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桑三振 과 桑三搖

淸潭 2015. 7. 15. 10:14

桑三振

 

하루 저녁에는 황제와 황후, 정승 세사람이 한자리에 모여 여러가지 이야기

를 하다가 주원장이 "우리가 이제 황제가 되고 황후가 되고 정승이 되었으니

인생의 목적이 최고도에 달했다. 우리가 초년의 고생을 회고하면 오늘 이 자

리에서 무슨 욕망이 있을까마는 그래도 무슨 욕망이 또 있을 터이니 우리 서

로가 마음 속에 있는대로 속임없이 이야기를 하자. 만약 우리의 말에 거짓이

없다면 저 뽕나무가 흔들흔들 할 터이니 자, 우리 속임없이 이야기를 하여 보

자." 하고 주원장이 말을 시작하였답니다.

 

주원장이 먼저 말했는데 "내가 하느님 다음 가는 자리에 앉았으니 사람으로서

의 영광과 욕심을 다하였다고 보는데도 그러나 나를 보러 오는 사람이 무엇을

가지고 오면 기쁘게 생각이 되니 사람의 욕심이라는 것이 끝이 없다."고 하니

뽕나무가 흔들흔들하였고, 그 뒤를  마황후가 "내가 여자로 황후의 자리에 오

른 것은 가장 높은 자리로 무엇이 부족하여 딴 생각이 나겠습니까마는, 아침에

조회를 할 때 만조백관들 가운데 얼굴도 잘 생기고 풍채가 좋은 사람을 보면 자

연히 마음에 쏠려 저런 사내를 한번 가까이 하고 싶으니 참말로 사람의 욕심이

란 끝이 없는 모양이오." 황후가 그러니 뽕나무가 또 한번 흔들흔들하였지요.

 

끝으로 상우춘이 "소신이 폐하의 은덕을 입어서 벼슬이 재상의 지위에 이르렀

으니 일인지하(一人之下) 만인지상(萬人之上)입니다. 단지 황제 한 분의 아래

이니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다만 그래도 폐하의 용상에 한번 앉아 보았으면 하

니 참말로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나 봅니다." 그러자 뽕나무가 또 한번 흔들

흔들 하였다는 이것을 상삼진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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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삼요(桑 三 搖) 이야기

 

1368년 몽골족이 지배하던 원()나라를 멸망시키고

()나라를 창건한 주원장(朱元璋),

하루는 그의 부인 마 황후(馬 皇 后)와 개국공신이자 정승인

상우 춘(常 遇 春)을 불러 주연(酒宴)을 베풀었습니다.

한참동안 술잔을 기울인 후 흥 껏 취한 주원장이 궁궐 속

뽕나무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셋은 이미 인생의 뜻한 바를 모두 이루었소.

그래도 무슨 욕망이 있다면 말들을 해보오.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저기 뽕나무가 흔들릴 것이오."

이에 상우 춘 이 먼저

"저는 정승의 자리에 오르긴 했으나, 송구스럽게도 저도 황제의 자리에

오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라고 말하자 뽕나무가 흔들렸습니다.

다음은 마황후가 입을 열었습니다.

"저도 궁궐에 있는 문무백관들 가운데 미남자를 만나면

그 품에 안겨보고 싶습니다." 이번에도 뽕나무가 흔들렸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은 주원장이 마지막으로 "나도 뭔가 재물을 가져다 바치는 신하가 좋소"라고 말하자,

이번에도 어김없이 뽕나무는 흔들렸습니다.

'뽕나무가 세 번 흔들렸다'는 뜻에서

'상 삼요(桑 三 搖)'라 일컬어지는 이야기의 줄거리입니다.

그러 나, 우리는 여기 등장하는 역사적 인물들이

결코 탐욕스러운 삶을 살지 않았음에 유의해야 합니다.

주원장은 빈농 출신으로서, 금으로 된 침대를 선물한 신하를 크게 꾸짖은 일화로 유명한 '검소한 황제'였고,

마 황후는 주원장과 고난을 함께 한 조강지처로서 죽은 후에도 주원장 옆에 묻힌 '현 숙(賢淑)한 황후'였습니다.

그리고 상우 춘 은 젊은 시절부터 주원장을 섬긴 개국(開國)의 공신이자 죽을 때까지 그를 보좌한 '당대의 충신'이었습니다.

이처럼 '상 삼요'는 전혀 탐욕스럽지 않았던 인물들을 통해,

우리에게 '인간은 누구나 권력욕과 성욕, 재물 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명심보감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욕심은 절제(節制)로 다스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화()를 당하게 될 것이다."

아무리 채우려 해도 채워지지 않는 인간의 욕심,

'욕망의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한 인간의 자기

성찰(省察)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