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강에서 달을보다] 인월 목부원 일장 스님
- 고장 난 라디오 고쳐 놓으면 그만! 부처는 만드는 게 아니다
- 2011.10.06 18:05 입력 발행호수 : 1115 호 / 발행일 : 2011-10-05
심장병에 천식.
숨소리 크니 도반 정진에 불편.
대중생활 접고 토굴 생활.
선열 속에 그리지 않았으니
내 그림 ‘선화’ 아냐.
언행 살펴 고쳐 나가는 게 수행.
선택 했다면 절박함으로 다가가라.
예단은 필요 없고,
평가는 두려워할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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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 함멜의 시 ‘여행’은 이렇게 시작한다. ‘길을 선택해야만 했을 때 나는 서쪽으로 난 길을 택했다. 길은 유년기의 숲에서 성공의 도시로 이어져 있었다.’
샤르트르가 ‘인생은 B(Birth. 탄생))와 D(Death. 죽음) 사이의 C(Choice. 선택)’라 한 것처럼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을 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 출가도 선택이다. 그 누구도 출가를 강요하지 않는다. 자신이 내린 결정이요, 선택이다.
10대 초반, 만화책을 즐겨 보던 소년이 춘원의 소설 ‘원효대사’와 ‘서산대사’를 읽었다. 소설 속에 구축된 세계는 막연하게나마 ‘이상 세계’로 다가왔다. 그 세계 속에서 자유롭고 싶었다. 교과서에서 본 대찰 중 하나를 찾아 길을 나섰다. 낸시 함멜이 ‘내가 가진 가장 소중한 재산은 그 도시의 황금문으로 들어가리라는 이상’이라 했던 것처럼 그의 출가발심의 원동력은 ‘이상과 자유’였다.
“소설에 그려진 세상과 현실은 너무도 달랐습니다. 한문 한 자 안 가르쳐주더군요. 집게 하나 주고는 경내에 버려진 껌 종이 주우라는 게 다였습니다. 관광객 중엔 아는 사람도 많았지요. 창피했습니다.”
춘원 소설 읽고 13세에 출가
더 이상 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이 절 저 절을 돌며 운력하고, 먹고 잤다. 그렇게 수년을 보낸 뒤 범어사로 발길을 돌려 동산 스님을 은사로 정식 출가했다. 17살 때의 일이다.
전국 선방을 돌며 정진의 정진을 거듭해 갔다. ‘만법은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디로 가는가?’ 화두는 들었지만 어찌할 바를 몰랐다. 간절하게 들다 보면 시절인연이 있을 것이라 하지만 화두는 잡히지 않았다. 좌선이란 무엇인지, 화두를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도 세심하게 말해주는 이가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어차피 혼자 해결할 일이니 남 탓 할 일도 아니었다. 낸시 함멜은 노래한다. ‘도중에 건널 수 없는 강에 이르렀고 내 꿈이 사라지는 것만 같아 두려웠다.’ 일장 스님도 그러했다.
어느 날, 도반의 푸념 한마디를 들었다. ‘시끄러워서 제대로 앉아 있지도 못 하겠네.’ 일장 스님은 심장이 좋지 않다. 천식까지 있었으니 숨소리가 꽤나 컸던 모양이다. 심장병을 고쳐보려고도 해 보았지만 치료비가 없었다. 화두도 안 잡히고, 건강 문제로 대중생활도 어렵게 되었다. 치료도 할 수 없고, 공부도 그만 두어야 한다. 이대로 끝내야 하는가.
시(詩)는 계속 이어진다. ‘하지만 나무를 잘라 다리를 만들고 강을 건넜다. 여행은 내가 계획한 것보다 더 오래 걸렸다. 비를 맞아 몹시 피곤해진 나는 배낭의 무거운 것들을 버리고 걸음을 재촉했다.’ 일장 스님의 여정도 다시 시작 된다.
“청정 도량에서 도반들과 함께 정진할 수 있는 복이 제게는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지요.”
토굴 생활이 시작됐다. 혼자 밥 짓고, 빨래하고, 불을 넣었다. 망념 한 줄기가 우주 끝까지 간다고 했던가. 홀로 다독였다. 그래도 들에 핀 이름 모를 꽃이 스님을 반겨주었다.
“고독했냐구요? 그럴지도 모르지요. 절박했습니다.”
