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페소 고대도시 유적을 둘러보는 스님들.

지난 6일 서울을 출발해 그리스 아테네와 메테오라를 거쳐 9일 터키로 이동한 ‘설정스님과 함께하는 그리스 터키 문명기행’단은 그리스 로마문화의 흔적이 남은 차나칼레, 에페소를 둘러봤다. 이어 12일에는 로마로부터 공인되기 전까지 숨어살아야 했던 기독교인의 삶의 기록이 남아 있는 카파도키아 지역을 방문했다. 그리스 정교회 수도원에 이어 과거 기독교인의 삶의 흔적이 남아 있는 이번 터키기행에 대해 교육원 연수국장 석중스님은 “종교평화가 세계적 화두로 떠오른 요즘, 종교평화를 주도할 스님들이 불교와 다른 종교의 차이점을 바로 아는 게 선행돼야 한다”며 “이번 기행은 이웃종교의 신앙과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스님들이 터키에서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차타칼레는 호머의 서사시 <일리아드>에 한 장면인 ‘트로이 전쟁’의 역사적 현장이다. 우리에게는 ‘트로이’라는 영화로도 익숙하다. 아름다운 여인 헬레나를 두고 트로이와 스파르타 사이에서 벌어졌던 ‘트로이 전쟁’은 전설처럼 전해지다가, 1871년 독일의 하인리히 슐리만이 유적발굴에 성공하면서 역사로 증명됐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고고학 유적지임에도, 초창기 고고학의 미비로, 무차별적인 발굴이 이뤄져 훼손이 크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스파르타가 트로이에게 보낸 목마가 재현돼 있어 관광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에페소 셀수스도서관

스님들은 또 에페소와 아스펜도스 지역에서 고대 로마도시의 전형을 볼 수 있는 유적을 만났다. 에페소는 기독교인들에게는 사도바울이 방문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현재 도시의 20%가량이 발굴돼 있는데, 곧게 뻗은 대로나 주택들로 봐서 대도시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기원전 1500년부터 1000년 사이에 세워졌다고 알려진 이곳에서 원형극장과 경기장, 체육관, 도서관 등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에페소 유적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곳은 거대한 고대원형극장과 셀수스 도서관이다. 셀수스 도서관은 135년 셀수스 폴레마이아누스를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그의 아들은 아버지가 죽자, 도시에 묘지를 조성하고 싶었지만 정부의 불허로, 시신을 땅 깊숙이 묻고 그 위해 도서관을 지었다고 한다. 도서관 입구에는 3개 문이 조성돼 있는데, 문 좌우로 지혜, 운명, 지식을 상징하는 여성상들이 세워져 있다. 원형극장은 2만50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로, 3층 구조에 높이가 총 18m에 달한다. 영화 속에서 한번쯤 봤을 법한 검투사들의 싸움이 벌어진 현장이기도 하다.

   
로마 원형극장의 모습이 잘 보존돼 있는 아스펜도스 원형극장.

터키 토로스산맥을 넘어 남쪽 지중해와 맞닿아 있는 안탈리아 인근 아스펜도스는 로마 원형극장의 원형을 확인할 수 있는 곳으로, 요즘도 이곳에서는 여름이면 음악회가 열린다. 원형극장 특유의 울림 덕분에 공연 중에 따로 스피커를 설치하지 않아도 될 정도라고 한다.

터키에는 기독교의 흔적도 보존돼 있다. 수도 앙카라에서 남동쪽으로 150km가량 떨어져 있는 카파도키아는 화산폭발로 인해 독특한 지형을 형성한 곳이다. 숨어 있다는 뜻의 파샤바계곡에는 뾰쪽한 기암 위에 지붕을 얻은 듯한 버섯모양의 바위를 볼 수 있다. 만화 ‘개구쟁이 스머프’에서 스머프들이 살았단 버섯모양의 집의 모티브가 됐다고 한다. 잘 부서지는 석질의 특징을 살려 암석에 굴을 파서 만든 집도 흔하다.

   
카파도키아 지하도시 데린구유는 지하 30m까지 개방돼 있다.

특히 이곳은 로마에 공인받기 전 숨어 살면서 만든 기독교인의 지하도시를 만날 수 있다. 12일 스님들이 찾은 곳은 ‘데린구유’다. 지하 60m까지 파 내려가 도시를 만들었는데, 현재 개방된 곳은 지하3층으로 약 30m 깊이다.

지하 1층에는 말이나 양들을 풀어 먹이를 줬던 공간이 마련돼 있고, 지하2층에는 주방과 크고 작은 방이 있다. 지하3층에는 십자가 모양의 교회도 조성돼 있어 신앙생활을 함께 했음을 보여준다. 이밖에도 학교, 식당, 강당 등이 만들어져 있어, 1만5000명가량 이곳에서 생활했다고 한다.

지하도시를 둘러본 스님들은 박해를 피해 땅 속 깊이 내려가 고집스럽게 자신의 신앙을 유지한 당시 기독교인들의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지각스님(남해 용문사)은 “기독교 이슬람교인이 각자 신앙 갖고 사는 모습과 우리와 다른 자연환경으로 인해 형성된 지역 특유의 문화를 느낄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또 “한 곳만 바라보다 보면 우물 안 개구리처럼 되기 쉬운데 문명기행을 통해 여러 나라 문화 접하면서 이해하는 폭도 넓어졌다. 스님 먼저 깨어있어야 다른 사람들도 깰 수 있지 않겠냐”고 소감을 말했다.

덕숭총림 방장 설정스님은 “1500년 2000년 전에 척박한 땅에서 자기 종교를 위하 1만50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지하생활을 하며 신앙심을 고취시키고 지켜낸 모습이 놀랍다”고 말했다. 이어 “동서양의 종교가 지금까지 내려오면서 수많은 형태로 변화했는데 그 과정에서 자기 종교를 위해 목숨도 맞바꾸는 신앙심이 오늘날 기독교를 세계종교로 만든 것 같다”며 “그런 철저한 신앙심이 기독교인이 자기 신앙을 위해 신력 다하는 전통을 만들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스님은 “자기 신앙에 대한 철저함은 좋지만 고집스럽고 집착하는 모습은 솔직히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터키는 국민의 95% 이상이 이슬람교를, 그리스는 정교회를 국교로 삼는다. 국경을 이웃하고 있는 까닭에 문명교류가 이뤄질 법도 한데, 종교에 관해서는 철저히 분리돼 있는 점이 불가사의하다는 것이다. 이어 “종교역사를 되돌아보면 유일신 믿는 이슬람교와 기독교 대립역사는 결국 문명의 충돌이 아닌 자기 신앙에 대한 고집스런 집착과 배타로 인한 것 아닌가 하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스님은 “신앙은 결국 인간의 행복과 평화 자유를 위해 만들어진 것”임을 역설하며 “현재 종교간 대립으로 행복과 자유, 평화와 동떨어진 현실이 안타깝다.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는 날이 와야 된다. 그 시기를 앞당기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다”고 밝혔다.

한편, 12일 이스탄불에 도착한 스님들은 블루모스크와 돌마바흐체 궁전, 그리스정교와 이슬람교가 공존하는 성소피아성당을 돌아보고 15일 귀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