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문학/수필등,기타 글

조선조 어머니의 표상

淸潭 2016. 5. 6. 12:43

조선조 어머니의 표상



양사언(楊士彦)의 어머니 -1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아마도 이 시조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권학시(勸學詩)로 유명하며, 그 작자인 양사언과 함께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양사언[楊士彦; 1517(중종 12)1584(선조 17)]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응빙(應聘), 호는 봉래(蓬萊완구(完邱창해(滄海해객(海客)이다. 주부인 양희수(楊希洙)의 아들이다. 형 양사준(楊士俊), 아우 양사기(楊士奇)와 함께 글에 뛰어나 중국의 삼소(三蘇: 소식·소순·소철)에 견주어졌다. 아들 양만고(楊萬古)도 문장과 서예로 이름이 전한다.

1546(명종 1) 문과에 급제하여 대동승(大同丞)을 거쳐 삼등(三登: 평안남도 강동 지역함흥(咸興평창(平昌강릉(江陵회양(淮陽안변(安邊철원(鐵原) 8고을의 수령을 지냈다.

자연을 즐겨 회양의 군수로 있을 때는 금강산에 자주 가서 경치를 감상했다. 만폭동(萬瀑洞)의 바위에 蓬萊楓岳元化洞天(봉래풍악원화동천)’이라 글씨를 새겼는데 지금도 남아 있다.

안변의 군수로 있을 때는 백성을 잘 보살펴 통정대부(通政大夫)의 품계(品階)를 받았고, 북쪽의 병란(兵亂)을 미리 예측하고 말과 식량을 많이 비축해 위급함에 대처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릉(智陵: 이성계 증조부의 묘)에 화재가 일어나자 책임을 져 해서(海西: 황해도의 다른 이름)로 귀양을 갔다. 2년 뒤 풀려나 돌아오는 길에 죽었다.

40년간이나 관직에 있으면서도 전혀 부정이 없었고 유족에게 재산을 남기지 않았다.

한편, 남사고(南師古)에게서 역술(易術)을 배워 임진왜란을 정확히 예언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한시는 작위적이지 않고 표현이 자연스러워, 더 이상 고칠 데가 없이 뛰어나다는 평을 들었다. 가사(歌辭)로는 미인별곡(美人別曲)과 을묘왜란(乙卯倭亂) 때 군()을 따라 전쟁에 나갔다가 지은 남정가(南征歌)가 전한다. 이밖에 시조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는 지금도 널리 애송되고 있다. 미인별곡은 현재 연세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해서(楷書)와 초서(草書)에 뛰어났으며 안평대군(安平大君)·김구(金絿)·한호(韓濠)와 함께 조선 4대 서예가로 일컬어진다. 특히 큰 글자를 잘 썼다고 전한다. 문집으로 봉래집(蓬萊集)이 있다.

 

부친 양희수(楊希洙)가 영광군수로 부임하는 그 기세가 대단하였다. 풍류를 좋아하고 겸해서 술잔을 마다하지 않는 사또의 성품으로 보아 머지않아 또다시 그럴싸한 이야깃거리가 생겨날 것이므로 사또를 호위하는 관속들은 신바람이 절로 났다.

마침 계절은 청명, 한식도 지나고 3월 중순.

사또의 행차를 맞는 시골 길가에는 듬성듬성 꽃들이 피어 있고, 산과 들에는 파릇파릇 푸른 싹이 돋아나는 호시절.

한양성을 벗어나 동작강을 건너고 남태령 고개를 넘어서는 양 사또의 마음에도 어느새 푸른 꿈이 돋아나고 있는 터라 행차는 마냥 즐겁기만 했다.

"쉬이~, 사또 행차이시다. 길 비켜라~"

관졸들이 길가에 있는 개미새끼까지 쫒을 기세로 사또 행차 길을 트여가자 양희수 사또는 문득 초라한 주막집을 발견하고는,

"여봐라, 발을 멈추고 주막에 들여라~"

냅다 소리치는 것이었다.

주막이 나설 때마다 그 곳 술맛을 즐기고 아름다운 절경이 눈에 뜨일 때마다 가마를 멈추고 시 한 수를 읊어대는 사또의 늑장으로 머나먼 영광 행은 아득하기만 했다.

