 천수경에 나오는 관세음보살의 진언인인 「옴 마니 반메 훔」이나, 개법장 진언인 「옴 아라남 아라다」 처럼 짧으면 한 자, 길어야 두 세줄 정도에 불과하지만 다라니는 훨씬 길다. 예컨대 천수경의 신묘장구대다라니처럼 상당히 길다.
*다라수(多羅樹)---종려과(야자수)에 속한 나무 이름. 인도 남부 ? 스리랑카 등에서 자라는 열대식물임. 인도에서는 이 나무로 높이의 척도로 삼는데 1 다라수의 높이는 49척이라고 한다. 이 나뭇잎을 패엽(貝葉, pattra) 혹은 패다라엽(貝多羅葉)이라 하며, 종이 대신 이 나뭇잎에 불경을 새겼다.---→패다라(貝多羅). 패엽경(貝葉經) 참조.
*다보불(多寶佛)---범어로는 프라부타라트나(Prabhutaratna)이며, 동방 보정세계(寶正世界)의 교주다. 대보불(大寶佛)이라고도 하며, 일정한 모습은 없다. <묘법연화경> 견보탑품(見寶塔品)에 나온다. 이 다보불이 과거 보살로 있을 때 서원을 세우기를 내가 장차 입멸하면 온몸 그대로 사리가 돼석가모니 부처님이<법화경>을 설하는 장소에는 반드시 출현해 그의 설법을 증명하리라고 했다.
그리하여 부처님이 출현해 법을 설할 때마다 보탑(寶塔)의 모습으로 솟아올랐다고 한다. 이와 같이 다보불은 <법화경>을 설하는 자리마다 보탑의 모습으로 솟아 그것이 진실임을 증명하는 부처이다.
따라서 다보불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다보탑은 언제나 석가탑을 쌍으로 안치할 때만 가능하다. 그래서 불국사의 다보탑이 석가탑과 쌍으로 있다.
*단말마(斷末魔, death agony)---인간이 죽을 때 느끼는 최후의 고통을 말한다. 산스크리트어 말마(marman)의 발음을 소리 번역한 것이다. 말마는 관절이나 육체의 치명적 부분, 즉 급소를 의미한다.
이 말마를 자르면 죽음에 이른다고 하며, 말마를 얻어맞으면 발광(發狂)한다고도 한다. 또 이 부분이 물건에 부딪치면 심하게 아파서 목숨이 끊긴다. 사람이 죽을 때는 수(水) ? 풍(風) ? 화(火) 삼대(三大) 중에서 한 종류가 유달리 많아지고, 그것이 말마와 부딪쳐 목숨이 끊어진다는 것이다. 인간이 죽기 바로 직전 빈사 상태에서 괴로워하는 것을 ‘단말마의 고통’이라고 한다.
*단멸공(斷滅空, Danmyeolgong)---단멸공이란 무기공(無記空)과 비슷한 것으로, 공(空)에만 집착한 나머지 무념(無念)의 지혜가 아닌 아무 것도 없는 깜깜한 경지를 말함. 혹은 공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허무주의에 빠지는 것을 말한다.---→무기공(無記空) 참조.
*단멸론(斷滅論)---석존시대에 일반 사상계에서 주장한 이론인데, 육사외도(六師外道) 중의 아지타(Ajita) 등이 그 좋은 예이다. 단멸론이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는 반드시 소멸해 없어진다는 주장이다. 정통 바라문적인 아(我, atman)의 상주(常住)를 인정하는 설과는 반대로 아(我) ? 영혼은 신체의 파괴와 함께 완전히 단멸 ? 소실(消失)해 사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설이다.
이러한 이론은 불교에서의 무아(無我)의 가르침과 혼동을 일으켜 불교적 가르침으로 오인되기도 했다. 그러나 붓다는 사후 세계(내세)를 부정하지 않았고, 특히 업의 과보를 강조함으로써 단멸론을 인정하지 않으셨다.
*단월(檀越)---산스크리트 다나파티(danapati)을 음역한 것으로 시주(施主)라 번역한다. 사찰이나 승려에게 물건 따위를 봉양하는 일.
*단주(短珠)---54개 이하의 구슬을 꿰어 만든 짧은 염주.
*달라이라마(Dalai-Lama)---티베트 불교(라마교)의 가장 대표적 종파인 겔룩파(거루파/格魯派)의 수장(首長)인 법왕(法王)의 호칭. ‘달라이’는 바다를, ‘라마’는 스승을 뜻한다. 달라이라마는 영적 지도자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 권위까지 가진다. 현재의 달라이라마는 제14세로서 중국군의 진주로 한때는 새 체제에 복종했으나, 1959년 측근과 함께 인도로 탈출, 다람살라에 망명정권을 수립해 현재에 이르렀다.
*달마(達磨, dharma)---인도의 고전인 <베다>에서 사용된 법(法)이라는 말로, 리타[天則]와 함께 자연계의 법칙, 인간계의 질서를 나타냈고, 후에는 정도(正道) ? 정의(正義)로 변했으며, 불교에서는 법칙, 진실, 불법(佛法) 또는 제법(諸法) 등의 의미로 쓰였다.
*달마(보리달마/菩提達磨, ?~528)---보리달마는 산스크리트어 bodhi dharma를 소리 번역한 것이며, 흔히 달마라고 한다. 붓다의 제27대 직계 제자인 반야다라(般若多羅: ?~457) 존자에게 가르침을 받고 제28대 조사(祖師)가 됐다.
6세기 초 중국으로 건너와서 양(梁)을 거쳐 북위(北魏)의 숭산 소림사(嵩山少林寺)에 들어가 면벽 9년의 수행을 함과 동시에 제자 혜가(慧可)를 얻어서 정법안장(正法眼藏)을 전하고, 중국 선종의 시조가 됐다. 이후 선(禪)은 불교 발생지인 인도에서보다 중국에서 더 크게 발전했으며, 현재 우리나라에 전해져 오는 선은 중국화 된 선불교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헌데 같은 인도 출신으로 북위(北魏)에서 활약한 보리유지(菩提流支)는 달마대사를 시기한 나머지 광통율사(光統律師)와 더불어 AD 528년 달마를 독살했다고 한다. 이에 하남성 웅이산(熊耳山: 해발 912m)에 장사를 지냈다. 헌데 달마대사는 독살 당한 뒤 관속에 두 짝의 신발만 남기고 서천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달마급다(達磨?多, Dharmagupta, BC 3세기경 인도 승려)---담무덕(曇無德) 등으로 음사(音寫)한다. BC 4세기경의 논사(論師)인 우바국다(優婆?多)의 5대 제자 중 하나로, 처음에는 부파불교의 화지부(化地部)에 속했었으나, 법장부(法藏部)를 만들었다. 이 법장부를 담무덕부(曇無德部)라고도 한다. 담무덕은 출가한 승려가 불법(佛法)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계율을 자세히 기록한 불교 율전(律典)인 사분율(四分律)을 작성했다.
※사분율(四分律)---석가모니 입멸 후 100년경에 담무덕(曇無德)이 상좌부(上座部)의 근본율 중에서 자기 견해에 맞는 것만을 네 번에 걸쳐 뽑아 엮은 율문 불서(律文佛書). 4대 계율서(四大戒律書)의 하나이다.
*달마서래의(達摩西來意)---달마대사가 서쪽 땅 인도에서 동쪽 땅 중국으로 건너 온 까닭이 무엇인가라는 말. 불교의 근본이 무엇이냐, 불법의 참 뜻이 무엇이냐 라는 말로 이해되고 있다. 즉, 달마가 서쪽에서 가져온 참 진리의 근본은 무엇인가 라는 말이다.
이에 대한 조주스님의 대답은 뜻밖에도 “뜰 앞의 잣나무(庭前栢樹子).”였다는 말이다. 이 말은 화두로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잣나무는 감정이 없는, 무심한 나무이다. 무심이란 공을 뜻한다. 즉 무심한 공의 상태가 바로 달마대사가 서쪽(인도)으로부터 가지고 온 선(禪)의 진리요, 그대가 찾는 깨달음의 세계라는 말이다.
*담란(曇鸞, 476~542)---중국 남북조시대 북위(北魏)에서 활약한 승려. 담란은 정토교에 귀의해 세친의 <정토론(淨土論)>에서 힌트를 얻어 <무량수경>을 중심으로 한 정토삼부경으로 정토사상을 확립하고자 노력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고유의 민간신앙도 원용해 정토사상을 중국에 정착시키는 기초를 마련했다.
담란은 또한 아미타불의 본원과 그 성격을 올바르게 포착해서 타력본원설(他力本源說)을 주장했다. 실질적인 중국 정토교의 기틀을 확립했으므로 후세에 그를 중국 정토종의 제1조라 불렀다.
※타력본원설(他力本源說)---부처와 보살의 본원력(本願力)에 의지하여 중생을 구제한다는 타력구원(他力救援)의 사상.
*담마(Dhamma, 曇摩)---팔리어 경전에서는 부처님의 말씀을 “담마를 설하셨다”, “부처님이 가르치신 담마”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경우는 담마를 ‘가르침’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경우는 가르침이라는 의미보다 진리(眞理)나 우주현상(宇宙現像), 바른 길 등 광범위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때문에 담마를 ‘가르침’이라는 한 단어에 한정하기보다는 그냥 ‘담마’로 번역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런데 한자로 번역될 경우 ‘법(法)’이라 해서, 부처님의 담마를 ‘불법(佛法)’으로, ‘붓다 ? 담마 ? 승가’를 ‘佛 ? 法 ? 僧’으로, ‘담마의 바퀴’를 ‘법륜(法輪)’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법(法)’이라는 번역은 의미가 한정돼 있어 담마의 뜻을 명쾌하게 드러내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래서 좁은 의미로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그 함축적 의미에는 여러 다양한 뜻이 내포돼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담마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으나 담마가 지닌 뜻의 핵심은 오직 부처님께서 직접 설하신 진리(법)인 사성제(四聖諦)와 삼법인(三法印), 팔정도(八正道)와 12연기(緣起)를 의미한다고 하겠다.
*담마류지(Dharmaruci, 曇摩流支)---5세기 서역(西域) 승려. 법락(法樂)이라고도 한다. 405년에 중국으로 왔으며, 계율을 잘 알았으므로 구마라습과 함께 <십송률(十誦律)>을 번역했다.
*담마야사(曇摩耶舍)---서역(계빈국) 승려로 중국 이름은 법명(法明)이다. 5세기 초 진(晋)나라 때 중국으로 와서 역경사업을 펼치다가 5세기 중엽 송(남북조시대의 송)나라 때 서역으로 돌아갔다. 담마야사에게는 축법도(竺法度)라는 제자가 있었다. 범어(梵語)와 중국어를 잘해 그도 역경사업에 종사했다.---→축법도 참조.
*담무덕(曇無德)---달마급다(達磨?多)와 동일 인물.---→달마급다(達磨?多) 참조.
*담무참(曇無讖, 385~433년)---중인도 출신으로 10세에 출가한 후, 처음에는 소승불교와 인도의 일반 학문을 두루 섭렵했다. 그 후 대승불교를 연찬한 후, 수많은 대승경본을 가지고 서역의 구자국(龜玆國)과 노선국(露善國)을 거쳐 돈황에서 수년간 머무르며 하서왕(河西王) 몽손(蒙遜)의 비호 하에 <대집경(大集經)>, <대운경(大雲經)>, <불소행찬(佛所行讚)> 등을 한역했고, 중국(北?)으로 와서 <열반경(涅槃經)>을 번역했다. 그가 번역한 경 ? 율들은 중국 불교계에 크게 영향을 끼쳤고 뒤에 열반학파(涅槃學派)를 흥기하게 했다.
*담판한(擔板漢)---널판지를 등에 짊어지고, 옆과 주위를 둘러보지 못하고 오로지 앞만 보고 가는 것을 일컫는 불교 용어이다. 인간은 원래 150도를 돌아볼 수 있는 시야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선종에서는 소승의 나한을 담판한이라 한다.
*담징(曇徵)---고구려 승려. 영양왕 때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는 불교학은 물론 오경에도 능통했고, 채색, 지묵, 공예에도 능해 일본 미술사의 선구적 역할을 했으며, 그가 그린 법륭사(法隆寺) 금당벽화는 불후의 명작으로 전해 온다. 이 밖에 그는 맷돌 제조법도 가르쳐 일본의 문물 개화에 크게 기여했다.
*당취(黨聚)---신라 말에 학문이나 수행이 없는 승려들이 모여서 조직한 비밀결사. 땡땡이중ㆍ땡추(당취) 라고도 하는데, 조선시대 숭유배불(崇儒排佛) 정책으로 인해 승려의 지위가 땅에 떨어진데다가 조선 중기 이후 생활고로 인해 당취들이 많이 생겼다.
*대광명(大光明)---지혜의 광명. 태양의 광명이 널리 시방세계를 비추는 것처럼, 지혜의 광명은 시방 삼세를 두루 비추기 때문에, 태양 광명에 비유해서 지혜의 광명을 대광명이라 한다. 태양의 광명은 구름이 끼면 밝지 못하지만, 지혜의 광명은 어떠한 것도 다 비추기 때문에 태양 광명보다 더 밝은 것이다. 결국 아미타불을 뜻한다.
*대기설법(對機說法)---듣는 이, 혹은 질문하는 이의 이해 수준(심리적, 근기)에 따라 그에 맞추어 적절한 언어와 방편으로 설법하는 것을 말함.
*대념처경(大念處經, Maha Satipathana Sutta)---‘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올바른 생각으로 대상을 관찰하는 법을 가르치는 경전’이라는 뜻으로 사념처(四念處)에 대한 내용이 설해져 있다. 사념처란 몸의 관찰[身念處], 느낌의 관찰[受念處], 마음의 관찰[心念處], 법의 관찰[法念處]를 말한다.
그리고 이 대념처경에 위빠사나 수행법이 잘 설명돼 있어서 남방불교에서는 아주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 한역으로 된 <대념처경>은 <중아함경(中阿含經)>에 속해 있고, <남전대장경(南傳大藏經)>엔 제7권 장아함부(長阿含部)에 포함돼 있다.---→사념처(四念處) 참조.
*대반니원경(大般泥洹經)---동진(東晋)의 법현(法顯), 각현(覺賢) 공역. 줄여서 <니원경(泥洹經)>이라고도 함. 대승열반경인 담무참(曇無讖)이 번역한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제1권에서 제10권의 제5 일체대중소문품(一切大衆所問品)까지에 해당하는 다른 번역으로, 주요 내용은 담무참의 번역과 거의 같음.
*대반야경(大般若經)---원명은 <대반야바라밀다경(大般若波羅蜜多經)>이고, 전체 6백 권으로 반야부 계통의 경전을 집대성한 총서이다. 대승경전 성립의 중기에 집대성된 것으로 보이며, 당(唐)나라 삼장법사 현장이 660년부터 663년에 걸쳐 한자로 번역했다.
내용은 전체적으로 공(空)사상을 천명하고 있으며, 육바라밀 중 특히 반야바라밀을 강조하고 있다. 반야는 부처님의 모체요 육바라밀의 원천으로서 일체의 불법이 반야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에, 반야바라밀을 성취함으로써 육바라밀을 성취할 수 있고, 육바라밀을 성취함으로써 일체의 지혜도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분량으로도 가장 방대한 경전으로 그 사상적 내용에서도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온 국민이 혼연일치해 제조한 고려대장경(팔만대장경)의 첫머리에 이 경을 배열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인 것이다.
반야부 계통의 경전은 현존하는 대승경전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분량만큼이나 그 경명(經名)도 아주 다양하다. 이 가운데 특히 중요한 열 가지를 ‘십본반야(十本般若)’라고 한다.
①《소품반야경》 ②《대품반야경》 ③《인왕반야경》 ④《금강반야경》 ⑤《반야심경》 ⑥《유수반야경》 ⑦《문수반야경》 ⑧《승천왕반야경》⑨《대반야경》 ⑩《이취반야경》 이 가운데서 ③번과 ⑤번 이외에는 모두 ⑨번의 600권《대반야경》에 포함돼 있다.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약어 열반경(涅槃經). 석가모니불의 열반을 중심으로 설한 불교경전. 부처님의 입멸을 다루고 있는 경전들을 열반경류라고 하는데, 이것은 크게 소승열반경과 대승열반경으로 나눌 수 있다.
소승열반경은 부처님이 입멸한 것을 사건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는 데 반해, 대승열반경에서는 그 사건의 철학적, 종교적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즉, 전자는 부처님 입멸 전후에 걸친 부처님의 유행과 발병, 춘다의 공양, 최후의 유훈 그리고 불멸 후의 슬픔과 사리 분배 등을 기술하고 있고, 후자는 법신(法身)이 상주한다는 주장을 내세우며 적극적으로 열반을 상락아정(常樂我淨)이라고 해 소승의 소극적인 열반론에 반대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소승열반경에는 팔리어본 <대반열반경>과 <불반니원경(佛般泥洹經)>, 그리고 <불유교경(佛遺敎經)>, <장아함경> 속에 있는 유행경(遊行經)이 이에 속한다.
그리고 대승열반경에는 <대반니원경>과 <대반열반경>등이 있는데, 소승열반경, 대승열반경 모두 <대반열반경>이라 했음을 알 수 있고, 아래와 같은 대승열반경이 있다.
①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40권. 북량(北?)의 담무참(曇無讖) 번역. <북본열반경(北本涅槃經)>이라 일컬음. 부처가 쿠시나가라(ku?inagara)의 사라쌍수(娑羅雙樹)에서 열반에 들 때에 대중에게 행한 설법으로, 열반의 특성과 법신(法身)의 상주(常住), 일체중생실유불성(一切衆生悉有佛性), 일천제(一闡提)의 성불 등에 대해 설함. 담무참의 <대반열반경>은 대승열반경의 대표라고 할 수 있다. 이 경전은 모두 40권 13품으로 구성돼 있으며, 5세기 초에 한역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② 대반니원경(大般泥洹經) 6권. 동진(東晋)의 법현(法顯), 각현(覺賢) 공역. 줄여서 니원경(泥洹經)이라고도 함. 담무참(曇無讖)이 번역한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제1권에서 제10권의 제5 일체대중소문품(一切大衆所問品)까지에 해당하는 다른 번역으로, 주요 내용은 담무참의 번역과 거의 같음.
③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36권. 남송(南宋)의 혜관(慧觀), 혜엄(慧嚴) 번역. <남본열반경(南本涅槃經)>이라 일컬음. 법현이 번역한 <대반니원경(大般泥洹經)>과 담무참이 번역한 <대반열반경> 등 북본열반경의 모호하고 잘못된 부분을 고치고 수정해서 재편집한 것으로, 내용은 북본열반경과 같음. 후세의 〈열반경〉에 대한 연구는 대개 남본을 기초로 했다.
*대방광장엄경(方廣大莊嚴經)---고타마 붓다의 전설적인 생애를 묘사한 경전으로 범어로 랄리타비스타라(Lalitavistara)이며, 그 뜻은 ‘붓다의 지나온 생애에 관한 상세한 이야기’이다.
*대범천왕문불결의경(大梵天王問佛決疑經)---선종에서 선(禪)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전하는 경전으로서 이 경에 염화미소(拈花微笑) 혹은 염화시중(拈花示衆)이라는 말이 처음 나온다. 그리고 ‘불립문자 교외별전(不立文字 敎外別傳)이란 말도 이 경전에 나온다. 헌데 대범천왕문불결의경(大梵天王問佛決疑經)이 중국에서 만들어진 위경(僞經)이란 설이 지배적이다.
*대비바사론(大毘婆娑論)=비바사론---인도의 불교 이론서로 원명은 아비달마대비바사론(阿毘達磨大毘婆娑論)으로서, 카트야야니푸트라(迦多衍尼子, Katyayaniputra)가 저술했다는 <발지론(發智論)>에 대한 주석서이다.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의 여러 학자가 편찬했다. 부파불교시대에 불경 주석 연구에 종사한 주석가들을 비바사사(Vibhasika, 毘婆沙師))라고 불렀는데, 이들에 의해 편찬된 것이 대비바사론이다. 이에는 발지론에서 언급되지 않는 문제까지도 새롭게 채택해 논의하고,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의 학설을 집대성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당나라 현장(玄?)의 번역본과 북량(北?)의 부타발마(浮陀跋摩), 도태(道泰) 등이 번역한 아비담비바사론(阿毘曇毘婆娑論)을 들 수 있다. 전자를 신역, 후자를 구역이라고 한다.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뛰어난 지혜를 상징하며, 3악도(惡道)를 떠나 위없는 힘을 얻게 해주고 모든 것을 베풀어 주는 보살이다. 아미타 3존불 중 하나로서 아미타불의 우보(右輔)처 보살이다. 줄여서 세지보살이라고도 한다.
*대승(大乘)과 소승(小乘)---대승은 범어 mahayna의 번역으로 마하연나(摩訶衍那). 마하연(摩訶衍)이라 음역하며, 상연(上衍). 상승(上乘)이라고도 한다. 소승은 hinayana의 번역어이다.
승(乘, y?na)은 수레를 의미하며 중생을 태워서 생사의 고해를 건너 미혹의 차안에서 열반의 세계인 깨달음의 피안에 이르게 한다는 교법을 가리킨다. 승은 궁극적으로 가치 있고 파괴되지 않는 것에 대한 정신적인 추구이다.
소승불교는 중생구제보다 자기수행에 역점을 두는 반면 대승불교는 중생을 제도해 불타의 경지에 이르게 함을 이상으로 하며, 그 교리와 이상과 목적이 모두 크고 깊다고 해서 소승불교에 대칭해서 대승불교라 일컫는다. 우리나라 불교는 남방불교인 미얀마, 타이, 스리랑카 등의 소승불교와 달리 북방불교로 대승불교이다.
불멸 500년 경(AD1세기), 당시 승려집단은 권위의식에 사로잡히고 제도에 몰두한 까닭에 부처님 본래의 뜻이 많이 퇴색돼 있었다. 그래서 대중 구제와 원래의 부처님 사상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개혁운동의 하나가 대승불교 운동이었다.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대승기신론은 대승불교의 논서이다. 줄여서 <기신론(起信論)>이라고도 한다. 산스크리트어 원본이 없기 때문에 정확한 원본명은 알려져 있지 않다.
인도의 마명(馬鳴, 아슈바고샤, A?vagho?a, 100∼160?)이 저술했다고 하나 그의 생존연대가 불확실해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설도 있다. 중국 양(梁)나라 때의 진제(眞諦)와 실차난타(實叉難陀)의 한역본이 전하고, 한국에는 실차난타의 한역본이 전해지고 있다.
이 책은 중국은 물론, 한국과 일본 등의 화엄종(華嚴宗), 천태종(天台宗), 선(禪), 정토종(淨土宗), 진언종(眞言宗) 등의 주요 종파에 영향을 끼쳐 불교발전에 이바지했다.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원효의 저서,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 대해 주석한 교장의 일종으로 해동소(海東疏)라고도 한다. 수나라 혜원(慧遠, 513-592)의 <대승의장(大乘義章)>, 당나라 현수 법장(賢首 法藏, 643∼712)의 <기신론의기(起信論義記)>와 함께 3대 소(疏)라 일컫는 명저로 한국은 물론 중국에서도 기신론 연구의 기본문헌으로 삼았다.
*대승심(大乘心)---승(乘)이란? 타는 것이라는 글자로서 배나 수레에 비유한 것이다. 그리고 대승심이란 위로는 성불하기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널리 제도하려는 마음을 뜻한다.
불교에서는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 자기만 잘 살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사는 사람을 작은 수레에 비유해 ‘소승(小乘)’이라 하고,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같이 잘 살기를 원하고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을 큰 수레에 비유해 ‘대승(大乘)’이라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대승(大乘)’은 이러한 수레 차원의 대승이 아니라,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서 말하는 ‘대승이 믿음을 일으키는 것에 관한 논설’이라고 할 때의 대승이다. 즉, 옳고 그런 것을 훤히 알아서 옳은 것에 믿음을 일으키게 하는 마음이 대승의 마음, 대승심(大乘心)이다.
예를 들어 비유하면, 여기 물이 있다고 하자, 이 물에는 육안으로 분별할 수는 없지만 많은 물질들이 녹아 함유돼 있다. 이 물이 윗물에서 내려오면서 아래 물에 올 때쯤에는 물이 더럽다 혹은 깨끗하지 못하다 등으로 표현되는데, 이 때, 이 물에 섞여있는 물질들은 있다가 없다가 할 수 있는 것들이므로 생멸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물 자체 성분인 H2O는 다른 이물질이 소멸되거나 증가됐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새로 생기는 것도 아니므로 여여하게 거기에 항상 있으면서 생멸작용이 일어나는 물질들을 수용하기도 하고 정화하기도 하며, 모든 생명의 근원이 돼 육성하기도 하며, 운반하기도 한다. 모든 생명체에 이와 같은 물의 H2O와 같은 마음이 있는데 이를 대승심(大乘心)이라 한다.
*대승의장(大乘義章)---중국 수나라 시대 혜원(慧遠:523∼592)이 지은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 대한 해설서. 불교 교리 중 중요한 것을 정리한 책이다.
*대승장엄보왕경(大乘莊嚴寶王經)---밀교계의 경전으로 10세기 초반에 완성돼 10세기 말경에 중국에 전래됐고, 송(宋)나라 때 천식재(天息災)가 한역했다. 이 경전은 티베트 등 범어를 중심으로 불교를 연구하는 지역에서는 아주 잘 알려져 있는 경전 중의 하나이다. 밀교 총지종(摠持宗)의 소의경전이다. <대승장엄보왕경>의 주제는 관자재보살과 육자진언이다. 그리고 이 경전이 ‘옴 마니 반메 훔'의 육자진언을 설하는 유일한 경전이기도 하다.
*대웅전(大雄殿)---불교의 선종 계통 사찰에서 석가모니불을 본존불로 모시는 당우(堂宇). 법력(法力)으로 세상을 밝히는 영웅을 모신 전각, 혹은 큰 힘이 있어서 도력(道力)과 법력(法力)으로 세상을 밝히는 영웅을 모신 전각이라는 뜻이다. ‘대웅(大雄)’은 고대 인도의 ‘마하비라’를 한역한 말로, 법화경에서 석가모니를 위대한 영웅, 즉 대웅이라 일컬은 데서 유래하였다. 대웅보전이라고도 하며, 항상 가람의 중심이 되는 전당이다.
*대일경(大日經)---원명은 <대비로자나성불신변가지경(大毘盧舍那成佛神變加持經)>이고, 대일여래(大日如來)가 성불해 신묘한 변화를 나타내고, 가지(加持), 즉 부처의 대자대비한 힘의 가호를 통해 중생을 부처와 일체가 되는 경지로 이끄는 경이라 하겠다.
대일경은 7세기 중엽 서부 인도에서 성립됐다고 하며, 산스크리트어 원본은 존재하지 않고, 선무외(善無畏, 637~735)의 한역본 등이 있다.---→태장계 만다라 참조.
*대일여래(大日如來)---밀교(密敎) 진언종(眞言宗)의 본존 혹은 교주(敎主). 마하비로자나(摩訶毘盧遮那) ? 비로자나 등으로 음역한다. 우리나라 사찰의 대적광전(大寂光殿)에 모셔진 비로자불을 말한다.
밀교 이전의 대승경전인 <범망경(梵網經)>과 <화엄경(華嚴經)> 등에서는 비로자나를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의 중심을 이루는 광대한 세계관의 주체라고 말한다. 이러한 불타관의 형성은 법신(法身) 사상의 발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는 역사상 실재했던 불타인 석가모니불과는 달리 우주적 통일 원리의 인격화를 불타로 보는 것이며, 따라서 대일여래의 기본적인 성격은 절대적인 원리의 인격화이다.---→삼신불(三身佛) 참조.
*대일여래삼부경(大日如來三部經)---대일경(大日經), 금강정경(金剛頂經), 소실지경(蘇悉地經)
*대장경(大藏經)---‘대장경’이란 말이 처음 나타난 것은 중국 수(隋)나라 시대였다. 그 전에는 삼장(三藏) 혹은 일체경(一切經)이라 했다. 그리고 대장경 목판이 처음 조성된 것은 중국 송(宋)나라 시대였다. 그때까지는 모든 불경이 필사본이었다.
*대보적경(大寶積經)---당나라 보리유지(菩提流志)가 역편(譯編)한 120권으로 구성된 49종의 경전을 집대성한 것이다. 목판권자본, 국보 제246호.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脩大藏經)---20세기 초(1924~34) 일본에서 활자판으로 간행된 대장경이다. 활자판 간행 대장경으로는 가장 우수한 대정신수대장경은 고려대장경을 저본(底本)으로 삼으면서도 독자적인 분류로 불전을 배열했다.
*대지도론(大智度論)---<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의 주석서로서 인도 대승불교 초기의 고승인 용수(龍樹)가 저술했음. 흔히 <지도론(智度論)>, <대론(大論)>, <석론(釋論)> 등으로 약칭된다. 2∼3세기 초엽에 이루어졌는데, 현재 산스크리트 원전은 없고, 구마라습(鳩摩羅什)의 한역본만이 전한다. 전 100권의 방대한 것이었으나 원서는 그 10배나 되며, 구마라습은 그 중에서 처음의 <대품반야경>의 서품에 해당하는 34품만 완역하고, 이하는 초역했다고 한다.
주석서이지만 오히려 대승불교의 ‘백과전서’라고 할 만한 것으로서 상당히 광범히 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원시 불경과 부파불교의 논저에서 초기 대승경전까지 폭넓게 인용하고 있어 불교사 연구에 중요한 저서이다.
*대통지승여래(大通智勝如來)---범어로는 마하비즈냐즈냐나비부(Mahabhijna-jnanabhibhu)이며, 대통중혜여래(大通衆慧如來)라고도 한다. 과거 한량없고 끝없는 불가사의 아승지겁의 부처님이다. 법화경에 나오는 이야기. 대통지승불은 출가 전에는 전륜성왕이었고 16명의 아들이 있었다. 부왕이 성도해 대통지승불이 되자 아들들은 부왕의 가신 길을 사모해 모두 출가해 사미가 됐다. 이들이 모두 출가해 성불했으니 아촉불, 아미타불을 비롯한 열여섯 부처가 출현했는데, 석가모니불이 열여섯째 부처라고 한다.
*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대승불교 초기의 경전. 반야공관(般若空觀)을 설명한 기초 경전으로 원제는 <마하반야바라밀경(摩訶般若波羅蜜經)>이다. <이만오천송반야(二萬五千頌般若)>라고도 한다. 404년에 구마라습(鳩摩羅什:343∼413)이 한역했다. 용수(龍樹)가 저술한 대지도론(大智度論)은 이 <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의 주석서이다. 구마라집(鳩摩羅什) 번역한 또 하나의 반야경인 <소품반야경(小品般若經)>과 구별하기 위해 대품반야경이라 이름 했다.
그리고 축법호(竺法護)가 번역한 <광찬(光讚)반야바라밀경>과 무차라(無叉羅)가 번역한 <방광(方光)반야바라밀경>도 있다. 현장(玄奬)이 번역한 <대반야경> 역시 이 경전의 일부로 볼 수 있다.
*대혜 종고(大慧宗?, 1089~1163)---중국 남송(南宋) 시대의 선승으로 임제종(臨濟宗) 양기파(楊岐派)의 5대 전인(傳人)이고, 저술로는 <정법안장(正法眼藏)>과 <대혜어록(大慧語錄)>이 있다. 묵조선(默照禪)을 비판하고, 간화선(看話禪)을 제창해 선종불교의 발달에 큰 영향을 끼쳤다. 현재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과 태고종은 조사선(祖師禪)의 전통을 이은 간화선(看話禪)을 그 종지로 하고 있어서 간화선을 확립한 대혜 종고는 한국 불교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
*데바닷타(提婆達多, 調達, 제바닷다, 데와닷다, Tevadatta, Devadatta)---석가모니의 제자 가운데 배반자. 곡반왕(斛飯王)의 아들로서 석가모니의 사촌 동생이었다. 그는 갖가지 방법으로 석가모니를 해치고자 했으나 끝내 실패했다. 공교롭게도 그는 석가모니를 25년 동안 성의를 다해 시봉해 부처님의 10대 제자에 들고, 다문제일(多聞第一)이라 칭송되는 아난(Ananda, 阿難)의 친형이었다. 마가다국의 아사세태자(阿?世太子)를 꼬여 그 부왕 빈비사라왕을 배반해서 죽이게도 했다.
*도(道)란 무엇인가---중국 송(宋)나라 때 대혜(大慧) 종고(宗?) 선사(1089~1163)께서 그의 저서 서장(書狀)에서
“도무방소(道無方所)이니 명대승심(名大乘心)이니라. 즉, 도(道)란 존재하는 방위(方位)가 없으니, 대승심(大乘心)이라 부른다” 라고 하셨다.
도(道)는 길 도 자인데 흔히 도를 닦는다고 해 수도(修道)라고 하기도 하고, 도를 완성한 사람이라고 해 도인(道人)이라고 하기도 하며, 도를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할 때는 도사(道師)라고 한다. 양극단을 피하고 사정에 딱 들어맞는 것이란 의미로 쓰이는 중도(中道)도 또한 불교에서 쓰이는 유명한 도이다. 이와 같이 쓰이는 길 도자의 의미는 무엇일까?
대혜선사께서 ‘도에는 방소(方所)가 없다고 하셨는데, 방소란 소유물(所有物), 즉 가지고 있는 물건의 방위(方位)이다. 물건의 위치를 표시하는 씨줄과 날줄, 가로와 세로, 위도와 경도, 동서남북 사방의 방위인데 방위가 없다는 말이 무슨 말일까?
도(道)에는 형상(形狀)이 없다는 말이다. 형상이 없으니 씨줄과 날줄을 설정할 수 없고, 어디가 동쪽이고, 어디가 서쪽이라고 설정할 수도 없으니 ‘도에는 방소(方所)가 없다.’고 했다. 도에는 형상이 없다고 하는 뜻이 도를 충분히 설명한 것은 되지 못하니 대혜선사께서 ‘도를 대승심, 대승의 마음이라 부른다.’고 다시 설명을 붙이셨다.
도(道)는 이러한 대승심을 찾아 들어가는 길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대승심을 씨줄과 날줄로 표시할 수 없으니, 대승심으로 가는 길에도 방위가 있을 수 없다.
*도량(道場)---부처님이나 보살이 도를 얻는 곳, 또는 도를 얻으려고 수행하는 곳을 가리키는 말이다. 요즘은 불도를 깨닫기 위해 수행하는 수행자들이 모여 생활하는 절(사찰)을 뜻하는 용어로 많이 통용되고 있다.
*도량석(道場釋)---하루 중에서 제일 처음 올리는 기도. 사찰에서 새벽 예불을 하기 전에 도량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 치르는 의식. 하루 중에서 사람의 정신이 가장 맑을 때가 새벽시간이다. 수면을 통해 피로했던 심신이 새로워진 탓도 있지만 어둠이 가시고 밝음이 퍼져가는 새벽은 대우주의 기(氣)가 가장 충만해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천지만물이 깊은 잠에 빠져있는 첫새벽의 목탁소리는 잠들어 있는 유정(有情) ? 무정(無情)의 일체 생명체들이 법음(法音)을 듣고 미망에서 깨어나라고 각성을 촉구하는 뜻이 담겨 있다. 도량석을 하는데 있어서 목탁을 갑자기 치지 않고 서서히 약한 음에서 높은 음으로 올렸다가 내리기를 반복하는 까닭은 모든 신들이나 생명이 있는 것들이 놀라지 않고 깨어나게 하기 위한 것이다.
*도법아사리(都法阿?梨)---불교 교단의 스승을 아사리라 한다. 도법아사리는 밀교 계통에서 이르는 아사리로, 밀교의 태장계ㆍ금강계의 모든 법을 전해 받아 스승이 된 대아사리 승려를 이른다.---→아사리 참조.
*도선(道詵, 827~898)---신라 말 고려 초의 승려. 도선은 우리나라 풍수지리설의 창시자로 영암출신이다. 속성은 김씨로, 846년(문성왕 8)에 곡성 동리산(桐裏山)에서 수도하던 혜철(惠徹)을 찾아가서 무설설(無說說) ? 무법법(無法法)의 법문을 듣고 오묘한 이치를 깨달아 신승(神僧)으로 추앙 받게 됐다. 저서로 전해지는 것은 〈도선비기 道詵秘記〉?〈송악명당기 松岳明堂記> ? 〈도선답산가 道詵踏山歌〉 등이 있다.
*도신(道信, 580~651)---중국 선종(禪宗)의 제4대 조사(祖師)로서 ‘동산법문(東山法門)’을 열어 중국 선종(禪宗)의 교단을 형성 체계화했다. 도신은 일곱 살에 출가해 사미승이 됐고, 제3대 조사인 승찬(僧璨, ?~606)에게 불법을 배웠다. 도신의 선사상은 그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은 신라의 법랑(法朗, 632~?)에 의해 한반도로 전해졌다.
*도안(道安, 312~385)---도안은 불도징(佛圖澄)에게 사사해 두각을 나타냈으며, 고구려에 불교를 전한 전진(前秦)의 왕 부견(符堅)은 강북을 통일하고 도안을 장안으로 모셔왔다. 그는 이때부터 385년 72세로 입적할 때까지 번역된 수많은 경전에 대한 목록을 제작해 후대의 불교연구에 크게 공헌했다.
그리고 당시까지 경전 해석이 노장의 무(無)사상을 빌어서 불교의 반야사상을 설명하는 이른바 격의불교(格義佛敎) 시대였으나 도안은 이를 비판하고 격의불교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방광반야경> 등을 강의하고, 공(空)을 일체제법의 본성(本性)임을 풀이했다.
또한 당시 출가자들의 성은 주로 출생국이나 스승의 성을 따랐는데, 도안은 이를 비판하고 출가자는 모두 불타의 가르침을 신봉하는 사람이므로 석(釋)씨로 성을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스스로 석도안(釋道安)으로 칭했고, 이런 풍습은 오늘날까지 전하고 있다.
*도의(道義)---선덕왕 5년(784)에 당으로 가서 마조 도일(馬祖道一)의 제자 서당 지장(西堂智藏)에게서 선종의 법을 얻고 현덕왕 23년(831)에 귀국, 선법을 일으키고자 했으나 신라에서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마설(魔說)이라고 거부당했다. 그래서 도의는 설악산 진전사(陳田寺)에서 은거해 40년 동안 수도, 그 법을 제자 염거(廉居)에게 전하니 염거는 다시 체징(體澄)에게 법을 전했다. 가지산선파(迦智山禪派)의 개조(開祖)로 일컫는다.
*도현(道顯)---고구려의 승려. 일본에 가서 대안사(大安寺)에 머무르면서 교수하는 한편 <일본세기(日本世紀)>라는 역사책을 지었다고 한다.
*독각(獨覺, pratyeka-buddha)---불타의 가르침에 의하지 않고 스승도 없이 스스로 깨달아, 고독을 즐기며 설법도 하지 않는 불교의 성자. 과거 숙세(夙世; 지나간 시대/前代)에 선근(善根,. 좋은 과보를 낳게 하는 착한 일)이 많아서 자연을 보고 깨닫기도 하고 12인연이나 인연법을 관찰해 깨닫기도 한다. 연각(緣覺) ? 벽지불(?支佛)이라고도 함---→연각, 벽지불 참조.
*독두사문(禿頭沙門)---독두(禿頭)란 대머리를 뜻함. 비록 머리를 깎았으나 사문의 행이 없는 출가자. 옷이나 밥을 위해 머리를 깎고 출가한 이를 가리키는 말. 교묘한 말로써 민중을 현혹시키고 계를 지키지 않고 수행이 없는 비구를 꾸짖는 말이다.
*독성(獨聖)---독성(獨聖)은 깨달음의 경지에 오른 성자 가운데 하나로 흔히 나반존자(那畔尊者)라고 불린다. 다른 나라에선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우리나라 특유의 신앙 대상이다. 불교계에서는 나반존자가 18나한 중의 빈두로존자(賓頭盧尊者)일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그 독성(獨聖)을 단군 내지는 환웅(桓雄)일 것이라 하기도 한다. 사찰의 독성각(獨聖閣)에는 나반존자상을 모시기도 하지만 독성 탱화가 많이 모셔져 있다.
*돈교(頓敎)---얕고 깊은 일정한 수행 단계를 거치지 않고 단박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가르침. 차례를 거치지 않고 처음부터 깨달음의 경지를 설한 가르침. 돈오(頓悟)와 같은 맥락임. - 점교(漸敎)에 대비된다.
*돈오입도요문론(頓悟入道要門論)---당나라의 선승 대주 혜해(大珠慧海)의 어록집. 저자는 마조 도일(馬祖道一)의 문하에서 6년간 수행하며 깨달음을 얻은 체험을 바탕으로 해 돈오입도(頓悟入道)의 요지를 서술했다.
그에 따르면 해탈은 오로지 돈오(頓悟)에만 있다고 했다. 여기서 ‘돈(頓)’은 일시에 망념을 없애는 것이며, ‘오(悟)’는 무소득(無所得)을 깨닫는 것이고, 돈오를 이루려면 좌선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문장은 대부분 평이하며, 기발한 표현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불교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깊은 선 체험이 담겨 있어 주목된다.
*돈오점수(頓悟漸修)---줄여서 돈점이라 한다.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 점진적인 것이 점수(漸修), 단박에 깨닫는 것을 돈오(頓悟)라 한다. 돈오를 위해서는 그전에 점진적인 수행이 필요하다는 뜻, 또는 먼저 돈오하고 난 뒤에 점수한다는 뜻. 돈오점수를 표방한 대표적인 인물이 보조국사 지눌(知訥:1158~1210)이다. 성철(性澈)스님은 돈오돈수(頓悟頓修)를 주장했다.
*돌(?)---꾸짖을 돌. 꾸짖다, 놀라 지르는 소리, 어이!
*동사섭(同事攝)---사섭법(四攝法)의 하나. 부처나 보살이 중생의 근기(根機)에 따라 몸을 나타내어 사업, 고락, 화복 따위를 함께해 그들을 진리에 이끌어 들이는 방법을 이른다.
*동산법문(東山法門)---중국 선종(禪宗)의 제4조 도신(道信)을 이은 제5조 홍인(弘忍, 601-674)의 선법(禪法)을 말함. 도신과 홍인은 기주(호북성) 황매현 쌍봉산(雙峰山 = 일명 파두산/破頭山, 西峰과 東山 두 봉우리가 있었음)의 서봉에 함께 머물렀으나 도신이 입적한 후, 홍인은 그 산의 동쪽에 있는 동산(東山 = 빙무산/馮茂山)에 있는 유거사(幽居寺)로 옮겨 그의 선법을 선양했기 때문에 동산법문이라 일컫는다. 도신의 선법은 좌선해 오로지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청정한 본성을 주시하는 일행삼매(一行三昧)와 하나를 응시하면서 마음을 가다듬어 움직이지 않는 수일불이(守一不移)로 요약될 수 있고, 홍인의 선법은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청정한 불성(佛性)을 확인해서 잘 지키는 수심(守心)에 있었다.
※황빙무(黃馮茂)---원래 동산의 산주인 지방호족이었음. 그가 5조 홍인을 존경해 이 산을 기증했기에 빙무산이라고도 함.
*동체대비(同體大悲)---불교 교리의 핵심사상. 나와 남이 따로 없다는 자타불이(自他不二) 사상, 남의 생명을 내생명과 동일하게 본다는 경지, 내 생명이 소중한 만큼 남의 생명도 소중하고, 나와 상관없는 남을 위해 기꺼이 희생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과 같은 맥락의 말이고,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다[此有故彼有 此無故彼無]”라고 하는 사성제(四聖諦) 사상과도 일맥상통해 있다. 대자대비(大慈大悲), 자리이타(自利利他), 원융무애(圓融无涯) 정신도 같은 맥락이다,
※가이아(Gaia)의 이론---지구 시스템을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인 가이아로 보는 이론. 즉 가이아 이론은 인류가 존속할 수 있는 물리 ? 화학적 환경을 유지하는데 전 지구의 생물권이 관여하고 있다는 가르침이다. 헌데 인류는 이제까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지구의 다른 생물권을 무자비하게 착취한 암적인 존재였다. 지구를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로 간주하는 가이아이론은 불교의 동체대비의 가르침이 인류의 지속적인 생존을 위해 불가결의 사상임을 가리키고 있다. 가이아(Gaia)란 그리이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의 이름임.
*동체삼보(同體三寶)---불 ? 법 ? 승 삼보가 의미상으로는 각각 다른 것이나 본질적으로 일체라고 하는 것을 동체삼보(同體三寶)라고 한다.
*두두물물(頭頭物物)---삼라만상 두두물물(森羅萬象 頭頭物物)은 세상의 모든 것을 의미하며, 세상의 모든 것에 불심이 있다는 뜻. 낱낱의 개체마다 모두 진리가 들어 있다는 뜻.
*두순(杜順, 557~640)---수(隋)·당(唐)의 승려. 중국 화엄종(華嚴宗)의 개조(제1조). 성(姓)은 두(杜). 법순(法順)이라고도 함. <화엄법계관문(華嚴法界關門)> 등 다수의 저서를 남겼다.
*두타행(頭陀行)---출가수행자가 세속의 모든 욕망을 떨쳐버리기 위해 고행을 하는 수행방법의 하나. 이러한 수행은 그 목적이 세속의 욕망을 떨쳐버리기 위한 것이지, 억지로 육신을 괴롭혀서 천상에 태어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인도의 전통적인 고행과는 다르다. 석가모니의 10대 제자 가운데 가섭(迦葉)존자가 두타행을 가장 잘 닦았기에 두타제일(頭陀第一)이라 했다.
*둔황석굴(敦煌石窟)---중국 간쑤성(甘肅省) 둔황현(敦煌縣) 남동쪽 20km 지점의 명사산(鳴砂山) 동쪽 절벽에 판 석굴군으로, 막고굴(莫高窟)이라고도 한다.
중국 전진(前秦) 시대인 AD355~366부터 원(元) 시대까지 약 1,000여년에 걸쳐 조성됐으며, 석굴의 수가 무려 1,800여개나 되는 대표석인 천불동이다. 이 석굴들은 불교가 서역을 거쳐 인도에서 유입됐을 무렵의 것, 전성기 중원풍의 것은 물론 쇠퇴 ? 형식화된 밀교시대에 이르기까지의 것 등 석굴 하나하나에 그 시대와 문화가 반영돼 있다.
헌데 명사산은 왕모래가 진흙과 섞여 다져진 역암(礫岩)이어서 불상을 새길 수도 없고, 그림을 그릴 수도 없었다. 그래서 벽면에 흙을 발라 그 위에 그림을 그렸고, 그 부근의 강(월아천/月牙泉)의 강바닥의 진흙을 채취해 이겨서 불상을 만들었다.
*디가니까야(Digha Nikaya, 長部)---부처님의 긴 길이의 설법을 모아 놓은 경전, 북전 한역경전으로는 <장아함경(長阿含經)>에 해당한다. 가장 긴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을 비롯해 범망경(梵網經), 유행경(遊行經). 사문과경(沙門果經), 세기경(世記經), 선생경(善生經) 등 34개 경문이 실려 있다.
*뜰 앞의 잣나무(庭前栢樹子)---중국 당 시대에 조주 종심(趙州從?, 778~897)선사에게 한 선승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달마)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 이 말은 ‘무엇이 선의 진리냐?’라는 뜻이다. 이에 조주 선사가 대답했다. “뜰 앞의 잣나무니라.”
잣나무는 감정이 없는 - 무심한 나무이다. 무심(無心)이란 공(空)을 뜻한다. 즉 무심한 공(空)의 상태가 바로 달마대사가 서쪽(인도)으로부터 가지고 온 선(禪)의 진리요, 그대가 찾는 깨달음의 세계라는 말이다.
※인도가 중국에선 남남서에 위치하지만 당시엔 서역(西域)에 해당한다고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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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교(喇?敎)---티베트를 중심으로 한 불교를 라마교라 한다. 현재 라마교는 티베트, 몽고, 만주, 부탄, 네팔 등지에도 퍼져있다.
인도 출신의 명승 구루 파드마 삼브하바(Guru Padma-sambhava, 蓮華上座師)를 교조로 삼는다. 구루 파드마 삼브하바는 인도 나란타사(那爛陀寺)에서 밀교를 수학, 유가계(瑜伽系)의 불교를 배우고, 747년 티베트 왕의 초청으로 입국, 티베트 고유한 종교인 B?n교를 불교에 흡수해 불교를 정착시켰다.
15세기 초 총카파(Tsong?kha?pa, 宗喀巴)는 종교 개혁을 단행해 신파(新派)를 만들었다. 이를 황파(黃派), 종래의 종파를 홍파(紅派)라 한다. 이때부터 몇 개의 분파가 생겼으나 황파가 점점 세력을 차지했다. 따라서 현재의 티베트 라마교는 주로 황파이다. 승려인 라마를 불ㆍ법ㆍ승의 3보와 함께 숭배하고 최고의 승려를 달라이라마라 부른다. ‘달라이’는 바다란 뜻이고, ‘라마’는 스승이란 뜻이다. 라마교의 최고 지도자 달라이라마는 정치ㆍ종교의 두 가지 권한을 다 지배한다.
*라자가하(Rajagaha, 王舍城)---세존 당시 마가다(Magadha)국의 수도이다. 당시 마가국의 왕은 빈비사라(Bimbisara)였다.---→빈비사라(頻毘娑羅) 참조.
*라후라(Rahula, 羅?羅)---석가여래의 아들임. 어머니는 야소다라((Yasodara/ 구이/俱夷). 석가가 성도한 뒤에 출가해 제자가 됨. 석가의 10대 제자 가운데 한 사람. 밀행(密行) 제일이라 한다, 밀행 제일에서 ‘밀행’이란 남들이 알지 못하게 밖으로 드러나지 않고 혼자서 조용히 수행하는 것을 말하는데, 계율을 세밀한 부분까지 실천한 것을 말한다. 배운 바 그대로 작은 것 하나까지 꼼꼼하게 실천한 것을 말한다.
*룸비니(Lumbini, 藍毘尼)---현재 네팔 남동부 테라이(Terai) 평원에 자리 잡고 있는 룸비니는 불교의 창시자인 고타마 싯다르타, 즉 석가모니가 탄생한 성스러운 곳으로 불교 4대 성지 중 하나이다. 폐허로 방치돼 있던 곳을 1895년 독일 고고학자인 알로이스 포이러(Feuhrer)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1997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했다.
*룽다(Lungdar)---네팔 불교에서 희망, 소원, 안전 등을 기원하며 거는 깃발. 얼핏 만국기처럼 보이는 이 오색찬란한 깃발은 흰색, 초록색, 파란색, 노란색, 빨간색 천으로 물결을 이루는데 색깔마다 상징이 다르다. 흰색은 티베트의 식수가 되는 흰눈을, 초록색은 티베트의 푸른 물을, 파란색은 시린 하늘을, 노란색은 풍요로운 대지와 곡식을, 빨간색은 열렬한 불심을 뜻한다.
*리그베다(Rigveda)---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적 문헌으로, 브라만교의 근본경전인 4베다 중 첫째 문헌으로 <리그베다 상히타>의 약칭이다. ‘리그’는 성가(聖歌), ‘베다’는 경전, ‘상히타(sahit?)’는 경전의 집성(集成)을 뜻하는 말이다.
제식(祭式) 때에 신들을 제장(祭場)에 초청해 제관(祭官)이 부르는 찬가(讚歌)의 집록(集錄)이며, 베다 문헌 중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 10권 1,028의 운문(韻文)의 찬가로 돼 있고, 대부분은 기원전 1000년을 기점으로 전후(前後) 수백 년에 걸쳐 성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암송에 의해 후세에 전해지다가 차츰 정비 ? 편찬된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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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구니(魔軍)---마라(魔羅 Mara)라고도 하며, 그리스트교의 사탄(Satan)에 비유되는 존재이다. 마구니는 마귀가 아니다. 마구니는 자신이 만들어낸 생각일 뿐이다. 마구니는 내적으로 볼 때 내 마음속의 온갖 욕망(식욕, 성욕, 수면욕, 명예욕, 재물욕 등)과 그로 인한 번뇌들, 그리고 외적으로는 수행을 직접적으로 방해하는 여러 잡신들(죽은 사람의 영혼이나 신들)을 일컫는다.
석가모니를 여러 차례 유혹한 ‘욕계(欲界)의 지배자’가 바로 마구니이다. 생과 사 사이에서 갈등하는 그런 마음이나 욕구, 집착, 사랑, 증오 그런 번뇌를 가리킨다. 마구니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하고 싶다', '하기 싫다' 하는 자신의 분별이니 즉 스스로의 이면적인 모습이다. 자신의 수행을 방해하는 것들인데,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즉, 마구니는 일이 너무 안 되는 고난이나 파행 등의 역경(逆境)만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역으로 일이 너무 잘되고 편해서 수행할 마음이 잘 나지 않는 ‘순경(順境)’도 마구니의 일면이다. 바로 무사안일(無事安逸)도 마구니란 말이다.
*마나사로바(Manasarovar) 호수---티베트의 성호(聖湖). 히말라야 북쪽, 티베트 수도 라싸의 서쪽 ‘아리(阿里)’ 지역은 소위 ‘신(神)의 영역’으로 일컬어지는 지구상의 오지 중의 오지이다. 거기 카일라스산 남쪽 자락에 하늘호수[天湖]라 불리는 마나사로바 호수가 있다. 해발 4,560m에 위치한 이 호수는 지구상 가장 높은 고도에 위치한 담수호이다.
인더스, 갠지스, 알롱창포, 스투레지강 등 4대 강의 발원지이고, 세계 불교도들의 오체투지 성지순례지이며, 티베트 불교 신앙의 어머니이다. 마나사로바 호수를 한번 돌면 한 생애에 지은 죄가 소멸된다고 전해오는 불교 최대의 성지이다.
*마니, 마니주(摩尼, 珠)---여의주(如意珠)를 가리킴. 혹은 ‘보주(寶珠)’를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 이
구슬은 용왕의 뇌 속에서 나온 것이라 하며, 사람이 이 구슬을 가지면 독이 해칠 수 없고,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는 공덕이 있다고 함. 불행과
재난을 없애주고, 더러운 물을 깨끗하게 하며, 물을 변하게 하는 따위의 공덕이 있다.
*마라난타(摩羅難陀)---백제에 불교를 최초로 전한 인도 승려. 백제 침류왕 1년(384)에 바다를 건너 동진(東晋)으로부터 왔는데, 왕이 직접 맞이해 궁중에 머물게 하면서 예로써 공경했다. 다음 해 한산(漢山)에 절을 짓고 승려 10명을 양성했다.
*마르만(marman)---→말마 참조.
*마명(馬鳴)---한역 이름이 마명(馬鳴)이고, 원명은 아슈바고샤(Asvaghoa)이다. 생몰연대는 확실치 않고, <AD80~150>설과 <AD100~160>설이 있다. 쿠샨 왕조 제3대 카니슈카왕과 같은 시대의 사람으로 불교학자이며 시인이다. 북부 인도의 브라만교 출신으로 불교에 귀의해서 보살의 칭호를 얻었고, 카니슈카왕의 후원으로 대월지국(페르시아)에 가서 포교활동을 했기에 그의 작품이 중앙아시아에서 발견되는 듯하다.
인도의 고전인 산스크리트어 문학 최초의 불교 시인이다. 그의 작품 <불소행찬(佛所行讚, Buddhacarita)>은 불타의 생애와 교의를 격조 높게 서사시로 읊은 최초의 완전한 불타전이며, 불교문학의 걸작이자 인도 문학사상 불후의 명작으로 꼽힌다.
그리고 대승불교의 핵심 논서인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도 마명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또 그의 불교극의 단편이 중앙아시아에서 발견돼 인도 고전극 최고(最古)의 예를 제시하는 인도 고전문학 융성의 선구자로서 문학사상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불소행찬(佛所行讚) 참조.
*마 삼근(洞山麻三斤)---중국 송시대의 동산 화상(洞山守初, 910~990)에게 어떤 스님이 “무엇이 부처입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동산 화상이 “마 세근”이라고 대답했다.
이 말은 “세 근(三斤)의 마사(麻絲)로 만든 가사(승복)를 걸친 스님이 바로 부처이다”라는 뜻이다. 질문을 하고 있는 그대가 바로 부처이므로 다른 곳에서 진리를 찾지 말라. 즉 즉심시불(卽心是佛)과 같은 말이다.
※ 당시 삼베 실 3근이 옷 한 벌 감이었다.
*마이트레야(Maitreya, 미륵/彌勒, 270?~350?)---→미륵 참조.
*마조 도일(馬祖道一, 709∼788)---중국 당나라 시대의 대표적인 선사. 육조 혜능(六祖慧能)의 제자인 남악 회양(南岳懷讓) 선사에게 법을 전수 받았다. 석가모니 부처님 이후로 가장 위대한 도인이라 일컬어지는 마조 도일의 문하에는 백장 회해(百丈悔海)를 비롯해 80인 이상의 선지식(善知識)이 나왔다.
마조 도일 선사는 수수께끼 같은 방식으로 급소를 찌르는데 결코 기회를 놓치는 법이 없었다. 그리하여 유명한 ‘일면불 월면불(日面佛 月面佛)’ 화두를 남겼다. 뿐만 아니라 조사선(祖師禪)을 완성시켜 중국 선종의 황금기를 열었던 뛰어난 선각자였다.---→일면불 월면불(日面佛 月面佛) 참조.
마조선사는 평상심이 도(道)라고 했다. 즉, “무엇을 평상심이라고 하는가?” “꾸밈이 없고, 시비(是非)가 없고, 취함과 버림이 없고, 한결같아서 끊임이 없고, 속됨도 없으며, 성스러움도 없는 것이니라.”라고 했다.
*마지(摩旨)---절에서 부처에게 올리는 밥. 부처에게 올리는 밥은 대부분 사시(巳時), 즉 오전 9시 30분에서 11시 30분 사이에 올린다. 이것은 생전에 부처가 하루에 한 번 그 시간에 밥을 먹은 데서 유래한다. 하지만 특별한 경우에는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을 수도 있다.
*마하(摩訶, Maha)---큰, 위대한의 뜻을 지닌 산스크리트어. 용수(龍樹)의 <대지도론(大智度論)>에서는 대(大) ? 다(多) ? 승(勝)의 의미가 있는 것으로 설명한다.
마하란, 마음이 광대해 마치 허공과 같이 변두리가 없으며, 모가 난 것도 둥근 것도 아니며, 큰 것도 작은 것도 아니며, 또한 푸르거나 노랗거나 붉거나 흰 빛깔도 아니며, 또한 위 아래와 길고 짧은 것도 없고, 성날 것도 기쁠 것도 없고, 옳고 그른 것도 없으며, 머리도 꼬리도 없어서 모든 부처의 세계가 허공과 같다.
*마하가섭(摩訶迦葉, Mahakasyapa)---→가섭 참조.
*마하가전연(摩訶迦?延, 마하가티야나, Mahakayayana)---부처님 10대 제자의 한 사람. 부처의 말을 논리 정연하게 해설해 논의제일(論議第一)이라는 말을 들은 4대 성문(聲聞)의 한 사람임. 많은 내용을 요약해 핵심만을 말하기도 하고, 너무 간략해 뜻이 모호한 내용은 자세하게 풀어서 설명하기도 했다. 논리력이 뛰어나 여러 가지 논서(論書)의 저자로 추정된다.
*마하 목건련(目?連, 마우드가리야야나, Maudgalyayana)---→목건련 참조.
*마하무드라(Mahamudra, 大手印)---밀교에서 표방하고 있는 네 가지 수인 가운데 하나. 마하는 큰(大), 무드라는 도장 인(印)이므로 대인(大印)으로 번역된다. 대인은 대 우주의 도장, 진리의 도장이다. 이 도장은 아주 결정적인 것이어서 ‘결코 변동이 있을 수 없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마하바스투(Mahavastu, 대사/大事)---산스크리트어로 씌어져 흔히 <대사(大事)>라 번역되는 부처님의 전기이다. 부파불교시대 대중부 중 설출세부(說出世部)의 율장(律藏) 속에 부처님의 전기에 관한 자료를 집대성한 것이다.
이 작품은 석가모니의 현생과 전생의 기적적인 사건에 대한 이야기들을 편집한 것으로 붓다를 초인적인 존재로서 취급해 구세주가 이 세상에 출현한 것으로 본 사상이 반영돼 있다. 아주 오래된 내용에서 4∼5세기경의 내용까지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오랫동안 여러 편저자가 저술한 내용을 한데 모은 것으로 보인다.
*마하살(摩訶薩)---마하살타(摩訶薩?, Maha-sattva)의 준말로서 원어 ‘마하사트바’의 음역이다. 큰 보살, 대 보살, 즉 보살 중에서도 특별히 뛰어나고 수승한 보살을 높여 일컫는 말이다.
*마하지관(麻訶止觀)---천태대사 지의(智?, 538~597)가 저술하고, 관정(灌頂, 561-632)이 정리 기록한 것이다. 이 <마하지관>은 법화 삼대부(法華三大部)의 하나로서 지의가 수나라 시대인 594년 형주(荊州)의 옥천사(玉泉寺)에서 하안거 동안 강설한 내용을 제자인 관정(灌頂)이 기록한 것이다.
천태종(天台宗)의 실천적 관심법을 체계화한 저서로서 이 책에서 소개하는 지관(止觀)이라는 용어로 요약되는 선정 수행법은 천태 이전부터 전해온 여러 경전들의 내용을 모으고 정리한 것이고, 독특한 것은 아니지만 지의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 특징이다.
지(止)는 선정(禪定)이고 관(觀)은 지혜를 뜻한다. 이 둘을 함께 닦는 것을 원돈지관(圓頓止觀)이라고 하며, 책명 마하지관(摩訶止觀)도 같은 뜻이다.
*만공(滿空, 1871~1946)---경허(鏡虛)선사의 제자로서 일제의 불교정책에 정면으로 반대하며 우리나라 불교를 지키려 노력한 선사로 유명하다. 이론과 사변을 배제하고 무심의 태도로 화두를 구하는 간화선(看話禪)을 강조했다. 제자들에게 무자화두에 전념할 것을 가르쳤다. 주로 수덕사에 주석했고, 문하에 춘성(春城), 벽초(碧超), 비구니 법희(法喜), 일엽(一葉) 등이 배출됐다.
*만다라(曼茶羅, 曼陀羅, mandala)---밀교(密敎)에서는 부처님 불법의 세계를 상징적으로 여러 가지 도형으로 표현하는데, 만다라는 그런 불화(佛畵, 呪畵)이다. 즉 만다라는 불법의 진리를 도형화한 그림으로서, 법계(法界)의 부처가 증험한 것을 그림으로 나타내어 숭배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만다라엔 대체로 아래와 같은 두 가지 형태가 있다.
① 깨달음의 경지를 도형화한 그림
② 수행자의 우주적 심리현상을 도형화한 그림
그리고 만다라엔 금강계 만다라(金剛法曼茶羅)와 태장계 만다라(胎藏界曼茶羅)가 있다. 금강계 만다라는 법신여래의 지덕(智德)을 불(佛) ? 금강 ? 보(寶) ? 연화 ? 갈마(?磨, karma)의 5부로 나누어 도형화한 것이고, 태장계 만다라는 법신여래의 본체를 어머니 뱃속의 태(胎)에 비유해 도형화했다.
*만동자(蔓童子, 말룽꺄뿟타, Malunkyaputta)---만동자라는 비구가 하루는 부처님을 찾아와서 다음과 같은 문제를 던진 일이 있다.
“이 세계는 영원한가 무상한가. 끝이 있는가 없는가. 영혼과 육체는 하나인가 둘인가. 여래는 사후에 존속하는가 안하는가.<중아함 권 60. 전유경(箭喩經) >”
이런 문제에 대해 다른 종교에서는 명확한 답변을 해주고 있는데 석가모니의 교설에는 그러한 해명이 없으므로 몹시 답답했던 모양이다. 그는 만일 끝까지 부처님께서 답변을 해 주시지 않는다면 부처님 곁을 떠나겠다는 단호한 태도까지 보였다.
이에 대해 석가모니는 ‘독화살에 맞은 사람의 비유’를 든 다음, 그런 문제는 ‘깨달음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고 깨우치고 계신다. 이 비유가 강조하는 바는 인간은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고 죽음이 다가오는 것이 이와 같이 빨라서, 한가로이 이것저것 따지는 일로 시간을 헛되이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실제의 삶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쓸데없는) 사변적이고 형이상학적 논의에만 빠져서는 안 된다는 뜻이며, 인생의 보다 중요한 문제는 현실적인 고통을 정확히 인식하고 그에 대응해 고통을 극복하려는 노력이라는 것이다. 이는 가르침을 펴는 부처님의 목적이 일차적으로 자신에게 부닥친 현실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만들어진 신(God Delusion)---영국의 동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가 쓴 책. 리차드 도킨스는 무신론자의 자긍심을 일깨우고자 했다. 무신론은 마음의 건전한 독립성 즉, 건강한 마음을 나타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학적 논증을 통해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무신론을 펼치면서, 인격화된 신을 숭배하는 종교(기독교처럼)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다른 저서들과 마찬가지로 초자연적 창조주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로버트 피시그(Robert Maynard Pirsig)의 말을 인용하며 종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누군가 망상에 시달리면 정신이상이라고 한다. 다수가 망상에 시달리면 종교라고 한다.”
그리고 종교가 없는 우리 세상을 상상해 보라고 리처드 도킨스는 외친다. 그러한 세계는 자살 폭탄 테러범도 없고, 9.11 테러도 없고, 십자군도 없고, 마녀 사냥도 없을 것이라 단언한다.
“자연은 인간을 만들었고, 인간은 신을 만들었다.”는 말이나, “신은 인간을 만들고, 인간은 신을 만들었다.”는 말과 맥락을 같이 하는 말이다.
*만뢰(萬?)---자연계에서 나는 온갖 소리. 산곡 사이(산골짜기)에서 나는 바람과 물의 여러 소리.
※만뢰구적(萬?俱寂)---밤이 깊어 아무 소리 없이 아주 고요해짐.
*만일회(萬日會)---불교의식의 하나. 염불만일회(念佛萬日會), 염불계(念佛契)라고도 한다. 죽은 뒤에 극락세계에 나기를 기원하면서 1,000일 또는 1만 일 동안 큰 소리로 아미타불을 염불하며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처음 시작된 것은 신라시대이지만 성행하게 된 것은 조선 중기 이후부터이다. 이때에는 염불수행하는 풍조가 널리 퍼짐에 따라 만일회를 개최해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사원이 많았다.
*만자(卍字)---범어 스바스티카(swastika). 불교를 상징할 때 사용하는 표지. 부처님이 지닌 성덕(聖德)과 길상(吉祥) 혹은 행운의 표시이다. 길상해운(吉祥海雲), 길상희선(吉祥喜旋)이라고도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몸에 이 표지가 있었다고 한다. 모양은 중심에서 오른쪽으로 도는 우 만자(?)와 왼쪽으로 도는 좌 만자(卍)로 나누어진다.
이 만자가 유럽에 전해져서 기독교의 상징인 십자가(갈고리 십자가)가 되기도 했고, 나치스 독일에서는 좌 만자를 하켄크로이츠(Hakenkreuz)라 해서 나치스의 상징 마크로 했다.
※ Haken=영어 hook(갈고리), kreuz=영어 cross(십자가). 만자(卍字)
*만트라(mantra, 진언)----진언(眞言)이란 허튼말이 아닌 진실한 말, 참다운 말이라는 뜻으로 실담문자((悉曇文字, 범어문자)로 된 <옴 마니 반메훔>처럼 한 자, 혹은 길어야 두 세줄 정도에 불과한 신비한 힘을 지닌 짧은 음절로 이루어진 주문이다. 신주(神呪) ? 주(呪) ? 밀주(密呪) ? 진언(眞言) ? 밀언(密言) 등으로 일컬어지는데, 원문은 번역하지 않고 원어 그대로 음사(音寫)하며, 이를 많이 외우면 재액이 물러가고 공덕이 쌓인다고 한다. 긴 주는 다라니(陀羅尼)라고 한다.
*만행(萬行)---만행이란 진리에 이르는 길(수행을 통한 해탈)을 뜻하는데, 일반적으로 구도의 길, 즉 행각(行脚)을 떠나는 것을 말한다. 스님들이 안거수행 후 여러 대중들과 만나고 여러 선지식들에게 배우고 또 배움을 주는 행위를 만행이라 한다. 이러한 만행을 통해 하심을 배우고, 지혜를 체험하며, 세상과 중생의 삶을 이해하고, 그들과 불법의 지혜를 보임한다.
보임(保任)이란 보호임지(保護任持)의 준말로서 깨달은 바를 잃지 않고 더욱 단단히 하는 작업을 말한다. 만행과 행각은 바로 보임을 위해 행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크게는 만행이 따로 있어서 만행이 아니라 사는 것이 그대로 만행이라고도 한다. 고정됨이 없이 행하는 생활자체가 만행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나왔고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이 만행이기 때문에 결국은 육도만행(六度滿行)이라고 할 수 있고, 만행이 있기 때문에 육도윤회가 있다는 것이다.
※육도만행(六度滿行)---보살 혹은 중생이 육바라밀을 완전하고 원만하게 수행하는 일. 육바라밀을 여러 가지로 실천하며 행하는 것.
※육도윤회(六道輪廻)---생명이 있는 것은 여섯 가지의 세상에 번갈아 태어나고 죽어 간다는 것으로 이를 육도윤회라고 한다.
*말나식(末那識 = 제7 마나스식/Manas識)---삼식(三識)의 하나로서 모든 감각이나 의식을 통괄해 ‘자기’라는 의식을 낳게 하는 마음의 작용으로 ‘내가 있다’, ‘이것이 나다’라는 아주 깊은 무명의 뿌리이다. 이런 자아의식의 형성은 모든 미망(迷妄)의 근원이 되는 잘못된 인식 작용이다. 말하자면 말나식은 오염된 자아의식이다.
이 제7식 말나식은 미세한 생각, 비언어적 생각을 할 수 있는 의식이며, 또한 이기심(egoism)이 있는 의식이다. 모든 어리석음은 바로 이 7식의 자의식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것이다.
정통 불교 가르침에서는 보통 마음으로 육식(六識)만을 인정한다. 그러나 유식사상에 따르면 7번째 말나식은 이기적이고 집착하고 치우쳐서, ‘나’ = 자아집착식(自我執着識)을 말하며, 아주 깊은 잠재의식 속에 잠겨 있다.
※삼식(三識)---말나식, 아뢰야식, 암마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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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마(末摩)---산스크리트어 marman의 음사. 불교에서 ‘급소(急所)’를 이르는 말. 사혈(死穴)·사절(死節)이라 번역. 몸 중에서 조금이라도 다치거나 해치면 목숨이 위험한 급소(急所)를 말함.---→단말마 참조.
*멸빈(滅?)---무거운 죄를 저지른 수행승을 영원히 승단에서 추방함. 멸빈은 불교에서 가장 치욕적인 벌로 승려의 신분증인 도첩(度牒)을 빼앗아 승적을 박탈하는 것이다.
*명(明, viduya)---무명(無明, A-viduya)이라 할 때 명은 지혜를 뜻한다. 명의 반대말인 무명은 무지(無智)의 뜻, 즉 바르지 않은 견해로 마음이 가려 있는 상태임.
우리가 무언가를 명확히 볼 때 우리 안에는 심오한 평화가 온다. 우리는 아무런 긴장도, 불안도, 동요도 느끼지 않는다. 예를 들어, 내가 천천히 말할 때는, 내 안에 정적이 넘쳐 나오는 샘이 있음을 깨닫게 되고 명백한 이해, 즉 명(明)를 깨닫게 된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모를 때는 나는 더 빨리 말하려고 한다. 나는 불필요한 말들을 사용하게 되고 내가 사용하는 문장들이 뒤틀리게 된다. 따라서 우리가 무엇인가를 명확히 이해할 때 - 즉, 명(明)할 때는 우리는 우리 안에 고요와 정적이 있음을 느끼게 된다. 무명은 밝지 못함. 즉 지혜가 없는 상태이다.
*명랑(明朗)법사---신라 선덕여왕 4년(635) 명랑법사에 의해 신라에 밀교(密敎)가 처음 들어왔다. 명랑은 자장(慈藏)의 생질로서(명랑의 어머니가 자장의 누이임) 선덕여왕 원년(632)에 당나라에 들어갔다가 귀국할 때 신인비법(神印秘法)이라는 방위신(方位神)을 신앙 대상으로 삼는 주술적인 신앙을 들여왔다. 그리하여 신인종(神印宗)의 종조가 됐다.---→신인종(神印宗) 참조.
*명상(名相)---모든 사물이나 일에 붙어진 이름과 형상. 우리는 그 이름만 듣고도 사물의 형상을 생각하게 된다.
형상이란 바탕과 모양이 있고 없음을 막론하고, 공간적으로 있는 형용과 체적 ? 질량뿐만 아니라, 시간적으로 나타나는 생 ? 주 ? 이 ? 멸 ? 성 ? 주 ? 괴 ? 공(生?住?異?滅, 成?住?壞?空)도 형상이다. 또한 5관(五官)으로 감촉되는 열(熱) ? 소리 ? 빛 ? 냄새 ? 맛 같은 것도 형상이다.
그러나 이 이름이나 형상은 그 자체가 본래 확실히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망령된 생각이 지어낸 빈이름이며, 한 때의 인연을 따라 생겨난 일시적인 허상(虛像)이다.
※5관(五官)---5근(五根) 또는 5력(五力)이라고도 하는데, 곧 5감각 기관(器官)인 눈, 귀, 코, 혀, 몸을 가리킨다. 이는 보리(菩提), 즉 깨달음을 이루기 위해 다스려야 하는 다섯 가지 기관이기도 하다.
*명색(名色, naamaruupa)---색(色)은 물질적인 것을 가리키고, 명(名)은 비물질적인 것을 가리킨다. 여기서 정신은 마음을 의미하며 물질은 몸을 의미한다. 그래서 정신은 마음과 마음의 작용인 수, 상, 행, 식을 말하며, 물질은 색을 말하는 것으로 몸을 의미한다. 명색의 발생은 물질적인 것과 비물질적인 것이 결합된 상태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명색(名色. naamaruupa)은 정신(精神)과 물질(物質)을 말합니다.
그리고 12연기에 있어서는 식(識)을 조건으로 해 명색이 일어나는데, 명이 모태(母胎)에 잉태(孕胎)하려는 순간의 자리가 식(識). 그 이후 태내에 있는 동안 육근(六根)이 뚜렷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가 명색이다.
*명심견성(明心見性)---깨닫는 것을 의미한다. 밝은 마음으로 타고난 천성을 안다는 뜻, 곧 마음을 밝혀 자기 본연의 불성(佛性)을 보는 것이라는 뜻으로 불교 수행의 핵심을 명심견성이라고 한다.
여래를 보고, 불광(佛光)을 보며, 내면의 소리를 듣고, 경지를 얻고, 지혜를 얻는 것, 그러한 것이 바로 명심견성이다. 성(性)이란 우리의 본성, 우리 본래의 면목 또는 우리 본래의 힘을 가리킨다. 우리가 본래의 힘을 볼 수 있게 되면 우리는 모든 지혜와 모든 것을 얻게 될 것이다. 곧 깨닫는다는 말이다.
※불광(佛光, Buddha Light)---깨달음의 빛으로 법신불(法身佛)을 증득한 존재로부터 나오는 정묘(精妙)한 빛을 말한다.---→불광(佛光) 참조.
*명왕(明王, 산스크리트어 Vidya-raja)---밀교(密敎) 계통에서 모시는 불상. ‘명(明)’은 지혜를 나타내는 말로, 명주(明呪), 진언(眞言), 다라니를 가리킨다. 진언은 지력(智力)으로 중생의 번뇌의 어두운 벽을 깨뜨리는 광명이다. 따라서 명왕은 주문을 관할하는 왕자(王者) 혹은 주력을 가진 자 중에서 가장 훌륭한 자로서 지혜의 작용에 의해 중생을 구제하는 방편불(方便佛)이다.
명왕은 밀교가 성립하면서 등장했고, 5세기경 공작명왕(孔雀明王)이 최초로 등장했다. 공작명왕은 독초나 해충을 잡아먹는 공작을 신격화한 것으로 모든 중생의 정신적인 번뇌를 제거해 안락함을 주는 존상으로 명왕의 일종이지만 형상이 분노형이 아니고 자비로운 보살형으로 공작을 타고 있다.
중생 중에는 인과의 도리를 모르고, 업보가 끊이지 않으며, 불법을 비방하는 등 교화하기 어려운 무리들이 있다. 명왕은 이러한 무리를 버리지 않고 구제하고 교화하기 위해 대일여래(비로자나불)의 교령을 받아 일체의 장애를 물리치는 역할을 한다.---→공작명왕(孔雀明王) 참조.
*명행족(明行足)---부처님의 열 가지 이름 중의 하나. 지(知)와 행(行)이 완전한 자란 뜻.
*목건련(目?連, 모옥갈라나, Maudgalyayana, 마우드갈리아야나)---본래 사리불과 함께 회의론자 산사야(刪?耶)의 제자였으나 제자들을 이끌고 불문에 귀의한 뒤 석가의 10대 제자, 4대 성문(聲聞) 중 한 사람이 됐다. 석가에게 ‘신통제일(神通第一)’이라 불렸다. 효성이 지극해서 어머니를 지옥에서 제도한 일화로 유명하다.
*목어(木魚)---마치 고기모양으로 나무를 깎아 속을 파고 그것을 조석예불(朝夕禮佛) 때 친다. 수중(水中) 중생의 고통을 쉬게 하는 법구로 쓰인다. 또 일설에는 물고기는 잠을 자지 않기 때문에 수행 정진하는 사람들이 잠에 취해서는 안 되는 것을 경책하는 뜻이기도 하단다.
*목우난타(牧牛難陀)---석가모니 제자의 한 사람. 본래 소를 먹이던 사람이었으므로 이런 이름으로 부른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그는 일찍이 소를 방목하는 11가지 일을 물어 불타의 일체 지혜를 알아내고 출가해 아라한의 과위를 이루었다고 한다.
*목우자(牧牛子)---보조국사(普照國師)의 호(號). 소먹이는 사람이라는 뜻.
*목우자수심결(牧牛子修心訣)---고려 불교의 중흥자인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이 마음을 닦는 비결을 적은 선이론서(禪理論書). 1467년(세조 13)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국역해 간행한 1책, 목판본. 보물 제770호. 서울대학교 소장.
*목탁(木鐸)---본래는 수도승에게 교훈을 주는 뜻에서 밤이고 낮이고 눈을 감는 일이 없는 물고기를 본뜬 모양으로 만들었으며, 그 같은 연유에서 목어(木魚)와 같은 뜻인데, 주로 깨우치는데 의미가 있었다.
지금은 대중을 모으는데 쓰는 신호이기도 하고, 모든 의식 집행에 있어 가장 많이 쓰이는 소중한 법구(法具)이다. 처음에는 쇠로 만들었던 것을 나중에 나무로 만든 것 같으며, 이러한 법구들은 거의 전부가 중국에 와서 선종사찰에서부터 비롯됐다.
*몰종적(沒?迹)---집착 없는(무집착) 자유스러운 삶과 행동. 아무 흔적이나 자취가 없음을 말한다.
*묘각(妙覺)---바르고 원만한 부처의 깨달음. 보살 수행의 계위(階位)중 마지막 단계. 모든 번뇌를 끊고 지혜를 원만히 갖춘 부처의 경지. 등각(等覺) 위에 있는 보살이 무명을 끊고 이 지위에 들어간다.
*묘길상(妙吉祥)---문수보살(文殊菩薩)을 일컫는 말이다. 문수보살은 산스크리트어로는 만주슈리(Majushri)이고, 문수사리(師利) 또는 문수시리(尸利)라 번역되는데, 여기서 문수(文殊)는 묘(妙)하다는 뜻이고, 사리 혹은 시리는 길상(吉祥)이라는 의미라서 합쳐서 묘덕(妙德), 묘수(妙首), 묘길상(妙吉祥)으로 번역된다. 따라서 문수보살을 묘길상보살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현재 북한의 금강산 만폭동 골짜기 높은 곳에 있는 고려시대의 마애불(磨崖佛) 이름이 묘길상이다. 높이 40m의 붉은 성벽에 양각으로 새긴 마애미륵불좌상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마애불로 북한의 국보로 지정돼 있다.
*묘법(妙法)---미묘한 법문. 묘(妙)란 불가사의한 것, 법(法)은 교법(敎法)을 뜻한다. 즉 부처님 일대의 설법 내용 전체가 바로 묘법이다. 이 묘법을 사실로 드러낸 것이 본존 부처님이다. 따라서 묘법(妙法)은 우주의 근본법칙이고, 영원한 행복과 평화의 궤도다.
헌데 이 묘법(妙法)이라는 묘한 이치는 알음알이로 연구를 한다 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달아야만 알 수 있는 것이다
*묘색신여래(妙色身如來)---아촉여래(阿?如來, 악쇼비아/Akshobhya)의 다른 이름. 마하무드라: 큰 도장 대인(大印)을 지니신 분이다.
*묘유(妙有)---모든 것이 실체가 없으면서 존재하고 있는 모양. 불변하는 실체가 없기 때문에 성립하는 현상. 공(空)을 근원으로 하여 존재하는 현상.
진공(眞空)과 묘유(妙有)에서 진공은 과학에서 말하는 것과는 뜻이 다르다. 없는 듯하면서 실상 그 속에 있음(有)을 말한다. 묘유는 그를 뒤집어서 있는 듯하면서 실상은 없는 것을 말한다.---→진공묘유 참조.
*무간지옥(無間地獄)---팔열지옥(八熱地獄)의 하나로, 아비지옥(阿鼻地獄) 또는 무구지옥(無救地獄)이라고도 한다. 사람이 죽은 뒤 그 영혼이 이곳에 떨어지면 한 겁(劫) 동안 끊임없이[無間] 고통을 받는다는 지옥이다.
*무견(無見)---유견(有見)은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실체가 있으며, 그 실체는 늘 변하지 않는다 하고 집착하는 생각이다. 이에 비해 무견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실체로서 존재하지 않고 일체가 무(無)라고 주장하는 견해. 실재가 있지만 그것은 생멸, 무상하다고 보는 것이다.
부파불교시대는 소승불교로서 유견 아니면 무견, 무견 아니면 유견의 변견으로 각기 자기 교설을 주장해 중도사상이 없었는데, 오히려 근본불교는 중도사상에 입각해 모든 교설이 설해져 있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란 죄나 허물을 소멸시켜 맑고 깨끗하게 해주는 진언(眞言)을 설한 경전이다. 다라니경이란 탑을 조성한 다음 불경을 염송함으로써 성불한다는 뜻에서 이루어진 경전(기도문)으로서, 탑 속에 이를 수납해왔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당나라 측천무후 말년인 704년에 서역 도화라국(覩貨羅國)에서 온 미타산(彌陀山)이 법장(法藏) 스님과 함께 한역(漢譯)했다.
1966년 10월 13일 불국사 석가탑을 해체 보수할 때, 2층 탑신에서 금동 사리함이 발견됐다. 이 사리함 안에 여러 사리 장엄구와 함께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들어 있었다. 이 다라니경은 일본에서 770년에 간행된 백만탑다라니(百萬塔陀羅尼)의 목판본보다 20년가량 앞서는 것으로서, 751년 신라 경덕왕 10년경에 간행된 목판인쇄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본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국보 제126호로 지정돼 있다.
*무기(無記)---무기에는 다음 세 가지 개념이 있다.
? 하나는 붓다의 침묵을 무기(無記)라 한다. 석가가 다른 종교가(외도)로부터의 형이상학적 10가지 질문에 대해 침묵하고 기답(記答)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부처님은 신이나 우주의 원리와 같은 초월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문제, 즉 세계의 공간이 유한한 것인지, 아니면 무한한 것인지, 또는 여래는 사후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은 것인지, 이와 같은 외도(外道)의 질문에 대해서 답변하기를 거부했다. 이를 무기라고 한다. 무기의 이유는 형이상학적 문제는 인간의 인식과 경험을 초월해 있기 때문에 해결할 수 없으며, 또 비록 해결했다 하더라도 불안 ? 고뇌의 해탈에는 아무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데 있다.
? 다른 하나의 개념은 무기란 선악을 가리기 이전의 상태를 말한다. 불교에서는 인간의식이 외부로 표출되는 것을 선과 악과 무기의 3성(性)으로 구분하는데, 이 중 무기는 선악의 분별이 없는 상태이다. 일반적으로 선과 악, 흑백 등의 상태가 분명한 것을 유기(有記)라고 하고, 선 ? 악이라고 분명히 규정지을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무기라고 한다. 따라서 유기의 선과 악에는 좋은 과보와 나쁜 과보가 따르지만, 무기에 대해서는 어떤 과보도 따르지 않는다고 한다. 그 까닭은 무기의 업(業)에 대해서는 자성(自性)에 기록할 것이 없기 때문에 미래의 과보를 받지 않는 것이라고 본다.---→무기업(無記業) 참조.
? 또 하나 참선 중에 화두를 망각하거나 화두를 놓친 상태를 말한다. 참선을 할 때 번뇌가 일어나지 않고 화두를 분명하게 들고 있어야 하는데, 아주 고요함에 매료돼 화두를 망각한 상태를 무기공이라 하기도 하고, 그냥 무기에 빠졌다 라고도 한다.---→무기공(無記空) 참조.
*무기공(無記空)---무기에 빠진다는 것은, 공(空)에 집착한 나머지, 공에만 머무르려는 것이다. 공사상(空思想)에 집착해서 생각이 일어남을 지나치게 경계한 나머지,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막고 빈 마음으로 앉아 있음을 무기공이라고 한다.
진정한 공이라는 것(무기공은 진정한 공이 아님)은 잠시도 머물지 아니하므로 머물지 않는 마음을 내는 것이요. 허공같이 텅 비어 있는 마음이니, 온갖 생각들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이요. 그리고 이 변화무쌍한 어떤 생각과 마음이든지 분별치 아니하고 받아들이고 흘러 보내는 것을 진정한 공이라고 한다.
또 하나 무기공(無記空)은 참선 중에 화두를 망각한 상태, 화두를 놓친 상태를 말한다. 참선을 할 때 아주 고요하고 번뇌가 일어나지 않고 화두를 분명하게 들고 있어야 하는데, 고요함에 매료돼 화두를 망각한 상태를 무기공이라 해서 예로부터 무기(無記)에 빠지는 것을 경계했다.
*무기업(無記業)---삼성업(三性業)의 하나. 선업에도 악업에도 속하지 않으며 선악의 어떠한 과보도 받지 않는 업을 이른다. 비선비악(非善非惡)의 무기업(無記業)은 과(果)를 끄는 힘이 없다.
*무념(無念), 무상(無相), 무주(無住)---육조단경(六祖壇經)의 핵심내용. 육조단경에는 ‘무념(無念)을 세워 종(宗)을 삼고, 무상(無相)으로 체(體)를 삼고, 무주(無住)로 본(本)을 삼는다’고 말했다.
무념은 생각 속에 헛된 생각이 없는 것으로 번뇌에 시달리는 마음이 없다는 뜻이다. 나아가서 무념은 생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자유자재로 생각하며 대상과 접촉하는 작용이다. 대상과 접촉하면 보고 듣는 작용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지만 그런 작용 속에서도 오염되지 않아야 비로소 무념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무념에서 ‘무’는 잘못된 생각이 없는 것이지 바른 생각이 없음을 가리키지 않는다.
무상에서 ‘상’은 망념으로 일어나는 허상을 말한다. 즉 우리들의 생각인 상(想)이 마음 밖의 대상으로 실제한다고 착각하는 그것이 상(相)이다. 그리고 무상이라는 것은 ‘상 속에 있으면서도 상을 떠나는 것’이다. 즉 차별상에 들어가 있으면서도 그 차별상을 공(空)으로 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갖가지 차별상과 모든 경계에서 집착을 떠난 것이 무상이다. 모든 중생의 마음은 본디 무상이다. 상은 모두 망상에 물든 마음이다.
무주란 양극단 중 어느 것도 얻을 수 없다는 인식에서 출발해 어떤 것도 자신의 것으로 취하려는 집착이 사라지고 어디에도 머물지 않는 것을 말한다. 어떤 생각이나 어느 찰라에 머물면 그것을 속박이라 한다. 따라서 모든 법에서 어떤 찰라에도 머무르지 않으면 속박이 없으니 그것이 무주이다. 즉, 이어지는 온갖 대상에 소박되지 않는 것이 무주이다. 공(空)에도 불공(不空)에도 머물지 않는 그것이 바로 모든 것에 머물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것이 인간의 본디 성품이다.
*무드라(手印, 印契, mudra)---무드라](mudra)는 산스크리트어로, 불교에서 부처님이나 보살님의 조각상과 탱화(幀畵)에서 보이는 손 모양들을 말한다. 손과 손가락으로 표현하는 수많은 상징적 모양이다. 한자로 ‘인상(印相), 수인(手印), 인계(印契)’ 등으로 변역 된다. 인(印)은 ‘찍는다, 도장’의 뜻이 있고, 계(契)는 어떤 행위를 하고 나서 그 끝을 맺는 것을 뜻한다.
조각이나 그림의 경우, 손의 자세는 그 인물의 특성이나 그와 연관된 중요한 일화를 상징한다.---→수인(手印) 참조.
*무량광(無量光)---아미타불이 발하는 밝은 빛.
*무량수경(無量壽經)---무량수경과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 <아미타경>을 합해 정토 삼부경(淨土三部經)이라고 하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유통됐던 경전이다. 서기 100년경 북인도에서 만들어진 이 경의 한역본 중 우리나라에 널리 유포된 것은 동진(東晋)의 각현(覺賢)과 보운(寶雲)이 421년에 번역한 것이다. 석가모니가 정토사상을 주제로 설법한 것을 기록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무량의경(無量義經)---법화 삼부경의 하나. 무량의경과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보현관경(普賢觀經)>을 합해 법화 삼부경이라고 하며, 무양의경을 일명 <개경(開經)>이라고 한다. 오늘날 전하는 것은 중국 제(齊)나라에서 인도 승 담마가타야사(曇摩伽陀耶舍)가 481년에 번역한 것으로 법화경의 서론이라고 할 수 있는데,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가 번역했다고도 하고 중국에서 지은 것(위경)이라고도 한다.
내용은 ‘성욕이 무량하기에 설법도 무량하며, 설법이 무량하기에 의(義)도 역시 무량하다. 무량의(無量義)란 일법(一法)에서 생긴다. 그 일법은 곧 무상(無相)이다.’라고 적혀 있다. 즉 하나의 공상(空相)에서 무량(無量)의 법(法)이 나오는 것을 설명했다.
