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서예실

옛 명필 글씨로 만나는 중국불교의 기록들

淸潭 2015. 1. 7. 14:22

옛 명필 글씨로 만나는 중국불교의 기록들

‘서예의 길잡이 중국 법첩’전
3월15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남수연 기자  |  namsy@beopbo.com

 

   
▲ 왕희지 행서를 집자한 ‘대당삼장성교서’ 법첩.

한자 서체 가운데 하나인 행서의 교과서로 불리는 ‘대당삼장성교서’는 왕희지의 행서를 집자(集字)한 집자비(集字碑)이다. 이 비는 중국 당나라 때인 672년 장안 흥복사의 회인 스님이 당 태종의 명을 받아 왕희지의 행서를 20여 년간 정리하고 집자해 완성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비석은 인도로 구법길에 올랐던 현장 스님이 중국으로 돌아온 후 불경의 번역을 끝내자 태종이 현장 스님에게 하사한 ‘대당삼장성교서’와 태자 이치의 ‘대당삼장성교서기’ 그리고 현장 스님이 번역한 ‘반야심경’으로 구성돼 있다. 회인 스님은 이 비석을 만들기 위해 왕희지의 글씨를 집자하는 과정에서 똑같은 글씨를 사용하지 않아 왕희지 흘림체의 다양한 변화를 볼 수 있다. 후인들은 이 비문을 탑본해 한 권의 책으로 엮어 행서를 배울 때 교본으로 삼았다.

이처럼 서예 교본으로 사용하기 위해, 혹은 뛰어난 필체를 감상하기 위해 옛 명필을 모사하거나 탑본해 엮은 책을 법첩(法帖)이라 부른다. 서체의 탁월함이 눈을 즐겁게 하는 동시에 그 내용의 상당수가 옛 경전이거나 중국불교의 굵직한 발자취들이어서 불교사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영나)은 3월15일까지 테마전 ‘서예의 길잡이 중국 법첩’을 개최한다. 이 전시에는 서예의 발전을 이끈 역대 중국 서예가들의 글씨를 담은 법첩 30여 점이 선보인다. 명필들의 서예 작품이 법첩으로 제작되기 시작한 것은 오대십국(907~960) 시기부터다. 특히 북송시대인 992년 발간된 ‘순화각첩’은 법첩 제작의 기준이 되었다. 법첩은 원(1206~1368)과 명(1368~1662) 시기에 활발히 제작돼 청에 이르도록 계속됐다. 서예가들은 법첩으로 과거 명필들의 글씨를 연마하고 연구했다. 이후 비석을 탑본한 비첩 제작도 활발해졌는데 오늘날 법첩과 비첩을 모두 아울러 법첩이라 부른다. 서예 학습에서 법첩은 여전히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역대 명필들의 필적을 법첩으로 제작해 독보적인 한국 서예를 계승하기도 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법첩의 내용 상당수가 ‘대당삼장성교서’와 같이 옛 스님들의 행적이나 경전으로 이뤄져 있다는 점이다. 중국 당나라시대의 명필이자 ‘안진경체’의 당사자이기도 한 안진경의 서체를 만나볼 수 있는 ‘다보탑비’는 안진경이 44세 때 쓴 글씨다. 안진경이 평원 태수로 부임하기 전인 752년 장안 천복사에 건립된 다보탑의 글씨를 쓴 것으로 단정한 글자 형태에 정밀하고 변화가 큰 필획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이밖에도 중국 산시성 용흥사에 있는 전서체의 ‘벽락비’, 조맹부가 쓴 해서체의 ‘증도가’, 명나라 말기의 문인 동기창이 쓴 행서체의 ‘석가여래성도기’, 청대 제일의 서예가로 손꼽히는 옹방강의 해서체 ‘금강반야바라밀경’ 등이 선보인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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