하루 종일을 그렇게 술과 풍류로 떠나자니까 이튿날 새벽이면 심한 갈증으로 선잠을 깨게 마련이었다.

".....술국을 달라."

사또는 헛소리처럼 관졸들에게 외쳐댔으나 관졸들은 이미 깊은 잠에서 깨어날 줄을 모르고 코를 드르렁거릴 뿐이었다.

영광 땅이 지척인 어느 주막집에서 묵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술국..........."

그러나 사또의 소원은 이뤄지지 않은 채 행차는 떠났다.

아침을 거른 채 가마 위에 올라탄 양민 사또는 배가 몹시 고팠다.

하나 웬일이지 길가에는 요기를 하고 떠날 만한 주막도 없었다.

참다못한 양희수 사또, 주위를 돌아보면서 호령이다.

"누가 저 민가에 들어가 밥 한술 마련해 올 자 없느냐?"

체면이고 뭐고 없었다.

"밥이라 굽쇼, 사또?"

"오냐, 술이 아니고 밥이니라."

"알아 모시겠나이다, 사또."

관속은 민가로 달려갔다.

그러나 마을은 텅텅 비어 있었다. 농사철이라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들로 나간 것이었다.

이리 뛰고 저리 뛰었지만 좀처럼 사람을 만날 수가 없었다. 이거 이러다간 큰일이었다.

"누구 아무도 없느냐?"

골목에 서서 냅다 소리 지르자 어느 집 사립문이 열리면서 마침 집을 지키던 열서너 살짜리 계집아이가 뛰어나왔다.

"옳지, 너 같은면 밥이야 짓겠지, 얘 여기서 밥 한 그릇 지을 수 없겠냐?"

관속이 말하자 계집아이는,

"밥이라뇨, 누가 잡숫고 갈 밥인데요?"

"다름이 아니라, 신관 사또 행차가 지금 이리루 지나가시는데 간밤에 약주 잔이 높으셔서 아침진지를 걸르셨지 뭐냐."

"그런데요."

"해서 주막도 없고 민가에서라도 아침을 시켜 먹으려고 이렇게 들어왔는데 사람이 없구나."

"바쁜 농사철이라 모두 들에 나갔어요. 그런 사정이사라면 소녀가 사또 진지를 지어 올리겠습니다."

"네가 말이냐?"

"왜요. 진지에 돌이라도 들어갈까 봐서 염려되시옵니까? 그런 염려라면 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허 맹랑한 것. 좋다, 만일 진지에 돌이 들어가는 날엔 이내 볼기짝이 남아 나지 않을 터이니 알아서 지으렷다."

"암은요, 만일 실수가 있다면 소녀가 대신 볼기를 맞을 터이니 마음 푹 놓으세요."

"그럼......."

", 곧 시작하겠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들어주시겠습니까?"

13세의 소녀는 관속에게,

"사또께서 노상에서 진지를 드심은 고을 백성의 수치가 아닌가 합니다. 누추하나마 저의 집에 듭시어 잡수심이 어떠할지요?"

관속은 그 소리에 내심 무릎을 쳤다.

'어허....나이도 어린 것이 고런 소견이 들 줄이야.'

"암 그래야지. 그 참 어린 것이...."

관속은 연방 혀를 내두르며 양희수 사또가 가마를 내리고 쉬는 곳으로 달려갔다.

"어찌 되었느냐?"

양희수 사또는 달려온 관속이 채 입을 열기도 전에 먼저 묻는다.

"..... 아침 진지를 시켜 놓고 왔사옵니다. 어서 민가로 듭시오, 사또....."

"민가로?"

"--."

"그 달갑지 않은 걸음이로구나. 신관 사또가 민폐를 끼치더란 소문이 나면 거동이 자유롭지 못하거든."

사또는 그런 게 질색이었다.

"하오나 사또, 저쪽 계집아이가 말하기를, 사또께서 노상에서 진지를 드시게 할 수 없다며 자기 집으로 오랍십니다."

"호오--."

일말의 호기심이 일면서 양민 사또는 소녀의 집으로 향했다.

그다지 넓지 않은 오륙 칸 초가.

비록 초가이기는 해도 소녀의 집은 비질이 잘 되어 있어 보기에도 깨끗했다.

