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banya & 청담

[스크랩] 봉축인터뷰/덕숭총림 방장 설정스님

淸潭 2011. 5. 2. 15:40

  

“자기상실의 시대…부단히 정진해야”

덕숭총림 방장 설정스님

 
 
 
 
덕숭총림 수덕사 방장 설정스님은 “우리 모두가 부처님의 능력을 갖고 있다”며 “자신의 본성을 바로 보는 것이 깨달음”이라고 강조했다.
 
 
 
부처님오신날을 보름 앞둔 지난 6일 덕숭총림 수덕사 방장 설정(雪靖) 스님을 찾아 부처님오신날의 참된 의미에 대해 들었다. 덕숭총림 방장 설정스님은 “부처님은 우주의 모든 생명이 부처가 될 수 있음을 일깨우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며 “자기 안의 부처가 삶 속에서 발현되도록 부단히 정진하는 것이 불자들의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소통과 화합을 지고의 가치로 내건 제33대 조계종 총무원 집행부에 대해서도 아낌없는 격려를 보냈다. 특히 승려 개인명의 재산의 입적 후 종단 출연, 사회와 역사에 부응하는 수행자 양성을 위한 승가교육 개선 등 핵심 종책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지지의 입장을 나타냈다. 무엇보다 “스님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부처님 가르침에 합당한 소신과 언행으로 살아갈 때, 종단의 사회적 위상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며 지계(持戒)와 공동체 정신을 역설했다. 불자들의 신심을 북돋울 수 있는 휘호도 선사했다.
 
 
봉축인터뷰/덕숭총림 방장 설정스님
 
 
“자기상실의 시대…내 안의 부처,
 
 
 삶 속에 발현되도록 부단히 정진해야”
 
 
 
절대자에 의지해선 행복 얻을 수 없어
 
모든 생명 스스로가 존귀함 깨우치면
 
남에게 구걸하지 않고도 행복 성취해
 
 
덕숭산 정상 부근에 위치한 수덕사내 정혜사 능인선원. 설정스님이 주석하며 납자들을 제접하는 곳이다. 해발 495m. 높은 산은 아니지만 인적이 드물고 바람이 맑기는 마찬가지다. 티끌 한 점 없는 선방에서 스님은 기자를 반갑게 맞이하며 정좌했다. 부드럽고 나긋나긋한 어투가 인상적이면서도 법문의 내용은 견고하고 명쾌했다. 신기하게도 스님이 말문을 열자 산중에 안개가 엄습했다.
 
“부처님은 모든 생명에게 희망과 광명을 전하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중생들의 삶은 혼란스럽습니다. 스스로의 중심을 잃고 외물(外物)에 현혹돼 끊임없이 번뇌합니다. ‘모든 생명은 자기 안에 불성(佛性)을 갖고 있다.’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입니다. 불교 이외의 종교는 진리가 자기 밖에 있다고 강변합니다. 신(神)에게서 구원을 받으려 하고, 절대자에 의지해 행복을 얻으려 합니다. 하지만 부처님은 자신의 본성을 제대로 보면 남에게 구걸하지 않고도 행복을 성취할 수 있다고 확언했습니다. 알다시피 부처님이 탄생해 외친 최초의 일성은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입니다. ‘이 세상에 오직 나만이 존귀하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부처님의 자화자찬이라고 오해하면 안 됩니다. 모든 생명 각자가 스스로 존귀하다는 것을 깨우치라는 경책입니다. 질투심과 열등감에 시달리며 스스로를 업신여기는 생명에 울리는 커다란 경종입니다.”
 
스님은 자심진불(自心眞佛)의 법문을 이어갔다. “역사상에 실존했던 부처님은 석가모니 부처님 한 분이지만, 사실 부처님은 시공을 초월해 존재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육신은 광대무변하며 수명은 영원무구합니다. 우주가 생기기 전부터 살아 있었고 우주가 소멸하더라도 죽지 않습니다. 과거가 곧 미래요 미래가 곧 현재입니다. 눈부신 백천일월(百千日月)도 부처님의 자비광명에 비하면 한낱 촛불에 지나지 않습니다. 부처님의 능력은 신통하고도 오묘해 상대의 소원과 처지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바꾸어 나타납니다. 우주의 근본을 통찰하고 생명의 원천을 규명해 일체의 진리를 깨달은 것이 부처님의 지혜입니다. 부처님의 자비는 철천지원수라도 부모 섬기듯 대합니다. 걸림이 없고 편견이 없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중생에게 바칩니다. 이렇듯 어마어마한 것이 부처님의 위신력입니다. 여기서 불자들이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단지 상상을 초월하는 부처님의 복덕과 지혜를 찬탄하는 데서 그친다면, 이는 남의 보배나 세는 일입니다.
 