절박하다! 옛 스님들은 이마에 간절 ‘절’(切)자 하나 써야 소식을 얻는다 했다. 사막에서 물을 찾듯, 어머니가 집 나간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그 간절함으로 수행에 임하라 했다. 그런 간절함을 절박이라 표현하는 것일까? 어쩌면 철저한 고독과 애끓는 간절함이 빚어낸 심정을 ‘절박’이라는 단어로 에둘러 말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1985년 육지에서의 10여년 토굴 생활을 접고 제주도로 향했다. 김재미의 시제처럼 ‘고독이란 이름의 섬’에서 ‘묵묵히 세상’을 바라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토굴 하나 마련해 ‘목부원’(牧夫苑)이라 이름 하고 산간 농토를 개간하며 농사를 지었다. ‘스님’이라는, ‘불교’라는 종교 틀이 아니더라도 이웃사람과 편안히 만날 수 있었던 게 작은 행복이라면 행복이었다.
“언제 씨를 뿌려야 하는지 알려면 제가 먼저 다가가야 하지요. 시간이 좀 지나니 마을 사람들이 뭐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어 찾아옵니다. 절하러 오라, 기도하러 오라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와서는 부처님 친견하고 가더군요.”
보답을 해야 했다. 처음엔 법을 설했다. 그런데 듣고 나서는 금방 잊는 듯 했다. 언뜻 ‘부질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글 한 편이라도 써 주는 게 더 좋지 않을까? 부처님 말씀 하나라도 가슴에 담아놓고 하루를 산다면 그 역시 의미 있는 일이 아닌가. 글을 받은 사람들이 ‘이왕이면 그림도 넣어 달라’고 한다. 세간에서든, 출세간에서든 그림 공부 한 번 해 본적 없는 스님이었기에 망설였지만, 불자들의 작은 ‘소망’하나마저 내치기가 어려웠다. 붓 가는대로 선을 치고, 마음 가는 대로 색을 넣었다. 그럴듯했다.
“농사 중의 농사는 자식 농사라 하지요. 중인 내가 할 수 있는 농사는 무엇일까? 청소년들에게 불심을 심어주고 싶었습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그 불심 하나에서 일어난 지혜가 풍파를 극복할 수 있는 힘으로 작용할 수도 있는 것이니 말입니다.”
그들을 위한 공간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청소년 수련원 건립을 위한 일장서화전’을 열었다.
“제 글씨와 그림이 그리 훌륭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불사하는데 쓰이는 그림이니 그리 흉 될 거라 보진 않았지요.”
일장 스님의 ‘선서화’는 이렇게 시작됐다. 스님은 자신의 그림이 ‘선화’라 이름 할 수 없다고 한다. “선열에서 나온 그림이 선화지요. 나는 그냥 그림 한 번 그려보자 할 때 그릴 뿐입니다.” 글씨, 그림은 그저 방편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출가 수행자로서의 본분사를 말하고 있음이다.
그렇다 해도 일장 스님의 선화세계는 흥미롭다. 선화는 자연의 소리를 그리는 것이라 표현하는 이도 있다. 존재의 내면을 직관해 그려내는 일이니 일리 있는 말이다. ‘생명의 존엄성, 자비심을 일으켜 본래의 나로 돌아가는 것’이라 보면 크게 틀리지 않으리라.
만선동귀집·선가귀감 번역탁월
일장 스님의 선화가 여기에 닿아 있다. 애써 필력을 내 보이지 않지만 달필에 묻어 나온 선과 색감은 선의 세계로 이끌어주는데 부족함이 없다. 글 내용도 일품이다. ‘벼루 위에 봄이 오니 온갖 꽃이 피어나서 한 떨기 꽃마다 한 부처님임을 넌지시 알려주네’라 하는가 하면 ‘경전 읽다 미뤄놓고 달빛을 따라가서 들꽃을 꺾어 와서 부처님께 공양하네. 사립문 띄풀집에 홀로 살면서 객이 오면 쑥을 다려 차로 내 놓네’라 한다. 나와 자연이 둘이 아니고, 곳곳이 불상이고 일마다 불공임을 표현하고 있다. 스님이 그토록 가려 했던 이상 세계, 그 세계가 지금 여기에 펼쳐지고 있음을 말하고 있음이다. 고독이라는 이름의 섬에서 세상을 묵묵히 바라보다 건져 올린 마음 한 조각이다.
스님은 2004년 제주도 생활을 접고 다시 지리산으로 발길을 돌려 황매암을 창건했다. 또 다른 길을 선택한 것이다. 지난해에는 인월 덕유산 끝자락에 목부원을 마련했다. 제주도 토굴에 걸었던 현판도 다시 걸었다. 더 철저한 고독 속으로 자신을 밀어 넣어 절박함의 끝까지 가 보려 하는 듯하다.
토굴 정진 중에서도 스님은 두 권의 책을 세상에 선보였다. 성철 스님으로부터 받은 만선동귀집(불광출판부)과 언해본 선가귀감(불광출판부)을 번역 출간했다. 모르는 한자는 옥편을 찾아 살피고, 모르는 문자가 있으면 교수에게 전화라도 걸어 해결했다. 책을 내기 위한 작업이 아니었다. 절박함에 처해 있는 자신을 놓아 보려는 일련의 과정, 즉 정진의 일편이었다. 도반 스님들이 함께 보자 하기에 책으로 엮은 것뿐이다.
