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장원 가던 길에 수지 사거리를 지나게 되었다.
지하철공사를 시작한 뒤 정류장이나 보도나 건널목이나
늘 오가는 사람들로 혼잡한 곳이다.
신호등에 걸려 멈춘 버스에서 무심히 창밖을 보니
철근과 금속성 부속자재를 쌓아 덮은 비닐막 위로
어디서 왔는지 한떼의 고추잠자리들이 맴을 돌며 날아다닌다.
어머, 쟤들 좀 봐.
그 광경이 생경하면서 기이하게 느껴졌다.
어디서 왔을까. 파놓은 지하의 어둠속에서 깨어났을까.
어린시절의 기억으로 말하면 그놈들은 된장잠자리다.
고추잠자리는 고추처럼 빨갛고, 그보다 색이 엷어 황색을 띈 놈들을
애들은 된장잠자리라고 불렀다. 앉을 자리를 찾지 못하는지
이리저리 자재더미와 분진 속으로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내려왔다 올라갔다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헤매는건가....
그모습을 가만 바라보니 잠자리들이
가을이 왔어요! 가을이 왔어요!
말하는 것 같았다.
그전엔 호랑잠자리, 보리잠자리, 쌀잠자리도 있었는데.
어릴 때 기억이 호젓하게 떠올랐다.
시드는 옥수수대, 하늘로 솟은 바지랑대,
그 꼭대기에 늘 작고 빨간 잠자리가 앉았다.
선대에 심은 늙은 개복숭아, 우거진 조릿대, 빽빽한 원추리, 억센 풀대들,
질척하고 컴컴한, 어른도 애들도 들어가지 않는 쥐엄나무 밑,
박하와 반하와 그 비밀한 풀숲에 함께 살던 요정같은 각시잠자리들.
빨강, 노랑, 파랑, 초록, 검정, 화사하게 차려입고 나타나는,
아주 작고 몸이 가는, 그 조그만 날개의 요정들.
나의 외가 - 종택을 떠나온 뒤 각시잠자리를 만나지 못했다.
그 잠자리에 대한 기억을 얘기하는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내 형제들도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내 친구들도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왜 그렇게도 보고싶은 걸까.
뿌리를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신랑방에 불켜라, 색시방에 불켜라,
주문을 외우면 불이 켜지듯 붉으스럼하게 변하는 쇠비름은 여전한데
그시절을 함께 살던 나의 그리움 - 각시잠자리들은 소식이 없다.
사람들이 우우 내려 둘러보니 신세계, 어마나! 나 좀 봐.
목적지를 서너 정거장 지나친 것이다.
내가 또 생각속에 빠져 저질렀구나.
현실은 생각에서 나를 무력하게 깨운다.
나는 다시 다른 버스로 갈아타고 버스비를 축냈다.
나도 모를 장님이 되어 순간이동으로 평산신씨 종택으로 끌려가다니.
거기 내가 두고 온 어릴 때의 소꿉품, 마루밑의 나막신이 그대로 있다면
그 주인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찾아오고 싶었다. 그집의 개가 짖을 헛된 생각을
희망처럼 마음에서 짓고 부수고 하면서 지나친 정거장의 표식을 놓치지 않으려고
그래도 이번에는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매직, 몽상, 그런 단어들이 나의 창고에서 정리되지 않는 한 나는
이 생의 혼잡에서 계속 루저가 되어 더듬고 헤맬지도 모른다.
요즘은 자꾸 그런 생각으로 침울해진다.
아무래도 그 작은 잠자리들이 날 부르는 혼령이 되었나 보다.
낭패감으로 길을 되짚어 오며 웬지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현재와 어울리지 못하고 미래를 의심하며
낯선 길 위에 나 혼자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Francis Goya & Damian Luca, Gipsy Love
0130826 글 푸른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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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둘째가 외국에서 근무할 때 2004, 2005, 두 권을 보내주었는데 그 안의 그림들이
우리집 화집에서 보지 못했던 것들이 많더라구요. 집에 쇠라도 있는데 여태 확인도 못했네요. ㅎ
이번에 많은 유명세 붙은 책들을 포함 거의 200권쯤 버렸나 봅니다. 아들이 준 이 다이어리는 이번에
새롭게 찾아내 간직한 것입니다. 그 어떤 책보다 소중해서 쉬는 시간이면 넘겨보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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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백번 이해할수 있어요......
외가 평산 신씨 종택으로 끌려가는듯한 푸른계곡님 심정을!!