 
감각과 탐욕에 눌려
 
본성 사라진 것 몰라
 
정복과 소유만 남아
 
‘우리’마저 잃어버려
 
 
부처님은 우리 모두가 당신의 능력을 갖고 있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45년 설법이 전부 이 한 마디로 귀결됩니다. 부처님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였듯 우리도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고 말하며 행동합니다. 우리도 부처님의 본성을 품고 있습니다. 단지 숨겨져 있어 알아채지 못했거나 무명(無明)의 방해로 인해 자꾸 쓸데없는 곳에 마음을 쓰는 탓에 본성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부처임을 모르고 하늘과 귀신을 숭배하고, 태양과 물 앞에 엎드리는 어리석음을 범합니다. ‘자기 상실’이 인류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스님은 문명의 발달이 절정을 이룬 사회일수록 그 안에 속한 개인들이 자기 상실의 극치를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치성하는 감각과 진화하는 탐욕이 본성을 짓누를 대로 짓누르고 있다는 일침이다. “서구적 사고방식의 근저에는 이분법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신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을 갈라놓습니다. 그리고 자아가 타자를 정복하고 소유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깁니다. 인간은 신에게 복종하면서 자연을 지배하는 것이 순리라고 가르칩니다.
 
<사진>설정스님은 소통과 화합을 지향하는 제33대 조계종 집행부에도 성원과 격려를 보냈다.
 
‘우리’라는 정서가 갈수록 희미해져 걱정입니다. 인간미는 사라지고 서로 간의 거리만 뚜렷해집니다. 일부 열강에 의한 부(富)의 독점, 생태계의 무분별한 파괴와 지구온난화에 의한 기상이변 참사 등이 이러한 생각에서 비롯된 과보입니다. 반면 불교는 너와 내가 둘이 아니라는 불이(不二)를 근간으로 합니다. 회광반조(回光返照), 문자와 개념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 마음속의 불성을 직시한다면 이를 통연히 알 수 있습니다. 나의 불성을 깨우고, 남이 불성을 깨우도록 도우고 아끼며 살아야 합니다.”
모두가 부처이기에 서로 화합해야 한다는 것. 수행자의 기본이자 승가의 의무다. “승가도 자성해야 합니다. 과연 본분에 충실하면서 화합을 실천해 왔는지. 종단에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대부분 스님들이 근본을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가운데 현 집행부가 소통과 화합으로 종단 운영방식에 대전환을 시도하고 있어 고무적입니다. 물론 소통과 화합은 선언만으로는 안 됩니다. 구체적인 행동이 수반돼야 합니다. 종단의 주요한 일원인 스님들 각자가 자신의 맡은 역할을 다할 때만이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이른바 ‘승격(僧格)’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합니다. 총무원장 스님을 비롯한 집행부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전체 사부대중이 이에 부응하지 않으면 특별한 결실을 얻기 어렵습니다. 집행부에는 꾸준한 홍보와 설득, 일반 종도들에게는 참여와 성원이 요구됩니다. 계율과 선정과 지혜,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을 두루 닦겠다는 초발심을 되새겨야 합니다. 부처님 제자가 되기로 한 결심은 일체의 탐욕과 이해로부터 해방되겠다는 서원입니다. 그러나 적잖은 스님들이 명리(名利)를 취하기 위해 어쭙잖게 처신하는 경우를 더러 봅니다. 그럴 때마다 자아를 버리고 중생의 생사고락을 위해 살겠다는 원력이 퇴색되지 않았나 마음이 무겁습니다. 이는 해당 스님 개인의 수치일 뿐 아니라 사부대중의 수치입니다. 명예와 이익을 좇아 방황하면 부처님의 제자가 아닙니다. 출가 본연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승풍 진작의 전제는
 