궁금했다. 그토록 자리를 옮기며 스스로 자신을 벼랑 끝까지 몰고 간 이유가 무엇인지.
“사람은 젖을 수밖에 없습니다. 범어사 대중 생활 때에는 당장 아침에 공양할 80인분의 쌀이 없어 범어사에서 온천장까지 걸어가며 탁발을 했습니다. 처음 토굴 생활할 때에는 전기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목부원을 보세요. 형광등만 있는 게 아니라 텔레비전, 라디오, 심지어 승용차도 있습니다. 저도 벌써 젖어 있는 겁니다. 이 편의에 젖어가다 보면 본분사를 잊기 쉽습니다. 사회 공부와 달리 이 공부는 하면 할수록 가난해집니다. 내려놓고 비워야 하니 말입니다. 하지만 잠시라도 방심하면 내세우고 충족시키려 합니다. 저 역시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어떤 환경에 있더라도 자신의 본분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한 곳에 머무르지 않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혹, 자신이 나태해지려는 낌새가 보이면 찰나의 머뭇거림도 없이 길을 떠났던 것이다.
“부처님이 길을 나서기 전 상황을 보세요. 생사를 고민 하셨다?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 사춘기 시절에 한번쯤 생사 고뇌 안 해본 사람 있나요? 부처님께서는 고민에 그치지 않고 끝 모를 길을 걸으셨습니다. 왜일까요? 생사가 궁금한 게 아니라. 그 생사를 해결해야만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수행의 길은 여기서 시작해야 한다. 누구에게 자랑하려 하는 수행이 아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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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장 스님은 지금도 절박하다고 한다. 그러하기에 아침예불을 올리고 아침저녁으로 금강경과 천수경을 독송한다. 금강경도 독송에 그치지 않고 참구한다. 스님 스스로 금강경 핵심을 담은 축약본을 만들어 어떻게 번역해야 우리말에 ‘딱’떨어질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있다. 2009년 시작했는데 교정만 233번이다. 일장 스님의 금강경이 기대된다.
“공장에서 나온 라디오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고장이 나지요. 우린 그것을 고장 난 라디오라 합니다. 어떻게 합니까? 원인을 살펴 고치지요. 라디오를 다시 만드는 게 아니라 원래의 상태로 돌려놓는 겁니다. 수행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일장 스님은 자신을 살피라 한다. 하심을 갖고 자신을 살피며 하나씩 고쳐 나가보라 한다. 태도 하나, 말씨 하나, 생각 하나도 살펴가며 고쳐가라 한다. 삼업을 청정하게 하라는 뜻이다.
“선가에서 말하는 깨달음에만 연연할 게 아닙니다. 어느 순간, ‘평소에 내가 너무 심한 말을 자주 하는구나, 걸음걸이 하나도 제대로 걷지 못하고 있구나’하고 알면 그 역시 일상의 깨달음입니다. 잘못된 것은 고치면 됩니다. 만물의 실상을 바로 보려 하는 사람이 자신의 언행 하나 보려 하지 않는다면 어불성설이지요. 부처는 만드는 게 아닙니다.”
일장 스님의 여정을 통해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 누군가 무엇을 선택했다면 절박한 마음으로 다가가라는 것이다. 그 끝을 예단할 필요도, 평가할 이유도 없다.
낸시 함멜의 시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내 삶은 이제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처음으로 나는 고개를 돌려 내가 걸어 온 동쪽을 바라보았다. 그 곳까지 오면서 내가 경험한 모든 일들을…. 무엇보다 마음을 여는 법을 배웠다. 때로는 그것이 고통을 가져다줄지라도. 나는 알았다. 삶이 단순히 생존하는 것 이상임을, 나의 성공은 도착이 아니라, 그 여정에 있음을.’
일장 스님의 여정은 계속 되고 있다.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목부원을 찾아보라. “내 속도 빤히 보여 창피해 드러낼 게 없다” 하지만 절박함에서 배어 나온 말 한마디가 뇌성보다 크게 들릴 것이다. 스님은 끝내 그리 전할 법이 없다며 글 한편으로 대신하자 했다. ‘일위등명 보공시방’(一燈明 普供十方) 일장 스님이 직접 풀었다.
“(조그만) 밝은 등불(꿈, 희망)하나 온 누리(이웃)에 공양합니다.”
토굴에서 빚어 낸 등불 하나다. 우리가 놓지 말아야 할 등불이다.
채한기 상임 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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