해주 오씨 우리 외가도 이제 후손으로 친정이모 한분만 남은 탓에
칠촌할아버지 시인 오 장환님의 일에 제가 나서야만 될 일도 있더군요.
조상과 후손의 보이지 않는 끈이 매듭지어 있는가??
그냥 옛일이 추억되어 자리매김 되는가??
흐르는 음악이 헤아릴수 없는 아득한 옛적으로
나래펼쳐 멀리멀리 날아가게 하는군요.
문득 유진오박사의 '창랑정기'를 펼쳐 보고픈
동병상련 같은 아련한 그리움에 젖게 하네요.
쌀잠자리 이름을 어릴적 참 좋아했어요.
고운 밤 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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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서먹하긴 한데 그날 잠자리들이 불쌍하게 보이더라구요.
이상기온 때문일까요? 도심 한가운 데 매연속에서 그런 광경을
처음 보았습니다. 그날 버스에서 마냥 정신을 놓고 생각에 빠져....
늙어서 그런가봐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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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의식에 가려져 있을 뿐, 분명 있으실.... 사소함. 자연과 결합한 영혼의 표징들도 있지만 지난 어떤 한순간,
우리들이 입었던 아무렇지도 않은 옷(남이 보기에), 밖에서 놀면서 맡은 저녁 짓는 고추조림냄새, 목소리....
파도에 깨진 조가비처럼 기억속에 흩어져 있는 것들- 슬픔, 기쁨, 절망.... 남이 모르는 그런 것들.... ㅎ
베리만의 영화 <산딸기> 보셨는지요? 영화에 관심을 가진 분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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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의 기억들은 이후로 자라기를 멈춘듯
심연에 머물러 있나봐요.
음미할때 아름답고 서러운가하면, 눈물겹게 그리우니요.
추억을 굳이 배열한다면
님을 유년의 종택으로 안내한 감상야 말로
비교를 초월한 최고의 회상이 아닐지요.
아직도 생생히 기억될 두고온 우리들의 소꿉놀이들.
나막신, 어느 대목쯤에서 발가락을 건드리던 기억까지 생생하련만
서너 정거장 지나쳐온 동안 님께서 만나셨을
종택 안, 추억의 여러 장소들.상상해 봅니다.
조릿대 숲에서 부데끼며 일어서던 바람소리 아직도 선연합니다.
푸른계곡님.
몽상도 때론 그리움이라는 형상일테니
님의 아름다운 창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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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떨기같은 추억을 간직한 맑은 영혼은
루저 로 치부되지 않음이 자명하니 우울해 하지 마시기를요.
감은 눈시울타고 님께서 떠나오셨던 종택에서
봄날의 동백꽃보다 몇곱절 고운 향기를 만납니다.
**저는 남의 서재에서 낯익은 책을 발견하면
행복합니다.아무리 눈을 부라리고 애를 써도
개미 " 밖에 읽을수가 없어서 아쉬워요.ㅎㅎㅎ
며칠전 가든에서 바쁜 잠자리를 찍을수 있었습니다.
푸른계곡님이 만나고싶은 각시잠자리는 아닐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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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롱박님 댓글속에 제가 끌려들어 촉촉히 발목을 적시는 느낌을 받습니다.
개미.... 내 책장의 프랑스 소설중에서 유일하게 안 읽은 책이라 버릴까 하다 남겨두었어요.
책을 버린 것은 내 방의 혁명이었다 할까요. 제가 가끔 이상스레 웃기는 사람.
정성스레 올리신 댓글 가득한 마음으로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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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아름답습니다.
저의 특기인데요.ㅎㅎ
전 방금 언니랑 병원 가기로 약속
백도 넘는 땡볕에 기다리다
하도 안 와 핸드폰을 보니 한 시간이나 착각
나, 몰라...잠시 집에 들어 와 냉수 한 잔 마시고
정신 차리고 나갑니다.
저녁에 다시 올께요~
각시잠자리 한 마리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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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좀 별난 것은 아직 히든카드를 손에 쥐고 있다는 것입니다.
죽기 전에 그 패를 확인하는 것도 결국 자신이겠지요?
세월은 유장한데 봇짐만 낡았구나.... (한탄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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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비름은 여전한데
그 시절을 함께 살던 나의그리움 - 각시잠자리들은 소식이 없다"
아름다운 글 잘 읽었습니다 ~
잠자리들 이름이 그렇게 많은줄 몰랐습니다..^^
각시 잠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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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살았던 잠자리랍니다. 지금은 시로 승격되었다는데
고교시절 이후 가본 적이 없으니 아득하지요....^^*
'글,문학 > 수필등,기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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