올바른 교육과 수행
 
현대인 가르치려면
 
걸맞은 교양 갖춰야
 
 
수덕사 주지 옹산스님을 비롯한 총림대중은 지난 3월13일 입적 후 개인명의 재산을 종단에 출연하기로 의견을 같이 했다. 평소 당신 앞으로 들어오는 정재(淨財)를 교구본사로 회향하고 있는 방장 스님의 행화(行化)를 본받겠다는 취지였다. “인생이 사실, 맨몸으로 왔다가 맨몸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스님들이 절집에서 살다가 불가피하게 얻게 된 재산이 있다면 이는 개인의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금전적 몫에 집착한다면 스스로 부처님 제자가 아니라고 인정하는 자기배반입니다. 금번 종단 집행부의 ‘개인명의 재산 사후 종단 출연’ 종책은 참으로 반가운 일입니다. 다만 ‘재산 몰수가 아니냐’ 운운하는 일부의 오해와 불신이 말끔히 씻길 수 있도록 본래 취지를 친절하고 정확하게 설명할 것을 당부합니다. 승가공동체 정신을 계승하고 삼보정재의 유출을 막는 이번 법령 시행이 얼마나 거룩하고 복된 일인지를 모든 종도들이 공감해야 합니다. 출가수행자는 오로지 수행과 공부에만 관심을 두어야지, 속인의 관심에 눈길을 돌려선 안 됩니다.”
 
승가교육제도 개선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역설했다. “지금 한국불교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스님이 스님답지 못할 때 사부대중은 불안해합니다. 승풍 진작의 전제는 올바른 교육과 수행입니다.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고 수행 경험이 일천한 스님이 행정을 하고 포교를 한다면, 이는 요리를 전혀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맛있는 요리로 손님을 대접하겠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원력이 장하고 역량이 뛰어나고 도덕적으로 흠결이 없고 교양 수준이 높은 스님이 많아야 종단이 발전합니다. 이즈막 교육원장 현응스님을 비롯한 집행부가 승가교육제도 개선을 위해 부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회와 소통하고 역사를 창조하려면 먼저 사회와 역사를 올바로 이해하고 이를 불교적으로 응용할 수 있는 기술을 익혀야 합니다. 그러한 점에서 불교의 포괄적 이해를 목적으로 한 교과목 개편에 대해 찬성합니다. 일반 국민들은 바르고 슬기로운 스님에게서 바르고 슬기로운 종단을 봅니다. 더구나 한껏 영리해진 현대인들을 가르치려면 그들의 수준을 뛰어넘는 교양을 갖춰야 합니다.”
 
승가교육과 관련해 유의미한 대안도 내놓았다. “출가자의 감소와 고령화가 심각합니다. 사중에 오래 살다보니 세속의 때가 두터운 늦깎이 출가자들에게 발심을 심어주기는 매우 어렵다는 것을 체감합니다. 젊은이들 더 나아가 어린이, 청소년들을 미리부터 살펴야 합니다. 자녀를 출가시키고 싶은 의향을 지닌 부모들에게 교육비를 지원하는 등 관심과 배려를 보여주는 건 어떨지. 그들의 발심을 어릴 때부터 관리하고 북돋워주는 종책이 만들어졌으면 합니다. 특히 종법상으로 제도적으로 동자승을 키울 수가 없는 구조입니다. ‘출가자 연령 하한선’ 철폐를 권합니다. 그리고 초심자들의 원만한 적응을 위해 사찰의 수행환경도 이젠 부드럽고 따뜻해져야 합니다. 출가자에게 무턱대고 자기 집에서도 안 하던 막일을 강요하면 낯설고 황망해 하는 건 당연합니다. 마음에 역심(逆心)이 들면 수행이 안 되는 법입니다. 자율적인 분위기에서 그들이 자연스럽게 부처님의 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승려 개인명의 재산 출연, 승가교육 개선 지지
 
