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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학…최초 우주 대폭발과 함께 시간존재 불 교…사물 발생·소멸 따라 시간도 생멸
우주는 무한하다고 한다. 지구가 속해 있는 태양계 같은 것이 4000억 개 이상이 모여 우리 은하계를 구성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은하계가 우주 지평선 내에서만 1조(1012) 이상 있다고 한다. 그렇게 헤아리기 어려운 숫자 이상으로 우주는 무한하다. 그런데 우주는 원래 그렇게 무한한 것이었는지 질문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우주의 시작은 100억 년에서 200억 년 정도 된다고 말한다. 중간쯤 잡아서 150억 년이라고 말해도 좋다. 150억 년 전에 우주의 대폭발이 일어나, 초기 10-12 초 동안은 원자핵이 형성되기 이전인 스프 상태의 우주의 모습이었다. 그 후 100초 동안 현재 우주의 많은 규모들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나머지 150억 년 동안 생명이 존재하는 오늘에 우주에까지 진화하였다.
오늘의 우리는 '진화의 처음은 무엇일까' 하는 질문을 던지곤 한다. 진화가 아니라 최초의 창조라면 그 창조의 처음은 무엇인가 그리고 창조 이전에는 무엇이었을까 라는 질문이 머리를 맴돌고 있다. 얼마 전에 한국에 들른 영국의 휠체어 물리학자인 호킹은 이미 60년대 말에 특이점의 정리를 내놓아, 특이점이 작동하는 대폭발의 시간과 함께 우주의 시간이 시작된다고 했다. 그러면 특이점 이전의 시간은 무엇일까? 그 답으로서 시작 이전의 시간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은 질문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질문이라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보면 신의 창조 이전에 시간이 무엇인지를 질문하는 내용이 나온다. 그때 아우구스티누스는 질문 자체가 어리석은 질문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이와 관련하여 에덴동산에 있는 나무를 자르면 그 나무의 나이테가 있는지 혹은 아담은 배꼽을 가지고 있는지를 묻는 것도 같은 맥락에 있다. 그러나 펜로즈-호킹의 특이점 이전의 시간과 기독교에서 말하는 창조 이전의 시간의 개념은 전혀 다르다. 호킹의 대폭발 이전 시간은 지금과 같이 앞으로만 가는 화살의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고, 창조론에서 말하는 창조 이전의 시간은 아예 있을 수 없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시간은 현상 속의 시간이다. 그래서 시간의 흐름은 사물과 함께 한다. 사물의 흐름이 무상이듯이 시간도 역시 상대적이다. 그런 의미의 시간이라면 불교에서는 시간의 시작이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시간의 끝도 없다. 우주가 무한하다는 것을 달리 표현하면 우주의 중심이 없다는 뜻과 같다. 그 반대로 그 어디라도 우주의 중심이 된다고 말해도 된다. 중심이 없으면서 동시에 그 어디라도 중심이 될 수 있는 우주가 곧 화엄경이 말하는 우주와 같다. 그래서 나라는 존재도 우주의 한 티끌에 지나지 않지만, 동시에 그 작은 티끌 속에도 모든 우주가 포함되어 있듯이 내 안에 중심이 도사리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시간도 마찬가지이다.
시간에도 중심이 없다. 그래서 그 끝과 시작이란 없다. 언제부터인지 언제까지인지 원래부터 모를 일이다. 단지 그 무엇이 옷을 바꿔 입고 나타날 뿐이다. 윤회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윤회는 윤회의 멈춤을 희망하고 있으며, 윤회의 시간사슬이 끊어지기를 희망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윤회의 끝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윤회의 끝은 다시 열반의 시작일 뿐이다. 그래서 열반에는 시간의 시작이 있었다. 우리는 무심(無心)의 초발심 속에서 아니면 부처 세계의 일상성 속에서 우리가 아직 그 시간의 시작도 해보지 못한 그런 열반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면 윤회에는 시간의 끝이 있었고 열반에는 시간의 시작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스스로에게 되물어 본다. 윤회와 열반이 나뉘어져 있는 것으로 보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윤회의 그늘 속에서도 열반을 보는 사람은 시간의 시작 이전의 무상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열반의 연꽃 위에 앉아 있는 사람도 윤회의 사슬을 함께 나눌 수 있다면 시간의 끝 이후의 무상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팽창우주의 시간의 끝이 축소우주의 시간의 처음이 되듯이 원래는 하나의 우주적 진화이거늘 그것을 둘로 보는 사람의 두 가지 시간일 뿐이다. 하나의 우주를 찾는 마음이 부처의 마음속에는 하나의 진여(眞如)일 뿐이다. 윤회의 끝과 열반의 시작이 맺어지는 곳이 바로 진여의 우주이다. 그래서 진여의 우주 속에는 시간의 시작도 그 끝도 없다. 그 안에서 시간은 무시이래(無始以來;anadikalam)와 무종(無終)이지만, 시간의 얽매임이 없다면 시간의 처음과 끝이 한 찰나 속에서 되살아 날 수 있다. 작은 꽃잎 끝에 맺혀 있는 작은 이슬 방울방울마다 비추어진 반짝이는 태양은 그 하나하나가 모두 하늘의 태양을 모두 머금고 있듯이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