*무루(無漏)---무루란 물듦이 없음을 말한다. 루(漏)란 집에 비가 세다는 의미로서 감각기관을 통해서 외적인 자극이 오면 그것에 물들어 분별과 내적인 습기로 말미암아서 번뇌에 노출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무루란 구경위(究竟位 - 최상의 깨달음에 도달한 부처의 경지) 단계의 마음으로 일체의 세간에 대해서 궁극적으로 물들지 않고, 깨끗하고 원만하고 밝음의 상태를 말한다.
‘유루[有漏, S?srava]’와 ‘무루[無漏, An?srava]’가 유루법(有漏法, sasrava dharma...
*무루복(無漏福)---무루복이란 새어 나가는 일이 없는 복이다. 이에 비해 유루복(有漏福)은 새어나가는 복이다. 즉 유루복은 생노병사를 벗어나지 못한 중생들이 누리는 한정되고 부자유한 사바세계의 복이지만, 무루복은 생노병사가 없는, 불 ? 보살과 성현들이 누리는 걸림 없는 정토세계의 복이다.
유루복은 보시에 대한 반대급부인 대가를 바라거나 자기가 보시를 했다는 마음의 상을 짓고 보시를 하고 받는 복으로서 한정된 복이다.
이에 비해 무루복(無漏福)은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고 행한 보시로서 내가 보시를 했다는 상마저도 떠난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 보시바라밀를 행함으로써 이에 따라 받는 복이다. 무루복은 자신에게는 아무런 현실적 혜택이 없으나 보시바라밀을 행한 복이므로 무루복은 샘물처럼 한량없고 다 함이 없는 무한정의 복이다.---→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참조.
*무명(無明, A-viduya)---무명이란 글자 그대로 명(明, 지혜)이 없다는 말이다. 올바른 법, 즉 진리에 대한 무지를 가리킨다. 구체적으로는 연기의 이치에 대한 무지이고, 사성제(四聖諦)에 대한 무지이다. 고(苦)는 진리에 대한 무지 때문에 생기므로 무명은 모든 고를 일으키는 근본 원인이다. 12연기의 경우 무명을 조건으로 해서 행(行, samskara)이 있다.
*무문관(無門關) 수행---무공방(無孔房)이라고도 하는데, 4면이 벽인 방안에서 문을 자물쇠로 걸고 최소 3개월부터 3년 동안 면벽참선하는 것을 ‘무문관(無門關) 수행’이라 한다.
무문관 수행의 유래---문을 닫아걸고 ‘폐문 정진(閉門精進)’ 하는 법은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 달마 대사의 면벽 9년이 시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무문관’이 하나의 보통명사로 자리 잡게 된 것은 1964년 당시 도봉산 천축사(天竺寺) 주지 정영(瀞暎) 스님이 ‘무문관’이라는 참선수행도량을 세우면서부터이다.
*무문자설(無問自說)---우다나(優陀那, Udana-산스크리트어)의 번역이다. ‘우다나’란 감흥해서 저절로 나오는 말을 가리킨다. 이것을 한역한 것이 무문자설(無問自說)이다. 부처님이 종교적 체험을 감격한 그대로 말하는 부분인데, 묻는 사람도 없었는데 부처님 스스로 설한 법문. 이를 모은 것이 우다나경(무문자설경)이다. 헌데 아미타경(阿彌陀經)도 무문자설로 이루어진 경전이다.---→우다나(優陀那), 아미타경(阿彌陀經) 참조.
*무분별지(無分別智)---불법의 최고 지혜인 진여지혜(眞如智慧)는 언어나 문자로 분별하고 헤아려질 성질의 것이 아니므로 무분별의 지혜라 한다. 즉 반야의 지혜를 무분별지라고 부르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진여의 모양은 형용할 수도, 분별할 수도 없으므로 모든 생각과 분별을 초월한 참 지혜로서만 비로소 알 수 있다 해서 무분별지라고 이른다.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무상(無上)은 더없이 높다는 말, 정등(正等)은 비길 데 없다는 말, 정각(正覺)은 바로 깨달았다는 말, 그래서 무상정등정각은 더없이 높고 바른 깨달음으로서 불과의 지혜를 가리키는 말이다. 다른 말로는 안욕다라삼먁삼보리임.---→안욕다라삼먁삼보리임 참조.
*무상사(無上士)---부처님의 열 가지 이름 중의 하나. 최상의 인간, 곧 위가 없는 대사(大士)라는 뜻임.
*무상의경(無上依經)---여래의 공덕, 여래의 세계, 여래의 본성과 능력에 관한 해명을 그 내용으로 삼고 있는 경전이다. 중국 양나라 때 진제(眞諦)가 번역했으며, 전체 7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무상의경은 신라불교, 특히 원효의 사상을 이해함에 있어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경전이다.
*무색계(無色界)---욕계(欲界) ? 색계(色界)와 함께 삼계(三界)의 하나로서 불교의 세계관에서 물질을 초월한 순수한 정신적 영역의 세계. 오온(五蘊) 중 색(色)을 제외한 수(受) ? 상(想) ? 행(行) ? 식(識)만으로 구성된 세계이다.
무색계는 무념무상의 정(定 ; 三昧)을 닦은, 즉 사무색정(四無色定)을 닦은 사람이 죽은 뒤에 태어나는 천계(天界)이다. 물질을 싫어하며 물질세계를 벗어나고자 이 세계에 태어나는 중생들은 모두 남성이지만 남근이 없다.
헌데 무색계가 색계 위에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방처(方處), 즉 공간의 개념을 초월한 것이 때문이다. 이 세계에는 물질적 존재나 처소가 없기 때문에 공간적인 높고 낮음도 없다.
※사무색정(四無色定)---무색계의 선정(禪定)에는 4단계가 있는데 그것이 사무색정이다. 삼라만상은 스스로 생긴 것이 아니고 모두 인연에 의해 생긴다고 보는 네 가지 선정, 즉 공무변처정(空無邊處定:허공처럼 무한하다고 보는 경지), 식무변처정(識無邊處定:식이 무한하다고 보는 경지),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아무것도 없는 것으로 보는 경지), 비상 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을 이른다.
*무생(無生)---무엇인가가 생겨난다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무엇인가 고정된 실체가 존재하게 됨을 말한다. 그런데 연기(緣起)법에 의하면, 모든 현상은 변화하는 여러 요소들이 인연에 따라 일시적으로 모였다가 흩어지고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데 불과할 뿐 생기는 것이 없다. 즉, 고정된 존재를 인정할 수 없으므로 고정돼 생겨난 존재를 인정할 수 없고, 무생(無生) 즉, 어떠한 존재가 태어남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
이와 같이 무생(無生)은 낳지 않음의 다른 이름이니, 이것은 곧 번뇌와 열반을 낳지 않음의 경지를 말함이다. 이는 ‘한 생각’ 일어나기 전의 마음자리. 곧 깨달음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따라서 무생(無生)은 모든 법의 실상을 깨달아 세상 모든 것이 공(空)한 것이라는 이치를 터득하는 것이다.
*무생법(無生法)---무생(無生)의 법, 즉 불변의 진리를 이르는 말임.
원효(元曉)는 그의 <금강삼매경론>에서 무생(無生)의 법과 관련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허공에 형상과 위상이 없듯이 마음 역시 형상과 처소가 없다. 그러므로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 한갓 이름일 뿐이다. 그러나 허공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없듯이 마음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다.
허공은 그 자체를 직접적으로 인식할 수 없고 허공을 점유하고 있는 사물을 통해 간접적으로 인지된다. 마음 역시 생각이 일어날 때 마음이 있음을 알 수 있지만 생각이 일어나지 않을 때에는 마음이 인식되지 않는다. 형상과 위치가 없지만 그 성품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마음도 그와 같이 본래 생겨남이 없고 또 사라짐도 없다. 그러니 무생법이란 모든 법의 실상을 깨달아 세상 모든 것이 공(空)한 것이라는 이치를 터득하는 것이다.
*무생법인(無生法忍)---<묘법연화경>에 나오는 삼법인의 하나이다.
신인(信忍)은 신심에 의해 얻는 지혜,
순인(順忍)은 진리에 순종하는 지혜,
법인(法忍)은 진리를 깨닫는 지혜로서, 여기서 법인을 무생법인이라 한다.
- 여기서 인(忍)은 참을 인이 아니라 인가결정(認可決定) ? 인지(認知)의 뜻이니, 진리를 확정적으로 인정하는 것. 혹은 진리를 확인해 결정적으로 이해하는 일을 말한다.
따라서 무생법인이란 무생의 법을 인정한다는 말로 일체의 것이 불생불멸(不生不滅)하는 진여법성(眞如法性)의 진리를 확실히 알고 인정하는 것. 모든 사물에 불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한편 무량수경(無量壽經)에는 무생법인(無生法忍)을 해설하면서 객관적인 대상이 모두 공하다고 보는 법공(法空)의 지혜를 드러내는 것이 무생법인이라고 했다. 즉, 무생법인(無生法忍)은 모든 법의 실상을 깨달아 세상 모든 것이 공(空)한 것이라는 이치를 터득하는 것이라 했다. ---→ 삼법인(三法忍) 참조.
*무설설 불문문(無說說不聞聞)---말하는 바 없이 말하고, 듣지 않음으로 듣는다.
*무설설(無說說) ? 무법법(無法法)---도선(道詵)국사가 846년(문성왕 8)에 곡성 동리산(桐裏山)에서 수도하던 혜철(惠徹)도인을 찾아가서 그에게서 "무설설 무법법"을 화두로 받아서 불철주야 고행한 끝에 확철대오했다. 무설설(無說說)은 말 함이 없는 말 함이고, 무법법(無法法)은 법 없는 법을 말하니, 말을 하고 말한 바가 없다는 뜻이나, 말없는 말을 하는 말이나 결국 같은 말이다. 말없는 말 또 말을 하고도 말한 바가 없는 무설설은 ‘무법법’의 법 없는 법을 말하는 것으로 무법이 법이며, 곧 법이 법이 아닌 것과 같은 ‘무법법’의 도리다. 이것을 알면 진리를 깨달으리라!
*무심선(無心禪)---무심선은 화두를 참구하는 간화선과 달리 일체의 망념(妄念)을 여읜 진심(眞心)인 무심무념(無心無念)을 궁극의 경계로 삼는 선법이다. 즉 무심의 경계를 위해서 참선하는 것이 무심선이라 하겠다.
이 무심선은 의식(意識)을 벗어나고 범부의 길이나 성인(聖人)의 길을 벗어나서 무위(無爲)와 무심(無心)으로 면밀하게 양성해 자연히 도(道)와 합하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평상심이 도[平常心是道]”라는 말은 이러한 무심선의 생활적 태도를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할 것이다.
무심선(無心禪)은 임제종의 법맥을 계승하되 화두참구를 중심으로 하는 간화선과 달리 중도사상(中道思想)에 입각한 것이고, 연기적 생명의 실상에서 무아(無我)를 체득해 가는 심경에 토대를 둔 선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의 무심선은 중국의 석옥청공화상(石屋淸珙和尙)과 고려 말 우리나라에 다녀간 적이 있는 인도의 지공(指空)선사로부터 영향을 받았으며, 고려말의 백운화상(白雲和尙) 경한(景閑)은 무심선(無心禪)을 제창했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으로 알려진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을 저술했다.
*무아(無我, anatman)---무아란 불변의 실체인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견해라고 간단히 정의할 수 있겠다. 하지만 무아의 개념이 이렇게 간단치 않다.
부처님이 설하신 무아(無我)의 개념은 공(空)의 개념과 더불어 참으로 어려운 말이다. 왜냐 하면 이런 종교적인 말은 단순이 철학적인 개념이 아니라 열심히 수행 정진해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러야 이해할 수 있는 경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경지에 이르러야 무아를 이해할 수 있을까?
부처님께서 무아를 설하지 않으면 안 됐던 이유의 하나는 ‘인생의 괴로움의 대부분은 집착에 있다’는 점 때문이다. 집착이란 무엇에 얽매이는 것이고, 이 집착의 근본에 있는 것이 ‘나(我)’이다. 아상(我相) 혹은 ‘나(我)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 혹은 아견(我見), 이와 같은 나(我)에 바탕을 둔 견해나 욕망에 의해 집착이 시작되고, 인생의 괴로움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것의 구체적인 것이 팔고(八苦) 중의 구부득고(求不得苦, 구해도 얻어지지 않는 괴로움)로 나타난다. 이 구해도 얻어지지 않는 괴로움이란 ‘나(我)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에서 나온다. ‘나(我) 없다’라면 ‘나(我)의 것’도 있을 수 없다. 따라서 ‘내 것’이라는 집착을 끊기 위해서는 아상을 먼저 끊어야 한다. 즉 ‘나(我)’, ‘나(我)의’라는 생각을 끊어야 한다.
헌데 이 ‘무아’의 가르침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무아란 물리적 물체로서의 ‘나(我)’란 몸뚱이가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무아라는 것의 본질의 하나에는 ‘당신은 부처와 일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정신적인 부분이 있다. 그런데 부처와 일체가 되려면 스스로 비울 수 있어야 한다. ‘내가’라고 생각하는 마음이 강하면 부처의 빛도 비쳐오지 않는다. 부처와 일체가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 비우는 것이고, 그것이 ‘나’라는 아상을 깨뜨리는 길이다.
그리고 무아가 되는 방법으로서 또 한 가지는 ‘이타(利他)’이다. 타인을 위해 산다. 타인의 괴로움을 자신의 괴로움으로 하고, 타인의 슬픔을 자신의 슬픔으로 하고, 타인의 기쁨을 자신의 기쁨으로 하는 이타의 마음으로서 산다는 것이 무아가 되기 위한 길이다. 즉, 부처와 일체가 되는 길, 그리고 타인과 일체가 되는 길이 곧 무아의 가르침이다.
천국과 지옥을 나누는 것은 그 ‘아상’이 있는가 없는가에 있다. ‘나(我)’를 없애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면서, 동시에 갈고 닦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기도 하다. 수행이란 나(我)를 연마하는 것이 되고, 나(我)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수행의 방향이 부처를 향해 간다면 그것은 부처와 일체가 되는 것이고, 내(我)가 없어져 가는 방향이 되기도 한다. 또 이타를 향하는 수행이라면 이것도 또한 결국은 나(我)를 없애가는 방향이다.
하지만 무아의 상태는 성자의 수준인 아라한(阿羅漢,Arhan) 이상의 수행에서 가능할 정도로 매우 높은 경지이다. 무아가 되면 남과 나의 경계가 없어지고 ‘나’란 존재가 사라진다. 그 정도가 되면 번뇌를 완전히 여읜 상태가 된다. 그러나 이 경지가 아무나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수행에 자신이 없으면 ‘무아란 경지가 있다 하더라’ 하는 정도로 그냥 넘어가야 한다. ^^
헌데 무아를 가볍게 설명하는 경우가 있다. 무아의 경지로 들어가서 나를 내세우지 말고 예(禮)로서 내가 없는 듯 저마다 조용히 살아가노라면 이 세상은 평화로워질 것이다. 반대로 나를 내세우기가 바쁘면 남이야 어찌 돼든 말든 자기만 잘 살면 그만이라는 욕심 때문에 지구가 멸망할 때 까지 인간들끼리의 싸움은 멈추지 않고 계속 될 것이다. 이런 이야기 속에 숨어 있는 무아는 부처님이 말씀하신 무아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이다. 나를 내세우지 말라는 정도의 뜻이다.
또 미국의 저명한 배우이자 독실한 불교신자인 리처드 기어의 말을 들어보자. 모든 사람이 행복하려면 나도 행복하고, 상대도 행복해야 한다. 그런데 나의 기대와 상대의 기대가 충돌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모두가 행복하려면 내가 없으면 된다. 생활 속에 무슨 일을 할 때 가능한 한 ‘나’ 없이 하려고 해야 한다. 나를 내세우지 않은 무아의 바탕 위에 하려고 해야 한다. 그런 보살심이 없다면 우리가 수행을 통해 어떤 특별한 능력을 가진다고 해도 전혀 도움 될 것이 없다. 그건 결국 자신의 에고만 성장시키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야기가 무아와 전혀 별개의 이야기인 것은 아니다. 다만 부처님 말씀의 진의를 진제(眞諦)라 한다면 위의 이야기들은 속제(俗諦) 수준이라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수행을 통해 진제로서의 무아의 경지에 오르지 않더라도 위의 이야기와 같은 속제의 수준에서의 무아의 경지에 이르더라도 이 세상은 참으로 부드러워질 것이다.
*무언통(無言通, ?-826)---월남(베트남) 선종(越南禪宗) 무언통파(無言通派)의 초조(初祖). 원적은 중국 광주(廣州)이고, 속성은 정(鄭)씨이다. 성품이 염정과언(恬靜寡言)했지만 견해가 뚜렷하고 트여서 사람들이 ‘무언통’이라 불렀다. 일찍이 백장 회해(百丈懷海) 문하에서 배웠고, 개오한 뒤 광주로 돌아와 화안사(和安寺) 주지로 있었다. 820년 월남으로 가서 건초사(建初寺)에 주석하고, 하루 종일 면벽좌선(面壁坐禪)했다. 몇 년 뒤 제자 감성(感誠)이 그 법을 이었다. 이로써 월남에 선종이 널리 퍼져 선종의 한 대파(大派)를 형성했고, 이것이 ‘무언통파’이다.
*무여열반(無餘涅槃)---무여의열반(無餘依涅槃)을 줄인 말로서 완전한 열반, 즉 반열반(般涅槃, parinirva)을 말한다.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서 방편으로 의지하고 있던 육신을 벗어나 인간으로서의 삶을 마치고 법신(法身)의 상태로 돌아감을 의미한다.
즉 모든 번뇌를 끊고 분별(分別)의 지혜를 떠나 몸까지 없애고 적정(寂靜)에 돌아간 경지. 죽은 후에 들어가는 열반을 무여열반이라 한다. 따라서 무여열반이야말로 참 해탈이어서 몸과 마음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된다. 반면 유여열반은 무여열반의 문호(門戶)가 된다고 한다.
*무외시(無畏施)---불가에서 재시, 법시, 무외시를 삼보시(三布施)라고 한다. 그 중 무외시는 부처나 보살이 중생을 보호해 두려운 마음을 없애 주는 것을 말한다. 무외시를 베푸는 자를 시무외자(施無畏者)라 한다.
무외시는 소극적 관점에서 내가 주변 사람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일으키지 않은 것이요, 적극적 관점에서는 주변 사람들이 마음속에 품고 있는 두려움과 공포를 제거해 주는 것이다.
가진 것, 아는 것, 하나 없이도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무외시이다. 얼굴 표정을 밝게 하는 것, 따뜻한 말 한 마디, 칭찬 한 마디 등 남을 대할 때 항상 밝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훌륭한 무외시가 될 수 있다.
*무위(無爲)---인연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생멸의 변화를 떠난 것. 즉 원인, 조건에 지배돼 생기는 유위에 대해 ‘함이 없는’, 원인 조건을 초월한 형태를 이름인데, 결국 깨달음, 열반, 진리, 적멸, 공을 말한다.
*무위법(無爲法, 범어 asamskrta-dharma)---무위법이라 하는 것은 유위법의 정반대의 뜻으로 조작(造作), 위작(爲作)되지 않은 것을 가리킨다. 의식의 지향 작용이 소멸된 상태에서 직관으로 파악된 현상. 분별하지 않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마음 상태.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의 삼독심(三毒心)이 소멸된 열반의 상태를 말한다.
<대비바사론>권76에, “만약 법이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고, 인(因)도 없고, 과(果)도 없다면, 무위상을 얻으니 이는 무위의 뜻이다. 또 만약 법이 인연화합의 작용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는 무위의 뜻이다.”라 했다.---→유위법(有爲法) 참조.
*무위진인(無位眞人)---어떤 틀에도 구속되지 않고 모든 범주를 초월한 자유인, 해탈을 이룬 사람, 깨달은 사람을 일컫는데, 임제 의현(臨濟義玄)이 처음 사용한 말이다.
도를 닦은 마음이 뛰어나서 지위를 달 수 없을 만큼의 위치에 오른 참된 인간. 즉 자리(지위) 없는 참사람을 말한다. 그런데 왜 자리 없는가. 그 사람은 어떻게 경계를 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모습으로도 그려낼 수 없기 때문이다. 도교 사상을 차입한 격의불교의 대표적인 사례의 하나이다.---→무의도인(無依道人) 참조.
*무유애(無有愛, vibhava-tanha)---팔리어로 ‘위바와 딴하(vibhava-tanha)’라 한다. 유애(有愛)란 갖고 싶어 하거나 악착 같이 생존하고 존재하려는 욕망인데 비해 무유애(無有愛)란 유애(有愛)와는 반대의 개념으로 삶을 포기하려는 갈애이다. ‘죽고 싶다’라든지 ‘죽으면 그만이다’라는 말과 같이 삶을 포기하려는 허무주의가 바로 무유애이다.
중생은 때로 자신감의 상실, 혹은 생명의 무상함과 허무와 허탈감, 그리고 자괴감(自愧感)에 빠져드는 때가 있다. 그러한 망상이 생겼더라도 흘러가는 바람처럼 지나쳐버리면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그런 망상에 집착하고 사로잡혀 극심한 고통을 느낀 나머지 자살까지 가는 일이 있다. 그래서 불교에선 자살을 무유애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그런데 유애가 개체 존속의 욕망인데 비해 무유애는 명예, 권세에 대한 욕망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 마스타니 후미오
*무유정법(無有定法)---금강경에 나오는 경구로, 무유정법은 ‘진리란 정해진 바가 없다’는 말이다. 즉 ‘이것이 진리다’라고 이름 짓는 그 순간에 그것이 진리가 아닌 것이 된다. 그것은 지어진 이름의 틀 속에 갇혀버리므로(올가미를 씌우는 꼴이 되므로) 진리가 아닌 것이 된다는 말이다.
*무의도인(無依道人)---자기의 본래 마음 이외에는 그 어떠한 것에도 의지하거나 집착하지 않으며, 자유 해탈을 얻은 사람. 대개의 사람들은 형상 있는 것에 의지하고 집착하나, 무의도인은 자기의 본래 마음 이외에는 그 어떠한 것에도 의지하지 않고 자유 ? 자립의 생활을 한다. 즉 어디에도 의지하지 않고 끄달리지 않은 사람, 어디에도 의존함이 없는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는 당당한 참사람을 일컫는다. 임제 의현(臨濟義玄)이 사용한 말이다.---→무위진인(無位眞人) 참고.
*무인무연론(無因無緣論)---부처님 당시 외도인 유물론자들은 이 세상의 온갖 현상에는 아무런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다고 주장했다. 즉 인과응보를 부정하며 철저하게 무인무연을 주장해 인(因)과 연(緣)을 부정하는 일종의 ‘우연론’이었다. 이런 사상은 도덕과 윤리의 부재를 초래 할 수 있어서 황금만능주나 쾌락주의로 빠질 수 있는 위험이 있다.
그리고 당시의 유물론자들은 인간이란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물질적 요소의 일부가 우연히 결합해 있는 상태라고 보기 때문에 인간의 자유로운 의지나 행위의 당위성 같은 것은 근본적으로 부정했다.
이와 같은 유물론자들이 보는 사회는 ‘인과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우연한 기회에 일어나는 ‘일시적 현상’으로 본다. 따라서 한 평생 즐기면서 살다가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어떤 도덕적 규범이나 가치도 그들에게 있어서 무용지물이다. 먹고 마시고 즐기는 쾌락주의에 빠져 밤의 문화를 즐기는, 불교적으로 말한다면 단멸론자들이라 볼 수 있다.
*무자경(無字經)---무자경이란 글자가 없는 경이니 마음을 말하는 것이다. 높고 큰 뜻은 글로 표현할 수 없는 법. 그래서 불립문자(不立文字)라고 하는 것이다. 불교에 모든 경전은 오로지 단 한권으로 압축이 된다. 그 한권의 경전이 바로 심경(心經)이다. 이 심경에는 단 한 글자도 없어서 무자경(無字經)이라고도 한다. 세상에 모든 경전이 무자심경에서 나왔으니 이를 깨쳐 알면 글자로 된 모든 경전을 다 뚫고도 남는다.
사람마다 무자경(無字經) 한 권이 있는데 종이와 붓과 먹으로 쓰여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전개(展開)하면 원래 한 글자도 없지만 밤낮 사시(四時)로 광명을 낸다.
*무자경(無刺經)---중아함경의 제83경, 팔리어 증지부 경전의 제10의 제72경. 부처님께서 수행에 장애가 되는 것들을 가시에 비유해 설했다.
*무자성(無自性, 산스크리트어 ni?svabh?va)---반야경에서 말하는 무자성(無自性)은 고정 불변하는 자성(自性)이 없다는 공관(空觀)과 동의어이다. 즉, 모든 현상은 여러 인연의 일시적인 화합에 지나지 않으므로 거기에 불변하는 실체가 없다는 뜻.
*무재칠시(無財七施)---가진 것 없이 남에게 베풀 수 있는 7가지를 말한다. 재물이 아닌 것으로 하는 보시.
1. 안시(眼施)---부드럽고 편안한 눈빛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
2. 화안열색시(和顔悅色施)---자비롭고 미소 띤 얼굴로 사람을 대하는 것.
3. 언사시(言辭施)---부드럽고 친절하며 예의바른 말 한 마디, 그것은 자신의 인격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그를 대하는 다른 사람에게는 따뜻한 보시행이 된다. 이 언사시는 삼업(三業) 가운데 구업(口業)에 해당한다.
4. 신시(身施)---예의 바르게 친절하게 사람들을 대하는 것. 이것은 몸으로 베푸는 보시행으로 삼업 가운데 신업(身業)에 해당한다.
5. 심시(心施)---착하고 어진 마음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는 것. 마음으로 이웃들에게 베푸는 보시행으로 삼업 가운데 심업(心業)에 해당한다.
6. 상좌시(床座施)---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 노약자에게 또는 지치고 힘든 사람에게 자리 하나를 양보하는 것도 참으로 아름다운 보시행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7. 방사시(房舍施)---사람을 방에 재워주는 것.
*무쟁삼매(無諍三昧)---무쟁삼매란 마음이 편안해 아무 갈등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쟁(諍)은 ‘다툰다’라는 뜻으로 번뇌의 다른 이름이다. 그리고 무쟁은 원어 아라나(Arana)의 의역으로 ‘다툼이 없다’는 뜻이다. 공(空)의 원리를 바르게 이해함으로써 주관과 객관의 대립이 소멸돼버린 순수한 상태이다. 남과 다툼이 없다는 것은 마음에 갈등이 없음을 뜻하고, 나아가서는 미혹(迷惑)이 없는 것이 된다.
경전을 펼치거나 법회를 할 때 마음에 온갖 번뇌와 잡념이 가득하면 그것은 유쟁삼매(有諍三昧)이고, 번뇌가 없는 마음, 갈등이 없는 하나로 통일된 마음이 무쟁삼매이다. 그렇게 돼야 비로소 경전을 펼칠 수 있는 것이다.
불기 2551년 부처님 오신 날(24일)을 맞아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은 법어에서 “대립과 투쟁 속에 무쟁삼매(無諍三昧)를 이룬 이는 화해(和解)를 빚어내어 상생(相生)의 길을 열 것이며, 탐욕 속에 들어 있는 이타(利他)의 덕성(德性)을 깨달은 이는 평화와 안락(安樂)을 베풀어 중생을 이롭게 할 것”이라 하셨다.
*무정설법(無情說法)---인간만이 설법하는 것이 아니라 산천초목도 설법한다는 뜻. 부처님뿐만 아니라 세상 모던 것이 과거로부터 현세에 이르기까지 항상 설법을 하고 있다. 심지어 저 산꼭대기에 서 있는 바위까지도 법당에 계시는 부처님보다 몇 백 배 이상의 설법을 항상 하고 있다. 무정이란 무생물이다. 생물은 으레 움직이고 소리도 내니까 설법을 한다고 할 수 있지만, 무정물인 돌이나 바위, 흙덩이는 움직이지도 않으면서 무슨 설법을 하는가 하겠지만, 불교를 바로 알려면 바위가 항상 설법하는 것을 들어야한다. 그뿐 아니라 모양도 없고 형상도 없고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허공까지도 항상 설법을 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온 세상에 설법 안 하는 존재가 없고 불사(佛事) 안 하는 존재가 하나도 없다. 참으로 마음의 눈을 뜨고 보면, 눈만 뜨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귀도 열린다. 그러면 그기에 서 있는 바위가 항상 설법을 하는 것을 다 들을 수 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무정설법(無情說法)이라고 한다. -성철스님의 이머꼬 중에서-
*무주(無住)---무주는 일정한 곳에 머물지 않는 것을 말한다. 공성(空性)은 일정한 곳에 머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주의 모든 것과 함께 하는 것이 된다.---→무념, 무상, 무주 참조.
*무주처 무주심(無住處 無住心, 머무는 곳이 없는 마음)---“마음이 어느 곳에 머물러야 바로 머무는 것입니까?” “머무는 곳이 없는 데 머무는 것이 바로 머무는 것이니라.” “머무는 곳이 있을 것 같으면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일체망상이 다 끊어진 여기에는 부처도 설 수 없고, 조사도 설 수 없고, 마구니도 설 수 없고, 외도도 설 수 없고, 일체가 모두 머물지 못 합니다.” “일체처에 머물지 아니하는 것이 곧 머무는 곳이니라. 이와 같이 얻은 것을 머무름이 없는 마음이라 하는 것이니 무주심이 부처님의 마음이니라.” ― 돈오입도요문론(頓悟入道要門論)
무념위종(無念爲宗)하여, 무상위체(無相爲體)하며, 무주위본(無住爲本)이니라. = 무념으로 종(宗)을 삼고, 무상(無相)으로 체(體)를 삼으며, 무주(無住)로서 근본을 삼는다. 나의 이 법문은 옛부터 먼저 무념을 세워 머리로 삼고, 모양 없음으로 몸통을 삼고 머뭄 없음으로 뿌리로 삼느니라. 무상이란 형상에서 형상을 떠난 것이며, 무념이란 생각에서 생각하지 않음이며, 무주라는 것은 사람의 본래 성품이니, 온갖 생각이 머무르지 못함이니라. ― 육조단경의 핵심 내용.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보시를 행하면서도 보시라는 선행에 집착하지 않고 - 내가 보시를 한다는 데에 마음이 머물지 않고, 공덕의 대가도 바라지 않는 것을 무주상보시라 하는데, 무주상의 보시가 곧 보시바라밀이다.
*무주처열반(無主處涅槃)---무주처열반은 완전한 깨달음을 이룸으로써 번뇌장(煩惱障)과 소지장(所知障)의 번뇌를 모두 여의고 생사의 세계를 벗어났으나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열반의 경지에 머무르지 않고 생사의 세계에서 활동하는 것을 가리킨다. 즉 생사에도 열반에도 머물지 아니하고, 항상 큰 자비와 지혜로 중생을 이롭게 하는 열반. 생사와 열반의 차별이 없는 것을 아는 깊은 지혜를 얻어 도달할 수 있다.---→소지장(所知障) 참조.
*무진의보살(無盡意菩薩)---한량없는 중생을 구제하려는 서원을 세운 보살.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관음경)은 무진의보살과 부처가 관세음보살에 대해 문답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무차법회(無遮法會, Panca parisad)---무차대회(無遮大會) 혹은 무차지회(無遮之會), 무차선회(無遮禪會)라고도 한다. 부처의 보시(布施) 정신에 입각해 승려 ? 속인 ? 남녀노소 ? 귀천 등을 가리지 않고 어떠한 차별도 없이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법문을 듣고 잔치를 열어 물건을 베푸는 일종의 법회의식이다. 즉 부처의 덕과 자비를 골고루 나누어준다는 의미로 개최하는 법회를 말한다.
인도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왕 때 국왕이 유명한 선지식(善知識)을 모시고 차별 없이 재물과 불법을 보시하면서 비롯됐다. 중국에서도 당나라 때 현장(玄奬)이 승려들 사이의 논쟁을 해결하기 위해 무차법회를 연 적이 있고, 국내에서는 신라 ? 고려 때 백성의 어려움을 달래고 민심을 수습하기 위한 차원에서 무차법회를 열고 국가에서 재물을 보시했다.
*무착(無着)---대승불교의 유식론을 체계화한 불교 사상가이다. 본명은 아상가(阿僧伽/Asanga, 300?~390?)이며, 세친(世親)의 형이고 현재의 파키스탄에 있는 페샤워르(Peshawar) 출신이다. 처음에는 소승불교에서 출발했지만, 뒤에 유식파(唯識派)의 시조 마이트레야(Maitreya/미륵)의 가르침을 받게 돼, 대승(大乘)의 모든 경론(經論)을 연구하고 유식불교(唯識佛敎)를 확립했으며, 유가행파(瑜伽行派)의 대표적 논사이다. 유식설을 조직 ? 체계화한 <섭대승론(攝大乘論)>을 지었고, 그 외에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 등을 저술했다.
*무표색(無表色)과 표색(表色)---무표색(無表色)이란 말은 표색(表色)이라는 말의 상대어이다. 표색이란 신체에 의한 행동과 언어에 의한 행위, 즉 신업(身業)과 구업(口業) 두 가지를 말한다. 따라서 표색은 표업(表業)이라고도 한다.
무표색이란 표색이 선(善) 혹은 악(惡)으로 외부에 드러날 때 일종의 잠재적인 힘을 내부에 남기게 되니 이것을 무표색이라 한다. 무표색은 사람이 한 번 강성한 선(善) 혹은 악(惡)의 표색에 의해 무표색을 일으키게 되면 그 무표색은 지속성이 있어서 선의 무표색은 악이 일어나지 않도록 방해하며, 악의 무표색은 선이 일어나지 않도록 방해 한다. 쉽게 이야기 하자면 -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 습관과 같은 것을 무표색이라고 한다.
표색(表色)과 무표색(無表色)은 다 같이 객관적으로 원래 독립 자존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행위에 의하여 나타나는 것이다. 만약 사람의 행위가 없다면 표색(表色)의 표(表)는 의의가 없고, 또 표색이 없으면 따라서 무표색도 없다.
예를 들면, 우리가 도둑질을 안 하는 것은 물론 도둑질이 옳지 않은 일이기에 그렇기도 하지만 우리가 도둑질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 선(善)의 무표색(無表色)이 방비하고 있어서 도둑질을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도둑질을 해보면 그 다음 무표색이 발동을 해서 도둑질하기가 처음보다 훨씬 쉽고, 그러다 보면 어느 사이에 자신도 모르게 남의 물건을 쉽게 훔치게 되는 것과 같다. 남을 험담 하는 것도 또한 그렇다. 험담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처음 하는 것은 힘들지만 한 번 하고 나면, 무표색이 발동을 해서 자주 또 쉽게 버릇처럼 남을 험담하게 되는 것과 같다.
그런데 이와는 반대로 처음에는 이웃들에게 보시(布施)하는 것이 어색하고 쑥스럽게 생각되지만, 보시(布施)를 한 번이라도 해보면 그 다음에는 무표색이 발동을 해서 그러한 어색함이 조금씩 덜해져서 점점 보시(布施)를 하는 것이 수월해지고 나아가 보시가 내 삶의 일부가 됨으로써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를 실천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무학대사(無學大師, 1327년~1405년)---고려 말, 조선 초기의 고승. 속성은 박씨(朴氏), 무학(無學)은 호, 법호는 자초(自超)이다. 경남 합천 출신으로 나옹화상(懶翁和尙)의 제자이며, 공민왕 2년(1353) 원(元)나라 연경(燕京)에 유학했다가 귀국한 후 주로 양주 회암사(檜巖寺)에 주석했으며 조선 태조의 왕사였다.
무학대사의 부도는 회암사 터 위쪽 산등성이에 있다. 태종 7년(1407) 입적한 그해에 건립했으며, 조선시대 부도 중 가장 뛰어난 걸작이다(보물 제388호).
*묵빈대처(默賓對處)---침묵으로써 물리쳐 대처하라는 것이다. 그럼 스스로 사라질 때가 온다는 것이다. 인간관계에서도 그렇다. 어떤 갈등이 있을 때 굳이 대응할 필요가 없다. 세월이 가면 다 풀린다.
*묵식(默識)---말없이 마음속으로 앎.
*묵식심통(?識心通)---남이 말한 것을 암묵(暗?) 중에 깨달아 서로의 마음이 통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묵조선(默照禪)---간화선이 화두를 참구해 깨달음을 이루는 수행법인데 비해 묵조선은 화두나 공안을 활용하지 않고 그냥 묵묵히 않아서 좌선을 통해 깨달음을 이루는 수행법을 일컫는다. 중국 송대 조동종(曹洞宗)의 굉지 정각(宏智正覺) 스님에 의해 형성되고 체계화된 수행체계이다.---→지관타좌(只管打坐) 참조.
*묵호자(墨胡子)--- 5세기 경 신라에 불교를 처음으로 전했다는 고승이다. 국적은 불명이고 고구려로부터 왔다고 한다. 신라 눌지 마립간(재위 417~458) 때 고구려에서 일선군(一善郡;지금의 선산군) 모례(毛禮)의 집에 잠입해 굴속에서 불교를 포교하다가 왕녀의 병을 고쳐 불교의 이적을 보여주고 사라졌다고 하나 아도(阿道)와의 동일인 여부가 불명하다.
*문사수(聞思修)---부처님 법을 구하고자 할 때 갖추어야 할 세 가지 덕목. 즉 많이 들어라(聞). 생각을 하라(思). 실천을 하라(修)의 세 가지이다.
*문수보살(文殊菩薩)---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菩薩), 만수실리보살(曼殊室利菩薩) 문수시리(文殊尸利), 묘길상(妙吉祥)이라고도 표기되는 보살로서 범어로 “Manjusri”를 한역한 것이다. 문수(文殊)와 만수(曼殊)는 묘(妙)의 뜻이고, 사리(師利)와 실리(室利)는 덕(德), 길상(吉祥)의 뜻이다. 이 보살은 석가모니부처님의 교화를 돕기 위해 일시적인 권현(權現=化身=權化)으로 보살의 자리에 있다고도 한다.
석가모니불의 왼쪽에 협시해 석가불의 지혜를 상징하는데 머리에 5지(智)를 상징하는 오발관(五髮冠 - 오계(五? : 다섯 상투)을 쓰고 있으며, 바른손에 지혜의 칼을 들고, 왼손에는 지혜의 그림이 있는 청련화(靑蓮華)를 쥐고 위엄과 용맹을 나타낸 사자를 타고 있다.
문수보살은 석가모니 부처님 입멸 후 인도에서 실재했던 인물이라고 하며, <문수사리반열반경(文殊師利般涅般經)>에는 사위국(舍衛國) 다라취락범덕 바라문(多羅聚落梵德 婆羅門)의 아들이라고 돼 있고, 그는 반야경을 결집, 편찬한 보살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다른 경전에 따르면 단순히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로 등장하기도 해 그 역사적 실재성은 분명하지 않다.
※권화(權化)---부처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화하여 나타나는 것.
*문자반야(文字般若)---부처님의 가르치심은 모두 문자화돼 있다. 그래서 우리는 글을 통해서 부처님께서 그 법을 설하실 때 부처님의 마음을 표현하신 실상을 직관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와 같이 문자를 통해서 현상과 실상을 직관 할 수 있는 능력을 문자반야라고 한다. 요즈음 문자에 집착하거나 개념에 집착해 불경(佛經)의 원 뜻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흔히 있다. 이러한 경우들을 초월할 수 있는 것이 문자반야이다. 방편반야(方便般若)라고도 한다.
*문자선(文字禪)---언어, 문자 풀이나 해석으로 선을 이해하는 것. 즉 이치나 논리, 알음알이로 이해하는 선을 말한다. 의리선(義理禪)과 비슷한 말.
중국 송나라 시대에 문자선의 폐해가 심했다. 당나라 말엽부터 송대에 걸쳐 고승들의 각종 어록(語錄)이 대량으로 출현하자, 점차 선의 수행이 일종의 주석학으로 빠져들었다. 이런 경향은 대혜(大慧)선사의 스승인 원오 극근(圓悟克勤)의 <벽암록(碧岩錄)>에 이르러 극성하게 됐고, 선 수행이 문저선의 방향으로 흐르게 됐으며, 심지어 사대부 문인들의 언어적 유희로 전락하기도 했다.
오죽하면 대혜선사가 바로 스승인 원오선사의 벽암록을 모두 불살라 유포를 금지시켰을까. 이는 바로 문자선의 폐해를 없애기 위한 극단적인 방법이었고, 그러한 폐해를 고치고자 묵조선과 간화선이 등장했다.
*미륵(彌勒, 마이트레야/Maitreya, 270 ?~350 ?)---남인도 파라나국의 바라문으로서 불교에 귀의해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대승장엄경론송(大乘莊嚴經論頌)> 등을 지어 유식학파를 열고 그 이론을 발전시켰으며, 무착(無著, 300?~390?/世親의 형) 등을 가르쳤다.
이후 부처님으로부터 미래불의 수기를 받고 현재는 윤회의 마지막 일생을 도솔천에서 설법하고 있다고 믿어지고 있다. 석가모니불 열반 후 56억 7천만 년이 지나면 세상에 출현해 석가모니불이 구제하지 못한 중생을 구제할 미래불이다.
<해심밀경(解深密經)>과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은 아마도 용수 이후 그리고 AD 400년 이전에 작성되었을 것이다. 이들은 5세기경에 무착(無착, Asanga)과 세친(世親, Vasubandhu)의 두 학자에 의해 대성된 유가행파(瑜伽行派, 唯識學派라고도 한다)의 선구적 문헌이다. 오늘날 거의 통설이된 학설에서는 유가행파의 개조는 역사적 실존 인물로서의 미륵(彌勒, Maitreya)이며, <유가사지론>은 그의 대표적 저작이고 <해심밀경>은 <유가사지론>의 선구적 문헌이라고 한다.
*미륵보살삼부경(彌勒菩薩三部經)---미륵상생경(彌勒上生經), 미륵하생경(彌勒下生經), 미륵대성불경(彌勒大成佛經)
*미륵육부경(彌勒六部經)---미륵하생경(彌勒下生經), 미륵내시경(彌勒來時經), 미륵하생성불경(彌勒下生成佛經), 미륵대성불경(彌勒大成佛經), 미륵상생경(彌勒上生經), 미륵상생성불경(彌勒上生成佛經).
*미타경(彌陀經)---아미타경(阿彌陀經)과 같은 말.
*미혹(迷惑)---미혹이란 사리(事理)에 벗어난 것을 뜻한다. 사(事)와 이(理)의 잘못 됨을 미(迷)라 하고, 사리에 밟지 못함을 혹(惑)이라 한다.
*밀교(密敎, Esoteric Buddhism)---일반의 불교를 현교(顯敎)라 하는 것에 대한 대칭어이다. 흔히 밀교(密敎)란 어떤 특수한 종교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불교 속의 한 흐름으로서, 대승불교의 흐름을 계승하고 있다. ‘밀(密)’은 주술신앙의 신비성이 아니라 인간의 언어문자를 초월한 ‘은밀’을 말한 것이다. 즉 ‘밀’이란 선종에서 말하는 불립문자(不立文字)의 불법의 세계를 뜻한다. 다시 말해 불법의 신비성을 표현하기 위해 ‘밀’이라는 글자를 사용했을 뿐이다. 그래서 밀교는 주술신앙 아닌 대승불교의 꽃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밀교란 비로자나불과 금강살타를 내세우고, 진언, 다라니, 수인, 만다라, 의식 등을 행함으로써 불교가 힌두교와 민간 신앙까지 수용한 것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결국 불교의 순수성이 많이 희석된 것이 밀교이다. 티베트 불교의 근본은 밀교(탄트라불교)이고, 우리나라에도 밀교적 영향이 짙게 깔려 있다.
*밀린다팡하(Milinda-panha)---<밀린다왕문경>이라 함. ‘밀린다왕의 질문’이라는 뜻. BC 2세기 후반 인도의 서북방에 있던,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 후 생긴 그리스계 왕국의 밀린다왕(메난드로스/Menandros, BC 342 ~ BC 292)이 불교의 교리 가운데 의문스럽고 모순된 것으로 보이는 것을 묻고, 이에 대해 승려 나가세나(Nagasena)가 답한 내용을 기록한 대화록이다. 부파불교시대의 상좌부 입장에서 간결하고 명쾌한 설명과 풍부한 비유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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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문(婆羅門, Brahman)---인도 특유의 신분. 바라문은 예로부터 내려오던 브라만교 (Brahmanism, 婆羅門敎/바라문교)의 베다(Veda) 성전을 신봉하던 사제자(司祭者)로, 사상계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들은 주술적(呪術的) 제사를 주관하고, 종교적 지도자로 세습에 의해 지위를 부여받았으며, 혈통을 중시했다. 이 같은 바라문에 대해 새로운 정신적 지도자로 등장한 것이 바로 사문(沙門)이다.
*바라밀(波羅蜜)---파라미따(paramita)의 음사로서 ‘피안(彼岸)에 이른 상태’ 혹은 ‘최상의 상태’ 즉 완성을 의미하며, 열반이라는 이상적인 상태로 건너가는 보살의 수레라 할 수 있다. 한역에서는 보통 도피안(到彼岸) 또는 도(度)라고 번역되고 있다. <대지도론(大智度論)>의 도(度)는 바로 파라미타(Paramita)의 번역어이다.
대표적인 바라밀로는 <반야경>에서 설법하는 6바라밀이다. 이 중에서 마지막의 지혜바라밀을 반야바라밀이라고 하며, 다른 다섯 바라밀을 성립시키는 근거인 무분별지(無分別智)이다. 또한 6바라밀에 방편(方便), 원(願), 역(力), 지(智)의 네 가지 바라밀을 더해 십바라밀(十波羅密)이라 한다. 바라밀의 경지는 애쓰고 노력하는 경지가 아니라 몸에 배서 자연스레 그렇게 되는 경지이다. 애쓰는 것이 없는 제법이 공한 상태, 즉 공성이 있어야 바라밀이 된다.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 Pratimoksya)---불교에서 수행자가 지켜야 할 계율의 모든 조항을 모아 놓은 것. 산스크리트 프라티모크샤(Pratimoksya)를 음역한 말이다. 석가가 성도한 뒤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귀의해서 교단을 이룸에 따라 이들을 이끌기 위해 마련한 것이다. 그 중 10중대계(十重大戒)로 ‘살생하지 말라, 훔치지 말라, 음행하지 말라, 거짓을 말하지 말라, 술을 팔지 말라, 사부대중의 허물을 말하지 말라, 남을 비방하지 말라, 제 것을 아끼려고 남을 욕하지 말라, 성내지 말고 참회를 받아 주어라, 삼보를 비방하지 말라’고 했다.
*바수미트라(世友)---→세우(世友) 참조.
*반가부좌(半跏趺坐)---왼쪽 발을 그대로 오른쪽 발 밑에 두고 오른쪽 발만을 왼쪽 허벅다리 위에 올려놓는 자세. 바로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의 모습이다.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왼쪽 발을 그대로 오른쪽 발 밑에 두고 오른쪽 발만을 왼쪽 허벅다리 위에 올려놓는 반가부좌(半跏趺坐) 자세에 왼손으로는 오른쪽 다리의 발목을 잡고, 오른쪽 팔꿈치는 무릎 위에 붙인 채 손가락을 뺨에 살짝 대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원래 이 상은 석가모니가 태자였을 때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고 출가해, 중생구제라는 큰 뜻을 품고 고뇌하는 태자사유상(太子思惟像)에서 유래한 것이다. 인도에서는 3세기경 마투라(mathur?) 조각과 간다라(Gandh?ra)미술에서 나타난다.
중국의 경우는 일찍이 5세기 후반 윈강(雲岡) 석굴에 나타나지만 6세기 후반 북제(北齊)시대에 가장 성행했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반가사유상은 미륵보살로 추정하고 있다. 석가모니 이후에 나타날 미륵불이 태자사유상형의 자세를 취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도상이다.
6세기 후반부터 유행하기 시작해 통일신라 초기까지 많은 반가사유상이 만들어졌는데, 대표적인 예로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국보 제78호와 국보 제83호의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을 비롯해 봉화에서 출토된 반가사유상을 들 수 있다.
이 반가사유상은 일본에도 전해져 고우류사[廣隆寺]에 있는 목조반가사유상은 우리나라 국보 제83호의 반가사유상과 거의 같은 형태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 많은 적송(赤松)으로 만들어진 점, 그리고 당시 삼국과 일본 간의 교류관계를 살펴볼 때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반배(半拜)---부처님께 예경을 올리는 절은 오체투지가 원칙이지만, 다음과 같이 큰 절을 할 수 없는 경우에 반배를 한다. 또는 반배를 다른 말로 저두(低頭)라고 한다.
- 반배를 하는 경우 ― 절의 입구인 일주문, 부도탑, 금강문, 천왕문, 불이문, 해탈문을 지날 때, 절 마당에서 대웅전을 향해, 탑 앞에서, 경내에서 스님이나 도반을 만날 때, 대웅전 내나 어간문(御間門)을 지날 때, 대웅전 등 전각에서 향과 초 등 공양물을 올린 후, 법당 들어가고 나올 때. 야외 법회시, 옥 내외 법회시 대중이 너무 운집해 오체투지를 할 수 없을 때.
*반야(般若)---산스크리트어로는 프라즈나(prajna)이며, 팔리어 ‘panna’의 음역어이다. 인간이 진실한 생명을 깨달았을 때 나타나는 근원적인 지혜를 말한다. 보통 말하는 판단능력인 분별지(分別智, vijnana)와 구별하기 위해 반야라는 음역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며, 달리 무분별지(無分別智)라고도 한다. 이 반야의 사상은 대승불교에서 확립된 것이다.
반야의 반(般)은 접두어 ‘pan’를 음사한 것인데 그 의미는 능동적으로 앞서간다는 것이고, 야(若)는 ‘na’를 음사한 말로 혜(慧) 즉 앎이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알기는 알되 진행적으로, 능동적으로 머물지 않고 개념 ? 분별 ? 망상 ? 판단 ? 인식의 작용이 일어나기 이전에 미리 알지만 거기에 안주하지 않는다는 진행의 의미를 가진 말이다.
*반야경(般若經)---원칙적으로 <대반야경(大般若經)>과 같은 말이라 해야 되겠는데, 당나라 현장(玄?)이 번역한 600권의 <대반야경>에 누락된 반야계통의 경전이 있다. 즉, 오늘날 가장 널리 독송되고 있는 <반야심경>과 호국 경전의 하나인 <인왕반야경(人王般若經)>은 그 속에 포함돼 있지 않다. 사정이 이러하니 <대반야경>도 반야경 계통 경전의 하나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반야경전에 속하는 경전만도 수십 종류에 이르며 현존하는 대승경전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분량만큼이나 그 경명(經名)도 아주 다양하다. 이 가운데 특히 중요한 열 가지를 ‘십본반야(十本般若)’라고 하는데,
①《소품반야경》 ②《대품반야경》 ③《인왕반야경》 ④《금강반야경》 ⑤《반야심경》 ⑥《유수반야경》 ⑦《문수반야경》 ⑧《승천왕반야경》⑨《대반야경》 ⑩《이취반야경》. 이 가운데서 ③번과 ⑤번 이외에는 모두 ⑨번의 600권《대반야경》에 포함돼 있다.---→대반야경 참조.
*반야바라밀(Prajnaparamita, 般若波羅蜜)---반야는 지혜를 뜻하고, 바라밀은 태어나고 죽는 현실의 괴로움에서 번뇌와 고통이 없는 경지인 피안으로 건너간다는 뜻으로, 열반에 이르고자 하는 보살의 수행을 이르는 말이다. 그러한 지혜를 터득하기 위한 수행을 반야바라밀이라 한다. 즉 보살이 수행을 통해 제법(諸法)이 공(空)임을 아는 참다운 지혜를 얻어 열반에 이르는 일이다.
*반야용선(般若龍船)---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아미타불의 협시불인 관세음보살이 망자의 영혼을 맞이하러 온다고 한다. 그리고 반야용선이란 망자가 어지러운 세상을 넘어 아미타불이 기다리는 피안의 극락정토에 갈 때 타는 배를 말한다. 인로왕보살(引路王菩薩)이 배를 인도한다.
*반야지(般若智)---모든 사물의 실상을 올바르게 관찰하는 지혜, 곧 ‘공(空)’임을 보는 지혜이다. 계율로 닦아 깨끗해진 사람이 선정에 의해 최고의 경지에 이른 지혜가 반야지(般若智)로서, 다른 지혜와 구별된다. 이 반야지(般若智)는 곧 해탈(解脫)이다. 따라서 불교에서는 반야지를 각(覺)이나 오(悟)라고도 한다.
*반연(攀緣)---인연에 끌림. 휘어잡고 의지하거나 기어 올라감. 무엇에 이르기 위한 연줄로 삼음. 얽매여 집착함 등의 뜻이 있다.
“쓸데없는 반연은 짖지 말지어다. 인은 어쩔 수 없으나 연은 물리칠 수 있다.”고 하는 게 부처님 법이다. 인생사 세상사 모두가 반연이며 인연이며 연기이다. 중생이 성불하고 범부가 성인이 된다는 소승적 불교의 가르침도 역시 인연이며 반연이며 연기다. 그런데 이러한 연기의 법칙은 모두가 본래 공적하다. 그래서 반야심경의 핵심도 무소득(無所得)이라고 했다. 얻을 것이 있는 것은 잃을 것도 있어서 무상하지만 얻을 것이 없는 것은 잃을 것도 없어서 항상하다.
“우리가 망상과 반연(攀緣)을 끊고 본체(本體)를 여의지 않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염불할 때 진정한 염불참선이 되며…”
※반연식물(攀緣植物)---다른 물건을 감아 뻗어 올라가는 줄기식물. 칡, 호박, 나팔꽃, 수세미, 오이 따위.
*반열반(槃涅槃)---열반은 산스끄리트어 니르바나(nirvaana)의 음역이다. 그런데 반열반은 파리니르바나(parinibbaana)라 한다. ‘파리(pari)’는 완전이란 뜻이다. 따라서 반열반은 완전한 열반이란 뜻이 되며, 주로 석가모니의 죽음을 가리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구경열반(究竟涅槃) 혹은 무여열반(無餘涅槃)이라고도 한다.
유여열반(有餘涅槃)--현신으로 깨달음을 얻은 상태.
현신해탈(現身解脫)--살아 있을 때 깨달음을 얻는 것.
무여열반(無餘涅槃)--죽음에 의해 이룬 완전한 열반.
이신해탈(離身解脫)--죽음에 의해 이룬 해탈.
*반자밀제(般刺密帝)---중인도의 승려. 수능엄경(首楞嚴經)이 인도의 유명한 절 나란타사에 숨겨져 있어서 당 시대 이전까지는 중국에 들어오지 못하다가 당나라 4대 중종 때인 705년경 반자밀제(般刺密帝)에 의해 전래돼 그에 의해 한역됐다.
*반주삼매경(般舟三昧經)---반주삼매경은 후한(後漢) 시대인 AD 197년에 지루가참(支婁迦讖)이 번역한 정토사상의 선구적 불경이다. 경의 이름에서 ‘반주(般舟)’란 인도 말인데 그것은 불립(佛立)이라, ‘부처 불(佛)’자, ‘설 립(立)’자로서 내 마음 속에 부처님을 세운다는 뜻이다. 부처가 서서 앞에 보인단 말입니다. 즉 ‘불현전(佛現前)’, 부처가 바로 앞에 나타나 계심을 뜻한다.
*발난타(跋難陀, Upananda)---8대 용왕(八代龍王)의 하나. 난타(難陀, Nanda)와 발난타는 형제간으로 다 용왕이다. 함께 마가다국을 지키며, 적당한 시기에 비를 내려 백성을 기쁘게 했다고 한다.
*발심(發心)---일반적으로는 어떤 일을 하기로 마음먹음을 말한다. 그러나 불교 나름에서의 발심은 발보리심(發菩提心)의 약칭으로 위없는 보리(菩提)를 얻고자 구하는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즉, 불도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불도를 얻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등의 뜻이 있다.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원효(元曉)대사가 출가 수행자를 위해 지은 발심(發心)에 관한 글. 불교 전문강원의 사미과(沙彌科) 교과목 중 하나이며, 처음 승려가 되기 위해 출가한 자들은 반드시 읽고 닦아야 할 입문서이기도 하다.
*발원(發願)---부처님께 올리는 서원으로 나쁜 마음을 모두 버리고 부처님처럼 크고 넓고 맑은 마음으로 살아가려고 다짐하는 것. 안으로는 끝없이 진리를 추구하고, 밖으로는 모든 이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하는 부처님 앞에서의 약속. 수행의 목표라고도 할 수 있다.
*발지론(發智論)---부파불교시대(기원전후 혹은 BC 2세기 경) 인도 승려 카트야야니푸트라(가다연니자, 迦多衍尼子, Katyayaniputra)가 저술한 논서로서 당나라의 현장(玄奬)이 한역했으며, 모두 20권이다.
발지론이 나오기 전에는 여러 논들이 주로 각기 특정한 문제를 분담해 고찰하고 있었는데 비해 이 논서에 이르면 비로소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의 학설 전반에 걸쳐 조직적인 논술이 이루어짐으로써 드디어 원시불교에서 설일체유부의 교리가 독립하게 됐다. 그리고 이 <발지론>에 대한 방대한 주석서가 <대비바사론(大毘婆沙論)=비바사론>이다.
소승불교의 대표적 부파(部派)인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의 논서는 <발지론(發智論, BC200년경)>→<육족론(六足論)>→<대비바사론(大毘婆沙論, AD2세기경)>→<아비담심론(阿毘曇心論, 391년에 漢譯)>→<구사론(俱舍論)>의 순서로 성립됐다.
*방광대장엄경(方廣大莊嚴經, Lalitavistara)---석가의 일대기를 기록한 경전. 중국 당(唐)나라의 지바하라(地婆河羅)가 683년에 번역하였는데, <대장엄경(大莊嚴論經)> ? <신통유희경(神通遊戱經)>이라고도 한다. <불소행찬(佛所行讚)>, <보요경(普曜經)> 등과 함께 석가의 생애를 서사시적으로 묘사한 일련의 원시경전 가운데 하나이다.
이 경은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가 전한 불전으로 생각되지만, 대승불교 전통에서 개작한 것으로 추정되며, 2~3세기경에 편집된 것으로 생각된다. 내용은 부처님의 탄생에서 초전법륜까지 부처님의 전설적인 생애를 묘사하고 있다.
경의 이름인 범어 랄리타비스타라(Lalitavistara)에서 ‘랄리따(Lalita)’는 유희(遊戱)이고, ‘비스따라(vistara)’는 교설이어서, ‘붓다의 유희에 관한 상세한 이야기’란 뜻인데, 붓다의 자재무애(自在無碍)한 설법을 의미한다.
308년 서진(西晋)에서 축법호(竺法護)에 의해 한역된 〈보요경(普曜經)>은 이 작품의 이본(異本)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추정되고, 당나라 때인 683년에는 인도승 디바하라(地婆訶羅)에 의해 〈방광대장엄경(方廣大莊嚴經)〉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번역됐다.
*방등경(方等經)---방등경이란 대승경전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여기서 ‘방등’이란 이치가 보편적이며 평등하다는 뜻으로, 대승(大乘)이란 말과 동의어이다.
*방부(房付)---선방에 안거를 청하거나 객승으로 남의 절에 가서 있기를 부탁하는 일.
*방장(方丈)---총림(叢林)의 최고 덕망 있는 고승. 총림이 아닌 사찰에서는 조실(祖室) 스님이라 한다.
*방편(方便, upaya)---방편이란 중생의 근기(根機)에 맞게 여러 가지 가르침으로 중생을 교화한다는 의미이다. 즉 각자의 상황과 기질에 맞는 최선의 방법과 수단을 통해 상대방에게 다가가는 것을 말한다. 특히 중생 제도에 목적을 둔 대승의 가르침에서는 이 방편을 중요시해 설법하는 장소와 상대에 따라 갖가지 방편이 설명되고 있다. 다만 중생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절대선(絶對善)이어야 방편이라 말할 수 있다. 즉, 방편은 진실을 전제한 도구이다. 진실에 들어가는 길이 열려 있지 않으면 방편이라 할 수 없다.
*방편바라밀(方便婆羅蜜)---대승의 가르침은 흔히 6바라밀로 설명되지만 제7바라밀로 방편바라밀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방편바라밀이란 뛰어난 방법과 교묘한 수단에 의해, 사람들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것을 말한다. 좀 더 젊잖게 이야기 한다면, 한량없는 지혜로 중생을 교화함에 있어서 중생들 하나하나의 병폐와 원하는 바에 따라 몸을 나타내어 중생들의 근기에 맞춰 이끌어주는 것이다.
*방편불(方便佛)---석가모니 부처님 한 분으로부터 파생된 분신불(分身佛)을 방편불이라 한다. 모든 부처님은 대우주의 본체이시고 본불이신 석가여래를 도와주는 방편불 곧 분신불이다. 법화경 방편품에서 부처님은 “(여러 부처들은) 일체중생 구제를 목적으로 하고 중생의 근기에 따라 부처님 입으로부터 출행시킨 방편불이라”고 하셨다.
절대로 혼동해서는 안 된다. 삼존불이라 해서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석가모니불, 이렇게 셋으로 나누어 생각하는데, 실은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다. 작용일 뿐이다. 불리불가(不離不可) 큰 하나이다.
과거칠불(過去七佛)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흔히 과거칠불은 석가모니 부처님보다 먼저 성불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만이 우주 법계 최초의 부처님-시성정각불(始成正覺佛)이시다. 과거칠불, 아미타불, 약사여래라 하는 등 모든 부처는 모두 본불 석가모니 부처님의 입으로부터 탄생한 분신불, 방편불이다.
*방편시설(方便施設)---여기서 ‘시설’이란 사회적 통념에서 갖가지 공사 현장에 설치하는 시설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같은 말이지만 사회적 통념과 불교에서의 개념 사이에 다르게 나타나는 단어의 하나이다.
부처님이 바라는 인간주의적 바른 종교가 세상에 행해지기 위해서는 ‘깨닫기 어렵다’는 문제가 어떻게라도 해결되지 않으면 안 됐다. 부처님은 이 문제에 골몰해 마침내 하나의 묘안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중생들의 ‘깨닫는 능력(機)’을 점진적으로 성숙시켜 가서 마침내 최상의 깨달음을 얻게 한다는 방법이다. 이런 방법론을 불교에서는 방편시설(方便施設)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방편(方便)(upaya)은 ‘접근한다’는 말이고, 시설(범어 prajnapti)은 ‘알아내게 한다'는 뜻이다. 이런 입장에서 부처님은 지극히 평범한 현실적인 사실을 깨우치는 일에서부터 설해가기 시작했다.---→시설(施設, prajnapti) 참조.
※<법화경〉등의 대승경전에 의하면 성문승 ? 연각승 ? 보살승의 삼승(三乘)은 부처가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기 위해 임시로 세운 방편시설(方便施設)로서 서로 대립되는 것이 아니며,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가르침인 일불승(一佛乘)에 귀착된다고 한다.
*방포원정(方袍圓頂)---방포(方袍)는 비구(比丘)가 입는 3종의 가사(袈裟)가 모두 방형(方形)인데서 나온 말이며, 원정(圓頂)은 둥근 머리란 뜻으로, 모두 승려를 가리키는 것임.
*방하착(放下着)---방하착이란 ‘놓아 버려라’ ‘집착하지 말라’ 또는 ‘집착하는 마음을 놓아버려라’ 하는 말이다. 중국 당나라 시대 ‘무자화두(無字話頭)’와 ‘뜰 앞의 잣나무(庭前栢樹子)’ 등 많은 화두를 창출한 조주 종심(趙州從?, 778~897) 스님이 처음 쓰신 말이다.
여기서 ‘방하(放下)’는 내려놓다. 또는 놓아버리다는 뜻이고, 착(着)은 명령형인 ‘방하’를 강조하기 위한 어조사이다. 그래서 방하착이란 본래 공한 이치를 알지 못하고 온갖 것들에 집착하는 것을 놓아버려라 하는 말이다. 특히 무아(無我)의 이치를 알지 못하고 ‘나(我)’ ‘내것’에만 끄달려 이를 붙잡으려하는 어리석은 아집(我執)을 놓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하(下)라는 것은 ‘아래’라는 의미이지만 모든 존재의 가장 깊은 곳, 그 아래에 있는 뿌리와도 같은 우리의 불성, 한마음, 본래면목, 주인공, 참나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방하착이란 일체 모든 끄달림, 걸림, 집착을 내려놓고 내 안의 참나의 자리로 돌아가라는 말이 되겠다.
*백고강좌(百高講座)---백고강좌란 인왕경(仁王經)에 입각해 거국적인 법회를 보는 것을 말한다. 인왕경은 국토를 지키고 국난을 퇴치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경전이다. 그리고 국난의 근본원인은 각자의 마음이 어지럽기 때문이며, 심난(心亂)의 원천은 귀신의 장난으로 본다. 따라서 국난을 일으키는 제신(諸神)을 위무하고 선도하기 위해 인왕경을 강독케 하는 법회를 백고강좌라 했다.
*백론(百論)---3세기 무렵의 인도 중관파(中觀派) 승려 아랴데바[提婆]의 저서. 산스크리트어본이나 티베트어본은 전하지 않고, 구마라습(鳩摩羅什)의 한역본(漢譯本)만 현존한다. 대승불교의 공 ? 무아설(空無我說)에 대해 나가르쥬나[龍樹]의 <중론(中論)>설만을 채택하고 다른 철학과 종교의 설을 논파한 책이다.
<백론서(百論序)>를 쓴 구마라습(鳩摩羅什)의 제자 승조(僧肇)에 따르면 현재의 한역은 전반 10장 50게(偈)만 있고 후반 10장 50게는 빠져 있다고 했다. 이렇게 전후반 합쳐 100게가 있었기 때문에 ‘백론(百論)’이라는 제명을 붙였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삼론종(三論宗)의 근본경전으로 중시되고 있다.
*백산개다라니(白傘蓋陀羅尼)---‘백산계’는 흰 비단으로 덮개를 만든 양산의 일종인 천개(天蓋)로서 왕위를 상징하는데, 불지 공덕이 수승함을 전륜성왕에 비유한 것이다.
※천개(天蓋)---불상을 덮는 일산(日傘)이나 법당 불전(佛殿)의 탁자를 덮는 닫집. 부처의 머리를 덮어서 비, 이슬, 먼지 따위를 막는 흰 양산이다. 부처님이 중생들의 뜨거운 번뇌를 식혀주는 그런 의미에서 백산개(白傘蓋)를 사용한다고 한다. ※마나사로바(Manasarovar) 호수 북쪽의 카일라스산이 큰 구름의 백산개(白傘蓋) 아래 순백의 미묘한 베일을 내리 두르고 위엄 있는 자태로 제왕처럼 앉아 있다.
*백일법문(百日法門)---1967년 해인총림 초대 방장으로 추대된 성철스님이 100일 가까이 대중에게 설법한 법문을 엮은 법문집. 먼저 200페이지까지만 읽고, 그 부분을 이해한 후에 뒤로 읽어가라고 한다.
*백장청규(百丈淸規)---중국 당나라 때 백장 회해(百丈悔海, 720~814)가 처음 창안한 것으로 선문의 수행과 생활규범을 정한 청규이다. 또한 선문에서 '총림(叢林)'이라는 제도가 백장스님으로부터 시작됐다. 이 백장청규에는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 하루 일을 하지 않으면 하루를 먹지 않는다)”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백장 회해(百丈悔海, 720~814)---중국 당나라 중기의 선승으로 마조 도일(馬祖道一)의 문하이다. 선의 규범인 <백장청규(百丈淸規)>를 제정해 교단의 조직이나 수도생활의 규칙 등을 성문화했다. 그의 수도생활은 매우 준엄해 “하루를 무위(無爲)로 지내면 그날은 굶는다”고 할 정도였다. 많은 제자가 그에게 모여들었는데, 그 중에서도 황벽 희운(黃檗希雲)과 위산 영우(?山靈祐) 두 사람이 걸물로서, 뒷날 이들의 계통에서 임제종(臨濟宗)과 위앙종(?仰宗)이 시작됐다.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100척이나 되는 대나무 끝에 서서 앞으로 한발을 내딛어야 비로소 새로운 세계가 보인다는 말이다. 이미 할 수 있는 일을 다한 것인 데, 100척이나 되는 높은 장대 위란 깨달음을 이룬 것을 말한다. 그런데 거기서 또 한걸음 더 나아가라면, 깨달음의 세계에 머무르지 말고 한 번 더 전진하라는 말이다. 즉, 이미 노력한 그 위에 죽음을 각오하고 더욱 노력하라는 말이다.
*108 번뇌(煩惱)--- ‘백팔(108)’은 불교에서만 아니라 바라문교의 성전인 우파니샤드에도 ‘백팔’이라는 수가 보인다. 염주의 수가 백팔이라는 것도 불교에 국한된 것만 아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안(眼)ㆍ이(耳)ㆍ비(鼻)ㆍ설(舌)ㆍ신(身)ㆍ의(意)라는 여섯 가지의 감각기관-6근(六根)의 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촉(觸)ㆍ법(法)-6경(六境)이라는 여섯 가지의 대상을 파악할 때에 호(好)ㆍ오(惡)ㆍ평(平=非好, 非惡)의 셋이 있어 18이 된다. 그 하나하나에 염(染)과 정(淨)의 두 가지가 있어 합하면 36이 된다. 여기에 또 각각 과거ㆍ현재ㆍ미래의 셋이 있어, 합계 108의 번뇌가 있다는 것이 하나의 설이다.
*번뇌(煩惱, klesa)---‘번뇌’의 원어인 산스크리트어 크레샤(klesa)는 ‘마음을 더럽히는 것’, ‘상처 주는 것’, ‘괴롭히는 것’을 의미한다. 번뇌의 분류방법은 수십 종에 달하지만 일반적으로 108번뇌라 말하며, 그 중에서 10사(使)가 유명하다.---→10사(十使) 참조.
*번뇌장(煩惱障---불교수행, 즉 깨달음을 방해하는 장애에는 번뇌장(煩惱障)과 소지장(所知障) 이장(二障)이 있다. 그 두 가지 장애(이장/二障) 가운데 하나로서 소지장(所知障)의 반대말. 번뇌장은 탐 ? 진 ? 치(貪瞋癡) 등에 의해 수행에 지장을 받는 것이고, 소지장(所知障)이란 기왕에 조금 알고 있는 지식 때문에 수행에 장애를 받는 것이다.---→소지장(所知障) 참조.
*범망경(梵網經)---범망경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고 있는 경전은 2종이 있다. 하나는 초기경전에 속하는 것으로서, 팔리어로 씌어진 남방 상좌부의 경장인 장부(長部, 디가니까야) 속의 범망경(Brahmajalasutta)이다. 한역(漢譯)으로는 장아함의 <범망경(梵網經)>이 이에 해당한다.
다른 하나의 범망경은 구마라습(鳩摩羅什, 344-413)의 번역이라고 하는 대승경전으로서의 범망경이다. <보살계본(菩薩戒本)>이라고도 하는데, 본명은 <범망보살계경(梵網菩薩戒經)>이다. 초기경전의 <범망경>과 다르고, 위경이라는 설이 있다. 교조주의자들이 권력의 남용과 승려의 비행을 막기 위해 제작됐다는 것이다. ‘범망(梵網)’이란 어부가 그물로 물고기를 잡듯 갖가지 견해를 건져 올린다는 뜻. 계율에 관한 근본 경전인데, 상 ? 하권이 있으며, 하권만 뽑은 것을 <보살계본>이라 한다.
*범부지(凡夫地)---보통 사람의 경지. 금타(碧山金陀)스님(1897-1948)이 체계화한 수행위차인 해탈십육지(解脫十六地)에서 제4가행지(加行地)까지가 범부지(凡夫地)이다. 수행을 보다 더 맹렬히 지속적으로 정진해야 하는 경지이므로 가행정진(加行精進)라고도 한다.
*범어(梵語)---산스크리트어를 지칭한다. 고대 인도에서 교양 있는 사회의 용어로서 표준어에 해당된다. 그러나 부처님은 주로 평민 언어인 팔리어로 설하셨고, 초기 경전 역시 팔리어로 씌어졌으나 대승경전은 대부분 범어로 씌어졌다.
*범천(梵天, 브라흐마)---인도 베다 시대에 브라흐만을 신격화한 우주의 창조신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고, 그 후 힌두교신 중의 하나가 됐으며, 불교에서는 ‘범천(梵天)’이라고 했다.
제석천과 함께 일찍 불교에 받아 들여져 불법수호신이 됐고, 또 석가삼존의 양 협시보살이 돼 후세 삼존형식의 선구가 되기도 했다. 형상은 중국식 복장을 하고 손에 불자(拂子)를 쥐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다.
※불자(拂子)---먼지떨이(먼지를 떠는 기구). 짐승의 꼬리털 또는 삼 따위를 묶어서 자루에 맨 것. 원래 인도에서 벌레를 쫓을 때 사용했으나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는 선종의 승려가 번뇌와 어리석음을 물리치는 표지로 지닌다.
*범천경(梵天經)---<잡아함경>에 들어 있는 경전. <잡아함경(雜阿含經)>(50권)의 제44권에 수록된 경전으로는 1189번째 경전이다. <고려대장경>에 수록돼 있다. 불교의 중요 교리인 사념처(四念處)에 관한 내용으로, 부처가 제자들에게 직접 설법한 것은 아니고 성불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루벨라 네란자라강 근처의 보리수 밑에서 생각한 것을 전한 것이다.
*범행(梵行)---산스크리트어 ‘brahma-carya = 범(梵)’은 청정을 뜻함. 따라서 범행이란 음욕(淫欲)을 끊고 계율을 지키는 청정한 수행. 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혹은 청정한 마음으로 자비를 베풀어, 중생에게 즐거움을 주고 그의 괴로움을 덜어주는 보살의 수행.---→오행(五行) 참조.
*법(法)---불교에서 법(法)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다.
① 법에 의지하라. 할 때 법은 진리, 부처님의 가르침을 뜻함.
② 제법무아(諸法無我)라 할 때 법은 존재, 사물을 뜻함.
③ 어떤 생각을 법(法)이라 할 때도 있다.
④ 법계(法界)에서 법은 모든 사물의 근원을 뜻한다.
※육조대사가 ‘제법여의(諸法如義)’라고 말한 제법(諸法)이란 곧 色, 聲, 香, 味, 觸, 法이니, ‘육진경계(六塵境界)를 잘 분별하되 그 본체가 담연(湛然)해 물들지도 아니하고 집착하지도 아니해 일찍이 변하거나 달라지지 아니함이 허공이 움직임이 없는 것과 같아서 원만하게 통하게 사무쳐서 억만 겁이 지나도록 항상 존재하므로 제법여의라고 말한다.’ 라고 했다.
*법거량(法擧量)---선종에서 간화선은 화두(話頭)를 참구해서 깨침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수행자가 화두를 타파했는지 아닌지, 깨달음을 얻었는지 아닌지를 판단할 객관적 기준이 없다. 그렇다고 아무나 깨침을 얻었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종에서는 인가(認可)를 중히 여긴다.
스승을 찾아가 자신의 공부, 즉 화두를 타파했는지를 검증 받는 것이다. 혼자서 도(道)를 깨달았다는 것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의 방식은 주로 스승과 제자의 문답 형식으로 진행된다. 깨침(法)을 얻었는지 아닌지를 파악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법거량(法擧量) 혹은 법담(法談)이라 한다.
법거량을 통해 스승이 제자의 깨침이나 화두 타파를 인정해 주면, 인가를 받는 것이오. 그렇지 못하면,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답(答)만 제자에게 남겨진다. 법거량은 스승과 제자가 마주 보며 1대 1로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중 앞에서 법사와 참가자가 문답을 통해 확인하는 경우도 있다.
*법계(法界)---불법(佛法)의 범위를 이르는 말. 범어 다르마 다투(dharma-dhatu)를 의역한 말이다. 불교에서 법(法)은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이지마는 여기에서는 모든 사물의 근원을 뜻한다. 특히 대승불교에서는 종교적인 본원을 의미하며, 여기에 경계라는 의미의 ‘계’를 붙여 진리의 세계를 상징하고 있다. 그래서 법계는 진여(眞如)와 동의어로 쓰이기도 한다. 즉 우주 만유(萬有)에 보편 상주 불변하는 본체. 절대적 진리의 세계를 뜻하는 진여(眞如)와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법계성(法界性)---법계의 본성.
*법계(法戒)---불교도이면 출가 ? 재가와 남 ? 여 구별 없이 모두가 지켜야 할 행위규범을 말한다. 여기서 법(法)은 성법(聖法=佛法)이고, 계(戒)는 인(因)을 뜻하므로 성법을 내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불교에서 계율이란 몸[身: 행위]과 입[口: 말]과 뜻[意: 마음]에 의한 일체의 악을 방지하기 위해 지켜야 할 행위규범이다. 즉, 불교에 귀의한 사람이 지켜야 할 행동규범으로 계와 율의 복합어이다.
원래 산스크리트어에서는 계(戒, sila)와 율(律, vinaya)을 별개의 뜻으로 사용해 붙여서는 쓰지 않았으나,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등에서는 합성어로 사용하고 있다. 이는 계와 율이 동일한 뜻으로 표현되고, 일상어로 사용할 때에 완전히 구별 지을 수 없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격히 살펴보면 계와 율은 현격한 차이가 있다.
계(戒)란 습관 ? 습성 ? 관행 등의 의미가 있으며, ‘좋은 습관’ 또는 ‘도덕적 행위’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이는 곧 인간의 몸과 마음을 조정하는 종교적 ? 도덕적인 규범을 뜻한다. 따라서 규정된 조문뿐만 아니라 일체의 수양 덕목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성철스님은 “계戒는 물을 담는 그릇과 같다. 그릇이 깨지면 물을 담을 수 없고, 그릇이 더러우면 물이 더러워진다. 흙 그릇에 물을 담으면 아무리 깨끗한 물이라도 흙물이 되고 똥 그릇에 물을 담으면 똥물이 되고 만다.” 라고 하셨다.
그리고 율은 무리를 이룬 집단인 대중이 지켜야 할 도리를 일컫는다. ‘계’가 자발적으로 지키는 것으로 도덕과 비슷한 데 비해, ‘율’은 타율적인 규칙으로 법률과 비슷하다.---→계(戒)와 율(律)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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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구(法救)---인명. 산스크리트어 dharmatr?ta, 4세기 북인도 건타라국(乾陀羅國) 출신의 승려로,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의 논사(論師)임. 저서로 잡아비담심론(雜阿毘曇心論)이 전한다.
*법락(法樂)
①불법(佛法)의 묘하고 깊은 이치에 맛 들여 얻는 마음의 즐거움.
②법회(法會)를 마칠 때, 음악으로나 시ㆍ노래를 지어 부처에게 공양하는 일.
*법락(法樂)---→인명, 담마류지(曇摩流支, Dharmaruci) 참조.
*법륜(法輪)---윤(輪)이란 고대 인도의 수레바퀴 모양의 무기인 차크람(chakram, 윤보/輪寶)을 의미한다. 이 차크람이 굴러가면 바위며, 적군이 모두 부셔졌다고 하는데, 인도의 전설적인 왕인 전륜성왕(轉輪聖王)이 이 무기를 사용해 천하를 통일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붓다나 승려가 설법을 하고, 중생이 그 설법을 들어 불교 교의를 믿으면 차크람에 의해 모두 부셔지듯 번뇌가 모두 파사(破邪: 삿된 것을 깨뜨림)된다고 해서 부처님의 교의를 차크람에 빗돼 표현한 것이다.
이래서 불교의 교의(법륜)를 타인에게 전하는 일(轉 ; 굴리다)을 전법륜(轉法輪)이라고 하고, 특히 붓다가 깨달음을 성취한 후, 첫 설법한 일을 초전법륜(初轉法輪 - 처음으로 법의 수레바퀴를 굴리다)이라 한다.
이 후, 법륜은 불교의 교의를 나타내는 수레바퀴 형태의 법구로서 구체화됐고, 만(卍)자와 함께 불상이 조상(彫像)되기 전, 불교의 상징이 됐다.
※법륜을 굴리다---불교의 교의를 널리 펼친다는 뜻,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불교를 널리 전하다, 혹은 전교를 한다는 말이다.
*법문(法門, dharma-paryaya)---법문은 부처의 가르침이다. 법(法)은 교법. 문(門)은 드나듦의 뜻이므로 진리의 세계(法)로 들어가는 문이란 뜻. 부처님의 교법은 중생으로 하여금 생사의 고해를 벗어나 열반의 피안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같이 이름한다.
진리를 깨친 이의 가르침(부처님 말씀)은 어리석은 중생들로 하여금 집착과 욕망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서 피안(열반)의 세계로 이르게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스님들의 설법을 통칭 법문이라 한다. 스님들은 부처님을 대신해 가르침을 전하기 때문이다.
*법상종(法相宗)---유식사상(唯識思想)과 미륵신앙(彌勒信仰)을 기반으로 해서 성립됐다. 법상종의 교의(敎義)가 되는 유식사상은 중관파(中觀派)와 함께 인도 대승불교의 2대 학파를 이루는 유가행파(瑜伽行派)의 교학(敎學)으로 중국에서는 현장(玄?)이 소개하고 그의 제자 규기(窺基)가 하나의 종파로 성립시켰다.
법상종이란 사물의 성질을 밝혀냈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성(性)이란 불변의 본체를 말하며, 상(相)이란 변화하고 차별로 나타난 현상계의 모습을 말한다. 법상의 법은 본체적이며 정신적인 사물, 즉 물질과 마음을 포함한 모든 존재를 가리킨다. 따라서 법상종의 주요 목적은 모든 존재의 성질과 모습을 탐구하는 것이다. 인도의 유식학을 정립한 무착(無着)과 세친(世親) 형제의 사상을 바탕하고 있으므로 유식종(唯識宗)이라고도 일컬어진다.
신라에서는 현장의 제자였던 원측(圓測)을 중심으로 연구됐고, 고려시대에 들어와서도 법상종은 화엄종(華嚴宗)과 함께 교종(敎宗)의 2대 종파였으며, 원주 법천사(法泉寺)가 법상종의 중심 사찰이었다.
*법성게(法性偈)--중국에서 화엄경(華嚴經)을 공부한 의상조사가 그 경의 핵심 내용인 불법(佛法)과 깨달음의 경계를 7언 30구 210자로 표현한 게송이다. 의상 큰스님의 탁월한 안목과 지혜, 간절한 자비심이 담긴 210자 게송이다.
*법수(法數)---법수란 숫자로 분류 정리한 불교의 교리를 뜻한다. 예를 들면 일승(一乘), 이제(二諦), 삼법인, 사성제, 오온, 육바라밀, 칠각지(七覺支), 팔정도, 구품왕생, 십선… 삼천대천세계 등 숫자로 된 법(진리)을 말한다. 불교의 법수를 잘 이해해야 불교교리를 잘 이해할 수 있다. 불교 법수를 모르는 사람은 불법을 모르는 사람이다.
※법수란 대장경 가운데 교리적인 중요한 부분과 수행에 요긴한 부분을 숫자로 요약해 정리했으므로 법수라 한다. 이각(二覺), 이집(二集), 삼보(三寶), 사섭(四攝)… 이런 식이다. 수(數)에는 숫자라는 뜻 외에 ‘세다, 계산하다, 셈에 넣다, 세어서 말하다, 들어 말하다’ 등의 뜻이 있다. 거기에 ‘헤아리다, 살피다’ 등의 뜻이 더 있다.
*법신(法身)---→삼신불 참조.
*법신상주(法身常住)---부처님이 여든 살을 일생으로 열반에 드시려 하자 아난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께서 세상을 떠나신 뒤에 정법(正法)이 얼마나 보존되겠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세상을 떠나도 법은 오래도록 존속할 것이다. 아난아 법신의 수명은 영원하다고 생각하라. 육신은 비록 이 세상에서 거두지만 법신(法身)은 항상 여기에 있으리라.” 이와 같이 부처님의 육신은 비록 멸해도 법신(法身)은 온 법계에 두루 상주(常住)한다는 말이다.
여기서 법신은 삼신불에서의 법신이기는 하나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삼신 가운데 영원히 살아 계신 부처님의 몸, 우리의 감각과 이성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몸이지만 우주 및 중생계 모든 것의 바탕이 되며, 그것을 질서 있고 조화롭게 만드는 주체인 진리의 당체를 말한다.
*법안종(法眼宗)---중국 선종의 한 파. 당나라 때에 크게 발전한 선종은 제6조 혜능(慧能)의 남종 계통에서 오가칠종(五家七宗)이 성립됐는데, 법안종은 그 중의 하나로 중국 5대(代) 시대 청량문익(淸凉文益)이 개창, 주로 강남 지방에서 전개됐다. 법안종은 당말 오대(五代)의 선불교를 최후로 종합했다. 그래서 선풍도 조사선의 사상을 집대성하고 있다. 그리고 법안은 화엄철학을 선(禪)의 실천으로 구현시킨 선교융합(禪敎融合)의 종풍을 펼쳤다. 우리나라엔 신라 말(10세기경) 지종(智宗)이 전하고, 고려 때에 크게 융성했다.
*법열(法悅)---불법을 듣고 진리의 깊은 이치를 깨달아 마음에서 일어나는 기쁨. 깨닫고 나면 며칠간 법열의 기쁨에 빠진다. 강한 번뇌가 무섭지만 강한 번뇌 뒤에는 법열이 동반된다. 번뇌 즉 보리가 된다. 흔히 ‘번뇌 즉, 보리’라 하지만 번뇌와 보리는 분명히 다르다. 그러나 번뇌를 실존적으로 체험해 보지 않은 이는 보리의 증득(增得)이 불가능하다. 불안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면, 법열의 기쁨을 또한 알지 못한다.
*법요(法要)
① 불법(佛法)의 요지. 불교의 중요한 부분. 가르침의 요지. 진리의 본질.
② 불교에서 행하는 의식. 법회(法會)와 같은 말.
*법융(法融, 594 ~ 657)---당나라시대의 선사. 4조 도신(道信)의 법을 이었다. 우두선(牛頭禪)의 개조로서 저서에 <절관론(絶觀論)>, <심명(心銘)>이 있다.
*법인(法印, 산스크리트어 dharma-mudr?)---불도를 외도(外道)와 구별하는 표지. 법(法)은 부처의 가르침, 인(印)은 특징 ? 징표 ? 도장의 뜻으로 확실하게 단언함을 뜻한다.
불법이 참되고 부동 불변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소승 불교에서는 무상인(無常印)ㆍ무아인(無我印)ㆍ열반인(涅槃印)의 삼법인(三法印)으로 하고, 대승불교에서는 실상인(實相印)의 일법인으로 한다. 즉, 대승불교에서는 모든 현상의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곧 제법실상(諸法實相) 단 하나만을 말하는데, 이를 일법인(一法印)이라 한다.
*법인(法忍)---<무량수경(無量壽經)>에 나오는 삼법인(三法忍)과 <묘법연화경>에 나오는 삼법인에 각각 법인이 있다. 어느 경우나 대체로 뜻은 같다. 즉 모든 법의 실상을 깨달아 세상 모든 것이 공(空)한 것이라는 진리를 깨닫는 지혜. 그리하여 미혹을 끊고 진리를 확실하게 인정하고 거기에 안주해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 지혜를 말한다.
*법장(法藏, 643~712)---중국 화엄종의 승려. 현수(賢首) ? 국일법사(國一法師) ? 강장국사(康藏國師)라고도 한다. 다른 법장스님과 구별하기 위해 ‘법장현수’ 혹은 ‘현수법장’이라 한다. 속성은 강(康)씨이며 조상은 서역의 강거국(康居國) 출신이나, 그의 할아버지 때부터 중국에서 살았다. 일찍이 신라 화엄종의 초조인 의상(義湘)과 더불어 중국 동진(東晉) 때의 역경승(譯經僧) 지엄(智儼)에게서 화엄종의 교학을 사사해 중국 화엄종의 제3조(三祖)가 됐으며, 이 종파의 교리를 집대성했다.
*법장부(法藏部)---산스크리트어 dharmaguptaka. 붓다가 입멸한 후 300년경 부파불교시대에 부파의 하나. 화지부(化地部)에서 갈라져 나온 분파(分派)라고도 하며,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의 분파라고도 함. 파조(派祖)는 담무덕(曇無德)임.
*법장비구(法藏比丘, 법장보살)---아미타불(阿彌陀佛)이 부처가 되기 전에 보살로서 수행할 때의 이름. <무량수경>에 의하면, 아미타불은 본래 한 나라의 왕이었는데 발심 출가해 이름을 법장(法藏)이라 했다. 세자재왕불(世自在王佛)에게 48대원(四十八大願)을 세우고 오랜 세월 수행 끝에 성불해, 현재의 아미타불이 된 후 서방정토 극락세계에서 중생을 교화하며, 법(法)을 전하고 있다고 한다.
*법집(法執)---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을 4상(相)이라 한다. 이 4상은 주관적인 아집인데 반해 객관의 대상에 대해 집착하는 법집(法執)이 또 있다. 객관의 실체성 역시 없는 줄 알아야, 즉 법무아(法無我)를 실현해야 4상이 완전히 없어져 부처님 세계에 들 수 있다.
법집(法執)에서 법(法)은 객관적 사물을 뜻하기도 하고, 종교적 진리를 뜻하기도 해서 이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법집이라는 단어 속에는 우주 만물의 객관적 사물 현상을 실재하는 것으로 알고 고집하는 집착과 내가 믿는 종교, 즉 ‘법’에 대한 집착, 모두를 말한다.
출가해서 마음공부를 하는 사람들도 끊임없이 집착에 시달린다. 공부가 진전되면 보통 사람들이 느끼는 집착에서는 점차로 멀어지지만, 또 하나의 집착이 찾아온다. 바로 자기가 발견한 진리(법)에 대한 집착이다. 자기가 발견한 진리이니 이를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것은 당연하지만 자기 진리에 대한 애착이 지나쳐 자기가 발견한 진리만이 진짜이고, 다른 사람의 진리는 깔보는 고질병도 법집이다.
*법현(法顯)---중국 동진(東晋)시대의 구법승(求法僧). 399년 60여세 나이로 동학 몇 명과 함께 구법을 위해 서역을 거쳐 인도로 들어가 불적을 순배(巡拜)하고, 파트나에서 3년간 공부한 후 실론(스리랑카)으로 건너갔다가 산스크리트 경전을 가지고 412년 해로로 귀국했다.