소녀는 신관 사또와 그 수행원들을 따로따로 들게 하고 별로 서두르는 법 없이 밥을 짓기 시작했다.

먼저 소녀는 이남박을 들고 토방으로 들어가서 쌀을 꺼낸 다음 우물가로 향했다.

안방에서는 신관 사또가, 그리고 책방으로부터 육방 관속들은 나머지 방에서 모두 자기 한 몸을 주시하는 줄도 모르고 소녀는 찬찬히 쌀을 일었다. 소녀는 그것을 부엌으로 가지고 가 솥에 넣고는 불을 때었다.

이러한 순서가 여느 아낙네들이 하는 그것과 다를 것이 없건만 그녀는 불을 때는 데 봉당이나 방으로 재티 하나 날지 않게 조심조심 때고 있었다.

밥이 다 된 뒤에도 먼저 신관 사또의 상부터 차려 올리고 담음에는 관속들의 상을 차리는데, 무엇 하나 서두름이 없고 실수가 없이 차근차근히 차려 올리는 것이었다.

이 모양을 끝까지 지켜보면서 시장 끼를 채운 신관 사또 양희수는 슬그머니 그 소녀를 불러 올려 말을 시켜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먼발치에서 보아도 영리하고 숙성한 소녀인 듯했고 상 심부름, 물 심부름, 하는 맵시가 또한 귀히 살 만했기 때문이었다.

"허어--. 네 나이, 올해 몇이냐?"

사또는 조금도 시골스러워 보이지 않는 소녀에게 실눈을 뜨고 넌지시 물어본다.

", 올해 열세 살이옵니다."

나직하고 다소곳이 대답하는 품이 여간 귀엽지가 않다.

"그래, 네 아비는 누구이며 어미는 어디 갔기에 보이지 않느냐?"

", 아비는 본관에 매인 몸이라 일찍 출타하였고, 제 어미는 들일을 하러 나갔나이다."

열세 살짜리 소녀의 말이라기보다 나이를 먹을 대로 먹은 아낙의 말처럼 정연한 솜씨에 사또는 놀랐다.

신임 영광 사또는 소매 속에서 청선(靑扇)·홍선(紅扇)의 두 자루 부채를 꺼내 들었다. 소녀에게 무엇인가 고마움을 표해야겠다고 느낀 것이다.

"이 두 부채는 내가 너에게 주는 것이니 받아라."

사또가 내민 두 자루 부채를 받아야 좋을지, 받지 않아야 좋을지 잘 몰라서 망설이는 소녀에게 농을 걸어 보고 싶어진 것이다.

"자 어서 받으렴. 이는 내게 너에게 채단(采緞) 대신으로 주는 것이니....."

"..."

소녀는 놀랐다.

'사또께서 내게 채단을 내리시다니.'

소녀는 급히 윗방으로 건너가 장속을 뒤져 홍보(紅褓)를 꺼내 든다.

'옳지, 이것을 깔고 채단을 받아야지.'

채단이라면 혼인 때 신랑 집에서 신부 집으로 미리 보내는 청색, 홍색 등의 치마 저고릿감이 아닌가. 치마 저고릿감 대신 사또는 지금 청색과 홍색의 부채 두 자루를 내리시겠다니 빈손으로 받을 수야 없는 노릇이었다.

홍보를 깔아 놓고 소녀는,

"사또 여기다 채단을 내려놓으소서." 했다.

"아니, 이 홍보는 무엇인고?"

"채단이란 예폐로, 예는 폐백에 바치는 것이 제일 중한 일인 줄 압니다. 어찌 이 귀한 채단을 맨손으로 받을 수 있겠습니까?"

"딴엔 그렇구나."

소녀의 말에 사또는 물론이고 그 장면을 기웃거리던 관속들이 일제히 놀라는 기색이었다.

홍보 위에 두 자루의 부채가 놓여졌다.

소녀는 그 홍보를 소중하게 싸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곧이어 영광 사또는 행차를 재촉하여 부임지로 떠났다.

 

...............................................................................................................



양사언(楊士彦)의 어머니 -2 

 

세월은 흘렀다.

양희수 영광 사또는 정무에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도 이따금 절경을 찾아 풍류로 하루해를 보내기를 잊지 않았다.

