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心歌무심가 / 受天 김용오
달밤에 담배 하나를 물어 강둑에 쭈그리고 앉아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내가 뉘
일고 허니, 인생이 가는 길이 흐르는 물과 같아 일천한 지식 미련 없이 강물에 띄워
보네고서 그동안 파다 말다 놓은 한 뼘의 땅을 다시 일구며 굼벵이처럼 살겠다.
진중히 마음을 고쳐먹고서 허구헛날 저산을 넘으며 뒷일을 보고 뒤를 닦고서
그것들을 버렸어야 함에도 다시 쓰고파 가슴팍에 감춰놓은 똥 묻은 원고지들을
모두 꺼내 강물에 풍덩 쳐놓고 돌무덤에 올려 빠닥빠닥 문지르며 방망이로 때려도
보았지만 없어 저란 똥물은 아니 털리고 느물거린 원고지엔 장자莊子의 우언寓言
이렸다. 허허 이건 또 뭣이랴 이육사李陸史의광야曠野가 무 서리듯 질펀히 퍼질러진
것들이 아낙들의 길쌈들이고 옆에선 휘어진 대못인 노송老松 한그루가 초가삼간
구석구석 마늘 냄새를 남겨 놓고 하늘가신 백부이듯 곰방대를 흔들어 구름들을
일으키니 이백李白의 명월明月이 보이다 보일 듯 가지들에 걸려있고 곁에선
장녹수의 치마폭이듯 시냇물이 좔좔 흐르니 허유許維의 하경산수도夏景山水圖가
보이는데 어라 저놈은 또 무슨 영화인가 구름들이 두들기는 앞소리인 중모리며
휘모리장단에 퍼석 이는 머릿결인 상고들을 흔들며 한판의 춤들을 신명나게 추는
억새뿐인 저 산등성이를 붉은 사람 노랑사람 푸른 사람 빨강 사람들이 갖가지
색동들을 입고서 맛있게 익은 구절판이듯 춤들을 추며 저산을 넘는 게 아닌 가
내 익히 하룻밤 풋사랑에 깨알인 푸른 잎을 껴안아 자근자근 죽여 누어버린
그 곱던 푸른 잎을 피해 강물로 뛰어 들어 죽을 고비를 넘겨도 보았고 남들이
퍼질러 놓은 오줌 똥물들을 닦아내며 가을에 우는 찌르레기처럼 꼭꼭 숨어 울어도
보고 안 해 본 것 없이 다섯 성상을 넘어 살아왔지만 손에 들려 있는 것 무엇 하나
없어 어디를 어떻게 가야하며 무엇을 어떻게 할까를 내 아직 모르고 있는데.
☆ 허유許維 : 조선 시대의 서화가(1809~1892)
자는 마힐(摩詰). 호는 소치(小癡)·노치(老痴)·석치(石痴).허연(許鍊)이라고도 한다.
글,그림,글씨를 모두 잘하여 삼절(三絶)이라 불리었으며, 특히 묵모란(墨牡丹)과
담채 산수를 잘 그렸다. 작품에는 묵화로 그린 하경산수도(夏景山水圖)>라는 유명한
서화가 있다.
시작노트:
문학을 전공한 것도 강좌를 들어 본적도 없는 문학에 일천한 제가 지인의 아픈
소식을 듣고 아픔을 나누고자 글 한편을 써서 홈페이지에 올렸던 이 일로 인해
본연인 나의 일들이 저 만치 멀어짐을 느낄 때 절필을 생각하며 내 안의 혼재된
정체성들을 회자해보았다.
★ 흐르는 곡 // 영암아리랑: 윤선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