그의 여행기 <불국기(佛國記)>는 간략하나 5세기 초의 중앙아시아나 굽타 왕조의 극성기에서의 인도의 불교사정을 기록한 현존 최고(最古)의 기록으로서 귀중하다. 그는 귀국 후 소승열반경인 <대반열반경>을 한역했고, 불타발타라(佛陀跋陀羅)와 더불어 대승열반경인 <대반니원경(大般泥洹經)>도 한역했으며, 그 외에 많은 경전을 번역했다. 또한 법현은 서역이나 인도의 미륵신앙을 중국에 전했다고도 알려져 있다.
*법화경(法華經)---법화경의 원제목은 삿다르마 푼다리카 수트라(Saddharma pundarika sutra)로서 ‘흰 연꽃과 같은 올바른 가르침의 경’이란 뜻이다. 법화경은 한꺼번에 형성된 것이 아니라 점차적으로 형성된 것으로 보이며, 그 형성 시기는 대체로 3기로 나누어서 제1기는 기원후 50년경, 제2기는 AD100년경, 제3기는 AD150년경으로 추정한다. 그리고 3세기에 최초로 한역됐으므로 비교적 빠른 시기에 한역된 셈이다. 번역본엔 3종이 있다.
? 286년에 축법호(竺法護)가 번역한 정법화경(正法華經),
? 406년 구마라습이 번역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 601년 사나굴다(?那?多)와 달마급다(達磨?多)가 번역한 첨품묘법연화경(添品妙法蓮華經)의 3종이다.
예로부터 불교에서는 <화엄경(華嚴經)>을 일승원교(一乘圓敎)라 하고 <법화경>을 대승종교(大乘終敎)라 하여 최고의 가르침으로 꼽았고, 모든 경전의 왕으로 생각됐으며, 대승불전 중에서도 백미(白眉)로 손꼽힌다.
그러므로 묘법연화경은 불교경전 가운데서 가장 많이 존숭(尊崇)되고 신봉해온 초기 대승경전(大乘經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내용도 대승불교의 사상을 포괄적으로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경전으로서 문학적인 가치도 높다. 소승을 포함한 삼승(三乘 - 성문의 길, 독각의 길, 보살의 길)의 가르침을 먼저 설해 보인 후 결국엔 일승(一乘)의 가르침이 가장 뛰어남을 설하고 있다. 이러한 법화경은 방편품의 회삼귀일사상(會三歸一思想)과 시방(十方)의 모든 부처님은 결국 본불인 석가모니부처님의 분신불이라고 설하신 여래수량품을 그 주지(主旨)로 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천태종(天台宗)의 기본 경전(經典)이다.
*법화경종요(法華經宗要)---신라의 고승 원효(元曉)의 저술. 원효의 많은 저술 중에서 현재 남아 있는 20여 가지 가운데의 하나인 이 <법화경종요>는 그 책 제목이 보여 주듯 법화경의 가장 중심되는 가르침(敎說宗趣)과 중요한 뜻(要義)을 간략하게 밝혀 놓은 글이다.
*법화문구(法華文句)---법화삼대부(法華三大部)의 하나, <법화경> 28품의 모든 문장을 해석한 주석서이다. 천태대사 지의(智?, 538~597)가 저술하고, 관정(灌頂, 561-632)이 정리했다.
*법화삼대부(法華三大部)---<법화문구(法華文句)>, <마하지관(摩訶止觀)>, <법화현의(法華玄義)>를 일컬으며, 모두 천태종(天台宗)의 개조(開祖)인 천태 지의가 저술했다.
*법화삼부경(法華三部經)---법화경(法華經), 무량의경(無量義經), 관보현경(觀普賢經)
*법화행자(法華行子)---남을 위해, 세상을 위해, 법화경을 온 세상에 펴는 사람을 말한다. 즉 법화경을 펼 때에는 모든 인간에게 다 법화경을 믿게 하겠다는 굳건한 마음으로 펴는 것을 법화행자라 한다.
*법화현의(法華玄義)---법화삼대부(法華三大部)의 하나, 천태대사 지의(智?, 538~597)가 저술하고, 관정(灌頂, 561-632)이 정리했다. <법화경>과 천태학의 총론적 연구서이다. 교상문(敎相門, 교학)의 대표 저서로서 <묘법연화경>이라는 경의 제목을 중심으로 해서 경전의 요지를 해석하고 붓다 일생의 교법을 체계적으로 논술했다.
*벽관(壁觀)---중국에서 선종을 일으킨 달마(達摩)의 독특한 수행법으로 벽을 마주하고 좌선하는 것을 말한다. 담림(曇林)은 <소전(所傳>에서 ‘이입(理入)이란 안심(安心)이며, 안심이란 벽관(壁觀)이다’라고 해 벽관이 진리에 들어가는 실천법이라고 했다. 그리고 송대 종감(宗鑑:?∼1206)은 저서 <석문정통(釋門正統)>에서 벽관을 ‘참다운 마음의 안정’이라고 해석했다. 벽(壁)은 먼지나 티끌처럼 밖에서 오는 번뇌를 들어올 수 없도록, 즉 망념을 막아주므로 마음을 집중해 벽과 같이 함으로써 마음의 청정함이 유지되니, 이를 곧 벽관이라고 했다.
*벽암록(碧巖錄)---중국 송나라 때 선승 원오 극근(?悟克勤, 1063~1135)선사의 어록으로 화두를 통한 수행을 강조하는, 이른바 ‘간화선(看話禪)’의 교과서라 할 수 있는 공안집(公安集)인데 10권으로 돼 있다.
*벽지불(?支佛, pacceka buddha)---연각(緣覺) ? 독각(獨覺, Pratyeka-buddha)과 같은 말. 불교에서 붓다의 가르침을 듣고서 목적지에 도달하는 성문(聲聞, sravaka)과는 달리 자신의 노력만으로 깨달음을 얻은 자. 즉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하지 않고 스스로 도(道)를 깨치고, 고요와 고독을 즐기므로 설법교화를 하지 않는 성자이다. 독각은 전지전능하지도 않고 남을 깨닫게 할 수 있는 능력도 없으므로 완전한 부처와는 구별된다.
*변견(邊見)---오견(五見)의 하나. 자아를 비롯한 모든 것은 단멸한다거나 영원히 존속한다고 어느 한쪽에 치우친 극단적인 그릇된 견해, 즉 ‘나’라는 존재에 집착해 내가 죽은 뒤에도 자아가 그대로 지속한다는 생각(有見, 常見)과 그 반대로 죽은 뒤에 자아는 아주 없어진다는 극단적인 생각(斷見, 無見)을 말한다. 즉 상견(常見)과 단견(斷見)의 어느 한 극단에 사로잡혀 중심을 얻지 못하는 그릇된 견해이다.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변계(遍計)는 모든 것을 치우치게 헤아리고 억측한다는 뜻이고, 소집(所執)은 분별해 집착한다는 말이다. 우리 중생은 사실을 사실대로 보지 않고 모든 것을 한쪽으로 치우치게 보고 집착한다는 말이다.
이와 같이 치우치게 봐서 집착하는 성품을 가리켜 편계소집성이라 한다. 이것은 우리 중생의 망령된 잘 못 보는 그 마음에 있는 것이지, 즉 정(情)에 있는 것이지, 원래 우주의 도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성인들은 함부로 좋아하고 싫어하고 하는 것이 없다.
*변상도(變相圖)---불교경전에 나오는 교훈적인 장면 등을 알기 쉽게 상징적으로 표현한 그림. 경화(經畵)라고도 한다. 즉, 경전의 내용이나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 설화 또는 극락이나 지옥의 모습을 주제로 해서 그림으로 묘사한 것이다.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진상(眞相)을 변화시켜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변상도라고 한다. 탱화가 벽에 걸어두기 위한 액자형의 불화인데 반해, 변상도는 불경에 그리거나 나무나 금속판에 새긴 판화형이 대부분이다.
예) 법화경변상도, 화엄경변상도, 관무량수경변상도, 범망보살계경변상도 등이 있다.
*변정각(便正覺)---초발심시 변정각(初發心時 便正覺 ) - 의상대사의 법성게의 한 구절로서 초발심 했을 때가 문득 정각(구경각)을 이루었을 때라는 말이다. 초심(初心)을 그대로 지키고 수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임을 말한다.
*별상삼보(別相三寶)---신앙상의 삼보를 말함이니, 석가모니불이나 아미타불과 같은 시방삼세의 모든 부처님은 불보요, 여러 부처님이 말씀하신 교법과 부처님이 깨달으신 우주의 진리는 법보요, 부처님의 교법을 의지해서 수행한 삼현(三賢) ? 십성(十聖)은 승보인데, 이 삼보의 체상(體相-모습)이 서로 다르므로 별상삼보라 한다.
*보리(菩提)---산스크리트어 보디(Bodhi)의 음역, 깨달음이란 뜻. 불교 최고의 이상인 부처님 정각의 지혜, 곧 불과(佛果)를 말한다.
*보리도량(菩提道場, 산스크리트어 bodhi-ma??a)---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곳, 곧 우루베라 마을의 네란자라 강변에 있는 붓다가야(buddhagay?)의 보리수(菩提樹) 아래 금강좌를 말한다.
*보리수(菩提樹)---부처님이 당시 마가다(Magadha)국의 수도 라자가하(王舍城)에서 가까운 붓다가야 우루베라의 네란자라강(尼連禪江 ; 리라강) 서쪽 기슭의 핍팔라 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그런 후 핍팔라나무(pippala;畢鉢羅)는 ‘보리수’로 이름이 바뀌었다. 핍팔라나무를 일명 보디 브리크샤(Bodhi vriksa)라 하는데, ‘브리크샤’의 음을 따서 보리수(菩提樹)로 한역됐다고 하며, ‘깨달음을 준 나무’라고 해서 각수(覺樹), 도량수(道場樹) 등으로도 불린다.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은 후, 그 옆의 니그로다나무(尼拘律樹;Nigrodha) 아래로 옮겨 앉아 깨달은 내용을 정리하고, 설법을 할 방법을 궁리했다. 이 니그로다나무는 뿌리가 많다고 하여 다근(多根) 혹은 용수(榕樹)라 한다.
*보리수나무(Silverberry)---우리나라 보리수나무. 전국의 표고 1,200m 이하의 산기슭에서 자생하는 낙엽활엽관목이다. 수고 3~4m 정도로, 5~6월에 잎겨드랑이에서 1~7개의 꽃이 모여 흰 꽃이 피는데 점점 노란색으로 변한다. 열매는 10~11월에 둥근 적색으로 익으며 먹을 수 있고 비늘털이 남아 있다. 인도의 보리수와는 전혀 다른 나무이다.
*보리심(菩提心)---보리심이란 한 마디로 부처님의 지혜인 무상정등정각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다. 무상정등정각이란 범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한역어로, 위없는 평등한 바른 깨달음이라는 말로 부처님의 지혜를 일컫는다. 즉 부처가 되겠다는 서원을 세우는 것이 발보리심이다. 보리심에 의해 수행이 시작되므로 보리심을 부처의 어머니라고 한다.
*보리유지(菩提流支)---중국 북위(北魏)에서 활약한 인도 출신 승려로 달마(達磨)를 시기한 나머지 AD 528년 10월 5일, 광통율사(光統律師)와 더불어 달마를 독살했다고 한다. 달마는 그때 150세였다.
그는 삼장에 정통했을 뿐만 아니라, 다라니에도 능숙했다. 508년 낙양으로 왔는데 북위(北魏) 선무제(宣武帝)는 그를 매우 환영해 영녕사(永寧寺)에 주석하도록 배려했다. 그는 <십지경론(十地經論)> 이외에 <입능가경(入楞伽經)>, <부증불감경(不增不減經)> 등을 번역했다.
※당나라시대 대보적경(大寶積經)을 번역했다는 보리유지와의 구별이 확실치 않다.
*보리행(菩提行)---깨달음을 지향하는 것. 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깨달음의 실 천. 보살도의 실천 등의 뜻이다.
그런데 습성으로 익혀온 마음속의 이기심을 변화시켜야 보리행을 하는 것이다. 마음 따로 있고 보리심이라는 것이 다른 곳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어떤 분별이나 집착, 망상이 없는 인식에서 선행과 선심의 보리행이 나오고 진리를 볼 수 있는 마음이 생긴다.
*보리행경(菩提行經)---인도의 불교학자 산티데바(Santideva, 한역 적천/寂天, 7∼8세기경)의 저술로 전해지나 10세기에 송(宋)의 천식재(天息災)가 번역한 한역본에는 용수(龍樹)가 지은 것으로 돼 있다. 깨달음에 이르는 수행을 설한, 8품(品)으로 된 게송. 대승불교문학의 걸작으로 꼽힌다. 일명 <입보리행론(入菩提行論)>이라고도 한다.
*보림전(寶林傳)---당의 고승 지거(智炬)가 801년에 지은 불교서적. 원제는 <대당소주쌍봉산조계보림전(大唐韶州雙峰山曹溪寶林傳)>이다. 선종에 전하는 조사(祖師)의 법맥이 달마까지 28조라고 주장한 문헌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가섭(迦葉)에서 달마에 이르는 조사의 법맥을 순서대로 다루고 조사에 관한 전설과 법을 전하게 된 인연을 소개했다. 이 보림전에 “불립문자 교외별전(不立文字敎外別傳)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見性成佛)”란 말이 처음 등장한다.
*보문시현(普門示現)---관세음보살께서 ‘넓은 문으로 (몸을) 나타내다’는 정도의 의미이다. 관세음보살이 세상을 교화함에는 중생의 근기에 맞추어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므로, 이를 보문시현(普門示現)이라 하며, 삼십삼신(三十三身)이 있다고 한다. 서른세 가지 몸의 모습으로 중생의 필요(고통 받는 소리)에 따라 몸을 나타내시어(시현하여) 고통을 없애주니, 보문을 보통 ‘넓은 문’으로 이해하고 있다. 관세음보살은 그 종류가 많지만, 성관음(聖觀音)만이 본신이고, 그 나머지는 모두 보문시현의 변화에 의해 나타난 화신이다.
*보살(菩薩)---대승불교가 지향하는 이상적인 인간상, 보리살타(菩提薩陀) 혹은 보디 사트바(Bodhisattva)라고 한다. 보리와 보디(bodhi)는 깨달음을 의미 하며, 살타와 사트바(sattva)는 중생을 의미하는 것으로, 깨달음과 중생을 합친 개념이 보살이다. 보살은 위로는 부처의 깨달음을 추구 하면서(上求菩提), 아래로는 중생들을 교화해 깨달음의 길로 나아가게 하는(下化衆生) 역할을 하는 일종의 중간자적 입장이라 할 수 있다.
*보살행(菩薩行)---육바라밀을 뜻한다. 즉 부처가 되기를 목적으로 수행하는 자가 행하는 자리(自利) ? 이타(利他)의 행위, 곧 육바라밀(六波羅蜜)의 무아행(無我行)을 말한다.
결국 보살행이란 베풀고서 후회하지 말고, 과보를 기대하지도 말며, 명예를 얻으려 하지 말고, 내생을 바라지도 말며,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지도 말며, 오직 모든 중생을 사랑하고 위한다는 마음에서 아낌없이 베푸는 것, 그것이 진정한 보살행의 시작이다. - 대방광불화엄경에서 -
*보요경(普曜經)---서진(西晋)의 축법호(竺法護) 번역. 방광대장엄경(方廣大莊嚴經)의 다른 번역. <보요경(普曜經)> 근거에 의해 탄생불에 감로다를 붓는 의식이 오늘에까지 전해져 전통으로 이어지게 됐다고 한다.
즉, 사찰에서 음력 4월 8일 부처님의 탄생하는 모습의 불상을 목욕시켜 석가모니의 탄생을 기념하는 관불회(灌佛會)라는 법회를 개최한다. 헌데 <보요경(普曜經)>에 의하면 석가모니가 탄생하셨을 때 용왕이 공중에서 향수를 솟아나게 해 그 신체를 세욕(洗浴)시켰다고 한다. 이를 근거로 해 관불회 때에는 탄생불상에 감로다(甘露茶)를 붓는 의식을 집행한다.
*보우(普愚)---고려 말에 활동한 승려(충렬왕 27~우왕 8, 1301~1382년) 원증국사(圓證國師)의 휘가 보우이다. 속성은 홍씨이며 본관은 홍주이다. 법명은 보허(普虛), 호는 태고(太古)이다. 우리나라 임제종의 시조이고, 종파 통합(통불교)에 앞장선 한국불교의 중흥조이며, 조계종의 공식적인 중흥조이고, 태고종(太古宗)의 종조이기도 하다.
1625년(인조 3)에 휴정(休靜) 문하의 언기(彦機)가 태고법통설(太古法統說)을 제기했으며, 조선 중기 이후 휴정의 제자들이 불교계를 주도하게 되면서 우리나라 불교계 전체의 정통설로 수용됐다.
*보우(普雨, 1509~1565)---명종 3년(1548) 명종의 어머니 문정왕후(文定王后)의 신임을 얻어 봉은사(奉恩寺) 주지가 돼 당시 질식 상태에 있던 불교를 부흥시키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선 ? 교(禪敎) 양종을 부활시키고, 과거에 승과(僧科)를 두게 하는 등 많은 활약을 했다. 억불정책(抑佛政策)에 맞서 불교를 부흥시켜 전성기를 누리게 했으나 그의 죽음 직후 원상태로 돌아갔다.
*보임(保任)---→만행 참조.
*보조국사 지눌(普照國師 知訥, 1158~1210)---지눌이 활약한 고려 중기는 무신의 난이 일어나 정치세력이 무신들로 교체되면서 불교교단도 재편되던 때였다. 따라서 그는 정치세력과 지나치게 밀착함으로써 야기된 폐단과 선종과 교종 간의 극단적인 대립을 비판하며 불교개혁을 추진했다, 그는 침체된 선을 부흥시키면서 불교계를 개혁하는 한편 중국 당대(唐代)의 선종 승려 하택 신회(荷澤神會)의 이론을 받아들여 돈오점수설(頓悟漸修說)에 입각한 정혜쌍수(定慧雙修)를 주장했다.
*보타락가산(補陀落山)---관세음보살이 거주하는 산. 산스크리트어 포탈라카(potalaka)를 음역한 것이다. <화엄경>의〈입법계품〉에 선재동자(善財童子)가 구도를 위해 세상을 돌아다니던 중 보타락가산에 도착하는 구절이 나오는데, 바다에 접해 있는 팔각형의 바위산으로, 산에서 자라는 꽃과 흐르는 물은 빛과 향기를 낸다고 한다. 관세음보살은 인도의 남쪽에 있는 이 보타락가산에 머문다고 알려져 있다.
*보현보살(普賢菩薩)---문수보살이 지혜를 상징한다면, 보현보살은 대행(大行)을 상징하는 보살로서 부처님의 행원(行願)을 대변하면서 석가모니 부처님의 오른쪽에 협시해 이덕(理德)과 정적(定德)과 행덕(行德)을 맡고 있다. 이와 같이 이치와 명상과 실천을 관장하는 것이 보현보살의 특징이다.
원을 세우면 반드시 실행한다고 해, <화엄경>에서는 중대한 역할을 맡고 있다. 중생들의 목숨을 길게 하는 덕을 가졌기에 연명보살(延命菩薩)이라고도 한다.
보현보살은 형상이 여러 가지가 있으나 일반적으로 흰 코끼리를 타거나 연화대에 앉아 있는 형상이 대부분이다.
※행원(行願)---행원은 신행(身行)과 심원(心願)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중생을 구제하고자 하는 바람과 그 실천의 서원(誓願)을 말한다.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불교의 대표적인 보살인 보현보살(普賢菩薩)의 행원(行願)을 기록한 책. <화엄경(華嚴經)> 안에 수록돼 있으며, 정식 명칭은 <대방광불화엄경입부사의해탈경계보현행원품 大方廣佛華嚴經入不思議解脫境界普賢行願品>이다. 이 책은 선재동자(善財童子)가 문수보살(文殊菩薩)에 의해 보리심(菩提心)을 내어 53선지식(善知識)을 차례로 찾아가서 도를 묻고, 마지막으로 보현보살을 찾았을 때 보현보살이 설한 법문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보현보살의 행원을 특별히 중요하게 생각해 방대한 <화엄경>에서 따로 분리시켜서 이 한 품을 별도 책으로 간행, 유포시켰다.
*복전(福田)---논밭이 곡물을 자라게 하고 곡식을 거두어들이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삼보를 공양하고,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며, 가난한 사람에게 베풀면 자기에게 복이 와서 복덕(福德)의 열매를 얻게 되므로 복밭(福田)이라고 한다. 즉 불법(佛法)의 참된 신앙이 곧 복의 밭이 된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신라 말기와 고려시대를 통해 승려를 복전이라 일컫기도 했다.
*본래면목(本來面目)---불교가 성선설인가 성악설이가 하는 논의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성선설도 아니고 성악설도 아니다. 본래면목이다. 즉 본래 그대로라는 말이다.
우리의 본래 모습, 중생이 본디 지니고 있는 순수한 심성을 말한다. 이것을 다른 말로 자성(自性), 진아(眞我), 불성(佛性), 도(道), 진리(眞理), 진여(眞如), 여래(如來), 일심(一心) 등으로 일컫는다.
본래면목엔 으레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이란 말이 붙어서 ‘부모미생전 본래면목’이라 하는데, ‘부모미생전’이란 분별 이전, 번뇌 망상이 일어나기 이전이고, 본래면목이란 진실한 나의 모습, 또는 본래의 자기 성품을 말한다.
따라서 본래면목은 우주 삼라만상이 생기기 이전부터 있었으며, 이 우주 삼라만상이 다 멸한다 해도 본래면목은 멸하지 않는다. 그래서 태어남도 없고 멸함도 없는 무시무종(無始無終)인 것이다.
*본사(本師)
1) 근본이 되는 스승이라는 뜻으로, ‘석가모니’를 이르는 말로 주로 쓰인다.
2) 자기가 믿는 종파의 조사(祖師).
3) 자기가 법을 받은 스승을 일컫기도 한다.
*본생담(本生譚)---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이야기를 적어 놓은 책. 본생경(本生經)이라고도 한다.---→자타카 참조.
*본연부(本緣部)---본연은 본생(本生) 또는 본기(本紀)라고도 하는데, 주로 부처님이 아득한 과거세에 중생을 구제하고 자아의 완성을 위한 보살행을 한 전생 설화를 담고 있으며, 대표적인 경전이 자타카(본생경)이다. 이와 같이 부처님의 전생담(전생의 이야기)을 담은 경전류를 일본에서 발간한 신수대장경(新修大藏經)에서 본연부(本緣部)라고 분류해 놓았다.
본연부에 딸린 경전은 대부분 신화와 전설이 뒤섞인 옛날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합리적인 논리로 전개되는 경전과 함께 이처럼 비합리적인 설화가 경전으로 결집됐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게 된다.
*본원(本願)---부처가 되기 이전, 즉 보살로서 수행할 때에 세운 서원(誓願). 부처가 맨 처음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키면서 세운 서원. 대승의 보살들은 자신의 오도(悟道)는 뒤로 돌리고 우선 남을 구제한다는 자미득도선도타(自未得度先度他)의 사상과 실천을 이상으로 했고, 이러한 중생구제의 염원과 깨달음을 찾아 불도에 들어올(발심/發心) 때부터 그 맹세가 요구됐다. 이러한 소원을 마음으로 맹세하는 것, 즉 서원을 본원(本願)이라고 했다.
*본원력(本願力)---대승의 보살들은 자신의 깨달음은 뒤로 돌리고 우선 남을 구제한다는 자리이타(自利利他), 하화중생(下化衆生) 사상의 실천을 이상으로 했고, 이러한 중생구제의 염원은 불교에 귀의할 때부터 그 맹세(발심)가 요구됐다. 이러한 소원을 마음으로 맹세하는 근본적인 서원이란 뜻인데, 보살의 본원에 힘입는다는 뜻이다.
*본초불(本初佛)---밀교에서 최초이고 근본적이며 원초적인 부처님을 일컫는다. 산스크리트 명은 아디 붓다(Adi Buddha)이고, ‘아디’란 본래, 최초를 의미한다. 아제불타(阿提佛陀)는 그 음역이다. 본초불은 겁초에 출현한 스스로 존재하는 자생자(自生者)로서 어떤 인연에 의해 나오신 것이 아니라 ‘스스로 태어나신 분’ 혹은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다. 즉 깨달아서 부처가 된 게 아니라 본래불이다. 따라서 초기 불교에는 나오지 않고, 대승불교에서 신격화된 부처이다.
그리고 아디 붓다가 밀교계 경전에 등장하는 최초의 부처님이라면, <법화경>에 등장하는 최초의 부처님은 위음왕불(威音王佛)이다.
*부대사(傅大士, 497~569)---중국 양나라의 승려로 성은 부(傅)이며 이름은 흡(翕), 자는 현풍(玄風)이다. 부대사라는 별칭 이외에 쌍림대사(雙林大師), 동양거사(東陽居士)라고도 한다. 16세에 혼인해 두 아들을 두었으나, 24세에 서역(西域)의 승려 숭두타(嵩頭陀)에게 감화돼 동양(東陽) 송산(松山)에 은거해 숨어 살며 수행했다. 쌍림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으며, 거침없는 수행으로 출가자와 재가자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특히 양무제를 귀의시켜 중국 불교 발전에 기여했다. 어록으로 <선혜대사어록(善慧大士語錄)>이 있다.
*부루나(富樓那)---부처님 10대 제자의 한 사람. 부루나는 부처님으로부터 설법제일(說法第一)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본명은 푸르나 마이트라야니 푸트라(Purna maitrayani putra)이다.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여기에서 부모란 ‘현생의 부모’가 아니다. 영생을 두고 수많은 생을 거듭나며 새 몸을 받기 위해 그때마다 부모를 만났을 것이고, 그 부모는 그 부모대로 몇 생을 거듭 태어나며 만난 또 다른 부모가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부모란 전생(前生), 전전생(前前生), 그 이전의 부모이고, ‘미생전’이란 몸 받기 그 이전, 분별 이전, 번뇌망상이 일어나기 이전을 말한다.
그리고 여기서 ‘몸 받기 전의 몸’이란 눈에 보이는 즉 태어나서 자라다가 병들어 죽는 이 몸뚱이. 즉 세월 따라 변하는 지금의 ‘거짓 나’를 말하는 게 아니라, 영원히 변치 않는 ‘참 나’, 내게 본래 있는 불성(佛性)을 말한다. 즉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말한다.
헌데 일반사회에서는 통속적으로 간단히 하늘과 땅이 나누어지기 전을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이라 하기도 한다.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본래면목(本來面目) 시심마(是甚磨)---화두의 하나이다. 부모에게서 태어나기 전 나의 참모습(본래면목)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네가 네 엄마로부터 몸 받기 전에 너는 무엇을 했느냐, 부모님께 몸 받기 이전에 나는 어디 있었는가? 이러한 물음에 큰 의심을 가져보라는 말이 본래의 의미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제를 의심하기 위해 ‘이 뭣고’ 하며 골똘히 참구하면 본래면목, 즉 ‘참 나’를 깨달게 된다는 것이다.
헌데 내가 태어나기 이전의 상태’란 ‘나(我)’라는 개체적 인식이 없는 상태, 즉 무아(無我)의 경지를 말한다. 따라서 본래면목을 진아(眞我), 참나라 표현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 뜻은 [무아]를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부모미생전 본래면목은 문자를 통한 말로 터득할 수 있는 도리가 아니기 때문에, 정말 깨달은 분이 아니고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으므로 굳이 알음알이로 알려고 하면 어리석은 일이 되고 만다. ‘이해’가 아니고 ‘깨달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시 ‘이 뭣고’하는 화두를 들 수밖에 없다.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불교경전. 부모의 은혜가 한량없이 크고 깊음을 설해 그 은혜에 보답할 것을 가르친 경전. 아버지보다 어머니의 은혜를 강조하고 있어 유교의 <효경(孝經)>이 아버지의 은혜를 두드러지게 내세우는 점과 대조를 보이고 있다. 중국 남북조시대에 씌어진 위경(僞經)이라고 한다.
*부목(負木)---절에서 땔나무를 해 들이는 사람.
*부사의(不思議)---불가사의(不可思議)와 같은 말. 깊은 이치나 희유한 일이어서 마음으로 생각할 수도 없고 말로 이야기할 수도 없는 것을 말한다. 인간의 머리로는 도저히 헤아리거나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
*부설거사(浮雪居士)---신라 진덕여왕 때의 이름 높은 재가승. 부설거사는 김제 만경에서 태어났으며, 경주 불국사에서 승려가 돼 수도 생활에 정진해서 경학(經學)이 높은 경지에 이르러 날마다 그의 명성은 높아갔다. 그런데 도반들과 오대산을 가는 길에 김제의 구씨 집에 머물게 됐을 때, 그곳에서 묘화라는 구씨의 딸과 혼인을 해서 평생 신앙 깊은 거사로 지냈다. 부설거사와 묘화 부인은 15년을 살면서 아들 등운(登雲)과 딸 월명(月明)을 낳은 뒤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자 부인에게 맡기고 백강 변에 초가를 짓고 참선을 하기 시작했는데, 이곳이 지금의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에 있는 망해사(望海寺)이다.
*부전(副殿)스님---불공이나 재(齋)를 집전하는 스님. 혹은 사찰에서 돈이나 곡식 같은 것을 맡아보는 승려를 말함.
*부진공론(不眞空論)---중국 진(晋)시대에 승조(僧肇, 384~414)가 지은 저서로 <조론(肇論)>이 있었다. 그는 구마라습(鳩摩羅什)의 제자로서 비교적 짧은 삶을 살았던 승려였으나 불교에 대한 깊은 이해로 그 조론의 한 편인 부진공론(不眞空論)을 통행 격의불교(格義佛敎)를 비판하고, 공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시함으로써 중국불교가 한 단계 뛰어오르게 됐다는 평을 받는다.
*부처님---
*부처님 10대 제자
지혜제일(智慧第一)---사리불 또는 사리자라고 한다.
신통제일(神通第一)---마하목건련. 부처님보다 먼저 입멸했다.
두타제일(頭陀第一)---마하가섭. 소욕지족(少欲知足)하며 항상 두타행을 했다.
천안제일(天眼第一)---아나율. 밤낮으로 정진하다 눈이 멀었지만 지혜의 눈인 천안통을 얻었다.
해공제일(解空第一)---수보리. 지혜가 총명해 그 누구도 따를 자가 없었다.
설법제일(說法第一)---부루나. 부루나미다라니자의 약칭으로 부루나의 설법을 듣고 불법에 귀의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논의제일(論議第一)---마하가전연. 뛰어난 언변과 논리 정연한 말솜씨로 불법을 널리 펼쳤다.
지계제일(持戒第一)---우파리. 십대제자 가운데 유일하게 노예 출신이고, 이발사였다.
밀행제일(密行第一)---라후라. 부처님의 친아들.
다문제일(多聞第一)---아난다. 부처님 시자라서 누구보다 부처님의 설법을 가장 많이 들었다.
*부촉(咐囑, 付囑)---부탁해 맡기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일이나 사물, 사람을 부탁해 맡기다는 뜻.
*부화(浮華)---① 실속은 없고 겉만 화려함. ② 남녀 관계가 도덕적으로 타락하여 건전하지 못함.
*북종선(北宗禪)---→남종선 참조.
*분소의(糞掃衣)---세속사람들이 버린 헌 옷을 주워서 빨아 지은 가사(袈裟). 이 버린 옷은 똥을 닦은 헝겊과 같으므로 분소의라 한다. 또 이 헌옷의 조각조각을 기워 모아서 만든 옷이므로 백납(百衲) 또는 납의(衲衣)라고도 한다.
*불(佛, buddha)---범어 Buddha(붓다)를 중국에서 소리 나는 대로 음역(音譯)하다가 보니 불타(佛陀)로 번역했고, 불타를 줄여서 불(佛)이라 하는데, 뜻으로는 각자(覺者, 깨달은 분) 등으로 번역했으나 주로 음역인 불(佛)을 많이 쓰고 있다. 그래서 사실 한문으로 불(佛)은 음역이기 때문에 의미가 없었다. 그러니 '불(佛)'은 붓다를 표현하기 위한 조자(造字) 수준의 것이었다. 그러나 원체 각자(覺者)보다는 붓다(佛)를 많이 쓰다가 보니 이 불(佛)은 ‘깨달을 불(佛)’로 정착한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서 우주를 움직이는 근본은 무엇일까? 인류의 기원은 어디에 있을까? 도대체 우주의 비밀은 어디까지일까? 불(佛)이란 말은 인류를, 우주를, 나를 움직이는 근본에너지를 말하게 됐다.
인간이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게 되면 죽음과 태어남의 이전 즉 어떤 모양과 어떤 특성의 물질 이전으로 돌아간다. 사람이 죽으면 ‘돌아갔다’고 한다. 이런 표현의 보다 적극적인 의미가 바로 깨달음이다.
인간으로서 생명력이 유지되면서 위의 가장 근본적인 에너지의 핵으로 돌아가게 된다. 시간과 공간과 그 밖의 어떤 자연현상으로도, 또 인간의 어떤 의지작용으로도 변형이 불가능한 초인적 초자연적인, 태풍으로 말하자면 태풍의 핵과 같다고나 할까. 우주의 근본, 인간의 근본, 신의 근본, 인류의 근본 핵, 이렇기에 불(佛)은 우주와 인류 자연과 신의 원천이며, 스승이며,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불공(不空)---모든 분별이 끊어진 상태에서, 있는 그대로 파악되는 현상. 분별이 끊어진 후에 확연하게 주관에 드러나는 현상. 분별과 망상이 일어나지 않는 주관에 드러나는, 대상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
*불공(不空: 705~774)---밀교의 제6대조. 원명은 아모가바즈라(Amoghavajra)이고 번역해서 불공금강(不空金剛) 혹은 불공삼장(不空三藏)이라 하며, 보통 불공이라 약칭한다. 실론(일설에는 북인도)에서 태어나 720년에 스승인 금강지(金剛智)를 따라 남중국해를 경유해 당나라 시대에 중국의 뤄양(洛陽)으로 왔다. 이후 약 30년간 금강지에게서 밀교를 배우고 산스크리트어와 중국어의 재능을 살려 스승의 역경사업을 도왔다. 신라 출신 혜초(慧超)의 스승이기도 하다.
불공화상이 말씀하시기를 “불법을 듣고자 하면 먼저 참 스승을 찾아서 정성스런 마음으로 모시고 받들어라. 옛날 석가세존이 출가해서 6년이나 스승을 구해 후인들로 하여금 본받게 했으니 너는 마땅히 성 심을 다해 목마르게 구해야 할 것이다.”라고 했다.
*불공(佛供)---불교에서 부처나 보살에게 음식 ? 향 ? 꽃 등을 경건한 마음으로 공양(供養)하는 종교의식. 또는 그것을 바치며 소원이 성취되기를 비는 의례.
*불과(佛果)---수행한 인(因)으로 말미암아 도달하는 부처님 지위. 불도 수행을 원인으로 해서 얻는 최상의 경지.
과(果)는 열매라는 뜻. 원인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법을 말한다. 선한 원인에 따라 일어나는 법을 선과(善果)라고 하고, 부처님에 귀의해 얻는 법을 불과라고 한다.
*불광(佛光, Buddha Light)---불광은 깨달음의 빛으로 법신불(法身佛)을 증득한 존재로부터 나오는 정묘(精妙)한 빛을 말한다. 깨달음에는 여러 종류의 단계가 있는데 자기 나름대로 어떤 깨달음을 얻으면 거기에 상응하는 파동(波動)을 몸으로부터 발산한다고 한다. 대체로 기(氣) 차원의 에너지를 자기 몸 주위에 발산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의 깨달음의 불광은 파동을 넘어서서 불일보조광명(佛日普照光名)의 수준이라 한다. 부처님의 빛은 널리 비치고 빛나고 밝다는 뜻이다. 불광을 태양에 비유한 것이다.
물질계의 태양빛이 지구상의 만물을 길러주고 꽃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하며, 어둠을 밝히고 추위를 몰아내고 얼음을 녹이는 것처럼 부처님의 깨달음인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에서 오는 불광은 중생들의 영혼, 곧 아뢰야식에 있는 업장과 죄업을 녹이고 영혼을 꽃 피우고 해탈과 구원의 길로 이끌어 주는 덕을 지니고 있기에 불광을 불일보조광명이라 했다.
*‘불교’란 말 뜻---불교란 글자 그대로 ‘부처님의 가르침’, 즉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가르침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말한 가르침을 기독교라 하고, 마호메트의 가르침을 이슬람교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명명법이다.
불교는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를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기 위해 설법함으로써 성립된 종교이다. 부처님이 말한 진리를 ‘법(法)’이라고 하는데, 불교를 달리 말하면 ‘불법’ 즉 부처님이 말한 진리이다.
부처님은 무엇 때문에 자기가 깨달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말했는가. 그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는 사람이 그 가르침에 따라 실천하면 부처님과 같은 깨달음을 얻을 것을 염원하는 까닭이다. 결국 불교는 목적적으로 말한다면 ‘부처님이 되기 위한 가르침’이다. 실천을 ‘도(道)’라고 부르기 때문에 이런 뜻에서 ‘불도’라고도 한다. 한자의 '불(佛)'은 붓다를 표현하기 위한 조자(造字)이다.
*불교의 4대 명절
1. 탄생재일 음 4월 8일
2. 출가재일 음 2월 8일
3. 성도재일 음 12월 8일
4. 열반재일 음 2월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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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우란분(백종)재일 음 7월 15일
*불교기(佛敎旗)---1950년에 실론(스리랑카)에서 열린 <세계불교도우의회>에서 정식 승인해, 현재 모든 불교국가와 불교단체에서 사용하고 있다.
*불교 종파(현재 한국)---아래는 현재 ‘한국불교종단협의회’에 등록된 종단명이다. 이외에 종단협의회에 등록되지 않은 종단도 부지기수이다.
1. 대한불교조계종 2. 한국불교태고종 3. 대한불교천태종 4. 대한불교진각종 5. 대한불교관음종 6. 대한불교총화종 8. 대한불교보문종 9. 대한불교원융종 10. 불교총지종 11. 대한불교원효종 12. 대한불교법화종 13. 대한불교조동종 14. 보국불교염불종 15. 대한불교법상종 16. 대한불교진언종 17. 대한불교용화종 18. 한국불교법륜종 19. 대한불교본원종 20. 대한불교일붕선교종 21. 대한불교대승종 22. 대한불교삼론종 23. 대한불교열반종 24. 대한불교미타종 25. 한국불교여래종 26. 대한불교대각종 27. 한국불교미륵종
*불국토(佛國土) 사상---불국토란 부처님이 계시는 국토 또는 부처님이 교화하는 국토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자장(慈藏) 율사가 신라는 원래부터 불국토라는 불국토사상을 천명했다. 자장은 신라의 불교는 결코 새로운 종교가 아니며, 과거세(過去世)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불교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이상국(理想國)이라고 역설했다. 그 이후 신라의 승려들은 계속 신라가 불국토임을 주장하는 갖가지 증거를 설정해 신라인이 불국토에 살고 있음을 강조하고, 그에 따른 일반인의 생활태도를 정화해 갔다.
*불도징(佛圖澄, 232~348)---인도 승려로서 310년 중국에 왔는데, 뒤에 후조(後趙)의 건국자인 석륵(石勒)의 패업을 도와 존숭됐다. 그리하여 348년 117세로 입적하기까지 약 38년간에 걸쳐 불교 발전에 힘썼다. 불도징의 문도는 수천을 넘었으며, 그 중 도안(道安), 축법태(竺法汰), 법화(法和), 법상(法常) 등 동진(東晋)시대를 대표하는 많은 승려들을 배출했다.
*불두화(佛頭花)---꽃의 모양이 부처의 머리처럼 곱슬곱슬하고 부처가 태어난 4월 초파일을 전후해 꽃이 만발하므로 불두화라고 부르고 절에서 정원수로 많이 심는다. 쌍떡잎식물 꼭두서니목 인동과의 낙엽활엽 관목이다.
*불망어(不妄語)---불교의 십선계 중 하나로서 불망어(不妄語)는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말이다.
*불매인과(不昧因果)---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외면당한 사람은 성인이 돼 실연을 당했을 때, 보통 사람보다 훨씬 더 큰 비통감, 지독한 우울증, 뜨거운 분노로 온몸을 태운다. 과거에 겪은 경험은 이미 지나간 버린 것이고, 지금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그 괴로운 감정이 어떤 상황을 만나 활성화 될 때, 그 감정으로부터 일어난 생각을 자신과 동일시하게 되면 그것이 실제상황으로 돌변한다.
따라서 업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그것이 불매인과이다. 헌데 불매인과가 되려면, 즉 업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자신이 업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업은 자신의 존재가 간파당하면, 꼼짝 못한다. 따라서 깨어 있음으로 업이 일어나는 것을 초연하게 바라볼 수 있다면 업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그것이 불매인과(不昧因果)이다.
*불명경(佛名經)---부처님과 보살의 명호(名號)를 적어서 그 공덕을 설명한 경전이다. 북위(北魏)의 보리류지(菩提流支)가 한역했다. 이 경은 12권에 걸쳐 11.093분이나 되는 부처님의 명호를 거명하고 있다. 그 이름을 독송하면서 참회하면 악도(惡道)에 떨어지지 않고 천상(天上)에 태어나 모든 번뇌를 여의고 보리(菩提)를 얻을 수 있다는 경.---→일면불 ? 월면불(日面佛 月面佛) 참조.
*불반니원경(佛般泥洹經)---2권. 서진(西晋)의 백법조(白法祖)가 한역한 소승열반경.
*불방일(不放逸, appamaada)---방일(放逸)이란 자기를 잊고 자제함이 없이 온갖 유혹에 이끌려 다니는 것을 말하며, 불방일이란 그런 상태에 빠지는 일 없이 자제와 집중을 지속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하여 부처님께서는 “만일 사람들이 불방일의 실천에 오랫동안 힘쓰고, 방일에 빠지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이렇게 마음 쓰며 노력하는 사람은 진정한 행복과 평온인 열반의 성취에 아주 가까워진 것이다” 그리고 “비구들이여! 불방일한 비구라면 8정도를 배워 익히고 8정도를 잘 닦아갈 것임에 틀림없다.”라고 하셨다.
*불본행경(佛本行經)---<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 <불소행찬(佛所行讚)>과 함께 부처님의 전기를 담은 경전이다.
〈불본행경〉은 운문체로 쓴 아름다운 문장으로 부처님의 생애를 찬탄하고 있다. 7권 31품으로 돼 있는데 언제 편성된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 학자들은 여러 가지 사항을 검토한 결과 이 경이 1세기를 전후해 편성됐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편찬자가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송나라 때 보운(寶雲)이 한역한 것으로 돼 있다. 내용은 마명(馬鳴, Asuvaghosa)이 지은 〈불소행찬〉과 비슷하다.
“생로병사가 큰 바다라면 지혜는 달리는 배다. 무명(無明)이 큰 어둠이라면 지혜는 밝은 등불이다. 번뇌가 가시나무숲이라면 지혜는 날카로운 도끼다. 어리석음과 탐욕이 흐르는 물이라면 지혜는 다리이다. 그러므로 부지런히 지혜를 닦아야 한다.” 불본행경에 실린 부처님의 말씀이다.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불본행집경>은 여러 가지 불전(佛傳)과 본생담 등을 참작해 매우 풍부한 수식으로 기술 ? 편집한 부처님의 전기이다. 불교의 전기문학 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다. 북인도에서 중국에 들어온 사나굴다(?那?多)가 중국인 학자의 도움을 받아 수(隋) 시대(A.D. 587∼591)에 한역했다. 원전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지만, 그의 번역은 철저하게 직역의 입장을 취함으로써 능히 원전의 형태를 유추해 낼 수가 있다고 한다.
*불생불멸(不生不滅)---불생불멸이란 태어남과 죽음, 만들어짐과 사라짐의 양극단을 부정한다. 일체의 모든 존재는 연기의 법칙에 의해 인(因)과 연(緣)이 화합해 만들어지는 것이며, 이 인연이 다하면 스스로 사라지는 것일 뿐이다. 존재도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 인연에 따라 생멸할 뿐이라는 것이다. 즉 본래 생멸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 범부의 눈으로 보면 모든 존재가 실재적 생멸이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되고, 그러므로 거기에 집착하게 된다. 불교는 바로 이러한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도록 가르치고 있다.
*불성(佛性, buddhadhatu)---부처를 이룰 수 있는 근본 성품. 미혹이나 깨달음에 의해 변하는 일 없이 본래부터 중생에게 갖추어져 있는 근본 성품이다. 이 불성이 있기 때문에 부처가 될 수 있고 불교가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정법안장(正法眼藏)이라 해 ‘중생 모두가 바른 정법을 안에 갖추고 있다’ 라고 말씀하셨고, 또 일체중생 실유불성(一切衆生悉有佛性)이라고도 하셨다. 여래가 될 수 있는 씨앗을 간직하고 있다고 해서 여래장(如來藏), 진여(眞如), 공성(空性), 각성(覺性), 무루심(無漏心), 청정심(淸淨心), 보리심(菩提心),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불성과 영혼은 전혀 다르다. 영혼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설사 영혼이 있다고 하더라도 ‘깨달을 수 있는 속성’을 뜻하는 불성과는 상관이 없다. 본질적으로 그 뜻이 다르다.
*불소행찬(佛所行讚, 붓다짜리따/Buddhacarita)---1~2세기경 북인도에 살았던 마명(馬鳴, 아슈바고샤/A?vagho?a)이라는 시인이 부처의 생애를 시극 형식의 운문으로 묘사한 아름다운 대서사시(大敍事詩)이다. 부처님이 도솔천에서 하강한 이래 입멸하기까지의 전 생애를 서술했으며, 불교문학에서 가장 훌륭한 작품 중의 하나이다. 이제까지는 북량(北凉)의 담무참(曇無讖)이 번역했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최근 연구 결과로는 진(晉)나라 보운(寶雲:376~449)의 번역이라는 설이 유력시되고 있다.
*불유교경(佛遺敎經)---유교경(遺敎經)이라고도 함. 구마라습이 번역. 이 경전은 부처님이 사라쌍수에서 입멸하려 할 때에 마지막으로 모든 제자들을 위해 설한 경이므로 부처님의 유언이라고 할 수 있다.---→유교경 참조.
*불이문(不二門)---사찰로 들어가는 마지막 문으로서 해탈문이라고도 한다. 불이(不二)는 분별을 떠난, 언어의 그물에 걸리지 않는 절대의 경지를 뜻한다. 즉 불이(不二)란 뜻은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며, 선과 악이 둘이 아니며, 유와 무가 둘이 아니며, 공과 색이 둘이 아니라는 깊고도 묘한 뜻을 가지고 있다.
*불일(佛日)---부처를 태양에 비유한 말. ‘부처의 자비가 모든 중생에게 빠짐없이 널리 미침’을 해에 비유해 이르는 말. 햇빛이 꽃을 피워 열매를 맺게 하는 것처럼 부처님은 중생의 보리심을 싹트게 하며, 해가 어둠을 걷어내는 것처럼 중생의 번뇌를 없애줌을 비유해서 이르는 말.
*불입문자(不立文字)---<대범천왕문불결의경(大梵天王問佛決疑經)>의 ‘불입문자 교외별전(不立文字敎外別傳)’에서 나온 말. 글자 그대로는 문자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말이지만, 여기서 설 ‘입(立)’ 자는 선다는 말이 아니라 ‘활용하지 않는다’, ‘쓰지 않는다’ 하는 말이다. 따라서 문자를 활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말은 능가경의 불타문자(不墮文字-문자에 떨어지지 않는다), 이문자(離文字-문자를 떠나라) 하는 말과 같은 맥락이다. 헌데 <대범천왕문불결의경>이 중국에서 만들어진 위경(僞經)이란 설이 지배적이다.
*불타발타라(佛馱跋陀羅, Buddhabhadra, 359~429)---각현(覺賢)이라고도 하는데, 가유위국(迦維衛國)사람으로 감로반왕(甘露飯王)의 후예였다. 나이 열여섯에 모든 경전에 박학했으며 깊이 선율(禪律)에도 능통했다. 중국으로 와서 진(晋)시대 <달마다라선경(達磨多羅禪經)>, <대방등여래장경(大盤如來藏經)>, <육십화엄경(60華嚴經)> 등을 한역했고, 법현과 함께 <대반니원경(大般泥洹經)>도 한역했다.
*불타선다(佛陀扇多, Buddhasanta)---각정(覺定)이라 번역. 북인도 출신의 승려로, 북위(北魏)에 와서 508년에 십지경론(十地經論)의 한역에 참여하고, 낙양(洛陽) 백마사(白馬寺)와 상주(相州) 금화사(金華寺)에 머물면서 섭대승론(攝大乘論), 여래사자후경(如來師子吼經), 금강삼매다라니경(金剛三昧陀羅尼經) 등을 한역했다.
*불타야중(佛陀耶衆)---불타야중은 ‘모든 부처님에게’라는 뜻이다. ‘불타’는 부처님이란 말이며, ‘야(耶)’는 ‘∼에게’라는 조사이며, ‘중(衆)’은 ‘무리’라는 복수의 뜻이다.
*불탑(佛塔)---탑파(塔婆)라고도 하는데, 팔리어 ‘th?pa’를 한자로 음역한 것이다. 탑파란 당초에는 ‘석가모니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한 축조물’로서 비롯됐다. 스리랑카에서는 탑을 다가바 또는 다고바라 부르고, 미얀마에서는 탑을 ‘파고다(pagoda)’라 일컬으며, 유럽이나 미국 등지에서도 역시 파고다라고 한다.---→탑파(塔婆) 참조.
*불해(不害)---붓다가 말한 덕목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자비와 불해이다. 불해는 보통 불살생(不殺生)으로 번역하지만 넓게는 남을 해치지 않는다는 말이다.
*불환과(不還果)---아나함(阿那含) 참조.
*붓다(Buddha:佛陀)---깨달은 사람을 일컫는다. 본래의 성은 고타마(Gautama:瞿曇), 이름은 싯다르타(Siddh?rtha:悉達多)인데, 후에 깨달음을 얻어 붓다라 불리게 됐다. 또한 사찰이나 신도 사이에서는 진리의 체현자(體現者)라는 의미의 여래(如來:Tath?gata)라고도 불리고, 존칭으로서의 세존(世尊:Bhagavat) ? 석존(釋尊) 등으로도 불린다.
*붓다고사(Buddhagosa, 불음)---5세기 전반 경에 중부 인도 부다가야 지방 출신의 상좌부 계통의 불교학자로서 불음(佛音), 각음(覺音)이라고도 한다. 5세기 초에 상좌부 불교의 교리를 요약한 논서인 <청정도론(淸淨道論; Visuddhi-magga)>을 쓴 것으로 유명하다. 붓다고사는 430년경 실론에 건너간 후 대사(大寺)에 거주하면서 그 절에 소장돼 있는 성전을 팔리어로 번역하고, 팔리어 삼장에 대한 주해를 완성했다.
*붓다다사(Ajahn Buddhadasa, 1906~1993)---아찬 붓다다사(1906~1993) 스님은 태국의 고승이다. 20세 때 출가했고, 26세 때인 1932년 자신의 고향에 수행도량 <왓 수안 목(Wat Suan Mokkh)=‘해탈의 정원’>을 창설했다. ‘수안 목’ 도량은 불상이나 건물도 없지만 전 세계의 불자들이 수행을 위해 모여들었다. 이곳은 오직 수행만을 위해 숙식과 수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여건을 갖춰놓고 인종, 국적, 성별에 관계없이 수행을 원하는 이는 누구나 찾아올 수 있도록 해놓은 곳이다.
스님은 이곳을 중심으로 ‘새 불교 운동’, 즉 초기불교의 이념을 충실히 따르면서 수행을 하자는 내용을 주창해 실천함으로써 불교사의 큰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찬 붓다다사 스님은 교학을 연구하는 승려와 수행에 전념하는 승려의 구별을 두었던 남방 상좌부 불교 전통을 통합했다.
*브라만(Brahman, 婆羅門)---카스트의 가장 높은 계층으로 주로 성직자 계층을 일컫는 용어로 이들이 숭배한 종교가 브라만교이다.
*브라만(Brahman, 범/梵)---인도 정통 브라만교 사상의 최고원리. 우주를 창조하고 일체를 지배하는 원동력으로서의 근본이라 해서 세계의 근원적 창조원리로 보았으며, 우주의 일체는 모두 브라만으로부터 발생한다고 했다. 이후 우주적 원리로서의 브라만과 개인적 원리로서의 아트만[我]이 동일하다는 ‘범아일여(梵我一如)’ 사상이 발생했다. 원리로서의 브라만은 중성(中性) 명사이지만, 그 후 구체적으로 신격화(神格化)해 남성적인 브라마[梵天]라는 말이 생겼다. 이 신은 우주의 최고신으로 일체를 창조·지배한다고 한다. 이것이 불교에 들어와서는 불교 수호신의 하나인 범천(梵天)이 됐다.
*브라만교(婆羅門敎 ; 바라문교 ; Brahmanism)---고대 인도에서 불교가 생겨나기 전에 베다성전에 의거해 브라만 계급을 중심으로 발달한, 특정한 개조가 없는 종교.
BC 1,500년 무렵을 중심으로 인도아리아인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힌두쿠시산맥을 넘어 인더스강 유역의 펀자브지방에 진입하고, 더욱 동쪽으로 진출, 도아브지방을 중심으로 브라만문화를 확립한 뒤, 브라만계급을 정점으로 하는 4계급으로 이루어진 4성제도(varna)를 발달시켰다.
그들은 인도에 진입할 때 그들의 종교를 가지고 와서 발전시켰는데, 그때부터 BC 500년 무렵에 이르는 동안 <리그베다>를 비롯해 <브라마나> ? <아라냐카> ? <우파니샤드>를 포함하는 방대한 근본성전 <베다>를 편찬했다. 그 내용은 복잡하고 다양해 자연신 숭배, 종교의례, 주술은 물론, 높은 철학적 사변까지 담고 있다. 이 종교의 본질은 다신교이며, <리그베다>에서 발단하는 우주의 유일한 근본원리의 탐구는 <우파니샤드>에서 그 정점에 이르렀다.
우주 유일의 근본원리로서 브라만(梵/brahman)과 개인 존재의 본체인 아트만(我/?tman)이 상정되며, 결국 이 두 가지는 동일한 것이라고 하는 범아일여(梵我一如)의 사상이 표명되기에 이르렀다.
한편 힌두교는 BC 3세기 무렵부터 브라만교를 기반으로 해서 인도의 토착적인 여러 요소를 흡수하면서 이룩됐는데, 이 힌두교와 구별하기 위해 서양학자들이 브라만교라 이름 붙인 것이다. 이처럼 브라만교는 힌두교의 기반을 이루고 있어서, 넓은 뜻으로 힌두교라고 하면 브라만교도 포함된다.
*브라흐마(梵, Brahma)---브라흐마(범천/梵天)은 힌두교 신화에 나오는 창조의 신으로 비슈누, 시바와 함께 힌두교의 세 주신을 이룬다. 브라만교의 주(主)신이며, 창조의 신이다. 그러나 인도에서 그리 대중적인 신은 아니다. 브라흐마의 신전은 전 인도를 통틀어 두 곳밖에 없다. 인도인들에게 어째서 브라흐마가 인기가 없는지를 물어보면 그들의 말은 이렇다. ‘이미 창조가 끝났으므로 창조신으로서의 역할이 현시대에는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브라흐마는 4개의 팔과 4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 그 각각의 4개의 얼굴에서 4개의 베다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브라흐마나(Br?hmana)---고대 인도 브라만교의 근본 경전인 4<베다>의 본집에 속하며, 제사의식을 신학적으로 설명한 보조문헌이다. 우아한 산스크리트 산문으로 씌어졌으며, 여기에 수록된 신화는 후세의 문학에 많은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성립연대는 일정하지 않으나, BC 700년을 전후해 성립된 것으로 보고 있다.
*비구(比丘)---대구비중(大比丘衆)의 준말. 출가해 구족계를 받은 남자 승려. 비구란 말 속에는 일체의 번뇌를 깨뜨려 없애고 일체의 생사를 초월하며, 능히 성취를 이루고 열매를 증득한다는 의미도 포함돼 있다.
*비구니(比丘尼)---여승
*비담(毘曇)---아비담(阿毘曇), 아비달마(阿毘達磨, 阿鼻達磨)의 준말. 산스크리트어 abhidharma의 음사. dharma는 법, abhi는 ~에 대해라는 뜻. 부처의 가르침에 대한 주석 ? 연구 ? 정리 ? 요약을 통틀어 일컫는 말. 경 ? 율 ? 논의 삼장(三藏) 가운데 논장(論藏)을 일컫는다.
*비밀주(?密呪)---비밀스러운 내용의 주문. 진언이나 다라니 따위이다.
*비바사론(毘婆沙論)---대비바사론(大毘婆娑論)이라고도 한다. 부파불교시대 비구 카트야야니푸트라(迦多衍尼子, Katyayaniputra)가 저술한 발지론(發智論)에 대한 방대한 주석서이다.---→발지론 참조. ---→대비바사론 참조.
*비사문천왕(毘沙門天王)---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 중 하나. 수미산의 북방을 수호하며 사천왕 중 가장 중심이 되는 신이다. 고대 인도신화에서는 암흑계를 다스리는 악령의 수장이나 바다와 강의 신으로도 등장한다.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사무색정(四無色定)의 하나. 우리 중생이 느끼는 번뇌를 비롯한 각양각색의 생각이 조금도 없고 아주 맑고 미세한 생각만 조금 있는 경지. 즉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이란 일체 공(空)이라고 하는 상(想)까지도 뛰어넘어 상(想)도 없고 무상(無想)도 없는 데까지 수련을 진전시키는 것을 말한다. 아래 사마타 팔선정 중의 사무색정을 참조하기 바람.
※<사마타 팔선정 수행>
부처님 이전에 벌써 사마타 팔선정의 수행이 정립돼 있었다. 초선정에서 4선정까지는 호흡, 소리, 빛 등의 물질적 요소에 집중하는 것이다. 5선정에서 8선정까지는 물질의 세계를 벗어나면서 무의식 세계로 나아가는 무색계선정(無色界禪定=사무색정)이다. 간략하게 무색계 4선정(4무색정)만 살펴보겠다.
ⓐ 공무변처정(空無邊處定):색계 4선정에서 벗어나 집중한 대상을 향해 ‘끝없는 허공, 끝없는 허공’ 하면서 물질을 대상으로 한 수행에서 벗어난다.
ⓑ 식무변처정(識無邊處定):무색계 초선정의 고요하지 못함의 허물을 보아 무색계 2선정에 마음을 기울인다. 끝없는 허공에 따른 의식에 마음을 집중한다. 끝없는 허공이라는 선정의 대상을 벗어나서 끝과 한계의 구분이 없는 의식작용이라고 생각해 - 끝없는 의식작용의 선정에서 지낸다.
ⓒ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식무변처정보다 더 고요한 상태로 나아가기 위한 선정이다. 공무변처정의 끝없는 허공을 관하는 인식작용을 생각하지 않고, ‘없음, 없음’이라고 하거나 ‘조용함, 조용함’이라고 거듭거듭 생각한다.
ⓓ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무소유처정에서 더욱더 정묘한 상태로 나아가기 위한 선정이다. ‘생각은 병이다. 생각은 종기와 같다. 생각은 박혀 있는 가시와 같다. 거친 생각은 없으며, 섬세하고 미세한 생각이 없지 아니한 무색계 4선정은 조용하고 높다.’ 이렇게 무소유처정에 탐착하던 것을 다하게 해 ‘조용하구나, 조용하구나’ 하고 거듭거듭 생각하며 마음집중을 한다. 무소유처정의 대상과 영상을 거듭거듭 의지해 반복하면 사라짐이라는 명칭, 없다는 명칭에 비상비비상처정이 생긴다.
<능엄경>에 의하면 공무변처정은 몸이 장애됨을 깨달아 장애를 소멸하고 공(空)에 들어가는 것이다. 모든 장애가 소멸하고 장애가 없어졌다는 것까지 멸하면 그 가운데는 오직 아뢰야식과 말나식의 미세한 반분만 남게 되는데 이를 식무변처정이라 한다. 공과 색(色)이 모두 없어지고 식심(識心)까지 멸해 시방(十方)이 적연해 훤칠하게 갈 데가 없으면 무소유처정이라 한다.
이는 말나식과 아뢰야식이 잠복된 상태이다. 아뢰야식의 종자인 식성(識性)이 동(動)하지 않는 가운데 다함이 없는 데서 다한다는 성품을 발명해 있는 듯하면서 있는 것이 아니고, 다한 것 같으면서 다한 것이 아닌 상태가 비상비비상처정의 상태이다.
*바수반두(Vasubandhu)---세친(世親)---→세친 참조.
*비슈누(Vi??u)---힌두교의 주요 신의 하나.
*비크라마실라(vikramasila) 사원---마가다(Magadha) 왕조 9세기 다르마팔라(Dharmapala)왕 때 비하르 지역에 건축됐던 사찰. 인도 불교 최후의 거점으로 티베트에 불교가 전해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원이다. 1203년 이슬람 세력의 무자비한 탄압에 의해 비크라마실라 사원이 철저히 파괴되고, 이후 불교는 차츰 자취를 감추게 된다.
*비파사나(毘鉢舍那, vipasyna)---→위빠사나 참조.
*빈두로존자(賓頭盧尊者)---빈두로존자는 주세아라한(住世阿羅漢) 혹은 부동이근(不動利根)이라 한역하는데, 원래 인도 발차국(跋蹉國) 재상의 아들로서 어렸을 적에 불교에 귀의, 출가해 아라한이 됐으며, 후에 여러 곳으로 다니며 전도했다. 부처님의 명을 받아 남인도에서 부처 열반 후에 중생을 제도해 대복전(大福田)이라 존중됐으며, 주세아라한(住世阿羅漢)이라 일컫게 됐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를 독성(獨聖) 혹은 나반존자(那畔尊者)라 해서 절마다 독성각(獨聖閣)에 봉안하고 있다.---→독성, 나반존자 참조.
*빈비사라(頻毘娑羅, 빈바사라/頻婆娑羅, Bimbisara, BC 582~554 재위)---석존께서 살았을 당시 인도에서 가장 강성했던 마가다국(摩揭陀國, Magadha)의 왕으로 석존께 귀의해 부처님을 공경하고 불법을 열심히 믿어 수도 왕사성(王舍城, 라즈기르, Rajgir, Rajagrha)에서 멀지 않은 곳에 죽림정사(竹林精舍)를 지어 바쳤다.
그런데 늙도록 후사가 없어 걱정하던 빈비사라왕은 신에게 기원했던 바, 어떤 관상가가 와서 말하기를 “비부루산에 있는 선인이 3년 후 죽으면 태자가 탄생한다.”라고 했다. 빈비사라왕은 3년 후 선인의 화신이 아들이 될 것이라 예언을 들었으나 조급한 마음에 선인을 살해했다. 그리하여 예언대로 왕비 웨이데휘(韋提希)의 몸에서 아사세태자가 태어났다.
하지만 훗날 태자와 부왕과 사이가 나빴다. 아사세태자(阿?世太子, Ajatasatru, 아자타샤트루, BC 554~527 재위)는 반역자 부처님의 4촌 동생 제바달다(提婆達多, 데바닷다)의 악한 꼬임에 빠져 부왕(父王) 빈비사라왕을 가두고 굶어죽게 해 왕위에 올랐다. 빈비사라왕은 선인을 죽인 과보로 못된 아들을 얻어 그 아들에 의해 죽임까지 당한 것이다. 아사세태자는 후에 참회해 부처님의 제자가 됐다.---→아사세왕 참조.
*뿌드갈라(pudgala)---→개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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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행범부위(四加行凡夫位)---능엄경에 제시한 수행의 단계, 일반 중생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단계. 일반 중생이 열심히 수행을 해서 난위(煖位), 정위(頂位), 인위(忍位), 세계일위(世界一位)의 네 가지 단계를 거침으로써 도달할 수 있는 경지이다.
※가행(加行)---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더욱 힘을 쓰고 마음을 닦음.
※가행위(加行位)---보살이 부처가 되기까지 거쳐야 하는 다섯 단계인 오위의 하나로 보살 수행의 둘째 단계.
※오위(五位)---불도를 닦는 다섯 단계. 자량위(資糧位), 가행위(加行位), 통달위(通達位), 수습위(修習位), 구경위(究竟位) 따위이다.
*사경(寫經)---붓으로 경전 베끼는 것. 인쇄술이 발달되지 못했을 때에는 붓으로 경문을 써서 널리 퍼뜨렸다. 그러나 인쇄본이 나온 뒤에도 부처님의 뜻을 기리기 위해 수행의 하나로서 지성으로 경문을 베껴 쓰기도 한다. 사경은 부처님 법이 단절되지 않도록 이어가는 뜻도 있지만, 내면적으로는 자신을 살펴보는 공부법이기도 하다. 경전을 옮겨 쓸 때에는 깨끗한 바탕에 정갈한 필기도구로 써야 하며, 옮겨 쓰는 글씨의 모양이나 속도도 한결 같아야 하며, 경을 쓰면서 그 글자를 마음속에 같이 써야 한다.
*4교과(四敎科)---조선 중기 이후, 우리나라 승려들의 하습에 있어서 중급과정에서 불교경론을 연구하던 네 과목. 곧 <능엄경(楞嚴經)>,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금강경(金剛經)>, <원각경(圓覺經)>을 이른다.
*사교입선(捨敎入禪)---교리적 공부를 버리고 체험으로 들어가라는 가르침. 언어문자를 맹신하지 말라는 말이다. 처방전이 아무리 좋아도 약은 먹는 사람이 먹어야 약효가 있듯이, 경전 공부도 이와 같아 다만 처방일 뿐 그 가르침을 통해 교화 돼야만 공부가 완성 된다는 말이다. 지식의 차원에서 경전의 글귀를 찾을 필요는 없다. 지식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탐욕에 속하는 것이며, 탐욕은 결국 마음의 병이 되고 만다.
*4념처(四念處)---석가모니가 개발한 위빠사나(毘鉢舍那, 비파사나) 수행법의 한 부류로서, 주로 남방불교 승려들이 사용한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실 즈음, 아난존자가 물었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뒤에는 무엇을 의지하오리까?” 이에 부처님께서 “사념처에 의지하라.”라고 하셨다. - 잡아함경
사념주(四念住)라고도 하며, 현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괴로운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몸과 감각과 마음과 법을 ‘있는 그대로 관찰해’ 알아차림의 수행법이다. 팔정도의 정념(正念)과 같다고 볼 수 있다.
? 신념처(身念處)---자신의 몸과 관련된 현상, 즉 호흡 ? 동작 등을 관찰해 몸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탐욕과 혐오를 극복하는 수행법이다. 정신을 집중해 몸 안팎의 움직임을 관찰함으로써 육신은 죽어서 썩을 부정(不淨)한 것임을 깨닫는 것이다.
? 수념처(受念處)---느낌의 세계에 대한 탐욕과 혐오를 극복하는 수행법이다. 감각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깨달아 음행 ? 자녀 ? 재물 등의 즐겁다고 느껴지는 것들이 실은 즐거움이 아니라 고통[苦]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 심념처(心念處)---마음의 세계에 대한 탐욕과 혐오를 극복하는 수행법이다. 마음은 늘 대상에 따라 변화하고 생멸하는 무상한 것이다. 따라서 마음에 욕심이 있다면 욕심이 있는 참뜻을 알고, 욕심이 없다면 욕심이 없는 참뜻을 알아 모든 마음의 참뜻을 깨닫는 것을 말한다.
? 법념처(法念處)---정신적 대상에 대한 탐욕과 혐오를 극복하는 수행법이다. 앞의 세 가지 외에는 자아라고 할 실체가 없고, 자아가 없으므로 소유도 없다는 진리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눈을 통해 생기는 번뇌의 생멸에 대해 깨닫는 것을 말한다.
사념처는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같기 때문에 수행자의 특성에 따라 적합한 방법을 선택해 어느 하나만이라도 성취하면 곧 해탈해 궁극적으로 아라한과를 얻거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룬다고 한다. 경전에서는 ‘중생을 깨끗하게 해 괴로움을 없애고, 나쁜 법을 없애고, 바른 법의 이익을 얻게 하니, 그것이 곧 사념처’라 했다. 이 네 가지 대상을 주의 깊게 관찰하는 것을 사념처관(四念處觀)이라 하고, 이에 대한 것이 대념처경(大念處經)>에 실려 있다.
*사다나(sadhana)---산스크리트어로 ‘성취’라는 뜻이고, 밀교 명상 수행법의 하나이다. 이 밀교 명상은 현재의 14대 달라이 라마의 간절한 소망으로 서구 불교도를 위해 특별히 고안된 것이다. 여타의 밀교 수행과 마찬가지로 몸과 말과 마음의 3대 능력을 총체적으로 이용해 이를 통해 부처와 같은 지혜와 자비를 길러서 궁극적으로 깨달음을 얻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즉, 밀교에서 수행자가 신을 불러내어 그것을 자신과 일치시키고 자기 안에 몰입시키는 수행법으로 티베트 탄트라 불교의 기본적인 명상법이다. 수인(手印 mudr?)을 짓는 신체, 진언(眞言, mantra)을 외는 음성, 만다라(曼陀羅, mandala)와 신의 모습을 내관(內觀)하는 정신이 모두 사다나에 포함된다.
*사다함(斯陀含, Sakadagami)---성문의 수행 단계인 사과(四果) 중 제2단계임. 일래(一來) 또는 일왕래(一往來)라고 번역하며, 범어를 직역하면 ‘한번 되돌아오는 자’이다. 아직 완전히 깨닫지 못한 사다함은 죽은 다음 천상에 태어났다가 다시 인간의 몸을 받아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게 되므로 일래 또는 일왕래라 한다.
*4대(四大)---우리 몸(色身)을 구성하고 있는 4가지 성질, 지(地) ? 수(水) ? 화(火) ? 풍(風)을 일컫는다.
지(地) - 뼈, 근육, 내장 등 고체 부분
수(水) - 피, 대. 소변 등 액체 부분 또는 액체를 많이 포함하는 부분
화(火) - 발열, 소화 작용
풍(風) - 호흡기관과 신진대사 - 기(氣)
*4대 성문(聲聞)---수보리, 마하가섭, 마하가전연, 마하목건련
*4대 성지(聖地)
1)룸비니---부처님의 탄생지. 흔히 룸비니동산이라고 알려진 곳인데, 지금은 네팔의 영토에 있으며, 마야부인당이 건립돼 있다.
2)붓다가야---부처님이 정각을 이루신 곳. 현재의 지명은 보드가야이며, 이곳에 거대한 보리수와 ‘붓다가야의 대탑’이 있다.
3)녹야원(鹿野苑)---최초로 설법한 장소인 사르나트. 사르나트는 바라나시 교외에 있으며, 바라나시의 현대 지명은 베나레스이다.
4)쿠쉬나가라---부처님이 입멸한 장소. 현재 이곳에는 열반당이 있다.
*사도승(私度僧)---국가에서 신분을 확인해 주는 도첩(度牒)을 받지 않고 사사로이 승려가 된자, 혹은 엄격한 스승의 지도하에 그 법통을 이어받지 않고 제멋대로 머리를 깎고 절의 풍습을 조금 익힌 잡승을 일컫는다.
*사라쌍수(沙蘿雙樹)---인도에는 삼대성수(三大聖樹)가 있다. 사친나무(일명 무우수;無憂樹)와 보리수(菩提樹), 사라쌍수(沙蘿雙樹)의 세 나무가 이에 해당한다. 마야 부인이 사친이라는 나무 그늘에서 아기를 낳았고, 그 아기가 자라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얻어 부처님이 되셨으며,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셨다. 사라나무를 원산지인 인도에서는 살(sal)나무라 하고, 이를 한역한 것이 사라(沙羅)이다.
*사루가주(?樓伽酒)---술이 채 되기 전의 것. 교단 분열로 불경의 제2차 결집이 있을 무렵 술을 금하게 돼 있는 승단 계율에서 예외 적으로 병자를 위한 치료의 목적으로 막걸리의 일종인 사루가주 정도는 마셔도 되느냐 하는 논쟁이 있었다.
*사리불(舍利弗, 사리자)---팔리어 샤리푸타(S?riputta)의 음역(音譯)이다. 그는 주로 교화활동에 종사했는데, 경전 중에는 석가를 대신해 설법한 경우도 적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소위 10대 제자 중 수제자로, 지혜가 가장 뛰어나, ‘지혜제일(智慧第一)’로 칭송됐다고 전한다. 일설에는 석가보다 먼저 죽어 부처님이 애통해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법화경에는 사리불이 내세에 화광여래(華光如來)가 됐다고 한다.---→샤리푸트라(S?riputta, 사리자) 참조.
*사리 신앙(舍利信仰)---사리(Shrine, 舍利)는 시신을 매장하지 않고 화장하는 풍습을 지닌 인도에서 유래됐는데, 인도에서는 고대부터 학문이나 덕이 높은 인물이 사망하면 그의 은혜나 덕을 기리기 위해 화장해서 그 뼈를 나눠 가졌다. 불교에서 사리 신앙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열반부터 시작돼 일찍부터 여러 불보살 신앙과 함께 중요한 신앙 대상이었다. 사리는 소리 나는 대로 사리라(舍利羅)라고 하다가 사리(舍利)로 부르게 됐다.
*사마타(奢摩他)---모든 분별에서 일어나는 마음이 허망함을 깨달아서 그 모든 것을 놓아 버리고 마음이 적정(寂靜)한 상태가 돼, 사념 망상(邪念妄想)이 일어남을 막고 마음을 한 곳에 머물게 하는 것.
그래서 삼매에 들어 온갖 번뇌와 망상을 그치므로 '지(止)'라고 번역한다. 이에 유사어가 지(止) 혹은 적정(寂靜)이다.
이와 같이 사마타는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는 수행으로, 대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위빠사나 수행의 준비단계이자 전제조건이다.
따라서 사마타와 위빠사나, 즉 지(止)와 관(觀), 선정과 지혜는 떨어질 수 없다. 그래서 지관쌍운(止觀雙運), 정혜균등(定慧均等)라 한다. 마음이 지(止) 상태에 이르면 오락가락 흔들리는 마음의 동요가 사라지고 고요해진다. 그 상태에서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관하는 지혜가 나온다.
*사만(四慢)---네 가지 자만(自慢)하는 것을 말함인데, 만(慢)이라 함은 잘 못한 것을 보고도 내가 잘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1)비하만(卑下慢) - 남보다 훨씬 못한 것을 자기는 조금 못하다고 생각하는 일.
2)사만(邪慢) - 아무 덕이 없는 사람이 덕이 있다고 생각하는 교만한 마음.
3)증상만(增上慢) - 최상의 교법과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서 이미 얻은 것처럼 교만하게 우쭐대는 일.
4)아만(我慢) - 스스로를 높여서 잘난 체하고,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이다.
*사무량심(四無量心)---무량심(無量心)이란 한없는 중생(衆生)을 어여삐 여기는 부처의 마음, 혹은 중생을 향한 보살의 네 가지 마음으로 이에는 자(慈) ? 비(悲) ? 희(喜) ? 사(捨)의 네 가지 마음이 있다.
자무량심(慈無量心). 한량없는 중생에게 즐거움을 주려는 마음.
비무량심(悲無量心). 한량없는 중생의 괴로움을 덜어 주려는 마음.
희무량심(喜無量心). 한량없는 중생이 괴로움을 떠나 즐거움을 얻으면 기뻐하려는 마음.
사무량심(捨無量心). 한량없는 중생을 평등하게 대하려는 마음.
크게 사랑함이 대자(大慈)요, 크게 불쌍히 여김이 대비(大悲)요, 크게 기뻐함이 대희(大喜)요, 크게 버림이 대사(大捨)이니 대자대비(大慈大悲) 대희대사(大喜大捨)의 이 한량없는 네 가지 마음은 곧 온갖 착한 일의 근본이자 곧 사무량심(四無量心)이다.
*사무색정(四無色定)---<지도론(智度論)>에서 제시한 수행단계로 무색계선정(無色界禪定)을 일컬는다. 이 무색계의 선정(禪定)에는 4단계가 있는데 그것이 사무색정 혹은 사공정(四空定)이라고 한다.
삼라만상은 스스로 생긴 것이 아니고 모두 인연에 의해 생긴다고 보는 네 가지 선정, 즉
? 공무변처정(空無邊處定) - 허공처럼 무한하다고 보는 경지,
? 식무변처정(識無邊處定) - 식이 무한하다고 보는 경지,
?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 - 아무것도 없는 것으로 보는 경지,
? 비상 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 -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를 이른다.---→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 참조.
*4무소외(四無所畏)---여기서 무소외(無所畏, 산스크리트어 vai??radya)란 무외(無畏)라고도 하는데, 자신감을 가지고 가르침을 설하므로 누구에게도 두려움이 없음. 혹은 진리에 대한 확신으로 어떠한 장애도 두려움이 없음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부처님은 설법함에 대해 외부로부터 어떤 비난을 당해도 두려운 바가 없는 것이다.
1) 부처님께서는 모든 법에 무소부지(無所不知)하므로 정등각(正等覺)이라하며 설사 어떤 이가 있어 이를 비난할지라도 부처님은 정견(正見)에 있어 그에 굴복하지 않고 항상 안온해서 두려운 바가 없다.
2) 부처님께서는 스스로 나는 모든 번뇌를 영원히 끊었다라고 설함에 대해서 어떤 이가 있어 이것을 비난할지라도 이에 일체 두려운바가 없다.
3) 부처님께서는 번뇌는 반드시 성스러운 도를 장애하는 것이라고 설함에 대해서 어떤 이가 있어 이를 비난할지라도 이에 일체 두려운 바가 없다.
4) 부처님께서는 중생계를 떠날 수 있는 도를 닦으면 반드시 모든 고통을 떠난다고 설함에 대해서 어떤 이가 있어 이를 비난할지라도 이에 일체 두려운 바가 없다.
*사문(samana, 沙門)---고대 인도에서 부처님 당시 바라문에 대해 새로운 정신적 지도자로 등장한 사람들이 사문이다.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하는 정도의 뜻으로 일반적인 자유사상가의 총칭으로 씌어지고 있다. 그러니 부처님도 깨달음을 얻기 이전엔 사문의 한 사람이었다.
*사물(四物)---사찰에서 4물이란 범종(梵鍾), 목어(木魚), 운판(雲版), 그리고 법고(法鼓)를 말한다. 이것들은 소리를 내는 공양구로 소리로써 중생들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범종(梵鍾)은 지옥의 중생들을 구제한다는 의미로 친다. 목어(木魚)는 비늘 달린 중생 즉, 물고기 종류를 구제하기 위한 것이다. 운판(雲版)은 하늘을 나는 짐승들(새 종류)을 구제하기 위한 것이다. 법고(法鼓;북)는 가죽 달린 짐승, 즉 육지 동물들을 구제하기 위한 것이다. 이들 네 가지 법구의 소리를 듣고 짐승들은 축생의 악연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사바세계(娑婆世界)---산스크리트어 sah?-loka-dh?tu의 음역. 자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란 말이다. 사바(沙婆;Sabha)란 고통을 참고 견뎌야 한다는 뜻이어서 괴로움이 가득 찬 이 세상이 사바세계이다.
*사바라이(四波羅夷)---승려가 지켜야 하는 네 가지 중요한 계율. 살생, 도둑질, 음행(淫行), 깨달음을 얻었다고 거짓말하는 것, 이 계율을 범하면 승려의 자격을 잃게 된다.
*사바하(娑婆訶, svaha)---‘스바하’라고도 하며, 원만한 성취라는 뜻으로, 진언의 끝에 붙여 앞말의 내용이 이루어지기를 희구하면서 내용을 결론짓는 종결의미로 사용되는 정형구이다.
*사방불(四方佛)---모든 공간에 부처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AD 1세기경 대승불교가 발생하면서 한 시대에 한 명의 부처만 존재한다는 기존개념이 동서남북 사방은 물론 6방, 8방에도 존재하고, 과거는 물론 현재와 미래에도 부처가 존재한다는 개념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시간과 공간을 망라해 모든 세계에 존재하는 부처들을 시방삼세제불(十方三世諸佛)이라고 하며, 특히 밀교 계통에서 발전한 개념이다.
*사방사불(四方四佛)---사방의 정토에 있는 네 부처. 동방 묘희세계(妙喜世界)의 아축불, 서방 안락세계(安樂世界)의 아미타불, 남방 환희세계(歡喜世界)의 보생불, 북방 연화장엄세계(蓮華莊嚴世界)의 미묘성불(微妙聲佛)이다.
*사법계(四法界)---모든 존재의 세계를 네 가지 영역으로 분류한 화엄종의 우주관. 현상의 세계인 사법계(事法界), 진리의 세계인 이법계(理法界), 현상과 진리가 서로 방해함이 없이 교류ㆍ융합하는 이사무애법계(理事無?法界), 현상과 현상이 서로 방해함이 없이 교류ㆍ융합하는 세계인 사사무애법계(事事無?法界)이다.
*사법계(事法界)---화엄교학 4법계의 하나. 현실인 미혹의 세계를 일컫는다. 우주 만유의 현상이 서로 대립해 차별이 있는 현상 세계를 말한다.---→사법계(四法界) 참조.
*사부대중(4部大衆)---사부중(4部衆)이라고도 한다. 불교교단을 구성하고 있는 네 부류의 사람들, 즉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 등을 가리킴.
? 비구 - 20세 이상으로서 구족계(250계)를 받은 남자스님
? 비구니 - 20세 이상으로서 구족계(348계)를 받은 여자스님
? 우바새 - 5계 혹은 보살계를 받은 남자신도 = 거사, 청신남
? 우바이 - 5계 혹은 보살계를 받은 여자신도 = 보살, 청신녀
*사분율(四分律)---출가한 승려가 불법(佛法)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계율을 자세히 기록한 불교의 율전(律典). 비구가 지키는 250계와 비구니가 지키는 348계가 기록돼 있다. 석가모니 입멸 후 100년경에 담무덕(曇無德)이 상좌부(上座部)의 근본율 중에서 자기 견해에 맞는 것만을 네 번에 걸쳐 뽑아 엮은 율문불서(律文佛書). 전진(前秦=姚秦)의 불타야사(佛陀耶舍)와 축불념(竺佛念)이 한역했음. 전체 내용이 네 부분으로 나뉘어 있으므로 이와 같이 일컫는다.
*사분정근(四分精勤)---새벽예불, 사시예불, 오후 2시 예불, 저녁예불, 등 하루 4번 올리는 예불을 일컫는 말.
*사불괴정(四不壞淨)---불괴정이란 ‘절대 확실한 신앙’ ‘절대 무너지지 않는 신앙’을 의미하는데, 불교적인 신앙이 확립돼 다른 어떤 것에 의해서도 동요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불(佛) ? 법(法) ? 승(僧)과 계율(戒律)에 대한 믿음이 견고하고 청정함을 뜻한다.
*사사무애법계(事事無?法界)---화엄교학 4법계의 하나. 현실의 각 존재가 서로 원융상즉(圓融相卽)한 연기관계(緣起關係)에 있는 세계이다. 현상계는 서로 교류해, 한 개와 여러 개가 한없이 관계하고 있다는 세계관이다. 즉 현상과 현상이 서로 방해함이 없이 교류ㆍ융합하는 세계이다. 이 말은 어떠한 사물이건 고립돼 있지 않고 다른 것과 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뜻이다.
*사상(四相)---금강경에 나오는 중생이 실재한다고 믿는 네 가지 상.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을 이른다.
? 아상(我相)---브라만교에서 주장한 아트만(atman)에 대한 부정.
? 인상(人相)---부파불교 당시 독자부(犢子部)에서 윤회의 주체라고 주장한 뿌드갈라(pudgala)에 대한 부정.
? 중생상(衆生相)---살아 있는 생명체와 생명이 없는 자, 중생과 보살을 나누는 이원론적 집착에 대한 부정.
? 수자상(壽者相)---자이나교에서 주장하는 생사를 초월한 존재, 순수영혼인 지바(jiva)에 대한 부정.
*사생(四生)---태 ? 난 ? 습 ? 화(胎.卵.濕.化)로 태어나는 것.
? 태생(胎生) - 인간, 네 발 짐승과 같이 어미의 태반을 통해 태어나는 것.
? 난생(卵生) - 닭, 오리, 새 등과 같이 알에서 깨어나는 것.
? 습생(濕生) - 모기, 파리 등과 습기 있는 곳에서 부화하는 곤충들.
? 화생(化生) - 귀신, 유령과 같이 형체 없이 나타나는 것. 불교 입장에선 기독교의 신이나 하느님도 화생이다.
*사생자부(四生慈父)---사생은 태(胎) ? 란(卵) ? 습(濕) ? 화(化)의 네 가지 형태로 태어나는 중생의 세계를 말한다. 부처님께서는 사생의 자부이시니 인간은 물론이고 하찮은 미물에게까지도 자비를 베푸는 분이시다. 다른 종교에는 그런 자비사상이 없다.
*사선(四禪)---색계의 네 선정(禪定).
? 초선(初禪) - 모든 탐욕과 악을 여의고, 개괄적으로 사유하는 마음 작용(覺)과 세밀하게 고찰하는 마음 작용(觀)이 있고, 욕계를 떠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선정.
? 제2선(第二禪) - 개괄적으로 사유하는 마음 작용과 세밀하게 고찰하는 마음 작용이 소멸되고, 마음이 청정해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는 선정.
? 제3선(第三禪) - 기쁨이 소멸돼 마음이 평온하고, 몸으로 즐거움을 느끼는 선정.
? 제4선(第四禪) - 즐거움과 괴로움이 소멸돼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며, 마음이 평온해 생각이 청정한 선정. 번뇌를 끊은 근본선정.
*4섭법(四攝法)---여기서 ‘섭(攝)’이란 서로 어우러져 화합한다는 뜻이다. ‘섭’ 자의 손 수 변(?) 옆에 귀 ‘이(耳)’자가 셋이 있는데, 맨 위의 ‘이(耳)’자가 포용 섭수하는 마음의 귀이고, 아래 두 개 ‘이’자는 사람의 두 귀이다. 이 글자처럼 인간생활 혹은 공동생활을 하면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취해야 할 네 가지의 포용 태도를 사섭법 또는 사섭사(四攝事)라고 한다. 즉 중생을 구제하려는 보살의 기본 마음가짐 4가지를 말한다.
? 보시섭(布施攝)---인자한 마음으로 물질과 정신 두 가지를 조건없이 베풀어 마음에 두려움을 없애주는 것,
? 애어섭(愛語攝)---사랑스러운 말로 항상 그 뜻을 따뜻하게 보호하며,
? 이행섭(利行攝)---상대에게 이익 된 일을 하고,
? 동사섭(同事攝)---그들이 하는 일을 항상 함께 하며 돕는 것이다.
*사성제(四聖諦)---사성제에서 제(諦, satya)란 진리 또는 진실을 의미한다. 따라서 사성제란 네 가지의 성스러운 진리라는 말이다. 즉 고(苦)성제, 집(集)성제, 멸(滅)성제, 도(道)성제를 가리키는 것으로 간단하게 고집멸도(苦集滅道)라고도 한다.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중국에 최초로 전래된 불교 경전. 후한(後漢)의 효명제(孝明帝) 때 인도 사람 가섭마등(迦葉摩騰) ? 축법란(竺法蘭)이 한역했다. 여러 경전을 발췌해 불교의 요지를 42장으로 엮은 것.
*4악도(四惡道)---악인이 죽어서 가는 네 가지 고통스러운 길. 지옥, 아귀, 축생의 3악도에 아수라(阿修羅)가 더해진 것을 말한다.
*4여의족(四如意足)---4신족(神足)이라고도 한다. 노력하지 않아도 수행이 뜻과 같이 잘 되는 것을 말한다. 삼십칠조도품(三十七助道品)에 포함된다.
첫째, 욕신족(欲神足)이란 구도심(求道心)이 강렬해 하고자 하는 대로 수행이 잘 되는 것이다.
둘째, 정진신족(精進神足)이란 정진이 저절로 잘 되는 것이다.
셋째, 염신족(念神足)이란 정념(正念)이 한결같이 지속되는 것이다.
넷째, 사유신족(思惟神足)이란 선정(禪定)이 한결같이 잘 진행되는 것이다.
*사위성(舍衛城)---원어 스라바스티(sravastitilde)의 번역어이다. 실라벌(室羅筏), 실라벌실저 (室羅筏悉底), 시라바제(尸羅波提)라고도 음역했다. 부처님 당시 인도 중부지방에 있던 코살라(Kosala)국의 수도였다. 그래서 그 수도 이름을 따서 사위국이라고도 했다. 신라의 서울 ‘서라벌’은 스라바스티에서 차음한 것이란 설이 있다.
당시 국왕은 파사익(婆斯匿王-프라세나지트/Prasenajit)왕으로서 부처님 제자였고, 유명한 기원정사가 이곳에 있었다.
*사유(四維)
1)사방의 네 방위인 건(乾)ㆍ곤(坤)ㆍ간(艮)ㆍ손(巽)을 일컬음. 곧 서북ㆍ서남ㆍ동북ㆍ동남의 네 간방이다.
2)나라를 다스리는 데 지켜야 할 네 가지 원칙. 곧 예(禮)ㆍ의(義)ㆍ염(廉)ㆍ치(恥)를 이른다.
*사유(四有)---윤회의 네 가지 과정
1) 사유(死有) : 죽는 순간
2) 중유(中有) : 죽어서 다음 생을 받기까지의 기간(49일)
3) 생유(生有) : 태어나는 순간
4) 본유(本有) : 생애를 누리는 기간
*사의지(四依地)---초기 불교시대에 출가자가 닦아야할 네 가지 법. 즉 분소의(糞掃衣)를 입는 것, 항상 밥을 빌어먹는 것, 나무아래서 정좌(靜坐)하는 것, 부란약(腐爛藥 ; 소의 오줌으로 만든 허술한 약)을 쓰는 것 등이었다.
※분소의(糞掃衣)---세속 사람들이 버린 헌 옷을 주워서 빨아 지은 가사(袈裟). 똥 걸레 옷이란 뜻.
*사자의 서(死者의 書)---사후의 세계에 관한 안내서로서 고대 이집트의 사자의 서와 티베트 밀교의 사자의 서가 유명하다. ‘사자의 서(死者의 書)’는 내세관으로 부활 또는 윤회를 믿는 데서 출발한다.
티베트 사자의 서(死者의 書)는 1200년 전인 8세기에 티베트 밀교의 대가였던 위대한 스승 파드마 삼바바(Padmasambhava, 연꽃 위에서 태어난 자라는 의미)가 저술한 100여권의 책 중의 한권이다. 이 책은 그 후 매장돼 있다가 ‘테르퇸’이라 불리는 유명한 전문 발굴자인 릭진 카르마 링파에 의해 티베트 북부 지방의 한 동굴에서 발견됐다.