경허스님 유훈 따라 ‘무상·무념’ 근본 삼아야
 
불법 멀리 있지 않아… ‘당신이 곧 부처’ 명심
 
 
덕숭총림은 근대 한국불교의 중흥조인 경허스님의 선기(禪氣)가 서려 있다. 스승에 이어 덕숭총림의 선풍을 드날린 만공스님, 간도에서 자비보살의 현신으로 살았던 수월스님, 오대산 호랑이 수좌 한암스님, 1.2.3대 방장이었던 혜암.벽초.원담스님 등 걸출한 제자들까지. 한국의 조사선(祖師禪)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덕숭문중의 가풍은 무상위종(無相爲宗), 무념위종(無念爲宗)입니다. 무상과 무념을 근본으로 삼는다는 뜻으로 경허스님의 행화를 따르는 것입니다. 일각에선 파격과 기행을 일삼은 괴승이라고 손가락질합니다. 이는 스님의 진정성을 전혀 모르고 내뱉은 망언입니다. 스님은 부처님 가르침을 깨우치기 위해 온몸을 던진 분입니다. 자기가 부처라는 자각으로 대자유인의 삶을 살았던 분입니다. 스님의 기백과 헌신이 있었기에 한국불교가 일제강점기의 시련을 딛고서 명맥을 이을 수 있었습니다.
 
으레 불법이 멀리 있다고들 생각합니다. 하지만 불교는 매우 간단합니다. 누구나 마음을 갖고 살아갑니다. 이 마음이 바로 부처입니다. 마음을 바로 보면 부처와 중생은 하등의 차이가 없습니다. 현대인들은 감각적이고 충동적인 외물에 휘둘리느라 본성을 잊고 삽니다. 심전경작(心田耕作). 마음 밭을 일구고 가꿀 줄 모릅니다. 나쁜 생각, 탁한 생각, 얽힌 생각 탓에 부처의 길과는 점점 멀어져 갑니다. 수심(修心). 마음을 닦으십시오. 대자유인으로서 넉넉한 심성을 가질 수 있도록. 그리고 용심(用心). 마음을 부처답게 쓰십시오. 자신과 다르다고 깎아내리고 헐뜯는다면 이는 본바탕을 잃은 가여운 중생입니다. 견성성불(見性成佛)이란 최소한 ‘인간답게 살아야 겠다’는 양심에서 출발합니다. 당신이 곧 부처라는 것, 이 마음만은 잊지 마십시오. 스스로를 믿고 정진하십시오. 그게 바로 행복입니다.”
 
스님은 인터뷰를 끝내며 붓글씨를 몇 점 선물했다. ‘萬古光明永不滅(만고광명영불멸, 부처님의 자비로운 빛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佛身充滿百億界(불신충만백억계, 부처님의 몸은 셀 수 없이 많은 세계에 가득하다), 그리고 중도(中道). 스님이 내주는 점심공양을 마치자 안개가 갑자기 걷혔다. 산중의 안개만 걷힌 건 아니었다.
 
 
 
 
 
덕숭총림 수덕사 방장 설정스님이 본지에 선물한 휘호. 서예의 대가였던 전 방장 원담스님의 상좌인 만큼 글씨에 품격이 있다.
 
 
수덕사=장영섭 기자 fuel@ibulgyo.com
 
이시영 충남지사장 lsy@ibulgyo.com
 
사진 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설정스님은…
 
덕숭총림 방장 설정스님은 1955년 수덕사에서 전 방장 원담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해인사 강원을 마친 뒤, 범어사 봉암사 수덕사 등 제방선원에서 반세기 동안 수행했다. 수덕사 주지를 비롯해 조계종 개혁회의 법제위원장, 제11대 중앙종회의장을 역임하며 이사무애(理事無碍)의 모습을 보여줬다. 현재 서울 화계사 조실을 겸임하고 있다. 2008년 입적한 원담스님의 뒤를 이어 2009년 8월 조계종 중앙종회에서 제4대 방장으로 추대됐다.
 
총림(叢林)이란 여러 스님들이 화합하며 함께 불법을 배우는 사찰을 가리킨다. 덕숭총림 수덕사를 비롯해 해인총림 해인사, 영축총림 통도사, 조계총림 송광사, 고불총림 백양사가 대표적이다. 방장(方丈)은 승랍 40년 이상의 원로로 선(禪), 교(敎), 율(律)을 겸비하고 20안거 이상을 성만한 본분종사여야 한다. 총림의 최고 어른으로서 대중의 수행을 지도 감독하는 역할을 한다. 임기는 10년이며 중임할 수 있다.
 
 
[불교신문 2625호/ 5월22일자]
2010-05-20 오후 6:00:50 / 송고

 

 

 

출처 : 수덕사를 사랑하는 모임(수사모)
글쓴이 : 청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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