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閼智 脫解王代
永平三年庚申(一云中元六年 誤矣 中元盡二年而己) 八月四日 瓠公夜行月城西里 見大光明於始林中(一作鳩林) 有紫雲從天垂地 雲中有黃金櫃 掛於樹枝 光自櫃出 亦有白鷄鳴於樹下 以狀聞於王 駕幸其林 開櫃有童男 臥而卽起 如赫居世之故事 故因其言 以閼智名之 閼智卽鄕言小兒之稱也 抱載還闕 鳥獸相隨 喜躍蹌蹌 王擇吉日 冊位太子 後讓於婆裟 不卽王位 因金櫃而出 乃姓金氏 閼智生熱漢 漢生阿都 都生首留 留生郁部 部生俱道(一作仇刀) 道生未鄒 鄒卽王位 新羅金氏自閼智始
영평 3년 경신년 8월 4일 호공이 월성 서리로 야행을 하다가 시림 가운데에서 큰 광명을 보았는데 자색구름이 하늘에서 땅으로 드리웠었다. 구름 가운데 황금 궤가 있었는데 나뭇가지에 걸려 있었다. 빛은 궤로부터 나오고 있었고 또한 흰 닭이 있어서 나무 아래에서 울었다. 이런 상황을 왕이 듣고 수레를 타고 그 숲으로 행차했다. 궤를 여니 남자 아이가 있어 누워 있다가 곧 일어났다. 혁거세의 고사와 같아서 그러므로 그 말에 따라 알지를 이름으로 하였다. 알지는 시골 말로 어린 아이의 칭호였다. 포대기에 싸서 궁궐로 돌아왔는데 새와 짐승이 서로 따라오며 기뻐 날뛰었다. 왕이 길일을 택해 태자로 책봉했다. 후에 파사를 물려주고 왕위를 물려주지는 않았다. 금궤에서 나왔으므로 이에 금씨로 성을 삼았다. 알지는 열한을 낳았고 한은 아도를 낳았고 도는 수류를 낳았고 유는 욱부를 낳았고 부는 구도를 낳았고 도는 미추를 낳았는데 추는 왕이 되었다. 신라 금씨는 알지로부터 시작되었다.
(원래 金은 발음 그대로 금씨였는데, 조선 왕조 때 이씨들이 李는 木이라 金이 木을 이기므로 발음을 김으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중국 무협소설 작가인 金鏞을 김용으로 읽는 경우가 많은데 잘못된 발음이고 금용이 옳습니다. 그렇다고 500년동안 써 오던 김씨를 금씨로 바꾸자는 건 아니구요. 그냥 그렇다는 썰입죠. 또 하기야 金을 중국 발음으로는 진이니 그걸 금으로 해도 되고 김이라 해도 별 탈은 없겠죠.ㅎㅎㅎ 又玄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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