이 후 이 책은 필사본과 목판본으로 티베트지역에 전해지다가 1919년 영국인 에반스 웬츠(W,Y. Evans Wentz)에 의해 발견돼, <티베트 사자의 서(the Tibetian book of the death)>라는 제목으로 발행돼 세상에 알려졌다. 우리나라에서 장례 후 49제를 지내는 이유도 모두 이에서 유래한다.
*4전도(顚倒)---어떤 판단을 할 때 순서가 엇바뀌고 진상을 오해하는 일 4가지를 말한다.
? 상전도(常顚倒)---무상한 세상을 영원한 듯이 생각하는 것.
? 낙전도(樂顚倒)---괴로운 인생을 즐겁다고 여기는 것.
? 정전도(淨顚倒)---더러운 것을 깨끗하다고 잘못 아는 것.
? 아전도(我顚倒)---무아인 존재를 내 것이라 착각하는 것.
*사정근(四正勤)---사정단(四正斷)또는 사정승(四正勝)이라고도 하는데, 선법(善法)을 더욱 자라게 하고, 악법(惡法)을 멀리 여의려고 부지런히 수행하는 네 가지 법이니,
첫째, 율의단(律儀斷) - 아직 일어나지 않은 불선법(不善法)들을 일어나지 못하게 한다.
둘째, 단단(斷斷) - 이미 일어난 불선법(不善法)을 모두 제거한다.
셋째, 수호단(隨護斷) - 아직 일어나지 않은 선법(善法)들이 일어나도록 한다.
넷째, 수단(修斷) - 이미 일어난 선법(善法)들이 사라지지 않게 하고 더욱 증진시킨다.
사정근 수행을 해야 해탈열반과 향상에 도움이 되는 선법과 그렇지 못한 불선법을 정확히 판단할 수 있다.
*4주(四洲)---수미산(Sumeru)을 중심으로 4개의 큰 섬이 있는데, 그 이름은 각각 방위에 따라 동승신주(東勝身州), 남염부주((南閻浮州), 서우화주(西牛貨州), 북구로주(北俱盧州)라 하고, 우리가 사는(사람이 사는) 세계는 남염부주이다.
*사지(四智)---불교의 유식학파(唯識學派)에서 말하는 여래(如來)의 네 가지 지혜.
? 성소작지(成所作智) - 중생을 제도 하는 데 걸림이 없이 자재한 방편 지혜.
? 묘관찰지(妙觀察智) - 모든 중생의 업과 근성 등을 미묘하게 보는 지혜.
? 평등성지(平等性智) - 모든 법의 평등여일(平等如一)한 모습을 보는 지혜.
? 대원경지(大圓鏡智) - 모든 법을 통달해 원만하게 비추어 보는 지혜.
*사참(事懺)---참회에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이참(理懺)이고 하나는 사참이다. 사참은 우리가 몸과 말과 생각(身 ? 口 ? 意 삼업)으로 지은 죄업을 불보살의 가피와 예불 등을 통해, 즉 행동을 통해 불보살에게 참회하는 것이다. 이참은 본래의 마음자리에서 볼 때 모든 죄가 본래 자성이 없다는 이치를 꿰뚫어 봄으로써 참회를 이루는 것이다. 결국 사참이란 밖으로 참회하는 것으로 죄를 범했을 때 자신의 잘못을 낱낱이 밝히고 인정받는 것이고, 이참은 죄란 본래부터 없다는 것을 관조해 없애는 것이다.
이참과 사참 두 참법 중, 사참은 이참이 바탕이 되고 뿌리가 될 때 온전히 이루어지고, 이참 또한 사참이 없으면 공중누각이 될 수밖에 없다. 곧 사참과 이참은 결코 둘이 아니다.---→이참(理懺)과 사참(事懺) 참조.
*사천왕(四天王)---수미산 중턱에 살면서 사방을 지키고 불법을 수호하는 네 명의 천왕. 즉 동방 지국천왕(持國天王), 서방 광목천왕(廣目天王), 남방 증장천왕(增長天王), 북방 다문천왕(多聞天王)을 일컫는다. 사천왕은 인도 신화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고 있지만 일찍부터 불교에 받아들여졌다. 지금은 절 입구의 천왕문에서 불법뿐 아니라, 불법에 귀의하는 사람들을 수호하는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다.
*사향사과(四向四果)---사문사과(沙門四果), 줄여서 사과(四果)라고도 하는데, 소승불교의 수행 단계이다. 부처님의 제자들은 수행함으로써 아라한이라는 이상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이 아라한의 경지에 도달하는 데에는 4향4과라고 불리는 8종의 위계(位階)가 있다고 했다. 즉 예류(豫流) ? 일래(一來) ? 불환(不還) ? 아라한(阿羅漢)의 4위가 있어서, 아래와 같이 과(果)를 향해 수행(修行)해 가는 단계(向)와 그에 의해 도달한 경지(果)로 나누어서 설명한 것이 4향4과이다.
1.예류향(豫流向): 예류과를 향해 수행해 가는 단계
2.예류과(豫流果): 예류에 도달한 상태
3.일래향(一來向): 일래과를 향해 수행해 가는 단계
4.일래과(一來果): 일래에 도달한 상태
5.불환향(不還向): 불환과를 향해 수행해 가는 단계
6.불환과(不還果): 불환에 도달한 상태
7.아라한향(阿羅漢向): 아라한과를 향해 수행해 가는 단계
8.아라한과(阿羅漢果): 아라한에 도달한 상태
예류는 수다원(須陀洹)이라고 음역(音譯)되는데 깨달음의 길을 하천의 흐름에 비유해서 그 흐름에 참여한 것, 즉 불도 수행에 대한 확신이 생긴 상태를 말한다.
일래는 사다함(斯陀含)이라고 음역되는데 수행의 도상에 있어서 한 번 더 윤회의 세계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불환은 아나함(阿那含)이라고 음역되는데 더 이상 윤회의 세계로 물러가는 일이 없기 때문에 불환이라고 한다.
아라한향(阿羅漢向)은 아라한과(阿羅漢果)에 이르기까지의 위계(位階)이다. 아라한과에 이르면 무학위(無學位)로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고, 번뇌는 다했으며, 해야 할 바를 다했고, 윤회에서 해탈해서 열반에 들어간다고 생각됐다. 무학위를 간단히 무학(無學)이라고도 한다. 아라한과 이전의 단계를 통칭해 유학위(有學位: 배울 것이 있는 계위) 또는 유학(有學)이라고 한다.
*사홍서원(四弘誓願)---어떤 목표를 정해놓고 그것을 이루려고 바라고 다짐하는 것을 서원이라 한다. 서원이 욕망과 다른 점은 욕망이 이기적인데 비해 서원은 자신을 포함한 전체의 행복과 평화를 지향한다. 불교에서는 보살이 걸어가야 할 네 가지 큰 서원을 내세우는데, 그것을 4홍서원이라 한다.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
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
*산림(山林)---출가 승려의 수행과 거주가 이루어지는 장소. 바로 사찰 ? 절을 말한다.
*산림법회(山林法會)---사찰에서 불경을 강설하는 모임을 말한다.
*산스크리트(Sanskrit)어---중국 및 한국에서는 범어(梵語)라고도 한다. 산스크리트어는 BC 5세기∼BC 4세기경의 문법학자 파니니(P?ini)가 당시 서북인도 지식계급의 언어를 기초로 한 문법체계를 완성했다. 이로부터 산스크리트어는 종교 ? 철학 ? 문학 용어로서 지식계급 사이에 사용됐다. 흔히 브라만의 글자라 하는데 비해, 불교경전은 처음 산스크리트어가 아닌 각 지방의 속어(팔리어)에 의해 전해졌지만, BC 2세기경 부파(部派)불교시대의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에서 경전을 산스크리트어로 쓰기 시작했고, 특히 인도 쿠샨왕조의 카니슈카왕 때에 캐시미르에서 개최됐던 제4결집 시(AD 140년 경), 범어를 불교의 성전어로 한다는 결의가 이루어짐으로써 그 후 불교경전은 범어로써 표기돼 범어 경전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고대 범어(산스크리트어)로 씌어졌던 경전들이 일부 단편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남아 있지 않고, 고대 범어 자체도 사라져버렸다.
*살타(薩陀)---원어 사트바(sattva)의 음역. 살타(薩陀)는 본질, 실체, 마음, 유정 등 열 가지 의미가 있으나 여기서는 살고 있는 존재(有情), 즉 중생(衆生)을 뜻한다. 따라서 보리살타(菩薩薩陀), 즉 보살(菩薩)은 깨달음을 얻어야 하는 중생, 깨달음의 길을 가는 중생이라는 뜻이 되겠다.
*삼계(三界)---불교 용어로, 부처의 지위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이 거주하는 욕계(欲界) ? 색계(色界) ? 무색계(無色界)를 통칭하는 말이며, 세간(世間)이라고도 한다. 즉 불교의 세계관에서 중생이 생사유전 한다는 3단계의 미망의 세계이다.
1) 욕계(欲界) - 오욕 등 욕망으로 가득찬 세계. 천. 인간. 수라. 축생. 아귀. 지옥의 육도(욕계 6천)를 말한다.---→욕계(欲界) 참조.
2) 색계(色界) - 욕망은 끊었으나, 미묘한 형체가 남아있는 세계.---→색계(色界) 참조.
3) 무색계(無色界) - 육체를 가지지 않고 정신적 요소만 있는 세계.---→무색계(無色界) 참조.
? 욕계는 맨 아래에 있으며 애욕, 재욕, 식욕, 성욕, 명예욕 등 온갖 욕망이 창궐하는 세계이다.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등 5가지와 욕계 6천(六天), 즉 사왕천, 도리천, 야마천, 도솔천, 화락천, 타화자재천 등이 여기에 속한다.
? 색계는 욕계 위에 있으며 물질의 세계로서 욕망에서 자유로워진 청정의 세계이긴 하나 형상(색)의 속박에서 자유롭지 못한 세계이다. 여기엔 여성은 없고, 물들어지는 욕락이 없어서 전혀 화생(化生)하는 곳이지만 아직 물질이 있으므로 색계인 것이다. 이 색계는 욕계의 더러운 색을 여의었다 하더라도 미묘한 청정세계로서의 색은 그 아래 욕계와 그 위의 무색계를 나누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 무색계는 색 아닌 법체의 세계로서 물질과 공간 개념을 초월한, 형질이 없는 허공 자체이자, 순수한 정신적 영역의 세계, 무념무상의 정(定:三昧)을 닦은 자가 태어나는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의 삶도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한 채 미혹의 중생 세계이다.
※단 화엄종에서는 불계(佛界), 중생계(衆生界), 심계(心界)의 세 가지를 삼계라고 한다.
*삼계교(三階敎)---중국 수(隋)나라 시대 신행(信行, 540∼594년)에 의해서 창시된 불교의 일파이다. 수나라가 천하를 통일하기 전의 혼란기에 생겼다. 당시의 혼란상을 여러 나라가 다투는 무질서 말법시대로 규정하고 이를 타파하는 교설을 내세웠다. 세상을 정법(正法), 상법(像法), 말법(末法)의 삼단계로 구분하고 정법과 상법계에 있는 사람들은 깨달음을 얻기 쉬우나 세상이 어지럽고 탁한 말법계에 드는 사람들은 깨달음을 얻기 어려우므로 독특한 방법에 의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지금(당시)은 말법의 악세(惡世)인데, 모든 사람은 불성을 갖춘 존재이므로 서로 공경하고 보경보불(普敬普佛)에 의지할 것을 주장했다.---→삼시관(三時觀) 참조.
※보경보불(普敬普佛)---모든 사람은 불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부처로서 받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능력에 따라 불, 법, 승에 귀의해 모든 악을 끊고 선을 닦아 훌륭한 지도자를 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삼계대도사(三界大導師)---삼계(욕계, 색계, 무색계)의 중생을 이끌어 주시는 커다란 스승이시고, 삼계에 으뜸가는 멘토라는 뜻이다. 즉, 부처님을 일컫는다.
*삼계유심 만법유식(三界唯心萬法唯識)---욕계, 색계, 무색계는 실존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만들어 낸 허영의 작품이라는 뜻. 모든 존재(萬法)는 우리의 의식이 낸 것이므로 실존하는 것으로 보지 말라는 뜻임.
*삼귀오계(三歸五戒)---삼귀오계는 불교의 중요한 입문의례로 재가의 신도가 불교에 귀의하는 필수적인 형식이다. 삼귀의례를 받고 다음에 오계(五戒)를 받는 법. 계율의 일종으로 이를 받은 이를 남자는 우바새(優婆塞), 여자는 우바이(優婆夷)라 한다. 오계는 산목숨을 해치지 말라. 주지 않는 것을 훔치지 말라. 사음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술에 취하지 말라 등이다.
*삼귀의(三歸依)---삼귀의는 불(佛), 법(法), 승(僧) 삼보에 귀의한다는 말.
삼귀의례(三歸依禮)
1) 귀의불 양족존(歸依佛 兩足尊) : 지혜와 복덕을 구족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2) 귀의법 이욕존(歸依法 離欲尊) : 일체 욕망을 떠난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3) 귀의승 중중존(歸依僧 衆中尊) : 모든 스님들(승가, 사부대중)께 귀의합니다.
*3염주(三念住)---부처님께서는 항상 바른 마음에 머물러 흔들림이 없어 동요치 않음을 셋으로 나눈 것
? 부처님께서는 그의 제자들이 잘 순종할지라도 그로인해 마음이 동요되거나 환희하는 일없이 그 마음이 항상 평온하다.
? 부처님께서는 그 제자들이 잘 순종하지 않을지라도 그 마음이 항상 평등해서 동요하지 않는다.
?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이 순종하거나 순종치 않거나 그러한 일로 인해 마음이 동요치 않고 항상 평등심에 머문다.
*삼도(三道)---견도(見道), 수도(修道), 무학도(無學道)를 이른다. 계(戒)와 정(定)과 혜(慧)를 뜻하는 삼학(三學)에 비해 삼도란 보고 닦아서 이상을 실현하는 과정을 가리킨다. 즉, 깨달음에 이르는 3가지 수행단계로서 견도(見道)와 수도(修道)와 무학도(無學道)를 이른다.
이를 현실적인 의미로 해석하면 인생을 관찰하고, 인생을 성숙시키는 길을 거쳐, 더 이상 배움이 필요 없는 길에 이르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세상의 법이 연기와 중도임을 관찰하고 팔정도와 육바라밀을 실천해 해탈이나 열반에 이르는 것을 뜻한다.
*삼독심(三毒心)---탐(貪) ? 진(瞋) ? 치(癡)를 말함. 삼독심에 의한 재앙을 삼재(三災)라 한다. 탐(貪)에 의한 재난이 수재(水災)이고, 진(瞋)에 의한 재난이 화재(火災)이며, 치(癡)에 의한 재난이 풍재(風災)이다. 지구 온난화도 결국 삼독심에 의한 재난이다.
*삼론종(三論宗)---용수(龍樹 : 150?~250?)의 중관사상(中觀思想)을 중국에서 체계화한 종파가 삼론종(三論宗)이다. 중관파의 주요한 세 논서인 <중론(中論)>, <십이문론(十二門論)>, <백론(百論)>을 채택해 이해의 근간으로 삼았기 때문에 삼론종이라 칭한다. 이들 세 논서를 한역한 사람이 구마라습(鳩摩羅什)이었으므로 삼론종의 창시자를 구마라습이라 간주하고 있으나 실제로 이 종파의 이론을 대성한 사람은 길장(吉藏 ; 549~623)이라 인정되고 있다.
*삼륜청정(三輪淸淨)---참된 보시, 즉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가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청정해야 하는데, 이것을 삼륜청정(三輪淸靜)이라 한다. 베푸는 자(施者)와 받는 자(受者)와 보시한 물건(施物), 이 세 가지가 깨끗할 때 비로소 이루어짐을 말한다. 삼륜공적(三輪空寂)이라고도 하며, 베푸는 자도 공하며(施空), 받은 자도 공하며(受空), 베풀어지는 물건도 공하다(施物空)하여 삼륜체공(三輪體空)이라고도 한다.
*삼매(三昧)---산스크리트어 사마디(Sam?dhi)의 음역이다. 불교의 수행방법 가운데 하나로, 마음을 한 곳에 집중시켜 내적, 또는 외적인 어떤 자극에도 동요됨이 없는 바르고 맑은 정신 상태를 말한다. 마음을 한곳에 모아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정(定), 또 마음을 평정하게 유지하기 때문에 등지(等持)라 하기도 한다.
대승경전에서 부처님 말씀의 시작은 언제나 부처님이 먼저 선정에 들고(입정) 거기서 나온 이후 법문을 시작했다. 이래서 부처님의 삼매의 종류는 해인삼매, 화엄삼매 등 다양하게 전개됐다.
*삼밀(三密)---밀교에서 신체 ? 언어 ? 정신으로 짓는 신(身) ? 구(口) ? 의(意)의 삼업을 이르는 말이다. 진언(眞言)을 외우는 구밀(口密), 손으로 수인(手印)을 맺는 신밀(身密), 마음으로 불보살의 존상(尊像)을 바라보는 의밀(意密)을 통틀어 이른다. 삼밀은 부처의 삼밀과 중생의 삼밀로 나누는데, 중생의 삼밀은 우주와 인생이 작용하는 세계와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행 방법이다. 즉, 몸으로 불보살의 행위인 수인을 맺고, 입으로는 진리를 상징하는 진언을 외우며, 마음으로는 언제나 삼매에 들어 대일여래의 덕성을 생각해야 한다.
*삼밀가지(三密加持, 삼밀유가/三密瑜伽)---밀교 수행법의 하나. 가지(加持)란 대자대비한 불보살의 가호를 받아 중생이 깨달음의 경지로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삼밀가지란 부처의 신(身) ? 구(口) ? 의(意) 삼밀(三密)과 중생의 신 ? 구 ? 의 삼밀이 일치하는 경지를 얻도록 수행해 부처의 가피를 얻을 목적에서 행하는 수행법이다. 삼밀유가법(三密瑜加法)이라고도 한다.
*삼법인(三法印)---불교의 세 가지 근본 교의(敎義).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열반적정인(涅槃寂靜)를 말한다. 이상의 삼법인에 일체개고(一切皆苦)를 합쳐 사법인(四法印)이라 하기도 하고, 삼법인 중에 열반적정 대신 일체개고를 넣기도 한다.
*삼법인(三法忍)---<무량수경(無量壽經)>에 나오는 말. 여기서 인(忍)은 참을 인이 아니라 인가결정(認可決定)이니, 진리를 확인해 결정적으로 이해하는 일을 말한다.
첫째는 음향인(音響忍)---설법, 즉 가르침을 듣고 깨달아 마음이 안온해짐.
둘째는 유순인(柔順忍)---불보살의 교화, 즉 진리에 순종해 법대로 행하는 것.
셋째는 무생법인(無生法忍)---모든 법의 실상을 깨달아 세상 모든 것이 공(空)한 것이라는 이치를 터득하는 것.
*삼법인(三法忍)---<묘법연화경>에 나오는 삼법인.
? 신인(信忍)은 신심에 의해 얻는 지혜,
? 순인(順忍)은 진리에 순종하는 지혜,
? 법인(法忍)은 진리를 깨닫는 지혜.
*삼사칠증(三師七證)---비구가 정식 승려가 되려면 구족계를 받아야 하며, 이 때 3명의 스승과 7명의 증인이 필요한데, 이들을 삼사(三師)와 칠증(七證)이라고 한다. 여기서 삼사는 계를 주는 계화상(戒和尙), 청결을 증명하는 갈마사(葛磨師), 의식을 가르쳐 주는 교수사(敎授師)를 말하고, 칠증은 입회인인데, 덕이 높은 승려(僧侶) 일곱 사람이다. 이들에 의해 수계식이 이루어진다.
소승불교에서는 반드시 이 10명 앞에서 계를 받지만 대승불교와 밀교에서는 꼭 10명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스승 없이 스스로 부처 앞에서 서원(誓願)을 세우고 계를 받는 자서수법(自誓受法)도 있다.
*삼선도(三善道)---아수라 ? 인간 ? 천신
*삼성각(三聖閣)---칠성각, 독성각, 산신각을 합친 것.
*삼성업(三性業)---선업, 악업, 무기업(無記業)---→무기업(無記業) 참조.
*삼세양중인과(三世兩重因果)---삼세양중인과는 대비바사론(大毘婆娑論)과 구사론(俱舍論), 그리고 남방불교의 니까야 주석서인 청정도론(淸淨道論) 등에서 12연기설을 설명하는 방식이다.
삼세(三世)란 과거-현재-미래를 의미하고, 양중(兩重)이란 두 번 반복된다는 것을 말하며, 인과(因果)란 원인과 결과의 연결을 말한다. 즉 삼세에 걸쳐 두 번의 인과를 가지고 윤회하는 과정을 말한다. 12연기는 삼세에 걸쳐서 이러한 원인과 결과가 인-과-인-과로 두 번 반복됨(兩重)을 가르친다고 해서 ‘삼세양중인과(三世兩重因果)’라고 결론짓고 있으며, 이것을 12지 연기를 비롯한 연기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정설로 삼고 있다. 12연기설의 다양한 해석 가운데 삼세양중인과설(三世兩重因果說)은 전통적으로 12연기설에 대한 가장 완전한 해석으로 인식돼 왔다.
*삼시관(三時觀)---삼시관이란 정법시대(正法時代), 상법시대(像法時代), 말법시대(末法時代)라는 부처님 말씀에 의한 시대구분이다. 석존(釋尊) 열반 후 1천년을 정법시대요, 그 후 1천년을 상법시대라 하며, 그 후 1천년을 말법시대로 구분하고 있다. 그러니 지금은 말법시대이다.---→상법시대(像法時代) 참조.
*삼시업(三時業)---업이 결과를 가져오는 세 가지를 시기별로 분류
1) 순현업(順現業) - 현생에서 지은 업의 과보를 현생에서 받는 업
2) 순생업(順生業) - 현생에서 지은 업의 과보를 다음 생에서 받는 업
3) 순후업(順後業) - 현생에서 지은 업의 과보를 차차후 생에서 받는 업.
이와 같이 과보를 받을 시기가 정해진 업을 ‘정업(定業)’이라 하고, 과보 받을 시기가 정해지지 않은 업을 ‘부정업(不定業)’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금생에 지은 것을 금생에 받지 않는다고 해서 인과가 없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삼신(三身)---불교에서 불신(佛身)을 세 가지 종류로 표현한 교리. 우리나라에서는 불교의 여러 가지 불신설 가운데 삼신설을 가장 많이 채택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법신(法身) ? 보신(報身) ? 화신(化身)의 삼신설이 가장 보편적으로 설해지고 있으며, 자성신(自性身) ? 수용신(受用身) ? 변화신(變化身)의 삼신설도 채용되고 있다.
*삼신불(三身佛)---대승불교의 불신관으로 법신불(法身佛) ? 보신불(報身佛) ? 응신불(應身佛)로 구분한다. 여기서 말하는 몸(身)이란 부처님의 참모습에 인격적인 의미를 붙여서 일컫는 말이다.
? 법신불(法身佛)---삼신 가운데 영원히 살아 계신 부처님의 몸이다. 우리의 감각과 이성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몸으로서 우주 및 중생계 모든 것의 바탕이 되며, 그것을 질서 있고 조화롭게 만드는 주체인 진리의 당체이다. 이를 독립시켜 인격화해서 부를 때는 흔히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라 한다.
? 보신불(報身佛)---진여당체인 법신이 형태를 취해 나타난 몸을 말한 것으로 곧 법신을 인(因)으로 삼아 그 과보(果報)로 나타난 몸이기에 보신이라 한다. 이를 독립시켜 인격화해서 부를 때에는 원만보신 노사나불(盧舍那佛)이라고 한다. 신앙의 대상으로서 실제로 존중되는 보신불로는 아미타불과 약사여래 등이 있다.
? 응신불(應身佛)---화신불(化身佛)이라고도 하는데,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중생과 같은 육체를 지니고 현실세계에 나타난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을 말한다.
*삼십칠조도품(三十七助道品)---깨달음을 얻어 열반에 들기 위해서 수행해야 하는 37가지의 방법을 말한다. 도품은 실천하는 방법의 종류를 뜻하고, 삼십칠은 사념처(四念處), 사정근(四正勤), 사여의족(四如意足), 오근(五根), 오력(五力), 칠각지(七覺支), 팔정도(八正道) 등 일곱 가지 수행방법을 합친 것이다. 37보리도법(菩提道法)이라고도 한다.
*삼아승기겁(三阿僧祗劫)---줄여서 ‘삼승기(三僧祇)’라 한다. 아승기(阿僧祗)는 셀 수 없다는 뜻이고, 삼아승기겁은 보살이 깨달음을 얻기까지에 소요되는 무한히 긴 기간을 셋으로 나눈 것.
보살의 오십위(五十位) 중 십신(十信) ? 십주(十住) ? 십행(十行) ? 십회향(十廻向)의 사십위(四十位)를 제일 아승기(第一阿僧祗), 십지(十地) 중 초지(初地)에서 제칠지(第七地)까지를 제이 아승기(第二阿僧祗), 제팔지(第八地)에서 제십지(第十地)까지를 제삼 아승기(第三阿僧祗)라 한다.---→아승기(阿僧祇) 참조.
*삼악도(三惡道)---중생들은 죽으면 6도를 윤회하게 된다. 그런데 중생이라고 하지만 착한 일을 많이 한 중생이 있고, 나쁜 일을 많이 한 중생도 있다. 그래서 가는 길이 다 다르다.
6가지 윤회의 세상인 육도는 둘로 나눈다. 즉 위에는 조금 괜찮은 3가지가 있고, 아래는 나쁜 3가지 세계가 있다. 복덕이 많은 사람은 위의 3가지 세계 즉 천당, 사람, 아수라의 3가지 업보를 받게 된다. 그리고 나쁜 일을 많이 한 사람은 죽어서 나쁜 3가지 세계에 태어난다. 이 나쁜 세계이 3가지가 바로 삼악도, 즉 지옥도(地獄道), 축생도(畜生道), 아귀도(餓鬼道)이다.
*삼업(三業)---① 신업(身業), 구업(口業), 의업(意業)의 세 가지를 말한다.
②선업(善業; 자기의 뜻에 알맞은 결과를 받을 업), 악업(惡業; 자기의 뜻에 맞지 않는 결과를 받을 업), 무기업(無記業; 선악에 치우치지 아니하며, 또 선악의 어떤 결과도 받지 않는 업)의 세 가지를 말하기도 한다.
*삼장(三藏, Tipitaka)---석가모니가 한 설법을 모은 경장(經藏 Sutta Pitaka), 교단이 지켜야 할 계율을 모은 율장(律藏 Vinaya Pitaka), 교리에 관해 뒤에 제자들이 연구한 주석 논문을 모은 논장(論藏 Abhidharma Pitaka), 이 경 ? 율 ? 논 세 가지를 합해서 삼장이라 한다.
*삼장(三障)---수행(修行)과 선근(善根)에 미치는 중대한 세 가지 장애, 즉 업장(業障), 번뇌장(煩惱障), 보장(報障)을 말한다. 장(障)은 막는 것이니 번뇌가 가리어 열반을 막으며 무명이 가리어 보리를 막는 것이다
? 업장(業障)은 나의 과거로부터의 숙업, 나의 업이 미치는 주위 사람들과의 인연에 의해 일어나는 일체의 방해를 뜻한다. 즉, 세간적, 인도상의 모든 악업에 의해 처자, 친구 등이 신심에 강하게 반대해 일어나는 갖가지 장애를 말한다.
이와 같은 가족관계에서 일어나는 장애 외에 신업(身業), 구업(口業), 의업(意業) 등으로 나타나는 일체의 현상도 업장에 포함된다. 이를 끊지 못하면 수행을 그만두거나 깨달음에 도달하지 못하게 된다.
? 번뇌장(煩惱障)은 중생이 원래부터 가지고 있는 탐(貪) ? 진(瞋) ? 치(癡) 삼독(三毒)의 번뇌가 불도수행을 방해하고 장애를 일으키는 것을 뜻한다. 번뇌장은 자기 자신 중에서 탐, 진, 치 등의 번뇌가 강하게 일어나서 신심을 방해하는 것으로서 가령 눈앞의 욕망에 사로잡혀서 신심을 망각하거나 신심의 자세에 대해 주의를 받고 감정적이 돼 자기 스스로의 신심을 무너뜨리고 마는 것 등이다.
? 보장(報障)은 업보에 의해서 일어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며, 국가나 왕 혹은 혈육인 부모, 즉 따르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나 존재가 그 어떤 힘을 가지고 수행을 방해하는 것을 말한다. 국가에서 금지를 한다든지 아니면 부모가 반대를 하는 행위 일체를 말한다. 법으로 따르지 않을 수가 없고 부모의 명을 거역할 수도 없는 환경이 되면 수행을 망설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삼장 중에서도 최고로 강력한 장애의 작용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삼장법사(三藏法師)---불교 성전인 경, 율, 논 삼장에 모두 정통한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구마라습(鳩摩羅什;344~413), 진체(眞諦;499~569), 현장(玄?;602?~664), 불공(不空:705~774) 등을 일컫는다.
*삼재(三災)---탐(貪) ? 진(瞋) ? 치(癡) 삼독심(三毒心)에 의한 재앙을 삼재(三災)라 한다. 탐(貪)에 의한 재난이 수재(水災)이고, 진(瞋)에 의한 재난이 화재(火災)이며, 치(癡)에 의한 재난이 풍재(風災)이다. 지구 온난화도 결국 삼독심에 의한 재난이다.---→삼독심(三毒心) 참조.
*삼제(三諦)---제(諦)는 진리라는 뜻이다. 대승불교에서 본격적으로 발전된 것이 진제(眞諦) ? 속제(俗諦)의 이제(二諦)이다.
? 진제(眞諦)---절대적 진리, 세속적 입장을 초월한 진리, 즉 궁극적 관점에서의 진리를 뜻한다.
? 속제(俗諦)---세상에서 일반적으로 인정하는 진리로, 여러 가지 차별이 있는 현실 생활의 이치를 이른다.
그런데 삼제란 이와 같은 깨달음의 입장에서의 진리인 진제(眞諦)를 천태종의 개조 지의(智?)가 독자적 입장에서 전개시킨 세 가지 진리를 말한다. 즉 진제를 다시 공(空) ? 가(假) ? 중(中) 셋으로 나눈 것이다.
? 공제(空諦)---만물은 모두 인연에 의해 생긴 것일 뿐, 어느 것도 실(實)은 없고, 자성(自性)이 없기 때문에 공(空)이라는 것.
? 가제(假諦)---공인 것은 확실히 진리이지만, 우리는 ‘공’이라는 특수한 원리를 생각해서는 안 된다. 공이라는 것은 가칭(편의상 이름 한 것)이다. 공을 실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
? 중제(中諦)---그렇기 때문에 공은 다시 부정되지 않으면 안 된다. 공역부공(空亦復空), 즉 공 또한 공이다. 공은 다시 공이라는 경지에서 중도(中道)가 나타난다. 인연에 의해 생긴 제법은 공이기 때문에 비유(非有)이며, 그 비유(공)도 공이기 때문에 비공(非空)이다. 따라서 비유비공(非有非空)의 중도론이 성립한다는 것이다.
*삼종법락(三種法樂)---삼종락은 천상에서 받는 천락(天樂), 선정으로 받는 선정락(禪定樂), 그리고 열반락(涅槃樂)인 제일락(第一樂)을 이른다. 고락을 다 떠나버린 무량의 청정무비한 안락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천락 또는 선정락 또는 열반락을 다 갖춘 경우 삼종락에 머문다고 한다.
즉, 삼종락이란 성판중생 부사의(成辨衆生不思議)라, 우리 중생계를 다스린다거나 중생을 교화한다거나 신통을 부린다거나 하는 부사의한 모든 것을 다 충분히 성취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계를 여래선(如來禪)이라고 한다. 여래선(如來禪)이란? 여래지(如來地)에 들어가서 성자(聖者)의 무루지(無漏智)를 깨달아 삼종법락(三種法樂)에 머물고 동시에 중생의 부사의한 일을 다 성취하는 것을 여래선이라고 이름한다고 했다. 스스로 마음을 깨달아 우주의 본 실상을, 성지(聖智)를 자각해서 여래지에 들어가는 것이다.
※성판(成辦)은 마련하고 장만한다. 다스리고 교화한다는 뜻임.
*삼종정육(三種淨肉)---수행승(修行僧)은 3종류의 부정육(不淨肉)을 먹어서는 안 되지만, 그 이외의 고기는 먹어도 상관없다. 즉 비구들은 만일 자기를 위해 죽이는 것을 보지 않았고, 자기를 위해 죽였다는 소리를 듣지 않았고, 자기를 위해 고의로 죽였다는 의심이 없는 그런 생선과 고기(3종 정육)는 먹어도 좋다고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삼처전심(三處傳心)---석존께서 세 곳에서 가섭에게 마음을 전한 것을 말한다. 이것을 선종에서는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이심전심(以心傳心)한 것이라 해 삼처전심이라 한다.
1) 영산회상 거염화(靈山會上擧拈花)---부처님께서 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었을 때 가섭만이 홀로 미소를 지은 것. 이를 염화미소(拈花微笑)라고 한다.
2) 다자탑전 분반좌(多子塔前分半坐)---다자탑 앞에서 부처님께서 자리를 반 나누어 가섭에게 같이 앉게 한 것.
3) 니련하반 시쌍부(尼蓮河畔示雙趺)---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하심에 가섭이 늦게 참석해 슬피 울자 관 밖으로 두 발을 내민 것.
*삼학(三學)---부처님의 가르침을 집약하면 3학(三學)으로 귀결된다. 즉,
1) 마음을 맑게 하는 계(戒),
2)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정(定).
3) 마음을 밝게 하는 혜(慧)
*삼현삼요(三玄三要)---임제스님의 삼현삼요(三玄三要)라고 부르는 유명한 공안(公案)이다. 임제스님은 “한마디 말에는 반드시 삼현문이 갖춰져 있다”라고 했는데, 그 삼현이란 현중현(玄中玄)과 구중현(句中玄)과 체중현(體中玄)이다. 현중현은 말의 그 자체로서의 진실이다. 구중현은 말의 인식 위에 나타나는 진실이다. 체중현은 말의 실천 속에 나타나는 진실이다. 이러한 세 가지의 경우가 한마디 말에 다 포함돼 있다는 뜻이다. 더 이상의 것은 이해할 수 없다. 깨달아야 한다.
※여기서 玄은 현묘한, 진리, 진실이란 뜻이다.
*상(相)---불교에서 상(相)이란 용어가 상당히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어 중요한 용어의 하나이다. 불교에 있어서 성(性)이란 불변의 본체를 말하며, 상(相)이란 변화하고 차별로 나타난 현상계의 모습을 말한다. 산스크리트어에 나타나는 상(相)이란 개념엔 아래와 같은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산스크리트어 lak?a?a---볼 수 있고, 알 수 있는 모습, 모양, 특징. 현상으로서 심리적인 측면에서는 ‘고정관념(觀念)’이라 할 수 있다. 불교에서는 이 고정관념이 갖가지 왜곡 갈등과 번뇌의 원인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이 무의식 속의 고정관념을 내려놓는 순간 불성을 바로 볼 수 있다고 하며, 그래서 금강경에는 모든 상(相)이 상 아님을 보면 여래를 보리라고 했다(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산스크리트어 nimitta---인식 주관에 형성된 특징. 의식에 떠오르는 대상의 상태나 특성. 과거로부터 많은 경험. 기억의 총합에 의한 대상을 만났을 때 생겨난 인상(일종의 선입견, 전체적인 첫 인상)
*상(想, 산스크리트어 samjna)---표상(表象), 대상의 모습을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일. 사물의 상(相)을 마음에 떠올려서 객관적으로 생각하는 정신 작용. 대상에 이름을 부여하고, 다양한 개념을 지어내는 의식 작용.
*상가(sangha)---불법을 중심으로 화합된 무리(和合衆)라는 뜻이다. 이 화합된 무리의 구성원은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이다. 그런데 이것이 언젠가 비구, 비구니만을 뜻하는 말로 변질됐다.
본래 고대 인도에서 상공업자들의 동업조합 혹은 종족사회를 기반으로 하는 공화정체(共和政體)의 정치조직을 상가 또는 가나(gana)라 했다. 불교 교단에서도 초창기에는 이들 두 용어가 같이 사용됐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상가라는 말이 점차 우세하게 됐고, 교단의 율(律)이 확립될 무렵에는 상가가 공식적인 명칭으로 자리 잡았다. 승가((僧伽)는 바로 이 상가에 대한 음역(音譯)이다.
*상가바드라(Samghabhadra, 衆賢)---부파불교시대의 인물. 불교 논서인 <아비달마순정리론(阿毗達磨順正理論)>과 <아비달마장현종론(阿毘達磨藏顯宗論)> 등을 저술했다. 이 방대한 두 저술 이름을 줄여 각기 <순정론(順正論)>, <현종론(顯宗論)>이라 한다.
*상기티수타(Sa?g?ti Sutta, 중집경/衆集經 = Sangiti suttanta)---니까야의 장아함에 속하는 경전의 하나. 부처님 당시 사리자(舍利弗)에 의해 결집된 경전의 이름이다.
부처님 생존시 자이나교의 지도자 마하위라(Mah?v?ra)가 임종한 후 자이나교 교단에 분규가 일어나서 분열이 일어났다. 이를 교훈 삼아 부처님의 가르침을 정립해 교단의 분열을 막고, 불설이 온전히 보존돼 후세에 전하도록 하고자 사리자(舍利弗, 팔리어 샤리푸타/S?riputta)의 주도로 불전 결집(結集, Sa?g?ti)이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정법(正法)으로서 230여 가지의 불설을 법수(法數)로 재정비했다. 즉, 여러 가지 불교술어를 1에서부터 10까지의 숫자에 따라 열거한 경전으로 상당히 아비달마적인 색채가 농후하다.
헌데 이 결집은 석존의 감독 아래 이루어진 것으로 경의 마지막엔 부처님의 인가로 마감하고 있다. 이 경을 한역한 아함이 바로 장아함의 <중집경(衆集經)>이다. 즉 중집(衆集)은 Sa?g?ti에 대한 한역으로 합송을 위한 대중집회의 의미로 옮긴 것이다. 이 경전은 부처님 재세 시의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결집을 보여 주는 것이다. 즉 제일차 결집 이전에 이루어진 법전 결집이다.
※중집경 결집의 계기가 된 것은 자이나교 지도자의 죽음과 분열인데, 그 죽은 자이나교 지도자를 마하위라(Mah?v?ra)가 아니라 니간타 나따뿟따(Niga??ha N?taputta=니건)라는 자료도 있음.
※위에서 sutta는 경(經)으로 번역하는데, sutta를 수탄타(suttanta)라고도 한다. suttanta는 잘 조직되고 정리돼 주제의 견고한 핵심을 제공하는 설법을 의미한다. 그래서 중집경을 Sangiti suttanta(상기티수탄타)라고도 한다.
*상당법어(上堂法語)---법상에 올라가서 사자후를 한 법문.
*상락아정(常樂我淨)---열반에 갖추어져 있는 네 가지 성질과 특성. 영원히 변하지 않는 상(常), 괴로움이 없고 평온한 낙(樂), 대아(大我) ? 진아(眞我)의 경지로서 집착을 떠나 자유 자재해 걸림이 없는 아(我), 번뇌의 더러움이 없는 정(淨)을 이른다.
*상법시대(像法時代)---부처님 자신의 말씀을 제자나 신자들이 직접 들을 수 있는 시기를 정법시대(正法時代)라고 하고, 부처님 입멸 후, 즉 정법시대 다음에 오는 1000년 동안을 상법시대라 한다. 그리고 상법시대에 이어지는 1만년 동안을 말법시대(末法時代)라고 한다.
상법시대(像法時代)는 민중의 불법에 대한 소질(素質)은 정법시대보다 열악하지만 불법을 열심히 수행하는 모습은 정법시대와 닮아 있으며, 정법시대는 교(敎) ? 행(行) ? 증(證)이 모두 갖추어 있지만 상법(像法)시대는 교(敎)와 행(行)만 존재하는 시기이다.
*상불경보살(常不輕菩薩)---범어로 사다파리부타(Sadaparibhuta)이다. 석가모니가 과거 인행(忍行)을 닦을 때의 이름이고, 상불경이란 ‘무시하거나 천시하지 않는 이’라는 뜻으로, 교만의 악덕을 철저히 버린 보살이다.
*상수멸정(想受滅定)---직역하면 상(想)과 수(受)의 소멸, 즉 지각(인식)과 느낌의 중지(소멸)을 의미하는데, 불교수행에서 나타나는 최상의 즐거움으로 모든 번뇌가 소멸되는, 불교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수행상태이다. 사마타와 위빠사나 수행을 병행해 얻을 수 있는 단계로, 마음의 흐름이 일시적으로 완전히 정지된 상태다. 이는 무여열반에 가장 가까운 상태이며, 한 유정(有情)이 현상계에서 체험할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상태라고 말해지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많은 남방불교의 수행자들은 일시적으로 조건의 소멸을 이루는 이 중지 상태를 열반의 체험 혹은 열반자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상좌(上佐)---큰 스님의 제자, 시봉하는 제자. 사승(師僧)의 대를 이을 사람 가운데 가장 높은 승려. 출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수습 기간 중의 예비 승려.
*상좌부(上座部, Theravada)---불멸 100여년이 지나고 계율 문제로 근본분열이 일어났을 당시 전통을 고수하려던 장로들의 모임을 일컫는 말. 대중부와 더불어 소승불교의 2대 부문이었다.
*상주불변(常住不變)---상주불변해 생멸(生滅)이 없다는 말. 생멸이 없다는 말은 영생한다는 말이다. 열반은 무상하지가 않고, 생하고 멸하는 것이 없이 항시 존재한다. 따라서 상주불변은 열반을 뜻한다. 즉 상덕(常德)을 말하며, 열반사덕(涅槃四德)인 상락아정(常樂我淨)에서의 상(常)을 말한다.
*상카라(sankhara, 行)---경전에서 행(行)은 다양한 의미로 쓰여 제행무상(諸行無常)에도 나타나고, 오온(五蘊)의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에 나타나기도 한다. 요즘 말로는 ‘의도적 행위’라고 옮기는 경우도 있고, ‘형성력’ 혹은 ‘의지’로 옮기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천류(遷流), 곧 생멸의 유전과 변화를 말하기도 하며, 이것에 의지해 일어나는 고통을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행고(行苦)에서 행은 생멸변화를 뜻한다.---→행(行), 행고(行苦) 참조.
*상히타(Samhita)---인도 브라만교의 제사의식 때 부르는 4종류의 경전. 인도어로 상히타는 경전의 집성(集成)을 뜻하는 말인데, 본집(本集)으로 한역한다. 인도 브라만교의 경전인 <베다>를 구성하는 4부문 중에서 제사의식 때 부르는 찬가 ? 가영(歌詠) ? 제문(祭文) ? 주문(呪文)을 집대성한 문헌이다.
*색계(色界)---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의 삼계(三界)의 하나. 욕계의 위에 있는 세계로서 천인(天人)이 거주하는 곳을 말한다. 음욕(淫欲) 식욕(食欲) 따위의 탐욕에서는 벗어났으나 아직 형상에 얽매여 있는 세계. 여기에는 물질적인 것(色)은 있어도 감관의 욕망을 떠난 청정(淸淨)의 세계이다.
이 세계에 거주하는 중생들은 음욕을 떠나 더럽고 거친 색법에는 집착하지 않으나 청정하고 미세한 색법에 묶여 있기 때문에 욕계 및 무색계와 구별해 색계라 한다.---→삼계(三界) 참조.
*색구경천(色究竟天)---색계 십팔천(色界十八天)의 열여덟째인, 맨 위에 있는 하늘. 사선 구천(四禪九天)의 아홉째인 맨 위에 있는 하늘.
*생(生, Jati)---12연기에 있어서 유(有)에 연해 생이 발생하는데, 생은 문자 그대로 태어난다는 뜻이다. 유(有), 즉 업(業)은 생을 있게 하는 원인이기 때문에 “유에 의해서 생이 있다.”고 한다. 불교의 입장은 생(生)조차도 괴로움이라는 것이다
*생각(生覺)---현재의 생각→사(思)-정사(正思)
미래의 생각→상(想)-예상(豫想)
시공을 초월한 생각→신념(信念)
*생멸문(生滅門)---진여문(眞如門)의 반대말. 중생이 태어나고 죽게 되는 문. 중생 세계로 나아가는 문. 원효대사는 마음이 움직여 타락돼가는 과정을 생멸문이라고 표현했다. 진여문은 불변하며 모든 상대적 모습을 떠난 마음의 상태를 가리킨 것이고, 생멸문은 본래의 고요함을 잃고 인연에 따라 생멸하는 마음의 상태를 가리킨 것이다.
*샤리푸트라(S?riputta, 사리자)---부처님 10대 제자 중 지혜 제일이라 일컬어지는 사리자(舍利子) 혹은 사리불, 추자(?子). 팔리어로는 샤리푸타이며, 산스크리트어 이름으로는 샤리푸트라(S?riputra)이다. ‘샤리(S?ri)’는 예쁜 눈을 가진 새(鳥)의 이름인데, 사리자의 어머니 이름이다. ‘푸트라(putra)’는 아들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사리자는 샤리의 아들이란 뜻이 된다.---→사리자 참조.
*샤카무니(釋迦牟尼, Sakyamuni Buddha, BC 556?~480?)---석가모니(S?kyamuni) 참조.
*샴발라(Shambhala)---티베트의 오지에 있었다고 하는 불교도의 가공의 유토피아. ‘숨겨진 왕국’으로 알려진 샴발라는 티베트 어딘가에 위치해 있다고 여겨져 왔다. 그리고 그곳에는 완벽에 이른 사람과 완벽의 상태로 가고 있는 존재들이 살고 있으며, 이들은 인류의 진화과정을 이끌어 가는 가장 앞에 서있는 존재들이라고 알려져 있다.
*서건동진 급아해동(西乾東震 及我海東)---서건(西乾)은 인도, 동진(東震)은 중국, 해동(海東)은 우리나라를 뜻함. 사시 예불(巳時禮佛)의 예불문에 ‘지심정례공양 서건동진 급아해동 역대전등 제대조사 천하종사(至心頂禮供養 西乾東震 及我海東 歷代傳燈 諸大祖師 天下宗師)’란 말이 나온다. 풀이하면, ‘인도와 중국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부처님의 뒤를 이어 진리의 등불을 전해오신 조사와 종사’ 그런 내용이다.
*서역중화해동불조원류(西域中華海東佛祖源流)---조선 영조 때의 승려 채영(采永)이 1762∼1764년(영조 38∼40)에 편찬, 간행한 책. 내용은 인도와 중국 및 한국의 3국에 걸친 불조(佛祖)의 법통(法統)에 대한 원류를 계통적으로 정리했다. 저자는 3년 동안 법맥(法脈)의 자료를 수집했으며, 오랫동안 문제가 돼 오던 한국불교의 법맥에 대한 이설(異說)을 정리해 <태고법통설(太古法統說)>로 법통의 계보를 정리했다.
*서원(誓願)---서원은 일종의 결심이다. 나는 어떻게 하겠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겠다는 결심이다. 그래서 불보살들은 모든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커다란 원을 세운다. 즉,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고자 일으키는 원이 곧 서원이다. 따라서 중생이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고 원하는 자리(自利)의 원과 대비된다. 유명한 사홍서원(四弘誓願)이 있다.---→사홍서원(四弘誓願) 참조.
*서장(書狀)---중국 남송(南宋) 시대 대혜 종고(大慧宗?, 1089~1163)스님이 그의 문하 거사와 유학자들의 질문에 답한 선의 요지를 설명한 편지 글을 모은 책. 간화선의 교과서로 불리며, <대혜서(大慧書)>라고도 불린다.
*석가모니(S?kyamuni)---이름은 Siddhartha(悉達多), 성은 Goutama(喬答摩, 瞿量). 아버지 숫도다나(淨飯王), 어머니 마야(摩耶夫人), 배우자 야쇼다라(耶輪院羅), 아들 라후라(羅?羅), 이모 마하프라 자파디(摩?波?波提).
석가모니(釋迦牟尼)는 석가족의 성자라는 뜻으로, 그래서 석존(釋尊)이라 번역한다. 불교의 창시자. 오늘날의 네팔과 인도의 국경 가까이에 카비라밧토(迦毘羅城/가비라성)라고 하는 소국가를 형성하고 있던 석가족 출신으로 어머니 마야부인(摩耶夫人)이 출산을 위해 친가에 가는 도중, 룸비니(藍毘尼) 동산에서 쉴 때 출생했는데, 생후 7일째에 모친이 죽고, 이모 마하프라 자파디(摩?波?波提)에 의해 양육됐다. 29세 때 출가해 6년간의 고행을 했으나, 그 헛됨을 알고, 같이 수행하던 5인의 수행자와도 헤어져, 부다가야의 보리수 아래서 35세에 성도(成道)했다. 이후 45년간 인도 각지를 순력하면서 설법하고, 쿠나시가라의 사라쌍수(娑羅雙樹) 사이에서 80세에 열반에 드셨다.
*석옥청공(石屋淸珙, 1272~1341)---1272년 강소성 상숙(常琡)에서 태어났다. 고봉 원묘(高峰原妙)의 문하에서 공부한 다음 급암 종신(及菴宗信)의 법을 이었다. 이후 여러 곳에서 후학들을 지도하다가 1352년 81세에 입적했다. 그의 문하에 우리나라 고려 말의 태고 보우(太古普愚) 등이 있다.
*선(禪)과 성(性)---선은 성(性)에 대해 어떤 식으로 접근하는가? 선객(禪客)들은 중성(中性)적인 분위기 또는 무성(無性)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것 같다.
*선가귀감(禪家龜鑑)---조선 명종 19년(1564) 서산대사 휴정(休靜)이 선종의 요긴한 지침을 모아서 엮은 책. 당시의 불교계가 선종과 교종이 서로 혼합돼 있어, 불교인들이 수행의 본질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 선문(禪門)은 견성법(見性法)을 전하고 교문(敎門)은 일심법(一心法)을 전하는 것임을 밝혀, 사람들로 하여금 괴로움에서 해탈하는 올바른 길을 밝히기 위해 저술한 것이다. 1579년(선조 12) 그의 제자 유정(惟政)이 발문을 쓰고 이를 간행했다.
*선무외(善無畏: 637~735)---원명은 슈바카라심하(Subhakarasimha, 淨獅子)라고 한다. 당나라 시대에 인도로부터 중국에 밀교를 전한 역경승(譯經僧)이다.
*선문정로(禪門正路)---성철(性澈)스님이 1970년대 후반부터 총림에서 대중들을 상대로 설법한 내용을 엮은 책이다. 각종 경론과 선서 60여 권을 참조했으며 견성이 바로 성불임을 강조한 참선의 이론적인 지침서. 보조국사 지눌(普照國師 知訥)스님의 돈오점수설(頓悟漸修說)을 비판하고 일관되게 돈오돈수(頓悟頓修說)를 주장한 성철스님의 역작. 견성성불(見性成佛)을 주된 내용으로 해 수행자들에게 화두를 참구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내용이 어려워 1993년 <선문정로평석>이라는 해설서가 출간됐다.
*선문촬요(禪門撮要)---조선 말기의 선승 경허(鏡虛)가 편찬한 우리나라 불교 선학(禪學)의 지침서. 상권은 1907년에 청도 운문사(雲門寺)에서 발간해 동래 범어사(梵魚寺)에 옮겨 보관했고, 하권은 1908년 범어사에서 간행했다. 상권에는 중국 고승 찬술인 13편의 명제가 수록돼 있다. 하권에는 보조국사(普照國師)의 <수심결(修心訣)>과 <진심직설(眞心直說)>, <권수정혜결사문(勸修定慧結社文)>, <간화결의론(看話決疑論)> 등 수행자를 위한 보조국사의 저술을 비롯해 천책(天?)의 <선문보장록(禪門寶藏錄)>으로 구성돼 있다.
*선서(善逝)---부처님의 열 가지 이름 중의 하나. 또는 훌륭하게 완성한 자를 일컫는 말.
*선요(禪要)---중국의 고봉(高峯, 1238~1295) 선사가 선법(禪法)의 요의(要議)에 대해 20여 년간 설법했던 것을 적은 책. 고봉의 시자 지정(持正)이 기록하고 거사 홍교조(洪喬祖)가 엮어서 펴냈다.
*선재동자(善財童子)---<화엄경>의 입법계품에 나오는 구도자의 이름. 53선지식을 차례로 만난 뒤, 맨 마지막으로 보현보살을 만나서 십대원(十大願)을 듣는다. 그 공덕으로 아미타불의 국토에 왕생해 입법계(入法界)의 큰 뜻을 이루었다고 한다. 선재동자의 구법행로는 대승보살의 구도행을 대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선정인(禪定印)---부처의 수많은 수인 중의 한 가지.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해 배꼽 앞에 놓고, 오른손도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해 겹쳐 놓되 두 엄지손가락을 마주 대는 형식을 선정인이라 한다. 손의 위치가 바뀌는 수도 있으나 오른손이 위로 가는 것이 좋다. 이러한 손의 형식은 결가부좌를 할 때나 좌선할 때 취하기도 한다.
*선지식(善知識)---수행이 깊은 스님. 선종에서 수행자들의 스승을 이르는 말. 본래 박학다식하면서도 덕이 높은 현자를 이르는 말이다. 불타의 가르침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 진리의 세계에 이르게 하는 불교적 교사(敎師). 그러나 선지식이라는 말의 원뜻은 ‘참된 벗’으로서, 산스크리트 칼리아니미트라(kalyamitra)에서 유래했으며, 불교에 있어서의 교사는 인생의 반려자인 동시에 인도자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선지식마(善知識魔)---자기가 가진 교법에 집착해 남에게 말해 주지 않는 좋지 않은 마음. 자기가 깨달은 교법에 집착심(執着心)을 갖고, 남에게 이야기해 주지 않은 마군(魔軍).
*선호념(善護念)---시시각각으로 일어났다 사라지는 자신의 마음, 자기 생각을 가만히 살피는 것을 선호념이라 한다. 자신의 마음을 살피는 예는, 우리가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면서 마음이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선호념이다. 좌선할 때도 자신을 살피고 쓸 때 없이 다른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선호념해야 한다.
여기서 ‘선善’이란 자신의 사상이나 생각, 또는 의지를 뜻하고, ‘염(念)’이란, 불교의 큰 깨달음을 이루는 사념처 수행에 있는 ‘염심(念心)’과 팔정도의 ‘정념(正念)’에서 ‘염(念)’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지금 이 순간의 생각 또는 마음, 혹은 관(觀)하는 주체의 지혜를 말한다.
이 몸을 염하면 무상함을 깨닫고, 느낌(감정)과 마음을 염하면 생각과 느낌들은 무작위로 생멸하는 것이어서 전혀 믿을 것이 못 된다는 것을 알고, 법을 염하면 온 물질과 관념들이 모두 성주괴공이요 모두 생멸함을 알게 된다.
*설두 중현(雪竇 重顯 : 980~1052)---그는 송대의 선승으로 금나라의 외침을 받아 북송과 남송으로 갈라지던 격동기에 살았던 인물이다. 23세에 익주(益州) 보광원(普光院)에서 출가한 후, 운문종(雲門宗)의 3대조(三代祖)인 지문 광조(智門 光祚) 문하서 수행했다.
어느 날 중현(重顯)은 스승에게 “한 생각도 내지 않을 때의 허물은 어떤 것입니까.” 라고 묻자, 스승은 제자를 불러 앉히고는 다짜고짜 손에 들고 있던 불자(拂子)로 얼굴을 후려쳤고, 그런데도 제자가 다시 같은 질문을 하려 하자, 스승이 다시 불자를 내리쳤는데, 바로 그 순간 중현(重顯)은 깨달음을 얻게 됐다는 일화가 전한다.
운문종(雲門宗)의 개조(開祖)인 운문 문언(雲門 文偃 : 864~949)의 4대(代) 법손(法孫)으로 운문종의 가풍을 계승한 중현은 훗날 스승의 간청에 못 이겨 절강성(浙江省) 명주(明州)의 설두산(雪竇山) 자성사(資聖寺)에 머물며 30여 년을 한결같이 독특한 선풍으로 제자들을 교화하며 종풍을 크게 진작시켰는데, 70여 제자를 길러냈기에 ‘운문의 중흥조’라 불린다.
중현의 저술이 여럿 있으나 그 가운데 백미(白眉)는 부처 당시부터 11세기까지 살았던 선사들의 이야기를 간결한 시어로 표현한 어록집<송고백칙(頌古百則)>이다.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산스크리트어 사르바스티바딘(sarv?stiv?din)이라고 하며, 유부(有部)라고 약칭된다. 부파불교 시대 소승불교의 상좌부에서 분파된 부파. 부파들 중에서 가장 유력하고 부파불교의 사상적 특징을 가장 현저하게 설명하고 있다. 설일체유부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일체법(一切法 : 모든 법)을 유(有)라고 설명하는 부(部)라는 뜻이다. 성립은 기원전 2세기 전반이다. 그 한참 후에 가다연니자(迦多衍尼子)가 나타나 <발지론(發智論)>을 저술해서 유부의 체계를 대성했다고 한다.
*섭대승론(攝大乘論)---“대승(大乘)을 포섭한 논서”라는 뜻으로 아상가(무착/無着:310∼390)가 유식(唯識)의 입장에서 대승불교를 통일하기 위해 저술한 논서. 진제(眞諦)에 의해 한역됐다.
*섭론종(攝論宗)---중국 불교 13종의 하나. 무착(無着)의 <섭대승론(攝大乘論)>과 세친(世親)의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석론(釋論)>을 연구 ? 강술하는 종파. 섭론종의 개조는 진제(眞諦: 499-569)이다. 진제는 원명을 파라마르타(Paramartha)라고 하며, 서북 인도의 브라만 출신이었는데 548년 다수의 범어불전(梵語佛典)을 가지고 바다를 건너서 건강(建康)에 상륙해 양나라 말기 전란의 와중에서 각지로 전전하면서 <섭대승론>과 ,섭대승론석>을 번역해 인도 유식파(唯識派)의 무착 ? 세친의 학설을 체계화해 소개했다.---→진제(眞諦) 참조.
*섭리(攝理, Providence)---신 또는 신적존재의 피조물에 대한 계획ㆍ의도를 말하는 것으로 창조주 ? 조물주를 신봉하는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인 연기설에 위배된다. 세계와 인간의 운명은 신이 예정했던 계획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는 신앙(信仰). 섭리를 옹호한 논작(論作)으로 유명한 것은 라이프니츠의 <변신론(辯神論)>임.
*섭수(攝受)---관대한 마음으로 남을 받아들임. 자비로운 마음으로 중생을 거두어 들여서 보살핌. 절복(折伏)이 상대를 비난해서 굴복시키는 일인데 비해, 이는 마음을 너그럽게 해 포용하는 태도이다. 섭수한다는 것이야말로 연기를 이해하는 모든 수행자들의 지혜로운 삶의 방식이다.
*섭화(攝化)---중생을 불법으로 교화하는 일. 중생을 거두고 보호해 가르쳐 인도함.
*성(性)---불교에서 성이란 남녀 구분의 성이 아니라 불변의 본체를 말한다. 이에 대해 상(相)이란 변화하고 차별로 나타난 현상계의 모습을 말한다.---→상(相) 참조.
*성문 4과(聲聞四果)---성문(聲聞)의 수행단계인 사과, 즉 깨달음의 4단계인 수다원(須陀洹), 사다함(斯陀含), 아나함(阿那含), 아라한(阿羅漢)을 성문4과라 한다.---→자세한 것은 사향사과(四向四果) 참조.
*성성적적(惺惺寂寂)---참선수행을 할 때, 고요하고 고요한 가운데(寂寂)에서 멍함(昏沈/혼침)에 빠지지 말고(편안함에 머무르지 않음), 항상 또렷하게 깨어 있어 산란함(掉擧/도거)에도 빠지지 않는 것을 말한다. 참선하는데 두 가지 장애가 있으니, 혼침(昏沈)과 산란(散亂)이다. 이를 혼신이마(昏散二魔)라고 한다. 따라서 지(止/定,사마타수행)와 관(觀/慧,위빠사나수행)을 함께 닦으라는 것이므로, 성성(惺惺)은 혜(慧=觀照/관조;사방으로 비추어 보는 것)에 해당되며, 적적(寂寂)은 지(止=번뇌, 망상이 일어나지 않게 함)에 해당 된다. 의미적으로 본다면, ‘진공(眞空)은 적적이며, 묘유(妙有)는 성성’일 것이다.
다시 말하면, 혼침이란 무기(無記)라 하는데, 너무 적묵(寂默)에 빠지는 것이고, 산란이란 마음이 들떠 번뇌망상이 들끓는 것이다. 이러한 혼침을 성성(惺惺) 즉 깨어있는 것으로 다스리고, 산란한 마음은 적적(寂寂) 즉 고요함으로 다스려, 성성한 가운데 적적하고, 적적한 가운데 성성해야 화두일념에 들어 공부가 순일(純一), 순숙(純熟)해질 수 있다.
*성유식론(成唯識論)---인도의 유식학파(唯識學派)가 발전해 절정시대의 사상을 이론과 실천 전반에 걸쳐 간결하게 정리한 유식학의 기본서, 세친(世親, AD 320~400)이 저술한 <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을 기반으로 한 논서이다.
<유식삼십송>에 호법(護法, 530~600)이 주석을 가한 것을 주로 하고, 거기에다 다른 유식 논사(論師)들의 학설을 취사선택해서 659년에 현장(玄奬)이 번역 편집했으며, 총 10권으로 돼 있다. 중국과 일본의 법상종(法相宗)은 이 논에 의거해 세워진 종파이다.
*성중(聖衆)---신중(神衆), 중성(衆聖)과 같은 말.---→신중단(神衆壇) 참조.
1) 성자의 무리. 부처와 성문, 연각, 보살 따위를 이른다.
2) 극락세계에 있는 모든 보살.
*성철(性澈, 1912년~1993)---속명은 이영주(李英柱). 호는 퇴옹(退翁). 법명은 성철(性澈). 경상남도 산청 출신. 8년 동안 장좌불와(長坐不臥)를 행하는 등 평생 철저한 수행으로 일관했으며 돈오사상(頓悟思想)과 중도사상(中道思想)을 설파했다.
1967년에 해인총림 초대 방장으로 취임하면서 유명한 ‘백일법문(百日法門)’을 설했는데, 이것은 불교의 중심 사상인 중도사상을 체계화한 것이다. 1981년 대한불교 조계종 제7대 종정(宗正)에 취임했다. 승가의 수행에서는 돈오돈수(頓悟頓修)를 주장해 불교계에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세간해(世間解)---부처님의 열 가지 이름 중의 하나. 일체 세간의 온갖 일을 완전히 안 분이라는 뜻.
*세우(世友)---인도의 학승, 산스크리트어 바수미트라(Vasumitra). 서기 2세기경 부파불교시대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의 논사. 불멸 후 6백 년경(AD 2세기경) 인도를 통일한 쿠샨왕조(대월지국/大月氏國) 카니슈카(Kaniska)왕의 후원으로 지금의 인도 캐시미르 지방에서 네 번째 경전 편찬회의가 열렸다고 한다. 이때 이 결집을 주관한 사람이 세우존자(世友尊者)와 협존자(脇尊者, 파르슈바, Parsva)였다.
세우의 저서로 <이부종륜론(異部宗輪論)>이 전하는데, 이 논서는 그 이름처럼 서로 다른 여러 부파의 종지(宗旨)를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설일체유부를 중심으로 해 부파의 분열 역사와 각 파의 교리 내용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서두에는 부처님이 입멸한 지 100여 년이 흐르자 여러 부파들이 일어나 이롭지 못한 교설로 사람들을 미혹시키게 되자, 모래 속에서 금을 채취하듯이 부처님의 진정한 가르침을 얻기 위해 이 논서를 쓴다고 밝혔다.
*세친(世親, Vasubandhu, 바수반두, 320?~400?)---천친(天親)이라 하기도 하고 바수반두(婆藪槃豆)라고 음사한다. 생물 연대는 4세기설과 5세기설이 있다. 유가행파(瑜伽行派)를 이루어 대승불교의 주류를 이루었고, 부파불교시대의 논서인 <구사론(俱舍論)>과 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 유식이십론(唯識二十論)의 저자이다. 그의 형 무착(無着)의 유식학(唯識學)을 계승해 이를 완성시켰으며, 여러 대승경전을 연구해 대승의 개척자로 불린다.
*셔먼(Robert A Sherman) 교수---1941년 뉴욕 출생, 하버드 대학교에서 학부, 석사, 박사를 마쳤다. 1964년 다람살라에서 티베트 비구승이 됐으나 이후 환속해서, 엠하스트 대학, 하버드 대학 방문교수를 역임했으며, 1987년 설립한 뉴욕 티베트 하우스의 대표이며, 현 콜럼비아 대학교 인도-티베트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티베트 불교 옹호자로 유명하다. 셔먼 교수는 종교간의 갈등 해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서로가 상대를 개종시키려 하면 안 된다. 그럼 종교전쟁을 낳게 된다. 이라크전쟁, 알카에다 등도 이런 부작용이다. 해법은 간단하다. 이슬람교도는 더 나은 이슬람교도가 되고, 기독교인은 더 나은 기독교인이 되고, 불교인은 더 나은 불교인이 되는 거다.』라고 했다.
*소림사(少林寺)---중국 하남성(河南省) 숭산(崇山)에 있는 사찰. 이 사찰은 496년에 북위(北魏)의 효문제(孝文帝)가 발타선사(跋禪師)를 위해 처음 창건했다고 한다. 달마(達磨)가 530년부터 9년간 여기서 좌선했다는 사실로도 유명하다. 유명한 소림권법(少林拳法)은 달마(達磨)가 인도에서 들여온 행(行)의 일종으로 선승(禪僧)의 수행법으로 불교도들의 심신단련과 호신에 크게 도움이 됐다. 그러나 현재의 소림권법은 불교의 수행법이 아니라 오히려 중국 고유무술로 그 명성을 떨치고 있다. 그리고 현재는 중국 복건성(福建省) 천주(泉州)에 있는 남소림사南少林寺)의 권법이 더 유명하다. 그래서 중국 권법의 영화는 대부분 이 남소림사에서 촬영됐다.
*소승열반경과 대승열반경---초기에 성립된 열반경을 흔히 소승열반경이라 하며, 대승불교 흥기 후 성립된 경전을 대승열반경이라 하나 두 경의 이름은 모두 <대반열반경>이다.
소승열반경은 후기 대승열반경과 달리 석가의 유언으로 법과 율에 의지하라는 당부와, 게으르지 말고 자기 자신과 법을 등불로 삼으라는 아난에 대한 충고가 주요내용이다. 그 한역본은 법현(法顯) 역의 <대반열반경> 외 두 종류가 있다.
대승열반경의 한역은 법현과 불타발타라(佛馱跋陀羅) 공역의 <대반니원경(大般泥洹經)>과 북량 담무참(曇無讖) 번역의 <대반열반경>, 그 후 위의 2가지 번역본을 종합한 <남본열반경>이 있다.
*소의경전(所依經典)---소의(所依)는 의지할 바 대상을 의미하며, 소의경전은 각 종파에서 근본으로 삼는 경전으로서 신행(信行)을 비롯해 교의적(敎義的)으로 의지하는 근본 경전을 일컫는 말이다. 예컨대, 조계종의 소의경전은 <금강경(金剛經)>과 전등법어(傳燈法語)이고, 화엄종은 <화엄경>, 법화종과 천태종은 <법화경> 하는 식이다.
*소지장(所知障)---깨달음을 방해하는 장애에는 번뇌장(煩惱障)과 소지장(所知障) 이장(二障)이 있다. 번뇌장은 탐 ? 진 ? 치(貪瞋癡) 등에 의해 수행에 지장을 받는 것이고, 소지장이란 기왕에 조금 알고 있는 지식 때문에 수행에 장애를 받는 것이다. 즉 수행을 하다가 어느 정도의 수준에 이르게 되면 여러 가지에 대해 조금 알게 되는데, 이때의 알음알이(얕은 지식)에 집착해 더 깊은 공부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 받게 되는 것이다.
정말로 깨달음을 얻고자 결심한 사람이라면 지식을 자랑삼으려는 마음도 던져버려야 하고, 남에게 존경받고 싶은 마음도 던져 버려야 한다. 지식이 인생사를 해결하지 못하고 총명이 생사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한다. 선은 사상체계가 아니라 삶에 대한 직관이다. 지식을 앞세우고 따지려 드는 것이 소지장이며 그때의 앎은 즉 번뇌의 뿌리가 될 뿐이다.---→삼장(三障) 참조.
*소품반야경(小品(般若經 - 팔천송 반야경)---<소품반야경>은 8천개의 게송(시구)으로 돼 있는 대승불교의 핵심 경전이다. 원시불교가 연기(緣起)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면 대승불교는 바로 공(空)사상에서 출발하고 있다.
반야경은 대승불교 성립 초기에 조성된 경전인데, 이 경전을 엄밀한 의미에서 ‘반야경전류’ 혹은 ‘반야부 경전’이라고 불러야 한다. 그 이유는 반야경전에 속하는 경전 수만도 수십 종류에 이르며 현존하는 대승경전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분량만큼이나 그 경명(經名)도 아주 다양하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특히 중요한 열 가지를 <십본반야(十本般若)>라고 하는데,
①《소품반야경》 ②《대품반야경》 ③《인왕반야경》 ④《금강반야경》 ⑤《반야심경》 ⑥《유수반야경》 ⑦《문수반야경》 ⑧《승천왕반야경》⑨《대반야경》 ⑩《이취반야경》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서 ③번과 ⑤번 이외에는 모두 ⑨번의 600권<대반야경>에 포함돼 있다.
이 중 <소품반야경>은 10여종의 산스크리트본과 12여 종의 티베트본, 그리고 한역본은 무려 42종의 동본이역(同本異譯)이 나올 정도로 선호됐던 경전이다.
그리고 <소품반야경>을 일명 <팔천송(八千頌)반야경>이라 부르는 것은 이 경전이 팔천 여개의 게송으로 돼 있기 때문이며, <소품반야경>은 바라밀을 어떻게 닦아야 하는가를 바로 지혜제일인 수보리(須菩提)를 등장시켜서 그 해답을 들려주고 있는 대승 초기경전이다.
*속장경(續藏經)---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이 중심이 돼 초조대장경에서 제외된 중국 및 한국 학승들의 저술인 교장(敎藏) ? 소(疏) 등을 모아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을 작성하고, 이를 목판본으로 인쇄한 것을 속장경이라 하며, 고려 선종 8년(1091)부터 고려 숙종 연간에 걸쳐 간행됐다. 하지만 경(經)은 없고 오로지 논 ? 소만으로 편성된 것이기에 대장경이라 하기엔 무리가 있다. 몽고군의 침입으로 경판이 모두 불탔다.
*속제(俗諦, samvrti-satya)---불교 사상에서 보통사람들의 상식적인 이해에 기반을 둔 진리. 속제는 일상생활에서 통상적으로 받아들여지며 의사소통이라는 실질적 목적을 위해 인정되는 경험적 실재를 말한다. 이러한 속제는 경험적 현상의 기저에 있고 언어적 표현을 넘어서는 궁극적 진리인 진제(眞諦 param?rthasatya)와 구별된다. 진제는 어떤 것도 독립적 실재성을 갖지 않은 현상세계의 참된 본질로 간주되는 보편적 공(空 ??nyat?)의 진리이다.---→이제(二諦) 참조.
*송고승전(宋高僧傳)---중국 송대(宋代)의 승려인 찬녕(贊寧:919∼1002)의 저술. 송나라 태종(太宗)의 칙명으로 980년에 착수한 후, 8년 동안 집필해 998년에 완성했다. 문헌의 선택에 약간의 문제는 있으나 중국 중세 불교사 연구에는 불가결의 자료이며, 한국의 고승 전기도 많이 수록돼 있다.
*송담(松潭, 1929년~)---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선승이다. 중국 당나라 때 “남설봉 북조주(南雪峰北趙州)”에 빗대어, “남진제 북송담(南眞際 北松潭)”이라고 한다. 현재 인천용화선원 원장.
*손챈감포왕(Songts?n Gampo, 쏭짼 감뽀, 松贊岡保, 617-698)---티베트 국왕. 중국 당 황실 출신의 문성공주(文成公主)와 브리쿠티 데비 두 왕비가 중국계와 인도계의 불교를 도입했다. 그리고 불교는 주술을 중시하는 티베트의 고유신앙인 본교(bon敎)를 배척하지 않고 혼합해 티베트 불교로 토착화해 갔다.
*수(受, vedana)---괴로움과 슬픔 등의 감수작용(感受作用)이다. 수는 내적인 감각기관과 그것에 상응하는 외적인 대상들과의 만남에서 생긴다. 수에는 성질상 세 가지가 있다. 즉 고수(苦受), 낙수(樂受), 불고불락수(不苦不樂受)의 삼수(三受)이다. 고수란 즐거운 감정이고, 낙수란 괴로운 감정이고, 불고불락수란 사수(捨受)라고도 하며, 괴로움도 즐거움도 아닌 감정을 가리킨다.
*수기(授記)---부처님이 수행자 혹은 제자가 미래에 최고의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거나 보증, 인가하는 것을 말한다. 수기란 각자가 지닌 잠재능력을 부추겨 목적성취를 위해 노력케 하는 역할을 한다. 즉 비록 미약할지라도 뭔가의 동기를 지닌 사람에게 그 스스로가 지닌 잠재능력을 인식시키고 개발케 함으로써 인간의 나약함을 자신감과 능동성으로 전환시키는 교육적 방편이다.
*수능엄(首楞嚴)---수능엄(首楞嚴)이란 범어 수랑가마(suramgama)를 음사한 말이다. 그리고 ‘수능(首楞)’이란 모든 것에 구경(究竟;최종의 극치)임을 뜻하는 말이고, ‘엄(嚴)’이란 견고하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모든 것에 구경이고, 견고한 것이 수능엄이니, 이것은 바로 불성(佛性), 여래장성(如來藏性)을 의미한다.
이 수능엄(首楞嚴)이란 말엔 용맹이란 뜻이 들어있다. 따라서 수능엄경에 나오는 능엄주(楞嚴呪)가 가지고 있는 어떤 성격을 좀 보여주고 있다. 말하자면 좋지 않은 것, 내가 살아가는데 또 공부하는데 장애가 되는 그런 마(魔)의 요소들을 쳐부순다든지, 항복을 받는다든지 하는 그런 의미가 이 용맹이라고 하는 뜻 속에 포함이 돼 있다.---→능엄신주(楞嚴神呪) 참조.
*수능엄삼매(首楞嚴三味)---<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 <광찬반야경(光讚般若經)>, <도행반야경(道行般若經)> 등에 108가지 삼매가 설명돼 있는데, 그 가운데 처음의 수능엄삼매 또는 번역해서 용건삼매(勇健三昧)는 번뇌를 깨뜨리는 견고한 삼매라 한다. 즉, 수행자가 용맹스러운 마음으로 일체의 번뇌와 욕망을 깨뜨리며 집중하고 들어가는 단계를 수능엄삼매라고 한다.
*수다원(須陀洹)---수다원(須陀洹)이란 불경 에서 팔리 원어 소타판나(sotpanna)를 음사한 말로서 번역하여 초과(初果), 예류(預流) 또는 입류(入流)라고도 한다. 성문(聲聞)의 수행의 단계인 수다원(須陀洹), 사다함(斯陀含), 아나함(阿那含), 아라한(阿羅漢)의 사과(四果) 중 처음으로 미혹을 끊기 시작함으로써 비로소 성자의 무리에 끼어든 자이다.
부지런히 정진해 6근이 6진(六塵 또는 6境)에 의해 흔들리지도 물들지도 않게 되면 수다원과를 성취하게 된다. 수다원과를 성취하게 되면 탐 ? 진 ? 치로 인한 거칠고 무거운 번뇌들이 생겨나지 않게 되므로, 다시는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등의 몸을 받지 않게 된다.---→사향사과(四向四果)와 예류자 참조.
*수라(修羅)---→아수라 참조.
*수미(守眉, ?~?)---조선 초기의 승려. 속성은 최씨(崔氏). 호는 묘각(妙覺). 13세에 출가했고, 처음엔 교학(敎學)에 뜻을 두었다가 속리산 법주사에서 신미(信眉)와 함께 수도에 정진한 후 선교(禪敎)를 부흥시키는 데 힘썼다. 세조 때인 1458년 왕명으로 해인사(海印寺)에서 <고려대장경> 50부를 인출하는 일을 맡아 감독한 뒤 왕사(王師)가 됐고, 간경도감에서 신미(信眉), 학조(學祖)와 더불어 불경 언해 작업에 종사했다. 부도는 전남 영암군 월출산(月出山) 서남쪽 자락의 도갑사(道岬寺)에 있다.
*수미단(須彌壇)---사원의 본전(本殿) 정면에 불상을 모셔 두는 단. 수미산을 본뜬 것으로 대개 방형이나 사각, 팔각, 원형 따위의 모양이 있다.
*수미산(須彌山, Sumeru, Mount)---불교의 세계관에 나오는 상상의 산이다. 세상은 아홉 산과 여덟 바다가 겹쳐져 있는데 가장 높은 산이 바로 수미산이다. 세계의 중앙에 있는 이 거대한 산의 중턱에는 사천왕이 있고, 그 꼭대기에는 제석천(帝釋天)이 사는 곳이라고 한다. 해와 달은 수미산의 허리를 돈다고 한다. 한편 여덟 바다 중 가장 바깥쪽 바다의 사방에 섬(四洲)이 있는데, 그 중 남쪽에 있는 섬, 즉 남염부제(南閻浮提)에 인간이 살고 있다고 한다. 그곳이 바로 지구라는 말이다.
이상과 같은 전설적인 면 이외에 실제로 히말라야 북쪽, 티베트 수도 라싸의 서쪽 ‘아리(阿里)’라는 지역은 소위 ‘신의 영역’으로 일컬어지는 지구상의 오지 중의 오지이다. 거기 해발 6,714m의 미개척 봉우리로 카일라스(Kailas)산이 있다. 이 산을 수미산이라 한다.
피라미드의 형상으로 꼭대기에는 만년설이 덮여 있다. 이 산이 순례자들에게는 곧 ‘우주의 중심’이고, 그들에게 카일라스산은 천상을 뚫고 선, 신앙의 중심지인 것이다. 삼라만상을 순환하게 하는 으뜸 산이요, 세계의 기둥으로 숭앙된다. 순례자들은 고대로부터 이어져 오는 의식대로 지금도 이 산을 일주한다. 3박4일이 걸리는 고행이지만 순례자들은 주저 없이 감행한다. 순례자들은 이 산을 한번 순례하면 평생의 업보가 지워진다고 믿는다. 카일라스산의 가운데 파인 기다란 홈이 불교의 설화로는 그곳이 천국에 오르는 계단이라고 설명한다.
*수바드라(Subhadra, 須跋陀羅, 수밧다라)---석가가 죽기 직전 찾아와 마지막 제자가 된 사람이다. 이때 그의 나이 120세였단다.
헌데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부처님이 열반을 한 후 마하가섭(迦葉)에게 폭언을 퍼부음으로써 가섭으로 하여금 불전 결집의 결심을 하게 했다고 하는데, 정황을 봐서 이 두 사람이 같은 인물이 아닌 것 같다.
부처님의 열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슬픔에 빠진 비구들 사이에서 오직 수바드라는 부처님의 열반을 기뻐하며 모든 통제로부터 벗어났음으로 자유롭게 살아가자고 제의했다는데, 노련한 마지막 제자가 그런 제의를 했을 리가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수보리(須菩提)---수부티(subhuti)를 음사한 이름, 선현(善現)이라고도 함. 석가모니의 십대제자, 4대 성문(聲聞) 중 한 사람이며, 공(空)사상을 가장 잘 이해하였다고 해서 해공제일(解空第一)이라 불렸고, 결코 남과 논쟁하지 않았다 해서 무쟁제일(無諍第一)이라고도 한다. 유명한 <금강경(金剛經)>에서 부처님의 대화 상대가 수보리이다. 그리고 부처님께 기원정사(祇園精?)를 세워드린 급고독(給孤獨 = 아나타 핀디카 수닷타) 장자의 조카가 바로 수보리이다.
*수불부촉(受佛付囑)---부촉(咐囑)이란 부처님이 열반하시면서 불법의 포교와 전수를 제자들에게 위임하신 것을 말한다. ‘수불부촉’이란 그런 부처님의 부촉하심을 받들어 받아들여라 하는 뜻이다.
*수식관(數息觀)---불가의 수행법 오정심관(五停心觀)의 하나. 산란한 마음을 집중시키기 위해 들숨과 날숨을 헤아리는 수행법. 숨을 쉴 때 숫자를 세며 호흡에 정신을 집중하는 수행법. 선방에 앉아 근엄하게 하는 것도 좋지만 쉽고 편안하게 일상생활에서 할 수도 있다.---→오정심관(五停心觀) 참조.
*수심결(修心訣)---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知訥)이 마음을 닦는 비결을 적은 선이론서(禪理論書).---→목우자수심결(牧牛子修心訣) 참조.
*수심요론(修心要論)---5조 홍인(弘忍, 601~674)의 저서. 문답형식으로 수심요결(修心要訣)을 밝힌 동산법문(東山法門)의 강요서(綱要書)이다. 홍인은 심성의 본원에 철저함을 본지로 삼아 수심(守心), 즉 수본진심(守本眞心)함을 강조했다. 즉, 본래의 청정한 진심을 지키는(守本眞心) 법으로 일상관(日想觀)을 중심으로 좌선법을 지도했다. 그리하여 무릇 도를 닦는 근본은 모름지기 이 몸과 마음이 본래 청정해, 생겨나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으며 분별도 없음을 알아야 한다. 자성의 원만하고 청정한 마음이 곧 본사(本師)이며, 온 누리의 모든 부처님을 염송하는 것보다 낫다라고 했다.
*수아정례(受我頂禮)---受(받을 수), 我(나 아), 頂(정수리 정), 禮(예절 예). 정례(頂禮, 바른 마음과 몸으로 예의). 따라서 ‘저의 간절한 예배를 받으시고’라는 뜻이다.
*수유(須臾)---매우 짧은 시간. (예)지구의 나이를 생각하면, 백 년도 수유에 불과하다.
*수인(手印)---인계(印契)라고도 한다. 손과 손가락으로 표현하는 수많은 상징적 모양. 조각이나 그림에서 손의 자세는 그 인물의 특성이나 그와 연관된 중요한 일화를 상징한다. 부처님의 수인에는 , 여원인(與願印), 전법륜인(轉法輪印), 선정인(禪定印),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등이 있다.---→무드라, 시무외여원인(施無畏與願印) 참조.
*수자상(壽者相)---자이나교에서 생사를 초월한 존재, 순수영혼인 지바(jiva)를 일컬음. 또 달리 대승불교에서는 오래 살려는 수명에 대한 집착을 일컫기도 한다. 어떻게 하면 생사를 초월하고,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을까 하고 집착하는 것.---→4상(四相) 참조.
*수자타(Sujata)---우루벨라 촌장 딸. 부처님께서 수자타의 우유죽(유미죽/乳米粥) 공양을 받아 기운을 회복해서 깨달음을 얻었다.
*수좌(首座)---선방에서 참선에 정진하는 스님들을 수좌(首座)라고 한다. 머리 수(首) 자에 앉을 좌(座)를 쓰는데 아마도 참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한국불교의 전통이 그대로 묻어나는 단어가 아닐까 한다.
*수처작주(隨處作主)---중국 당나라의 선승 임제(臨濟)선사의 언행을 담은 임제록(臨濟錄)에 나오는 말. ‘가는 곳마다 주인이 돼라’는 뜻이다. 수처(隨處)란 조건과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환경이고 삶터이며, 작주(作主)란 인생의 주인공이 돼 주체적으로 살라고 하는 뜻이다.
※비슷한 말---입처개진(立處皆眞) - 지금 네가 서 있는 그 곳이 모두 진리의 자리라는 뜻.
*수타니파타(Suttanipata, 經集)---수타니파타는 불경 가운데 가장 먼저 이루어진 경으로 초기 경전을 대표하는 경이다. 수타(sutta)는 팔리어로 경(經)이란 말이고, 니파타(nip?ta)는 모음[集]이란 뜻으로 부처님 말씀을 모아놓은 것이란 뜻이다.
팔리어 삼장 가운데 경장(經藏 Sutta Pi?aka)의 소부(小部, 굿다까니까야, Khuddaka Nik?ya)에는 법구경(法句經), 본생경(本生經), 여시어경(如是於經) 등 15개의 경문이 실려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수타니파타이다. 다른 불교 저서에서 가장 널리 인용되는 작품의 하나이며, 초기 불교의 문화적 ? 종교적 배경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중요한 자료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대부분 운문으로 이루어져 있고, 설화, 대화, 짧은 서정시, 격언, 속요(俗謠) 등을 포함하고 있으며, 부처님의 탄생을 이야기한 문헌 중 최고(最古)의 것이다. 〈수타니파타〉에서는 사성제(四聖諦)를 깨닫고, 팔정도(八正道)를 실천하는 것을 매우 중시하고 있다.
*수행위차(修行位次)---수행을 하려면 어떤 과정을 밟아서 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 위차이다. 실수(實修)하는 수행자로서는 굉장히 중요하다. 위차를 모르면 헤매게 되거나 아만심이 있는 사람들은 증상만(增上慢)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수행위차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하기 때문에 번쇄하게 논의가 많았다.
밀교에서는 십지(十地)를 말했고, 유가(瑜伽)에서는 십칠지(十七地)를 말했으며, 성문승(聲聞乘) ? 연각승(緣覺乘)도 나름대로 십지(十地)를 말했다. 보살승도 역시 화엄경에서 십지(十地)를 말했으며, 그와 동시에 오십오위(五十五位), 오십일위(五十一位), 오십육위(五十六位)… 등의 여러 가지 수행론이 있다.
그런데 금타(金陀, 1898-1948)스님은 이런 성문십지, 보살십지 또는 오십오위나 오십육위나 그런 여러 가지 위차를 대비하고 회통(會通)해 해탈십육위(解脫十六位) 하나의 체계를 세?다.
※증상만(增上慢)---최상의 교법과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서 얻었다고 생각해, 제가 잘난 체 하는 거만. 곧 자기 자신을 가치 이상으로 생각함.
*숙명통(宿命通)---신통(神通)이란 불교에서 말하는 수행으로 얻어지는 초인적 능력을 말하는데, 숙명통은 신통의 하나로서 자신과 다른 사람의 전생을 두루 알 수 있는 능력이다.
*숙업(宿業)---지난 세상에서 지은 여러 가지 선악의 업. 오래전부터 이루고자 했던 사업.
*숙작인론(宿作因論)---과거의 어떤 원인이 숙명적으로 현재의 세계뿐 아니라 미래의 세계까지도 결정짓고 있다는 운명론적주장이다.
부처님 당시 외도의 주장인데, 운명론 내지는 숙명론과도 유사하며, 전생에 지은 업력에 의해 내세가 결정되기 때문에 노력해도 되지 않는다는 사상이다. 즉 모든 것을 운명론적으로 보고 현실 또한 이미 결정돼 있다고 생각해서 모두 운명에 맡겨 버리기 때문에 현재의 자유의지를 무시하는 사상이다. 자유의지가 없기 때문에 수행을 해서 운명을 개척할 필요도 없을 뿐만 아니라 윤리도덕적인 근거도 희박하다.
*순경(順境)---역경(逆境)의 반대말, 순탄한 생활을 말한다. 편안하고 안락한 경계 또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에 의해 탐욕의 번뇌가 생기게 됨을 명심할 일이다. 그래서 ‘순경(順境)의 미덕은 절도(節度)이고, 역경의 미덕은 인내(忍耐)이다.’라 했다. - 베이컨의 말이다.
*순도(順道)---고구려 소수림왕 2년인(372)에 전진(前秦)의 왕 부견(符堅)이 보낸 사자를 따라와서 고구려에 불교를 전한 승려. 이것이 우리나라에 불교를 전한 최초의 공식기록이다. 순도는 불상과 불경을 가지고 고구려로 왔으며, 고구려의 왕과 신하들은 그를 귀인으로 맞이했다고 한다. 그리고 순도는 고구려 최초의 사찰인 초문사(肖門寺?, 혹은 성문사/省文寺라고도 함)에 머물면서 불교를 포교했다. 순도는 서역 승려일 가능성이 짙다. 중국 천하를 돌아다니면서 전도하다가 고구려로 온 것으로 표현돼 있기 때문이다.
*승가물(僧伽物)---승가물에는 스님들이 함께 쓰는 교단의 공유물, 예를 들면 그 절의 방사(坊舍 - 승려가 거처하는 방), 전답 등 사방승물(四方僧物 - 모든 수행승들이 함께 사용하는 승단의 공유물)이 있고, 현재 스님들이 시주로부터 보시 받아 사사로이 쓰는 현전승물(現前僧物 - 수행승의 개인 소유물)이 있다. 다시 말해 사찰 재산은 사방승물과 현전승물로 나눠져 있다.
*승가제바(僧伽提婆 : Samghdeva)---한역해서 중천(衆天), 혹은 제화(提和)라고 한다. 본래의 성(姓)은 구담씨(瞿曇氏)로 계빈국(?賓國) 사람이다. 그는 전진(前秦)왕 부견(符堅)의 건원 년간(365∼384)에 장안에 와서 포교에 종사했고, 동진(東晋)시대까지 활약해서 <옥야경(玉耶經)>을 번역했다.
※계빈국(?賓國)---펀자브(Punjab) 북쪽, 카불(Kabul) 동쪽에 있던 고대 국가.
*승만부인(勝?夫人)---승만은 산스크리트 명 슈리 말라(Srimala)를 음역한 말로 슈리(Sri)는 ‘아름다운’ 혹은 ‘행복한’이라는 뜻의 여성 명사이며, 말라(mala)는 ‘꽃다발’이라는 뜻이다. 굳이 해석한다면 아름다운 꽃다발이라 할까.
이 슈리말라의 아버지는 중인도 사위국(코살라국)의 파사닉(波斯匿, 프라세나지트)왕이며, 어머니는 말리(末利 Malika) 왕비이다. 그녀는 성장해서 아요디야(Ayodhya 阿諭陀)국의 우칭왕(友稱王)에게 시집을 가서 왕비가 됐다. 그래서 왕비를 뜻하는 데비(devi)라는 말이 붙어, 슈리말라 데비(Srimala devi)라 했으며, 독실한 불도로서 승만경(勝?經)의 주인공이다.
