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문학/수필등,기타 글

거타지(居陁知) 설화 ..

淸潭 2015. 7. 24. 11:41


    
    진성여왕(眞聖女王) 시절에 
    아찬(阿飡) 양원(良員)은 왕의 막내아들이었다.
    당나라에 사신으로 가는데, 
    백제의 해적이 뱃길을 막고 있다고 들었다.
    활 쏘는 병사 50인을 뽑아 따르게 하였는데, 
    배가 곡도(鵠島)에 이르자 바람과 파도가 크게 일었다.
    열흘 가까이 머무르게 되자, 
    공이 근심스러워 사람을 시켜 점을 치게 했다.
    "섬 안에 신의 연못이 있습니다. 
    거기에 제사를 지내면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연못 위에 제수를 갖추었드니,
    연못의 물이 한 길 높이나 치솟아 올랐다.
    그 날 밤 꿈에 한 노인이 공에게 일렀다.
    "활 잘 쏘는 사람 하나를 이 섬 안에 남겨두시오. 
    순풍을 만나 가실 거외다."
    공이 깨어나 이 일로 주변 신하들에게 물었다.
    "누구를 머물게 하면 될꼬?"
    "나무 간자 50쪽에다 우리들 이름을 쓰고, 
    물 속에 던져 가라앉는 자로 합시다."
    모두들 그렇게 말하자 공은 그대로 따랐다.
    군사 가운데 거타지(居陁知)라는 이름이 
    물속에 가라 앉으므로 그를 남겨두었다.
    순풍이 홀연히 일어나니, 
    배가 나가는 데 아무런 장애가 없었다.
    거타지는 홀로 섬에 남았다. 
    그런데 갑자기 한 노인이 연못에서 솟아나왔다.
    "나는 서해의 신(龍王)이오. 
    매일 사미승(沙彌僧) 하나가 해 뜨는 시각에 
    하늘에서 내려와 
    다라니(陀羅尼)를 암송하며 
    이 연못을 세 바퀴 도는데,
    우리 부부와 자손들이 모두 
    물 위로 떠오르는 것이오.
    그러면 사미승이 우리 자손을 잡아 
    간장(肝腸)까지 모조리 먹어치웠다오.
    이제 남은 것은 우리 부부와 딸 하나뿐이오.
    내일 아침 반드시 또 올 터이니, 그대가 쏴 주시기 바라오."
    "활 쏘는 일은 내가 잘 합니다. 
    시키는대로 하지요."
    거타지가 그렇게 말하자 
    노인은 인사를 하면서 사라졌다.
    거타지는 숨어 엎드려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해가 떠오르자 사미승이 과연 오는데, 
    이전처럼 주문을 외우면서 
    늙은 용의 간을 빼려고 하였다.
    그 때 거타지가 정확히 활을 쏘자, 
    사미승은 곧 늙은 여우로 변해 땅에 떨어져 죽었다.
    그러자 노인이 나와 감사하며 말했다.
    "그대의 은혜를 받아 내가 목숨을 부지하였으니, 
    내 딸로 아내를 삼기 바라오."
    "대가(代價)가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으나, 
    그거라면 바라는 바이올시다."
    노인은 자기 딸을 꽃가지 하나로 변하게 만들어 
    품속에 넣어주었다.
    그리고는 두 마리 용에게 거타지를 모시고 
    사신들이 탄 배까지 가도록 하였다.
    게다가 그 배를 호위하며 
    당나라 국경에 이르자, 
    당나라 사람들이 신라 배가 두 마리 용의 
    지킴을 받으며 오는 것을 보았다.
    이 일을 갖추어 위에 보고하니 황제가,
    "신라의 사신들은 반드시 비상한 사람들일 것이야"하고,
    여러 신하들의 윗자리에 앉혀 잔치를 베풀어주고,
    금과 비단으로 후하게 상을 주어 보냈다.
    귀국한 다음 거타지는 꽃가지를 꺼내 
    여자로 변하게 하고 함께 살았다.
    *
    다른 문장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딱 한 곳이
    내 눈을 어지럽힌다.
    -
    노인은 자기 딸을 
    꽃가지 하나로 변하게 만들어 품속에 넣어주었다.
    -
    읽고 또 읽어봐도
    멋있는 표현에 마음이 흠뻑 빠졌다.
    아, 이몸도 품속에 
    꽃가지 하나 넣어보고 싶다.
    일연(一然) 스님의
    고운 마음을 새겨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