어느 날 영광 관아에 사또를 뵙자고 달려온 노인이 있었다.

양민은 노인을 불러들이고,

"네가 나를 만나러 온 까닭이 무엇이냐?"

하고 묻는다.

", ~"

노인은 연방 허리를 굽신거리면서,

"사또께옵서 한 삼 년 전에 어느 동리를 지나시다가 뉘집 계집아이에게 아침 진지를 지어 잡숫고 오신 적이 있사옵니까?"

하고 묻는다.

사또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뜨고 무릎을 쳤다.

"그렇지, ..... 그런 일이 있었구말구."

"그래 그 계집아이의 얼굴도 분명 기억하구 계신지요?"

"!"

"계집아이가 어떻게 생겼더이까, 사또?"

"그걸 왜 내가 모르겠나. 계집아이의 영리함이란 평생을 두고 잊지 못할 것인데."

"듣자하니 그 때 사또께오서는 그 계집아이에게 무슨 물건을 주셨다던데요?"

사또는 여기서 잠시 삼 년 전의 일을 상기하는 듯하더니,

"옳거니, 내 그때 계집아이를 귀히 여겨 색선을 상으로 준일이 있었거니."

"그럼 틀림없는 일이로군요?"

노인은 그제서야 마음이 놓인다는 듯이 한숨을 몰아쉬었다.

"아니, 그런데 자네는 어찌하여 그 계집아이 일을 나에게 와서 묻는고?"

사또는 진정 그것이 궁금해서 묻는다.

"다름이 아니오라, 사또께서 색선을 선물로 주셨다는 그 계집아이가 소인의 여식이옵니다."

"자네 딸이라구?"

"--."

"그런데?"

"그 계집아이는 지금 나이 열여섯이옵니다. 시집갈 나이입죠. 하오나 아무리 소인이 시집을 보내려 하여도 딸년은 한사코 시집을 안 가겠다 뿌리치는 게 아니겠습니까?"

"어째서 뿌리칠까?"

"이미 사또한테서 채단을 받아 놓았으니 다른 데로는 시집가지 않겠다 이거 올습니다."

"허어."

"소인이 달래어 보아도 막무가내, 매로 다스려 보아도 사또께 향한 일편 단심은 변함이 없더라 이거 올습니다."

"허허허, 그러렷다!"

"자네 딸의 정성이 그처럼 지극하거늘 내 어찌 모르는 체할 수 있겠느냐. 마땅히 택일하여 아내로 맞을 터이니 그리 알라."

이리하여 양희수 사또는 삼년 전에 아침 한 끼 얻어먹은 소녀를 첩으로 들어앉혔다.

얼마 뒤 양희수의 정실은 죽고, 첩이 정실처럼 들어앉아 크낙한 살림을 맡게 되었다.

............................................................................................................................................


양사언(楊士彦)의 어머니 -3

 

소녀는, 아니 이제는 사언, 사기 두형제의 어머니가 된 부인은 전처소생의 사준까지를 돌보면서 대소사를 다 주장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조선 시대는 적서의 차이가 심하던 때다.

자라날수록 양사언, 양사기는 물론 이들의 형뻘 되는 사준 삼형제의 재주는 참으로 뛰어났다.

봉제사 빈객의 예절에 바르고 가훈이 엄한 터에 양민의 아내가 해야 할 일은 너무나 많았다.

그 중에서도 부모에서 낳은 두 아들 사언, 사기 형제의 머리위에 띄어진 서자의 너울을 벗겨 보자는 것이 그녀의 가장 큰 소망이었다.

풍채가 당당하고 시재가 넘쳐흐르는 사언 형제는 주위로부터, 혹은 친척들로부터 칭송이 자자했다. 그러나 서자는 한스런 신분임을 어쩌랴.

때마침 부친 양희수 죽게 되자 집안은 또다시 장례 문제로 분분했다.

양사언의 어머니는 습렴의 절차를 모두 보살핀 끝에 성복날이 오자, 기어코 그녀의 한스런 마음을 털어놓았다.

가족들이 모두 모이고 양사준, 사언, 사기, 삼형제(상제)도 모였다.

"오늘 성복을 당하여 집안 친척들이 모두 모이고 상제들이 다모인 자리에서 내가 평생 소원하던 말을 얘기할 터이니 들어주겠소?"