*승만경(勝?經)---불교의 대승경전 가운데 여래장(如來藏) 사상을 천명하는 대표적인 경전. <유마경>과 함께 대승불교의 재가득도(在家得道)의 신앙을 표방하는 경전으로서도 중요하다. 경의 구성은 사위국(舍衛國, 코살라국)의 파사닉(波斯匿, Pasenadi)왕의 딸로서 아유타국(阿踰陀國)의 우칭(友稱)왕과 결혼한 승만부인이 부처 앞에서 설주(說主)가 돼 설법을 펴고, 부처님이 승만의 설법 내용이 옳다고 인가하는 형식으로 돼 있다.
*승조(僧肇, 384~414)---구마라습(鳩摩羅什)의 제자. 인도 용수계(龍樹系)의 대승불교를 공부했고, 그가 남긴 논문집 <조론(肇論)>은 대승의 공(空)사상에 대한 깊은 이해를 보여줬으며, 그 속의 <부진공론(不眞空論)>을 통해 격의불교를 비판함으로써 후세 불교에 큰 영향을 끼쳤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여러 서적을 접했던 승조는 불교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 여러 종파들이 불교 사상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음을 인식해 빼어난 저술들을 내놓음으로써 중국불교를 한 단계 뛰어오르게 했다는 평을 받는다.
그는 무고로 인해 사형을 받게 됐으나 한마디의 변명도 하지 않고 태연자약했으며, 간수에게 청해 7일 동안의 형 집행 연기를 얻어 옥중에서 저술한 책이 <보장론(寶藏論)>이다. 그리고는 31세의 젊은 나이로 형장에서 다음의 게송을 남기고 죽었다.
사대(四大)란 원래 주인이 없으며
이 몸과 마음도 본래 공(空)한 것이니
시퍼런 칼날로 이 목을 치는 것도
불어오는 봄바람을 베는 것과 다름이 없네!
*승찬(僧璨, ?~606)---중국 선종(禪宗)의 제3대 조사(祖師)로서 선(禪)의 요체를 사언절구(四言絶句)의 시문(詩文)으로 풀이한 <신심명(信心銘)>을 남겼다.
*시계천(施戒天)의 가르침---시계천의 가르침이란 사성제와 8정도에 대해 전혀 모르는 초보자격인 재가자에게 예비법문격으로 제시하는 세 가지 실천법을 일컫는다.
세 가지 실천법이란 재가자가 일상생활을 꾸려나가면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貪瞋癡]이라는 근본 번뇌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다. 부처님께서 재가 불자에게 시계천[施戒天]이라고 해서 널리 베풀고[보시], 계율을 잘 지키면[持戒] 살아서 행복하고 죽어서는 천상[天上]에 태어난다고 하셨다.
보시와 계율이 복을 짓는데 가장 좋은 방법이고, 복을 많이 지어야 수행하여 해탈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즉 열심히 보시하고 계를 지키는 생활을 하면 반드시 천상에 태어난다는 것을 강조한 가르침이다.
*시무외인(施無畏印)---무외(無畏) 곧 두려움이 없는 마음의 상태를 베풀어 주는 수인(手印). 부처나 보살이 중생을 보호해 두렵고 무서운 마음을 없애 줘서, 우환과 고난을 해소시켜 주는, 대자대비의 덕을 보이는 수인이다. 오른팔을 꺾어 손을 어깨 높이로 올리고 손바닥을 밖으로 보인 손의 모습이다. 가장 보편적인 수인 중의 하나로서 이포외인(離怖畏印)이라고도 한다. 보통 여원인을 함께 행한다.
※여원인(與願印)---왼손을 밑으로 해 손바닥을 밖으로 보이게 하는 모습이다. 소원을 받아들인다는 뜻의 수인이다.
*시무외여원인(施無畏與願印)---중생의 두려움을 없애주는 것을 상징하는 시무외인과 중생의 모든 소원을 다 들어준다는 여원인을 합한 것이다. 일명 통인(通印)이라고도 한다.
*시설(施設, prajnapti)---불교에서는 진리 그 자체를 직접 표현하기 힘들 때 깨달음을 향해 가는 간접적 수단을 방편(方便)이라 한다. 석가모니께서 인간주의적인 바른 종교가 세상에 행해지기 위해서는 ‘진리를 깨닫기 어렵다’고 하는 어리석은 중생들의 고충을 어떻게라도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됐다.
석가모니께서는 이 문제에 골몰하다가 마침내 하나의 묘안을 발견했다. 그것은 한 마디로 말하면 중생들의 ‘깨닫는 능력(機)’을 점진적으로 성숙시켜가서 마침내 최상의 깨달음을 얻게 한다는 방법이다. 이런 방법론을 불교에서는 방편시설(方便施設)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시설’이란 갖가지 공사 현장에 설치하는 시설물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같은 말이지만 사회적 통념과 불교에서의 개념 사이에 아주 다르게 나타나는 단어의 하나이다.
여기서 방편(upaya)은 ‘접근한다’는 말이고, 시설(prajnapti)은 ‘알아내게 한다’는 뜻이다. 이런 입장에서 석가모니께서는 지극히 평범한 현실적인 사실을 깨우치는 일에서부터 설하기 시작했다. 신이나 우주의 원리와 같은 초월적인 진리에서부터 설해가는 권위주의적 종교와는 정반대의 방향이라고 말할 수가 있다.
*시심마(是甚?)---“시심마오~?”라는 화두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 “이 뭣고~?” 화두이다. 즉 중국인들이 한역 할 때 “시심마~?”라 했고, 그것을 우리말로 “이 뭣고~?”로 번역한 것이다. 이것이 무엇이냐? 하는 물음 또는 그 다그침의 경상도식 사투리이다. 경상도 사투리가 말을 짧게 줄이는 특성이 있다.
“시심마” 즉 “이 뭣고”란 인생의 모든 생활 현상에서의 변화에 따라 움직이는 이 마음가짐을 관찰하는 것으로 행하고, 머무르고, 앉고, 눕고, 말하고, 침묵하고, 움직이고, 멈춘 가운데[행주좌와어묵동정(行住坐臥語默動靜)] 나를 움직이는 마음의 주인공, <이 놈이 무엇인가>를 관찰하는 것을 말한다.
헌데 “이 뭣고?” 화두는 의심해가는 독립된 화두이면서 천칠백 가지의 화두를 모아놓은 총칙의 화두이자 그 외의 모든 화두의 화두 드는 방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예, 부모미생전 본래면목이 시심마(父母未生前本來面目 是甚?)오, 부모에게서 태어나기 전에 나의 본래면목이 ?고?[어떤 것이 ‘참나’이던고?].---→‘이 뭣고’ 참조
*시아본사(是我本師)---나의 근본이 되는 스승. 나의 본래 스승이라는 뜻이다. 불교에서 석가불은 신이 아니다. 우리와 같은 불성의 존재요 그것(연기)을 깨달은 존재이며,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이끌어 주시는 분이기 때문에 시아본사라 한다.
*시왕(十王)---염라대왕(閻羅大王)을 비롯해 지옥의 중생을 다스리는 열 명의 왕이다.
*시절인연(時節因緣)---굳이 애쓰지 않아도 혹은 꼭 피하려고 해도 만날 인연은 만나게 된다는 말이다. 어느 날 갑자기, 우연히 만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전에 만날 요인을 품고 있다가 시간적 공간적 연이 닿으면 만나게 된다는 것이라는 말이다.
*시크교(Sikh敎)---인도의 펀자브 지방을 중심으로 일어난 힌두교의 한 파. 15세기 말경에 나나크(Nanak)가 시작한 것으로, 힌두교의 개혁을 꾀하고 우상 숭배와 카스트 제도를 부정하며 창조신에 대해 열광적으로 숭배한다. 19세기 중엽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로 있을 때 두 차례에 걸쳐 영국에 대항한 시크 전쟁을 일으켰다.
*식(識, vijnana-skandha)---식은 알다, 인식하다, 요별하다는 의미이며, 넓은 의미로는 대상을 감각, 지각, 사고하는 마음의 활동 일반을 의미한다. 그래서 식을 마음이라 일컫기도 한다. 단 불교의 식(識)은 서양과학의 의식(意識)과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유의할 일이다.---→6식(六識) 참조.
*신묘장구대다라니(神妙章句大陀羅尼)---신묘장구대다라니는 천수경 내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다라니이다. 천개의 손과 눈을 가지신 관세음보살이 넓고 크고 걸림이 없는 대자대비심을 담은 큰 다라니를 설법하신 경으로 대비주(大悲呪), 천수주(千手呪)라고도 한다.
*신수(大通神秀: 606?~706)---중국 당나라 때의 선승으로 혜능(慧能)과 더불어 제5조 홍인(弘忍)의 제자이다. 그의 법계(法系)는 혜능계의 남종선(南宗禪)에 대비해 북종선(北宗禪)이라 일컬어진다. 측천무후(則天武后) 및 중종(中宗)의 부름을 받아 국사(國師)가 돼 왕공귀족들의 절대적 귀의를 받았으며, 입적 후 황실로부터 대통선사(大通禪師)로 추존됐다. 점오(漸悟 = 점수돈오/漸修頓悟)를 강조해 북종선을 점수선(漸修禪)이라고 정의한다.
*신수대장경(新修大藏經)---원제는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修大藏經)>이다. 대정(다이쇼)은 일본 연호로 이 대장경이 대정 연간(1912∼1925)에 간행됐기 때문에 붙인 것이다. 모두 100권으로 <고려대장경>을 모본으로 삼고, 인도의 산스크리트 경전, 팔리어 원전, 중국의 한역 경전을 비교 검토하는 등 학계에 보고된 모든 경전을 수집 정리해 활판인쇄로 간행했다. 대승불교와 소승불교의 경(經) ? 율(律) ? 논(論) 삼장(三藏)을 각각 구분해 편찬했으며, 한문 문장에 토를 달고 서로 다른 언어로 간행된 경전의 차이점도 설명했다. 경전의 역사적 발전 순서와 내용에 근거해 분류를 새롭게 했으며 한문 불교 경전의 최고 결정판으로서 그리고 참고 문헌으로서 전세계의 학자들에게 이용되고 있다.
*신심명(信心銘)---중국 수나라 때에, 선종의 제3대 조사(祖師)인 승찬(僧瓚)이 지은 글. 당시로서는 평생 고치지 못할 나병을 치유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그의 믿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해 후학들을 위해 신심명(信心銘)을 찬술했고, 이 글 한 편에 의해 승찬은 불가(佛家)의 존경과 찬사를 받게 됐다.
내용은 4언 146구 584자의 운문체로, 지적인 분별의식을 배척하고 선(禪)의 무분별적 세계를 간단명료하게 풀은 선시(禪詩)다. 신심명은 ‘믿음을 마음속에 새기는 글’이란 뜻이다.
*신아(神我)---신본주의에 빠져 있는 나(기독교 신자처럼)를 일컬음.
*신인종(神印宗)---신라 문무왕 때의 고승 명랑(明朗)을 종조로 하는 불교의 한 종파. 밀교 계통의 종파로 고려 초에 종파가 성립됐다. 고려시대의 불교 종파는 대부분 중국으로부터 이어받은 것이었으나 이 종파만은 순수하게 우리나라에서 시작된 것이다. 조선 초까지 이어졌다.
*신중단(神衆壇)---불법을 수호하는 신중(神衆 = 聖衆 = 衆聖)을 모신 단. 신장단(神將壇), 중단(中壇)이라고도 한다. 주로 신중탱화가 모셔져 있다. 예컨대 팔대금강신장, 제석천, 사왕천, 대범천, 야차, 건달바, 아수라, 가루라, 긴나라 등이 불법을 옹호하는 유명한 신중이다.
*신통력(神通力)---→육신통 참조.
*신해행증(信解行證)---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수행하는 과정을 넷으로 나누어 신 ? 해 ? 행 ? 증(信解行證)이라 한다. 절에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펴는 각종 의식을 행하는데, 이를 법회의식이라 하며, 그 법회의식이 형성되는 네 가지 구조 역시 신 ? 해 ? 행 ? 증이다. 즉 부처님에 대한 믿음(信)을 확고히 하고, 체계적 신앙생활을 하기 위한 불법(佛法)의 이해(解)와 이를 바탕으로 자신과 타인을 모두 이롭게 하는 실천행위(行)를 통해 부처님의 진리가 참다운 해탈의 길임을 확신하는 증득(證)의 과정을 나타낸다.
*신해탈(信解脫)---신해탈이란 믿음을 깊게 하고 믿음의 힘을 강하게 함으로써 마음의 자재로움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은 마음을 정화하는 힘을 지닌다. 믿음을 깊게 하면 그것은 자연히 지혜로 변해 간다. 이와 같이 불교에서의 믿음은 맹목적이고 비합리적인 믿음이 아니라, 지혜로 이어져 변화하는 마음이다.
*실상(實相)---‘존재의 본질’ 혹은 ‘존재의 본성’ 등 다양한 의미를 함축하면서 중요한 역할을 한 말이다. 진실 자체의 모습이라는 기본적 의미로부터 평등의 실재, 불변의 이치를 뜻하며, 모든 존재의 이치가 되는 성질을 가리키는 말이 된다. 모든 존재 자체의 성질이므로 법성(法性)이라 하고, 그 자체는 진실하고 상주하므로 진여(眞如)라 하며, 그렇게 진실하고 상주하는 것이 모든 존재의 진짜 모습이므로 실상(實相)이라 한다.
이 실상의 양상은 언어나 마음으로 헤아릴 수 없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입장이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이러한 입장의 마지막 단계인 천태종에서는 본질(理)과 현상(事)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현상이 곧 실재요, 차별이 곧 평등이라고 표현한다. 이는 모든 것이 완전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세계, 또는 미혹한 범부의 입장에서 곧바로 숭고한 부처를 볼 수 있는 세계가 실상이라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이다.
*실상반야(實相般若)---관조반야(觀照般若), 문자반야(文字般若)와 더불어 삼반야의 하나. 실상반야는 제법의 실상 그 자체를 말한다.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 세계의 모습 그 자체를 말한다. 여기에는 보는 자와 보여지는 세계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보는 자가 보이는 현실 세계, 우주와 하나가 될 때 이것이 바로 실상반야이다.
우리가 흔히 일체의 모든 존재에 불성이 있고, 법신 부처님이 두루 편만(遍滿)해 계신다고 할 때, 바로 이것은 실상반야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법의 실상, 무상, 공적이 내는 지혜로 본래 중생에게 갖추어져 있는 본질적인 것이다. 대립이나 차별을 떠나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을 직관하는 지혜를 말하기도 한다.
*실상법(實相法)---허망하지 않고 변하지 않는 온갖 법의 참된 모양, 곧 체성을 가리키는 것.
*실상인(實相印)---불법임을 증명하는 인(印), 또는 표치(標幟). 소승에서는 삼법인(三法印)을 이르고 대승에서는 제법실상(諸法實相)의 이치를 이른다. 모든 현상의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이에 대해 설하는 것이 불교의 특징이므로 인(印)이라 한다. 대승경에는 단지 일법인(一法印)만 있으니, 이른바 제법실상인데 요의경(了義經)이라 하고 대도를 얻을 수 있다. 만약 실상인(實相印)이 없다면 이것은 마구니설이다.
※요의경(了義經)---진실하고 극진한 뜻을 분명하게 말한 경전이란 뜻.
*실지(實智)---모든 법계가 공적(空寂)임을 깨닫는 참된 지혜.---→공적(空寂) 참조.
*실차난타(實叉難陀, 652~710)---당(唐) 나라 시대의 인도 출신 역경승. 산스크리트 명 시크샤난다(?ik??nanda). <대승입능가경(大乘入楞伽經)>, <신역(新譯) 화엄경(80권)> 등을 한역했고, 그가 한역한 화엄경에는 측천무후(則天武后)가 서문을 썼다.
*심상사성(心想事成)---마음이 절실하면 이뤄진다. 간절히 원하고 바라면 반드시 이뤄진다는 말.
*심소(心所, 팔리어 cetasika)---마음의 작용 혹은 심리작용을 심소라고 한다. ‘마음이 더러움에 물들었다’, 이 표현에서 마음과 마음의 작용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여기서 마음을 심(心)이라고 하고, 그 마음의 작용을 심소(心所)라고 한다. 심소는 심왕에 종속된다.
*심왕(心王, 팔리어 citta)---대상의 전체를 주체적으로 인식하는 마음, 즉 마음의 체성을 흔히 심왕(心王)이라고 하며, 육식(六識) 또는 팔식(八識)으로 분류한다.
*심왕(心王)에서 심소(心所)의 작용---심왕은 언제나 마음의 작용을 있게 하는 장의 흐름이며, 심소는 그 가운데 작용으로 나타난다. 심소를 통해서 ‘현행하는 윤회를 여실히 보는 것’이다. 관계(심왕)는 작용(심소)을 통해서 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심왕(心王)과 심소(心所)의 관계를 안식(眼識)을 예로 들어 보자. 눈[眼]과 색[色]은 별개라고 여기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눈이 없으면 색이 없고, 색이 없으면 눈도 없다. 그러나 눈과 색은 다르다. 이 다른 두 가지가 만나서 만드는 새로운 장(場)이 안식(眼識)이며, 곧 심왕이다. 만나면 그 장 가운데에서 여러 가지 심리 현상이 일어나는데, 이것이 심소이다. 관계[심왕]는 있지만 작용[심소]은 일어나지 않을 수 있으므로 심왕이 중심이 된다. 심리현상은 심왕의 장이 소유하므로 심소유법(心所有法)이라고 하며, 줄여서 심소라고 한다.
우리는 심리현상의 분별만을 따지며 살아왔기 때문에 만남의 장인 심왕에 대해서는 생소하다. 그러나 6근(六根)과 6경(六境)은 함께 만남의 장인 식(識 ; 心所)을 이루고 있다. 일상생활 속에서 보고 듣는 관계의 장이 있어야만 그 가운데에서 심리현상(심소)이 일어난다. 정신작용의 본체인 심왕(心王)에 종속된 심소(心所)가 욕망과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다.
*심우도(尋牛圖)---수행자가 정진 수행을 통해서 자기 본성을 깨달아 가는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는 일에 비유해서 그린 선화(禪畵). 전체 과정이 10단계로 구분돼 있기 때문에 십우도라고도 한다.
*심인법(心印法)---심인이란 마음의 본바탕 즉, 불심(佛心) 자성(自性)을 의미해 선종(禪宗)에서는 문자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법의 본체를 전할 때 심인(心印)을 전(傳)한다고 말한다. 부처님의 심인법이 내려오는 원동력이라 옛날에는 의발이요 이제는 심인법(心印法)이라.
진제 종정스님은 “우리 모든 사부대중은, 한 가닥 밝은 부처님의 심인법(心印法)이 단절되지 않고 천추만대에 면면히 이어지도록 바르게 참선법을 익혀 정진에 정진을 더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설하며 수행정진에 매진할 것을 당부했다.
*심지법문(心地法門)---심지법문이란 마음을 여는 법문. 마음에 관한 법문을 말한다. 세상의 중심은 마음이다. 마음이 생하면 갖가지 법(法)이 생하고, 마음이 멸하면 갖가지 법이 멸하는 것이다. 따라서 신(神)보다도 그 누구의 말보다도 마음에서 나온 진리가 가장 위대하다. 사람의 마음은 만고의 기준이다.
*심해탈(心解脫, cetovimutti)---선정(禪定)으로 탐욕을 소멸시켜 그 속박에서 벗어난 마음 상태. 즉, 심해탈은 마음을 통한 해탈이다. 구체적으로는 마음의 집중(삼매)를 통한 해탈이란 의미이니, 탐욕을 끊은 결과로 애욕을 여의고 마음에 생각하는 대로 자유경(自由境)에 노닐 수 있음을 말한다.
수행을 통해 육근이 ‘나’가 아니라고 지적(知的)으로 해탈했다 하더라도 내 마음에는 그것에 대한 집착심이 여전히 남아 있다. 따라서 ‘나’가 아니라는 것을 직관(혜해탈)했다 하면, 그 다음에는 그 마음속에 남아 있는 집착심을 없애야 된다. 무엇으로 집착심을 없애느냐, 바로 삼매, 즉 바른 선정(禪定)을 통해서 없애야 한다. 바른 선정을 통해서 집착심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면 그 때의 상태가 심해탈(心解脫)이다.---→혜해탈(慧解脫) 참조.
*10계(十戒)---십계(十戒)에는 사미(沙彌) ? 사미니(沙彌尼)가 지켜야 할 10계, 보살이 지니는 10정계(淨戒), 보살(菩薩)이 중생에게 지키게 하는 10계, 천태종(天台宗)의 10계, 10선계(善戒),
10중금계(重禁戒) 등이 있다.
이 중 소승에서 설하는 사미 ? 사미니의 십계는 ① 살생하지 말라, ② 훔치지 말라, ③ 음행하지 말라, ④ 거짓말하지 말라, ⑤ 술 마시지 말라, ⑥ 향수나 꽃다발로 바르거나 치장하지 말라, ⑦ 노래와 춤을 듣지도 말고 보지도 말라, ⑧ 사치스럽고 화려한 자리에 앉거나 눕지 말라, ⑨ 때 아닌 식사를 하지 말라, ⑩ 금이나 은 등의 보물을 받거나 비축하지 말라.
그리고 속인이 지켜야 할 십계는 소승과 대승이 함께 설하는 십선계(十善戒)가 있다.---→10선계 참조.
*십계(十界)---십법계(十法界)라고도 하는데, 지옥계 ? 아귀계 ? 축생계 ? 아수라계 ? 인간계 ? 천상계 ? 성문계 ? 연각계 ? 보살계 ? 불계를 말한다. 이 중에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계, 천상을 한데 모아 ‘육도(六道)’, 성문, 연각, 보살, 불계를 한데 모아 ‘사성(四聖)’이라고 한다. 따라서 '육범사성(六凡四聖)'이라 칭하기도 한다.
*10력(十力)---일체를 요지(了知)하는 열 가지의 십력(心力).
1) 바른 도리와 그렇지 않은 도리를 판별하는 지혜의 힘
2) 선악업과 그 과보를 여실히 아는 지혜의 힘. 업인(業因)과 이숙과보(異熟果報)의 관계를 다 안다는 것이니 즉 부처님께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얻은 업의 과보에 대해 그 이유 원인을 다 안다는 것이다.
3) 4선. 8해탈. 3삼매 등을 여실히 아는 지혜의 힘.
4) 중생의 근기가 높고 낮음을 여실히 아는 지혜의 힘.
5) 중생의 성류(性類)가 각기 다르므로 그들이 주하는 세간도 각기 다르나 부처님께서는 이를 다 아신다.
6) 중생의 의락(意樂)에 여러 가지 차별이 있으나 여실히 아는 지혜의 힘.
7) 중생의 근기란 제각기 달라 수없는 상하 우열의 계층이 있으나 부처님께서는 이를 다 아는 힘.
8) 중생의 숙명을 다 아는 지혜의 힘.
9) 초인간적인 천안(天眼)으로 중생의 나고 죽음을 보고 천함과 고귀함. 행과 불행들을 다 각각 그 업에 따라 다 아는 지혜의 힘.
10) 일체의 번뇌가 다한 것을 여실히 아는 지혜의 힘. 부처님은 중생의 갖가지 번뇌, 성향, 수행 등에 대해 정확하게 아는 지혜의 힘을 가지고 있다. 부처님에게는 이렇게 십력(十力)이 있으므로 아무런 두려움이 없다.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원효 사상의 집약서이나 불행하게도 이 저서가 전하지 않는다. 그러나 주요 내용을 미루어보면, 백가(百家)의 이론(異論)을 모아서 십문(十門)으로 분류해 난점(難點)을 들어 판결하고, 이점(異點)을 모아 정리해 화회(和會)함으로써 일승불교(一乘佛敎)를 건설하고자 논리적 근거를 제시한 것이니, 실로 한국불교의 역사적 자각이며, 최대의 특색이라고 할 수 있다.
*십바라밀(十波羅蜜)---육바라밀에 아래와 같은 바라밀을 더한 것이다.
-방편바라밀(方便波羅密) ;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방편으로 여러 형상을 나타내어 중생(衆生)을 제도하는 일.
-원바라밀(願波羅密) : 깨달음의 지혜를 얻어 중생을 제도하려는 위대한 서원.
-역바라밀(力波羅密) : 바르게 판단하고 수행하는 완전한 힘.
-지바라밀(智波羅密) : 깨닫고 난 뒤에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완전한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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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법계(十法界)---→십계(十界) 참조.
*10사(十使)---근본번뇌에는 탐(貪), 진(瞋), 치(癡), 만(慢:거만), 의(疑), 견(見:삿된 소견)의 6번뇌가 있고, 이 중 견을
신견(身見:나와 나의 것이 있다고 집착하는 견해),
변견(邊見:편벽된 극단에 집착하는 견해),
사견(邪見:인과의 이치를 부정하는 견해),
견취견(見取見:잘못된 것을 진실이라고 착각하고 집착하는 견해),
계금취견(戒禁取見:잘못된 계율이나 禁制를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라고 집착하는 견해)의 5견으로 나누어 앞의 탐 진 등의 5번뇌와 합해 10번뇌, 또는 10사(十使)라 한다. 그리고 탐, 진, 치, 만, 의, 이렇게 다섯을 5둔사(鈍使)라 한다.
*십선계(十善戒)---십선계란 선한 결과를 초래할 인간의 주요한 행위, 즉 신체적 활동에 관한 것 3종, 언어의 표현에 관한 것 4종, 마음의 동기에 관한 것 3종으로 분류해 일상적인 실천덕목으로 삼은 것이다. 십선업도(十善業道)라고도 불린다.
보살계라고 하는 대승계의 대표적인 계율이다. ①살생하지 말라. ②남의 것을 훔치지 말라. ③잘못된 음행을 하지 말라. ④거짓을 말하지 말라. ⑤이간질을 하지 말라. ⑥사나운 말을 하지 말라. ⑦실없고 잡된 말을 하지 말라. ⑧아끼어 탐내는 마음을 지니지 말라. ⑨성내거나 원한된 마음을 지니지 말라. ⑩잘못된 소견을 버려라.---→10계 참조.
*10업---10종류의 선행을 총칭한 불교용어. 십악(十惡)과 반대의 의미로 십선업(十善業), 십선도(十善道), 십선업도(十善業道)라고도 한다. 불교에서는 인간의 모든 행위를 신체, 입(언어), 마음의 3종으로 구분하고, 십선이라는 것은 신삼(身三), 구사(口四), 의삼(意三)의 악행(십악)을 행하지 않는 것이다.
즉 신체에서 ①살생(죽이는 것), ②유도(훔치는 것), ③사음(남녀의 관계의 부정), 말에서는 ④망언(거짓말을 하는 것), ⑤양설(사이를 이간질 하는 것), ⑥악구(험담을 하는 것), ⑦기어(함부로 말하는 것), 의에서는 ⑧탐욕(탐하는 것), ⑨진에(화내는 것), ⑩사견(잘못된 생각을 하는 것)의 각각을 행하지 않는 것인데 이 십선을 엄격하게 지키는 것을 십선계라고 한다.---→10선계 참조.
*십여시(十如是)---우주의 모든 형상이 열 가지 범주 안에 있다는 뜻. <묘법연화경> 방편품에 나오는 말로 만물은 여시상(如是相) ? 여시성(如是性) ? 여시체(如是體) ? 여시력(如是力) ? 여시작(如是作) ? 여시인(如是因) ? 여시연(如是緣) ? 여시과(如是果) ? 여시보(如是報) ? 여시본말구경(如是本末究竟)의 10가지 방법으로 존재하고 생성된다고 하는 이론이다.
즉, 존재 그대로의 형상, 그대로의 특성, 그대로의 본체, 그대로의 능력, 그대로의 작용, 그대로의 원인, 그대로의 조건, 현재 그대로의 결과, 미래 그대로의 과보, 그대로의 본체와 형상이 구경에는 평등하며 하나라는 말이다.
이는 우주 만물 하나하나는 외적 형상과 내면의 본성, 사물의 주체, 잠재된 힘과 작용, 구조, 직접적인 원인과 결과, 간접적 원인과 결과, 궁극의 경지를 한꺼번에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이는 천태종의 중요한 세계관으로 천태종의 모든 가르침이 시작되는 근원이기도 하다.
*십육관법(十六觀法)---십육관이라고도 한다. 관(觀)이란 보는 것, 관찰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며, 관법이란 불교수행법의 기본으로서 관심(觀心)이라고도 한다. 이 말은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 나오는 말로서, 불교에서 극락왕생(極樂往生)을 위해 극락세계를 관상(觀想)하는 관법이다. 즉, 석가모니가 마가다국의 빈비사라(頻毘娑羅)왕의 왕후 위제희 부인(韋提希夫人)에게 극락을 보여주고 그곳에 태어나는 방법을 가르칠 때 설한 것이다.
16관법이란 극락에 태어날 수 있는 방법을 열여섯 가지로 나눈 것이다. 이 관법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① 해를 생각하는 관[일상관(日想觀):지는 해를 보면서 극락정토를 관상하는 것, ② 물을 생각하는 관[수상관(水想觀)]:극락의 대지(大地)가 넓고 평탄함을 물과 얼음에 비유하여 관상하는 것, ③ 땅을 생각하는 관[지상관(地想觀)]:극락의 대지를 분명하게 관상하는 것, ④ 나무를 생각하는 관[보수관(寶樹觀)]:극락에 있는 보배의 나무를 관상하는 것. 이외에도 보지관(寶池觀), 보루관(寶樓觀), 화좌관(華座觀), 상관(像觀), 진신관(眞身觀), 관음관(觀音觀), 세지관(勢至觀), 보관(普觀), 잡상관(雜想觀), 상배관(上輩觀), 중배관, 하배관 등의 16가지이다. 이러한 열여섯 가지 관을 관상할 때 정토에 나아가게 되고, 정토를 볼 수 있는 지혜가 싹트게 되며, 주변의 사물들도 정토의 일부로 변모하는 것이다.
*십이부경(十二部經)---석가모니의 교설을 그 성질과 형식에 따라 12부로 구분 분류해 놓은 것. 십이분경(十二分經). 십이분교(十二分敎). 십이분성교(十二分聖敎)라고도 한다.
① 수다라(修多羅): 경(經). 계경(契經) ? 법본(法本)이라고 번역하는 산문체의 경전.
② 중송(重頌): 응송(應頌), 산문체의 경문 뒤에 그 내용을 운문(韻文)으로 노래한 경전.
③ 수기(授記): 경의 말뜻을 문답식으로 해석하고, 제자들의 다음 세상에서 날 곳을 예언.
④ 게송(偈頌): 고기송(孤起頌)이라 하며, 4언 ? 5언 ? 7언의 운문으로 구성된 것.
⑤ 무문자설(無問自說): 아미타경 같이 남이 묻지 않는데도 석가모니가 스스로 이야기한 말.
⑥ 인연(因綠): 연기(緣起), 경 중에서 석가를 만나 법(法)을 들은 인연 등을 설한 것.
⑦ 비유(譬喩): 경전 중에서 비유로써 은밀한 교리를 명백하게 풀이한 부분.
⑧ 본사(本事): 석가나 제자들의 지난 세상에서의 인연을 말한 부분.
⑨ 본생(本生): 자타카, 석가 자신의 지난 생에서의 보살행 (菩薩行)을 말한 부분.
⑩ 방광(方廣): 방등(方等). 광대한 진리를 말한 부분.
⑪ 미증유(未曾有): 희유법(希有法). 석가가 보인 여러 가지 신통력(神通力)을 말한 부분.
⑫ 논의(論議): 교법(敎法)의 이치를 논하고 문답한 경문 등으로 돼 있다.
*십이연기(十二緣起)---연기설(緣起說)을 12의 지분(支分)으로 정리한 것. 미혹한 세계의 인과관계를 설명한 것이다. 12지 연기 또는 12인연이라고도 한다. 그 12의 지분은, 무명(無明) ? 행(行) ? 식(識) ? 명색(名色) ? 육처(六處) ? 촉(觸) ? 수(受) ? 애(愛) ? 취(取) ? 유(有) ? 생(生) ? 노사(老死) 등이다.
*십이처(十二處)---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의 6근(根)과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의 6경(境)을 합해 12처라 하는데, 불교에서는 이 세상 현상계의 모든 것이 이 12처에 포함된다고 본다.
*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沙論)---용수(龍樹, AD 150∼250경)가 <화엄경>의 십주품을 해설한 불교서적. <화엄경>에서 가장 중요한 십지(十地)를 해설한 것이다. 책 명칭의 십주는 보살이 부처에 이르기 위해 수행하는 10단계를 말한다. 구마라습(鳩摩羅什:344∼413)이 5세기 초에 한역했다.
*십지(十地)---보살이 부처에 이르기 위해 수행하는 10단계를 말한다. <능가경>, <화엄경> 등에 나온다. 환희지(歡喜地) ? 이구지(離垢地) ? 발광지(發光地) ? 염혜지(?慧地) ? 난승지(難勝地) ? 현전지(現前地) ? 원행지(遠行地) ? 부동지(不動地) ? 선혜지(善慧地) ? 법운지(法雲地) 등의 열 가지를 가리킨다. 그리고 이 십지의 경지에 이른 보살을 십지보살이라 한다.
*십팔계(十八界)---12처(處)에 6식(識)을 더한 것을 18계라 한다.
*십팔공(十八空)---불교에서 공(空)을 그 본체와 작용을 18가지로 분류·관찰한 것. <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 제3권 및 <대집경(大集經)> 제54권에 나오는 말이다.
내용은 1) 내공(內空), 2) 외공(外空), 3) 내외공(內外空), 4) 공공(空空), 5) 대공(大空), 6) 제일의공(第一義空), 7) 유위공(有爲空), 8) 무위공(無爲空), 9) 필경공(畢竟空), 10) 무시공(無始空), 11) 산공(散空), 12) 성공(性空), 13) 자상공(自相空), 14) 제법공(諸法空), 15) 불가득공(不可得空), 16) 무법공(無法空), 17) 유법공(有法空), 18)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으로 나누어 설하고 있다.
*쌍차쌍조(雙遮雙照)---쌍차쌍조는 중도(中道)를 설명하는 용어 중에 하나이다. 천태종의 지자대사(智者大師) 지의(智?) 스님이 이것으로 중도를 잘 설명했다고 한다.
쌍(雙)이라고 하는 것은 상대의 양변을 말하는 것이다. 유와 무, 이것과 저것, 선과 악 등 일체의 차별상이다. 쌍차(雙遮)라는 것은 이 양변이 서로를 막아서 서로를 숨기는 것, 즉 서로의 소멸을 말한다. 쌍조(雙照)라는 것은 그 반대로 이 양변이 서로 비추어서 이것은 저것을, 저것은 이것을, 서로를 드러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위에서 서로 드러남이란 사성제의 집제(集諦)이고, 숨기는 것이란 멸제(滅諦)이다.
쌍차(雙遮)로써 부정을 말했다면 쌍조(雙照)로써 긍정을 말하고 있다. 차(遮)는 막아서 전체를 부정하는 것을 말하고, 조(照)는 비추어서 전체를 긍정하는 것을 말한다.
불교의 중도(中道) 공식은 앞에서 차(遮)하면 뒤에서는 반드시 조(照)하는 것이어서, 앞에서 부정을 하면 뒤에서는 반드시 긍정을 해 부정은 분명히 긍정을 전제로 하고 긍정은 부정을 전제로 해서, 쌍차쌍조(雙遮雙照)해서 차조동시(遮照同時)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 한 면만 강조해서는 중도 공식이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니 쌍차쌍조란 양변의 극단을 여윈, 그런 말과 일맥상통하는 뜻이다. 세상의 모든 시끄러움은 자기주장만 내세우는 불협화음에서 생긴다. 하모니가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것처럼, 적당한 타협과 상생이 세상을 행복하게 한다. 지극한 중도는 지혜와 자비로 귀결되는 것이다. 성철스님은 쌍차쌍조(雙遮雙照)론을 통해 갈등과 모순, 대립과 투쟁으로 점철된 현실을 통섭(通攝) 내지 원융(圓融)시키고자 했던 것이며, 그것은 극단적인 흑백논리를 초월해 모든 것을 포용하고 화해시키고자 했던 일종의 구원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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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마(Agama)---고대 인도에서는 전해 온 성인의 말씀을 ‘아가마’라고 했고, 힌두교 용어로는 ‘전승된 성전(聖典)’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그리고 불교에서는 붓다의 교설을 집성한 것을 ‘아가마’라고 불렀으므로 이를 음역해서 <아함경(阿含經)>이라 했다.
*아나율(阿那律)존자---산스크리트어 아니룻다(Aniruddha) 혹은 아누룻다(Anuruddha)이다. 아나율는 석가족 출신으로 아버지는 슛도다나대왕의 동생인 쑤꼬다나였다. 따라서 아누룻다와 석가모니 부처님과는 사촌지간이다. 말하자면 그는 석가모니의 작은 아버지 감로반왕(甘露飯王)의 아들이었다. 아나율은 어느 날 부처님 앞에 앉아 졸다가 부처님에게 꾸중을 들은 일이 있었다. 그 후 밤낮으로 자지 않고 수행 정진하다가 그만 눈이 멀었다. 그러나 그는 육신의 눈은 잃었지만 참 지혜의 눈인 천안통(天眼通)을 얻어 천안제일(天眼第一)이라 일컫는 존자가 됐다.
*아나율 팔대인념(八大人念)---아나율(阿那律)존자는 8가지 수행자의 조건을 제시해서 그것을 구도자의 표상으로 삼고자 했다. 그것이 팔대인념(八大人念) 혹은 팔대인각(八大人覺)이라 하는데, 풀어보면 대인이 되기 위한 8가지 마음가짐이라는 뜻이다.
첫째. 지족(知足)할 줄 아는 마음가짐(知足者)
둘째. 시끄럽지 않고 적정한 곳에 머무는 마음가짐(閑居者)
셋째. 욕심 없는 마음가짐(小欲者)
넷째. 계율을 지키는 마음가짐(持戒者)
다섯째. 생각이 고요한 마음가짐(三昧者)
여섯째. 지혜로운 마음가짐(智慧者)
일곱째. 많이 들으려는 마음가짐(多聞者)
열덟째. 정진하는 마음가짐(精進者)
*아나함(阿那含)---성문의 수행의 단계인 사과(四果) 중 제3단계임. ‘불환(不還)’, ‘불래(不來)’, ‘출욕(出欲)’ 등으로 번역하며, ‘결코 돌아오지 않는 자’라는 뜻이다. 아나함은 우리가 살고 있는 욕계의 번뇌를 모두 끊어 완전히 벗어난 성자이기에 ‘출욕’이라고 하며, 5욕(五慾)을 완전히 벗어나고, 죽은 다음 색계나 무색계에 태어날 뿐 다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욕계로 되돌아오지 않으므로 ‘불환’또는 ‘불래’라 한다.
*아난다(Ananda, 阿難陀)---아난(阿難)이라고도 함. 석가모니의 4촌 동생으로 십대제자(十大弟子)의 한 사람이며, 십육나한(十六羅漢)의 한 사람임. 석가모니 곁에서 시중을 들었으므로 석가의 말을 가장 많이 듣게 돼, ‘다문제일(多聞第一)’이라 불린다. 견문(見聞)이 많고 기억력이 좋아 불멸(佛滅) 후에 불경의 대부분이 이 사람의 기억에 의해 결집됐다. 따라서 후대에 경(經)이 전해지도록 한 것이 그의 가장 큰 업적이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아누다라삼막삼보리의 속음.
*아누다라삼먁삼보리---‘아누다라’는 산스크리트어로 무상(無上)으로 지고무상하다는 뜻, ‘삼’은 정(正)이고, ‘먁’은 평등을 의미하며, ‘보리’는 깨달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를 합쳐보면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으로 위없이 높고 바른 깨달음으로서 불과의 지혜를 가리키는 말이다. 즉, 대철대오(大徹大悟)를 말한다.
*아덕(我德)---‘아(我)’는 진아(眞我)를 뜻하며, 망집의 아(我)를 벗어난 무애자재(無碍自在)한 본성의 덕을 갖추고 있음을 말한다. 열반사덕(涅槃四德)인 상락아정(常樂我淨)에서의 ‘아(我)’를 말한다.
*아도(阿道)---중국 전진(前秦)의 순도(順道)가 고구려에 불상과 불경을 전한(소수림왕 2년) 그 2년 후인 374년에 아도(阿道)가 들어와서 이불란사(伊弗蘭寺)를 세웠다.
*아도(阿道)---<삼국유사>에서는 아도를 전설적 인물인 묵호자(墨胡子)와 동일 인물로 추정하고 있는데, 이 묵호자는 신라 눌지왕(訥祗王) 때에 고구려로부터 신라 변방인 일선군(一善郡:지금의 선산군)으로 들어와 모례(毛禮)라는 사람의 집에 숨어 지내다가, 성국공주(成國公主)의 병을 고쳐주고, 그 공로로 신라에 불교를 최초로 전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아디 붓다(Adi Buddha)---→본초불 참조.
*아라한(阿羅漢,Arhan)---성문의 수행의 단계인 사과(四果) 중 마지막 단계, 최고의 경지. ‘응공(應供), 응진(應眞)’이라 하기도 한다. 안과 밖이 항상 고요해 다툼이 없으므로 아라한은 언제나 무쟁삼매(無諍三昧) 속에 머무르고, 모든 번뇌를 다 끊어 마땅히 공양을 받을만한 분이기 때문에 ‘응공’이라 한다.
부처님의 직접 가르침인 초기불교에서는 수행자의 최고 단계였으나 대승불교에 와서 ‘보살’이 생겨 아라한은 나한(羅漢)이라 하며, 그 격이 보살 아래로 떨어졌다.
*아말라식(阿末羅識, Amala-vijnana)=암마라식(菴摩羅識)=아마라식(阿摩羅識)=제9식---인간의 육신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의식도 진화해 제8식 아뢰야식 이외에 반야(般若)의 지혜 내지는 제9식이 있다는 것이다.
인간에겐 의식인 제6식(六識)이 있고, 그 밑바탕에 제7식 말나식(末那識)이 있으며, 그 보다 깊은 제8식 아뢰야식(阿賴耶識)이 있다. 그리고 그보다 더 깊은 제9식 암마라식이 있는데 그 자리가 이른바 불성(佛性)으로서 부처님께만 갖추어진 식이어서 제9식이 곧 부처라고 한다.
*아미타불(Amitabha)의 의미---아미타바의 아(阿)자는 무(無)의 뜻이며, 이것은 화신을 의미한다. 미(彌)자는 원만하다는 의미로 해서 보신을 의미하고, 타(陀)자는 법의 뜻으로서 법신을 의미하는데, 이처럼 삼신을 다 갖추고 있는 삼신일불(三身一佛)인 아미타불은 바로 우리의 참 자아(眞我)요 본래면목이다.
*아바다나(阿波陀那, Avadana)---‘고귀한 행위들’이라는 뜻이다. 초기 경전의 율장(律藏) 안에 산재하고 있는 부처님에 관한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해 별도로 편집된 문헌이다. 부처님의 생애에 관한 이야기와 불교를 신봉했던 위대한 아소카 왕에 관한 이야기를 포함해 38개의 전설을 담고 있다.
아바다나로 분류되는 것 가운데 가장 유명하고 가장 긴 문헌은 ‘위대한 이야기’의 뜻을 가진〈마하바스투 Mah?vastu〉인데, 이 작품은 부파불교시대에 대중부(Mah?sa?ghika)에서 석가모니의 현생과 전생의 기적적인 사건에 대한 이야기들을 편집한 것이다.
*아비달마(阿毘達磨, Abhidharma)---아비담마(abhidhamma)라고도 하며, 부처님의 교법에 대한 연구와 해석을 말하는 것으로 보통 논장(論藏)이라 한다. 부파불교시대에 많은 논(論)이 만들어지고, 그 쌓인 것이 후일에 정비돼 논장이 됐다. 따라서 부파불교시대의 불교를 아비달마불교라고도 한다. 논장은 모두 7개가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dhamma, 담마)에 대해(Abhi, 아비)’라는 뜻으로 아비담마(Abhidhamma) 칠론(七論)이라고도 한다.
① 담마상가니(Dhammasangani, 法集論)---‘법의 모음’이라는 뜻으로 아비담마의 모든 주제들이 열거됨.
② 위방가(Vibhanga, 分別論)---부처의 가르침을 온(蘊), 처(處), 계(界), 근(根) 등 18가지로 분류해 설명.
③ 다뚜까타(Dhatukatha, 界論)---여러 법들을 문답 형식으로 설명.
④ 뿍갈라빤나띠(Puggalapannatti, 八施設論)---여러 형태의 인간에 대한 질문과 답.
⑤ 까타왓투(Kathavatthu, 論事)---여러 종파간의 다른 견해를 설명.
⑥ 야마까(Yamaka, 雙論)---아비담마의 용어 해설서.
⑦ 빳타나(Patthana, 發趣論)---원인과 결과의 법칙을 상세히 다루는 책. 논장 중 가장 방대하고 난해한 논서이다.
*아비달마순정리론(阿毘達磨順正理論)---4세기경 인도의 승려 중현(衆賢, Samghabhadra/상가바드라)이 세친(世親:320?∼420?)의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을 반박한 책. 세친이 <구사론>에서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의 이론을 비판적으로 취급한 데 비하여, 이 책은 <구사론>의 내용을 인용하면서 이를 비판함으로써 설일체유부의 이론의 정당성을 입증하려 했다. '순정리론'의 '정리'란, 유부의 정통 학설을 의미한다. 한역본(漢譯本)으로는 현장(玄?)의 역본(80권) 등이 있다
※<아비달마구사론>을 계승한 것으로 중현(衆賢)의 <아비달마순정리론>과 <아비달마장현종론>이 있다. 이 두 가지 논서는 운문의 부분에서는 구사론의 그것을 거의 그대로 채용하지만 산문으로 된 해설부분에서는 바수반두(世親)의 학설을 엄격히 비판해 정통파 설일체유부의 학설을 선양하려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아비달마장현종론(阿毘達磨藏顯宗論)---중현(衆賢) 지음,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의 취지를 밝힌 저술. 당(唐)의 현장(玄?) 번역.
*아비담심론(雜阿毘曇心論)---설일체유부의 법승(法勝) 지음, 동진(東晋)의 승가제바(僧伽提婆) ? 혜원(慧遠)이 한역했다. 작은 논(論)이지만 부파불교 시대에 설일체유부의 학설을 조직화하는 데 특기할 만한 공헌을 했다. 이 논은 모두 10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앞의 7장에서는 복잡하게 발달한 설일체유부의 사상을 정연하게 조직하고 있다.
*아비발치(阿?跋致, Avaivartika)---불퇴(不退) 혹은 불퇴전(不退轉)이란 말로, 반드시 성불(成佛) 함과 동시에 보살위에서 후퇴하지 않을 위치. 아유월치(阿惟越致)라고도 함. 불도를 수행하는 과정에 여기까지 오면 절대로 후퇴할 염려가 없다는 경지이다. 그 후퇴하지 않을 보장이 불방일(不放逸)이다.
*아사리(阿?梨)---범어 아사리아(acarya)의 음역이다.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의 행위를 바르게 지도해 그 모범이 될 수 있는 승려. 불교 교단의 스승을 총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여러 아사리가 있으며, 특히 삭발아사리는 머리를 깎아 준 스승이고, 출가아사리는 십계아사리라고도 하는데, 출가의식인 득도식(得度式) 때 10계를 일러주는 스승이며, 수계아사리는 갈마아사리라고 하는데 구족계(具足戒)를 주는 스승이다.
*아사세왕(阿?世王, 아자타샤트루, BC490?~BC458?)---중인도 마가다국(摩揭陀國, Magadha)의 왕. 아버지는 빈비사라(頻婆娑羅, Bimbisara, BC 582~554 재위)왕이고, 어머니는 위제희(韋提希)임. 반역자 부처님의 4촌 동생 데바닷다(提婆達多)의 악한 꼬임에 빠져 부왕인 빈비사라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 강대국인 코살라와 패권다툼을 벌여 코살라를 격파하고 갠지스강 유역의 최강국으로 군림했으며, 군사조직 ·지배체제를 정비해 인도 고대통일국가 형성의 기초를 닦았다. 나중에 참회를 해서 부처님의 제자가 되고, 불교를 적극 보호 육성했다고 전해지며, 그의 치세 동안 불교와 도시 상공업이 번성했다.
*아상(我相, atman)---4상의 하나, 브라만교의 아트만을 일컬음. 달리는, 이 몸뚱이와 마음을 가지고 ‘나’ 혹은 ‘자아’라고 고집하고 집착하는 것. 내가 잘 났다, 내가 최고라고 집착하는 것. 이 아상의 타파가 무아(無我)의 실천이고, 연기, 공의 실천이다.
*아상가(阿僧伽)---→무착 참조.
*아소카왕(Ashoka, 阿育王)---아소카왕은 인도 마가다(Magadha)제국 제3왕조인 마우리아왕조(Maurya dynasty)의 세 번째 임금으로 마우리아왕조의 개창자인 찬드라굽타의 손자이다. 인도사상 최초의 통일국가를 이룬 왕(재위: BC 265년경 ~ BC 238년, 혹은 BC 272~BC 232)으로서 불교의 이상을 구현한 ‘법의 대왕’으로 불린다. 불법(佛法)에 바탕 둔 통치이념 전파와 불교의 세계종교화의 기틀을 마련함으로써 ‘전륜성왕(轉輪聖王)’으로 불린다.
아소카왕에 의해 불교 교세는 인도 전체에 퍼져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그리하여 세 번째 경전 편찬회의는 아소카왕의 주도로 수도 파탈리푸트라(Pataliputra, 파타리불성, 波陀利佛城, 華氏城, 현재의 파트나)의 계원사(鷄園寺)에서 열렸다. 이때 구전으로만 전해오던 부처님 말씀이 팔리어로 문자화(文字化)됐다고 한다. 1, 2차 결집 때는 경(經)과 율(律)만 결집했지만, 이때는 논장(論藏)도 결집해 불경의 영역이 훨씬 확장 정비됨으로써 비로소 <팔리어 삼장>의 기초가 성립됐다.
아소카왕의 주도로 열린 제3차 결집이 끝난 직후 아소카 왕은 자신의 지배 이념인 법에 의한 정복을 실현시키기 위해 주변국으로 전법사(傳法師, 포교사)를 파견해 경전을 전했다. 스리랑카의 역사서 <마하밤사(Mahavamsa, 丈史 혹은 大史)>에 의하면 간다라, 카슈미르, 랑카(스리랑카) 등 9개국으로 전파했다고 한다.
*아수라(阿修羅, Asura)---줄여서 <수라>라고도 하는데, 불교를 수호해주는 신장인 팔부중(八部衆)의 하나로서 매우 호전적이며 공격적이다. 아수라는 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인간과 신의 중간적 존재이다.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을 못하고 남이 잘 되는 것을 보지 못해 시비를 걸고 싸우기를 좋아하는 귀신으로, 항상 제석천과 싸움을 벌인다. 생전에 몹시 공격적이고 시기심과 교만심이 강한 사람들이 죽어서 업장에 따라 가는 곳을 아수라라고 한다.
*아슈바고샤(Asvaghoa, 80?~150?)---→마명 참조.
*아승기(阿僧祇)---산스크리트 아상가(asanga)를 음역한 말로, 수리적으로는 10의 56승을 뜻하지만 수로 표현할 수 없는 가장 많은 수를 뜻한다. 갠지스강의 모래 수를 뜻하는 항하사(恒河沙)보다 더 많은 수를 이르는 말이다.---→흔히 ‘아승지’로 잘못 표기한다.
*아승기겁(阿僧祇劫)---무수겁(無數劫)의 뜻. 계산할 수 없는 무한히 긴 시간을 말한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수량. 아(阿)는 무(無), 승지(僧祗)는 수량, 겁(劫)은 시간을 뜻함.---→흔히 ‘아승지겁’으로 잘못 표기한다.
※겁(劫)---불교에서 일정한 숫자로 나타낼 수 없는 무한한 시간. 산스크리트 ‘kalpa’의 음역인 겁파(劫波)의 약칭으로, 장시(長時) ? 대시(大時)라 의역된다. 본래 인도에서는 범천(梵天)의 하루, 곧 인간계의 4억 3200만 년을 1겁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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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다阿逸多)---미륵보살의 별명. 산스크리트어 ajita의 음사. 미륵은 성씨이고 본래 이름이 아일다(阿逸多)이다.
*아제불타(阿提佛陀)---→아디 붓다, 본초불 참조
*아촉불(阿?佛)---범어 악소바야 붓다(Aksobhaya Buddha)를 음역한 것이다. ‘악소바야’란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부동불(不動佛), 무동불(無動佛)이라 하고, 동요하지 않으며 결코 분노하지 않아서 무노불(無怒佛)이라 의역된다. 불교에서 분노를 가라앉히고 마음의 동요를 진정시키는 역할을 하는 부처이다. 이 세계에서 동쪽으로 1천의 불국토를 지나는 곳에 아비라타(Abhirata: 阿比羅提)라는 나라가 있는데, 아촉불은 거기서 설법을 하고 있다고 한다.
*아힘사(ahims?)---인도 종교 ? 도덕의 기본적 사상. ‘불살생(不殺生)’의 뜻으로, 힌두교, 자이나교, 불교에서 이상으로 삼고 있으며, 간디가 독립 운동을 벌일 때는 ‘비폭력’의 뜻으로도 사용했다.
*악고(握固)---도교의 용어. 갓난아기가 태어날 때 주먹을 꼭 쥐고 있는 것. 중생은 습관적으로 무엇이든지 붙들고 놓지 않으려 하는 것을 뜻한다.
*악도(惡道, durgati)---산스크리트 ‘두르가티’의 한역이며, 아파가야저(阿波伽耶底) 등으로 음역한다. 불교의 윤회사상에서 말하는 악한 일을 많이 저지른 자가 장차 태어나게 될 좋지 않은 곳. 악취(惡趣)라고도 하며, 3악취, 4악취, 5악취 등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보통은 3악도를 말하는데, 제일 좋지 않은 곳이 지옥도(地獄道)이고, 그 다음이 아귀도(餓鬼道), 세 번째가 수라도(修羅道)이다. 4악도는 3악도에 아수라(阿修羅)가 첨가된다.
*악작(惡作)---후회, “아!(잘못했구나!)”
*안거(安居, Varsa)---승려들이 4월 보름 다음날부터 7월 보름날까지 3개월간(하안거), 음력 10월 보름 다음 날부터 다음 해 정월 보름날까지 3개월간(동안거) 한곳에 모여 일체의 외출을 금하고 수행에만 전념하는 것.
*안락행(安樂行)---안락행이란 어떤 경우에도 평화로운 마음, 기쁜 마음, 안온한 마음으로 수행하는 것이다. 안락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자기를 스스로 편안하게 만드는 것, 즉 자기의 마음가짐에 따라 어디서나 안락한 세상이 열린다는 것이다.
*안세고(安世高, An Shigao, AD 25~220 혹은 147~167)---세고(世高)는 자, 본명은 안청(安淸). 후한시대에 중국에 들어온 최초의 역경승(譯經僧). 안식국(安息國, 파르티아 제국)의 왕자였으나 왕위를 버리고 불교에 귀의했다. 그의 불경 번역은 중국 역경사에서 최초기에 해당하며, 그는 특히 소승불교의 전적(典籍)인 아비달마와 선경(禪經)에 정통했다. 현재 <안반수의경(安般守意經)>, <음지입경(陰持入經)>, <십이문론(十二門論)> 등 그의 이름으로 돼 있는 역전(譯典)은 많이 남아 있지만, 그 진위는 확실하지가 않다.
*안심법문(安心法門)---불교는 팔만 사천 법문 전부가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안심법문이다. 그래서 부처님 가르침을 안심법문이라 한다. 누구나 부처님 말씀을 듣고 있노라면 마음이 편안해 진다. 그것은 부처님 말씀이 진리를 설하기 때문이다. 본래 진리란 것은 어렵고 복잡한 것이 없다. 진리의 세계는 안락하고 편안하다. 그래서 안심법문이다.
중국에 선종을 일으킨 달마(達磨)의 선사상 원형이 바로 안심법문이다. 어느 날 2조 혜가(慧可)가 달마에게 간절히 청했다.
“스승님 제 마음이 몹시 불안합니다. 바라옵건대 제 마음을 편안케 해 주십시오.”
“그 불안한 마음을 내게 가져오너라. 내가 편하게 해주리라.”
“아무리 찾아도 그 마음을 찾을 길 없습니다.”
“나는 이미 그대의 마음을 편안하게 했도다<我與汝安心竟>.”
불안(不安)은 단지 심리적 상황일 뿐, 본디 그 실체는 없다는 점을 달마는 날카로운 당기일구(堂機一句)로 혜가를 깨우쳐준 것이다. 혜가가 마음을 찾아도 찾을 수 없다고 말한 것은, 그 마음이 형상과 문자를 초월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일화에 의해 절대적인 마음의 깨달음이 선종의 중요한 전통으로 자리 잡게 됐다.
※당기일구(堂機一句)란 이와 같이 순간적으로 전광석화처럼 아무런 군데기 하나 없이 척 나오는 한 마디 말(對句)이다. 선문답(禪問答)에서는 제자의 물음에 스승은 항상 끊듯이 짧게 말한다.
*안심입명(安心立命)---생사의 두려움으로부터 초월해 몸과 마음이 평온한 상태. 모든 의혹과 번뇌를 떨쳐버려 생사와 이해를 초월해 모든 것을 천명에 맡길 수 있는 안정된 마음상태, 혹은 진리를 깨달은 상태를 말한다.
*안양(安養)---안양이란 불가에서 아미타불(阿彌陀佛)이 상주하는 청정(淸淨)한 극락정토(極樂淨土)의 세계를 말하며 현세의 서쪽으로 10만억 불토(佛土)를 지나 있다는 즐거움만 있고, 자유로운 곳이다.
*안함(安含, 579∼640년)---안홍(安弘)이라고도 한다. 속성은 김(金). 신라 십성의 한 사람으로, 진평왕 23년(601)에 왕명을 받고 중국 수나라에 유학 가서 밀교를 배워 진평왕 27년(605)에 호승(胡僧) 비마진제(毗摩眞諦)ㆍ농가타(農加陀) 등과 함께 귀국했다. 서역(西域)의 승려들이 신라에 들어온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저서에 <동도성립기(東都成立記)>가 있다.
*알음알이---한자로 지해(知解)라 한다. ‘지견해회(知見解會)’의 준말로서 사전에는 ‘약삭빠른 수단’이라 적혀 있는데, 잔머리를 굴리면서 분석하고 억측하는 것이다. 좋게 말하면 분석력이고, 나쁘게 말하면 잔꾀 굴리는 것이다.
우리 속담에 ‘지(자기) 꾀에 지가 빠진다’는 말이 있는데, 화두참구 역시 같다. 알음알이는 깨달음을 가로 막고 있는 존재다. 때문에 참선할 때에는 알음알이를 가장 두려워해야 한다. 정면으로 화두를 참구하지 않고 잔머리를 굴려서 알려고 하고, 이리저리 지능적으로 알려고 하기 때문이다. 선에서 불립문자, 언어도단이란 것도 다 알음알이를 두지 말라는 말과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절에 가면 주련에 “入此門來 莫存知解(이 절에 들어온 자는 알음알이를 갖지 마라)”라고 적혀 있다.
*애(愛)---12연기에서는 수(受)를 연해 애가 발생한다. 맹목적으로 즐거움의 대상을 추구하는 욕심이 애(愛)이다. 따라서 불교에서 애를 번뇌 중의 가장 심한 것으로 보고, 수도에 있어서도 커다란 장애가 된다고 한다. 애(愛)는 마음을 더럽게 하는[染着] 장애[煩惱障]의 대표적인 것이다.
*야단법석(野壇法席)---법당 아닌 곳, 숲속이나 광장 등에 임시로 단을 마련해 야외법회를 하는 것을 말한다. 이럴 때 여러 사람이 모여드니 야단스럽고 시끄러운 분위기가 될 수밖에 없다.
*야마천(夜摩天)---불교의 우주관에서 설정한 욕계(欲界)의 6천(天) 가운데 제3천. 수미산 꼭대기에 있는 도리천(?利天) 위의 공간상에 위치하며, 수야마천(須夜摩天)ㆍ염마천(焰摩天)이라고도 한다.
*야사(Yasa)---야사는 부처님이 초전법륜을 한 땅인 미가다야(鹿野苑)가 있는 바라나시의 큰 부호 상인의 아들이었고, 최초로 재가불자가 된 사람임. 부처님께서는 야사(Yasa)의 출가를 허락하시어 깨닫게 하시고, 야사의 친구 오십 명의 출가를 이어서 허락하시어 깨닫게 하셨다.
*야운(野雲) 비구---<자경문(自警文)>의 저자. 이 책은 현재 우리나라 승려가 반드시 공부해야 하는 소의경전(所依經典)이 되고 있다. 야운스님은 정확한 생몰연대가 없으며, 역대에 두 분의 야운스님이 계시다. 신라 원효스님의 제자 야운스님과 고려 말 나옹(懶翁)선사의 제자 야운 스님이 있다. 두 분 중 한분이라는 설이 있을 뿐 확실한 근거는 없다. 나옹의 제자 야운스님은 오랫동안 나옹의 시자(侍者)를 지냈으며, 항상 지극한 정성과 성실로써 스승을 받들어 나옹으로부터 크게 사랑을 받았다.
*야차(夜叉, Yaksa)---불법을 수호하는 여러 신장 중의 하나. 야차는 생김새가 추괴하고 잔인 혹독한 귀신이었는데, 불법에 귀의해 비사문천왕(毘沙門天王)의 휘하에서 북방을 수호하는 수문장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약사여래(藥師如來, Bhaisajyaguru)---중생의 질병을 고쳐주는 약사신앙의 대상이 되는 부처. 약사유리광여래(藥師瑠璃光如來) 혹은 대의왕불(大醫王佛)이라고도 한다. 모든 중생의 질병을 치료하고 재앙을 소멸시키며, 부처의 원만행(圓滿行)을 닦는 이로 하여금 무상보리(無上菩提)의 묘과(妙果)를 증득하게 하는 부처이다. 그는 과거세에 약왕(藥王)이라는 이름의 보살로 수행하면서 중생의 아픔과 슬픔을 소멸시키기 위한 12가지 대원(大願)을 세웠다.
<약사여래본원경藥師如來本願經>에 따르면, 약사불이 머무는 동방 정유리세계(淨瑠璃世界)는 아미타정토와 같고, 약사의 좌우에는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 있고 12신장(十二神將)을 권속으로 거느린다고 하였다. 또한 손에는 약합(藥盒)을 들고 있는 것이 특징이나 원래는 보주(寶珠)를 쥐고 있었다고도 한다.
*약사전(藥師殿)---만월보전(滿月寶殿) 혹은 유리광전(琉璃光殿), 보광전(寶光殿)이라고도 함. 주불은 약사여래, 협시보살은 일광보살과 월광보살.
*약석(藥石)---약과 침이라는 뜻으로, 여러 가지 약을 통틀어 이르는 말. 남의 잘못을 지적하고 주의를 주어서 그것을 고치는 데에 도움이 되는 말. 그러나 불교에서는 저녁 공양을 이르는 말이다.
*약찬게(略纂偈)---화엄경은 방대한 경전이다. 그래서 대중들을 위해 화엄경을 요약한 것이 ‘법성게(法性偈)’와 ‘약찬게(略纂偈)’로서 간략하게 게송으로 화엄의 사상을 찬탄하고 있다. 그 중 용수 보살(龍樹菩薩)이 <화엄경>의 구성에 대해 간략히 엮어 놓은 게송이 약찬게이며, 신라의 의상대사가 중국에 유학해 화엄에 대한 내용을 간략히 저술한 게송이 바로 법성게이다. 이와 같이 약찬게는 용수보살이 화엄경을 간략하게 정리한 것이므로 원명은 ‘대방광불화엄경 용수보살 약찬게’이다.
*얀트라(yantra)---얀트라는 “유지하다. 지지하다. 지탱하다. 다스리다. 통제하다”의 의미를 지닌 얌(yam)이라는 산스크리트어 어근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따라서 얀트라는 갖가지 에너지들을 통제할 수 있는, 의식이 집중된 역장(力場)을 의미하는 기하학적인 도형인데, 명상의 한 방편으로 정좌하고 얀트라만 보고 있어도 명상이 가능하다고 한다. ‘옴’이라는 소리가 만트라의 대표 소리라면 점, 선, 곡선, 원, 삼각형, 사각형, 연꽃무늬들로 구성된다. 그중에서도 점은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얍윰(yab-yum)---티베트 불화를 탕카(thangka, 幀畵)라 한다. 천이나 종이에 그림을 그려 벽에 거는 불화의 종류인데 족자 또는 액자로 만들어 사용한다. 그런 탕카 중에 ‘남녀교합상’이 노골적으로 그려져 있는 ‘얍윰(yab-yum)’이 있다. 불교의 궁극의 경지인 열반을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에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남녀교합상이 활용됐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세는 남성적이라고 간주되는 적극적인 힘으로서의 방편(方便)과 여성적이라고 간주되는 지혜로서의 반야(般若)의 신비적 합일을 나타내며, 남녀가 교합함으로써 궁극의 경지인 ‘열반’을 성취해 해탈 성불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남녀교합상에서 보여지는 지혜와 방편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힌두이즘의 탄트리즘에서 비롯된다. 즉 힌두교에서의 ‘시바(Siva)’와 ‘삭티(Saktl)’의 관계를 불교적으로 지혜와 방편으로 바꾸어 놓았을 뿐 그 바탕을 보면 전혀 구별이 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불교전통에서는 용인할 수 없는 얍윰이라는 노골적인 성행위 장면이 탕카라는 형식을 빌어서 표현하는 것은 좌도밀교(左道密敎)에서 불교타락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양구(良久)---언어와 생각이 끊어진 설법의 묵시. 묵연 양구(默然 良久). “스승님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습니까?” 그러자 선사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이를 양구(良久)라고 한다.
*어록산림(語錄山林)---산림법회(山林法會)란 사찰에서 불경을 강설하는 모임을 말하며, 어록산림이란 불경 대신 조사어록(祖師語錄)을 강설하는 법회를 통해 선풍 진작을 하는 것을 말함.
*어시바루---바루 중에서 맨 큰 바루가 어시바루임.
*언어도단 심행처멸(言語道斷心行處滅)---대주 혜해(大珠慧海)의 어록집 <돈오입도요문론(頓悟入道要門論)>에 있는 말, “경에 이르기를 ‘언어의 길이 끊어지고 마음 가는 곳이 없어진다.’고 하니 그 뜻이 어떠합니까?”라 적혀 있다.
즉 진리의 궁극처는 깊고도 묘해서 말로써는 어떻게 설명할 수도 없고, 글로써도 도저히 표현할 수 없으며, 마음으로써도 결코 생각할 수 없음을 찬탄하는 말.
곧 일원의 진리를 표현하는 말로서, 일원의 진리는 말도 끊어지고 글도 끊어지고 마음으로도 도저히 미칠 수 없어서 생각조차 끊어진 경지라는 뜻. 그러나 일원의 진리는 역시 언어로써 설명할 수도 있어야 하고, 마음으로써 생각할 수도 있어야 하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스스로 현실 속에서 체험을 통해서 체득해야 한다.
*업(業, Karma)---우리들은 대개 몸과 말과 뜻의 세 가지로 활동을 한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업을 일으키는 본체는 의지라고 할 것이다. 따라서 업은 의지의 산물이라 하겠고, 행위의 원인에 따른 과보로서 업이 형성되는 것이다.
즉, 업이란 “어떤 결과를 낳는 원인이 되는 의도된 행위”라고 정의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업이란 어떤 행위의 결과(과보/果報)가 나타날 때, 그 결과의 원인이 된 행위라 할 수 있다.
*업감연기설(業感緣起說)---연기론은 시대와 학파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해석됐다. 부파불교(部派佛敎)에서 연기론은 특히 업(業)의 사상과 결합해 업감연기설(業感緣起說)로 나타났다. 이것은 중생의 생사유전(生死流轉)이 모두 자신의 업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업경대(業鏡臺)---지옥의 염라대왕(閻羅大王)이 가지고 있다는 인간의 죄를 비추어보는 거울.
*업식(業識)---우리가 저지른 업은 모두 업장(業藏=아뢰야식)에 저장된다. 악업이나 선업이나 모두 저장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업장에 저장된 업이 어떤 계기로 움직여 일어나는 생각을 업식(業識)이라고 한다. 즉 저장된 업이 기회만 있으면 밖으로 나타나서 또 그와 같은 일을 저지르게 유도를 하는데, 그것이 업식이다.
*업식성(業識性)---업식성이란 업을 짓는 성품으로서 옳다 그르다, 좋다 나쁘다 등 흑백논리로 따지는 차별의식과 분별의식의 중생심을 말한다.
*업장(業藏, 아뢰야식)---불교에서는 우리 인간의 인식활동을 안(眼) ? 이(耳) ? 비(鼻) ? 설(舌) ? 신(身) 다섯 가지 감각기관[5근/五根=5관/五官]이 인식하는 ‘전5식(前五識)’과 정신부분인 제6식인 의식(意識)을 합해서 6식(六識)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제6식인 의식의 뿌리가 되는 것이 제7식인 말나식(末那識;manas)이다.
말나식은 자아의식(自我意識)으로서 제6식보다 한 단계 깊은 마음의 세계이다. 그리고 제7식 말나식보다 더 심층에 숨어있는 잠재의식이 제8식 아뢰야식(阿賴耶識, alaya)이다. 모든 일어난 일이나 생각들을 전부 받아들여서 기록하고 저장하는 카메라의 필름과 같은 역할을 하는 무의식이 아뢰야식이다. 여러 행위가 필름에 찍히듯이 업이 돼 아뢰야식에 전부 저장되게 된다. 그래서 아뢰야식을 업장(業藏=업의 창고) 혹은 장식(藏識)이라 한다. 즉 6식을 통해서 얻어지는 모든 작용이 제7식 말나식을 통해 아뢰야식으로 저장된다.
*업장(業障)---깨달음에 이르는데 방해가 되는 세 가지 장애[삼장(三障)], 곧 업장(業障) ? 번뇌장(煩惱障) ? 보장(報障)의 하나. 잘못 저지른 악업에 의해 나타나는 장애를 이른다.
*업처(業處, kammatthana)---명상의 토대, 명상할 때 집중의 대상 또는 그것을 이용하는 명상의 한 단계.〈청정도론(淸淨道論)>에 따르면 40종의 업처가 있으며, 각 수행자는 자신의 성격이나 기질에 맞는 정신적 집중의 대상을 선택해야 한다. 상좌부불교에서는 사람의 기질을 탐욕 ? 성냄 ? 어리석음 ? 신뢰 ? 지혜 ? 이성 등의 6가지로 분류한다. 그런데 그 중 자기의 가장 아픈 곳(정신적인 약점)을 대상으로 수행해야 하는데, 그 아픈 곳이 업처이다.
*여(같을 如)---이 ‘여’가 불교에 들어와 쓰일 때는 ‘같이’, ‘그러한’ 뜻으로만 쓰이지 않고 ‘물건의 본연 그대로의 모습’이란 뜻으로 인용된다. 자연법이(自然法爾)와 같은 뜻이다. 이 글자는 대체로 부처님을 상징하는 여래(如來)에서 볼 수가 있다.
<여래>란 의미는 ‘그렇게 오신 분’, 또는 ‘그와 같이 오신 분’이란 뜻으로 부처님의 존칭 중 하나이다. 우리가 스님들께 인사를 드릴 때, ‘수행이 항상 如如 하십니까?’ 고 여쭈는 것이다. 그처럼 언제나 적정한 깊은 삼매의 경지를 체득해 높은 진리의 상태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여래(如來)---부처의 열 가지 이름 가운데 하나. 산스크리트어의 타타가타(tath?gata)의 역어. 〈여래〉라는 것은 〈진리 그 자체로서 다가오는 자〉라는 뜻이다.
*여래선(如來禪)---여래선이란 ‘여래의 말씀’ 즉 ‘부처님이 설한 경전에 의거해서 깨닫는 선’이란 뜻이다. 다른 말로는 여래청정선(如來淸淨禪), 또는 최상승선(最上乘禪)이라고도 한다.
여래선은 자신의 마음이 본래 청정해 번뇌가 없으며, 이 마음이 본래 부처(진리)와 다름이 없다는 이치를 깨닫는 선 공부법이다. 따라서 그 지향하는 바는 조사선(祖師禪), 묵조선(?照禪), 간화선(看話禪)과 별 차이가 없다.
헌데 여래선을 의리선(義理禪)이라고도 한다. 의리선이란 학문적 교학적, 또는 언어적 논리적인 방법을 통해 이해하는 선이란 뜻이다. 경전이나 언어문자, 뜻풀이 등에 의존해 이해하는 선이란 뜻인데, 후대에 성립한 조사선과 간화선 쪽에서 폄하하기 위한 의도로 정의한 것이다. 그것은 실참보다 교리에 의거해 이치로 이해하는 선이라고 규정했다. 문자나 뜻풀이에 얽매여 있다고 비판한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다른 나라에는 전해지지 않고 우리나라에만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석가모니가 보리수 아래에서 깨닫기는 했으나 아직 미흡한 경지에 있을 때를 여래선이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석가모니는 다시 진귀조사(眞歸祖師)를 찾아가서 조사선을 전해 받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야기는 여래선이 조사선보다 못하다고, 여래선을 폄하하려는 이들에 의해 조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주로 말씀하신 여래선(如來禪)이나, 달마스님 이후에 발달된 조사선(祖師禪)이나 내용이 둘일 수가 없다. 꼭 여래선과 조사선이 원래 둘이 아니라는 데 입각해야 한다. 그러므로 당나라 이후에는 이 두 말이 함께 쓰였는데, 조사선은 달마의 정전(正傳)인 석가의 마음을 마음으로 아는 참된 선을 말하고, 여래선은 <능가경>과 <반야경(般若經)> 등의 여래의 교설에 따라 깨닫는 선을 가리킨다.
*여래장사상(如來藏思想, 붓다가르바)---중생은 본래부터 여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갖추고 있다는 사상. 여래장은 범어 타타아가타 가르바(tathagata-garbha)의 의역(意譯)이다. 모든 중생의 탐심과 분노심 등의 번뇌 안에 은밀히 감추어져 있는 자성청정(自性淸淨)한 여래법신(如來法身), 즉 중생 안에 감추어진 여래의 인(因)을 가리킨다. 다시 말하면 번뇌로 말미암아 나타나지 않고 있는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이다.
중생에게는 부처가 될 가능성이 있음을 ‘여래가 될 태아(씨알)’라는 의미로서 ‘여래장’이라 하고, 또는 ‘부처의 원인’이라는 의미로서 불성(佛性)이라고도 한다.
우리는 이 여래장의 전조를 알라야식에서 발견할 수 있다. 과거에 지은 온갖 업의 영향으로 오염돼 있지만 마음의 창고로서 알라야식은 이로부터 다시 일체의 현상을 산출하길 반복하는 윤회의 주체이다. 이 알라야식이 오염의 상태를 씻고 청정하게 되면 곧 해탈이 이루어진다. 이 알라야식을 통해 우리가 처한 생사의 세계가 열반의 세계로, 중생이 부처로 전환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중생이 지닌 불성, 범부의 마음속에 간직돼 있는 부처가 될 가능성. 즉 중생 속에 있는 부처의 인(因)인 법장(法藏)이 있음을 말한다.
헌데 무아사상을 버린 것이 바로 여래장사상이라는 놀라운 사실이다. 여래장사상으로 말미암아 불교는 스스로 불교를 버리고 힌두교로 투항해, 힌두교의 일파가 돼 버렸다는 것이다. 부처님의 무아사상을 버린 것이 바로 여래장사상이기 때문이다.
*여리지(如理智)와 여량지(如量智)---여리지(如理智)는 절대의 진리를 증(證)하는 것으로서, 지혜의 근본이고, 우주의 본체, 절대 평등의 진리를 깨달은 부처나 보살의 지혜로서 무분별지(無分別智) 혹은 근본지(根本智)라고도 한다.
여량지(如量智)는 차별의 작용을 일으키는 지혜로서 현상계의 여러 가지 차별상(差別相)의 이치를 환히 아는 부처나 보살의 지혜로서 후득지(後得智) 혹은 차별지(差別智)라고도 한다. 다양한 번뇌와 고뇌를 수행과 체험을 통해서 체득한 지혜이다.
불가에서 일체존재의 진여불성을 깨닫는 여리지를 중시 여긴 나머지 중생제도에 작용하는 지혜인 후득지를 소홀히 하는 경향을 지적해서, ‘후득지 없는 근본지는 아상만 늘 뿐’이라고 꼬집는다.
*여민(黎民)---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은, 검은 맨머리라는 뜻으로 관직에 있지 않은 일반 백성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여실지견(如實知見)---여실지견이란 ‘있는 그대로 알고, 있는 그대로 본다’는 뜻이다. 여실지견의 의미를 규명함에 있어서 우선적으로 해명돼야 할 것은 ‘여실히 있는 그대로‘의 의미이다. 여실한 인식,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식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극복해야 할 것은,
첫째, 주관적 편향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즉 객관적인 관찰이 돼야 한다. 우리들의 삶의 상황 속에서 각자의 편견, 주관, 경험에서 비롯한 선입견을 벗어나 객관적으로 우리 삶의 주위를 바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둘째, 우리들의 인식은 우리들의 삶 속에서, 그리고 구체적인 현실세계의 관찰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 여실지견이란 진리를 인식하기 위한 방법이고, 진리는 우리들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 인식대상은 바로 우리의 삶이 돼야 하고, 우리의 삶이 처해있는 상황과 무관하게 순전히 이론적으로만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그러기에 부처님의 가르침은, 넘어진 것을 일으키심과 같이, 덮인 것을 나타내심과 같이, 헤매는 자에게 길을 가르치심과 같이, 또는 어둠 속에 등불을 가지고 와서 ‘눈 있는 자는 보라’고 하시는 가르침이며, [현실적으로 증험(證驗)되는 성질의 것이며, 때를 넘기지 않고 과보(果報)가 있는 성질의 것이며, 와서 보라고 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며, 열반(涅槃)에 잘 인도하는 성질의 것이며, 또 지혜 있는 사람은 스스로 알 수 있는 성질]을 가진 진리이다.
*여여(如如)---있는 그대로 같고 같다. 삼라만상 모든 사물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 있는 그대로 변함이 없이 같다는 뜻이다.
이 여(如)의 사상은 중국 및 한국과 일본의 불교사상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여(如)’는 ‘그대로’, ‘그와 같이’ 등의 뜻을 가진 것으로 본래 부사(副詞)였으나 나중에 명사(名詞)로 쓰이게 됐다.
이 ‘여’가 불교에 들어와 쓰일 때는 ‘같이’, ‘그러한’ 뜻으로만 쓰이지 않고 ‘물건의 본연 그대로의 모습’이란 뜻으로 인용된다. 자연법이(自然法爾)와 같은 뜻이다.
부처님의 다른 표현을 여래(如來)라고도 하는데 ‘진여로부터 내생(來生)한 이’로 수행을 완성한 사람이란 뜻인데, 진여로부터 왔기 때문에 진리의 체현자로서 중생을 가르쳐 이끈다는 부처님의 다른 이름인 것이다. ‘여여(如如)’에서 앞 글자 여(如)는 바로 여래(如來)의 여(如)자이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 보라는 ‘여’의 논리는 뒤에 공(空)과 같은 뜻에 놓이게 된다. 차례대로 관찰해 나아가 보니 모두가 공이 아닌 것이 없다. 여의 진실은 곧 공의 진실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일부 학자들은 공이면서 불공(不空), 불공이면서 공이라는 것은 여여의 뜻과 다름이 없기 때문에 중도(中道)라고도 해석한다.
헌데 당나라의 선승 대주 혜해(大珠慧海)의 어록집인 <돈오입도요문론(頓悟入道要門論)>에는 여여(如如)란 움직이지 아니한다는 뜻이니, 마음이 진여인 까닭에 여여라고 하느니라. 과거 모든 부처님들도 이 여여행을 행해서 성도하셨고, 현재의 부처님도 이 여여행을 행해서 성도하시고, 미래의 부처님도 이 여여행을 행해서 또한 성도하실 것이니, 삼세에 닦아 증한 바의 도가 다름이 없으므로 여여라 함을 알지니라. [유마경]에 이르기를 ‘모든 부처님들도 또한 같으며 미륵에 이르러도 또한 같으며, 일체 중생에 이르러도 모두 같다. 왜냐하면 불성이란 끊어지지 아니하고 있는 성품이기 때문이니라.’라고 했다.
*여원인(與願印)---수인(手印)의 한 종류. 부처님이 중생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들어준다고 하는 의미의 수인인데 여인(與印)이라고도 한다.
왼손을 내려서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게 하고 있는 손 모양으로 시무외인과는 반대가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여원인은 넷 째, 다섯째 손가락을 구부리고 있는 것이 하나의 특징이다. 시무외인과 함께 나타나고 있다. 시무외인과 여원인을 합쳐 통인(通印) 혹은 시무외여원인(施無畏與願印)이라 한다.
*역바라밀(力波羅蜜)---역(力)은 보살이 깊은 선정에 들기 위해 갖추는 힘을 가르킨다. 잡념이나 망상에 휘말리지 않고 악마(惡魔)의 유혹을 능히 이겨낼 수 있는 내적인 힘이다. 그리고 이런 내면의 힘이 밖으로 나가 중생 구제의 원이 행(行)으로 발휘되는 힘이 역이다. 보살이 아무리 원을 세웠더라도 힘을 가지고 행위 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래서 원력(願力)이란 말이 있는 것이다.
*연(그러할 然)---이 자는 일반 경전에는 찾아보기 어렵고 조사들이 남긴 조사어록에서 많이 사용되는 글자이다. 예를 들면, 무위자연(無爲自然)에서 ‘然’자가 쓰이는 것이다. “함이 없이 행함으로써 진리 자연과 일체가 되는 삶을 사는 것” 그러한 것을 ‘무위자연’이라고 하는 것이다. 조사들 법문 중에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밥 먹는다”는 그러한 최고의 경지를 밝힐 때 쓰는 단어(글자)이다. 참고로 ‘무위자연’이 도교의 단어 같지만 사실은 불교의 단어이기도 하다. ‘함이 없이 진리자연과 일체가 되는 삶’ 그러한 의미가 然자 하나에 담긴 것이다.
*연각(緣覺, pratyeka-buddha)---벽지불(?支佛) 또는 독각(獨覺)이라고도 한다. 삼승은 성문(聲聞)과 연각과 보살(菩薩)의 세 가지 수행 부류를 말한다. 연각은 불교의 가르침을 듣고 도를 깨닫는 성문과는 달리 외부의 가르침에 의하지 않고 스스로 인연의 법칙을 관찰함으로써 깨달음을 얻는 자이다. 그리고 자기만의 깨침을 목적으로 삼아 산림(山林)에 은둔해 중생을 제도하지 않는 독선자로 알려져 있다.
석가모니는 보리수 밑에서 인연의 법칙을 관찰해 정각(正覺)을 이룬 뒤 삼칠일(21일) 동안 선정(禪定)의 상태에서 깨달음의 즐거움을 누리는 한편, 자기가 깨달은 인연의 이치를 중생들에게 어떻게 전파할 것인가를 고심했다. 그러나 정각(正覺)의 진리가 너무 어려워서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에 그대로 열반에 들어버릴 것을 생각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때의 상태를 연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범천(梵天)이 석가모니 앞에 나타나서 법을 설하지 않으면 사람들의 타락과 고뇌가 더할 것이므로 마땅히 설법해야 함을 간청했고, 이에 석가모니는 중생교화를 결심했다. 이때의 석가모니는 연각이 아니라 부처이다. 그러나 불교의 역사상으로는 연각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으며, 연각의 독자적인 가르침도 없다.
*연기(緣起, 팔리어 paticca-samuppada)---인연에 의해 생긴다(因緣生起)는 연기의 내용은 인연생멸(因緣生滅), 상의상관성(相依相關性)이다.
시간적 개념에서 바라본 연기--제행무상(諸行無常)-시간적상의성-무상(無常)
공간적 개념에서 바라본 연기--제법무아(諸法無我)-공간적상의성-무아(無我)
위의 내용이 곧 생주이멸(生住離滅), 성주괴공(成住壞空)→인과응보(因果應報), 업보(業報)의 현상이기도 하다.
*연등(燃燈)의 유래---아사세왕(阿?世王)은 석존 생존 당시 마가다국(摩揭陀國, Magadha)의 왕으로서 빈비사라(頻婆娑羅)왕의 아들인데, 천성이 난폭하고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사정없이 욕하고 벌을 주었고, 심지어 그의 아버지도 죽였다. 그런 그가 인도를 통일했지만 수많은 전쟁을 하다가 보니 많은 악업을 짓게 돼, 그 죄업으로 등창이 나 고생을 하게 됐다. 그 때 어느 불자의 권유로 석존께 귀의해 참회의 기도를 하니 등창이 나았다. 이에 부처님의 가피에 감사의 뜻으로 등을 밝혔는데 이때부터 연등 달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연등불(燃燈佛)---불교에서 과거불인데, 전생에 석가모니에게 성불할 것이라고 수기를 준 부처이다.
*연비(燃臂)---승려가 되기 위한 득도 의식 때 행하는 삭발과 함께 신체의 일부를 태우는 의식. 불가(佛家)에 출가해 승려가 되기 위해 치르는 의식이다.
*연생연멸(緣生緣滅)---불교에서 연기(緣起)란 인연생기(因緣生起)의 준말로서, 인연(因緣)은 조건이나 원인을 나타내는데 여기서 인(因)은 '직접적인 원인'을 가리키고 연(緣)은 '간접적인 원인'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연기란 '여러 가지 조건에 의해 현상이 일어나는 이치' 라는 뜻이다. 그래서 인연법 혹은 연생연멸의 법칙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연생연멸의 법칙이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나 인연 따라 생겨났다가 인연 따라 소멸한다는 뜻이다.
마음은 물론 제법(諸法)이 본래 나고 멸함이 없으나(不生不滅) 인연에 의해 생하고 인연에 의하며 멸하므로 연생연멸이라, 인연 따라 생기고 인연 따라 사라진다. 이처럼 인연 따라 생기고 멸하기 때문에 ‘나’라는, ‘자기’라는 존재 역시 고정불변하고 영원한 실체 또한 없다. 이래서 제법무아(諸法無我)라고 한다.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화장세계(華藏世界) 참조.
*열반사덕(涅槃四德)---대승불교에서 말하는 열반의 네 가지 덕, 즉 상 ? 락 ? 아 ? 정(常樂我淨)을 일컫는다. 열반의 세계는 절대 영원하고(常), 즐겁고(樂), 자재(自在)한 참된 자아가 확립돼 있으며(我), 청정하다(淨)는 말이다. <열반경(涅槃經)>은 다른 법문도 있지마는 주로 열반사덕을 풀이한 경전이다.
*열반(涅槃, Nirvana)---열반(涅槃)이란 말은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ana)의 음역으로 니원(泥洹) 또는 열반나(涅槃那)라고도 쓰며, 멸(滅), 적멸(寂滅), 멸도(滅度) 또는 그냥 적(寂)이라고 번역한다. 또 반열반(般涅槃)의 반(般)은 산스크리트어의 파리(pari)의 음역으로 ‘완전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원적(圓寂)이라고 번역한다.
열반은 원래 ‘불어서 끈다’는 뜻으로, ‘타오르는 번뇌의 불을 끄고 깨달음의 지혜인 보리를 완성한 경지’를 말한다.
“(바람이) 불기를 멈추다. (촛불을) 불어서 끄다. (촛불이) 불어서 꺼진 상태” 라는 뜻의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ana)를 음역한 말이다. 뜻을 따라 번역하면 적멸(寂滅) ? 멸도(滅度) 등이라고도 한다. 열반은 탐 ? 진 ? 치 번뇌의 불을 꺼서 깨우침의 지혜를 완성하고 완전한 정신의 평안함에 놓인 상태를 뜻하는데, 불교의 수행과 실천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부처님께서는 소니까야 중에 <우다나((優陀那, udana)>라는 자설경(自說經)에서 “열반이란 어떤 것인가? 그곳에는 옴이 없다. 감도, 머묾도, 죽음도 재생도 없다. 나루터도 없고, 윤회도 없고, 의지처도 없다. 그러나 진실한 즐거움이 그곳에 있다. 더 이상 나고 죽지 않는 세계이며, 더 이상 변화를 겪을 필요가 없는 세계로 재생도 없고, 죽음도 없고, 오고 갈 필요도 없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열반은 있으나 그 열반의 실체성은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열반이라는 현상은 있는데 그 본질은 없다는 것이다.
*열반경(涅槃經)---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의 약어.
*열반무명론(涅槃無名論)---위대한 역경승 구마라습(鳩摩羅什)의 4대 제자 중 하나인 승조(僧肇) 법사의 저서 <조론(肇論)>에 수록된 말. 열반은 언어 밖에서 드러난다고 설한 것. <열반무명론(涅槃無明論)>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유마(維摩)거사가 말하기를, “번뇌를 떠나지 않고 열반을 얻는다.”라고 하였고, 천녀(天女)가 말하기를, “마계(魔界)를 벗어나지 않고 불계(佛界)로 들어간다.”고 하였다. 이와 같다면 현묘한 도(道)는 오묘한 깨달음에 있고, 오묘한 깨달음은 진실에 나아간 데에 있고, 진실에 나아가면 유(有) ? 무(無)를 일제히 관찰하게 되고, 일제히 관찰하게 되면 상대방과 자기가 둘이 아니다. 그러므로 천지는 나[我]와 함께 동일한 근본이며, 만물은 나와 함께 한 몸[一體]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글도 있다.
“경전에서 ‘법신(法身)을 얻고 나면, 무위(無爲)의 경(境)에 들어간다. 그 심(心)은 지(智)에 의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신(身)은 형(形)에 의해 가늠할 수도 없다’고 말한다. 우리들의 신체는 정신과 감각이라는 두 요소를 초월하고 심지(心智)는 적멸(寂滅) 그 자체가 된다.”
*염리심(厭離心)---염리는 염오(厭惡)라고도 하며, 팔리어 ‘nibbida’를 한역한 것이고, 염리심과 출리심(出離心)은 같은 뜻이다.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이 염리심(출리심)이다. 진정 삼보에 귀의함에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윤회의 고통을 뼛속 깊이 느끼고 깨달아서 윤회계를 벗어나고야 말겠다는 간절한 바람이 선행돼야 한다. 그와 같은 마음가짐을 염리심 또는 출리심(出離心)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사성제(四聖諦) 중에서 고성제(苦聖諦)를 사유하면, 출리심(염리심)이 생겨 고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했다.
염리심의 염(厭) 자는 싫어할 염으로서 괴로움(고)와 괴로움의 원인(집)을 싫어해서 이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이다. 따라서 수행에 있어서 염리심이 발심(發心)의 원동력이고, 염리심이 아니고는 이욕(離慾)도 이탐(離貪)도 되지 않으며, 염리심은 도(道)의 시작이요, 수행자의 머리라 칭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공(空)을 통찰한 후의 그 마음을 염리심(厭離心) 또는 출리심(出離心)이라 한다. 즉 염리심이 불법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므로 간절한 염리심과 함께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야 말겠다는 결심이 생겨났을 때라야 비로소 진정한 귀의가 이루어지고 수행에 입문할 수 있게 된다. 때문에 티베트불교에서는 ‘염리심은 도(道)의 시작이요, 수행자의 머리’라 칭하고 있다.
*염부제(閻浮提)---수미산(須彌山) 바깥쪽 바다의 사방에 네 개의 섬(四洲)이 있는데, 그 중 남쪽 섬을 염부제(閻浮提)라 하며, 이 염부제에 인간이 살고 있다. 염부(閻浮)는 나무 이름이니, 염부나무가 번성한 나라란 뜻이고, 남쪽에 있다고 해서 남염부제(南閻浮提)라고도 한다,
*염불(念佛, Buddha-smrti)---염불이란 말 그대로 부처님이나 보살의 이름과 모습을 끊임없이 마음에 집중함으로써 번뇌와 망상을 없애 깨달음을 이루고 불국정토에 왕생하는 수행방법이다. 예로부터 ‘노는 입에 염불한다’는 말이 있듯이 평소 염불을 꾸준히 하면 저절로 마음이 안정되고 환희심이 생기는데, 가장 손쉬운 수행방법 중 하나이다.
염불의 종류에는 부처님 명호를 외우는 칭명염불(稱名念佛)이 있고, 부처의 32상 80종호를 갖춘 원만 덕상을 관찰하는 관상염불(觀像念佛)이 있으며, 그리고 부처님을 마음속으로 상상하면서 염불을 하는 관상염불(觀想念佛)이 있다. 염불의 대상은 대개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 지장보살이 되는 경우가 많다.
*염불선(念佛禪)---염불은 부처님이나 보살의 명호를 부르는 것이고, 선은 조용히 앉아서 한 가지 물음(화두)만 계속 생각하는 것이다. 염불은 한 가지 단어(부처나 보살의 이름), 선은 한 가지 물음(이게 뭐지?)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처럼 대상이 다를 뿐 오직 한 가지 생각만을 한다는 본질에는 다름이 없다. 따라서 여기서는 염불이나 선이 같은 말이다. 염불수행은 일반적으로 쉬운 수행법으로 알고 있고, 요즘 부쩍 많이 하고 있다.
*염화미소(拈華微笑)---불교의 대표적인 화두 가운데 하나이다. 염화시중(拈花示衆)이라고도 한다. 선종에서 선(禪)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전하는 이야기로서 <대범천왕문불결의경(大梵天王問佛決疑經)>에 기록돼 있다. 영산(靈山)에서 범왕(梵王)이 석가에게 설법을 청하며 연꽃을 바치자, 석가가 연꽃을 들어 대중들에게 보였다. 사람들은 그것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했으나, 가섭(迦葉)만은 참뜻을 깨닫고 미소를 지었고 이에 석가는 가섭에게 정법안장(正法眼藏)과 열반묘심(涅槃妙心), 실상무상(實相無相), 미묘법문(微妙法門) 등의 불교 진리를 전해 주었다. 즉 말을 하지 않고도 마음과 마음이 통해 -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뜻으로, 선 수행의 근거와 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한 화두이다.
정법안장(正法眼藏) -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모든 것을 간직하는, 깨달음을 뜻함.
열반묘심(涅槃妙心) - 번뇌와 미망에서 벗어나 진리를 깨닫는 마음.
실상무상(實相無相) - 생멸계를 떠난 불변의 진리.
미묘법문(微妙法門) - 진리를 깨닫는 마음.
*영가(靈駕)---영혼(靈魂), 육체 밖에 따로 있다고 생각되는 정신적 실체.
*영산전(靈山殿)---영산회도(靈山會圖)를 모시기 위해 특별히 지은 전각을 말한다. 영산회도란 인도의 영축산(靈鷲山)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이 많은 제자들을 모아놓고 <법화경(法華經)>을 설법하는 장면을 도해한 것이다.
영산(靈山)은 영축산의 준말로 불교의 대표적인 성지이다. 고대 인도 마가다국의 수도 라자그리하(왕사성) 주위에 있던 이 영산을 사찰 내에 옮기고자 한 것이 바로 영산전이다. 이곳에는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하며 좌우에 갈라보살(竭羅菩薩)과 미륵보살이 협시한다. 그리고 불상 뒤에는 영산회상도가 후불탱화로 봉안된다.
*예류자(預流者, sotapanna)---성문(聲聞)의 수행단계엔 사과(4果=네 단계)가 있다. 즉 깨달음의 4단계인 수다원(須陀洹=예류자), 사다함(斯陀含=일래자), 아나함(阿那含=불환자), 아라한(阿羅漢)을 성문4과라 하는데, 그 첫 단계에 이른 자가 예류자이다. 수다원(須陀洹)이라고도 한다. 예류자는 ‘흐름에 든 자’라는 뜻인데, 깨달음 즉 성인의 길로 들어선 자라는 말이다. 예류자에 이르면 다시는 삼악도에 떨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수행자라면 죽기 전에 꼭 이루어야 할 최소한의 목표이기도 하다. 예류자가 되려면, 불, 법, 승 삼보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져야 하고, 계(戒)를 철저히 지켜야 한다.---→수다원 참조.
*오가칠종(五家七宗)---중국 선종의 6조 혜능 계통의 남종선(南宗禪) 분파를 총칭해서 이르는 말이다.
*오개(五蓋)---선법(善法)을 할 수 없게 하는 마음을 덮고 있는 다섯 가지 번뇌. 탐욕이 마음을 덮는 탐욕개(貪慾蓋), 분노가 마음을 덮는 진에개(瞋?蓋), 마음이 흐려지는 수면개(睡眠蓋), 마음이 요동하고 근심이 생기는 도회개(掉悔蓋), 법에 대해 결단 없이 미루는 의법개(疑法蓋)가 있다. ※참고---속마음이 어둡고 산란한 것을 ‘면(眠)’이라고 말한다.
*오견(五見=五利使)---잘못된 다섯 가지 견해로서 견혹(見惑)의 5리사(五利使), 즉 신경, 변견, 사견, 견취견, 계금취견을 일컫는 말이다.
*5경(境)---물질(色) ? 소리(聲) ? 냄새(香) ? 맛(味) ? 촉감(觸)---5근에 대한 5경임.
*오계(五戒)---불교에 입문한 신도가 지켜야 할 5가지 계율. 불교도이면 재가자나 출가자 모두가 지켜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생활규범이다. ① 살생하지 말라[不殺生]. ② 도둑질 하지 말라[不偸盜]. ③ 음행을 하지 말라[不邪淫]. ④ 거짓말을 하지 말라[不妄語]. ⑤ 술을 마시지 말라[不飮酒]의 5종이다.
*오관게(五觀偈)---공양할 때 외우는 다섯 구의 게송을 말한다. 사찰에서는 공양도 하나의 의식이자 수행이다. 공양물이 앞에 놓이면 먼저 죽비를 한 번 치고 대중이 함께 오관게를 외운다.
*오근(五根)---인간의 감각기관은 눈(眼), 귀(耳), 코(鼻), 혀(舌), 피부(身) 등 다섯으로 이루어진다. 이 다섯 감각기관이 감각과 인식의 근본이 된다는 의미에서 근(五根)이라고 한다.
*오근(五根)---번뇌에 벗어나 깨달음으로 가는 다섯 가지 방법으로 세속법에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수행법이다.
①신근(信根)-바르고 굳은 믿음으로 수행의 뿌리를 내리는 것.
②정진근(精進根)-올바른 정진으로 수행에 물러섬이 없는 것.
③염근(念根)-바른 가르침을 항상 깊이 생각해 바르게 기억하는 것.
④정근(定根)-바른 선정으로 마음을 고요히 해 올바른 마음을 가짐.
⑤혜근(慧根)-불법의 진리를 여실히 통찰해 올바른 지혜로 뿌리를 내림.
*오도송(悟道頌)---승려들이 부처의 도를 깨닫고 난 후 지은 시가. 승려들이 오랜 수행 끝에 깨달음을 얻어 감흥이 일면 이를 게송으로 읊게 되는 것을 말함.
*오력(五力)---오신력(五信力)이라고도 하는데, 수행에 필요한 다섯 가지 힘. 오근이 뿌리가 되어 실제로 활동하는 구체적인 힘. 신력(信力), 염력(念力), 정진력(精進力), 정력(定力), 혜력(慧力)을 이른다.---→오근 참조
①신력(信力)-불법을 믿고 진리 아닌 것은 따르지 않는 힘.
②정진력(精進力)-선을 짓고 악을 버리기에 부지런히 수행에만 전념하는 힘.
③염력(念力)-바르게 생각하여 그릇된 생각을 버리며 오로지 수행에만 전념하는 힘.
④정력(定力)-선정(禪定)을 닦아 어지러운 생각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힘.
⑤혜력(慧力)-지혜를 닦아 불교의 진리인 사성제(四聖諦)를 깨닫는 힘.
*오부대승경(五部大乘經)---천태종에서 중시하는 다섯 경전, 즉 화엄경, 대집경, 대반야경, 법화경, 열반경을 말함.
*오분법신(五分法身)---식(識)으로 존재를 인식하며 살아가는 중생의 존재 방식은 오취온(五取蘊)이고, 반야로 법을 인식하며 살아가는 수행자의 존재 방식은 오분법신의 관계에 있다. 오취온이라는 존재 방식으로 살아가는 삶에는 생사의 괴로움이 있고, 오분법신이라는 존재 방식으로 살아가는 삶에는 열반의 즐거움이 있다.
즉, 여러 단계의 수행을 거쳐 계, 정, 혜, 해탈, 해탈지견의 공덕을 갖춘 것을 오분법신이라 하는데, 부처님과 아라한이 갖게 되는 법체(法體)를 말한다. 구체적인 오분법신(五分法身)이란,
? 계신(戒身)-일체의 허물에서 벗어난 모습
? 정신(定身)-일체의 망념을 떠난 모습
? 혜신(慧身)-진리를 통달한 모습
? 해탈신(解脫身)-일체 얽히고 묶인 것에서 벗어난 모습
? 해탈지견신(解脫知見身)-본성은 본래 물들지 않아서 해탈인 상태를 혼자서 증지(證知)한 모습
*오분향례(五分香禮)---오분향례란 오분법신(五分法身), 즉 부처님과 모든 성현들께 향(香)을 공양하고 예(禮)를 올리는 것을 말한다.
5식(識)---안식(眼識) ? 이식(耳識) ? 비식(鼻識) ? 설식(舌識) ? 신식(身識)의 다섯 식을 말하며, 이를 또한 전5식(前五識)이라고도 한다.
*오신채(5辛菜)---수행자가 먹지 않는 채소. 마늘, 파, 부추, 고추, 미나리-기록에 따라서는 고추, 미나리 대신 달래, 흥거(興渠, 무릇)라고도 말함. 부처님 당시부터 직접 먹어서도 또는 다른 음식에 곁들어 먹어서도 안 될 것들로 수행자들이 경계해야 할 음식이다.
무릇---아스파라거스목 히아신스과에 딸린 여러해살이풀이다. 한국이 원산이며 일본과 중국에도 서식한다. 어린잎을 조려 먹는다. 한방에서 비늘줄기를 면조아(綿棗兒)라고 해서 요통, 타박상에 처방하는 약으로 쓴다.
*오신통(五神通)---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공부하고 행함으로써 갖추게 되는 다섯 가지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 천안통(天眼通), 천이통(天耳通), 타심통(他心通), 숙명통(宿命通), 신족통(神足通)을 이른다.
*52계위---화엄경에 보살이 부처가 되려면 이루어야 할 수행의 52단계를 밝히고 있는 것. 십신(十信), 십주(十住), 십회향(十廻向), 십지(十地)에 각 10계위가 있어 50단계이고, 그 다음에 51위인 등각(等覺), 52위인 묘각(妙覺)을 거쳐 부처에 이른다.
*오온(五蘊)---온(蘊)>이라는 것은 산스크리트어 스칸다(skandha)의 역어로서 덩어리, 무더기, 혹은 집합(적취/積聚)을 의미한다. 오온은 불교의 인간관으로서 불교에서는 인간을 색 ? ?수 ? 상 ? 행 ? 식(色受想行識)의 오온으로 관찰한다. 즉 색은 몸이고, 수 ? 상 ? 행 ? 식은 생각인데, 결국 오온이란 인간의 육체와 정신이라는 구성요소이자, 인간들이 살아 생존해 움직이는 정신적과 육체적 활동을 말한다.
*5욕(五慾)>---1)식욕(食慾), 2)장수욕(長壽慾) 혹은 수면욕(睡眠慾), 3)성욕(性慾 = 색욕/色慾), 4)물욕(物慾 = 재욕/財慾), 5)명예욕(名譽慾) 혹은 권력욕(權力慾), 이 오악을 열락(悅樂)이라고도 한다.
※불교에서는 5욕을 즐기는 것을 오욕락(五慾樂)이라고 한다. 그러나 수행을 통해 오욕을 멀리하면 할수록 법락(法樂)을 즐길 수가 있다. 우리는 깨달음의 법락을 미처 맛보지 못해서 그런데, 사실은 욕계를 떠나면 떠날수록 인간의 참다운 법락은 더욱더 증가되며, 그 법락은 한도 끝도 없다.
*오음성고(五陰盛苦)---오취온고(五取蘊苦)라고도 한다. 인체를 구성하고 있는 오온(五蘊) 그 자체가 곧 괴로움이란 의미다. 즉 인간의 존재 자체가 곧 괴로움이라는 의미이다.
중생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5온(五蘊, 五陰)이 불같이 일어나서 괴로움이 생기는데, 오온(五蘊 ?????? 색수상행식/色受相行識)이란 것도 다 실체가 없는 무상한 것이거늘, 이를 무상하게 보지 못하고 나의 몸과 마음(아상/我相)의 실체가 있는 것으로 착각해 이에 집착함으로써 거기에서 오는 고통을 말한다.
*오조가사(五條袈娑)---다섯 가닥의 헝겊을 꿰매어 붙여 만든 승려가 장삼 위에 걸쳐 입는 옷. 인도에서는 일할 때나 잠잘 때 입었으나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법의(法衣)로 입었다.
*오체투지(五體投地)---오체는 몸의 다섯 부분인 두 팔꿈치와 두 무릎, 이마를 말한다. 오체투지는 몸의 다섯 부분을 땅에 닿게 엎드려 하는 절을 일컬음.
*옥천사(玉泉寺)---수의 양제(煬帝)가 지자(智者)대사를 위해서 내린 중국 형주(荊州)에 있는 사액(賜額) 사찰이다. 중국 불교사에서 옥천사가 갖는 위상은 대단하다. 천태종의 지자, 북종의 신수(神秀), 남종의 신회(神會)와 회양(懷讓) 등이 수행과 교화를 해서 선종의 3개 종파가 탄생한 사찰이다.
*옥야경(玉耶經)---불교의 입장에서 어진 아내의 도리를 들려준 경전. 중국 동진(東晋)의 축담무란(竺曇無蘭)이 한역(漢譯)했고, 승가제바(僧伽提婆)도 번역했다.
*옴(Om, 唵)---산스크리트 옴(o)의 음역이다. ‘옴’이라는 음절은 하늘 ? 땅 ? 대기의 삼계(三界)를 의미하며, 일체를 가득하게 하고, 일체의 근본이며, 만물을 거두어들이는 거룩한 소리이다. 원래는 헤브라이어의 '아멘'에 해당되는 말로, 승낙을 나타내는 경어였으나 불교에서는 옴을 태초의 소리, 우주의 모든 진동을 응축한 기본음으로 보고, 부처에게 귀의하는 자세를 상징한다.
옴 마니 반메 훔(Om Mani Pedme Hum)의 첫 글자. 옴은 절대적인 의식을 상징하는 신성한 음절로서 모든 만트라 중에서 가장 위대한 만트라이다. 옴에는 모든 만트라가 포함돼 있으며, 모든 만트라는 옴으로 시작된다. 옴은 태고의 떨림이며, 옴의 근본적인 가치는 의식의 영원한 진동이다. 우주는 옴에서 시작돼 옴에서 휴식을 취하고, 옴으로 사라진다. 이 불멸의 소리는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것을 의미한다.
아래 도형은 옴을 나타내는 글자이다. 위쪽 초승달 모양은 마야(Maya,환영)의 형상이며, 그 위의 점은 초월의 상태이다. 아래의 긴 곡선(3 모양) 등에 붙은 꼬부랑(곡선)은 꿈꾸지 않은 깊은 수면의 상태, 긴 곡선(3자 모양)의 아래 끝은 ‘꿈꾸는 상태’, 3자의 위 끝은 ‘깨어 있는 각성의 상태’
*옴 마니 반메 훔(唵???美?)=(Om Mani Pedme Hum)---<육자대명주(六字大明呪)>라고 하는데, 원명은 <관세음보살 본심미묘 육자대명왕진언(觀世音菩薩 本心微妙 六字大明王眞言)>이라는 긴 이름이다. 이 진언(眞言: Mantra)은 천수경에 나오는 관세음보살의 진언인데, 아미타불이 관세음보살을 찬탄하는 말로 모든 복덕, 지혜, 공덕, 행의 근본이 되는 아주 소중한 진언이다. 여기서 ‘六字’는 글자 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육도의 중생을 뜻하는데, 각각의 글자마다 여러 뜻이 있고, 글자마다 공덕이 다르다. 이 6자의 주문만 외워도 모든 죄악이 소멸되고, 모든 복덕이 생겨난다고 한다.
*왕생(往生)---불교에서 사람이 죽은 후 다른 세상에 가서 태어나는 것을 말한다. 서방 극락세계에 다시 태어날 것을 원하는 극락왕생(極樂往生), 시방세계(十方世界)의 불국토에 다시 태어나기를 원하는 시방(十方)왕생, 미륵보살이 계시는 도솔천에 다시 태어나기를 원하는 도솔(兜率)왕생 등이 있다.
*요가(yoga, 瑜伽)---요가는 명상과 호흡, 스트레칭 등이 결합된 복합적인 심신 수련 방법을 말한다. ‘요가’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어로서 ‘유즈(yuji, 결합하다)’에서 시작해서 ‘yoga’가 됐다. 음역하면 유가(瑜伽)가 되고, 의역하면 '상응한다'는 뜻이 된다.
요가는 정신적인 도구상자이고 육체적인 건강과 안녕이다. 자세와 호흡을 가다듬어 정신을 통일 ? 순화시키고, 또는 초자연력을 얻고자 행하는 인도 고유의 수행법이다. 인도 고대 브라만교의 <우파니샤드>를 중심으로 하는 상키아(S?mkhya:數論派)와 요가파(瑜伽派)로 발전했으며, 당시의 모든 학파는 그 실천방법으로서 요가를 수련했고, 불교에서의 무념(無念) 무상(無想) 무심(無心)의 참선이나 결가부좌(結跏趺坐)도 바로 요가에서 온 것이다.
*요의경(了義經)---‘요의(了義)’란 명백하게 풀이된 궁극의 참뜻이란 뜻이니, ‘요의경’이란 특정 불경을 뜻하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불법의 도리를 명백하고 완전하게 나타낸, 부처님의 깨달음을 그대로 드러낸, 진실하고 확실한 이치를 말씀한 경전이라는 보통명사이다.
대승에서 보면 소승은 다<불요의경(不了義經)>이거니와 대승, 소승 경전에서도 역시 그중에 요의와 불요의가 있다. 설일체유부에 의하면, 불타에 의해 발성된 모든 언설이 설법이 아닐뿐더러 설사 그것이 깨달음과 관계하는 법문이라 할지라도 그 법문을 듣는 이에 따라 중층적으로 설해졌기 때문에 거기에는 당연히 궁극적인 경(了義經)과 그렇지 못한 경(不了義經)이 있다. 그리고 요의경 역시 그 자체가 깨달음은 아니기 때문에 그것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마땅히 어떤 표준적 근거에 의해 정리 해석되지 않으면 안 되며, 그것이 바로 ‘아비달마’라고 했다.
*요익중생(饒益衆生)---<요(饒):넉넉할 요, 익(益):더할 익, 중(衆):무리 중, 생(生):날 생>, 중생을 넉넉하게 이익 되게 하라. 남을 이익 되게 하면 나도 저절로 좋아진다는 말로서, 우리가 흔히 쓰는 말 중에 “윈/윈(Win/Win)”이란 말과 불교에서의 자리이타(自利利他)란 말과 같다. 즉 나도 이롭고 남도 이로워야 하니 남이 잘 되도록 도와주고, 남이 잘 돼야 나도 잘 된다는 뜻이다.
*욕계(慾界)---욕계(欲界)란 5욕락(欲樂)의 탐욕(貪慾)으로 정신이 흐리고 마음이 거칠며 물질에 속박(束縛)돼 사는 가장 어리석은 중생이 사는 곳이다. 다시 말해 감각기관으로 생기는 욕망의 세계이다. 욕계는 6천(天)이라 해 6개의 하늘이 있고 색계는 18계의 하늘이 있으며 무색계는 4개의 하늘이 있다.
욕계삼욕(慾界三慾)이라 해서 식욕 ? 성욕 ? 수면욕 등의 욕망을 가진 중생들이 사는 세계를 말한다. 윤회 가운데 있는 6가지 존재 양태 가운데 지옥(地獄) ? 아귀(餓鬼) ? 축생(畜生) ? 아수라(阿修羅) ? 인간(人間) 등의 5가지와, 사왕천(四王天) ? 도리천(?利天) ? 야마천(夜摩天) ? 도솔천(兜率天) ? 화락천(化樂天) ?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 등의 육욕천(六慾天)이 여기에 속한다.
*욕두(浴頭)---사찰에서 승려들의 목욕물을 준비하는 직책, 또는 그 일을 맡은 승려.
*용문석굴(龍門石窟)---중국 허난성(河南省) 낙양(洛陽)의 남쪽 14km에 있다. 북위(北魏) 시대인 5세기 말부터 초기 당(唐)시대인 9세기까지 조성된 석굴군. 중국의 불교문화뿐 아니라 빼어난 건축, 조각 예술을 엿볼 수 있는 곳으로 이허(伊河)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용문산(龍門山)과 향산(香山)의 암벽을 따라 약 1.5km에 걸쳐 조성돼 있다. 2,300여 개의 석굴과 벽감(壁龕)이 조성돼 있고, 내부에 총 10만 점이 넘는 불상, 2,800여 개의 명문, 40여 개의 탑이 조각돼 있다.
*용수(龍樹)→나가르주나
*용화전(龍華殿)---미륵전의 다른 이름(미륵불을 모신 전각).
*우다나(優陀那, Udana)---우다나(優陀那)란 감흥해 저절로 나오는 말을 가리킨다. 한역하면 자설(自說) 또는 무문자설(無問自說)이다. 이 경전은 부처님의 우다나를 모은 것으로, 팔리어 경장 중 소부(小部)의 세 번 째 경전이다. 모두 8장이며, 각 장은 다시 10경(經)을 담고 있으므로 총 80경이 된다. 대개 게송으로 이루어지며, 앞부분에는 ‘거기서 세존은 이것을 알고, 그때 이 우다나를 발했다’라는 말이 반드시 붙는다. 그리고 끝에서 우다나가 왜 나왔는지를 산문으로 설명한다. 부처의 전기에 관한 것이 주된 내용이고 그밖에 사상적으로 중요한 교설도 포함하고 있다. 80경 중 15∼20경 정도는 다른 경전에도 나오는 내용이나 나머지는 이 경전에만 나온다.
*우담발화---인도, 스리랑카 등지에서 자생하는 뽕나무과의 식물에서 피는 꽃 이름. 나무 크기는 한길 남짓하며, 잎은 4~5촌 정도이고, 잎 모양은 뾰족한데 끝이 가늘다. 암수 다른 꽃이 피지만 쉽게 볼 수 없는 은화 식물이다.
불경에서는 우담발화가 3천년 만에 한 번 꽃이 핀다고 해서 상서로운 일 또는 매우 희유한 일에 비유하는 예로 쓰인다.
*우두선(牛頭禪)---중국 선종의 제4대 조사(祖師) 도신(道信)의 제자인 법융선사(法融禪師 ; 594~658)가 금능(金陵)의 우두산(牛頭山)에서 대중을 교화해 훌륭한 제자 지암(智巖) ? 혜방(慧方) ? 법지(法持) ? 지위(智威) ? 헤충(慧忠) 등을 배출했는데, 이렇게 해서 이루어진 선맥인 선사상을 우두선(牛頭禪)이라고 한다.
*우란분재(盂蘭盆齋)---죽은 사람이 사후에 거꾸로 매달리는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을 구하기 위해, 후손들이 음식을 마련해 승려들에게 공양하는 것. 우란분재는 흔히 백중(伯仲)이라 부르는 음력 7월 15일에 사찰에서 거행하는 불교 행사이다. 이날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우란분절(盂蘭盆節)이라고도 한다. 우란분이란 산스크리트어 ‘ullambana’을 음역한 말이다.
*우바새(優婆塞, upasaka)---‘받드는 사람’이라는 뜻, 석가모니를 신봉하는 남자 재가 신자. 산스크리트 우파사카(upasaka)의 음역이다. 한역하면 청신사(淸信士)이고, 근사남(近事男)이라고도 한다.
*우바새계경(優婆塞戒經)---재가신자들이 지켜야 하는 계를 담은 불경. 팔리어 삼장에 있는 <선생경(善生經)>을 대승불교에 맞게 고친 경전이다. ‘선생’이라는 명칭은 이 경전이 ‘선생(善生)’이라는 장자(長者)를 위해 설법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북량의 담무참(曇無讖)이 426년에 한역했는데, 산스크리트어본이나 티베트어본은 전하지 않는다. 모두 7권으로 구성된다. 대승계(大乘戒)를 소개하고 있어서 중국불교에서는 중요하게 다루었다.
*우바이(優婆夷, upasika)---석가모니를 신봉하는 여자 재가 신자. 남자 재가신도인 우바새와 함께 불교 교단의 칠중(七衆)을 이룬다. 한역하면 청신녀(淸信女)이고, 근사녀(近事女)라고도 한다.
*우파니샤드(Upanishad)---가장 오래된 힌두 경전인 베다를 운문과 산문으로 설명한 철학적 문헌들. 현재 108가지 정도 알려져 있는 우파니샤드에는 일찍이 BC 1000~600년경에 크게 활약했던 일련의 힌두 스승들과 성현들의 사상들이 기록돼 있다. 후기 인도 철학의 많은 부분이 이 문헌에 기반을 두었다.
우파니샤드엔 우주 유일의 근본원리로서 브라만(梵)과 개인 존재의 본체인 아트만(我)이 상정되며, 결국 이 두 가지는 동일한 것이라고 하는 범아일여(梵我一如)의 사상이 표명돼 있다.
*우팔리(優婆離, Upali)--- 불교 교단의 규율 및 규칙에 정통했으며, 또 계를 지키는데 있어서 매우 엄격했던 우팔리는, 석가의 10대 제자 중 한 사람으로 계율에 통달해 ‘지계(持戒) 제일’로 불렸는데, 석존 입멸 직후의 제1결집에서 ‘계율’ 부분은 우팔리의 송출에 의존했고 있다. 우팔리는 석가족(族) 궁정의 이발사로 최하층인 수드라(sudra) 계급 출신이다.
*우화서(雨華瑞)---세존께서 <법화경>을 설하려고 삼매에 드셨는데 하늘에서 꽃이 비 오듯이 쏟아졌다고 해서 이렇게 부른다. 그래서 법당에는 꽃 장식이 많다.
*운강석굴(雲岡石窟)---중국 산서성(山西省) 대동(大同)의 서쪽 15㎞ 지역인 운강진(雲岡鎭)에 있는 석굴사원. 무주천(武州川)의 남서쪽 벼랑을 파서 만든 것으로, 전체 길이는 약 1km이며, 대굴 21개 중굴 20개와 무수한 소굴, 불감(佛龕)이 조성돼 있다. 석질은 밝은 색의 사암(砂岩)으로 거의 전부가 북위(北魏) 시대에 조성된 것이며 벽에 직접 조각해 색을 칠했다.
*운력(運力)---스님들의 육체노동. 울력이라고도 하고, 일반에게는 삶의 한 방편인 노동을 뜻하지만, 사찰에서는 수행의 하나로서 육체노동을 하는 것이다.
*운수(雲水) 생활---선승들이 물이나 구름처럼 한 곳에 집착하지 않고 정처 없이 행각하는 것, 아무 뜻 없이 이리저리 방랑하는 생활이 아니라 선지식을 찾거나, 만행을 통한 구도의 행각을 뜻한다.
*운수납자(雲水衲子)---여러 곳으로 스승을 찾아 도를 묻기 위해 돌아다니는 승려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운판(雲板)---사찰에서 청동 판에 구름처럼 아로새긴 것을 매달고 조석예불 때 치는 것인데, 이것은 허공 세계에 사는 중생의 고통을 쉬게 하는 법구이다. 그리고 옛날 선방에서는 밥 때를 알리는 신호로도 사용됐다.
*원(願)---믿음을 바탕으로 일어나는 것이 원이다. 무슨 일이나 목표가 분명해야 목적지에 제대로 도착할 수 있다. 모든 불보살의 본원(本願)이란 근본서원(根本誓願)의 준말로서 모든 부처님들이 지난 세상에서 성불하고자 뜻을 세운 여러 가지의 서원을 말한다. 본원에는 총원(總願)과 별원(別願)이 있는데, 총원은 모든 부처님들의 공통한 본원 곧 사홍서원(四弘誓願)이며, 별원은 부처님마다 중생 제도의 인연에 따라 세우신 아미타불의 48원, 약사여래의 12원, 법장비구의 48대원 등이 있다.
*원교(圓敎)---원은 원만, 원융의 뜻이며, 원교는 부처님께서 평생 설법한 중에서 가장 수승한 구경의 법문, 원만하고 완전한 교법을 이른다. 대승불교의 최종 진리를 가리킨다. 천태스님 이전에는 화엄경(華嚴經)을 원교라 했으나 천태스님에 이르러서는 법화경(法華經)을 중심한 교학을 원교라 했다.
천태종의 교판(敎判)에서, 세존이 체득한 깨달음을 그대로 설한, 가장 완전한 가르침. 법화경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리고 화엄종의 교판(敎判)에서는 원만하고 완전한 일승(一乘)을 설하는 법화경과 화엄경의 궁극적인 가르침을 말함.
*원력(願力)---원력 혹은 원이라는 말은 중생구제의 서원을 말한다. 보살은 자기 한 몸 해탈하는 데 머물지 않고 고통 속에 있는 중생들을 구하고자 하는 서원을 갖는다. 그 것을 원이라고 하고, 힘력 자를 붙여서 원력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불교를 신행(信行)하는 사람이 목적을 성취하고자 내적으로 수립하는 기본적인 결심과 그에 따르는 힘. 일반적으로는 원 ? 서원(誓願) ? 행원(行願) 등으로도 표현하지만, 내면적인 원은 결코 원으로 그쳐서는 안 되고, 원을 이룰 수 있는 힘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처럼 원과 힘은 떨어질 수 없는 상관관계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원력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또한 일반적으로 보살의 기본적인 원은 부처가 되고자 맹세하는 원작불심(願作佛心)과 중생을 교화하고자 하는 도중생원(度衆生願)으로 대별되며, 이를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원(下化衆生願)이라고 한다.
*원바라밀(願波羅蜜)---여기서 원(願)이란 개인적인 욕망이 아니라 깨달음을 얻으려고 하거나 중생의 구제를 위해 나아가고자 하는 서원(誓願)하는 순수의지이다. 따라서 원바라밀이란 이러한 서원의 완성이라는 뜻으로 십바라밀(十波羅蜜) 중에 제8이다. 개인적인 욕망은 업(業)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거기엔 반드시 과보가 동반되기 마련이지만 원은 공(空)에 바탕하기 때문에 업의 굴레에 저촉되지 않는다.
*원성실성(圓成實性)---원만히 성취된 참답고 실다운 성품이라는 말이다. 이 원성실성이 실상(實相)이고, 본성(本性)이고, 불성(佛性)이다. 그런데 불성이 지금 보이느냐 하면, 우리 중생의 망령된 마음에서는 불성(佛性), 진여(眞如)와 부처, 여래(如來)가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중생은 안 보이니까 부인(否認)을 한다.
하지만 정무리유(情無理有)라, 원성실성이 우리들의 망정(妄情)으로는 보이지 않고 없다고 하지만 참다운 진리에서는 있다. 즉 우리의 망령된 마음에는 없지만 진여불성이 영원한 우주의 도리에는 있다는 말이다.
※정무리유(情無理有)---범부의 망정(妄情)에는 있지 않고 우주의 참다운 도리(理)에는 있다는 말.
*원오 극근(圓悟克勤, 1063~1135)---중국 송나라 때 선승. 간화선을 대성시킨 대혜종고(大慧宗?, 1089~1163)의 스승이다. 원오선사의 어록이 <원오심요(圓悟心要)>, <벽암록(碧巖錄)> 등인데, 그 중 <원오심요>는 선승과 사대부들의 질문에 답한 편지 글을 모아놓은 서간집이고, <벽암록>은 화두를 통한 수행을 강조하는, 이른바 ‘간화선(看話禪)’의 교과서라 할 수 있는 공안집(公安集)이다. 그리고 일본에 전해진 <다선일미(茶?一味)>는 3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 다도계에서 최고의 보물로 여겨지고 있다.
*원오심요(圓悟心要)---원오스님이 선승 혹은 사대부들의 질문에 답한 편지 글을 모아놓은 서간집이다. 원오스님의 어록 가운데에서 특히 중심이 되는 요지를 모았다고 할 수 있다.
*원융불교(圓融佛敎)---원융사상이라고도 하는데, 우리나라 불교 특유의 사상 가운데 하나. 모든 사상을 분리시켜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은 차원에서 하나로 엮는 교리통합론. 우리나라에서 원융사상을 주창한 대표적인 고승이 원효(元曉)대사이다.
원융불교는 초기 경전인 아함경을 비롯해 반야경, 법화경, 화엄경, 정토경 등 시대의 변천에 따라 등장하는 여러 경과 논장들을 모두 포용하고, 대승(大乘)과 소승(小乘)을 아우르며, 작금에 이르는 각종 종단의 소의경전(所衣經典)과 수행법들까지 망라해서 부처님 당시의 불교 교설에 근접하고자 하며, 궁극적으로는 모두를 녹여서 하나 된 불교를 지향하는 것이다.
*원적(圓寂)---열반과 같은 말로서 번뇌와 잡념의 세계를 여의고 생사를 뛰어넘는 절대의 청정한 경계를 뜻함. ‘원(圓)’은 모든 공덕이 원만하다는 뜻이고, ‘적寂)’은 적정해서 고요하다는 뜻이다. 원적은 입적(入寂), 즉 승려의 죽음을 지칭하는 말로도 쓰인다.
*원주(院主)---주지를 보좌하면서 절의 사무를 주재(主宰)하는 사람. 작은 절의 주지를 일컫기도 함.
*원통전(圓通殿)---관세음보살을 모신 전각. 단 관세음보살을 모신 전각이 부불전(副佛殿)일 경우에는 관음전이라 함.
*원효(元曉, 617년-686년)---특정한 스승이 없이 여러 교학과 학승들을 편력해 혼자 수학했다고 전해진다. 그가 과제로 느낀 것은 불교가 공인된 지 백여 년이 지난 시점에서 물밀듯이 쏟아져 들어온, 일견 서로 모순된 듯이 보이는 불교이론들을 어떻게 정리하고 체계화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당시 유통되던 거의 모든 경전을 분류하는 한편, 거기에 각각 독자적 해석을 가해 주석을 달았다. 특히 그는 상호 모순, 대립하는 이론들을 극복하는 데에 ‘화쟁(和諍)’이라는 자신의 독특한 개념을 사용했다. 원효의 저서를 중국에서는 ‘해동소(海東疏)’라 했다.
*월장경(月藏經)---원명은 대방등대집월장경(大方等大集月臟經)임. 미래에 대한 석가부처의 예언 말씀이 기록돼 있는 경전.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기 얼마 전 가리야제 산중에서 불제자들을 모아두고 지장경을 설하시기 전에 미래를 예언하신 경전이 월장경이다. 대승불교의 여러 경전이 집대성된 <대방등대집경(大方等大集經)>이라는 경전이 있는데, 여기에 6세기 북제(北齊) 때 인도사람 나랜드라야사(那蓮提耶捨)가 한역한 월장경이 포함돼 있다.
*위빠사나나 (毘鉢舍那, vipasyna, 비파사나, 觀)---불교는 인간을 온갖 욕망 등의 번뇌에 얽힌 존재라고 보며, 이 번뇌는 성불의 길을 실천하는 사람들을 한없이 방해한다고 설한다. 따라서 불교의 수행이란 한없는 번뇌의 응시와 그것을 극복하는 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부처님께서는 대기설법(對機說法), 즉 가르침을 듣는 사람들의 성격이나 환경에 맞추어서 가르침을 설하셨다. 불교 수행법이 여러 가지인 이유의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비파사나는 이러한 여러 가지 수행법 가운데서 가장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명상법으로서, 한역(漢譯)에서는 관(觀)으로 번역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관(觀)이란 지혜로써 객관의 경계를 관찰해 비추어 본다는 뜻으로, 가령 부정관(不淨觀)이라 하면 인간의 육체가 추하고 더러운 것임을 생각으로 관하여 탐욕의 번뇌를 멸하는 것이다.
또한 이 수행법으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고 대중적이며 실제적인 것으로 수식관(數息觀)이 있다. 가능하면 좌선하는 자세로 앉아서 자신의 마음을 숨을 내쉬고 들이쉬는 데 집중해 이것을 세는 것에 의해서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이다. 이렇게 비파사나는 마음을 하나로 전심(專心)해 지혜로써 불(佛)과 법(法)의 일정한 대상을 관찰하고 생각으로 염(念)해서 깨달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이 위빠사나 수행법은 50여 년 전 미얀마에서 새롭게 변형돼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위앙종(?仰宗)---선종 5가(家) 가운데 가장 먼저 당나라 시대에 성립된 불교종파. 육조 혜능(六祖 惠能)의 제자 남악 회양(南嶽 懷讓) 선사의 법손(法孫)인 위산 영우(?山靈祐, 771-853) 선사와 그 제자인 앙산(仰山) 선사가 창시(創始)한 종파이다. 송나라 때 쇠퇴해서 임제종에 합쳐졌다.
*위음왕불(威音王佛, 산스크리트어 아디붓다, Adi Buddha)---법화경에서 일컫는 최초의 부처님이다. ‘위음(威音)’이란 법화(法華)를 직접 설하는 음성을 표현한 것이며, 왕이란 이 부처님의 위풍과 음성에서 위대한 국가를 통솔하는 왕의 위력이 있음을 나타낸 말이다.
위음왕불이 출현했을 당시 겁명은 이쇠(離衰), 국명은 대성(大成)이었는데, 고대(古代)를 표시하는 비유로 사용해 ‘위음왕불 이전’이라 하기도 하고, 하늘과 땅이 나누어지기 전이니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이라 하기도 한다. 그리고 위음왕불을 경계로 해 그 이전을 실제이지(實際理地)라 하고, 이후를 불사문중(佛事門中)이라 한다. 밀교에서는 위음왕불을 본초불(本初佛) 혹은 자성불(自性佛)이라 한다.
*위음이전(威音已前=위왕이전)----위음왕불(威音王佛)은 법화경에 나오는 최초의 부처이다. 따라서 ‘위음 이전’은 태초, 천지개벽 이전, 우주 생성 이전이란 말로서, 번뇌망상이 일어나기 전, 분별심이 생기기 이전을 뜻하며, 무분별의 세계, 본래면목을 뜻한다.
※비슷한 말
성주괴공(成住壞空) 이전---우주의 생성과 소멸 이전.
공겁(空劫)이전---천지창조 이전.
부모미생전---부모로부터 태어나기 이전, 하늘과 땅이 나누어지기 이전.
*위제희부인(韋提希夫人)---석존과 같은 시대 마가다(Magadha)국 빈비사라(Bimbisara)왕의 비. 왕자 아사세(阿?世, 아자타샤트루이)가 빈비사라왕을 유폐해서 아사시키려고 했을 때, 몰래 살갗에 분을 바르고 장신구에 물을 채워서 감옥을 방문해 왕을 살렸는데, 발각돼서 자신도 유폐됐지만 감옥 안에서 그녀의 기도에 응답해 석존께서 나타나서 이 세상에 절망해서 아미타불의 정토를 기원하는 비(妃)에게 아미타불이나 그 정토를 관상하는 방법을 가르쳤는데 이 때의 가르침을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이라고 한다.
*유(有, bhava)---십이 연기의 하나. 유정(有情)으로서의 존재를 이른다. 취(取)를 연해 유가 발생한다. 12연기에서 유(有)를 오온(五蘊)으로 정의하고 있거니와 개체의 형성을 말한다. 물론 정신 육체적 복합체인 개체의 형성은 이전 단계에서 이루어졌다. 여기서 말하는 유(有)는 ‘애착에 의해 윤회 전생의 동력을 가지는 존재’, 혹은 다음 생을 요청하는 예비적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유가록(瑜伽錄)---유가록에 이르기를 “瑜伽는 如意珠를 이르는 말이며(瑜伽 - 신과 인간이 합일, 상응) 性命을 수련하여 道胎를 이루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중국에 대승밀교를 크게 떨친 불공삼장(불공화상)의 유가록 등을 참조하여 --
유가심인록(瑜伽心印錄)---AD 1953년3월에 심원사의 경가 천장에서 개운 조사가 남긴 불공삼장 역의 <능엄경>과 <유가심인록>이 발견됐다.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유가사지론>은 인도의 미륵보살이 지은 글을 당나라의 현장(玄?)이 번역해 천자문의 순서대로 백 권을 수록한 것이다. 초조대장경에 실려 있어서 국보 제244호로 지정돼 있다. 유가사지론의 원명은 Yagacaraghumi인데, 이는 유가사(Yogacara = 요가수행자)의 실천단계의 의미이다. 유가는 명상 ? 정신통일의 수행으로, 일반적으로 선 ? 삼매 등으로 불리는 것과 동일하다. 유가사는 이 명상수행에 진력하는 사람을 의미하며, 유가행파(Yogacara)라는 학파의 명칭은 이 유가사에서 유래한다.
*유가행파(瑜伽行派)---→유식학파 참조
*유견 ? 무견(有見無見)---원문은 <有無見>임. 개인의 존재를 유(有)로 보는 견해와 무(無)로 보는 견해. 즉 <나>라는 존재에 집착해 내가 죽은 뒤에도 자아가 그대로 지속한다는 생각과 그 반대로 죽은 뒤에 자아는 아주 없어진다는 극단적인 생각. 전자를 유견(혹은 常見), 후자를 무견(혹은 斷見)이라 한다. 이런 극단적인 견해를 변견(邊見)이라 하고, 유무견(有無見)에 사로잡힌 견해가 사견(邪見)이다.
*유교(有敎)---불교철학은 대체로, 세 단계로 시기를 나누어 맨 처음 초기 법문을 유교(有敎)라 한다, 삼시교판설(三時敎判說)이라는 것이다. 이 분류는 유식학을 석존의 교설 중에서 최상의 법문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인도 유식학파의 계현(戒賢, Silabhadra)논사가 정립한 이론으로서 제1시 유교(有敎), 제2시 공교(空敎), 제3시 중도교(中道敎, 唯識敎)의 순서로 불법이 나타났다는 주장이다.
우리 중생 차원에서 ‘선도 있고 악도 있고 모두 있다. 나도 있고 너도 있고 모두 있다’ 이와 같이 중생의 범안(凡眼) 차원에서 알기 쉽게 하는 법문이 유교(有敎)이다. 그리고 그 다음은 보다 높은 차원에서 ‘일체가 다 공(空)이다’ 하는 단계인데 이를 공교(空敎)라 한다. 그런 다음 부처님께서 실상 그대로 하신 말씀인 중도교(中道敎)의 단계이다. 반야심경은 공교와 중도교를 합한 가르침이다.
*유교경(遺敎經)---가르침을 남기는 경전이라는 제목의 뜻처럼, 석가가 열반에 들기 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설법하는 광경을 담고 있다. 산스크리트 원전이나 티베트본은 전하지 않는다. <불유교경(佛遺敎經)>, <불수반열반교계경(佛垂般涅槃敎誡經)>, <불수열반약계경(佛垂涅槃略誡經)>, <불임열반약계경(佛臨涅槃略誡經)> 등 달리 부르는 이름이 많다. 구마라습(鳩摩羅什:344∼413)이 한역했다.
석가의 만년에 있었던 일을 적은 경전과 논서는 이 외에도 아함부 계통의 <열반경>, 마명(馬鳴)이 지은 <불소행찬>, <불본행경> 등 몇 가지 더 있다. 이들 저서도 이 경전과 유사한 문체로 쓰였다.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석가는 사라쌍수 아래에서 입멸할 것임을 밝히고 제자들에게 여러 가지를 당부했다. 우선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를 스승으로 삼아서 계를 지키고 오욕을 삼가하며 정적(靜寂)을 구하고 정(定)을 닦아 깨달음의 지혜를 얻을 것을 부탁했다. 그리고는 최후의 가르침으로 해탈을 얻어 무명의 암흑에서 벗어나라고 가르쳤다. 석가의 임종이라는 극적인 무대를 배경으로 하고, 불교의 근본 가르침을 간명하게 설명한 탓에 예로부터 널리 읽혀졌다. 그래서 주석서나 연구서가 많은 편이다.
*유나(維那)---절[寺]의 사무를 맡고, 모든 일을 지휘하는 소임. 도유나(都維那)라고도 함. 절에서 재(齋)의 의식을 지휘하는 소임. 또는 그 소임을 맡아 하는 사람. 혹은 선원(禪院)의 규율과 질서를 다스리는 직책, 또는 그 일을 맡은 승려.
*유루복(有漏福)---무루복 참조.
*유루행(有漏行)---세속적 지혜는 유루지(有漏智)이고, 세속의 번뇌에서 벗어남이 없이 선악의 세속적 덕목으로 수행하는 것이 곧 유루행(有漏行)이다. 반야가 없다면 모두가 다 범부의 허물을 벗지 못하는 것이고, 어떤 행동도 때 묻은 유루행(有漏行)밖에는 못 된다.
*유마힐(維摩詰)---산스크리트어 Vimalak?rti(비말라 키르티)의 음사. 무구칭(無垢稱) ? 정명(淨名)이라 번역. <유마힐 소설경(維摩詰所說經)>인 <유마경(維摩經)>의 주인공으로 대표적인 거사로 알려져 있다.
*유순(由旬)---팔리어 yojana의 음사. 고대 인도의 거리의 단위로서 확실한 거리는 명확하지 않지만 소달구지가 하루에 갈 수 있는 거리, 혹은 40리(里) 정도라고도 함. 대유순 80리, 중유순 60리, 소유순 40리의 세 가지가 있다.
*유식(唯識)---모든 존재는 오직 식(識), 즉 마음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이다. 세계는 우리 마음이 그려낸 표상일 뿐이다. 그리고 외부 대상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비롯해 언어나 사상조차도 모두 우리 마음이 그려낸 것이다. 유심(唯心)이나 유식(唯識)은 오직 마음이라는 같은 뜻이다. 다만 경우에 따라서 조금 차이 있게 풀이가 된다.
*유식삼성(唯識三性)---유식학파에서 규정한 중생의 세 가지 특징을 말한다.
1.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 - 중생은 사실을 사실대로 보지 않고 모든 것을 치우치게 보고 집착한다는 말 - 정유리무(情有理無)
※정유리무(情有理無)---범부의 망정(妄情)에만 있고 원래 본바탕 법성(法性) 자리인 리(理)에는 없다는 말.
2.의타기성(依他起性) - ‘나’라는 존재나 ‘너’라는 존재나 태양계(太陽系)나 뭣이든 다 인연 따라서 잠시 이루어진 이것은 허깨비같이 가짜로 모양을 나툰 것이다. 이런 허깨비 같은 존재를 중생들은 망정(妄情)으로, 망상(妄想)으로 헤아려서 좋다 궂다 하는 것이다. - 여환가유(如幻假有)
※여환가유(如幻假有)---모든 것은 고정되어 있거나 상주법이 아니라, 환(幻)과 같은 것으로서 임시로 존재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이를 여환가유라고 한다.
3.원성실성(圓成實性) - 원성실성이 실상(實相)이고, 본성(本性)이고, 불성(佛性)이지만 중생의 망령된 마음에서는 불성(佛性), 진여(眞如)와 부처, 여래(如來)가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중생은 안 보이니까 부인(否認)을 한다. - 정무리유(情無理有)
※정무리유(情無理有)---범부의 망정(妄情)에는 있지 않고 우주의 참다운 도리(理)에는 있다는 말.
*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인도의 불교학자 세친(世親:320∼400)이 지은 불교서적. <유식이십론(唯識二十論)>과 함께 저자 자신의 유식설(唯識說)을 완성한 책으로 평가된다. <해심밀경>과 <대승아비달마경>에서 출발해 미륵(彌勒)과 무착(無着)을 거치면서 틀을 갖춘 유식설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여러 서적에 나온 유식설을 30개의 송(頌)으로 표현했다. 563년에 진제(眞諦)가 번역했고, 현장(玄?)도 648∼649년 사이에 번역했다.
*유식이십론(唯識二十論)---인도의 불교학자 세친(世親:320∼400)이 지은 불교서적. 세친은 미륵(彌勒)이나 무착(無着)의 저서를 많이 주석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은 그의 여러 저서 중 독립된 몇몇 작품 중 하나이다. 유식설(唯識說)에 대한 여러 학파의 비평이나 질문에 답하는 형식을 취해 유식설을 간접적으로 설명했다. 유식설을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과 함께 한 짝을 이룬다. 보리유지(菩提流支)가 6세기 초에 번역했으며, 현장(玄?)도 661년에 번역했다.
*유식학파(唯識學派)---소승불교의 부족한 교리를 보충하고 용수의 공(空)사상이 후세에 지나치게 공허한 사상으로 치우쳐 가는 것을 바로 잡아 주고자 4세기경에 나타난 것이 유식사상이다. 유식학파는 수행방법으로서 유가(요가)를 중요시하므로 유가행파(瑜伽行派) 또는 유가파라고도 한다. 같은 대승불교의 중관파(中觀派)와 대립하면서 300∼700년간 발전했다.
이 학파의 초기 경전은 <해심밀경(解深密經)>과 <대승아비달마경(大乘阿毘達磨經)>이고, 그후 미륵(彌勒, A.D 270~350)이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과 <대승장엄경론송(大乘莊嚴經論頌)> 등을 지어 그 학설을 발전시켜 사실상 유식학파의 시조가 됐다. 미륵의 가르침을 받은 무착(無著, A.D 310~390)은 <섭대승론(攝大乘論)> 등을 저술하고, 아뢰야식(阿賴耶識)을 근본으로 하는 인간의 의식구조에 대한 조직적인 학설을 정립했다. 무착의 동생이며 제자가 된 세친(世親, A.D 320~420)은 미륵과 무착의 논서들을 주석하면서 많은 저작을 함으로써 유식사상을 대성시켰다.
유가유식학파(瑜伽唯識學派)의 선구적인 유가사(瑜伽師, 요가 수행자)들은 선정을 닦는 과정에서 자각한 갖가지 영상은 다만 식(識, vijnapti)일 뿐이라는 지각이 ‘유식(唯識)’이고, 이 유식에 바탕 해 현상계의 모든 것은 오직 표상식(表象識)일 뿐이라는 명제가 이 학파 학설의 기본을 이루고 있다.
*유애(有愛, 팔리어 bhava-ta?h?)---개체 존속의 욕망. 즉, 생존에 대한 애착. 내세의 생존에 대한 애착.
*유여열반(有餘涅槃)---자기의 수행으로 이승의 번뇌는 끊었으나, 아직도 과거의 업보로 받은 몸이 멸하지 못한 열반을 유여열반이라 한다. 아직 번뇌의 찌꺼기가 조금 남아 있는 상태이다. ‘유여’란 의존해야 할 것, 즉 육신이 아직 남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유여열반은 깨달음은 이루었으나 번뇌를 지닌 육신에 의지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헌데 유여열반(有餘涅槃)과 무여열반(無餘涅槃)으로 구분함에 있어서 소승과 대승이 그 주장을 달리한다. 소승에서는 열반을 번뇌가 다 없어진 상태라고 본다. 그리하여 소승의 경우, 유여열반은 번뇌는 다했지만 육체는 아직 남아 있는 경우이고, 대승에서는 열반을 보다 적극적으로 생각하여 상락아정(常樂我淨)의 4덕을 갖추지 못한 소승의 열반을 유여열반이라 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열반의 원형은 현재열반(現在涅槃)이라고도 불리는 유여열반(有餘涅槃)이라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열반을 윤회생사의 현실세계 저 너머에 있는 또 다른 존재영역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유위(有爲)---유위는 인연 따라 만들어지는 모든 것을 말한다. 우리가 하고 있는 모든 행위, 모든 일, 모든 생각, 또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도 연기법(緣起法)에 의하면 어느 하나 인연 따라 만들어지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그렇기에 우리가 세상 속에서 행하는 모든 행은 유위행이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는 다 유위법이라는 것이다.
*유위법(有爲法; samskrita dharma)---유위법이라 하는 것은 위작(爲作), 조작(造作)의 뜻으로 <만들어 진 것>이라는 의미다. 바로 ‘연기(緣起)된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우주의 일체 존재는 모두가 연기된 것이다. 이와 같이 갖가지 인연에 의한 결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모든 현상을 유위라 일컫는다. 즉,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이루어진 것, 어떤 힘에 의해 이루어진 것은 모두가 유위법이다.
*유전문(流轉門)---부처님께서는, 노병사(老病死)의 괴로움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일체의 경계를 여실히 보시고는, 그 원인이 생(生)에 있음을 아셨다. 태어났기에 노병사의 괴로움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생의 원인은 무엇인가를 살펴보니, 삼계의 생사 윤회하는 테두리인 유(有)로 말미암는 것임을 아셨고, 그 원인은 다시 어떤 대상에 집착하는 취(取)에 있음을 아셨고, 또 그 원인은 애(愛)……. 이렇게 하나하나 그 원인을 고찰해 올라가다 보니, 결국에는 무명(無明)이 생로병사의 근본 원인임을 여실히 아셨던 것이다. 결국 근본 원인은 무명이라고 깨달은 바를 ‘십이연기의 유전문(流轉門)’이라고 부르며, 이런 유전문을 관하는 것을 일어나는 대로 순차적으로 관한다고 하여 순관(順觀)이라고 한다.
*유정(有情, sattva)---불교에서 유정은 생명체, 마음을 가진 살아 있는 중생을 뜻하며, 물론 인간도 유정이다. 보리살타(보살)-bodhisattva에서 보리(bodhi)는 깨달음, 살타(sattva)는 살고 있는 존재, 즉 유정(有情)을 뜻한다. 그리고 무정(無情)이란 돌멩이 같이 정신의 작용이 없는 무생명체의 총칭이다.
*유행경(遊行經)---<장아함경> 가운데 두 번째 경전이다. <유행경>은 부처님께서 열반을 앞두고 여러 곳에 다니실 때 일어난 온갖 사건을 인연으로 해서 가르침을 설하신 것이다.
*유희야경(??耶經)---경명은 산스크리트어 <구히야(guhya)>를 한역한 것이다. 유희야경은 만다라작법에 대한 근거를 제공하는 경전으로 밀교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그러나 이 경에 관한 연구가 전무한 상태라서 현 단계에서 성립시기를 확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 단 경전의 구성으로 볼 때 <대일경>보다 약간 빠른 7세기 초반에 성립된 것으로 보이며, <대일경>의 선구적 경전이라 할 수 있다.
이 경이 언제 중국에 전해졌는지 확실치 않으나 당나라 시대 중국 밀교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불공(不空, 705~774)에 의해 한역됐다.
*6경(境)과 6식(6識)---육근(6根)이 육경(6境)을 만났을 때 각각의 감각 장소를 통해서 각각의 인식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 인식을 육식(6識)이라 한다.
눈이 색을 접촉하면 안식(眼識)이 일어나고,
귀가 소리를 접촉하면 이식(耳識)이 일어나고,
코가 냄새를 접촉하면 비식(鼻識)이 일어나고,
혀가 맛을 접촉하면 설식(舌識)이 일어나고,
몸의 피부가 촉감에 접촉하면 신식(身識)이 일어나고,
뜻(意)이 법(法)을 접촉하면 의식(意識)이 일어난다.
여기서 법이란 생각의 대상, 혹은 뜻으로 헤아릴 수 있는 대상(사물)을 말한다.
*육도(六道, sad-gati)---불교에서 깨달음을 얻지 못한 무지한 중생이 윤회전생(輪廻轉生)하게 되는 6가지 세계 또는 경계. 망자가 죽어서 가게 되는 곳 중에 가장 좋지 못한 곳인 삼악도(三惡道)는 지옥도(地獄道), 그 다음이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이며, 삼선도(三善道)는 아수라도(阿修羅道), 인간도(人間道), 천상도(天上道)의 여섯 갈래로 갈라져 있다. 이것을 육도라고 하며 여기에 삼계인 욕계, 색계, 무색계가 더하여 삼계육도라고 부른다.
*6바라밀---보시바라밀, 지계바라밀, 인욕바라밀, 정진바라밀, 선정바라밀, 반야바라밀이다. 이 중에서 지혜바라밀인 반야바라밀이 다른 다섯 바라밀을 성립시키는 근거인 무분별지(無分別智)이다. 그리고 선정바라밀과 반야바라밀은 머리, 지계바라밀과 보시바라밀은 양 팔, 인욕바라밀과 정진바라밀은 마음(혹은 몸통)에 해당한다.
*육성취(六成就)---모든 경전은 첫머리에 여섯 가지의 필수적인 요건을 갖추고 있는데 이것을 육성취(六成就)라고 한다---6하원칙(6何原則)과 비슷함.
※육성취(六成就)의 내용
-석존의 가르침이 틀림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신성취(信成就 : 여시如是),---이렇게
-내가 직접 들었다는 문성취(聞成就 : 아문我聞), -------나는 들었다
-설법한 때를 명시하는 시성취(時成就 ; 일시一時), --------어느 때
-설법을 한 것이 붓다였다는 주성취(主成就 : 불佛), --------누가
-설법한 장소를 밝히는 처성취(處成就 : 재사위국在舍衛國), ---어디서
-어떤 사람이 들었는가를 밝히는 중성취(衆成就 : 여대비구與大比丘)이다.--누구에게
그래서 모든 경전이 “여시아문 일시 불 재사위국 여대비구(如是我聞 一時 佛 在舍衛國 與大比丘---)” 이런 식으로 시작된다.
*육신통(六神通)
- 천안통(天眼通):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능력
- 천이통(天耳通) : 보통 귀로는 듣지 못할 소리를 듣는 능력
- 타심통(他心通) : 다른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능력
- 숙명통(宿命通) : 과거 전생을 볼 줄 아는 능력
- 신족통(神足通) : 자유자재로 몸을 변화시키거나 불가사의한 힘을 나툴 수 있는 능력
- 누진통((漏盡通) : 모든 번뇌가 다 끊어지고 열반에 이른 것.
육신통 중 천안통, 천이통, 타심통, 숙명통, 신족통 등은 아라한의 경지에서도 가능하지만 누진통은 오직 부처님만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다. 육신통과 관련해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신통력 사용을 엄격하게 금하셨다. 왜냐하면 불교의 본질은 깨달음이지 신통력은 수행과정의 부산물에 불과할 뿐, 그 자체가 본령이 아니기 때문이다. 운세, 사주, 점술, 해몽 등 부처님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신통력을 발휘해 뭍 중생을 현혹하는 행위는 수행자로서는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다.
*육입(六入, Sad.-a-yatana)---육처六處라고도 하며, 12연기에 있어서 명색을 연해 육입이 일어나는데, 육입은 인간 실존의 근저를 이루는 여섯 개의 감각기관(眼, 耳, 鼻, 舌, 身, 意 - 六根)을 말한다.
*육자진언(六字眞言)---불교의 천수경에 나오는 <옴 마니 반메 훔>이라는 관세음보살의 진언이다. 한국어에서는 성철스님이 50여 년 전에 ‘옴 마니 반메 훔’이 아니라 ‘옴 마니 파드메 훔’이라고 고쳤으나 현재 전자 쪽이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 진언을 부르면, 여러 가지 재앙이나 병환, 도적 등의 재난에서 관세음보살이 지켜주고, 성불을 하거나 큰 자비를 얻는다고 한다.
*육조단경(六祖壇經)---중국 남종선(南宗禪)의 근본이 되는 선서(禪書). 선종의 제6대조인 혜능(慧能)의 자서전적 일대기이다. 엄밀한 의미로 말하면 경(經)일 수 없고, 조사어록(祖師語錄)으로 분류돼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해박한 사상성과 간결한 문체 때문에 우리나라, 중국, 일본 등의 여러 나라에서 경과 같은 존숭을 받아 오고 있다. 이 책은 중국의 선사(禪師)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 가필, 보충한 형태로 편찬됐기 때문에 여러 가지 종류가 있으나 둔황(敦煌)에서 출토된 것이 가장 오래돼 이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한국의 선종도 중국의 남종선에서 유래한 까닭에, 일찍부터 이 책이 유행해 이제까지 밝혀진 목판 판각(板刻) 종류만도 20여종이나 되며, 주로 덕이본(德異本)이 유통돼 왔다.
*육통(六通)---육신통이라고도 한다. 불법을 열심히 닦아 어느 경지(아라한 수준)에 이르면 신통력이 생기는데, 여섯 가지 신통력을 말한다.---→육신통 참조.
*육화경이란---공동체의 화합을 위해 상대와 마음이 합해지도록 공경하는 여섯 가지 조건.
1. 몸으로 부처님 행을 해 화합하고(身和敬)
2. 입으로 부처님 말을 해 화합하고(口和敬)
3. 뜻으로 부처님과 같은 생각을 하며 화합하고(意和敬)
4. 바른 행동을 해 화합하고(戒和敬)
5. 바른 견해를 가져 화합하고(見和敬)
6. 자리이타(自利利他)에 충실해 화합한다(利和敬).
*윤회(輪廻)---수레바퀴가 끊임없이 구르는 것과 같이 중생은 지은 업에 의해 삼계육도(三界六道)의 생사 세계를 돌고 도는 것을 말한다. 즉 중생은 죽어도 다시 태어나 생이 반복된다고 하는 불교사상으로, BC 600년경 브라만교의 <우파니샤드>의 문헌에서 비롯돼 대중에게 전파됐다. 불교에서는 윤회하는 세계에 욕계, 색계, 무색계의 삼계에 지옥, 아귀(餓鬼), 축생(畜生), 아수라(阿修羅), 인간, 천상(天上)의 육도(六道)가 있다고 말한다. 이 3계6도 중 어느 세계에 태어나느냐 하는 것은 중생 자신의 행위와 그 행위의 결과와의 총체인 업(業)에 따라 결정된다.
*은산철벽銀山鐵壁---간화선(看話禪)에서 화두를 가리키는 말로, 손을 대어 볼 수 없고, 이도 들어가지 않는다는 뜻. 즉, 은과 철은 단단해 뚫기 어렵고, 산과 벽은 높아서 오르기 어렵다는 뜻. 화두를 참구해서 깨닫는 일이 그와 같이 어렵다는 말이다.
*음광승존(飮光勝尊)---빛을 마시는 뛰어난 존자란 뜻으로 마하가섭(摩訶迦葉, Mahakasyapa)을 존경해서 이르는 말임.
*의단(疑團)---의단이란 ‘의심 덩어리’, ‘의심 뭉치’라는 뜻인데, “언어도단 심행처멸(言語道斷 心行處滅)의 자리에서 분별망상의 명근(命根)이 끊어지도록 만드는 간화 장치는 ‘의단(疑團)’”이라며, “이 의단이 깨어질 때 깨달음이 일어나는 것”이라 정의하고, “의단으로 발전되는 첫 단초로서의 의심은 공안에서 비롯되고, 공안에서 비롯된 의심이 곧 ‘화두(話頭)’”라고 정의했다.
*의리선(義理禪)---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선을 말함. 즉 이치나 논리, 알음알이로 이해하는 선을 말한다.---→문자선(文字禪)과 비슷한 말.
*의문구족(義文具足)---여기서 ‘의(義)’는 말을 함에 있어서 조리(條理)나 의미란 뜻이고, 문(文)은 형식이나 표현을 뜻한다. 따라서 ‘의문(義文)’은 조리 있는 표현이 되겠고, 의문구족이란 ‘조리가 정연하게 표현하라’라는 의미겠는데, 석존께서 처음 전도를 떠나는 제자들에게 법을 설함에 의문구족하라고 하셨다. 즉 논리 정연하게 법을 설하라고 당부하셨다.
*의상(義湘) 대사---신라 625년(진평왕 47)에 태어나 702년(성덕왕 1)에 입적했다. 성은 김씨이며 진골 출신이다. 661년(문무왕 1) 당(唐)나라로 유학했다가 당나라 고종(高宗)의 신라 침략 소식을 알고 이를 본국에 알리기 위해는 귀국했다고 한다.
신라 삼국통일 후 676년(문무왕 16)에 문무왕의 명으로 부석사(浮石寺)를 창건한 후 구례 화엄사(華嚴寺), 범어사(梵魚寺) 등 화엄십찰(華嚴十刹)을 걸립해 화엄대교를 전했다.
*의언진여(依言眞如) 이언진여(離言眞如)---원효대사의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에 나오는 말이다. 진리를 언어를 빌려 표현하지만 진짜 진리는 언어를 떠나야 한다는 말이다.
*의정(疑情)---의정이란 화두에 대한 간절한 의심이 물밀 듯 터져 나오는 것을 말한다. 이 의정의 농도가 매우 진한 상태를 의단(疑團)이라 한다. 의단이란 ‘의심 덩어리’, ‘의심 뭉치’라는 뜻이다. 참선하는 데에는 의정(疑情)을 일으키는 일이 중요하다. 그리고 화두는 의정이 생명이다. 의정이 일어나야 사량분별(思量分別)이 일어나지 않고 진실로 돌아간다.
대분심(大憤心)을 일으켜보라. 그래야 큰 의정을 일으킬 수가 있고, 큰 의정을 일으켜야 크게 깨칠 수가 있고, 의정을 통해 비로소 공안을 타파하게 된다. 진리는 개념이나 지식으로 알 수 없다. 이것이 의정을 통한 깨달음의 길이다.
*의정돈발법(疑情頓發法)---의정돈발법이란, 말 그대로 하자면 ‘의정을 문득 일으키게 하는 방법’을 뜻하지만, 여기에서는 구체적으로 ‘의정을 일으키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되는 요인’을 의미한다. 즉, 실제 수행해 나가는 데 있어서 어떻게 하면 의정을 좀 더 잘 일으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여기엔 세 가지 부분이 있다. 선지식, 참구자 및 화두가 그것이다. 즉 의심을 일으키도록 결정적인 가르침을 주는 선지식과 그로부터 화두를 받아서 참구해 나가는 당사자, 그리고 바로 그 화두를 참구해 나가는 실제적 요령의 숙지 등의 세 가지이다.
*의천(義天)---고려 문종의 넷째 아들, 대각국사(大覺國師). 송에 유학, 귀국 후 개경의 국청사(國淸寺)에서 <천태 3대부>를 강의하면서 천태종을 개창해 선교일치를 주장했다. 그는 초조대장경에서 제외된 중국 및 한국 학승들의 저술인 장 ? 소(章疏) 등을 모아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을 작성하고, 이를 목판본으로 판각했다(통칭 속장경이라 잘못 일컬어짐). 그리고 국가의 이익과 민생의 복리를 위해 주전론(鑄錢論)을 주장 관철시켰다.
※교장(敎藏)---학승들의 불경에 대한 주석서인 장 ? 소(章疏) 등을 모은 것.
*의타기성(依他起性)---‘나’라는 것도 인연 따라서 잠깐 이루어지고 또 내가 미워하는 마음도 인연 따라서 이루어지고, 이 세상에 인연이 없이 이루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다. 모두가 인연생(因緣生)이라는 것이다. 인연 따라서 이루어진 이것은 여환가유(如幻假有)라, 마치 허깨비같이 가짜로 잠깐 존재하는 것이다.
*이공(二空)---대승불교의 교의에서 공(空)을 크게 아공(我空)과 법공(法空)의 이공(二空)으로 나눈다. 아공(我空)은 인공(人空)이라고도 하는데, 이 때문에 이공(二空)을 인법이공(人法二空)이라고도 한다. 이공(二空)의 교의는 초기 대승불교의 근본적인 교의 또는 사상이 됐다.
또 아공(我空)을 인무아(人無我)라고도 하며, 법공(法空)을 법무아(法無我)라고도 한다. 그리고 이 둘을 통칭해 이무아(二無我)라고 하는데, 이무아(二無我)는 이공(二空)과 같은 뜻이다. 이공의 교의 또는 사상은 후대에 이공에 구공(俱空)을 더해 삼공(三空)의 교의로 발전했다.
*이류중행(異類中行)---선사가 수행자나 일반인과 함께 생활하며 수행과 교화에 힘쓰는 일. 당나라의 고승 남전보원(南泉普願)이 주장한 수행법이다. 이류(異類)란 본래 인간과는 다른 생물, 즉 동물을 뜻하는 말이다. ‘이류중행’은 보살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스스로 짐승 속에 들어가서 교화의 행을 하는 것이다. 즉, 불 ? 보살이 자기의 본지(本地)에 머물지 않고, 생사윤회 속에 있는 다른 중생[異類] 속에 태어나 제도사업을 벌이는 것을 이른다.
*이 뭣꼬?---“무자화두(無字話頭) = 이 뭣꼬 화두” = “이뭣고(是甚摩)”
사람마다 이 몸을 운전하는 주인공이 있는데 그것을 일러 마음이다, 넋이다, 영혼이다 … 의심이 일어난다. 그래서 "이뭣고(是甚摩)"라는 화두인 공안(公案)이 성립된다.
‘이 뭣꼬’란 <시심마(是甚?)>를 경상도 사투리로 표현한 것으로, 선원에서 깨달음을 얻기 위한 공안(公案)을 말한다. 공안이란 깨달음을 얻기 위한 실마리를 주는 말로 화두(話頭)라고도 한다. <시심마> 즉 <이 뭣꼬>란 인생의 모든 생활 현상에 따라, 변화에 따라 움직이는 이 마음가짐을 관찰하는 것으로, 행하고, 머무르고, 앉고, 눕고, 말하고, 침묵하고, 움직이고, 멈춘 가운데[행주좌와 어묵동정(行住座臥語默動靜)] 나를 움직이는 마음의 주인공인 <이 놈이 무엇인가>를 관찰하는 것을 말한다.
‘이 뭣꼬(시심마)’의 유래 - 먼저 ‘시심마(是甚?)’라는 것은 오래된 글에는 나오지 않는 단어이다. 흔히 백화체(白話體)라고 얘기하는 한문과 현대 중국어의 과도기에 속하는 구어식의 문체가 있는데 거기에 출현한다. 이때의 문장은 글자만으로는 도저히 풀이가 안 되는 관용적인 표현들이 많이 들어있는데, 그 중 다수가 현대 중국어에 쓰이고 있다.
지금 이 질문을 하는 것이 무엇인가? 몸인가? 입인가? 마음인가? 아니면 님의 그 귀하다는 불성인가? 이론적으로 논리적으로 대답하지 말고 실제로 분명하게 들어내서 보여 보아라. 몸뚱이라면 죽은 뒤는 말을 못하니 송장일 뿐이오. 마음인가? 불성인가? 그런 것 같으면 한 번 들어내 보아라 … 이다. 6조 혜능대사(慧能大師)의 시심마(是甚?)는 바로 달마대사의 직지인심(直指人心)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법계(理法界)---화엄 사법계(四法界)의 하나. 모든 존재의 세계를 네 가지 영역으로 분류한다.
1. 사법계(事法界) - 화엄종의 우주관. 현상의 세계.
2. 이법계(理法界) - 진리의 세계.
3. 이사무애법계(理事無?法界) - 현상과 진리가 서로 방해함이 없이 교류·융합하는 것.
4. 사사무애법계(事事無?法界) - 현상과 현상이 서로 방해함이 없이 교류·융합하는 세계.
이와 같이 사법계의 하나로서 ‘이법계’란 진실에 대한 깨달음의 세계이다. 우주의 모든 사물은 진리가 현현(顯現)된 것이라는 세계관이다. 사(事)의 세계가 허상인 속제(俗諦)라 하면 이(理)의 세계는 진제(眞諦)가 된다.
*이부종륜론(異部宗輪論)---인도의 학승 바수미트라(Vasumitra, 世友, 서기 1~2세기경)가 짓고 현장(玄?)이 번역한 것으로 소승불교 20부의 분파 상태와 교리의 요지를 기록한 책.---→세우 참조.
*이사무애법계(理事無?法界)---화엄교학의 4법계의 하나. 현상과 진리가 서로 방해함이 없이 교류·융합하는 것. 즉, 이와 사, 즉 본체계와 현상계가 둘이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의 걸림 없는 상호관계 속에 있음을 말한다.
이상으로서의 깨달음의 세계가 현실의 미혹의 세계와 떨어져서는 존재할 수 없는, 번뇌 즉 보리(煩惱卽菩提), 현실 즉 이상(現實卽理想)의 세계이다. 모든 현상과 진리는 일체불이(一體不二)의 관계에 있다는 세계관이다.
이(理), 곧 우주의 본체인 공(空)과, 사(事), 곧 현상세계의 물질에 다 같이 걸림이 없는 깨달음의 경지. 다시 말해 구경지(究竟地)인 진여(眞如)의 차원에서 보면, 이들은 둘이 아니며, 번뇌가 곧 깨침이라는 번뇌즉각(煩惱卽覺)이라는 말도 따지고 보면 이와 같은 뜻이다.
*이생위(離生位)---수행이 최고조에 달해 상수멸정(想受滅定) 상태가 되는 경지. 번뇌가 녹아져서 완전히 없어지고, 너와 나의 차이 또는 사물과 나와의 차이가 전혀 없이 일체 존재 모두가 다 하나의 불성으로 해서 완전히 통일이 돼버리는 경지이다. 바로 정각성불(正覺成佛)이 되는 것이다.
*이심전심(以心傳心)---마음과 마음으로 서로 뜻이 통한다는 말. 혹은 문자나 언어 없이 남을 깨닫게 한다는 말. 원래 이 말은 불교의 법통(法統) 계승에 쓰여 온 말이다. <전등록(傳燈錄)>은 송(宋)나라 사문(沙門) 도언(道彦)이 석가세존(釋迦世尊) 이래로 내려온 조사(祖師)들의 법맥(法脈)의 계통을 세우고 많은 법어(法語)들을 기록한 책이다. 이 책에 “부처님이 가신 뒤 법을 가섭에게 붙였는데, 마음으로써 마음에 전했다”고 나와 있다. 즉 석가세존께서 가섭존자(迦葉尊者)에게 불교의 진리를 전했는데, 이심전심으로 행해졌다는 것이다.
*이입사행론(二入四行論)---중국 선종의 초대 조사 달마의 어록. 둔황(敦煌) 막고굴에서 발굴된 것과 우리나라에 전하는 것이 있다. 우리나라에 전하는 <보리달마사행론(菩提達摩四行論)>은 1464년과 1908년 간행된 두 종류가 현존한다. 내용은 달마의 선수행법으로 선정에 드는 두 가지 길과 네 가지 행동을 말한다. 달마 이름으로 발표된 수많은 저술들 중 진짜 달마의 작품은 이 <이입사행론> 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달마가 저술한 것이 아니라 후대의 제자들에 의해 제작된 것이다. 달마의 제자 담림(曇琳)이 스승의 설법을 정리하고, 그 서문을 썼다.
*이제(二諦)---진제(眞諦)와 속제(俗諦)를 합쳐 이제(二諦)라 한다. 제(諦)는 변치 않는 진리를 말하고, 진제는 절대적 진리를 말하며, 속제는 세상에서 일반적으로 인정하는 진리, 여러 가지 차별이 있는 현실 생활의 실상(實相)에 따라 알기 쉽게 설명한 진리를 말한다.
*이참(理懺)과 사참(事懺)---참회에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이참이고 하나는 사참이다. 사참(事懺)은 몸과 마음, 그리고 생각으로 지은 악업에 대한 참회를 절이나 염불, 독송 등을 통해 하는 것이다. 이참은 본래의 마음자리에서 볼 때 모든 죄가 본래 자성이 없다는 것을 꿰뚫어 봄으로써 참회를 이루는 것이다.
이참과 사참 두 참법 중, 사참은 이참이 바탕이 되고 뿌리가 될 때 온전히 이루어지고, 이참 또한 사참이 없으면 공중누각이 될 수밖에 없다. 곧 사참과 이참은 결코 둘이 아니다. 불교 교의의 진리에 진제(眞諦)와 속제(俗諦)가 있음과 같은 맥락이다.
*이체자(異體字)---한자는 수천 년에 걸쳐 사용돼 왔기 때문에 같은 글자라도 시대와 쓴 사람에 따라 모양이 다르고, 서체에 따라 약자, 간체자, 초서 등이 있는가 하면, 전서(篆書)와 같이 다른 서체도 있어서 여러 가지 다른 모양의 글자가 있다. 같은 글자인데 이처럼 모양이 다른 글자를 통틀어 이체자 또는 변체자(變體字)라 한다. 이체자가 생긴 이유는 오늘날과 같이 통일된 인쇄(활자)자가 없이 사람마다 붓 등의 필기구를 가지고 글씨를 쓰고, 지역, 시대에 따라 서체가 다양해짐에 따라 한 개의 글자도 그 원모양이 변해 이체자가 생겼다. 팔만대장경엔 이런 이체자가 약 8천종 2만여 자 이상이 있어서 컴퓨터 활자화에 어려움을 주고 있다.
*이탐(離貪, viraga)---우리의 일상생활은 애욕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 이 소용돌이를 밀쳐버리고 탐욕에서 벗어나는 것을 이탐이라 한다. 그런데 부처님은 욕망을 다 없애버리는 것이 아니라 갈애를 없애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행도(易行道)---이행도는 부처님의 구제를 바라는 불교를 말한다. 즉, 신앙의 불교로서 남의 힘을 믿고 그에 의지하면 되므로 쉽게 수행할 수 있는 길이 되므로 이행도라 하고, 불교사적으로 볼 때, 불탑신앙에서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 이행도는 부처님의 무궁한 자비와 구제력을 중시하는 대승불교의 기본입장이다. 아미타불의 타력본원에 의지하는 것이기에 수행하기 쉽고, 깨닫는 경지에 빨리 도달할 수 있어 이 길을 타력문(他力門)이라 하며, 난행도(難行道)에 대응되는 말이다.
*인계(印契) = 수인(手印)---부처가 자기의 내심(內心)의 깨달음을 나타내기 위하여 열 손가락으로 만든 갖가지 표상(表象). 시무외인, 항마촉지인 따위 수인이다---→수인 참조.
*인다라망(因陀羅網) = 인드라망---부처가 세상 곳곳에 머물고 있음을 상징하는 말. 산스크리트어로 인드라얄라(indrjala)라 하며, 인드라의 보석 그물이라는 뜻이다. 고대 인도신화에 따르면 인드라 신이 사는 선견성(善見城) 위의 하늘을 덮고 있는 보석 그물. 그물코마다 보배 구슬이 박혀 있고 거기에서 나오는 빛들이 무수히 겹치며 신비한 세계를 만들어 내고 있다고 한다.
이것이 불교에서는 끊임없이 서로 연결돼 온 세상으로 퍼지는 법의 세계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그리하여 화엄철학에서는 ‘인다라망경계문(因陀羅網境界門)’이라고 해서 부처가 온 세상 구석구석에 머물고 있음을 상징하는 말이다.
*인로왕보살(引路王菩薩)---죽은 사람을 극락세계로 안내하는 보살. 일반적으로 사찰에는 죽은 사람이 타는 가마인 영가(靈駕)를 놓는 영가단이 있는데, 그 뒤편에 탱화가 걸려 있다. 인로왕보살은 이 탱화 속에 등장해 죽은 이를 극락으로 인도하고 있다.
*인명(因明)---5∼6세기경에 성립한 불교논리학, 논증의 근거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 인도의 불교도들은 인도의 학문을 내명(內明) ? 의방명(醫方明) ? 인명(因明) ? 성명(聲明) ? 공교명(工巧明) 등의 5명(五明)으로 분류했는데, 인명은 그중 하나이다. 인(因 hetu)이란 논증의 형식에서 결론을 이끌어내는 원인을 뜻하는데, 이것은 논증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므로 불교에서는 논리학을 인을 밝히는 학문이라는 뜻으로 인명이라 한다.
*인상(人相)---4상(四相)의 하나. 부파불교 당시 독자부(犢子部)에서 윤회의 주체라고 주장한 뿌드갈라(pudgala)를 말함. 또 달리는, 남과 나를 분별하는 것. 혹은 자신이 인간이란 우월감에 빠져 있는 것. 내가 인간이라는 그 교만. 그래서 자연파괴와 같은 것을 자행하게 된다.
*인왕(仁王)---사찰 문이나 입구나 불전의 입구, 또는 불상의 좌우, 탑의 문 등을 지키는 한 쌍의 수호신 흔히 금강역사(金剛力士) ? 이왕(二王) 등으로도 불리며, 원래는 인도에서 문을 지키는 신이었는데 이를 불교에서 받아들여 부처와 불법을 지키는 신으로 변했다.
*인왕경(仁王經)---호국경(護國經)으로서 국가의 안녕을 빌기 위한 불경. 구마라습(鳩摩羅什)이 한역한 <인왕반야바라밀경>(2권)을 구역(舊譯)이라 하고, 불공(不空)이 번역한 <인왕호국반야바라밀경>(2권)을 신역(新譯)이라 한다.
*인천(人天)---인간과 신(神). 인간계와 천상계의 중생.
*인천안목(人天眼目)---송나라 승려 회암 지소(晦庵智昭)가 당시 중국 선종의 위앙종(위仰宗), 임제종(臨濟宗), 조동종(曹洞宗), 운문종(雲門宗), 법안종(法眼宗) 등 오종의 조사들의 행적과 기본사상 언구(言句)를 요약해 편집한 책(1174∼1189)으로 우리나라 선가(禪家)에서도 많이 읽히는 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공민왕 6년(1357)에 원나라에서 활동하던 강금강(姜金剛)이 이 책을 간행했던 것을 원본으로 삼아, 조선 태조 4년(1395)에 무학대사가 회암사에서 다시 새겨 펴낸 적이 있다.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상, 중, 하를 하나의 책으로 엮었으며, 크기는 세로 27㎝, 가로 16㎝이다. 전체적인 보존상태는 양호하지만, 책머리와 끝부분에 일부 파손이 있다(보물 제1094호).
*인타라망(因陀羅網)---→인다라망 참조.
*인행(因行)---원인이 되는 행위. 선인 선과(善因善果)라 했다. 선과의 인행이 선행이다.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부처님이 극히 중대한 일을 수행하려는 목적으로 이 세상에 출현했다는 말인데, 중대한 일이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부처가 인연을 맺어 세상에 나타나서 교화하는 일을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1)일체중생들을 위해 진리의 문을 열기 위해서 오셨으며(開),
2)일체중생들에게 진리를 보여주기 위해 오셨으며(示),
3)일체중생들에게 진리를 깨닫게 하기 위해 오셨으며(悟),
4)일체중생들에게 진리의 세계로 들어오게 하기 위해서(入) 오신 것이다. 이 넷을 줄여서 개시오입(開示悟入)이라고 하는데, 법화경의 핵심 내용이다.
*일련종(一連宗)---일본 니치렌(一連, 1222∼1282년)이 창시했다. 가난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일본 천태종의 성지로 유명한 히에이산(比叡山)에서 10년 동안 천태교의와 수행을 닦은 후, 대승경전인 <법화경>의 신앙을 일본이라는 사회적 상황에 맞게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일련종을 개창했다. 그의 저서 <입정안국론(入正安國論)>에서 주종(主從)의 도덕, 조상과 부모에 대한 보은, 군주의 은혜, 아랫사람에 대한 보은을 강조해 오늘날의 군국주의 색채가 농후하다. 그의 재가신도에는 지방의 무사계급과 여성신도가 많았고, 후대에 생긴 일련종의 지파로서 가장 유명한 것이 창가학회(創價學會)이다.
*일면불 ? 월면불(日面佛 月面佛)---<불명경(佛名經)>이라는 경전에 이런 말이 있다. 월면이라는 이름의 부처는 수명이 일일일야(一日一夜)이고, 일면이라는 부처의 수명은 1,800세라고 씌어있다. 석가모니 부처님 이후로 가장 위대한 도인이라 일컬어지는 마조 도일(馬祖道一, 709∼788) 선사가 병상에 눕자, 원주가 문안을 왔다.
“스님 요즘 건강이 어떠하십니까?”라는 문안 인사에 대한 대답이 “일면불 월면불이야”였다. 이 말은 병이 나아 1,800년을 살아도 좋고, 병이 악화돼 ‘밤새 안녕’ 해도 좋다는 뜻이다. 즉 죽음을 초탈한 생사일여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화엄경 법성게>에 나오는 말. 한 티끌 속에 우주를 머금었다는 말. 원자핵을 말하는 과학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한 티끌 자체가 그 자체로 무량 우주의 구조를 갖고 있다. ‘일체진중역여시(一切塵中亦如是)’ 일체의 각 티끌 속에 역시 시방세계가 포함돼 있다는 말.
*일법인(一法印)---대승에서 설하는 단 하나의 특징. 모든 현상의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곧 제법실상(諸法實相)을 말함.
소승불교의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열반적정인(涅槃寂靜)의 삼법인에 대해 대승불교에서는 제법실상(모든 것이 그대로 진실이다)의 일법인(一法印) 곧 일실상인(一 實相印)만이 있다고 한다. 이는 곧 부처님의 일법인이라 할 수 있는 “제법무아”론으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것이다.
*일병식재(一病息災)---하나의 병을 가진 사람이 그 병을 다스리기 위해 음식조절, 운동 등 자기절제를 통해 몸을 다스리는 덕에 다른 병이 생기는 것을 방지한다는 뜻이다.
*일불승(一佛乘)---일승(一乘)이라고도 한다. 승(乘)은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부처의 가르침을 뜻한다. 일불승이란 부처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오직 하나의 궁극적인 가르침. 모든 중생을 성불하게 하는 부처의 유일한 가르침이란 뜻이다. 결국 모든 가르침이 일체중생을 부처님의 경지로 인도하기 위한 유일한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불교에는 가르침이 참으로 다양하다. 석존은 법화경을 설하기 이전에는 사람들의 기호에 따라 여러 가지 탈것(가르침)을 설하며 교시했다. 흔히 표현하기를 8만 4천 근기에 따른 8만 4천 법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수많은 가르침도 결국은 깨달음이라고 하는 하나의 종점에 귀결된다. 어쩔 수 없어서 근기를 따라 각양각색의 법을 펼쳐놓지만 사실인즉 모두가 부처님이라는 하나의 사실을 깨eke는 것이 그 종점이다. 그리고 알고 보면 그것이 또한 출발점이기도 하다. 무수한 생을 거듭하면서 수행한다는 것은 부처님으로 출발해 끝내 부처님으로 돌아오는 일이다. 달리 다른 일은 없다. 처음도 부처님이요, 중간도 부처님이요, 끝도 부처님이다. 오직 부처님만이 있을 뿐이다. 이것이 법화경에 말한 ‘유유 일불승 무이역무삼(唯有一佛乘 無二亦無三)’으로서 법화경의 종지(宗旨)이며, 대승불교의 핵심이고, 불교의 최고 종지인 일불사상이다.
*일상관(日想觀)---16관의 하나. 지는 해를 보고 서쪽에 있는 극락정토를 관상(觀想)하는 방법이다. 부처님께서 위제희부인(韋提希夫人)에게 말씀하셨다.
“부인이여, 그대와 중생들은 마음을 가다듬고 생각을 한 곳에 집중해 서쪽을 생각하시오. 그리고 어떠한 생각을 하는가 하면, 모든 중생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소경이 아니고 눈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해가 지는 것을 볼 것이니, 서쪽을 향해 단정히 앉아서 해를 똑똑히 보도록 하시오. 그리고 나서 마음을 굳게 간직해 생각을 움직이지 말고, 곧 지려는 해가 마치 서쪽 하늘에 매달린 북과 같음을 보도록 하시오. 그래서 해를 보고 난 후에도 눈을 감으나 눈을 뜨나 그 영상이 한결같이 분명히 보이도록 할 것입니다.”라고 했다. 이러한 것을, 해를 관하는 일상관(日想觀)이라 한다.
*일상삼매(一相三昧)---일상삼매는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으며 모든 상을 떠난 것을 가리킨다. 중생들은 이분적(二分的) 사고(思考) 속에 살고 있다. 많다, 적다, 있다, 없다, 더럽다, 깨끗하다. 이런 이분적 사고는 고통의 원인이 된다. 흔히 말하는 상대적 빈곤감이다. 그러나 수행을 통해서 이런 이분적 사고를 극복하고 마음의 벽(이분적 사고)을 깨나갈 적에 마음의 벽이 무너진 만큼 자유롭고 행복해진다. 이와 같이 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다 걷어내고 마음의 벽이 온전히 다 무너져 너와 내가 없는 하나가 되었을 때를 일상삼매(一相三昧)라고 한다. 즉, 모든 현상이 평등해 하나의 모습임을 주시하는 삼매를 일상삼매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일상삼매의 상태가 자기 의사와는 무관하게 지속되는 상태가 일행삼매(一行三昧)이다. 즉 일상삼매의 마음을 온전히 유지 할 적에 일행삼매라고 한다.