이렇게 묻는 부인의 눈에서는 어느새 참으려 해도 자꾸만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이었다.

듣고 있던 맏상제 사준이,

"서모, 서모가 우리 집안에 들어와서 평생을 아버님 뜻에 어긋남이 없이 가사를 돌보시고 우리를 키워 왔으니 서모는 누가 뭐래도 나의 어머니요, 또 우리 삼형제의 어머니십니다. 무슨 소원이신지 말씀하세요."

양사언의 어머니는 지극한 눈으로 본실의 아들을 바라보다가,

"그럼 말하리다."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첩이 양씨 가문에 들어와서 두 아들을 낳았으나 우리나라 풍습은 내 아들이 자라남을 받아들이지 않으니 슬프기만 하오. 아들이 재주 있고 풍채 비록 남다르다 하나 서자의 너울은 벗을 길이 없구려."

여기서 잠시 말을 끊었다가 양사언의 어머니는 다시 말을 이었다.

"첩이 또한 이 다음에 눈 위에 흙을 쓰고 죽는 날에도 우리 큰 아드님은 석달 만 상복을 입지 않을 터이요, 이리되면 그때 가서 내가 낳은 두 아들이 서자 소리를 면키 어려운 것 아니겠소? 그러니 내가 지금 영감님의 성복날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복제가 혼동하여 남들은 모를 터이니....."

"서모 그게 무슨 말씀이오?"

사준이 꾸짖듯 눈을 크게 뜨고 외쳤다.

그러나 이미 각오가 되어 있는 양사언의 어머니는 본실 아들이 외치는 소리를 듣고 있지 않았다.

"내 이미 마음을 다잡아먹은 몸, 무엇을 주저하리까마는 내가 죽은 뒤 사언, 사기 두 형제한테 서자란 말로 부르지 않겠다. 약속하면 죽어서도 기꺼이 영감님 곁에 누울 수 있으련만....."

말을 잇다 말고 양사언의 어머니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치 못해 얼굴을 땅바닥에 묻고 어깨를 들먹였다.

가족들과 세 아들은 숙연한 채 말이 없었다. 그것은 부인의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무언의 답례였다.

이때 양사언의 어머니는 고개를 들고 품속에 감추어 두었던 칼을 꺼내어 땅바닥에 폭삭 엎어졌다.

"어머니....."

세 아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부인을 일으켜 세웠을 땐 이미 그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였다.

"태산이 높다하되....."

로 문명을 날린 양사언의 출세 뒤에는 이렇듯 그 어머니의 보살핌과 남다른 사랑이 자양분으로 동원되었다.

 

蛇足; 양사언의 어머니가 서모로 죽으면 장자는 석 달 상복을 입게 되어 두 아들은 서자 소리를 면하기 어렵기에 남편의 성복날 죽어 삼 년 상복을 입어 사람들이 서자임을 알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 덕에 양사언과 양사기는 그의 형 양사준과 함께 양반의 권리를 다 누리고 살았습니다.

 

**봉래비서(蓬萊秘書)

양사언( 楊士彦)이 호숫가에다 정자를 짓고 손수 비래정(飛來亭)’이란 세 큰 글자를 써서 벽에 걸어 두었다. 그 후 어느 날 벽에 걸어 둔 ()’ 자가 갑자기 바람에 휘말려서 하늘로 올라갔는데 간 곳을 알 수 없었다. ‘자가 날아간 날짜와 시각을 알아보니, 바로 양봉래가 세상을 떠난 그날 그 시각이었다. 임하필기 제37

 

양사언의 모(楊士彦母)

**1) 양사언(楊士彦)과 양사기(楊士奇)형제는 양사준의 동생인데, 모두 양희수의 아들이다. 양희수가 사냥을 갔다가 비바람을 만나 한 시골집에 들어갔다. 그 집에는 노인과 어린 딸이 있어서, 노인이 양희수를 맞아 술을 대접하는데, 어린 딸이 돕고 있었다.

이때 양희수는 마침 상처한 뒤라, 노인에게 딸을 계실로 맞겠다고 했다. 그러나 노인은 신분이 미천함을 들어 반대하다가, 마침내 허락했다. 그래서 맞아 데리고 왔는데 현철한 부인 소리를 들었고, 이 여인에게서 사언, 사기 두 아들을 낳았다. 특히 양사언은 시와 초서에 능했다.