*일승(一乘, Ekay?na) 혹은 일불승(一佛乘)---소승 불교의 성문승(聲聞乘) ? 연각승(緣覺乘)의 이승(二乘)에 대해서 대승 불교가 스스로의 입장을 나타낸 것이다. 법화경에 성문승ㆍ연각승ㆍ보살승(菩薩乘)의 삼승(三乘)을 모아 가지고 성불이라는 일승불로 나아간다는 회삼귀일(會三歸一)의 사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일승사상(一乘思想)---일승(一乘)이란 말은 <법화경>에서 본격적으로 강조된 개념으로 성문 ? 연각 ? 보살들은 하나의 커다란 수레[일승(一乘)]로 귀일하게 된다는 뜻이다. 부처님은 성문 ? 연각 ? 보살의 삼승은 방편이고 일승은 진실이라 하셨다. 즉, 세존이 법화경을 설하기 이전에는 성문 ? 연각 ? 보살의 삼승(三乘)에 대한 여러 가지 가르침을 설했지만 그것은 방편에 지나지 않으며, 결국은 모두 일승(一乘)으로 돌아간다는 회삼귀일(會三歸一)이 바로 일승사상이다.
여타의 대승 경전에서는 성문 ? 연각 등의 소승 성자들은 보살보다 한 단계 낮게 취급해 차별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었는데, <법화경>에서는 이들을 모두 일승으로 포섭한 것이다. 일승, 그것은 모든 차별과 계급의식을 떠난 커다란 하나 됨이다.
*일심(一心)---‘일심’에 대한 해석은 종파에 따라 다소 다르다. 그러나 대개 화엄종의 일심사상을 따르고 있다.
<화엄경 10권, 야천궁보살설게품>에 “삼계는 오직 일심(一心)으로 이루어졌고 마음 밖에 다른 법이 없다. 마음과 부처, 중생, 이 세 가지에는 차별이 없다.”라는 말이 나온다.
즉, 마음이 만유의 본질이며 블, 중생 ,마음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얘기하고 있다. 그래서 삼계는 오직 마음(일심)에서 이루어졌고, 마음 밖에서 원인을 찾을 수 없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이다. 이는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내는 것임을 뜻하는 화엄경의 중심 사상으로서, 일체의 제법(모든 법)은 그것을 인식하는 마음의 나타남이고, 존재의 본체는 오직 마음이 지어내는 것일 뿐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삼계란 불계(佛界), 중생계(衆生界), 심계(心界)의 세 가지, 즉 불 ? 중생 ? 마음을 말한다.
*일야현자(一夜賢者)---부처님 10대 제자 중 논의 제일이라는 가전연(마하 깟짜나, 迦?延) 존자가 부처님 게송을 해설한 내용 - 과거를 따라가지 말고 미래를 기대하지 말라. 한번 지나가버린 것은 버려진 것 또한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이러저러한 현재의 일을 이모저모로 자세히 살펴 흔들리거나 움직임 없이 그것을 잘 알고 익히라. 오늘 할 일을 부지런히 행하라. 누가 내일의 죽음을 알 수 있으랴. 진실로 저 염라왕의 무리들과 싸움이 없는 날은 없거늘 밤낮으로 게으름을 모르고 이같이 부지런히 정진하는 사람, 그를 일러 참으로 일야현자(一夜賢者), 고요한 분, 성자라 한다. 이는 쓸데없는 걱정으로 허송세월하며 괴로워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의 글이다.
*일원상(一圓相)---일원상은 부처님의 마음자리를 표현함이다. 그러나 부처님의 마음이 둥글다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마음은 오직 청정원만(淸淨圓滿) 하시므로 그것을 원형으로 표시했다. 또한 일원상은 부처님의 마음인 동시에 근본 심체(心體)이다. 결국 차별도 대립도 없는 절대 평등의 진여의 상, 지혜, 진리, 참 자아를 상징한다.
이 일원상은 당대 6조 혜능(慧能) 선사의 제자인 남양 혜충(南陽 慧忠, ?~775) 국사께서 항상 원을 그려 학인들에게 도를 깨닫는 방편으로 삼은 데에서 연유하고 있다. 그리고 원불교(圓佛敎) 교리의 궁극적인 표현을 일컫기도 한다.
*일종식(一種食)---하루에 한 끼만 먹는 것을 말함.
*일주문 (一柱門)---절 입구의 첫 문을 일주문이라 한다. 기둥 넷이 일렬로 서있는 위에 정교한 건축이 이루어져 있는데, 이것은 역학적으로 중심의 힘을 이용해 절대의 건축미를 살린 특유의 양식이다. 이 문의 뜻은 ‘一’이라는 데에 있다.
불교에서는 우주 만유를 일심(一心)의 표현으로 보는 것이며, 법계(法界) 전체를 일심의 그림자로 보는 것이기 때문에 화엄경에도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했으며, 회삼귀일(會三歸一)이라 하고, 만법귀일(萬法歸一)이라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일심에서 일어난 현상이라 결론짓는 것이 불교의 본질인 것이다. 이 문을 경계로 하여 문밖을 속계(俗界)라 한다면 문안은 진계(眞界)인 것이며, 이 문을 들어설 때 일심에 귀의한다는 결심을 가지도록 하는 마음을 촉진시키는데 그 뜻이 있다.
*일즉일체(一卽一切) 다즉일(多卽一)---<화엄경> 법성게(法性偈)에 나오는 말. 하나가 곧 전체이고 전체가 곧 하나라는 가르침이다. 하나 속에 일체 있고 여럿 속에 하나 있어 하나가 곧 일체요 여럿이 곧 하나라는 말이다.
*일체중생이 개유불성(一切衆生 皆有佛性)---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는 성품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부처님께서 중생들을 관찰해 보니 생명 있는 모든 존재들이 이른바 불성(佛性)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더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말한다. 이는 또한 우리 모두는 평등하고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존재임을 말한다. 일체함령 개유불성(一切含靈 皆有佛性)과 같은 말이다.
*일천제(一闡提, Icchantica)---산스크리트 '이칸티카'의 본뜻은 ‘욕망을 가진 자’란 뜻으로, 쾌락주의자나 현세주의자를 가리키는데, 불교에서는 올바른 법을 믿지 않고 깨달음을 구하지 않기 때문에 성불의 소질이나 연이 결여된 자, 불교의 정법을 훼방하고 구원될 희망이 없는 사람을 의미한다. 결국 ‘선근(善根)을 모두 잘라 버린 자’이다. <대승열반경>에서는 어떤 사람도 성불할 가능성을 가진다는 것을 강조한다. 법상종은 이를 부정하고, 천태종ㆍ화엄종 기타 대승의 여러 종은 이를 긍정한다.
*일행삼매(一行三昧)---육조단경 정혜품(六祖壇經 定慧品)에 나오는 말. 가고 멈추고 앉고 눕고 간에 항상 곧은 마음을 쓰는 일이다. 절을 할 때에는 그저 절만 해야 한다. 앉아 있을 때에는 그저 앉아 있기만 해야 한다. 사물을 바라볼 때 역시 그저 바라보아야만 한다. 우리는 이것을 일행삼매라고 한다. 언제 어디서나 어떠한 행동을 할지라도 항상 직심을 행하는 것이다.---→일상삼매 참조.
*임제 의현(臨濟義玄, ?~867)---당나라 시대의 선승으로 임제종(臨濟宗)의 개조이다. 그의 문하에 유수한 승려가 많이 배출됐다. 임제대사의 어록집인 <임제록(臨濟錄)>은 임제종의 근본 경전이며, 예로부터 선(禪)을 사랑하는 지식인들이 애독한 책이다.
6조 혜능의 제자가 남악 회양(南岳懷讓)이고, 남악 아래 마조(馬祖) 선사, 그 아래 백장(百丈), 백장 선사 밑에 황벽(黃檗) 선사인데, 바로 그 아래가 임제 선사이다. 모두 도인 가운데 으뜸가는 도인이요, 밝은 도안(道眼)을 갖추신 분들이다.
*입보리행론(入菩提行論)---인도의 불교학자 산티데바(Santideva, 7∼8세기경)의 저술로 전해지나 10세기에 천식재(天息災)가 번역한 한역본에는 용수(龍樹)가 지은 것으로 돼 있다. 산스크리트 원전은 시(詩)로 돼 있으며 후기 대승불교문학의 걸작으로 꼽힌다. 특히 티베트에서 애송돼 현존하는 주석서만도 8종이나 된다. 티베트본 제목은 <입보살행(入菩薩行)>이고, 한역본은 <보리행경(菩提行經)>
*입법계품---화엄경의 마지막 품이다. 선재동자가 남방으로 53선지식을 찾아다니면서 도를 구해 법계의 이치를 터득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60권 화엄경에서는 제44권 이하이며, 80권 화엄경에서는 제61권 이하이다.
*입설단비(立雪斷臂)---2조(二祖) 혜가(慧可)가 눈 속에서 서서 자기 팔뚝을 잘라 바치며 달마에게 도(道) 공부하기를 청했다는 말.
*입승(立繩)---절에서 대중(大衆)의 기강(紀綱)을 맡은 직책. 대중의 진퇴(進退)와 행동을 지시하는 소임으로, 유나(維那)와 비슷하다. 새벽 가부좌를 틀고 앉으면 입승이 세 번 죽비를 친다. 이 죽비 소리를 신호로 입선(入禪)을 한다.
*잇찬티카’(icchantika)---→일천제(一闡提) 참조.
*잉신(榧臣)---시집갈 때 따르는 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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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보장(自家寶藏)---자기의 마음속에 깊이 감추어 둔 보물이라는 뜻으로, 성품 ? 자성 ? 본래면목을 말한다. 이 세상의 모든 보물 중에서 자기가 본래부터 갖추어 있는 성품은 곧 부처(불성)이기 때문에 가장 큰 보물이며, 자기의 마음속에 감추어 둔 그 보물(자가보장)을 찾는 것이 수행인의 가장 크고 급한 일이다. 중국 당나라 시대에 대주 혜해(大珠慧海)선사가 마조도일(馬祖道一) 선사를 찾아뵀을 때의 이야기이다.
“무슨 일로 왔는가. 불법을 구하러 왔습니다. 자기 집 보배는 돌아보지 아니하고 집을 떠나 무엇을 찾을 것인가. 이곳에는 일물도 없으니 무슨 불법을 구하겠는가. 어떤 것이 이 혜해의 자가보장입니까? 나에게 묻는 자가 너의 보장이노라.”
자기 집에 있는 보물창고. 곧 누구나가 지니고 있는 불성(佛性). 따라서 집에 있는 보물을 버리고 딴 곳에서 보물을 찾지 말라는 뜻임.
*자량(資糧)---산스크리트어 sa?bh?ra, 수행의 기본이 되는 선근(善根) ? 공덕(功德). 보리와 열반에 이르는 데 바탕이 되는 여러 가지 선근과 공덕.
*자량도(資糧道)---부처나 아라한이 되기 위해 도(道)를 닦는 과정은 다섯 단계로 이루어져 있는데, 자량도(資糧道), 가행도(加行道), 견도(見道), 수도(修道), 무학도(無學道)의 다섯이고, 그 첫 단계가 자량도이다. 선근과 복덕을 쌓아 수행의 밑바탕으로 삼는 지위.
*자리이타(自利利他)---대승불교에서 수행의 이상을 나타낸 말. 자리(自利)란 스스로를 이롭게 한다는 뜻으로
노력하고 정진해 수도(修道)의 공덕(功德)을 자신이 누리는 것을 가리킨다. 이에 대해 이타(利他)란 다른 이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것을
뜻하며, 자신의 이익뿐만 아니라 모든 중생의 구제를 위해 닦는 공덕을 말한다.
*자문자설(自問自說)---이것은 부처님이 중생들의 마음을 훤히 알아서 누가 무엇을 여쭈어 보지 않아도 부처님 스스로 물음을 일으키시고 그에 대한 대답을 주시는 형식을 말한다.
*자복사(資福寺)---조선시대 태종 7년(1407)에 국가의 복을 기원하기 위해 지정한 사찰임. 각 지역의 주요 사찰을 자복사로 지정했다.
*자비희사(慈悲喜捨)---네 가지 한량없는 마음. ‘자(慈)’는 즐거움은 주는 것. ‘비(悲)’는 괴로움을 없애주는 것. ‘희(喜)’는 남의 즐거운 일을 보고 기뻐하는 것. ‘사(捨)’는 마음이 평등한 상태를 말한다.
*자성(svadhava, 自性)---산스크리트 스바하바(svabhava)를 의역한 말로서 모든 법(法)이 갖추고 있는 변하지 않는 본성 혹은 모든 존재가 지니고 있는 변하지 않는 존재성을 이르는 말한다. 즉 다른 것과 혼동되지 않으며, 변하지 않는 독자적인 체성(體性) 즉 본성을 의미한다. 사물 자체의 정해진 본질, 즉 사물을 사물답게 하는 까닭의 근본을 말한다.
선종에서는 모든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불성(佛性)을 뜻하기도 하고, 우리들이 본래 갖추고 있는 진성(眞性)을 말하기도 한다.
*자성삼보(自性三寶)---자성의 각(覺)인 불(佛), 자성의 정(正)인 법(法), 자성의 정(淨)인 승(僧)을 말한다.
*자성신(自性身)---자성신이란 가공되지 않은 본래의 몸인 까닭에 그와 같이 부르는 것이다. 인연에 의해서 만들어지지 않은, 세간에서 조작되지 않은 몸인 까닭에 그와 같이 부른다. 자성신은 실체가 없는 공성인 법신의 체(體)인 까닭에 유위의 인연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자재신(自在神)과 동일 선 상에 있는 개념인데, 원칙적으로 연기의 법칙에 어긋나므로 초기 불교 입장에서는 인정할 수 없다.
*자심미타(自心彌陀)---자기의 본래마음이 곧 아미타불이라는 뜻. 아미타불이 십만 팔천 리 밖에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마음이 자성청정심이 될 때가 곧 아미타불이라는 말. 염불은 마음속에 외불(外佛)을 구하거나 극락장엄을 그려내지 않고, 자심미타를 찾도록 하는 것이다. 즉 ‘아미타불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나의 마음(自心)이며, 나의 본성(自性)이라는 자각 아래에 자심미타(自心彌陀) 자성미타(自性彌陀)를 염하는 염불 수행이 자연스럽게 등장하게 된다.
*자연지(自然智)---인위적인 노력에 의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존재하는 부처님의 깨달음의 지혜.
*자이나교(Jainism, Jaina敎)---BC 6세기경 인도에서 불교와 같은 시대에 당시의 정통 베다(초기 힌두교) 의례에 반대해 창시된 종교로, 불전(佛典)에서 니간타(Nigantha:尼乾陀)라고 전하는 종교이다. 교조인 바르다마나(Vardhamana)는 붓다와 동시대 사람으로 왕족 출신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30세 무렵에 출가해 13년의 고행정진 끝에 크게 깨달아 지나(Jina: 勝者) 또는 마하비라(Mahavira: 大勇)라고 일컬어졌고, 지나에서 지나교 또는 자이나교라는 호칭이 생겼다.
자이나교는 아힘사(불살생)와 고행을 강조하며, 금욕과 고행을 통해 업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가르쳤다.
*자자(自恣)---스님들이 안거(安居)의 마지막 포살(布薩) 일에 대중들이 모인 가운데 대중생활 가운데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하고 범한 잘못이나 죄를 지적해 달라고 스스로 자진해서 동료들에게 청하고 지적받는 참회의식을 말한다.
*자장율사(慈裝律師)---자장율사의 성은 김씨이며, 진골 출신으로 신라가 삼국 통일의 과업을 지향하던 시기에 태어났다. 638년(선덕여왕 7)에 당(唐)나라로 건너가서 종남산(終南山)에서 주로 수도했으며, 신라에 화엄 사상을 최초로 소개했다. 그리고 통도사를 창건하고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쌓은 것은 통도사가 우리나라의 불사리(佛舍利) 신앙의 중심을 이루게 되는 출발점이 됐다. 특히 신라에 불국토사상(佛國土思想)을 펼치는 등 그의 행적은 신라 불교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자재(自在)---저절로 있음. 구속이나 장애가 없이 마음대로임.
*자재무애(自在無碍)---자재무애란 아무 구속 없이 몸과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깨달음의 경지를 표현하는 말이다. 깨달음의 경지란 매사에 걸림이 없고 자유롭다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을 불쾌하게 하는 제멋대로의 언행은 결코 무애행이 아니다. 자재무애라는 표현에 가장 적합한 경우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삶이 될 것이다. 부처님 성불 이후의 삶을 따라가 보면 당신의 고집으로 인한 투쟁이 전혀 없다.
자재무애는 대상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마음도 걸림 없고 자유로워야 한다. <반야심경>에서는 자재무애의 인물로 관자재보살을 등장시켜서, 자재무애에 이르는 길을 설명하고 있다.
*자재신(自在神)---5세기에 붓다고사(Buddhaghosa)에 의해 작성된 <청정도론(淸淨道論)>에 ‘자재신(自在神)’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부처님은 우리의 몸과 마음뿐만 아니라 모든 현상이 원인과 결과에 따른 조건 지어져 발생되는 ‘연기적 흐름’으로 보았다.
그러나 자재신은 ‘원인 없이’ 존재하는 신이라는 것이다. 만일 원인 없이 존재하는 것이라면 언제 어느 때나 존재해야 한다. 그래서 자재신은 언제 어디서나 자유자재로 자유롭게 존재할 수 있는 신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연기 법칙으로 본다면 이런 자재신은 있을 수 없다.
자재신이란 자기 스스로 존재 하는 신을 말하는데 불교에서는 자재신은 물론 창조신도 인정 하지 않는다. 이 세상은 오로지 상호의존해서 조건적으로 발생한다는 연기법으로 보기 때문이다. 거룩하신 창조주 자재신(自在神), 영원하시면서도 불가사의한, 스스로 존재하시는 자재신이 우주에 충만해 스스로 빛나지만, 모든 현상은 연기하므로 ‘무상’하고, 또 연기하므로 ‘무아’라고 보는 불교에서는 자재신을 인정할 수 없다.
*자재천(自在天)---산스크리트어 Mahe?vara(대자재천)의 번역어로서 외도(外道)들의 신이다. 원래 인도 브라만교의 신으로 만물 창조의 최고신이다. 외도들은 이 신을 세계의 본체, 창조주라 하며, 이 신이 즐거워하면 중생이 편안하고, 화를 내면 중생이 고달프며, 온갖 물건이 죽어 없어지면 모두 이 신에게 돌아간다고 한다.
고대 인도(印度)에서 대자재천이 세계 성립의 원인이며 조물주라고 믿는 종파가 있어 이를 불교에서는 자재천외도(自在天外道)라 불렀다.
*자타카(Jataka, 本生經, 本生譚)---니까야 5부 중 <소부경전(쿳다까 니까야)>에 실려 있는 팔리어로 씌어진 고대 인도의 불교 설화집이다. 부처님이 전생에 하신 육바라밀의 행업, 즉 부처님이 지난 생에서의 보살행(菩薩行)이 적혀 있다.
고타마 붓다가 석가족(釋迦族)의 왕자로 태어나기 이전, 보살로서 생을 거듭하는 사이에 천인(天人), 국왕, 대신, 장자(長子), 서민, 도둑 또는 코끼리, 원숭이, 공작, 물고기 등의 동물로서 허다한 생을 누리며 갖가지 선행 공덕(善行功德)을 행한 이야기 547종을 수록했고, 기원전 3세기경부터는 당시의 민간 설화를 모아 불교적 색채를 가해 성립됐다. 따라서 한 사람의 소작(所作)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작복(作福)---복을 추구하는 방법을 말한다.
1) 복을 받기 위해 복 받을 짓을 해야 한다. 즉 인과응보 논리에 따라 부처님은 구체적인 방법으로 보시와 지계를 강조하셨다.
2) 지나친 욕망을 줄여라(줄이는 대신) - 무루복을 구하라고 하셨다.
*작법(作法)---불교에서 작법은 신업(身業) 즉, 몸의 동작으로 공양드린다는 뜻으로서 불교의식의 골자인 재(齋)를 올릴 때의 모든 의식, 혹은 춤추는 불교무용 등을 일컫는다.
*잡밀(雜密)과 순밀(純密)---밀교(密敎)에는 순밀과 잡밀이 있는데, 티베트의 일부 불교가 잡밀이다. 잡밀을 좌도밀교라고도 하는데, 잡밀에서는 섹스가 지상 최고의 낙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만다라도 육체적인 섹스를 그대로 묘사한다. 육체적 쾌락을 추구하는 잡밀에 반해 순밀은 정신적 환희를 지향한다. 순밀은 지적인 깨달음을 통해 얻은 정신적 환희를 신앙의 목표로 하고 있다.---→얍윰(yab-yum) 참조.
*잡아비담심론(雜阿毘曇心論)---법구(法救) 지음, 유송(劉宋=南宋)의 승가발마(僧伽跋摩) 등이 번역. 아비담심론(阿毘曇心論)을 보충해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의 교리를 밝힌 저술.
*잡화엄식(雜華嚴飾)---온갖 꽃으로 장엄하게 장식한다는 뜻. 화엄(華嚴)이란 범어로는 Ganda - vyuha 라고 하는데 Ganda란 잡화라는 뜻이고, vyuha란 엄식이란 뜻이다. 잡화 엄식이라는 말은 말 그대로 갖가지의 꽃을 가지고 장엄한다는 뜻이고, 이것이 곧 화엄이다.
*장경동(藏經洞)---둔황 막고굴 유적의 제17굴이다. 송대까지의 경전이나 문서를 간직하고 있었는데 서하(西夏)가 지배했을 무렵에 봉쇄됐다가 1908년 왕원록(王圓錄)에 의해 5만여 점의 희귀한 불교 경전이 발견됐다.
그 후 스타인(Marc Aurel Stein, 1862~1943)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쇄물 중의 하나인 금강경을 비롯해 약 7천여 점의 고서적을 대영박물관으로 가져갔고, 이어서 프랑스의 펠리오(Paul Pelliot, 1878~1945)가 남은 대부분을 약탈해 갔으며, 그 나머지는 일본 러시아 등이 약탈해갔다. 혜초의 서역여행기 <왕오천축국전>이 발견된 곳도 둔황 막고굴의 제17호굴인 속칭 장경동(藏經洞)이다.
둔황 석굴은 366년 낙준(樂?) 스님이 시작했다고 하며, 특히 당대 7세기부터 8세기 중엽에 걸쳐 가장 왕래가 성했던 동서무역의 중계지점으로서 문화의 꽃을 피우며 세계적인 '둔황예술'을 창출했고, 그 후 원(元) 대까지 이어졌다.
※서하(西夏, 1032~1227)---중국 서북부의 오르도스(Ordos)와 간쑤(甘肅) 지역에서 티베트 계통의 탕구트족이 세운 나라이다.
*장아함경(長阿含經)---장아함경은 부처님이 설하신 긴 길이의 설법을 모아 놓은 경전으로, 남전 팔리어 경장에는 디가니까야(Digha Nikaya, 長部)에 해당한다. 가장 긴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을 비롯해 범망경(梵網經), 유행경(遊行經). 사문과경(沙門果經), 세기경(世記經), 선생경(善生經) 등 34개 경문이 실려 있다.
*장안 관정(章安灌頂, 561-632)---천태종의 제4조임. 천태종의 개조 지의(智?)의 문인으로서 스승이 죽을 때까지 시자로서 스승을 섬겼다. 소위 천태3대부(天台三大部)로 알려진 <법화문구(法華文句)>, <법화현의(法華玄義)>, <마하지관(摩訶止觀)>을 비롯해 스승의 강설 대부분을 필사 ? 편집했다.
*장엄(莊嚴)--- 불타 ? 보살을 종교적으로 거룩하게 보이려고 꾸미는 것. 불상이나 불전 등을 채색 ? 문양 등으로 장식 미화하는 것.
*장육존상(丈六尊像)---인도를 최초로 통일한 아쇼카왕의 발원으로 금동불을 조성하려고 했으나 실패를 거듭하다가, 인연이 없음을 알고 금동과 불상의 그림을 배에다 실어 띄워 보내며 부디 인연 있는 나라에 닿아 불상이 완성되기를 빌었다고 한다.
그 배가 500여 년 바다 위를 떠다니다가 신라에 와 닿았고, 신라에서 불상이 완성이 된다. 그 불상이 바로 신라 삼보 중의 하나인 황룡사 장육존상이다. 장육(丈六)이란 16자 높이로 약 5m 정도 높이를 말한다. 불상의 높이가 장육이 넘으면 대불(大佛)이라고 한다.
불교의 발상지 인도, 그 대륙을 최초로 통일한 아쇼카왕이 실패한 불상이 삼국 중 열세에 있던 신라에 의해 완성이 된다. 이는 신라가 불교와 인연이 깊다는 불국토 사상과 삼국일통의 꿈을 나타낸 것이다.
*저거몽손(沮渠蒙遜)---중국 5호 16국시대에 북량(北凉)의 군주였던 인물. 인도 승려 담무참(曇無讖:385~433년)에 귀의해 호불 군주가 돼서 담무참의 열반경 번역을 도왔으나 나중에 오해를 해서 담무참을 죽였다.
*적멸(寂滅, Nirvana)---텅 비어 있음. 사라져 없어짐, 미혹(迷惑)의 세계를 영원히 벗어남, 일체의 번뇌에서 해탈한 불생불멸(不生不滅)의 높은 경지. 범어 니르바나(Nirvana)를 음역한 것이 열반이고, 의역한 것이 적멸이다. 죽음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적멸무이(寂滅無二)---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해 평온하게 된 열반의 상태인 적멸(寂滅)은 모든 대립이나 차별을 떠난 경지이므로 무이(無二)라고 함.
*적멸궁(寂滅宮)---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고 법을 설한 보리도량을 가리킴.
*적정음해주야신(寂靜音海主夜神)---화엄경 입법계품에서 선재동자가 보살의 지혜와 행을 묻기 위해 방문한 선지식. 53선지식 가운데 36번째 선지식이다. 고요한 음성 바다 밤 맡은 신 적정음해주야신은 선재동자에게 생각생각마다 광대한 기쁨을 내어 장엄하는 해탈문을 설한다.
*적취설(積聚說, Arambha-vada)---우주는 많은 원자의 결합ㆍ집적에 의래 다양한 세계가 이루어진다고 보는 다원론적(多元論的) 세계관(世界觀) 내지 우주론(宇宙論)으로 다분히 유물론적(唯物論的)이다. 즉, 여러 요소가 결합돼 자연 발생적으로 세계가 이루어졌다고 하는 사상으로 부처님 당시 신흥사문인 자이나교(Jaina敎) 계통의 주장이다. 12연기설을 주장하는 부처님으로서는 당연히 비판했던 사상이다.
*전과신라(箭過新羅)---‘화살이 신라를 지나가버렸다’라는 말인데, 이는 이미 늦어도 한참 늦었다는 비유로 쓰였다. 당나라시대 중국에는 비슷한 표현으로 ‘새매가 신라를 지나쳤다’거나 ‘눈먼 노새의 일행을 따라 신라를 지났거늘’이라는 말도 있었다. 이에는 신라가 멀리 떨어진 변방이라는 뉘앙스가 강하게 풍기지만 동쪽에 떨어져 있는 신라는 중국과 더불어 ‘이쪽과 저쪽’이라는 양변을 동시에 가리킬 때도 등장할 만큼 신라의 존재감은 대단했다.
원오극근(圓悟克勤)선사는 ‘당나라에서 북을 치니 신라에서 춤을 추고’라고 한 바 있다. 또 ‘불은 신라에서 났는데 발은 여기(중국)에서 데었다(海印信)’라든지 ‘호남에서 발우를 폈는데 신라에서 씹으니(慈明圓)’라는 말도 같은 맥락이라 하겠다.
이와 같이 중국 중원에서도 신라가 그리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때로는 버거움까지 묻어나온다. 당 태종이 화살을 신라에 맞춰 두고는 “유연(幽燕 : 요녕성에 있던 변방 부족 이름)은 오히려 쉽지만 가장 수고로운 것은 신라로다”라고 했다. 만주지방을 무대로 설치던 민족은 별것 아닌데 그 아래쪽의 동이족 때문에 정치적 군사적 스트레스가 많아던 모양이다.
어떤 사람(香山良)은 육조대사를 평하면서 “죽은 뒤에 땅굴 속에 묻혔다가 신라 사람에게 머리가 깨지지 않았을 것이려니”라고 해 신라승려에 의한 ‘육조정상동래설(六祖頂相東來說)’을 언급한 내용도 있다. 즉, 육조대사가 열반하신 이후 등신불로 모셨는데 그 머리를 신라의 승려가 가지러 왔다는 기록이 양국에서 다 전하고 있다. 물론 중국 측 기록은 ‘시도했으나 들켜서 실패했다’라고 해서 미수에 그쳤음을 강조하지만, 신라 쪽 기록은 ‘거사에 성공해 쌍계사로 모시고 왔다’라고 육조단경 덕이본의 부록에 씌어 있다.
*전다라(?陀羅)---인도 사성의 최하위 천민 계급으로 백정 ? 옥졸 등의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전도몽상(顚倒夢想)---뒤집힌 생각, 잘못된 생각을 말함. 즉 무상한 것에 대해 영원하다고 하고, 괴로움에 대해 즐겁다고 알고, 실체(아/我)가 없는 것에 실체(아)가 있다고 하고, 더러움에 대해 청정하다고 생각하는 따위를 전도몽상이라 한다.
*전등록(傳燈錄)---원제목은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이고, 중국 송나라 시대에 고승 도언(道彦)이 1004년에 지은 선종의 대표적 역사서이다. 석가모니 이래의 역대의 법맥(法脈)을 체계화해서, 진리의 등불이 어떻게 전해지고 이어져 왔는지를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편집했고, 역대 부처들과 인도의 조사들, 중국의 조사들과 선사들의 깨달음의 기연과 법어를 수록한 불서이다. 조선 시대 승과 과목에 들어 있었다.
*전륜성왕(轉輪聖王)---전륜성왕이란 차크라바르티 라자(cakravarti-raja)를 한문으로 옮긴 말로 회전하는 수레바퀴처럼 생긴 무기를 굴려 세계를 통일시킨 성스러운 임금이라는 뜻이다. 산스크리트어 사전에는 ‘장애 없이 자기 수레바퀴를 어느 곳에나 굴리는 통치자, 세계의 제왕’으로 정의하고 있는 고대 인도의 전설적인 왕이다.
차크라에는 천 개의 바큇살이 아주 완전하게 짜여 있는 바퀴라고 하며, 그 차크라가 나아가는 곳엔 모두 이에 굴복한다고 한다. 따라서 전륜왕이 만드는 사회질서는 차크라처럼 잘 짜여 흠이 없을 만큼 완벽한 통치를 했다는 뜻이다.
*전법륜(dharmacakra-pravartana, 轉法輪)---불교에서 석가의 가르침을 널리 펴 중생을 제도하는 일. 전륜(轉輪)이라고도 한다. 바퀴를 굴려 수레를 전진시키는 것과 같이 석가가 법(가르침)의 바퀴를 돌리는 일, 즉 설법을 가리킨다. 그래서 부처님이 행한 최초의 법문을 초전법륜(初轉法輪)이라 했다.
*전법륜인(轉法輪印 = 설법인, 說法印)---수인의 한 종류. 부처님이 깨달은 후 바라나시의 녹야원(鹿野苑)에서 다섯 비구와 중생들에게 최초로 설법할(초전법륜) 때 취했던 수인이다.
*전법보기(傳法寶紀)---초기 선종사를 담고 있는 불교서적. 1900년대에 돈황석굴에서 필사본으로 발견됐다. 현재 프랑스 파리도서관에 2종이 소장돼 있다. 북종선의 전성기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책에서의 조사(祖師) 계통은 숭산 소림사의 법여(法如)를 오조 홍인(弘忍) 문하에 두었고, 법여에서 신수(神秀)로 법통이 이어졌다고 적혀 있다. 따라서 북조선 입장에서 씌어진 것으로 보인다.
*전변설(全變設, pari nama-vada)---적취설(積聚說)의 반대말. 인생과 우주를 신(神)-범(브라만 Brahman)이 창조하고, 절대적으로 섭리한다는 진리로 모두가 신에게서 우러나와 현상계가 이루어진다는 것으로 바라문교(波羅門敎) 계통의 가르침이다.---→적취설 참조. ---→존우화작인론(尊祐化作因論) 참조.
*전심법요(傳心法要)---임제종(臨濟宗)의 기초를 세운 황벽 희운(黃檗希運, ?~850)선사의 어록이다. 세속의 제자인 배휴(裴休, 797~870)가 편찬했다.
*전정각산(前正覺山)---붓다가야(buddhagay?)에서 네란자라(nera?jar?) 강 건너편에 있는 바위산으로, 고행을 포기한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이루려고 이 산에 올랐으나 주위 환경이 여의치 못해 네란자라 강을 건너 붓다가야로 향했다고 함. 그 후, 이 바위산은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이루기 전에 오른 산이라고 해 이와 같이 불림.
*절복(折伏)---나쁜 사람이나 외도(外道) ? 사도(邪道)를 꺾어 굴복시키는 일. 상대를 설득하지 않고 비난을 해서 강제로 굴복시키는 일. 반대말 - 섭수(攝受).
*절정수(絶情水)---스님들이 공양 때 마지막에 그릇을 가셔 마시는 물. 속세에서의 정분을 뚝 끊어내는 물이라는 뜻으로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점수(漸修)---→돈오와 점수 참조.
*정거천(淨居天, Suddhavasa)---suddha(청정함)+vasa(거주)로 된 합성어이다. 이를 중국에서는 정거(淨居)로 직역했다. 이 정거천은 번뇌를 다 여읜 불환자(不還者)들만이 태어나는 극락을 말한다. 정거천은 다섯 가지 하늘로 구성되는데 불환과(不還果)를 얻은 자들은 여기에 태어나서 다시는 이보다 더 낮은 세상에 태어나지 않고 여기서 열반에 든다고 한다.
*정견(正見)---팔정도(八正道)의 하나, 사성제(四聖諦)의 이치를 알고 제법(諸法)의 진상을 바르게 보고, 바르게 판단하는 견해,
부처님은 정견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셨다. 「무엇이 바른 견해인가? 괴로움에 대해 알고, 괴로움의 근원을 알고, 괴로움의 소멸을 알고,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해 아는 것이다.」 이와 같이 부처님은 정견이란 명백하게 사성제를 아는 것이라 하셨다.
그리고 팔정도의 순서 중 정견이 가장 먼저 나온 이유에 대해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부처님이 설한 가르침에 대한 ‘신뢰’를 뜻한다. 만약 어떤 이가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태도를 가졌다면 그 다음 단계로 나아 갈 수 없다. 그런 이유로 해서 정견을 가장 앞에 두었다.
*정근(精勤)---원래는 ‘~따위에 부지런히 힘씀’을 뜻함이다. ‘쉬지 않고, 게으름 피우지 않고 노력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보살님(혹은 부처님) 명호를 부르며 열심히 기도함을 정근이라 한다. 즉, 기도는 마음을 잠시라도 흩뜨리지 않고 꾸준히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정근을 할 때에는 다른 생각을 다 놓아 버리고 오직 평온한 마음으로 부처님의 한량없는 공덕을 믿고 일념으로 정진해야 한다. 정근할 때 마음을 안정시키는 방법의 하나로 염주를 돌리거나 절을 하는 방법도 있다.
*정근(正勤)---선법(善法)을 더욱 자라게 하고 악법(惡法)을 멀리하려고 부지런히 닦는 수행법.---→4정근 참조.
*정근(定根)---오근의 하나. 바른 선정으로 마음을 고요히 해 올바른 마음을 가짐. 일체의 공덕을 낳게 한다는 뜻으로, 선정(禪定)을 이르는 말이다.---→오근(五根) 참조.
*정근기도(精勤祈禱)란---부처님이나 보살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는 것이다. 정근기도는 부처님이나 보살님의 명호를 외면서 산만한 마음을 한 생각으로 집중시켜 지금까지 지은 악업을 참회하고, 부처님과 보살님의 지혜와 공덕을 찬양하며, 그 가피력을 입어 원(願)을 성취시키고자 해야 한다. 여기서 원(願)이란 무엇을 얻거나 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부처님이나 보살님처럼 되겠다는 다짐이다.→정근(精勤) 참조.
*정념(正念)---팔정도(八正道)의 하나. 바른 기억, 올바른 알아차림, 바르게 깨어 있기, 내 마음에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바로 알아차리는 것. 사념(邪念)을 버리고, 항상 향상을 위해 수행하기에 정신을 집중하는 것. 곧 염(念)을 바로 함.
‘올바른 알아차림’ 수행은 불교에만 있는 독특한 수행법이며, 이 수행을 해야 우리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무아임을 깨닫는 ‘올바른 견해[正見]’가 생겨 해탈하게 된다.
*정덕(淨德)---번뇌가 조금도 없고 때 묻지 않은 청정한 것. 열반사덕(涅槃四德)인 상락아정(常樂我淨)에서의 정(淨)을 말한다.
*정려(淨呂)---계율을 지키는 데 힘써 세속의 때가 묻지 않은 승려.
*정려(靜慮)---마음을 가다듬어 고요히 생각함. 선정(禪定)의 다른 이름.
*정명(正命)---팔정도(八正道)의 하나. 정법(正法)을 지향하는 바른 생활. 명(命)은 생활의 뜻. 정정당당하고 모든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생업을 찾아 그것에 충실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생업이 다른 이들에게 이익을 줄 수 있고, 또한 자신의 삶을 경제적인 측면에서 충분히 책임질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다.
*정법안장(正法眼藏)---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모든 것을 간직하는 깨달음을 뜻한다. ‘정법(正法)’이란 문자 그대로 부처님의 바른 법이란 뜻이다. 그리고 ‘안(眼)’이란 부처님의 마음으로 보는 것, 즉 사물의 실상을 올바르게 관찰하는 안목을 말하고, ‘장(藏)’은 부처님의 마음에는 모든 선한 불법(佛法)이 포함돼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정법안장이란 올바른 불법(佛法)을 뜻하며, 모든 불경의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한 말이라 할 수 있다.
*정변지(正遍知)---여래 십호(如來十號)의 하나. 온 세상의 모든 일을 모르는 것 없이 바로 안다는 뜻으로, 부처를 달리 이르는 말이다. [비슷한 말] 정변각(正遍覺).
*정어(正語)---팔정도의 하나, 바르고 올바른 말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남을 비웃고, 비방하고, 이중적인 말을 하지 말고, 순수하면서도 부드럽고, 분명하면서도 때에 맞는 말을 하라는 것이다. 정어는 팔정도의 정견(正見)과 정사유(正思惟)로 닦아진 고결한 마음을 나타내는 첫 번째 상(相)이다. 따라서 정어에서는 ‘진솔함’을 으뜸 덕목으로 삼는다.
*정업(正業)---팔정도(八正道)의 하나. 몸의 행동이 정견(正見) ? 정사유(正思惟)에 따라서 행동하는 것. 곧 업을 바로 함. 상대방을 해치고, 속이며, 음란하며, 흐트러진 삶을 통해서는 바른 인간관계를 엮어낼 수가 없다.
*정정진(正精進)---팔정도의 하나, 바르게, 그리고 줄기차게 노력하고 정진하기. 선법(善法)은 늘리고, 불선법(不善法)은 줄이는 것. 즉 일심 노력해 아직 나지 않은 악을 나지 못하게 하고, 나지 않은 선을 나게 하는 일이다. 이에는 사정근(四精勤)이 있다.
*정토론(淨土論)
① 인도의 세친(世親:320∼400년경)이 저술한 불교서적. 원명은 <무량수경우바제사원생게(無量壽經優婆提舍願生偈)>. 줄여서 무량수경론 ? 왕생정토론 ? 정토론 ? 왕생론이라고도 한다. 5언(言) 96구(句)의 게송으로 돼 있고, 주요 내용은, 염불은 부처님의 무량 공덕과 근본서원(本願)을 확신하는 수행이기 때문에 불, 보살과 감응(感應)하고 불, 보살의 가피를 입어, 마치 순풍에 돛단배와도 같이 수행하기 쉽고 성불하기 쉬운 이른 바, 이왕이수(易往易修)의 행법(行法)임을 찬양하고 있다.
*정토종(淨土宗)---중국 남북조시대 중국인의 현실적인 성격과 부합되는 종파로서 중국에서 만들어짐. 인도인들은 현실보다 내세를 구하는 이상적인 성격을 지닌 반면에 중국인들은 현실에서 깨달음과 행복을 얻으려 했다. 이런 중국인의 성격을 반영해 중국 고유의 민간신앙까지 원용해 나타난 종파가 정토종이다. 현세와 바로 이어지는 내세의 안락을 추구하면서 현세를 현세로서 자각하려는 것이 정토종이다.
아미타불의 본원에 의지해 타력본원설을 받아들여, 정토에 왕생하는 것도, 정토에서 보살행을 닦는 것도 모두 아미타불의 본원에 의해 가능하다고 했으며, 부처님의 원력으로 정토에 왕생해서 신속히 성불할 수 있다고 했다. 정토삼부경이 소의경전이다.
중국 남북조시대 북위(北魏)=동위(東魏)에서 활약한 담란(曇鸞)이 정토사상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고, 실질적인 중국 정토교의 기틀을 확립했으므로 후세에 그를 중국 정토종의 제1조라 불렀다.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무량수경(無量壽經),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 아미타경(阿彌陀經)
*정학(定學)---삼학의 하나, 정학은 마음에 흔들림이 없는 것을 배우는 것인데 마음의 안팎에서 일어나는 동요에 그 마음이 한결같음을 말한다.
*정혜(定慧)---정(定)은 마음이 오롯해 흔들림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데, 선정(禪定)을 줄인 말이다. 혜는 지혜를 일컫는데, 세속적인 지혜가 아니라 반야의 절대적 지혜의 단계를 말한다. 따라서 정혜란 수행을 완성해 가는 보살 중에서도 거의 부처님에 버금가는 깨달음을 얻은 수승한 보살이 얻는 경지가 ‘정혜’이다.
*정혜쌍수(定慧雙修)---선과 교를 함께 공부함, 선과 지혜를 함께 닦음을 말함. 선교겸수(禪敎兼修)라고도 함.
*제관(諦觀)---→체관(諦觀) 참조.
*제망중중(帝網重重)---제망(帝網)은 제석천의 그물이라는 뜻이다. 제석천(帝釋天)은 ‘신들의 우두머리’로서, 번개를 들고 다니는 폼이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와 유사하다. 한자어로 번역되기 전의 원래 이름은 인드라(Indra, 因陀羅)이다.---→인다라망 참조.
제망중중은 제석천의 보배(寶盃) 구슬 망(網)이 서로 빛을 반사(反射)해 무수한 아름다움을 몇 곱절로 배가 시킨다는 뜻이다. 이 그물의 비유는 우주 삼라만상은 한정되거나 고정된 게 아니고 중중무진하게 펼쳐져 있으며, 구슬 하나에 온 우주의 모습이 다 들어있듯이, 티끌 하나에도 삼라만상이 온전히 구현돼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화엄의 핵심철학인 제망중중무진연기법(帝網重重無盡緣起法)으로 귀결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제망중중무진연기법(帝網重重無盡緣起法)---화엄의 핵심 철학은 한마디로 ‘제망중중무진연기법(帝網重重無盡緣起法)’이다. 연기법의 세계관으로 볼 때 세계는 본래 그물의 그물코처럼 불일불이(不一不二)의 생명 공동체이다. 즉, 세계가 마치 살아있는 그물이라면 낱낱의 존재들은 그물코 같은 격이다. 이렇듯 세계는 본래부터 한 몸 한 생명의 인드라망 생명공동체여서 생명공동체의 길에는 평화롭게 함께 사는 길밖에 없다는 말이다.
*제바달다(提婆達多)---→데바닷타 참조.
*제바존자(提婆尊者)---일명 가나제바(迦那提婆), 범어 카나데바(Kanadeva)의 음사임. 남인도 출생이며, 원래 이름은 <제바>이지만 한 눈이 멀어 애꾸라는 뜻의 ‘가나’라는 이름이 붙어 <가나제바>가 됐다. 용수(龍樹)의 제자. 석가의 제15대 제자로 용수와 함께 삼론종(三論宗)의 시조에 해당한다. 불행히도 이교도의 칼에 죽었다. 주요저서 <백론(百論)>, <백자론(百字論)>, <광백론(廣百論)> 등이 있다.
*제법여의(諸法如義)---금강경 제17분에 나오는 말. ‘모든 법이 있는 그대로 여여(如如)하다’는 의미.
*제법무아(諸法無我)---삼법인(三法印)의 하나. 이 우주법계에 존재하는 일체 모든 존재는 고정된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삼법인(三法印) 참조.
*제석천(帝釋天)---불교에서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이며, 고대인도 힌두교의 신 인드라를 불교에서 수용한 것이다. 제석천은 베다에서는 일체의 악마를 정복하는 천둥벼락의 신이었으며, 우파니샤드 시대에 와서는 악마와의 전쟁에서 승리해 모든 신을 주재하는 인드라(Indra)신이 됐다.
*제행무상(諸行無常)---삼법인(三法印)의 하나. 모든 것은 항상 하지 못하며, 무상하고, 고정불변의 독립된 영원한 실체가 없다는 말이다.---→삼법인(三法印) 참조.
*조계산(曹溪山)---중국 광동성 곡강현에 있는 산. 육조 혜능(慧能)이 머무른 보림사(寶林寺, 지금의 남화사/南華寺)가 있는 산이다.
*조계종(曹溪宗)---조계종의 공식적인 초조는 신라 말의 도의국사(道義國師)이고, 중흥조는 고려 말의 태고보우(太古普愚)이다. 조선 중기 서산대사 휴정(休靜) 문하에서 태고보우를 우리나라 조계종의 종조로 보기 시작했고, 휴정의 제자들이 조선 중기 이후 불교계를 주도하게 되면서 태고보우 종조설이 우리나라 불교계의 정통설로 수용됐다.
1941년 봄에 북한산의 태고사를 지금의 조계사 자리로 옮기고 선교(禪敎) 양종(兩宗)을 통합해 이를 총본산으로 삼았으며, 그 후 종단 이름도 '조선불교조계종총본산태고사법'(朝鮮佛敎曹溪宗總本山太古寺法)으로 인가를 받았다. 이후 조계종은 유일한 종단으로서 31본산(本山)을 비롯한 전국의 사찰을 총괄적으로 관할하게 됐으며, 1945년 8 ? 15해방과 함께 ‘대한불교조계종’으로 재출범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직지인심 견성성불 전법도생(直指人心 見性成佛 傳法度生)을 종지로 하고 있다.
*조고각하(照顧脚下)---일상생활 속에서 자기의 참된 자아를 상실하지 말고 항상 정신을 바짝 차려서 살아가도록 주의시키는 선불교에서의 경책(警責 - 정신을 차리도록 꾸짖음)의 선어이다.
여기서 <고(顧)>란 돌아볼 고이고, <각(脚)>이란 다리 각이다. 그래서 자기 주위의 어떤 경계나 분위기 혹은 남의 일에 끄달려 엉뚱한 일에 신경 쓰지 말고, 먼저 자네 자신이 지금 이 순간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자네 다리 밑(코 앞의 일)이나 잘 살피고, 정신 차리게! 라는 의미가 담긴 경책의 말이다.
*조론(肇論)---위대한 역경승 구마라습(鳩摩羅什)의 4대 제자 중 교리에 으뜸이었던 승조(僧肇) 법사의 저서임. 그는 구마라습을 스승으로 모시고 역경 사업에 종사하며, 대승의 공(空)사상을 깊이 이해해 이 책을 써서, 뒤의 중국불교에 큰 영향을 끼쳤다.
*조사선(祖師禪)---조사선(祖師禪)은 불립문자 교외별전(不立文字 敎外別傳)이라, 참다운 진리는 원래 문자를 세울 수가 없다. 다만 우리 중생들에게 표현하기 위해서 문자를 빌린 것이지, 참다운 진리 자체는 말도 떠나고 문자도 떠나고 생각을 떠나 있다. 따라서 참다운 도는 교(敎) 밖에서 전한다.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이라, 교를 하나도 안 배운다 하더라도 사람 마음을 바로 가리켜서 그대 마음이 바로 부처니까 바로 마음 깨달으면 된다. 바로 본래성품을 보고 성불하는 이른바 격외(格外)도리에 입각한 조사와 조사가 본래 전하는 선(禪)을 말한다.
여기서 조사(祖師)란 달마를 비롯한 역대 조사를 일컫는다. 그리고 이들 조사들에 의해 발달된 선을 조사선이라 하는데, 언어문자를 거치지 않고 바로 선정에 들어 깨닫는 것을 일컫는다. 그리고 조사선에서는 화두를 들지 않는다. 화두 없이 묵묵히 좌선을 통해 마음을 쉬어 자기 자신이 본래 깨달은 존재(부처임)임을 자각하는 것이다.
헌데 다른 나라에는 전해지지 않고 우리나라에만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즉 석가모니가 샛별을 보고 깨달았으나(여래선) 미흡함을 알고 좀 더 깊은 수행을 위해 찾아간 곳이 진귀조사(眞歸祖師)이고, 그 진귀조사가 석가모니에게 전한 선이 조사선이라는 것이다.---→여래선 참조.
*조어장부(調御丈夫)---부처님의 열 가지 이름 중의 하나. 사람을 조어(調御), 즉 콘트롤하는데 있어서 훌륭한 능력을 가진 자라는 뜻임.
*조주 종심(趙州從?, 778~897)---당나라 중기 남전 보원(南泉普願:748∼835) 문하의 수제자이고, 남전은 마조 도일(馬祖道一)의 제자이다. 그러니 마조의 손제자인 셈이다. 조주 선사는 화두를 많이 남겨 후대 선승들의 수행 과제가 됐다. 특히 ‘무자화두(無字話頭)’와 ‘뜰 앞의 잣나무(庭前栢樹子)’, 그리고 ‘판치생모(板齒生毛)’가 유명하다.
*존우화작인론(尊祐化作因論)---존우론(곧 有神論)은 부처님 당시 브라만교 사제들과 자재천외도(自在天外道)들이 믿고 있었던 사상으로서 절대자인 창조주가 있어서 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이론이다. 즉 이 세계가 이와 같이 이루어지고 있는 근본원인은 초월적인 유일신의 의지라는 주장이다.---→전변설 참조.
*종남산(終南山, 중난산)---중국 산시성 시안(옛 장안) 남쪽에 있는 산으로 예로부터 도사들이 사는 곳으로 유명해 고적이나 명승을 탐방하는 사람이 많았다. 당나라에서 활동한 신라인 김가기(金可記 또는 金可紀)와 관련된 석각 유적 ‘김가기전마애각문(金可記傳磨崖刻文)’이 전한다. 이 마애비문을 중국에서는 흥륭비(興隆碑)라고 호칭하고 있다. 그리고 이 자료는 당나라에 건너간 신라 지식인들의 중국에서의 실제적 활동과 중국인들에 미친 영향을 엿보게 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그 외에 자장율사(慈裝律師), 의상(義湘)대사와 신라 말의 도의(道義)선사도 이 종남산에서 수행을 쌓았다고 한다. .
*종자(種子)---업력(業力)을 식물의 종자가 가진 잠재적인 힘에 비유한 것이다. 그리고 단지 선악의 업에만 종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행위가 종자의 형태로 바뀌어 존속한다고 보았다. 그 종자가 저장돼 있는 곳이 아뢰야식(阿賴耶識)이다. 아뢰야식의 아뢰야란 ‘간직한다’는 뜻이다. 종자를 소장하고 있는 식이라는 의미이다.
*좌탈입망(坐脫立亡)---즉석에서 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다[좌탈]와 그 자리에서 번뇌망상이 모두 없어졌다[입망]라는 말로서 죽음에 초연한, 생사를 초월한 자유인, 선승의 모습을 상징하는 말이다.
*주력(呪力)---주력이란 말은 문자 그대로 주문(呪文)의 힘이란 뜻이다. 긴 주문을 다라니(陀羅尼: Dharani)라 하고, 짧은 것을 진언(眞言: Mantra)이라 한다. 다라니는 총지(總持)라고 번역하는데, 무량무변하다는 뜻이 있으며, 외우는 이가 한량없는 공덕을 다 성취한다는 믿음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진언은 만트라의 번역이며 밀어(密語)라고도 번역한다. 참된 부처님의 말씀이며 비밀스런 깊은 뜻이 들어있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으로서 일반적으로 쓰는 주문(呪文)과는 전혀 다르다.
주력은 불, 보살님의 명호나 진언(眞言)을 일념으로 염송하는 것을 말한다. 재난을 없애고 복을 부르며, 어떤 재해로부터 몸을 지킨다는 진언 혹은 다라니를 마치 참선을 할 때 화두를 참구하듯이 항상 외우고, 이것을 수행의 요체로 삼는 것이다.
*주련(柱聯)---사찰의 기둥이나 벽에 세로로 써 붙이는 글귀, 기둥마다에 시구를 연이어 걸었다는 뜻에서 주련이라 부른다.
*주리반타가(周梨槃陀迦)---범어로 주다판타카(Cudapanthaka). 부처님 당시 가장 우둔한 제자로 가르치면 금방 까먹어버리곤 했지만 지극한 마음으로 수행해 큰 깨달음을 증득, 아라한이 됐다. 16아라한 중 제16존(尊)임. 제10존(尊) 반타카(槃陀迦, Panthaka)의 동생이다.
*주지삼보(住持三寶)---후세에 불법을 유지시켜서 전해 나아가게 하는 삼보(三寶)로서 불상(佛像)이 불보(佛寶)요, 경전이 법보(法寶)요, 출가한 승려가 승보(僧寶)이다.
*죽림정사(竹林精舍)---중인도의 마가다국(摩揭陀國, Magadha)에 있었던 최초의 불교 정사(精舍)로서 인도 승원(僧園)의 시초이다. 산스크리트어 베누바나 비하라(Venuvana-vihra)의 번역어이다. 가란타(迦蘭陀) 장자(長者)가 자기 소유의 베루바나(죽림원)을 헌상하고, 마가다 국왕 빔비사라(빈비사라, 頻毘娑羅, Bimbisara, BC 582~554 재위)가 정사(vihra)를 건립해 불교 교단에 기증했다고도 전해지고 있다. 마가다국의 수도 왕사성(王舍城, 라즈기르, Rajgir, Rajagrha)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으며, 부처님이 가장 많이 이용한 사찰로서 불교 교단이 기반을 구축한 곳으로 유명하다.
*준제보살(准提菩薩)---준제보살님의 부처 이름은 칠구지불모왕불(七俱?佛母王佛)이다. <7구지(七俱?)>란 칠업겁이라는 오랜 기간을 말하니 칠업겁 동안 부처님을 길러낸 큰 보살이란 뜻이다. 그 보살 이름이 준제보살이다. 모든 부처님은 부처 이름을 가지고 보살행할 때는 보살의 이름을 따로 갖는다. 옛 사람도 호, 아명을 가지고 있듯 그러하다. <제불(諸佛)의 어머니> - 준제보살은 다보여래 부처 다음으로 불과를 이루신 부처님이다. 밀교에서는 모든 붓다들의 어머니 역을 담임하는 붓다이시고, 모성과 자비를 상징한다. 여인상이지만 여인은 아니고,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설명되지만 관세음보살과도 다른 부처이다.
*중---승려(僧侶)를 비하하는 말. 본래는 승려 무리(衆)를 이르던 말이었다. 그리고 무리 중(衆)은 곧 많은 사람. 적어도 4인 또는 3인 이상의 화합을 말한다. 그러니 원래 뜻은 중화(衆和)라는 말로서 사람과 사람이 평화와 사랑으로 어울려 산다는 말이고, 결국 사람이라는 뜻이다.
*중강(中講)---불경을 배우는 사람들이 스승에게 묻기 전에 둘러앉아서 미리 토론하며, 그러할 때 글 뜻의 질문을 받아 대답해 주는 사람.
*중관사상(中觀思想)---대승불교에서 유식학파와 양대 산맥을 형성하고 있으며, 중관철학은 용수(龍樹, 나가르주나, 150경~250경)로부터 시작됐다. 용수의 대표적인 저술인 <중론(中論)>을 중심으로 한 사상을 중관사상이라 말하며, 반야경 계통의 공(空) 사상을 철학적으로 체계화시킨 사상이다. 공과 중관이 같은 의미로 쓰이기 때문에 중관학파라고도 한다.
중관사상은 중국에서는 삼론종(三論宗)의 성립을 가져왔다. 삼론종을 확립한 인물은 길장(吉藏, 549~623)으로서 그는 중관사상의 성격을 ‘잘못된 것을 타파해 올바른 것을 드러내는 것[파사현정(破邪顯正)]’으로 규정했다.
*중도(中道)---불교에서 중도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아니하는 바른 도리를 말한다. 이 중도를 양극단에 치우치지 않는다고 해 불주이제(不住二際)라고도 하며, 중도는 선(禪)의 실천철학이기도 하다.
부처님은 출가 전의 쾌락도 출가 후의 고행도 모두 한편에 치우친 극단이라고 하며, 이것을 버리고 고락 양면을 떠난 심신의 조화를 얻은 중도(中道)에 비로소 진실한 깨달음의 길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의 체험에 의해서 자각했다.
그리고 대승불교의 공사상(空思想)에서는 공(空)을 관조하는 것이 곧 연기(緣起)의 법칙을 보는 것이며, 또한 진실한 세계인 중도의 진리에 눈을 뜨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중도교(中道敎)---불교철학은 대체로, 세 단계로 시기를 나누어 맨 처음 초기 법문은 중생 차원에서 ‘선도 있고 악도 있고 모두 있다. 나도 있고 너도 있고 모두 있다’ 이와 같이 중생의 차원에서 알기 쉽게 하는 법문이 유교(有敎)이다.
그리고 그 다음은, 보다 높은 차원에서 ‘일체가 다 공(空)이다. 중생이 보는 것은 다 망령된 것이고 일체가 공이요 무상이다’ 이러한 높은 차원에서 모두를 다 부정하는 단계, 이것이 공교(空敎)이다.
헌데 우리 목적은 ‘다 공이다’ 하는 거기에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가는 과정에 불과하다. 영원한 행복을 간직한, 상주부동(常住不動)하고, 안락무위(安樂無爲)하며, 청정무애(淸淨無碍)해서 언제나 청정한 참다운 진아(眞我)의 세계, 이같이 유(有)도 아니고 공(空)도 아니고[비유비공(非有非空)], 천지우주는 오직 부처뿐이라는 가장 높은 차원, 이것이 중도교(中道敎)이다.
*중론(中論, Madhyamaka-??stra)---인도의 승려 용수(龍樹)가 지은 대승불교의 중심이 되는 논서. 중론은 449구(한역445구)의 게송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중송(中頌, Madhyamaka-karika)이라고도 한다. 한역으로는 청목(靑目/Pi?gala, 4세기 전반)의 주석을 구마라습(鳩摩羅什)이 다소 가필해 409년에 번역한 것이 있다. 그 내용은 <반야경(般若經)>에 기초한 대승 공관(空觀)의 입장에서 원시불교 이래의 연기설(緣起說)에 독자적인 해석을 가해, 부파불교뿐만 아니라 인도철학사상 일반도 비판했다.
*중생(衆生)---불교에서 말하는 중생이란 ‘생명이 있는 자[有情]’라는 말이다. 모든 중생은 색(色) ? 수(受) ? 상(想) ? 행(行) ? 식(識)의 오온(五蘊)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 오온은 변화무상해 영원히 간직되지 못하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그러한 중생이 그러한 생명의 근원인 마음을 닦아 지혜로워져서 부처가 되려는 것이 불교이다.
*중생계(衆生界)---중생세간(衆生世間)이라고도 한다. 중생이 사는 세계. 인간 세계. 십계(十界) 가운데 불계(佛界)를 제외한 아홉 세계를 통틀어 이르는 말. 인간ㆍ천상ㆍ지옥 등으로 존재양상에 차별이 있다. [비슷한 말] 삼계(과거ㆍ현재ㆍ미래).---→십계(十界) 참조.
*중생상(衆生相)---살아 있는 생명체와 생명이 없는 자, 중생과 보살을 나누는 이원론적 집착을 말한다. 달리는, 나는 중생이니까 부처님과 같이 해탈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 또는 좋은 것은 자기 것으로 하고, 나쁜 것은 남에게도 돌리려는 집착을 말한다. 고(苦)를 싫어하고 천계에 태어나고자 하는 욕심.---→4상(四相) 참조.
*중송(中頌, Madhyamaka-karika)---용수(龍樹)의 중론(中論)을 일명 중송이라고도 한다.---→중론(中論) 참조.
*중유(中有=中陰)---사유(四有)의 하나. 중생이 죽어서 다음의 어떤 생을 받을 때까지의 49일 동안. 산스크리트 ‘antar?bhava(중간의 존재)’의 의역으로 중음(中陰) 혹은 중온(中蘊)이라고도 한다. 중생은 생유(生有), 본유(本有), 사유(死有), 중유(中有)의 넷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생유(生有)-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는 최초의 존재,
본유(本有)-태어나서 죽기까지의 생애,
사유(死有)-죽는 찰나,
중유(中有)-죽은 후에 다음의 세상에 태어날 때까지.
중유의 존재는 일종의 영혼 신으로서 의식으로 성립되며, 향을 음식으로 하기 때문에 건달파(乾?婆:食香으로 번역)라고도 한다. 이 중유의 기간은 칠칠일, 즉 49일이라는 설에 근거해 사람이 죽은 후 그가 행복한 다음 생에 태어나도록 명복을 빌어 기도와 독경을 하는 풍습이 생겼다. 사십구재(49齋)가 그것이다.
*즉색즉공(卽色卽空)---당나라의 선승 대주 혜해(大珠慧海) 선사의 저서 돈오입도요문론(頓悟入道要門論)에 나오는 말이다.
“색에 즉하고 공에 즉하며 범에 즉하고 성에 즉함이 돈오입니까?” “그러니라.”
“어떤 것이 색에 즉하고 공에 즉함이며 어떤 것이 범부에 즉하고 성인에 즉한 것입니까?”
“마음에 물듦이 있음이 곧 색이요, 마음에 물듦이 없음이 곧 공이며, 마음에 물듦이 있음이 곧 범부요 마음에 물듦이 없음이 곧 성인이니라. 또한 진공묘유이므로 곧 색이요, 색을 얻을 수 없으므로 곧 공이니, 지금 공이라고 말한 것은 이 색의 성품이 스스로 공함이요 색이 없어져서 공한 것은 아니니라. 지금 색이라고 하는 것은 이 공의 성품이 스스로 색이요, 색이 능히 색인 것은 아니니라.”
불교에서 성품(性品)은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자성(自性), 본성(本性), 법성(法性), 진성(眞性), 견성(見性) 등 성(性)에 관련된 용어가 매우 많다. 만일 절대 성품을 봤다고 하면 이는 아트만(atman)이 돼 외도에 떨어지는 것이 된다. 대부분 사람들이 절대 성품을 이야기하는데, 이는 연기법에 맞지 않고 중도법에도 맞지 않는다. 연기법은 중도법으로서 있되 없음이요, 없되 있음인 즉색즉공[(卽色卽空, 있는 그대로 色이면서 바로 空이요, 空이면서 바로 色임)]이다. 절대 성품을 말한다면 피조물이 돼 “하나님, 하나님”을 외치고 있는 이교도와 다르지 않게 된다.
그리고 만일 공에 집착해 버리면 허무주의에 빠져 버리게 된다. 상(相)에 집착해 버리면 그럴듯하게 썩은 놈들이 성공하고 출세하고 돈을 버는 묘한 세상이 돼 버린다. 따라서 불교에서 말하는 성품을 절대성품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
*즉심시불(卽心是佛)---그대의 마음이 곧 부처[진리]라는 뜻. 그대의 마음이 곧 깨달아야할 대상이라는 뜻. 마음의 실체, 마음의 움직임을 낚아채면 진리를 깨달은 것이라는 뜻. 견성성불(見性成佛)과 같은 말이다.
*증도가(證道歌)---당나라 영가 현각(永嘉玄覺)스님 지음. 영가 현각스님은 육조 혜능대사의 제자로 <증도가>는 그가 증득한 깨달음의 세계를 시로 표현한 것이며, <증도가>는 오도송(悟道頌)의 백미라고 일컬어진다.
*증상만(增上慢)---사만(四慢)과 칠만(七慢)의 하나. 최상의 교법(敎法)과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서 얻었다고 생각해, 교만하게 잘난 체하는 일.---→사만(四慢), 칠만(七慢) 참조.
*지(止, 범어 samatha)---지(止)와 관(觀)의 합성어 지관(止觀)으로 많이 쓰인다. 지(止)는 정신을 집중해 바깥 경계를 쫓아 일어나는 모든 잡념과 망상을 그치고, 마음이 적정해진 상태이며, 곧 적정(寂靜)을 뜻한다. 관(觀)은 있는 그대로의 진리인 실상(實相)을 관찰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와 관은 서로 불가분리의 상태에 있으며 지계(持戒) 등과 함께 불교의 중요한 실천덕목이 돼, 원시불교 이래의 여러 불경에 실려 있다.
그리고 천태종에서는 지는 마음의 동요를 누르고 본원의 진리에 정주(定住)하는 것, 관은 부동의 마음이 지혜의 활동이 돼 사물을 진리에 따라 올바로 관찰하는 것이라 하며, 이때의 지는 정(定)에, 관은 혜(慧)에 해당한다. 즉, 지는 주체의 확립, 관은 이 주체의 확립에서 모든 현상을 전체적·객관적으로 관찰해 정확히 판단하고 자유로이 대처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 지관(止觀)은 선정(禪定)과 지혜(智慧)를 균등하게 담는 수행법으로, 지(止)는 멈추어 모든 번뇌를 그치는 것이고, 관(觀)은 자신의 본래 마음을 관찰하고, 사물의 본성을 꿰뚫어보는 것이니, 초기 불교부터의 수행법으로서, 특히 중국의 천태종(天台宗)에서 중시했다.
*지공(指空)선사---인도의 승려로 법명은 제납박타(提納薄陀:禪賢)이다. 가섭(迦葉)으로부터 제108대 조사라고 한다. 인도의 동북지방 갠지즈강 유역에 위치했던 마가다국 만왕(滿王)의 왕자로 태어나 8세 때 중동부 인도에 위치한 나란다사(Nalanda)에 출가했다. 19세 때 남인도 능가국 길상산의 보명(普明)에게 의발(衣鉢)을 전해 받고 인도를 떠나 중국(元)으로 왔다.
고려에서는 1326년 3월부터 1328년 9월까지 머물렀으며 이때의 기록은 고려시대의 기록이나 조선전기의 지리지에서 찾을 수 있다. 비록 오랜 기간이 아니지만 고려 불교계에서 그의 족적은 상당하다.
현재 경기도 양주의 회암사지가 천축(天竺)의 나란다사와 그 지세가 같다고 해 회암사의 중창동기를 제시했고, 따라서 그의 대표적 계승자인 나옹(懶翁)화상에 의해 조선 제일의 거찰이 됐다.
그는 중국(元)에서 입적했고, 1370년 사도(司徒) 달예(達叡)가 유골을 받들고 고려에 오자 왕이 직접 지공의 두골을 머리에 이고 궁중으로 옮겼다고 한다. 그리고 1327년(공민왕 21) 왕명으로 회암사에 사리탑을 세웠다. 나옹ㆍ백운화상(白雲和尙) 경한(景閑)ㆍ무학 자초(無學 自初)ㆍ대지국사 지천(大智國師 智泉)등이 그의 문도이다.
*지관(止觀)---불교에서 사물을 객관적으로 관찰해 정확히 판단하고 자재(自在)로이 대처하는 것을 이르는 말. ‘지’와 ‘관’의 합성어로서 ‘지(止)’는 모든 망념(妄念)을 그치게 해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기울이는 것, 즉 정신집중으로 마음이 안정된 적정(寂靜)의 상태이며, ‘관’은 진리 ? 실상(實相)을 제대로 보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지관(止觀)은 선정(禪定)과 지혜(智慧)에 해당되고, 지와 관의 양자는 마치 수레의 두 바퀴 같은 상호의존 관계에 있으며, 불교도의 중요한 실천 항목이다. 초기 불교부터의 수행법으로서, 특히 중국의 천태종(天台宗)에서 중시했다.---→지(止) 참조.
*지관타좌(只管打坐)---만사를 제치고 오로지 앉아만 있는 것(묵조선의 수행법). 잡념을 조금도 두지 않고 오직 성성적적한 마음으 로 좌선하는 것. 조동종(曹洞宗)의 선법으로 묵조선의 입장을 한마디로 표현한 말이다.
*지권인(智拳印)---비로자나불이 결하는 수인이다. 그 형상은 좌우 손으로 엄지를 속에 넣고 다른 네 손가락으로 주먹을 쥔다. 이러한 형식은 일체의 무명 번뇌를 없애고 부처의 지혜를 얻는다는 뜻, 또는 이(理)와 지(智)는 둘 같지만 둘이 아니고 부처와 중생은 같은 것이며, 미혹함과 깨달음도 본래는 하나라는 뜻을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지눌(知訥, 1158~1210)---지눌의 속성은 정(鄭), 자호는 목우자(牧牛子), 시호는 불일보조국사(佛日普照國師)이다. 당시 고려는 무신난으로 인해 정변이 이어지고 사회적인 혼란 또한 걷잡지 못하는 때였으며, 불교계는 교선(敎禪)의 갈등이 심했을 때였다. 그러할 때 지눌이 나와 9산선문의 교리를 종합해 돈오점수(頓悟漸修)와 정혜쌍수(定慧雙修)를 주장해 조계선종의 중흥을 이루어 한국 불교의 정통인 조계종을 확립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지눌 이후 한국 불교는 새로울 것이 없고, 지눌에 의해 전개된 선종 운동은 언제나 한국의 불교 전통이 고수해온 단 하나의 중요한 계기로 작용했다는 평을 받는다.
*지도무난(至道無難)---중국 선종(禪宗)의 제3대 조사(祖師)인 승찬(僧璨)이 지은 신심명(信心銘)에 있는 글. 지극한 도를 체득하는 일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오직 취사선택하고 분별하는 마을을 일으키지 않으면 된다. 미워하고 좋아하는 분별심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깨달음의 경지는 분명히 드러난다고 했다.
*지루가참(支婁迦讖)---생몰연대미상. 지(支)는 대월지국(大月氏國) 사람이라는 것을 나타내며, 루가참(婁迦讖)은 산스크리트 로칵세마(Lokaksema)의 음역이다. 안세고(安世高)보다 약간 늦게 AD 147년 후한의 뤄양(洛陽)에 가서 대승경전을 한역한 것으로 알려지며, 소승경전을 한역한 안세고와 대비된다. 183년(중평 3년)에 이르기까지 <도행반야경(道行般若經)>. <반주삼매경(般舟三昧經)> 등 대승경전(大乘經典)을 번역했으므로 이런 의미에서 그는 중국에 대승경전을 전한 최초의 인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지바라밀(智波羅密)---지바라밀에서 지(智)란 6바라밀의 반야바라밀에서의 지혜가 아니라 구체적인 지식을 의미한다. 지혜(반야)를 통한 실천행이 중요하지만, 중생의 일상생활에서는 구체적인 지식 또한 절실히 요구된다. 사람들은 자신이 습득한 지식을 바탕으로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 대한 가치 판단을 하게 되고, 그에 따라 행동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불교에서 무분별지(無分別智)를 강조하면서도 지식의 습득을 무시하지 않는다. 다만 분석적인 지식에 매몰돼 일방적인 행동으로 흐르는 것을 경계해 지식을 뛰어넘는 무분별지를 강조하는 것이다.
보살의 길을 걷고자 할 때 이 세상의 여러 가지 지식을 습득해 그것을 지혜의 힘으로 활용한다면 그런 지식은 지혜(반야)를 형성하는 바탕이 되므로 지바라밀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지범개차(持犯開遮)---지(持)는 계를 잘 지키는 것이고, 범(犯)은 잘 지키지 못하고 깨뜨리는 파계를 말하며, 개(開)란 방편(方便)을 연다는 뜻이고, 차(遮)는 막는다는 뜻이다. 지범개차의 본질은 ‘큰 것을 지키기 위해 작은 것을 범 할 수 있다’는 뜻으로 요약 된다.
그러나 그 기준은 자기의 이익이나 일신을 위해 써져서는 안 되며 대승심에서 발로를 찾아야 할 것이다. 대승심을 가지면 그것이 설사 범하더라도 보다 큰 것을 위해 범할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비록 작은 문제라도 자기의 이익과 일신을 위해 범한다면 절대로 안 되는 것이다. 그러니 지범개차의 기준은 대승심의 발로가 돼야하는 것이다.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지심(至心)’이란 ‘지극(至極)한 마음’을 말한다. 그러므로 ‘지극지심’이라고도 한다. ‘귀명(歸命)이란’ ‘명(命)이 돌아오고 돌아간다.’ 즉 ‘생(生)과 사(死)의 사이’인 ‘수명(壽命)’이 돌아오고 돌아간다는 말이다. 따라서 지극한 마음으로 자기의 생명을 던져 불교에 귀의하는 예절이라는 뜻이 되겠다.
*지엄(智儼, 602~668)---중국 수 ? 당 시대의 승려, 화엄종(華嚴宗)의 고승. 화엄종의 기초를 다지고 화엄종 제2대 조사(祖師)가 됐다. 신라의 의상(義湘)이 그로부터 화엄을 배웠다.
*지의(智?, 538~597)---중국 천태종(天台宗)의 개조(開祖)로 천태대사로 불린다. 천태 3대부(天台三大部)인, <법화현의(法華玄義)>, <법화문구(法華文句)>, <마하지관(摩訶止觀)>을 비롯해 많은 저서를 남겼다.
*지장보살(地藏普薩)---산스크리트 이름은 크시티 가르바(Ksti garbha)이다. 크시티(Ksti)는 땅, 즉 지(地)를 의미하고, 가르바(garbha)는 태(胎) 혹은 자궁(子宮)으로 번역되는 함장(含藏), 저장(貯藏)의 뜻이다. 대지는 모든 생명의 씨앗을 간직해서 때가 되면 꽃을 피워 열매를 맺게 해주는 등 모든 삼라만상을 길러내고 품어내며 갈무리한다. 바로 이러한 땅과 마찬가지로 이 보살은 모든 중생을 구제하는 위대한 힘을 저장하고 있기에 지장(地藏)이라 한 것이다.
그는 한 손에는 지옥의 문이 열리도록 하는 힘을 지닌 석장(錫杖)을, 다른 한 손에는 어둠을 밝히는 여의보주(如意寶珠)를 들고 있다. 지장보살은 사찰에서 독립적으로 세워지는 명부전(冥府殿) 혹은 지장전의 주존으로서 이들 전각은 사자(死者)의 명목을 비는 전각이다.
*지장삼부경(地藏三部經)---<지장십륜경(地藏十輪經)>, <지장본원경(地藏本願經)>, <점찰선악업보경(占察善惡業報經)>을 말한다.
*지전(知殿)---예불을 주관하고 대중 방을 정리 정돈하는 하는 소임. 불전에 대한 청결, 향 등의 일체를 맡은 스님을 말한다. 지전스님을 전주(殿主)스님이라고도 한다.
*지정각세간(智正覺世間)---지정각세간은 부처님께서 깨달은 세계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깨달음의 세계에서는 18계의 구분이 무너져 하나로 보인다. 지정각세간은 부처나 보살이 방편으로 열어 보이는 세계로, 부처의 대지혜로써 치우친 견해를 여의고 세간과 출세간의 만법(萬法)을 두루 아는 세간이다.
*지제(支提, 챠이티야/caitya)---부처님의 사리를 넣어 높이 쌓아올린 무덤(범어로는 스투파/stupa)을 탑이라 하며, 팔리어로는 투파(thupa)라 했고, 투파가 음역해서 탑파(塔婆)라고 불리게 됐다.
그런데 사리를 넣지 않고 기념될 만한 장소, 가령 부처님이 자취를 남긴 곳에 기념으로 세운 것은 범어로 챠이티야(caitya=chaitya)라 불렀고, 한역해서 지제(支提)라 했다.
이러한 사리탑이나 기념탑은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후대에는 별다른 구분 없이 탑으로 통했으며, 더구나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수많은 탑에 다 봉안하기란 불가능했기 때문에 후대의 탑은 사리탑이니 기념탑이니 구분할 필요조차 없게 됐다.
※전남 장흥의 천관산(天冠山;723m)을 일명 지제산(支提山)이라 한다.
*지해(知解)---→알음알이 참조.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조계종의 종지(宗旨). 선원에서 깨달음을 나타내는 말. 가르침에 기대지 않고 좌선에 의해 사람의 마음을 직관함으로써 부처의 깨달음에 도달함을 이르는 말이다. 「곧바로 사람 마음을 가리킨다.」는 뜻. 문자나 언어를 빌리거나 외적 대상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의 마음을 잘 응시해서 직접 단번에 마음의 근원을 파악하는 것이다.
자기의 본마음을 직접 파악하는 것을 ‘직지인심’이라 하고, 직지의 대상은 자기 밖이 아니라 자기 속에 존재한다. 때문에 밖에서 구하지 않고 안에서 구해야 한다. 마음 밖에서 찾는다면 외적 대상에 사로잡히게 되고, 그 결과 망상과 미혹된 마음이 일어나 마음의 본성을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이 말은 마음 밖이 아니라 마음 안에서 곧바로 본심. 본성에 투철해야 한다고 설하는 것이다. 이것이 견성성불(見性成佛)이다.
*진공묘유(眞空妙有)---허공을 우리는 잡아 낼 수 있을까? 잡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허공이 없는 것이 아니다. 즉, 텅 비어 있으나 가득 차 있는 것이다. 이것이 ‘진공묘유’이다.
참다운 비움으로부터 불가사의한 존재가 나타난다. ‘없음’이 없이는 무위도 없고 참된 존재도 없다. 참 존재는 ‘없는 상태’로부터 나온다. ‘없음’이야 말로 항상 거기에서 모든 것을 나타낸다. 진공묘유는 있음(有)에서 없음(無)을 보고, 없음(無)에서 있음(有)을 보는 것이며, 이것은 마치 ‘장작에서 재를 보고, 재에서 장작을 보는 것’과 같다. 그래서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다.
“변화하지 않는 고정된 실체는 따로 없다” 모든 존재는 인연 따라 오가나 분명히 현상으로는 작용하나니, 즉 고정된 실체는 없지만 현상으로서는 분명히 작용 하고 있다. 이것을 불교용어로 진공묘유(眞空妙有)라고 한다. 진공은 ‘참다운 공’을 말하며, 묘유는 ‘묘하게 존재함’을 의미한다.
완전한 공은 단순한 허무가 아니라, 만물이 이렇게 존재하는 것 자체가 바로 공임에 틀림없다. 공의 그러한 형성작용을 진공묘유라 한다. 의미적으로 본다면, ‘진공은 적적(寂寂)이며, 묘유는 성성(惺惺)’일 것이다.
*진귀조사(眞歸祖師)---석가모니가 샛별을 보고 깨달았으나(여래선), 미흡함을 알고 좀 더 깊은 수행을 위해 찾아간 조사가 진귀조사(眞歸祖師)이다. 그리고 진귀조사로부터 전해 얻은 선이 조사선(祖師禪)라는 것이다.
그러니 석가모니에게 조사선을 전했다는 조사이다. 다른 나라에는 전해지지 않고 우리나라에만 전해지는 이야기이다. 이에 따르면 석가모니가 보리수 아래에서 깨친 것은 진실한 것이 아니고, 뒤에 진귀조사를 만나 무상정등각을 얻은 조사선 경지가 참된 깨우침이라는 것이 된다. 이 이야기는 오랫동안 진위의 논쟁이 돼왔다.
*진기약(陳棄藥, 산스크리트어 p?timukta-bhai?ajya)---부란약(腐爛藥)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짐승의 대 ? 소변으로 만든 약, 소의 오줌에 하리이다키 열매를 넣어 이것을 흙 속에 묻어 발효시킨 약. 부처님 당시 인도의 출가자들이 먹던 약이다. 출가자는 진기약(陳棄藥)에 의해서 살아가며, 목숨을 마칠 때까지 이에 힘써야 한다고 했다.
*진묵대사(震默大師, 1562~1633)---조선 선조~인조 때의 고승으로 김제군 만경면 출신이다. 서산 대사와 쌍벽을 이룰 만큼 뛰어난 고승이지만 깊은 산중에서 은둔하고 지낸 까닭으로 크게 알려지지 않아 기행이 많은 전설상의 인물처럼 돼버렸다. 그의 부도는 전북 완주군 용진면 봉서사(鳳棲寺)에 있다. 저술은 없으나 조선 후기의 승려 의순(意恂=초의선사)이 구전되어오던 것을 정리하여 진묵대사에 대한 유일한 자료인 <진묵조사유적고(震默祖師遺蹟考)>라는 책을 남겼다.
*진언(眞言)--- ‘만트라(mantra)’의 번역어이다. 진언이란 허튼말이 아닌 진실한 말, 참다운 말이라는 뜻으로 실담문자((悉曇文字, 범어 문자)로 된 신비한 힘을 지닌 짧은 주문(비밀스러운 문구)이다. 진언과 다라니는 같으면서도 그 형식에 있어서 약간 차이가 있다. 대체로 진언은 짧고 다라니는 길다. 밀교에서는 진언(만트라)이라는 말이 다라니의 의미로 널리 쓰인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진언 다라니’라는 말이 통용됐다. 우리가 많이 듣는 '옴 마니 반메훔'도 진언이다. 이처럼 진언은 대체로 짧으면 한 자, 길어야 두 세줄 정도에 불과하다.
*진여(眞如)---있는 그대로의 모습, 진실한 존재방식을 의미하며, ‘여(如)’, ‘여여(如如)’, ‘여실(如實)’이라고도 번역된다. 즉 연기(緣起)하고 있는 이 세계가 틀림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라고 하는 의미에서 진여라고 부른다. 대승불교에서는 다음과 같은 말과 거의 같은 의미의 말로 쓰이고 있다. 무상(無常), 무아(無我), 법성(法性), 법계(法界), 법신(法身), 공(空), 여래장(如來藏),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 등이다.
*진여당체(眞如當體)---참되고 아름답고 깨끗한 속성이 그대로 나타난 법신을 말한다. 깨끗한 속성이 그대로 나타난 몸으로 아름답고 참된 온갖 모습을 두루 갖춘 보신불을 일컫는다.
*진제(眞諦:499~569년)---서인도 출신으로 부남국(扶南國/캄보디아)에 왔다가 양 무제(武帝)의 초청을 받고 중국으로 오게 됐으나 전란을 피해 다니느라 불우한 일생을 보내면서 남조의 마지막 왕조 진(陳)나라 때까지 활약했다. 특히 <섭대승론(攝大乘論)>,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유식론(唯識論)>, <아비달마구사석론(阿毘達磨俱舍釋論)> 등의 번역은 유식학 연구의 단서를 열었다. 그는 9식설을 주장했다.
*집금강신신중신(執金剛身衆神)---절에 들어가는 문이나 전각의 입구 좌우에 손에 금강저(金剛杵)를 잡고 서서 불법을 수호하는 신이다. 왼쪽은 밀적금강(密跡金剛)으로 입을 벌린 모습이며, 오른쪽은 나라연금강(那羅延金剛)으로 입을 다문 모습이다. 금강역사(金剛力士) ? 집금강(執金剛) ? 집금강신(執金剛身)이라고 하기도 한다. 용수보살이 지은 <화엄경 약찬게>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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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제설법(次第說法)---순서에 따라 행한 훈화를 뜻한다.
부처님은 야사(Yasa)에게 차제설법(次第說法)을 했다. 예를 들면 보시(布施)에 관해서, 계(戒)에 관해서, 천상(天上)에 관해서 설법하고, 감각적 욕망으로부터 발생하는 불행, 무익, 불결함에 대해서 설법했다. 그리고 감각적 욕망에서 벗어나면 큰 이익이 있음을 설법했다. 그때 부처님은 야사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려는 마음상태가 돼 있고, 잘 받아들이려는 마음상태가 돼 있고, 장애 없는 마음상태가 돼 있고, 신명난 마음상태가 돼 있고, 밝고 청정한 마음상태가 돼 있음을 알았다.
그리하여 부처님 최상설법[불최상설법(佛最上說法)]인 고(苦)-집(集)-멸(滅)-도(道)의 사성제(四聖諦)에 대한 담마를 설법했다. 야사는 마치 때 없는 하얀 천이 매우 잘 물들듯이, 먼지가 없고, 때가 없는 법안(法眼)을 얻었다. 그리하여 「발생한 담마는 무엇이나 모두 소멸하는 담마이다.」라고 깨달았다.
이런 순서로 설법을 하는 것을 차제설법이라 하며, 이러한 방식의 설법을 통해 부처님은 야사(Yasa)라는 청년을 교화함으로써, 그를 일반인으로서는 최초로 부처님에게 출가해 귀의한 제자로 삼았으며,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야사의 부모와 친구들을 교화했다. 따라서 차제설법은 맨 처음 정립된 설법의 방식으로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참회진언(懺悔眞言)---「옴 살바 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3번)
<옴>은 ‘진언의 왕’이며 ‘우주의 핵심’이며 ‘항복, 조복, 섭복’ 등 여러 가지 의미와 신비한 힘을 가진 진언의 정형구에 해당한다.
<살바>는 '일체'라는 뜻이며,
<못자>는 '붓다'의 다른 표기이다.
<모지>는 '보리'의 뜻이며,
<사다야>에서 <사다>는 '살타'이며
<야>는 '~에게'라는 뜻이다.
<사바하>는 앞의 일이 원만하게 성취되도록 하는 종결어미로 사용되며, ‘구경(究竟), 원만, 성취, 맡긴다, 귀의한다’ 등의 뜻이 있다.
그래서 <옴 살바 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를 붙여서 해석해보면, ‘일체의 불보살님에게 귀의합니다.’라는 뜻이 된다.
*천부(天部)---신들이 사는 수미산 위의 천계(天界)를 일컫는다. 천계에 사는 신들은 과거 선업의 결과로 생겨난 것으로 수명도 매우 길고 천계의 즐거움을 향유하며 공중을 자유로이 날아다닐 수 있으나 윤회 전생의 원인을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죽는 것만은 피할 수 없다. 불교에서는 불, 보살보다 한 단계 낮은 지위에 해당하며 사천왕(四天王)을 비롯한 인왕(仁王 ; 금강역사), 범천(梵天), 제석천(帝釋天), 팔부중(八部衆) 등이 천부 가운데 대표적 신이다.
*천상(天上)과 극락(極樂)---천상과 극락은 다르다.
천상에는 욕계 중생이 머무는 천상(6욕천으로 사왕천 , 33천, 야마천, 도솔천 , 화락천, 타화자재천)과 색계 중생이 머무는 천상(색계 1선천, 색계 2선천, 3선천, 4선천)과 무색계 중생이 머무는 천상(공무변처천, 식무변처천, 무소유처천, 비상비비상처천)이 있다. 천상은 모두 26곳이다.
그 중 극락이라는 곳은 색계 4선천(禪天) 중에 정거천(무번천, 무열천, 선현천, 선견천, 색구경천)으로 이곳은 불환과의 도과를 얻은 중생이 태어나는 곳으로 이곳에 태어나면 그곳에서 수행을 완성해 완전한 열반에 들어 윤회를 끊을 수 있는 천상이다. 26계의 천상 중 오직 수행을 할 수 있는 곳이 정거천(극락 )이다.
이곳은 천상에서 유일하게 나머지 수행을 완성할 수 있는 곳으로 이 정거천(淨居天)은 완전한 열반 윤회를 끊을 수 있는 마지막 태어남이 되는 곳이다.
*천수경(千手經)---<천수천안관자재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대다라니경(千手千眼觀自在菩薩廣大圓滿無崖大悲心大陀羅尼經>의 준 이름이다. 이 경은 옛날 범어(梵語)를 그대로 우리말로 음역(音譯)해 읽는 밀교 경전이고, 경의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관음신앙을 근본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천수경의 주인공은 관세음보살이며, 그 내용은 관세음보살의 자비사상을 담고 있다. 천수경은 대승불교의 총론에 해당하는 경이다.
*천식재(天息災)---북인도 가습미라국(迦濕彌羅國) 출신의 밀교 계통 승려로 980년에 중국 송(宋)에 와서 982년에 칙명으로 태평흥국사(太平興國寺)의 서쪽에 신축한 역경원(譯經院)에서 번역에 종사해 대승장엄보왕경(大乘莊嚴寶王經), 법집요송경(法集要頌經), 입보리행론(入菩提行論) 등, 총 18종을 번역했다고 함.
*천왕문(天王門)---불법을 수호하는 외호신(外護神 : 불국 정토의 외곽을 맡아 지키는 신)인 사천왕(四天王)이 안치된 전각. 불(佛) ? 법(法) ? 승(僧) 삼보가 계시는 사찰을 수호하는 뜻으로 천왕의 모양을 나투어 파사현정(破邪顯正)의 정신을 일깨우는데 그 뜻이 있다.
*천이통(天耳通)---천이통이란 세간의 좋고 나쁜 모든 말과 멀고 가까운 말, 여러 나라 각 지역의 말, 나아가 짐승과 귀신의 말에 이르기까지 듣지 못할 것이 없는 신통한 능력인데, 붓다들은 타심통과 천이통의 신통을 갖추고 있다.---→육신통 참조.
*천인사(天人師)---부처님의 열 가지 이름 중의 하나. 신(神)들과 인간의 스승, 곧 하늘과 사람의 스승. 인천(人天)의 대도사(大導士)라는 뜻이다.
*천친(天親)---세친(世親:320∼400)을 천친으로 번역하기도 한다.---→세친 참조.
*천태대사(天台大師)---지의(智?, 538~597), 지자대사(智者大師)라고도 한다. 중국 천태종(天台宗)의 개조(開祖). 남북조시대~수나라에 걸쳐 활동했다.---→지의(智?), 천태종(天台宗) 참조.
*천태삼대부(天台三大部)---중국 수(隋) 시대 천태대사(天台大師) 지의(智?, 538~597)의 대표적인 저술 3부작으로서, <법화현의(法華玄義)>, <법화문구(法華文句)>, <마하지관(摩訶止觀)>을 일컫는다.
천태(天台)의 교학에서는, 이론(敎)과 실천(觀)의 이른바 교관2문(敎觀二門)이 서로 합치될 때 비로소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며 참다운 불법을 완성할 수 있다고 말한다. 3부 중 <법화현의>와 <법화문구>의 2부는 천태종의 소의경전인 <법화경>을 이론적으로 해설한 교상문(敎相門)이며, <마하지관>은 <법화경>에 바탕을 둔 실천문(實踐門)을 역설하고 있다.
*천태종(天台宗)---천태란 중국에 있는 천태산에서 온 말로서 이곳에서 수행한 천태대사 지의(智?, 538~597)에 의해서 개창된 불교의 분파이다. 화엄종과 더불어 중국불교의 대표적인 종파이다. 천태종 소의경전은 묘법연화경(법화경)이며, 이들의 특성은 초목과 와력(瓦礫)에도 불성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초목도 성불할 수 있다는 초목성불설(草木成佛說)까지 전개했다.
우리나라에서 천태종이 하나의 종파로 성립된 것은 고려시대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에 이르러서였지만, 그 교학이 전래된 것은 훨씬 이전이다. 신라의 현광(玄光)은 지의에게 법을 전한 혜사(慧思)에게서 법화삼매(法華三昧)를 배웠으며, 신라의 연광(緣光), 고구려의 파약(波若) 등은 직접 지의의 문하에서 공부했다. 특히 고려 체관(諦觀)의 <천태사교의(天台四敎儀)>는 천태학의 입문서로서 크게 성행했다.
중국에서는 교종(敎宗)의 한 종파였던 천태종(天台宗)이 한국에서는 선종(禪宗)에 가까운 불교로 성립됐다는 점이 해동 천태종의 특징이다.
오늘날의 천태종은 1945년 해방 후 삼척 출신의 상월원각(上月圓覺:속명 朴準東)에 의해 소백산 구인사(救仁寺)를 기반으로 발전했다. 그리하여 사찰 법당에서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불상에 먼저 삼배를 드리는데 천태종 사찰에서는 조사스님 사진에 먼저 삼배를 드리고, 염불기도만을 중시하는 특징이 있으며, 금강대학교와 금강불교대학을 운영하고 있다.
대중화에 대한 노력이 보이는 부분은 한국불교에 있어 특히 두드러진 부분이다. 자리이타의 보살사상을 이념의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새로운 불교운동을 제창하고 있다. 천태 사찰은 신도회를 중심으로 사원 운영체제를 형성하고 있다.
기복(祈福)불교에서 수복(修福)불교로
둔세(遁世)불교에서 구세(救世)불교로
산중(山中)불교에서 사회(社會)불교로
관념(觀念)불교에서 실천(實踐)불교로
소비(消費)불교에서 생산(生産)불교로
*청규(淸規)---총림(叢林)에서 쓰는 규칙. 당나라 백장회해(百丈悔海, 720~814)선사가 천하의 총림에서 시행할 규칙을 만들고 청규라 했다. 그 뒤에는 여러 스님들이 각기 그 절에서 시행할 규칙을 마련하고 모두 청규라 했다. 곧 청정한 규칙이란 말.
*청량 징관(淸凉 澄觀 : 738~839)---중국 화엄종의 제4조. 청량 징관 선사가 지은 <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大方廣佛華嚴經隨疏演義抄)> 90권(卷)이 우리나라 화엄학 연구의 지침서가 돼 있으나 너무 방대하고 난삽한 점이 있다.
*청목(靑目/Pi?gala, 4세기 전반)---<중론(中論)>의 저자. 용수(龍樹)가 지은 449구의 간결한 게송인 <중송(中頌)>에 청목(靑目)이 주석을 단 불교의 논서인 중론(中論)을 저술했다.
*청신녀(淸信女)---우바이(優婆夷), 우파시카(upasika)를 한역한 것이다. 여자 재가 신도를 말하며, 근사녀(近事女)라고도 한다.
*청정도론(淸淨道論, Visuddhi-magga)---5세기 중엽에 인도에서 스리랑카로 건너간 붓다고사(Buddhaghosa) 스님이 팔리어 삼장에 대해 집필한 주석서이다. 붓다고사 스님의 정확한 생몰연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마하나마왕(Mahanama. 406∼428) 시대의 스님으로 알려져 있다.
상좌부 불교의 교리와 학설을 집대성한 붓다고사 스님의 저서 <청정도론(淸淨道論>은 오늘날까지도 남방 불교계의 가장 권위 있는 논서로 꼽히고 있다. <청정도론>은 상좌부 불교 교리의 집대성인 동시에 완전한 청정, 즉 열반의 단계에 도달하기 위한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수행 방법을 조목조목 제시했다는 점에서 불교사의 커다란 획으로 평가된다.
*체관(諦觀, ?~970)---<천태사교의(天台四敎義)>를 지은 고려 광종 무렵의 고승. 제관이라고도 한다. 고려 천태종파(天台宗派)의 의적(義寂)의 법(法)을 이어 받았고, 960년(광종 11) 송나라에 가서 10년 동안 공부하다가 사망했다. 자기가 지은 <천태사교의>를 상자에 간직해 두었는데 죽은 후 상자 속에서 빛이 비치므로 의적이 열어보니 <천태사교의>가 들어 있었다. 이로부터 널리 사방에 전파돼 초학자의 연구에 큰 도움이 됐다.
*체관(諦觀)---사물의 본체를 충분히 꿰뚫어 봄, 또는 사물을 상세히 살펴본다는 말임.
*체징(體澄)---신라의 승려, 염거(廉居)의 제자. 도의(道義)의 손제자. 설악산에서 도의의 법을 배운 체징은 837년에 당에 건너갔으나 실망하고, 840년에 신라로 돌아와서 장흥의 가지산(迦智山)에서 보림사(寶林寺)를 창건하고 도의의 종풍을 펼쳤다. 이로써 선종 9산의 일파로 가지산문이 최초로 성립됐다. 이렇게 해서 9산 선문(九山禪門)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초발심시 변정각(初發心時 便正覺)---깨달음을 이루려고 하는 맨 처음의 결심이 바로 깨달음을 이룬다'는 뜻이다(화엄경 법성게). 처음 발심할 때, 초발심을 했을 때가 문득 정각이다, 이미 구경각을 이루었을 때라는 말, 처음 시작할 때 가진 마음가짐이 곧 부처의 마음이란 뜻이다.
*초전법륜(初轉法輪)---부처님이 행한 최초의 설법을 말한다.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후 바라나시(Varanasi, 현재의 베나레스) 근처의 이시빠따나(Isipatana, 仙人住處)에 있는 녹야원(鹿野苑, Migadaya, 현재 지명은 Sarnath)으로 가서 예전에 함께 수행했던 다섯 수행자들을 만나 최초로 행한 설법을 했다. 최초로 법의 바퀴[법륜]를 굴렸다는 말이다.
*촉(觸, Samspars′a)---12연기법에 있어서 육입(六入)을 연해 촉이 있게 되는데, 촉은 ‘접촉한다, 충돌한다’는 뜻을 갖고 있다. 여섯 개의 감각기관(六根)이 그 대상인 육경(六境 : 色, 聲, 香, 味, 觸, 法)과 접촉하는 것과 육근(六根)과 육식(六識 : 눈, 귀, 코, 혀, 몸, 의지에 발생한 식)이 화합하는 것이라 하겠다. 즉 촉은 단순한 접촉이나 자극이 아니라 인식(認識) 성립의 원초적 형태이며, 인식론적 경험의 현실을 나타낸 것이다
*총림(叢林)---승려들의 참선수행 전문도량인 선원(禪院)과 경전 교육기관인 강원(講院), 계율 전문교육기관인 율원(律院) 등을 모두 갖춘 사찰을 말한다. 우리나라엔 통도사, 해인사, 송광사, 수덕사, 백양사 등 5대 총림이 있다.
*총지(總持)---부처의 말을 외어서 모든 법(法)을 가진다는 뜻. 다라니(陀羅尼)를 번역한 말이다.---→다라니 참조.
*총지종(總指宗)---비로자나불을 교주로 하고, 관세음보살을 본존으로 하는 밀교계통의 불교종파. 교주는 비로자나불이며, 소의경전(所依經典)은 <대일경(大日經)>, <금강정경(金剛頂經)>이다. 고려시대에 있었으나 조선시대에 와서 없어졌다. 신라(新羅) 문무왕(文武王) 5년(665)에 혜통대사(惠通大師)가 개종했으며, 우리나라 밀교(密敎)의 시초(始初)이다.
*총카파(Tsong?kha?pa, 宗喀巴)---티베트의 라마교 황교(黃敎)를 창시한 라마(1357~1419)임. 15세기에 총카파(宗喀巴)가 반야중관(般若中觀)사상을 기초로 해서 이를 밀교와 융화시킴으로써 티베트불교의 기초를 확립했다. 그의 종파를 황모파(黃帽派:게룩파)라 하며, 그 전의 종파를 홍모파(紅帽派:닝마파)라고 한다. 총카파의 제자 중 겐둔그룹(1391∼1475)이 초대 달라이라마(達賴喇?), 즉 법왕(法王)이 돼 현재 14대에 이르고 있다. ‘달라이’는 몽골어로 바다를 뜻하며, ‘라마’는 덕이 높은 스승을 가리킨다. 티베트인은 자신의 국가를 관음(觀音)의 정토(淨土)라 생각하며, 그 통치자인 달라이라마를 관음(觀音)의 화신으로 생각한다.
*축법도(竺法度)---5세기 남북조시대 주로 송(宋)에서 활약했으며, 범어(梵語)에 능통한 역경승으로 담마야사(曇摩耶舍)의 제자, 그는 소승만이 부처님의 진짜 교설이라 해서, 대승경전을 읽지 못하게 했다.
*축법란(竺法蘭)---중국 후한(後漢)의 효명제(孝明帝; 58~75재위)시대에 처음으로 중국에 불교를 전한 대월지국(大月氏國) 출신의 역경승이다. 67년 가섭마등(迦葉摩騰)과 함께 뤄양(洛陽)으로 와서 백마사(白馬寺)에 머물며 포교에 힘쓰는 한편,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 등 5부의 경전을 한역(漢譯)했다. 이것이 중국 최초의 한역 경전이다.
*축법아(竺法雅)---4세기 전반 서진(西晋) 말엽에 활동한 인도 출신 승려로 그는 풍부한 중국고전의 교양을 활용해 본격적으로 격의불교(格義佛敎)를 주장했다.
*축법호(竺法護, 231~308)---월지국의 후예로서 돈황(燉煌)에서 출생했으며, 8세에 출가했고, 서역을 순례하고 왔다. 그 후 돈황에서 장안으로 들어가 265년부터 308년 78세로 입적하기까지 약 40년간을 오로지 역경에만 종사해 <광찬반야경>, <정법화경>, <무량청정평등각경> 등 모두 154부 309권을 번역함으로써 중국불교에 크게 기여했다. 이는 축법호가 범어나 서역어에 정통했기 때문이다. 중국에 관음(觀音)의 이름이 알려진 것은 그가 <정법화경(正法華經)>을 번역한 이후의 일이다.
*춘다(純陀)---파바성(베살리성)에 살던 대장장이의 아들로 부처님에게 마지막 공양을 한 사람이다. 음역해서 순타(純陀)라고 한다. 부처님께서 파바마을에 도착하시어 대장장이 아들 춘다가 소유하고 있는 망고동산에 머무셨는데 거기서 춘다가 바친 버섯요리를 드신 후 식중독으로 열반에 드시게 됐다.
*출리심(出離心)---고(苦)가 구역질나도록 싫어서 고(苦)로부터 떠난다는 뜻. 염리심(厭離心)과 같은 말.---→염리심 참조.
*출세간(出世間, lokuttara)---일체의 세간적(lokiya) 존재 양태를 벗어난 경지를 가리킨다. 범부 중생들은 탐 ? 진 ? 치에 갇혀 자신들만의 특정한 존재 방식을 벗어나지 못한다. 지옥 ? 아귀 ? 축생 ? 수라 ? 인간 ? 천상계 등이 그것이다. 육도윤회(六道輪廻)란 이러한 6가지 굴레에 얽매여 맴도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세간을 벗어나는 것이 출세간이다.
출세간이란 초기불교가 지향하는 최종 목적에 해당한다. 이것을 편안하고 즐거운 세상으로 알려진 천상계 따위와 동일시하는 것은 곤란하다. 천상계란 결국 감각적 ? 심미적 경험의 차원을 벗어나지 못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출세간은 부정적인 정서와 사고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이들에 대해 어떠한 상상이나 추측마저 거부한다. 이와 관련해 경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출세간에 이른 자에 대해서는 존재한다거나 혹은 온전하다는 따위를 말할 만한 ‘근거마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법이 완전히 끊어졌고, 논쟁의 길 또한 완전히 끊어져버렸기 때문이다.”
*출정후어(出定後語)---일본인 도미나가 나카모토(富永仲基:1715∼1746)가 지어 1744년에 발간한 불교서적. 불경을 문헌학적으로 비평해 ‘대승비불설(大乘非佛說)’을 주장했다.
대승경전은 불멸한 지 500년 뒤에 차례로 만들어진 것으로 결코 불설은 아니라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즉, 대승은 불설이 아니고 대승의 경전은 모두 후인의 가탁(假託)이라 주장함으로써 엄청난 문제제기를 했다.
*취(取, Upa-da-n.a)---12연기법에서 애(愛)를 연해 일어나는 취, 취득해 병합(倂合)하는 작용을 말한다. 애(愛)에 의해 추구된 대상을 완전히 자기 소유화하는 일이라 볼 수 있다.
*츄라판타카(周利槃特)---→주리반타가(周梨槃陀迦)와 동일 인물.---→주리반타가 참조.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도교에서 유래한 칠성신앙을 불교에서 받아들여 북극성(北極星)을 부처로 바꾸어 부르는 이름. 북극성은 절대불변의 진리, 우주의 중심 등의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북극성은 그 빛이 밤하늘의 별 중 가장 밝아 치성광(熾盛光)이라는 명칭이 붙었으며, 묘견보살(妙見菩薩)이라고도 한다. 불교가 우리나라 재래의 민간신앙을 흡수한 예로, 다른 나라 불교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사찰에서는 다른 불상처럼 조각상으로 꾸민 예는 드물고, 칠성각 또는 삼성각에 후불탱화로 모신다.---→칠성각 참조.
*치의(緇衣)---스님의 옷. 인도사람들은 흰색을 숭상해 승려를 제외한 일반인들은 모두 흰 옷을 입기에 출가하지 않고 집에 있는 사람들을 백의라고 하고, 이와 대응해 사문(沙門), 즉 출가한 사람의 옷을 치의(緇衣, 검은 물들인 옷) 혹은 염의(染衣, 물감을 들인 천으로 지은 옷)라고 한다.
*칠견(七見)---7가지 잘못된 견해.
1) 사견(邪見) - 선악, 인과, 윤리를 부정함.
2) 아견(我見) - 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견해.
3) 상견(常見) - 몸과 마음이 항상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견해.
4) 단견(斷見) - 세간(世間)과 자아(自我)는 사후(死後)에 없어진다는 견해. 즉 유정(有情)의 신심(身心)은 일기(一期)에 한정(限定)돼 단절(斷?)한다고 보는 견해.
5) 계도견(戒盜見) - 잘못된 계에 집착하는 견해.
6) 과도견(果盜見) - 그릇된 행위로 얻은 결과를 바른 것으로 간주하는 견해. 잘못된 행을 올바른 행이라고 집착해 이를 닦아서 얻은 그 결과를 올바른 증과라고 잘못 아는 견해.
7) 의견(疑見) - 바른 도리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의심하는 잘못된 견해. 중생은 이 7견으로 말미암아 진리와 점점 멀어진다.
*7관음은(七觀音)---관음보살은 자유로이 몸을 여러 가지모습으로 바꿀 수 있어서 다양한 변화관음들이 성립되는데, 6관음, 7관음, 33관음 등이 있다. 그 중에서 칠관음은 성관음(聖觀音), 여의륜관음(如意輪觀音), 십일면관음(十一面觀音), 불공견색관음(不空絹索觀音), 천수관음(千手觀音), 마두관음(馬頭觀音), 준제관음(准提觀音)을 말하는데 이들은 각기 그 표현되는 모습이 다르다.
*칠만(七慢)---일곱 가지 자만하는 것을 말함.
1)만(慢) - 못한 것을 보고도 내가 잘한다고 생각하는 것,
2)과만(過慢) - 같은 것을 보고도 내가 낫다고 생각하는 것.
3)만과만(慢過慢) - 잘하는 것을 보고도 내가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것,
4)아만(我慢) - 내 것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 스스로를 높여서 잘난 체하고,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이다.
5)증상만(增上慢) - 최상의 교법과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서 이미 얻은 것처럼 교만하게 우쭐대는 것.
6)비하만(卑下慢) - 남보다 훨씬 못한 것을 자기는 조금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
7)사만(邪慢) - 아무 덕(德)이 없으면서 덕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칠불통계(七佛通戒)---부처님은 석가모니 이전에 여섯 분이 계셨고, 석가모니는 일곱 번째 부처님이라 한다. 과거칠불이란 이 부처들을 일컫는 말이다. 과거 일곱 부처의 공통적인 가르침을 일컫는 계(戒)란 뜻이다. 이 칠불통계는 보편적이고 타당한 진리를 상징한다. 이는 어느 한곳이나 한때에 그치지 않고 동서고금을 통해 어떠한 제한도 받지 않는 불변의 가르침이다.
*칠성각(七星閣)---북극성을 상징하는 치성광여래를 모신 사당, 보통 북두칠성을 상징하는 칠성여래를 함께 보신다. 칠성각은 다른 나라에는 없는 우리나라 절에만 있는 독특한 전각이다. 칠성각의 존재는 산신과 함께 토착 신앙이 불교에 유입된 전형적인 예를 보여주는데, 사찰에서의 그 역할은 인간의 수명을 기원하는 믿음에 바탕을 두며 가람 수호의 기능까지 맡는다.---→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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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니슈카(Kaniska)왕---고대 중앙아시아로부터 인도의 북부와 서부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영토로 했던 쿠샨 제국(대월지국/大月氏國)의 대왕.
왕의 즉위 연도에 대해서는 의견이 구구하나 AD2세기 중엽의 사람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불교를 보호한 왕으로서 특히 부파불교시대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에 호의적이었다. 그리고 카니슈카왕의 후원으로 지금의 인도 캐시미르 지방에서 네 번째 경전 편찬회의가 열렸다. 다만 제4결집은 삼장(三藏)에 관한 결집이 아니라 주석에 관한 결집이었기 때문에 이 제4결집에서 경. 율. 논장의 주석서(註釋書) 30만송(頌) 660만언(言)의 대주석(註釋書)을 만들었다. 이때에 덧붙여진 주석서가 후에 「대비바사론(大毘婆娑論)]」 200권으로 집대성됐다.
한편 왕의 통치시대에 간다라 미술과 마투라 미술이 번영해 왕의 불교 예술에의 기여가 매우 컸음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파키스탄의 페샤와르 교외에는 카니슈카 대탑지와 사리용기(페샤와르 박물관소장)가 발견됐다.
*카트야야니푸트라(Katyayaniputra, 迦多衍尼子)---부파불교시대 설일체유부의 비구로서 아비달마인 <발지론(發智論)>를 썼다. 발지론은 아비달마 역사상 하나의 획기적인 사건으로 그는 이 발지론에서 설일체유부 학설 전반에 걸쳐 조직적인 논술을 했다. <발지론>에 대한 방대한 주석서가 <대비바사론(大毘婆沙論)>이다.---→발지론 참조.
*카필라밧투(가비라성, 迦毘羅城, Kapilavastu)---히말라야의 기슭에 있던 나라. 현재 네팔 영토의 동쪽, 인도와 국경을 맞대는 곳이며, 석가족이 다스리는 조그마한 부족국가였다. 기원전 6세기 초 이 나라를 다스리는 임금은 숫도다나(정반왕, Suddhodana)왕이었고, 왕비는 마하마야(마야부인, Mahamay)였다. 이들 사이에서 석가세존이 태어났다. 성씨는 고타마(Gotama), 이름은 싯다르타(Siddhartha)였다.
*칼리유가(Kali-yuga)---고대 인도에서의 신화적 시대구분의 명칭. ‘말세(末世)’라는 말에 해당한다. 힌두교의 시대구분(유가)에는 4개의 구분이 있어, 정법(正法)과 진실을 완전히 갖춘 황금시대를 크리타 유가(krta-yuga 혹은 Satya Yuga)라 하고, 트레타 유가(tret?-yaga)와 드바파라 유가(dv?para-yuga) 시대를 지나 마지막 칼리유가(kali-yuga)에 이르러서는, 정법과 진실이 크리타 유가의 1/4에 불과하게 되는 암흑시대이다.
*쿠시나가라(拘尸那揭羅/구시나갈라)---인도 힌두스탄 평야에 있는 지금의 카시아(Kasia)이다. 불타의 생애와 관련되는 4대 성지의 하나이다. 불타의 시대부터 외딴 곳으로서 당시는 마라족(族)이 살았고 사라쌍수(沙羅雙樹) 사이에 머리를 북쪽으로 두고 열반에 들어간 불타를 화장(火葬)한 곳이다. 현재 5세기경의 것이라고 하는 거대한 열반상을 안치한 열반당(涅槃堂)이 있다.
*쿤달리니(Kundalini)---쿤달리니는 생명력이다. ‘쿤달리니’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어로 ‘쿤달(Kundal)’, 즉 “감겨 있는-코일(coiled)”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똬리를 틀고 잠을 자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뱀의 모양으로 상징되고 있다. 뱀과 쿤달리니의 유사성은 그 움직임, 즉 나선형(螺旋形)으로 똬리를 튼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
따라서 척추 기저에 똬리를 틀고 있는 뱀이나 용수철과 같은 똬리 이미지는 개발되지 않은 잠재 에너지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쿤달리니는 우리의 무의식에 있는 영혼이나 리비도(libido)적인 에너지의 풍부한 원천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쿤달리니는 호기(呼氣-날숨)와 흡기(吸氣-들숨)를 이용해 인체 내의 모든 생명체들을 유지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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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라(Tara, 多羅)보살---‘타라’는 산스크리트어 이름이고 티베트어로는 ‘돌마’라고 하며, 돌마는 티베트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여성 보살이며, 티베트에서 가장 흔한 여자 이름이기도 하다. ‘타라’라는 명칭은 “얽매임으로부터 풀려난 여성”을 뜻한다.
민간 전설에 따르면 이 보살은 관세음보살의 눈물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관세음보살의 눈물이 땅에 떨어져 연못을 이루고, 그 연못에서 연꽃이 한 송이 피어났는데 그 연꽃 속에서 태어난 것이 타라였다고 한다. 관세음보살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을 ‘피안(彼岸)의 세계로 건너가도록’ 도와주는 자비와 구원의 보살이다. 이 보살은 깨달음을 향한 정신적 여행의 수호자인 동시에 해로와 육로 여행의 수호자이기도 하다.
*타심통(他心通)---타심통이란 남의 마음속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신통한 능력이다. 깊은 선정을 이해하는 수행자는 일정한 단계에 가면 자신의 고정된 의식을 비우고, 다른 사람이나 동물, 혼령, 자연의 정령과 교감할 수 있게 된다.---→육신통 참조.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욕계 육천(欲界六天)중 제6천이다. ‘타화천(他化天)’, ‘제6천’이라고도 하며, 욕계의 가장 높은 하늘이다. 타화(他化)는 남이 지음이고, 자재(自在)는 자득(自得)함이니, 이 하늘은 남의 지은 것을 빼앗아 제가 즐기기 때문에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이라 한다. 즉, 남이 지은 것을 자유로이 자기의 쾌락으로 삼는 까닭에 타화자재천이라고 한다. 이 하늘의 남녀는 서로 마주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아들을 낳으려는 생각만 내면 아들이 무릎 위에 나타난다고 한다.
*탄트라(Tantra, 딴뜨라, 密法)---산스크리트어로 ‘지식을 넓힌다’, 연속(連續), 계속(繼續)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말이다. 본래 인도문명과 함께 전승돼온 인도의 전통사상으로 약 5천 년 전 인더스강 유역에서 발생했다. 힌두교, 자이나교 등의 종파에서 하는 밀의적(密儀的) 수행법 또는 그 수행법을 담은 경전을 일컫는 말인데, 불교(특히 밀교)도 그 영향을 받아 2세기경부터 경전을 수트라(경[經])에 대신해 탄트라라 불렀다.
현재는 밀교를 탄트라불교라 한다. 만다라, 다라니, 무드라 등의 상징 수단을 동원해 성불을 이룬다는 밀교의 영어식 표기가 탄트라이고, 티베트불교가 탄트라불교의 전형이다.
*탐진치(貪瞋癡)---탐욕(貪欲)과 진에(瞋?)와 우치(愚癡), 곧 탐내어 그칠 줄 모르는 욕심과 노여움과 어리석음. 이 세 가지 번뇌는 열반에 이르는 데 장애가 되므로 삼독심(三毒心)이라고도 한다.
*탕카(Thanka)---티베트어 탱화를 뜻함. 라마교 사원의 벽이나 본당의 정면에 걸어 승려, 신도들의 일상 예배에 사용하는 탱화. 10세기경에 티베트에서 처음으로 그려졌고, 현존하는 것은 17~19세기에 제작된 것이 많다. 탕가는 그 형식에 따라 몇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① 만다라 형식을 취한 것---힌두교의 얀트라(yantra, 특수한 도형)에 가까운 기하학적인 모양 중에서 작게 존상(尊像)을 그린 것이 대부분이다.
② 존상을 중심으로 하여 그린 것---왕가에서 많이 쓰는 형식으로, 라마교에서 유명한 불, 보살, 명왕 등을 중앙에 크게 그리고, 그에 관계된 여러 존(尊)을 그 둘레에 그린다. 라마교 각 파의 조사상(祖師像)을 중심으로 하는 것도 있다.
③ 그냥 다수의 존상을 그린 것.
④ 이야기를 그린 것 - 석가를 중심으로 해 그 둘레에 생전의 행적을 늘어놓은 것이다.
*태고종(太古宗)---대처승들이 1970년 박대륜(朴大輪)을 종정(宗正)으로 해서 발족한 불교 종파. 고려 말 불교를 원융회통의 정신으로 통일한 태고 보우국사(太古普愚國師)의 통불교(通佛敎) 전통을 계승한 종단으로 대중교화를 이념으로 머리를 기를 수 있고, 결혼도 할 수 있다. 일제시대 대처승을 기본으로 하는 일본 불교 유습의 흔적이 많다.
*태장계 만다라(胎藏界曼茶羅)---태장계 만다라는 법신여래의 본체를 어머니 뱃속의 태(胎)에 비유해 도형화한 것이다. 태장계 밀교는 대일여래의 이성(理性)을 어머니 뱃속의 5장 6부 외에 아이를 키우고 보호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태에 비유해 중생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영원한 깨달음을 그림으로 도형화한 것이다. 태장계 만다라는 본래 태아의 9가지 단계를 그림이나 조각으로 묘사한 것이었으나 후에 섹스를 형상화한 춘화(春畵)로까지 발전시켰다.
그러나 본래의 밀교 만다라는 불법 진리를 설명하는 도형화이고 그림이었는데 마치 춘화인 것으로 잘못 이해한 것이다. <대일경(大日經)>이 태장계 만다라가 성립하는 사상적 근거가 됐고, 대일경의 사상은 태장만다라로 집약된다.
*테라와다(Theravada, 上座部)---불멸 100여년이 지나고 계율 문제로 근본분열이 일어났을 당시 전통을 고수하려던 장로들의 모임을 테라와다라 했고, 한역으로 상좌부라 했다. 대중부와 더불어 소승불교의 2대 부문이었다. 이들 상좌부 불교를 테라와다불교라 한다.
*통불교(通佛敎)---한국불교는 통칭 통(統)불교라 한다. 한국의 불교는 불교의 모든 게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참선으로 대표되는 선(禪)과 강학(講學)으로 대표되는 교(敎)를 아우를 뿐 아니라 밀교적인 수행법도 한국불교에서는 널리 행해지고 있기에 통불교라 해서 한국불교의 특징으로 삼고 있다. 이처럼 한 종파에 국한하지 아니하고 불교 전체에 통하는 교리, 우리나라 불교 역사의 특수성을 표현한 용어이다. 불교가 발생한 인도의 불교를 원천불교라 하고, 각 분파가 생겨난 중국의 불교를 종파불교라고 할 때, 여러 불교 사상을 종합한 우리나라의 불교를 통불교라 한다. 각 분파를 모았다고 해서 회통불교(會通佛敎)라고도 한다.
이러한 성격을 지닌 한국의 불교 사상으로는 일심사상((一心思想), 화쟁사상(和諍思想), 교관겸수(敎觀兼修), 정혜쌍수(定慧思想) 등이 있다.
*통인(通印)---부처의 수인 중 시무외인(施無畏印)과 여원인(與願印)을 합쳐서 일컫는 말이다.
*통저탈(桶底脫)---몸과 마음이 번뇌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것을 비유함(물통의 밑이 빠짐). 주로 깨닫는 순간을 통저탈이라 표현한다.
*퇴마사(退魔師)---악마나 귀신을 쫓아내거나 물리쳐서 없애는 사람. 정도의 길을 걸으며 원한을 품은 혼령들의 한을 풀어주어 성불하게 해 세상의 균형을 맞추는 사람. 퇴마사들의 목적은 세상의 원한을 품은 혼령들과 악귀들을 성불케 해서 중간계와 영계 사이의 구천을 떠돌아다니는 모든 영혼을 영계로 보내는 것이고, 이세상과 저세상을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들이다.
*티베트불교(Tibetan Buddhism)---라마교(喇?敎/Lamaism)라고도 한다. 손챈감포왕(松贊岡保/?~649) 때 중국 문성공주와 브리쿠티 데비 두 왕비가 중국계와 인도계의 불교를 도입했다. 이들 불교는 주술을 중시하는 티베트의 고유신앙인 본교(bon敎)를 배척하지 않고 혼합된 형태를 지니고 토착화해 갔다. 그 후 8세기 중엽, 인도의 파드마 삼바바(蓮華上座師/Padmasambhava, 8세기)와 샨티 락시타(shantiraksita/寂護, 700~762, 티베트 이름은 시바쏘)가 밀교(密敎)를 전한 뒤부터 티베트 불교의 근본은 밀교(탄트라불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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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드마삼바바(Padmasambhava)---8세기 인도의 종교가. 라마교의 개조(開祖). 원래 인도의 불교가에서 밀교(密敎)의 석학(碩學)으로 747년 티베트국왕의 초청에 의해 입국해 티베트 불교의 대성인으로 추앙됐다. 인도 우디야나국의 왕자로 태어나서 어린 나이에 출가해 나란다 불교대학에서 전통 불교를 전수받았고, 오늘날의 미얀마와 아프가니스탄 등지를 두루 다니면서 여러 스승을 따라 수행했다.
깨달음을 얻은 후, 티베트의 티송데첸 왕의 요청으로 티베트에 건너왔다. 티베트 밀교 역사상 최고의 대성취자로서 티베트 사람들은 그를 문수보살, 금강수보살, 관음보살 세 존자가 합일한 화신으로 믿고 있다. 또는 제2의 붓다라고 칭하기도 한다.
파드마삼바바는 뛰어난 비밀 교법을 여럿 남겼는데, 주로 바위틈이나 동굴 등에 숨겨놓았다. 교법을 통한 깨달음에는 시기가 있기 마련인데, 그때까지 경전의 훼손을 막기 위해서였다. 이처럼 숨겨진 경전을 ‘복장’이라 하고, ‘테르퇸 - 티베트어로 보물을 찾아내는 자라는 뜻’이라 불리는 전문 발굴자가 시기에 맞게 경전을 찾아내어 세상에 알리는 것이다.
파드마삼바바의 경전 중 가장 잘 알려진 <티베트 사자의 서>는 14세기에 카르마 링파에 의해 처음 발굴됐고, 티베트 일대 국가에 전파됐다가 20세기 초 옥스퍼드대학 교수였던 에반스 웬츠(Evans Wentz)에 의해 서구사회에 소개됐다. 이 비밀의 경전을 접한 심리학자 카를 융은 ‘가장 차원 높은 정신의 과학’이라고 극찬하며 직접 장문의 해설을 쓰기도 했다.
완전하고 순수한 법력으로 ‘연꽃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는 뜻의 이름으로 불리는 파드마삼바바는 여전히 티베트 최고의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다.
*파사닉왕(波斯匿王, 프라세나지트, 파세나티, Prasenajit)---석존 생존 당시 중인도 사위국(舍衛國, 코살라국)왕으로 부처님의 제자였다. 왕비는 말리부인(末利夫人)이었고, 그 사이에 태어난 왕녀가 아유타국(阿踰他國)의 우칭왕(友稱王)에게 출가해 유명한 승만(勝?) 부인으로 불리었으며, <승만경(勝?經)>의 주인공이다. 사위성(舍衛城)은 코살라국의 수도인데, 원명이 시라바스티(슈가바스티)로서 신라 서울을 서라벌이라 한 것은 바로 이 시라바스티를 음사(音寫)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그리고 사위국의 재상이 아나타핀디카(급고독, 給孤獨, 須達多, sudatta) 장자로서 그는 마가다국의 제타태자(기타태자, 祇陀太子)와 더불어 기원정사(祇園精舍)를 지어 부처님께 바쳤다.
*파사현정(破邪顯正)---삿된 것을 파하고, 올바른 것을 드러낸다는 말. 그런데 ‘파사(삿된 것을 파함)’와 ‘현정(올바른 것을 드러냄)’은 결코 순차적인 것도 아니요, 대충대충 하는 것도 아니다. 파사현정은 매우 정교하게 남(현정)이 일어나는 것이다. 대승의 큰 보살이시고, 부처님 이후 최고의 깨달음을 얻으신 분인 용수(龍樹) 보살께서 <중론>을 지으시매 그 핵심은 ‘삿된 것을 파해 올바른 것을 드러낸다.’고 하는 파사현정(破邪顯正)에 두었다.
*파상론(破相論)---일명 ‘관심론(觀心論)’이라고도 한다. 종래는 보리달마(菩提達磨)의 저술로 알려져 있었으나 최근 대통신수(大通神秀)의 저술임이 밝혀졌다. 깨달음에 이르고자 결심했다면 그 가장 본질적인 방법은 바로 마음을 지켜보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것이 곧 마음을 비우는 일이며, 무심(無心)에 이르는 길이고, 집착을 놓는 일, 방하착의 길이며, 나아가 본성을 살피는 길이기 때문이다.
*파순(波旬)---산스크리트어 p?p?yas의 음사. 악자(惡者)라고 번역. 붓다와 그의 제자들의 수행을 방해한 마왕(魔王)의 이름. 욕계의 정상에 있는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의 우두머리라고 함.
*판도방(判道房)---고승(高僧)들이 거처(居處)하는 큰방의 둘레에 있는 절간의 작은 방.
*판치생모(板齒生毛)---조주(趙州)선사(778~897)의 유명한 화두로서 달마대사의 별명이 ‘판치노한(板齒老漢)’이고, 판치는 판대기 모양의 앞니를 말하는데, 달마대사는 앞니가 없었다고 하며, 120살까지 장수한 조주선사도 살아가면서 가장 불편했던 것이 치아부실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스님이 조주선사께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으로 온 뜻입니까?” 이 말은 달마조사가 서쪽(인도)에서 가지고 온 불법의 진리가 무엇이냐? 라는 뜻이다.
이에 조주선가 답한 것이 “판치생모(板齒生毛)”이다. 헌데 있지도 않는 달마의 앞니에서 털이 나오다니, 그 도리가 무엇인지?
바로 그 의문을 깨치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간절히 의심을 일으키면 천만 가지 번뇌 망상이 용광로에 한 점 눈이 떨어진 것처럼 다 녹아 버린다는 말이기도 한데, 궁극적으로는 진리란 <판치생모>, 즉 언어도단,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음을 뜻한다.
*팔계(八戒)---출가하지 않은 신도가 육재일(六齋日)에 지켜야 하는 여덟 가지 계율. 중생을 죽이지 말라, 훔치지 말라, 음행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술 마시지 말라, 꽃다발 쓰거나 향 바르고 노래하고 풍류 잡히지 말며 가서 구경하지 말라, 높고 넓고 큰 잘 꾸민 평상에 앉지 말라, 때아닐 적에 먹지 말라는 내용이다. 원어는 팔관재계(八關齋戒), 팔재계(八齋戒)이다.
*팔고(八苦)---생로병사(生老病死) 4고(四苦)에다가 애별리고(愛別離苦), 원증회고(怨憎會苦), 구부득고(求不得苦), 오음성고(五陰盛苦)의 네 가지를 합하여 팔고(八苦)라 한다.
*팔부중(八部衆)=팔부신중(八部神衆)---불법을 수호하는 8가지 신, 원래는 고대 인도의 악마나 귀신이지만 붓다에게 교화돼 10대 제자와 함께 법을 수호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천룡(天龍) 팔부중이라고도 한다. 천(天), 용(龍), 야차(夜叉), 건달바(乾?婆), 아수라(阿修羅), 가루라(迦樓羅), 긴나라(緊那羅), 마후라가(摩?羅迦)를 가리킨다.
*팔불정관(八不正觀, Palbul Jeonggwan)---여덟 가지 바르지 못한 견해를 바로잡는 정관(正觀). 팔불중도(八不中道)의 관법.
모든 법의 참모습은 생도 아니고 멸도 아니며,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며, 같은 것(一)도 아니 고 다른 것(異)도 아니며, 단(斷)도 아니고 상(常)도 아니어서, 유(有)를 여의지 않고, 무(無)에 떨어 지지 않는 중도(中道)라는 것이다.---→ 팜부중도(八不中道) 참조
*팔불중도(八不中道)---모든 법은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며, 모든 법은 영원한 것도 끊어짐도 아니며,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서로 같은 것도 다른 것도 아니다. 어디로 부터 온 바도 없고 어디로 향해 간 바도 없다(不生亦不滅 不常亦不斷 不一亦不異 不來亦不去)라는 어느 한 극단이 아닌 중도의 철학을 팔불중도(八不中道)라고 말하는 것으로서 용수(龍樹)가 말한 중도이론이다. 성철스님은 이 양극단을 떠나 중도를 행하는 것이 반야바라밀이라 하셨다.
*팔사파(八思巴)---후기 밀교 샤카파(薩迦派)의 스님 빠끄빠(1235~1280)를 지칭한다. 빠끄빠는 중국 원나라 세조의 스승(帝師)으로서 중앙정치에 공헌했고, 그는 세조의 절대적 신임을 받아 국사가 됐으며, 몽고 제국 내에 전 불교계를 통섭하는 한편, 당시 원나라에는 글자가 없었는데 위구르 문자에서 차용해 처음으로 몽고문자 - 팔사파문자(八思巴文字)를 만들었다.
*팔상전(八相殿, 捌相殿)---부처의 일생을 여덟 장면으로 나누어 그린 팔상도를 모신 전각. 후불탱화로 영산회상도가 걸려 있어 영산전이라고도 한다. 천태종에서는 본존으로 삼고 있다. 주불은 석가부처님임. 속리산 법주사의 팔상전이 유명하다.
*팔왕분골(八王分骨)---열반하신 부처님을 다비했을 때 사리가 3섬 8말 나왔다고 하며, 그것을 8명의 이웃 국가 왕이 나누어 가졌다고 해서 팔왕분골이라고 한다. 당시 이웃나라 왕들은 단 한 분뿐인 불교의 교조 석가모니부처님의 사리를 얻기 위해 목숨을 걸고 달려들었다. 이처럼 국왕들이 부처님의 진신사리에 집착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국민들의 절대적인 신뢰와 존경을 받았던 부처님의 유골인 사리를 모시지 못할 경우 국민들로부터 비난을 받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었다. 다음으로는 국왕들 자신이 불교신자이므로 신자로서의 도리를 다하려고 한 것이다. 거기에다 ‘위대한 성인의 유골을 보유한 나라’라는 국가의 명예에 관련된 점도 있었다. 그래서 그 사리를 가져다가 각기 탑을 세웠는데, 부처님의 사리로 왕권강화의 정통성을 확보하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팔정도(八正道)---‘팔지성도(八支聖道)’라고도 하며, 팔정도는 성인되는 성스러운 여덟 가지 도의 길을 말한다. 영어로는 The Noble eightfold Path라 해서 ‘성스럽다, 고귀하하다, 숭고하다’라는 뜻의 ‘출세간적’인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 팔정도를 계 ? 정 ? 혜 삼학과 견주어 분류할 수 있는데, 계(戒)에 해당하는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이 있고, 정(定)에 해당하는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이 있으며, 혜(慧)에 해당하는 정견, 정사유가 있다.
*팔천송반야경(八千頌般若經)---반야경전 중 가장 오래되고 기본적인 것으로, 기원전후경부터 1세기 중반에 성립했다고 생각된다. 이미 2세기에 지루가참에 의해서 <도행반야경>이라는 이름으로 한역된 것 외에, 구마라습 역 <소품반야경> 등 전부 5회에 걸쳐 한역됐는데 산스크리트어 본 및 티베트어 역도 현존한다.
*패다라(貝多羅, 패엽(貝葉, pattra)---인도에서 종이 대신 사용하던 다라수(多羅樹=貝多羅) 나뭇잎이다. 즉, 야자수 나뭇잎인데, 잎의 바탕이 곱고 뻑뻑하며 길어, 글을 쓰려면 말려서 일정한 규격으로 자른 다음, 칼이나 송곳으로 긁어 자획을 만들고 먹을 넣는다. 크기는 대개 너비 6.6cm, 길이 66cm 정도로 2군데에 구멍을 뚫어 몇 십 장씩 꿰어 묶는다. 이 패다라에 쓴 불경이 패엽경이다.
*패엽경(貝葉經)---BC 1세기 중반 스리랑카 알루비하라(Alu Vihara, 알루위하라) 석굴사원에서 대대적인 불전편찬 작업이 이루어졌는데, 당시 7년에 걸쳐(BC94~80경) 네 차례의 결집을 통해 그때까지 전승되던 모든 가르침을 경 ? 율 ? 론의 <팔리어삼장(三藏), Tipi?aka>으로 완성했다. 이로써 처음으로 완성된 <팔리어대장경>이 성립된 것이다. 이때 구전(口傳)으로만 전해오던 불경 일체를 패다라 나뭇잎에 문자로 기록했다. 이것을 패엽경(貝葉經)이라 하며, 불경이 문자로 기록된 최초의 일이다. 알루비하라 사원에는 패엽경 제작을 위해 조성된 동굴이 14곳이나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두 곳만이 온전하게 보전돼 있다.
*포대화상(布袋和尙, ?~916)---당나라 때 승려로 이름은 계차(契此)이며, 호는 정응대사(定應大師). 당시의 사람들은 장정자(長汀子) 또는 포대사(布袋師)라고 불렀다. 뚱뚱한 몸집에 항상 웃는 모습으로 커다란 자루를 등에 메고 다녀 포대화상이라 했다. 포대화상을 우리말로 옮기면 ‘복 할아버지’가 되고 영어로는 해피붓다(happy buddha)가 된다.
포대화상은 미륵불 화현으로 자비와 복을 상징하는 신앙 대상이다. 화상이 짊어진 포대 속에는 중생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들어 있어서 예배, 공양, 찬탄하면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다 주는 다자대비 보살로 여긴다.
포대화상에 대한 예불 방법은 경건하지 않고 장난기가 발동한 것같이 보인다. 먼저 예배공양하고 젖꼭지와 배꼽으로 부터 아랫배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복자루까지 세 번 돌리고, 포대화상처럼 웃으면서 그를 칭찬하면 된다. 그러면 무병장수 부귀영화의 복을 받는다고 한다.
*포살(布薩)---부처님 당시 보름과 그믐에 대중들이 한곳에 모여 계본(戒本)을 낭송하고 각자 반성과 참회를 하는 의식. 공동체 생활 속에서 지켜야 할 규칙을 정하고 그에 따라 생활하지 못했을 때에 자신의 잘못과 허물을 대중 앞에 드러내고 고백하는 발로참회(發露懺悔)를 말한다.
*포행(布行)---포행(布行)’의 본뜻은 좌선(坐禪) 중 졸음이나 피로한 심신을 풀기 위해 일정 시간 일정한 장소를 산책하듯 느린 걸음으로 걷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가볍게 걷는다는 뜻으로 ‘경행(輕行)’이라고도 하고, 걸으면서 선을 한다 해서 ‘행선(行禪)’이라고도 한다. 그러므로 속세간적 말로 풀면 포행은 ‘느릿느릿, 천천히 걷는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포행 방법은 허리를 바로 세우고 배를 내밀지 않은 상태에서 턱을 당기고 목을 바로 세운 채 자연스럽게 걷는다. 이때 눈은 전방 15도 정도를 향하고 발은 발뒤꿈치부터 땅에 닿게 걷는다. 산에 사는 스님들도 각기 즐겨 찾는 산길이 있다. 흔히 ‘포행’이라고 하는 수행 중 매일 갖는 가벼운 산행시간이 있는데, 이 포행 길은 각자의 취향에 따라 정해진다.
*풍번문답(風幡問答)---혜능(慧能)선사에 관한 이야기. 바람이 불어 깃발이 나부끼자 두 승려가 입씨름을 벌였다. 한 승려는 깃발이 움직이는 것이라 했고, 다른 승려는 바람이 움직이는 것이라 맞섰다. 혜능이 나아가 말했다. “움직이는 것은 바람도 아니고 깃발도 아니다. 움직이는 것은 너희 마음이니라.”
*프라나(Prana, Life energy, 氣)---태초부터 존재해 온 힘으로 우주에 충만해 있으며 삼라만상을 이루는 만물의 근원이자 생명의 실체이다. 따라서 이를 설명하는 것은 신(神)을 설명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한마디로 전 우주의 모든 차원에 걸쳐 스며들어 있는 에너지를 '프라나'라 할 수 있다. 우리말의 기(氣)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필경공(畢竟空)---공함도 없고 공함이 없음도 없음을 곧 필경 공함이라고 한다. 만유가 공이라면 공 자체에 얽매이기 쉽다. 그러므로 공에 대한 집착까지도 떠남으로써 공마저 공한 것이라고 보아 더 이상 부정할 것이 남지 않은 최후 완전한 절대 공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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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심(下心)---하심은 자신과 자신의 마음을 낮추고 상대방을 존중한다는 뜻으로 겸허와 겸손을 의미한다. “하심(下心) 하는 자에게는 만 가지 복이 생기느니라.”라고 한다. 불법을 닦는 수행자에게 있어 반드시 필요한 것이 하심(下心)과 묵언(默言) 수행이다. 금오(金烏, 1896 ~ 1968) 스님은 하심(下心)을 기르기 위해 2년 동안 거지생활을 했다.
*하택 신회(荷澤神會, 670~762)---6조 혜능의 제자로 혜능선사의 선법을 확실히 다지고, 조사선(祖師禪)의 기초를 열였다. 그는 북종선의 점수(漸修)의 법을 방계라 하고, 돈오(頓悟)의 법을 남종선이라 해 정법이라 했다.
*하해어별(河海魚鱉)---강과 바다의 물고기와 자라.
*학인(學人)---강원에서 경전을 공부하는 승려를 이르는 말.
*<한 물건>---선가에서 추구하는 구극의 근본자리. ‘한 물건’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진여(眞如), 우리의 본성(本性)을 의미한다. 우리의 본성은 본래 어두움을 모르는 밝고 그 작용함이 너무나 신령스럽다. 우리들이 밥 먹으면 몸이 소화해서 우리들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게 해 주는 것도 얼마나 신령스러운 일인가. 저녁이 되면 자고 아침이 되면 일어날 수 있는 것도 생각해 보면 신령스러운 일이다. 이 모든 일을 주관하는 한 물건이 있는데, 그 물건이 바로 일체 중생의 본성이고 참되게 여여하게 존재하는 것이라 해 진여(眞如)라 부른다.
*한산습득(寒山拾得)---당(唐)나라 정관시대(貞觀時代=태종시대)의 두 사람의 승려를 이름. 모두 절강성 천태산(天台山) 국청사(國淸寺)의 풍간선사(?干禪師)의 제자로 한산은 문수보살, 습득은 보현보살의 화신으로 추앙됐으며, 특히 한산은 대표격인 시인이다.
※한산시(寒山詩)---한산(寒山)과 습득(拾得), 그리고 그들의 스승 풍간(豊干)의 작품이 실려 있는 시집. 한산은 천태산 국청사 부근의 한암(寒巖)에 숨어 살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한산은 시와 선(禪)을 일치시켜 독특한 경지를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들은 대개 선을 탐구하는 내용이며, 세상 풍자가 심하고 인과응보의 내용을 담은 특이한 형태의 시들인데, 뛰어난 문학성을 겸비하고 있다. 그런 까닭으로 예로부터 선가에서 많이 읽혀졌다. 한산이 지은 시는 314수이고, 습득의 시는 57수이며, 풍간의 시는 2수로 모두 373수가 전한다. 그의 시는 흥에 겨워 나뭇잎이나 촌가의 벽에 써놓은 것을 모은 것이라 한다.
*<한 생각>---고정관념 또는 집착을 말한다. 그래서 한 생각을 돌리라! 하는 말이 있다. 그리하면 우리들 업이 아침 햇살에 구름 걷히듯, 따스한 햇볕에 봄눈 녹듯 할 것이란 것이다.한 생각을 돌리는 것, 각자가 지니고 있는 고정관념을 돌리는 것이 그렇게 중요 하다. 즉 한 생각을 돌이킬 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극과 극의 차이라 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수행 할 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점이기 때문이다. 한 생각 내려놓고 쉬면 그게 바로 도(道) 의 길이 아닌가 한다.
*<한 소식>---선가에서 깨달음을 일컫는 말.
*할(喝)---선승(禪僧)들 사이에서 수행자를 책려하기 위해 발하는 소리 또는 행위. 중국 당나라 이후 참선하는 수행자를 이끌기 위해 선승들이 사용했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의 작용을 표현할 때, 수행자를 호되게 꾸짖을 때, 법회에서 설법을 끝낼 때 할을 발한다.
*함이 없는 함(無生法忍)---예를 든다면 상대가 진심(嗔心-화)을 내다가도 그를 보면 저절로 진심이 없어지고 평온한 상태가 된다면 그는 무생법인(無生法忍)을 갖춘 자라 하겠다.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그냥 가만히 있지만 화를 내다가도 그를 보면 진심이 가라앉았다면 나름의 ‘함’이 있다 하겠으나 그 ‘함’은 ‘함이 없는 함’, 즉 무생법인(無生法忍)이다.
*함사(hamsa)---신라 유물 중에 인면유리구슬에 브라흐마의 4개 얼굴과 미륵불을 상징하는 용화수(龍花樹)라는 나무, 그리고 하얀 물새가 새겨져 있다. 그 중에서 하얀 물새가 브라흐마의 이동수단이며, 해탈을 의미하는 함사(hamsa)라 불리는 새이다.
*합장(合掌)--- 스님과 스님 사이, 스님과 신도 사이에 의례로서 손을 모아 인사하는 일종의 예법(禮法)이다. 두 손바닥을 맞대고 마음이 한결같음을 나타내는 인도의 예법에서 유래한 인사법으로 오늘날까지 인도, 스리랑카, 미얀마, 타이, 베트남 등에서도 일상적인 인사법이 됐다.
인도에서는 오른손은 신성하고 왼손은 부정한 손이라고 구분해 사용하는 습성이 있었는데, 그런 양손을 합하는 것은 인간 속에 잠재된 신성한 면과 부정한 면을 합일하므로 인간의 진실한 모습을 드러낸다는 사상의 표현이기도 하다.
즉, 열 손가락을 가지런하게 두 손을 모아 진실하고 지극함을 표현하는 한편, 양 손바닥을 맞대어 흩어진 생각과 마음을 집중시켜 인간의 진실한 모습으로 배례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다소곳이 고개 숙여 합장하는 마음이 바로 믿음의 출발이다.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불교에서 석존 5인(釋尊五印) 중 하나이다. 항마인(降魔印), 촉지인(觸地印)이라고도 한다. 모든 악마를 굴복시켜 없애버리는 모습으로, 형태는 결가부좌한 채 선정인(禪定印)에서 오른손을 풀어 오른쪽 무릎 위에 얹고 손가락 끝을 가볍게 땅에 댄 것이다.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해서 배꼽 앞에 놓은 선정인 그대로이다. 석굴암 부처님의 손이 전형적인 항마촉지인이다.
*항하(恒河)---인도의 성하(聖河). 영어명 갠지스(Ganges)강이다.
*해심밀경(解深密經)---성립은 300년경으로 생각되고, 중기 대승경전에 속하며, 유식설(唯識說)의 중심이 되는 사상이 실려 있다. 인도의 유식파(유가행파), 중국, 일본의 법상종의 근본 경전. 여러 종의 주석서가 현존한다. 해밀심경 가운데 ‘해’는 해석이란 뜻이고, ‘심’은 매우 깊다는 뜻이며, ‘밀’은 비밀이란 뜻이다. 그러니 ‘심오하고 비밀스런 진리를 해석함’이란 뜻인데, 이 경이 유식사상을 다루기 시작한 최초의 불경으로 알려져 있다.
*해인(海印)---부처의 지혜로 우주의 모든 만물을 깨달아 아는 일. 법을 관조(觀照)함을 바다가 만상(萬象)을 비춤에 비유해 이르는 말이다. 즉 바다가 잔잔하면 삼라만상이 그대로 해면에 나타나 그것이 마치 바다에 도장을 찍은 것처럼 보인다. 그것이 해인이다.
*해인삼매(海印三昧)---화엄경에서 해인삼매란 광명의 부처님이라 불리는 비로자나불의 삼매 속에서 펼쳐진 세계를 말한다.
즉, 부처님이 화엄경을 설할 때에 들었던 삼매(三昧)로 일체의 것(과거, 현재, 미래를 통한)이 마음속에 나타남을 말한다. 바다에 풍랑이 쉬면, 삼라만상이 모두 바닷물에 비치는 것 같이, 번뇌가 끊어진 부처님의 정심(定心) 가운데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법이 명랑하게 나타나는 것을 해인삼매 혹은 해인정(海印定)이라 한다.
내 마음 바다가 출렁이고 비뚤어 있으면 삼라만상이 비뚤게 비쳐 바로 볼 수가 없다. 따라서 수행을 통해 내 마음 바다를 고요하게 해야 만상을 바로 볼 수 있다.
*해탈(解脫, Moksha)---불교에서 인간의 속세적(俗世的)인 모든 속박과 장애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되는 상태(무애자재). 즉, 인간의 근본적 아집(我執)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불교는 이것을 궁극적 목적으로 하고 있다. 즉, 중생은 탐 ? 진 ? 치 등의 번뇌 또는 과거의 업(業)에 속박돼 있으며, 이로부터의 해방이 곧 구원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구원은 타율적으로 신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수행을 쌓아 밝은 지혜로 반야(般若)를 증득(證得)함으로써, 즉 깨달음을 얻어 이루어진다.
*해탈십육지(解脫十六地)---주로 일제 강점기 생존했던 금타(碧山金陀)스님(1897-1948)께서 성문십지, 연각십지, 보살십지 또는 오십오위라든가 여러 가지 밀교의 계위를 합해서 비교해 가면서 보살 10지를 근간으로 하여 회통을 시킨 수행체계이다.
*해탈지견(解脫知見)---해탈함으로 인해 생겨나는 진실된 지혜로써 자신이 참으로 일체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난 자유자재한 몸인 줄을 아는 견해. 나는 해탈했다라고 확인할 수 있는 지혜로 혼자서 해탈했다고 하는 것을 증명하는 것, 혹은 알고 있는 것.
*행(行)---불교에서 ‘행(行)’은 아래와 같이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인다.
※제행무상(諸行無常)에서 ‘행’은 사물의 변화, 운동, 움직임 등을 말한다.
※행고성(行苦性)이라 할 때 ‘행’은 천류(遷流), 즉 모든 것은 흘러간다. 일체는 옮아간다. 하는 뜻의 존재의 무상함을 말한다.
※행(行, Samskara)---12연기에서 무명이 있으면 그것을 조건으로 해서 행이 있게 된다는 것인데, 행은 ‘결합하는Sam, 작용Ka-ra’이라는 뜻을 갖고 있듯이 무명에 의해 집착된 대상을 실재화(實在化)하려는 작용이라 하겠다. 맹목적 생의 의지인 무명은 그 무엇을 욕구해 만족시키고자 끊임없이 활동하는 것이다. 이를 형성작용(形成作用)이라 번역하는 경우도 있으며 서구에서는 보통 ‘impulse’로 번역한다.
※행이란 행위, 즉 업(業, karman)을 가리킨다. 행에는 몸으로 짓는 신행(身行)과 언어로 짓는 구행(口行)과 마음으로 짓는 의행(意行)이 있다. 행은 진리에 대한 무지, 즉 무명 때문에 짓게 되고 그것을 지운 존재의 내부에 반드시 잠재적인 힘의 형태로 남게 된다. 행을 조건으로 해서 식(識, vijnana)이 있다. 신해행증(信解行證) 할 때 행은 행한다는 뜻이다.
※행(行, sankhara)---의지작용 및 그 밖의 정신작용이다. 인간이 동물과 달리 윤리생활을 할 수 있고 업을 짓게 되는 것은 이 행의 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넓은 의미로서의 행은 수, 상, 식을 제외한 모든 정신작용과 현상이다. *색, 수, 상, 행, 식 할 때 행이 바로 의지를 뜻한다.
*행각(行脚)---선 수행을 위해 여러 곳을 다니는 것. 여러 선원을 찾아다니면서 고승들에게 묻고 배우는 것.
*행선(行禪)---각처로 돌아다니며 선(禪)을 닦음. 행동하면서 하는 참선. 선(禪)의 실천.
*행원(行願)---행원은 신행(身行)과 심원(心願)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중생을 구제하고자 하는 바람과 그 실천의 서원(誓願)을 말한다.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걷거나 서거나 않거나 눕거나 말하거나 침묵하거나 움직이거나, 또는 움직이지 않거나 오직 하나만을 생각한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몽중일여(夢中一如) 꿈에서도 바라는 것이 되고, 숙면일여(熟眠一如) 깊은 잠을 자면서도 원하는 것을 놓지 않게 된다. 마지막으로 오매일여(寤寐一如) 잠잘 때나 깨어 있을 때가 늘 한결 같다. 즉, 공부(工夫)의 최고 경지다
항상 구도자는 행주좌와 어묵동정 부처님을 마음속으로 깊이 억념(憶念, 마음속에 단단히 기억하여 잊지 아니함)하고 일어나는 번뇌와 슬픔, 분노, 원망 등을 지워나가야 한다.
*허공꽃(幻華)---진여다, 범성(凡聖)이다, 함이 모두 허공에 핀 꽃이로다(眞如凡聖是空花). 붓다는 이 우주법계를 어떻게 보았는가.? 놀랍게도 부처님은 우주의 기원이나 본질에 관해서는 십이연기법으로 설명하고 오직 연기생이요 환화(幻華)의 허상임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어느 선사의 말씀, 과거와 미래는 환화(幻華)와 같아서 오직 이름만 있을 뿐 실체는 없다네. 그대의 참 마음이 우주만물의 근본이며 주재자임을 명심하고 그 참마음이 오염되지 않는다면 깨닫지 못할까 무엇이 걱정인가.
*허공장보살(虛空藏菩薩)---허공장이란 ‘허공의 모태’라는 뜻으로 무한한 지식을 상징한다. 즉, 지혜와 복덕을 갖추고 있는 것이, 마치 허공과 같이 광대무변한 보살.
후기의 대승불교를 이끌었던 밀교의 만다라(曼茶羅)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등장하는데, 태장계(胎藏界) 만다라에서는 허공장원(虛空藏院)의 중심불이 됐다. 일반적으로 아름다운 모습을 하며, 오른손에는 지혜를 상징하는 칼을, 왼손에는 복덕을 상징하는 연꽃, 또는 공덕을 나타내는 여의보주(如意寶珠)를 잡고, 머리에는 오지보관(五智寶冠)을 쓰고 있다.
※허공장원(虛空藏院)---태장계만다라(胎藏界曼茶羅)의 한 부분으로, 허공장보살을 중심으로 하여 여러 보살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모든 속박에서 벗어난 해탈의 덕을 나타냄.
*허운(虛雲, 1840~1959)---중국 근대의 고승, 저서에 <방편개시(方便開示)>, <참선요지(參禪要旨)> 등이 있다.
*현교(顯敎)---불교(佛敎)는 크게 비밀불교(秘密佛敎)와 현로불교(顯露佛敎)로 나눌 수 있으며, 비밀불교를 줄여 밀교라 하고, 현로불교를 줄여 현교라 한다. 밀교의 교주는 법신(法身) 비로자나 부처님이시고 현교의 교주는 화신 석가모니 부처님이시다.
*현애상(懸崖想)---산이 높다 해서 올라보지도 않고 포기하겠다는 것처럼 어떤 현상이 너무 어렵다고 지레 겁을 먹고 퇴굴심(退屈心)을 일으키는 생각을 말함.
*현장(玄?, 602?~664)---인도에 유학했으며, 17년 동안의 인도-서역 여행(629~645년)을 거쳤고, 경(經) ? 율(律) ? 논(論)의 모든 불교 경전에 정통해 삼장법사(三藏法師)라고 불렸다. 인도에서는 목샤데바(Mok-?adeva)라는 이름으로 알려졌고, 산스크리트어에 정통해 막대한 양의 불교 경전을 가지고 중국에 돌아와 한역했고, 중국에 유식학(唯識學)을 기반으로 한 법상종(法相宗)이라는 종파를 세웠다.
*현학(玄學)---중국 위(魏)ㆍ진(晉) 시대에 나타난 철학 사조로 노장사상을 바탕으로 유가의 경서들을 해석하며 형이상학적인 철학 논변을 전개했다. 3현(三玄)이라고 불리는 <도덕경(道德經)>ㆍ<장자(莊子)>ㆍ<주역(周易)>의 연구와 해설을 중심으로 사상을 전개한 데서 현학이라는 명칭이 비롯됐다.
현(玄)은 노자(老子)의 <도덕경>에서 비롯된 것으로 인간 인식을 초월한 우주 생성의 근원으로서 도(道)의 현묘함을 가리키는 말이다. 현학은 후한(後漢) 말기부터 비롯된 오랜 정치적 혼란을 배경으로 나타났다.
노장사상은 도가사상의 시작이고, 현학은 죽림칠현(竹林七賢)이라 불리는 사상가들로 대표되는데. 현학은 지나치게 사색적으로 발전했다. 즉, 현실 세상과는 동떨어진 현학자들만의 학문으로 발전했다. 유희적(遊戱的) 궤변(詭辯)에 가까우나 불교의 <공(空)>에 대한 해석에 영향을 주었다.
*혜가(慧可, 486(?)~593(?))---달마대사의 첫 제자인 중국 선종의 제2조(二祖). 원래 이름은 광(光), 나중에 ‘신광(神光)’으로 고쳤다가 다시 ‘승가(僧可)’로 개명(改名).
눈이 내리는 겨울날 ‘입설정(立雪亭)’ 앞에서 제자가 되기 위해 달마(達磨)와의 오간 선문답의 극치로 평가받고 있는 ‘안심법문(安心法問)’과 제자가 자기 팔을 자르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달마가 벽력같은 소리로 혜가를 힐책했다. “도대체 무엇을 구하려고 이렇게 눈 속에 서 있는가?”
“제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감로의 법문으로 중생을 구하사 제게도 불법을 깨우쳐 주시기만을 바랄 따름입니다.”
“이놈! 정법(正法)을 구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목숨까지도 버려야 할 각오가 있어야 하느니라! 그런 부질없는 소리로 나를 현혹치 말거라! 만약 붉은 눈이 내리면 너를 제자로 받아들이겠다.”
그때였다. 눈 속에 파묻혀 꼼짝을 않던 혜가가 몸을 움직여 자신의 옷섶을 뒤적이니 호신용 단도를 끄어냈다. 순간 햇살에 반짝이던 칼날이 혜가의 왼쪽 팔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치솟는 선혈이 눈 위로 방울져 떨어져 번져 나갔다. 잘려진 팔이 순백의 눈 위로 떨어졌다.
혜가의 행동을 바라보던 달마가 그때서야 부드러운 음색으로 말을 던졌다.
“진정한 도를 구하는 자라면 몸을 몸으로, 목숨을 목숨으로 보지 말 것인즉, 너의 행위가 합당하구나. 그렇다면 네가 구하는 도는 무엇이더냐?”
“저의 마음이 불안하오니 저의 마음을 편안케 하여 주시기를 원할 따름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너의 그 불안한 마음을 나에게 가져오너라.”
“오래도록 찾고 있었으나 그 마음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비록 네가 찾았다 해도 그것을 어찌 너의 마음이라 할 수 있겠느냐? 내 이미 너의 마음을 편안케 했음을 알겠느냐? 하하하.”
순간이었다. 혜가는 40년 동안 자신을 붙잡고 있던 그 불안함이 씻은 듯 사라져 버렸음을 느끼고는 탄성을 질렀다. 그리고는 달마의 앞에 넙죽 엎드렸다.
*혜공(惠空, ?~?)---일명 부궤화상(負?和尙), 신라 선덕왕 때의 기승(奇僧)으로 승려가 된 후에도 술과 춤을 좋아했다. 신라 10성(聖)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지며, 아명(兒名)은 우조(憂助), 천진공(天眞公)의 여종 소생이다.
*혜관(慧灌)---고구려 승려. 그는 일찍이 수(隋)의 길장(吉藏) 밑에서 삼론학(三論學)을 배운 다음 영류왕 8년(625)에 일본에 건너갔다. 그는 일본 불교의 승정이 됐고, 삼론종(三論宗)을 가르쳐 일본 삼론종의 시조가 됐다.
*혜능(慧能, 638 ~ 713)---당대 중국 선종(禪宗)의 제6조로서, 육조대사(六祖大師)라고도 한다. 신수(神秀)와 더불어 홍인 문하의 2대 선사로 남종선(南宗禪)의 시조가 됐다. 그의 설법을 기록한 <육조단경(六祖壇經)>이 전해진다.
*혜자(惠慈)---고구려 승려. 영양왕 6년(595)에 일본에 건너가 일본 역사상 위대한 업적을 남긴 쇼토쿠태자(聖德太子)의 스승이 됐으며,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같은 해 백제에서 건너온 혜총(惠聰)과 더불어 일본 불교의 동량이 됐다고 전하고 있다. 혜자는 삼론학(三論學)을 위시해 법화경, 유마경, 승만경과 같은 난숙한 발달을 보인 대승경전을 가르쳤다.
*혜초(慧超: 704~787)---신라의 밀교계 승려. 당나라에 유학했다가 다시 인도에 들어가 인도의 여러 곳을 두루 순방하고, 당으로 돌아온 후 당시 인도에서 나와 있던 고승 금강지(金剛智, Vajrabodhi)와 그의 제자 불공(不空, Amoghavajra)에게 밀교를 배우며 밀교 경전을 번역했다. 그리고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은 프랑스의 동양학자인 펠리오(Paul Pelliot)에 의해 1910년 둔황(敦惶) 명사산(鳴沙山) 천불동 석실에서 극적으로 발견돼 알려지게 됐다. 혜초의 이 기행문은 동서 문화교섭사의 귀중한 자료로서, 당시의 인도는 물론 중앙아시아의 종교, 풍습, 인종을 알려주는 희귀한 문헌 중 하나이다.
*혜총(惠聰)---백제 승려, 일명 혜총(慧聰). 백제 위덕왕 35년(588) 일본으로 건너가 불사리(佛舍利)를 전했다. 쇼토쿠태자(聖德太子)의 상신(相臣) 소가 우마꼬(蘇我馬子)가 세운 호코사(法興寺)가 완성되자 고구려의 승려 혜자(惠慈)와 함께 이 절에 있으면서 불교를 널리 포교하는 데 힘썼다. 그는 혜자와 함께 일본 불교계의 중진으로서 크게 활동했다.
*혜통(惠通)---신라 승려. 당나라에서 인도 밀교승 선무외(善無畏)에게 밀교 교의를 배운 다음 문무왕 5년(665)에 귀국해서 크게 교풍을 일으켰다. 후대에 혜통을 진언종(眞言宗)의 조사로 삼을 정도로 그의 밀교 전파에 대한 공로는 컸다. 혜통 이전까지 전래된 밀교는 잡밀교(雜密敎)여서 주술적인 면이 강조된 반면, 혜통은 불가사의의 순밀교(純密敎)를 처음 신라에 전해 태장법(胎藏法)과 금강법(金剛法)에 의해 불교의 오의(奧義)를 터득하는 길을 열었다.
*혜편(惠便)---고구려 승려. 584년 최초로 일본에 건너가서 포교활동을 해 일본 귀족들의 존숭을 받았으며, 당시 일본의 세력가 소가 우마꼬(蘇我馬子)의 요청으로 선신(善信) ? 선장(禪藏) ? 혜선(慧善)의 세 여자를 비구니로 출가시켜 일본 불교사상 비구니 출가의 효시가 됐다.
*혜학(慧學)---삼학의 하나, 혜학은 마음의 밝은 빛을 드러내어 바르게 쓰는 지혜이다. 수행하는 사람이 그 행실에 계행(戒行)이 없으면 마음이 흔들리고 거칠어져서 고요하고 맑은 본성을 보지 못하게 되며, 마음(定)이 흔들리고 맑지 못하면 지혜(慧)가 없어 옳고 그름과 선악 을 분별 못하며 수행은 성장하지 못하게 된다.
*혜해탈(慧解脫)---오온이나 12연기에는 지분들이 있다. 오온의 지분은 색 ? 수 ? 상 ? 행 ? 식이며, 12연기의 지분은 무명, 행, 식, 명색, 육처, 촉, 수, 애, 취, 유, 생, 노사이다.
이러한 것들에는 실체가 없다는 것을 바로 보는 것이 혜해탈이다. 예를 들어 육근을 살펴볼 때, 육근은 눈, 귀, 코, 혀, 몸, 뜻으로 돼 있다. 헌데 눈이든 뜻이든 그것에는 실체가 없다. 여기서 실체란 영원한 것을 실체라고 부른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 실체가 없다는 것은 영원하지 않다는 말이다. 눈으로부터 뜻에 이르기까지 이와 같은 것들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바로 꿰뚫어 보았을 때 그것을 혜해탈이라고 한다.
*혜현(慧顯)---백제 위덕왕 17(570)~무왕 28(627) 때의 고승. 일명 惠現, 惠顯, 慧現 등으로 적기도 한다. 어려서 집을 떠나 불도에 전념해 법화경(法華經)과 삼론(三論)을 깨우치고 수덕사(修德寺)에 있으면서 많은 사람에게 강론을 하니 사방에서 사람이 모였다. 차차 번잡한 생활이 싫어져 강남(江南)의 달라산(達拏山)에 들어가 세상을 잊고 정좌해 일생을 마쳤다. 다른 승려가 시체를 운반해 석실 안에 안치했던바 호랑이가 와서 그 시체를 다 먹어버렸으나 다만 혀를 남겼다. 그 뒤 혀는 3년을 두고 추위와 더위를 겪어도 그대로 붉고 연하더니 나중에 돌같이 굳자 중들이 공경해 석탑에 간직했다고 한다. 당(唐)ㆍ서역(西域) 등지에 유학한 일은 없으나 그의 이름은 중국에까지 전해져 당나라에서는 혜현의 전기를 꾸미기까지 했다.
*호궤(胡?)---불교에서, 양쪽 발을 구부리고 양 무릎은 나란히 땅에 닿게 하며, 경(敬)과 예(禮)의 뜻을 나타내는 꿇어앉는 좌법, 불상의 좌법에서 볼 수 있다. 호(胡)는 인도와 서역을 일컬음. 인도와 서역인들의 무릎을 꿇는 예법. 장궤(長?)라고도 함.
*호마법(護摩法)---호마는 재를 지낼 때 불을 피우고, 그 속에 공물을 태우는 의식으로서, 베다 이래로 전통적인 브라만교 주술의식이었는데, 힌두교에서 이어받은 것을 다시 밀교에서 받아들인 것이다.
그런데 이 호마에는 밖으로 하는 외호마가 있고 안으로 하는 내호마가 있다. 안으로는 지혜를 불로 상징해서 지혜의 불로써 어두운 마음 두려움을 물리친다고 하는 내호마와 밖으로는 제사지내는 불길을 통해서 나쁜 운수를 몰아내고 좋은 복덕을 성취하고자 하는 외호마가 있다.
*호신주(護身呪, Paritta)---몸을 보호해 주는 주문, 악귀와 불행, 질병 그리고 액운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호주(護呪) 혹은 호신주(護身呪)라고 불리는 파리타를 밀교에서는 주다라니(呪陀羅尼)라 해서, 재난을 없애는 힘이 있다고 보고 있다.
원시불교에서는 세속의 주술이나 밀법(密法)을 행하는 것을 엄금했으나, 실제로는 원시불교 경전에서 이미 호신주(護身呪)가 쓰였고, 대승불교 초기에 부분적으로 다라니가 채택돼 차츰 증대돼 갔다.
*홍인(弘忍, 601~674)---당나라 시대 중국 선종(禪宗)의 제5조로 달마(達磨) ? 혜가(慧可)로 시작되는 중국 선종의 실제적인 확립자이다. 제자인 신수(神秀) ? 혜능(慧能)으로 하여금 남북 각지에서 선(禪)을 펴게 했다.
*화광여래(華光如來)---<법화경(法華經)> 비유품(譬喩品)에 부처님께서 부처님의 10대 제자 중의 한 사람인 사리불(舍利弗;Sariputra)에게 존자는 사리불에게 수기(授記)하시기를, 미래세에 부처가 돼 이구국(離垢國)에 화광여래(華光如來)로 태어날 것이라고 하셨다.
*화남(和南)---중이 합장(合掌)해서 예배함을 말함. 땅에 엎드려 절하는 오체투지(五體投地)를 말한다.
*화두(話頭)---화두는 불교에서 부처님과 큰스님들의 말씀, 혹은 큰스님과의 문답(法談)에서 나온 핵심 주제로서, 수행하는 과정에서 본질에 대한 의구심을 이끌어내기 위한 질문이나 핵심주제이다. 화두의 종류는 약 1,700개가 된다.
선종에서 화두를 통해(들고) 수행자가 큰 의심을 일으키고[참구(參究)], 스스로 그 의심삼매에 들어 무심의 경계에 든 후 홀연히 무엇을 보거나, 혹은 무엇을 듣는 찰나에 화두를 타파(打破-깨달음)하게 되는데, 그런 수행법을 간화선(看話禪)이라 한다.
간화선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니다. 중국에 선(禪) 불교를 전래한 달마대사 이후 육조 혜능(慧能, 638∼713)까지만 해도 공안, 화두, 간화라는 것이 없었다. 육조 혜능 이후 400 여년이 지난 중국 송나라 시대의 대혜종고(大慧宗?, 1089~1163) 선사에 의해 간화선이 창시됐다.---→공안 참조.
그리고 일반 사회에서 흔히 화두라 쓰일 때는 이야기가 시작되는 처음의 주제, 혹은 화제가 되고 있는 유명한 이야기(issue)의 뜻으로 쓰고 있다.
*화생(化生)---사생(四生) ― 태생, 난생, 습생, 화생 ― 의 하나. 다른 물건에 기생하지 않고 스스로 업력에 의해 갑자기 화성(化成)하는 생물을 이른다. 낳는 자 없이 업력(業力)에 의해 홀연히 태어나는 것. 즉, 천신이나 귀신, 아수라 같은 것이 이에 해당한다.
그리고 천계나 지옥의 중생과 같이 무엇에도 의지하지 않고 과거의 자신의 업력에 의해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자신의 업력에 의해 ‘새롭게 태어난다’는 의미보다 ‘진리를 깨달아서 거듭남’을 의미한다고 해석하는 게 옳을 것이다. 깨닫기 전과 깨달은 후의 사람은 겉으로는 같은 사람이지만 속은 완전히 달라져 있다. 생각이 달라지고, 가치관이 달라지고, 살아가는 방식도 전과 같지 않게 달라져서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난다. 즉 깨닫게 되면 자기의 업력도 달라지고, 그에 따라 과보(果報)도 달라지며, 전혀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난다. 새롭게 진정한 불자(佛子)로 거듭 태어나는 말이다. 이 게 진정한 화생이라 하겠다.
*화엄(華嚴)---화(華)는 부처님의 만행(萬行)과 만덕(萬德)을 꽃에 비유한 것이다. 그래서 화엄(華嚴)이란 온갖 꽃으로 장엄하게 장식한다는 뜻의 잡화엄식(雜華嚴飾)에서 나온 말로 불법(佛法)의 광대무변함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화엄경(華嚴經)---불교 최고의 경전으로 화엄종(華嚴宗)의 근본 경전이며, 한국불교의 소의경전(所依經典) 가운데 하나이다. 원명은 <대방광불화엄경 大方廣佛華嚴經)>이며, 현재 한역본으로는 권수에 따라 불타발타라(佛陀跋陀羅)가 번역한 60화엄과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번역한 80화엄, 반야(般若)가 번역한 40화엄 등 세 가지가 있으며, 이들은 모두 우리나라에 널리 유통되고 있다.
60화엄에는 34품(品), 80화엄에는 39품이 들어 있으며, 그 내용에는 큰 차이가 없으나 40화엄은 60권본과 80권본의 마지막 장인 입법계품(入法界品)에 해당하는 것이므로 화엄경의 완역본은 아니다. 화엄경의 한역본이 나타난 이래 우리나라 및 중국에 화엄사상이 형성됐을 뿐만 아니라, 그 회통적인 철학성은 동양사상 속에서 하나의 강력한 흐름을 형성했다.
*화엄경 약찬게(華嚴經 略纂偈)---용수보살이 화엄경 내용을 간추려 정리한 게송. 화엄경의 내용과 분량이 너무 광대해 용수보살이 약찬게로 집약했다.
*화엄의 사법계(四法界)---사법계는 화엄종의 중요한 교의(敎義)로서 본체(本體)의 각 방면을 네 가지 종류의 법계로 나누어 관찰한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사법계는 4가지 종류의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는데, 구체적으로는 사법계(事法界). 이법계(理法界), 이사무애법계(理事無碍法界), 이이무애법계(理理無碍法界)로 나눈다.
*화엄산림법회(華嚴山林法會)---산림법회(山林法會)란 사찰에서 불경을 강설하는 모임을 말한다. 화엄산림은 화엄경을 설하는 법회가 일정기간 계속되는 것이다. 여기서 ‘화엄’은 경전의 제명을 줄인 것이고, ‘산림’은 ‘최절인아산 장양공덕림(?折人我山 長養功德林)’에서 따온 말로서 아만심을 없애고 공덕의 숲을 키워나가는 뜻이다.
이 같은 화엄법회는 신라시대부터 있어왔으며, 지금의 화엄산림법회는 1927녀 12월 8일부터 1928년 1월 3일까지 21일 동안 통도사 극락암에서 경봉(鏡峰)스님이 출가와 재가신도가 동참해 화엄의 바다에서 함께 수행하는 화엄법석을 마련한 것이 시초이다.
매일 화엄경을 옹호하는 화엄신중의 명호를 외고, 신중께 치성 기도드리는 신중 기도를 말하며, 108예참을 한다. 또 화엄경의 정수라는 ‘보현행원품’을 독송해 예참을 통한 삼독의 마음을 비우고, 경전을 독송해 빈 마음을 진리로 가득 채우는 시간이 된다.
*화엄삼매(華嚴三昧)---해인삼매는 존재의 세계관을 보이는 것이라고 한다면 인생의 지표를 말한 것은 화엄삼매이다. 다시 말해서 해인삼매로서 비로자나불의 세계가 드러나고 이를 무한히 사회에 실현하고, 또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화엄삼매이다.
*화엄성중(華嚴聖衆)---화엄신장(華嚴神將), 화엄신중(華嚴神衆)이라고도 한다. 대웅전 전면 중심을 보면 상단(불단), 중단(신중단), 하단(영단)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리ㅗ 중단에 화엄성중(華嚴聖衆) 또는 화엄신중(華嚴神衆)을 모신 탱화를 볼 수 있다. 신중(神衆)탱화는 신중단인 중단에 불법을 호위하는 신장님들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신장님들 즉 신중(神衆)들은 화엄신중(또는 화엄성중)을 말하며, 이는 화엄경에 나오는 104분의 성현, 신장들, 8금강, 4보살, 10대명왕, 대범천왕, 제석천왕, 사천왕 등 각 천왕과 천자, 호법선신 등을 말한다.
신중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해 불법을 옹호하고 불자들을 보호해주는 선한 신으로 화엄신앙의 대상이다. 부처님께서 처음 성도하시고 보리수 밑에서 설법한 내용을 결집한 경전이 화엄경이며, 이 화엄경을 호지하고 불법을 받들고 옹호하는 신중(神衆)을 말한다. 예를 들면,
금강신(金剛神)- 절에 들어가는 문이나 전각의 입구에 서서 불법을 수호하는 신.
신중신(身衆神) - 중생을 마음대로 이익하게 하는 신 등 39位, 104位의 신장이 있다.
*화연(化緣)---화연은 쓰임에 따라 몇 가지 다른 듯이 있다.
1) 중생을 교화하는 인연. 불보살의 출현은 이 때문이며, 이 인연이 다하면 곧 열반에 든다.
2) 교화를 받아들일 인연이 되는 중생의 근기(根機).
3) 스님들이 탁발을 하는 것. 즉, 탁발의 의미를 가장 잘 표현한 절집의 말임.
*화장세계(華藏世界)---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연화장장엄세계해(蓮華藏莊嚴世界海)의 준말로 화장계라고도 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청정과 광명이 충만 돼 있는 이상적인 불국토(佛國土). 연꽃에서 태어났다는 석가모니불의 정토(淨土). 이 세계는 큰 연꽃으로 돼 있고, 그 가운데 일체의 나라, 일체의 현상이 간직돼 있다고 함.
또 다른 설명,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이 있는 세계이며, 한량없는 공덕과 광대장엄(廣大莊嚴)을 갖춘 불국토이다. 이 세계에는 큰 연화가 있고 그 가운데 일체의 국토와 일체의 사물을 모두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연화장세계라 한다.
그 세계에 대해서는 <범망경(梵網經)>과 <화엄경(華嚴經)>에서 이처럼 각기 달리 설명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 두 경전의 설을 모두 채택하고 있다.
*화장찰해(華藏刹海)---화려하고 장엄한 경인 화엄경의 말씀처럼 부처님의 가르침이 삼천대천세계에 화려하게 장엄되는 것과 같이 되시라는 말씀이다. 법계에 구족한 불보살의 자리로서 법(法)을 드러내는 것을 말하는데, 그러니까 여래의 무위자연의 무위법(無爲法)을 드러내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찰해(刹海)는 바다와 육지라는 뜻으로, 삼천대천세계의 법계(法界)를 뜻한다.
*화쟁(和諍)---원효대사의 사상. 화쟁은 여러 사상과 논쟁 가운데 그 핵심을 파악해 곡해와 대립을 낳고 있는 부분을 서로 통하게 하며, 일심(一心)으로 세계의 실체를 파악해 모든 시비와 망령됨을 끊고 원융(圓融)을 이루는 사상체계이다. 원효대사는 화쟁사상으로 반야와 유식의 대립을 넘어섰다.
*화주(化主)---신도들의 집을 돌며 절에 필요한 양식 ? 물건 ? 비용 등의 시물(施物)을 얻는 소임, 또는 그 일을 맡은 승려. 사찰의 불사 비용을 담당하는 사람. 화주승이라고도 한다.
*화택(火宅)---불이 일어난 집이라는 뜻으로, 번뇌와 고통이 가득한 속세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화화삼매(化火三昧)---몸을 불태움으로써 삼매에 드는 것을 말함.
*환멸문(還滅門, 빠띠로마/pa?iloma - 逆觀)---적멸(寂滅)로 들어가는 문. 곧 수행한 공덕으로 번뇌를 끊고 열반으로 향하는 인과(因果)이다.
12연기를 설명함에 있어서 “무명(無明)에 연(緣)해 행(行)이 있으며--- 혹은 무명이 멸하면 행이 멸하고, 행이 멸하면 곧 식이 멸하고, ……유가 멸하면 곧 생이 멸하고, 생이 멸하면 곧 노사의 우비고뇌가 멸하느니라.”라고 하는 식으로 설명을 하는데, 이런 식의 설법은 “무명이 멸하기 때문에 행이 멸하며…”로서, 이는 생사의 근본적인 극복은 무명을 멸해 없앰으로써 가능할 것임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 같은 형식이 환멸문(還滅門)의 연기, 역관(逆觀)의 12연기이다. 즉, 이 경문의 설법형식은 미혹된 생존의 소멸을 보인 것이다. 무명의 멸(滅)에서 생사의 괴로움이 멸하게 되는 이 과정을 환멸문(還滅門)이라 부른다.
이에 비해 무명에서 생사의 괴로움이 연기하게 되는 과정을 유전문(流轉門 - 順觀)이라 한다.
유전문(流轉門)이 고통의 원인을 밝힌 데 반해 환멸문은 깨달음의 세계를 보이는데 그 목적이 있다.---12연기 참조.
*환희불(歡喜佛)---남성이 여성을 껴안고 있는 부처를 티베트에서는 환희불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합체존(合體尊)’의 도상을 ‘얍 윰(yab-yum)’, 또는 ‘환희불(歡喜佛)’이라고도 한다. ‘얍(yab)’은 ‘우주父[시바에너지]’이며 ‘윰(yum)’은 ‘우주母[샤크티에너지]’를 상징한다. 이 우주에 넘치는 ‘남성 에너지’와 ‘여성 에너지’의 만남 또는 ‘시간’과 ‘공간’의 결합은 깨달음의 성스러운 모습임을 말하며, 이를 형상화한 것이다. 티베트 밀교의 합체존(合體尊)은 ‘부처’와 ‘인간’이 근원적으로 하나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또한 너와 나, 시바와 샤크티가 하나로 융합될 때, 이 세계는 대락(大樂) 구현의 환희의 나라가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남녀 교합상은 좌도밀교(左道密敎)에서 불교타락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아무튼 이런 남녀 교합상에 대해 밀교에서는 즉신성불(卽身成佛)이라 해 인간의 정신만이 아니라 육체를 오히려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성스러운 것과의 합일을 실현하기 위해서 육체의 의의를 강조하는 것이다. 이런 신비적인 합일을 경험하는 데는 환희가 따르게 된다. 이 환희의 고양감을 수행 정도에 따라 환희(歡喜) ? 최상환회(最上歡喜) ? 이환희(離歡喜) ? 구생환회(俱生歡喜)의 4환희로 나누고 4환희가 성취된 모습을 환희불(歡喜佛)이라 한다.---‘얍 윰’ 참조.
*환희지(歡喜地)---십지(十地)의 첫 단계. 보살이 일대(一大) 아승지겁(阿僧祗劫)의 수행을 해서 미혹을 끊고 이치의 한 부분을 증득(證得)한 경지로, 이 경지에 이른 사람은 이대(二大) 아승지겁을 지난 뒤에 성불한다. 이 단계에 이르면 자리이타(自利利他)의 행(行)을 이루어서 마음에 기뻐함이 많다 해서 이르는 말이다.
*황교(黃敎)---라마교의 한 파, 15세기 초기에 총카파가 홍교 혁신을 위해 세웠으며, 계율이 엄격하고 도덕적 교의를 중요시했다.
*황벽 희운(黃壁希運, 776~856)---황벽 희운은 당나라 시대의 선사로 백장 회해(百丈悔海)의 제자이다. 평소 활달한 천성에 사소한 일에는 집착하지 않는 성품을 가지고 있었으며, 7척의 키에 이마가 튀어나와 육주(肉珠)라는 별명이 있었다. 스님의 선법은〈전심법요(傳心法要)>를 통해 짐작할 수 있는데, 선(禪)의 개론서로서의 성격뿐만 아니라, 남종선의 정통 선사상을 이해하는 데 가장 긴요한 어록으로 평가받고 있다.
스님은 설파한다. “모든 부처님과 일체 중생은 한 마음일 뿐 거기에 다른 어떤 법도 없다. 이 한 마음 그대로가 부처일 뿐이니 부처와 중생이 새삼스레 다를 바가 없다. 중생은 다만 모양에 집착해 밖에서 구하므로, 구하면 구할수록 점점 더 잃는 것이다.”
*회광반조(廻光返照)---회광반조란 한 생각 일어 난 그 자리를 돌이켜 비춰보는 것, 빛을 돌이켜 되비춘다, 또는 그냥 되돌아본다는 뜻이다.
이 말은 중국에서 유래됐는데, ‘사람이 살면서 자신의 욕심에 끌려 세상을 온전히 바라보지 못하다가, 죽을 때가 임박하면 온전한 정신이 한 번 번쩍 생기고, 바로 이 맑은 정신을 가지고 지나온 자기의 일생을 돌아보며 반성한다.’는 의미이다.
*회삼귀일(會三歸一)---법화경에 나오는 말. 세존이 법화경을 설하기 이전에는 성문 ? 연각 ? 보살의 삼승(三乘)에 대한 여러 가지 가르침을 설하였지만 그것은 방편에 지나지 않으며, 결국은 모두 일승(一乘)으로 돌아간다는 뜻. 온갖 주장과 입장이 서로 다투지 않고 조화를 이룰 때 부처님의 세계로 통하게 된다는 말이다. 원효의 화쟁(和諍)의 연원이 되기도 한 말이다. <법화경(法華經)>의 비유품(臂喩品)에 나오는 세 수레의 비유가 이 회삼귀일을 상징한다.
*회상(會上)---대중이 모인 법회.
*회향(廻向)---되돌린다는 뜻. 자기가 쌓은 공덕을 중생들에게 되돌려 모든 중생들에게 이익이 되게 하거나, 모든 중생들도 깨닫게 하는 것을 회향한다고 한다. 사홍서원(四弘誓願)에 “가없는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라는 것이 회향심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고, 대승불교의 기본 정신인 자리이타(自利利他) 역시 마찬가지이다. 크게 깨닫게 하는 것 외에 작게는 물질적으로 함께 하는 회향 방법도 있다. 예컨대, 재를 지내고 나서 그 음식을 나누는 것도 회향의 한 방법이다.
*후득지(後得智)---보고, 듣고, 다듬고, 배워 익힌 지(智), 근본지(根本智)에 의해 진리(眞理)를 깨달은 뒤에 얻는 세속사를 이해하는 얕은 지혜(智慧).---→근본지 참조.
*후유(後有)---열반의 깨달음을 얻지 못한 이가 미래에 받는 미혹의 삶. 후세(後世)의 유(有), 즉 유는 과보가 있다는 뜻으로, 아직 열반을 증득하지 못한 사람이 미래에 받을 과보를 말하니, 다음 생에서 받는 몸과 마음을 후유라 한다. 이는 내생(來生)에서 윤회를 되풀이하는 존재라는 뜻이어서 결국은 미망의 인생을 반복한다는 말이다.
================================================================작성자 아미산(이덕호)
*스크? 해 가시는 분은 출처를 분명히 밝히며 이용해 주세요.
아니면 저적권법에 저촉됩니다. 감사 합니다.
계속 수정 보완하고 있으니까 이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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