**2) 양희수가 사망하면서 큰아들 양사준에게,

내 죽고 나면 이 아이 어미가 밖에 나가 살아야 하기 때문에 네가 이 아이를 특별히 잘 돌봐 주어야 한다.”하고 부탁했다.

이에 양사언 모친이 전처 아들 양사준에게,

이미 유언을 들었지만, 미망인 모자가 각기 떨어져 상복을 입게 되는 것은 내 차마 볼 수 없다.(어미의 미천한 신분이 노출됨.) 내 차라리 지금 바로 자결하면, 저의 부친 삼년상과 함께 나의 상을 지내게 되고, 그러면 내가 낳은 아들이 부친의 친아들처럼 취급되어 구별이 없어지니 그것이 훨씬 낫다. 뒷일을 부탁한다.”하고는 바로 자결했다.

**3) 양사준은 부친 상례와 함께 계모의 상례도 겸해서 삼년상을 내니, 양사언은 미천한 모친의 자식임이 감추어지고, 그리고 과거에도 급제했다. 뒤에 양사언은 화양 부사가 되어 금강산을 드나들면서 호를 '봉래주인(蓬萊主人)'이라 했고, 금강산 만폭동에 '봉래풍악원화동천(蓬萊楓嶽元化洞天)'이라 써서 바위에 새겼다. 또 경포정 벽에 ''자를 크게 썼더니, 바람이 불어 그 글씨를 말아 바다로 들어갔다. 이를 가지고 택당 이식이 '飛字入海歌'라는 부()를 지었다.(중종)

이 얘기는 기문에서 인용한 것으로 출전을 밝혔다. 표현으로 보아 사실 기록처럼 보여, 아마도 양사언 설화의 기초가 된 것으로 보인다.

(김현룡, 한국문헌설화4, 건대출판부, 1998. 88-89.)

 

飛字入海歌 비자입해가

 


靑鯨鬣束彤玉管 푸른 고래 수염을 붉은 붓대에 묶어 놓고,

星泓晴日流銀漢 맑은 날 성홍에다 은하수를 쏟아 부어.

亭飛筆飛字自飛 비래정에 써 놓은 비 자 절로 날아가 버렸나니,

謫仙已矯凌雲翰 적선께서 능운필(凌雲筆)을 휘둘러 남긴 글씨였네.

霓旌羽蓋碧海東 신선의 수레 타고 바다 동쪽 향하실 때,

蕭君肯顧蕭齋空 소군이 텅 빈 소재 다시 돌보려 했겠는가.

眞官錦誥詔風伯 진관이 명을 받들고서 풍백을 불러들였거늘,

不待點睛催龍公 눈동자에 점 찍어서 용공을 깨울 게 있었겠나.

人間長物唯此取 세상의 많은 물건 중에 오직 이것을 취하다니,

物外奇蹤定無偶 방외인(方外人)의 기이한 자취 정녕 짝이 없어라.

書蟲剝紙蝸畫涎 달팽이 기어다닌 좀먹은 책이나 뒤적이며,

天祿靑藜欺白首 나는 백발로 언제까지 천록의 청려에 속으려나.

 

양공 사언(楊公士彦)이 일찍이 감호(鑑湖) 호숫가에다 비래정(飛來亭)을 세우고는 큰 글씨로 비() 자를 벽에다 붙였는데, 양공이 유배지(流配地)에서 세상을 떠나던 날에 바람과 우레가 치면서 정자의 벽에 붙어 있던 비()자의 글씨를 휘감아 바다 속으로 집어넣었다는 기이한 전설이 세상 사람들 사이에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지금 양공의 적자(嫡子)인 이일(理一)이 이를 소재로 해서 제공(諸公)에게 시를 청했기 때문에, 나도 부득이 여기에 응하게 되었다. [澤堂先生續集 6]  





'글,문학 > 수필등,기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떻게 살까요?  (0) 2016.05.07
보스와 리더  (0) 2016.05.07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0) 2016.05.04
소리 안 나는 총이 있다면  (0) 2016.05.03
環狀彷徨  (0) 2016.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